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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5 방영) 특별기획 2부작 남명조식2부 – 혼돈의 시대, 남명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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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수 1

  • 조** 5 년 전

    안녕하세요? 1부에 이어 2부도 잘 봤습니다.

    참고로, 임진왜란 때 실질적인 의병의 효시는 내암 정인홍입니다.

    57세인 전 장령(정4품) 내암 정인홍은 임란 발발 6일 후인 4월 19일 합천에 온 경상감사 김수(46세)를 찾아가서 만납니다. 고령·거창의 대부호인 전 좌랑(정6품) 김면(52세)을 대동하고서 말입니다.

    정인홍이 경상감사와 왜군 토벌에 관해 대책을 협의했으나, 김수가 토벌 의지가 없다는 걸 알고 실망합니다.

    정인홍과 김면은 경상우도에 통문을 돌려 5월 10일 합천군 가야면 숭산동에서 김면과 현풍의 전 현감(종6품) 박성(44세) 및 유생 곽준(42세) 등 의병 약 3천 명으로 창의합니다. 이에 초유사(招諭使) 김성일(55세)이 정인홍에게 의병대장 칭호를 주고요.

    그후 정인홍은 성주성 수복과 초계현 마진 전투에서 승리하고, 특히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보존하는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임란 7년 동안 소실 안 된 유일한 사찰이 정인홍 고향에 있는 해인사입니다.

    앞서 4월 24일 유생 곽재우(41세)가 의령 유곡면에서 장정과 가노(家奴) 등 겨우(?) 50여 명으로 창의합니다. 5월 10일 약 3천 명의 정예병으로 창의한 정인홍과 비교가 안 되죠.

    홍의장군 곽재우가 의령 기강(岐江)나루에서 왜적과 벌인 싸움은 10여 명의 장정들이 참가한 전투랍니다. 곧이어 왜적은 기강나루를 베이스 캠프로 하여 인근 의령, 삼가 등지를 오랫동안 노략질을 하게 됩니다.

    (곽재우의 아버지가 명나라 북경에 갔을 때에 황제가 하사한 붉은 비단을 임란 때 곽재우가 입고 전투를 했기 때문에 ‘홍의장군’이라고 불렀음)

    1623년 이른바 인조반정으로 88세 정인홍이 합천서 한양으로 압송돼 억울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정인홍은 300년 동안 승자인 서인들로부터 폄하됩니다. 경상우도도 안동의 좌도와 달리 반역향으로 낙인 찍히게 되고요. 반역향을 벗어나기 위해 우도 유림들이 망우당 곽재우를 의병과 충성의 상징적 인물로 피눈물나게 만들게 됩니다.

    이른바 인조반정 때 정인홍의 나이가 89세로 나오는데, 88세가 맞습니다. 1536년생으로 고증이 끝났습니다. 사마방목과 광해군일기 ’1608년 2월 9일조’ 함양 생원 강인(姜?) 상소문에 1536년생으로 나와 있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 용사일기(이노), 고대일록 (정경운), 난중잡록(조경남), 화왕산동고록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