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으로 내몰린 부산항…탈출구는 국적선사 육성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대한민국의 물류 중심인 부산항에 2016년은 혹독한 “시련의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형 국적선사의 법정관리에 이은 사실상의 파산은 세계적인 물류대란을 불러왔고, 그 여파로 우리나라 항만물류산업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세계경기 침체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하던 부산항의 환적 물동량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7년 만에 감소를 기록했고, 얼마나 더 많은 물량이 이탈할지 전전긍긍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세계 7위의 한진해운 파산으로 대한민국은 해운강국에서 변방으로 밀려났고, 국적선사의 든든한 뒷받침을 토대로 성장해 온 부산항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개 속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 7년 만에 후진한 물동량…한진해운 환적화물 이탈 때문

부산항만공사는 올해 부산항의 전체 물동량은 20피트짜리 기준으로 1천946만7천개에 그쳐 지난해(1천946만9천개)보다 0.1%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수출입화물은 957만7천개로 지난해(936만3천개)보다 2.3% 늘어난 반면, 환적화물은 987만개에 머물러 2.4%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부산항의 전체 물동량이 줄어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교역량이 급감한 20009년 이후 처음입니다.

환적화물의 감소는 연간 100만개 이상을 부산항에서 처리하던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사태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힙니다.

정부의 어설픈 해운산업 구조조정 탓에 국적선사 전반에 대한 화주들의 신뢰가 떨어져 현대상선도 영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직격탄 맞은 항만물류산업 대량 실직 현실화

한진해운 선박들이 부산항에서 자취를 감추면서 항만물류 관련 산업들은 엄청난 후폭풍에 맞고 있습니다.

한진해운이 모항으로 이용하던 부산신항의 한진터미널은 20만개를 넘던 월평균 물량이 법정관리 후에 격감해 11월에는 8만개에도 못미치는 수준까지 추락,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습니다.

그 여파로 이 터미널 내에서 컨테이너를 옮기던 협력업체 근로자 10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컨테이너 수리업체 3곳도 일감이 사라져 철수했습니다.

매주 20척가량 부산항을 드나들던 한진해운 선박의 운항이 끊기면서 도선, 예선, 줄잡이, 화물검수, 선용품공급, 급유 등 항만서비스업체들의 매출도 큰 폭으로 줄었습니다. 상당수 업체가 일감 부족 때문에 직원을 줄였습니다.

주로 부산에 생활기반을 둔 선원 700여명도 해고되거나 무급휴직 상태에 놓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업계와 전문연구기관들은 한진해운 파산으로 인한 실직자가 부산에서만 3천여명, 전국적으로 최대 1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한 바 있습니다.

조선업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경제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 한진해운 사태 여파 이제 시작…하역료 인하, 시설과잉 우려

한진해운 파산의 여파는 부산항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어디까지 미치고 언제까지 지속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부산항만공사 분석 결과 9, 10월 한진해운에서 이탈한 물동량 대부분을 외국계 선사가 흡수했습니다.

현대상선이 한진 물량을 대거 흡수할 것이라던 정부의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11월에는 현대상선이 아시아-미국 서안 노선의 물동량을 많이 늘렸지만 선복량이 적은 탓에 여전히 한진해운의 물량 대부분을 흡수하기에는 턱없이 힘이 부칩니다.

한진해운의 모항 역할을 했던 부산신항 한진터미널은 격감한 물동량을 채우기 위해 하역료를 대폭 내릴 태세입니다.

시장 지배력이 커진 외국선사들은 이를 계기로 다른 터미널들에도 하역료 인하를 압박할 것으로 보입니다.

2006년 신항 개장 이후 북항과 신항 간에 벌어진 덤핑 경쟁으로 예전에 비해 반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가 3~4년 전부터 조금씩 회복되는 추세인 하역료가 다시 곤두박질할 우려가 제기됩니다.

현재 부산항의 하역료는 세계 최저 수준이다. 밤낮, 휴일도 없이 많은 컨테이너를 처리해도 실속이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하역료 하락은 운영사 수익성 악화, 시설투자 감소, 부산항 경쟁력 약화, 연관산업 연쇄 피해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한진해운 사태는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양대 국적 선사가 건재하고 연간 물동량이 100만개 이상씩 증가하는 것을 전제로 추진되는 부산신항 시설 확충 계획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습니다.

2020년까지 신항에 새로 건설되는 컨테이너 터미널 2곳의 하역능력은 연간 700만개에 이릅니다.

한진해운 몰락으로 텅 비다시피 한 한진터미널의 여유 시설까지 포함하면 800만개를 훌쩍 넘습니다.

부산항 환적화물의 주된 공급원인 중국의 경제성장이 예전만 못한데다 해운동맹 재편으로 이탈 가능성이 큰 점을 등을 고려하면 심각한 시설과잉이 생기고, 이는 하역료를 더 끌어내리는 작용을 할 것으로 운영사들은 우려합니다.

신항의 한 터미널 운영사 관계자는 “이대로 가면 부산항 전체가 공멸 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며 “정부가 신규 터미널 공급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휘발성 강한 환적화물 기댈 곳은 국적선사뿐

부산항만공사 관계자는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대형 국적 원양선사 법정관리 사태의 여파는 단시간에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내년에도 세계 경기 침체가 이어져 해상 물동량이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글로벌 선사들의 해운동맹 재편으로 경쟁이 더욱 격화할 것으로 보여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부산항이 태평양 항로의 길목을 지키는 지리적 입지, 시설, 하역료 등에서 경쟁력이 높다고는 하지만 일정 물량 이탈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탈 규모에 대해서는 최소 50만개에서 최대 160만개 등으로 견해가 다양합니다.

부산항의 성장을 견인하는 게 환적화물이지만 변수가 생기면 언제든 이탈할 수 있는 “휘발성” 강한 특성이 있습니다.

운임 회복세가 한동안 더디게 진행될 것으로 보여 생존을 위해 비용을 줄여야만 하는 글로벌 선사, 특히 외국선사들은 조건이 맞지 않으면 언제든 부산항을 버릴 수 있습니다.

국적선사의 든든한 물동량 뒷받침이 있어야 부산항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세계 항만경쟁에서 살아남고, 발전할 수 있음은 자명합니다.

그래서 부산항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은 현대상선, 한진해운의 미주와 아시아노선을 인수한 SM그룹이 내년에 출범할 새로운 컨테이너선사 국적 선사뿐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진해운이 부산항에서 처리했던 연간 100만개가 넘는 환적화물을 회복하려면 SM그룹의 새 선사가 한진해운의 네트워크를 복원하는 게 시급합니다.

현대상선이 세계 5위권의 대형선사로 도약할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의 지원과 국내 기업들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항만공사는 밝혔습니다.

국적 원양선사와 근해 선사들의 상생관계 구축도 필요합니다.

현대상선이 내년부터 매년 10%이상 성장하고, SM그룹의 새 선사가 내년에 기존 한진해운 물량의 20%를 복원하고 나서 이후 매년 10% 증가세를 이어간다면 2020년에는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전의 환적 물동량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항만공사는 기대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국내외 주요 항만의 전용 터미널을 매각한 현대상선이 부산항만공사 등의 투자 참여를 통해 다시 터미널을 인수해 물류네트워크를 갖출 수 있어야 한다고 항만공사는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외국계가 장악한 부산신항 터미널 운영사 지분을 항만공사가 사들여 국부유출을 막고 신항 전체의 운영효율을 높이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합니다.

◇ 정책 실패 다신 없어야…산업특성 고려한 지원·위기관리기능 강화 필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이어 사실상 청산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값비싼 대가를 치렀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됐지만 두번 다시 이런 실패를 겪지 않으려면 정책 당국이 산업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지원을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문입니다.

해운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를 보였습니다.

세계 해운시장의 장기 침체로 각국을 대표하는 대형 선사들이 한결같이 경영난을 겪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나서서 국적 선사의 경영상태를 까발리고 법정관리를 공개적으로 거론해 화주들이 떠나게 만든 사례는 없습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국적선사를 제대로 육성하려면 산업특성에 맞춰 과감한 금융지원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부산항만공사 사장을 지낸 임기택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은 대한민국의 해운산업 위기관리 기능이 미흡했다고 우회적으로 정부의 정책실패를 꼬집었습니다.

그는 오랜 경험을 토대로 지금도 해운시황을 분석하고 위기관리 역량을 키우는 데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유럽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대한민국 물류의 중추인 부산신항의 기형적인 구조로 인한 비효율성도 바로잡아야 합니다.

부산신항을 5개로 쪼개 외국계 자본이 터미널 운영을 장악하도록 만들고 운영사 난립으로 인한 하역료 덤핑 경쟁을 초래해 실속이 떨어지는 항만으로 전락시킨 것은 다름 아닌 정부입니다.

국가 전략 자산이자 물류의 동맥이나 다름없는 항만에 공공부문인 항만공사가 진입할 수 없도록 가로막는 각종 규제도 과감히 손봐야 합니다.

이재균 전 국토해양부 차관은 “항만공사의 현 주소는 처음 설립 목적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어 이럴 거면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부산항이 세계 물류거점으로 발전하려면 항만공사가 항만의 운영과 관리 주체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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