父子가 생면부지 美공군 전사자 11명 71년간 추도

“세계 2차대전 당시 미얀마에서 비행기 사고로 숨진 형의 시신을 수습한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처참한 모습으로 숨진 미 공군들 시신을 매장했고 추도식도 올리기로 했다”

11일 경남 남해군 남해읍 (사)미공군전공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열린 “미 공군전몰 71주년 추도식”에서 김종기(60) 기념사업회 대표는 작고한 아버지 김덕형(1915~2010) 전 대표의 생전 말을 빌려 71년째 추도식을 봉행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날 추도식은 1945년 8월 8일 새벽 2시쯤 남해 망운산에 추락, 모두 전사한 미 폭격기 승무원 11명을 위로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계 2차대전에 참전한 미 공군은 당시 전남 여수에 주둔한 일본군 기지를 폭격하려다 일본군이 쏜 대공포를 맞고 돌아가다 추락했습니다.

한국전쟁 때 많은 미군이 희생됐지만 세계 2차대전 때 한반도에서 미군이 숨진 것은 이 전장이 유일합니다.

당시 김 전 대표와 주민들은 폭발소리와 함께 불이 난 망운산에 올랐고 눈 앞에 펼쳐진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큰 폭발로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폭격기 잔해 속에 11명의 시신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김 전 대표 가족은 2년 전 일본군 통역으로 징용된 형 덕병 씨가 미얀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다 산속에 추락해 숨진 사실로 비통에 잠겨 있었습니다.

김 전 대표는 형이 숨졌다는 통보만 받았을 뿐 시신은 돌아오지 않아 슬픔이 더했습니다.

김 전 대표는 형의 시신도 누군가 수습했을 거란 막연한 기대에 자신도 미 공군 시신을 수습하고 추락 현장 부근에 임시로 매장했습니다.

다음날 인부 2명과 현장을 찾아 다시 매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로 김 전 대표는 일본군 헌병대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고 감옥살이까지 하다 광복 이후 풀려났습니다.

김 전 대표는 세계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군 덕분에 광복을 맞았다고 생각하고 1946년 미 공군 전사자 11명에 대한 추도식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해 미 공군 유해 11구는 모두 미국으로 송환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10년이 지난 1956년 11월엔 망운산 추락현장에 “미 공군 전공기념비”를 세웠습니다. 높이 3.6m의 기념비 비문은 이승만 대통령이 보낸 친필 휘호로 새겼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미국 내에 알려져 미국 텍사스주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김 전 대표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당신은 용감한 분이고 진정한 친구다. 미국으로 왔으면 좋겠다”란 내용이 편지에 적혀있었다고 김 대표는 소개했습니다.

1986년 미 육군도 김 전 대표의 공로를 높이 사 “미국 시민 공로수훈훈장”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김 전 대표가 얼굴도 모르는 미 공군 전사자 유해를 소중하게 수습하고 추도한 사연은 1958년 문교부에서 만든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 “초등 도의”에 모두 7페이지에 걸쳐 자세히 실렸습니다.

김 전 대표는 생전에 추도식을 계속 봉행해 줄 것을 아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이에 김 대표는 아버지가 작고한 2010년 이후 대표를 맡아 대를 이어 추도식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농약 판매업을 한 김 전 대표는 자기 건물 3층에 “(사)미공군전공기념회관”을 마련하고 매년 11월 미 공군 전사자 11명을 기리는 추도식을 올렸습니다.

회사원으로 근무하다 정년 퇴직한 종기 씨는 아버지가 별세한 2010년 부터 대표를 맡아 이곳에서 추도식을 올립니다.

이날 열린 71주년 추도식에는 마쉬 주한 미 육군장교가 미국을 대표해 참석했습니다.

김 대표는 “그동안 추도식 봉행 비용과 기념회관 건립 비용은 모두 사비로 충당했다”라며 “기념사업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 관심과 지원을 보내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뉴미디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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