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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할시 50년, 부산의 격동

{앵커:

올해는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된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나라의 부흥을 이끌었던
수출의 중심이 부산이었고
정치사의 중요한 기로에도
부산이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직할시 50년, 부산의 반세기를
전성호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한국전쟁때 피난민들을 안아준 곳은
임시수도가 있던 부산이었습니다.

60년대초 군사혁명이후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부산의 성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1963년 직할시로
승격되는 큰 변화를 맞습니다.

(윤상원(96)/당시 부산시청 공무원
직할시를 안 시키려고 반대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최고회의에서 막 언쟁이 벌어지고 토의가 일어났어요))

부산항이 개발되고
부두가 증설됐습니다.

그해 12월, 부산 서면에는 직할시
승격을 기념하는 부산탑이
세워집니다.

부산 발전의 상징이었던 부산탑은
서면 교차로를 20년 가까이 지키다
교통정체를 이유로 철거되고
청동상만 부산박물관 뒤뜰로
옮겨졌습니다.

이듬해인 64년에는 부산항을 통해
월남파병이 일어납니다.

8년의 전쟁동안 젊은 장병들의
희생으로 벌어 온 외화는
경제기적의 초석이 됐습니다.

(김두철/월남전 참전자회 부산지부/우리가 현재 경제기반의 초석이고 밑거름이 안됐나, 그당시 파월 장병들이 아마 다 자부를 하고 있을겁니다.)

우리나라에 차관을 빌려준
서독 뤼브케 대통령이 수영비행장에
내렸고 간호사와 광부가 수영비행장을
통해 독일로 향했습니다.

자갈치에는 동양최대규모의
종합어시장이, 해운대에는 극동호텔이
건립됐습니다.

송도해수욕장의 케이블카와 하늘높이
들어올려지던 영도다리는 부산만의
명물이자 애환이었습니다.

자동차가 부족하던 시절, 시민의
발이 되어주던 전차도 1968년
마지막 운행을 마칩니다.

74년 육영수 여사가 피살되던해
부산 어린이회관이 개관합니다.

육여사 기념상 비석의 글귀는
마지막 친필이 됐습니다.

한국전쟁부터 현재까지 부산의
역사를 담은 KNN 다큐멘터리
"직할시 50년, 부산의 반세기를
만나다" 1부 격동편이
오늘 저녁 9시부터
1시간동안 방송됩니다.

KNN 전성호입니다.

전성호 기자
  • 전성호 기자
  • j111@kn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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