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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김효연 사진작가/10월 22일

[기자]
KNN 인물포커스입니다.

{길재섭 / KNN 취재부장}

사진을 촬영하고 기록을 남기는 작가들은 많습니다만, 작가들이 촬영하는 대상은 많이 다릅니다.

오늘은 부산시와 부산테크노파크가 쳥년인재 발굴을 위해 선정한 월드클래스 육성 10년 프로젝트에 선정된, 김효연 사진작가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김효연 작가는 특히 원폭 피해자들의 힘든 삶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서오십시오.

짧게 말씀은 드렸는데요. 어떤 활동하고 계신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김효연 / 사진작가}

{2021 영국 브리티시 저널 오브 포토그라피(BJP) ‘인류의 초상사진’ 부문 최종 우승, 2021 프랑스 까르띠에 파운데이션 후원-프릭스 버지니아 ‘최종작가 10인’ 선정}

[답변]
저는 현재 잊혀지거나 은폐된 역사적 사건이 개인과 집단의 삶에 가져오는 변화에 관심을 두고 사진과 영상 매체로 작업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그래서 제가 최근 2017년부터 ‘히바쿠샤: 삭제된 존재들’이라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히바쿠샤란 원폭 피해자를 지칭하는 세계 공용어입니다.

그래서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연작 작품들을 2018년부터 제작해서 발표하고 있습니다.

[기자]
원폭 피해자분들에게 특히 더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혹시 있으신가요.

[답변]
사실은 제 작업은 가족사로부터 시작됐는데요.

저희 외할머니께서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왜 증조부가 식민지 1세대 이민을 가시고 거기서 태어나셔서 당시 징용을 간 외할아버지와 만났고 아이를 가지셔서 극적으로 1944년에 부산으로 피난을 나오시게 됐어요.

그런데 가족분들은 히로시마에 남았기 때문에 이듬해에 폭탄이 터졌고 외할머니는 본인의 가족들을 다 잃으셨어요.

그런데 저는 2017년 전까지는 그 사건이 제 가족 개인사로만 알고 있었는데 2017년 당시에 북한에서 ICBM 미사일을 개발하고 매일 뉴스에 전쟁 관련 보도가 나왔었어요.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어떤 피해 입은 분, 한국 사람이 굉장히 있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뉴스에서는 자극적인 핵무기에 대한 보도만 계속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에 대한 어떤 두려움의 근원을 알려면 어떤 피해와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고 그해 가을부터 조사를 시작했고 2018년부터 촬영을 시작하게 됐어요.

[기자]
원폭 피해자들은 한국보다는 사실 일본에 더 많을 텐데요.

한국인 피해자들만 촬영하시나요. 아니면 외국인 피해자들도 같이 촬영을 하십니까.

[답변]
제가 초기에 원폭 피해자에 대한 자료를 찾을 때는 주로 저도 일본 걸 봤아요.

그런데 몇 달 동안 조사를 진행하다 보니까 인터넷에 합천 원폭 피해자 복지회관이라는 건물이 있더라고요.

이런 건물이 상징적으로 있으려면 최소한 어떤 기반이 마련돼 있다는 말인데 제가 학교와 사회를 거치는 동안 한 번도 학습하거나 어떤 그 부분에 대해서 결정을 내릴 만한 그 과정이 없었더라고요.

그래서 이 문제를 그냥 한번 들여다봐야겠다라는 생각으로 합천에 내려가게 됐고 그때부터 시작돼서 저희 한국인만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기자]
원폭 피해자들을 촬영하기 시작한 이전과 이후 혹시 작품의 어떤 성격이라든가 개인적으로 변화가 있으신가요 어떻습니까.

[답변]
원폭 피해자를 촬영하기 전과 후보다는 재미있는 점 한 가지는 원폭 피해자를 제가 처음 촬영을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한 초기에는 저도 많은 분들처럼 이 1세대 분들 76년 전에 사건을 겪은 분들의 존재를 증명하고 어떤 사건의 잔인함을 굉장히 설명하는 데 치중돼 있었어요.

그런데 작업을 한 지 1년 정도까지는 저도 약간 배타적으로 할머니분들만 봤었는데, 1년쯤 지난 후에 제가 정말 극적으로 2세대를 만나게 됐어요.

그래서 그 2세대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고, 그 여자분의 남편분도 2세대인데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어서 결혼을 시킨 굉장히 특이한 가정이었는데요.

그분과 오랫동안 호흡하고 작업을 촬영하면서 제가 가졌던 이 개인사도 같이 접목되면서 이 문제가 사건을 겪은 지점에 머물지 않고 지금까지 80년 동안 어떤 가족이 분화하면서 새로운 현재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죠.

그러면서 저 또한 아이들에게 점점 더 다가가게 되고 이 문제를 굉장히 그 가상의 가족으로 묶는 작업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우리가 좀 더 친숙하게 이걸 받아들이게요.

[기자]
사진 작업을 하시기 전에는 영화 쪽에서도 일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혹시 사진 작업이 어떤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는 더 낫겠다라고 생각을 하신 건가요.

어떤 변화인가요.

[답변]
제가 영화 현장에 있었는데요. 20대 때는 개인 작업을 하고 싶다는 순간이 왔었어요.

그래서 매체를 찾다 보니까 당시에는 카메라와 사진이 비슷해서 시작을 했지만 제가 공부를 하다 보니까 전혀 다른 매체 였어요.

시간성이 되게 달랐어요. 그런데 그 부분이 이 작업을 사진으로 만드는 데 굉장히 큰 역할을 했던 게 이분들이랑 인터뷰를 하다 보면 할머니가 아침에 먹은 밥은 기억을 못하시는데 76년 전 8월 6일 8시 15분에 뭐 하셨는지 정확히 기억해요.

그러면 그 지점에 묶여서 사시는 거죠 사진은 시간이 고정되어 있으니까요.

굉장히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기자]
사진 작가이자 예술가로서 책임 의식과 어떤 치유의 의무를 가지고 활동을 하시겠다는 말씀하셨는데 사진 작가로서의 어떤 의식은 어떤 걸 혹시 생각하시는 건가요

[답변]
사실 단어가 좀 거창하기는 한데 저는 그냥 예전부터 예술가와 예술이 사회 안에서 어떤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면 좋을까를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 할 수 있는 말들이 동시대적 메시지를 담았으면 좋겠고 그것이 누군가한테 상처가 아니고 위로나 치유의 말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늘 하고 그걸 소신으로 삼고자 했던 것 같아요.

[기자]
듣기에는 사회의식이 굉장히 강하신 것 같은데요. 뭔가를 해야 되겠다라는… 구성원으로서?

[답변]
제가 그걸 잘 몰랐다가 저도 이 작업을 하면서 제 사진을 보시면 잔인한 사진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이 잔인한 사진을 찍지 않는 이유는 이미 현실 자체가 많이 고통스럽고 힘드시기 때문에 저까지 거기에 잔인함을 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 했고 이 가족의 문제가 그렇게만 보기에는 너무 편협하다는 걸 현장에서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이 문제의 아이들이 불안과 축복을 기조로 하는 바탕에 서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앞으로 사회에서 건강하고 밝게 자랐으면 좋겠다라는 메시지와 원폭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된다는 사건을 같이 전달하고 싶었던 마음이 드는 걸 보면서 제가 뭔가 사회적인 성향이 있나라고 생각했죠

[기자]
앞으로 계획도 궁금한데 어떤 계획 세우고 계십니까

[답변]
제가 국내에서 출판도 하고 전시도 하고 다행히 많은 분들이랑 만나뵙는데 내년부터 코로나 확산이 조금 줄고 하면 해외에서 또 다른 세계 각국의 많은 분들과 이 문제에 대해서 담론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기자]
국내에서도 사실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게 사실인데요.

원폭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소외받는 분들 많이 관심 가질 수 있도록 좋은 활동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출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유경 구성작가
  • 이유경 구성작가
  • lee1004219@kn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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