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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 구수경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원장

{길재섭/KNN 취재부장}

knn 인물 포커스입니다.

역사 속에는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순간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부산 경남에서는 부마 민주항쟁이 역사에 남을 아주 중요한 장면입니다.

부마민주항쟁의 진실은 여전히 밝혀야 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할 중요한 과제인데요.

오늘은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원회 구수경 위원장과 부마항쟁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구수경/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원장}

A
반갑습니다.

Q
민주항쟁 부마 민주항쟁을 모르는 분들은 사실 거의 없을 것 같은데 진상규명위원회는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A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원회는 2013년 부마항쟁보상법이 제정되면서 2014년도부터 정부에서 위원회를 설치해서 부마항쟁 관련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그들의 삶에 일정 정도 보상도 해 줄 수 있게끔 하는 작업을 하도록 하고 진상 규명을 하고 있습니다.

Q
2013년에 법이 만들어지고 2014년부터 활동을 해 오셨는데 그동안 성과도 좀 많으셨을 것 같은데 어떤 성과가 있었나요?

A
그동안 부마항쟁 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605건이 신고되어서 그중에서 한 484건이 완결되었고 그 외에도 진상 규명을 하는 게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동아대학교 교내 시위가 있었는데 그것이 부마항쟁과 관련이 있는지 또 그 당시에 마산 지역에서 어떤 분이 시위 이후의 시체로 발견이 되셨어요.

그런데 그분을 나중에 집으로 인도하지 않고 암매장을 했던 그런 유치준씨 사망 사건이 있는데 그것이 경찰에서 은폐되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건 등의 진상을 규명하는 건이 한 40건 정도가 신고가 됐는데 작년 2020년까지 해서 한 20건 정도만 진상규명이 됐었고 아직 저희 위원회에서는 20건 정도는 진상조사를 계속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올해 저희가 부마 민주항쟁 진상 조사 보고서가 발간됐습니다.

그런 활동들을 다양하게 부마민주항쟁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 작업 또 서적 작업 이런 것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말씀해 주셨는데 보고서에는 어떤 내용이나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

A
진상보고서에는 부마민주항쟁의 과정 또는 사실관계 또 진압 과정에서의 참여자들이 입은 피해라든지 인권 침해 라든지 그런 불법 행위가 또 있었는지 그런 것뿐만 아니라 한국 민주운동사에서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적 의의가 어떤 것인지 또 향후에 어떤 것을 해결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쭉 한 600페이지에 달해 담고 있습니다.

부마 진상보고서는 다른 4대 민주항쟁을 아시죠

4대 민주항쟁 중에서 특히 처음으로 나온 국가보고서다 그 점에서 굉장히 유의미하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Q
부마민주항쟁 과정에서 여성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걸로 아는데 어떤 피해 부분인가요 어떤 점에서 더 관심을 가지시나요?

A
저희 진상보고서에 보면 관련자 명단이 한 250여 명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다는 아니지만 대체로 이름자에 ‘경’자 ‘수’자 ‘자’자 이런 것들로 찾아서 보면 한 10명 정도밖에 이름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거기 진상 관련자 명단에는 남녀 구분을 하고 있지 않아서 제가 한번 세어본 상황인데 그 여성들이 참여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성들은 관련자로 인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었고 특히 당시에 부산여대에서 학생들이 한 50여 명 이상이 함께 시위대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는 있는데 저희가 가서 저 이전에 위원회에서 조사를 갔더니 다 답변을 거부하셨던 그런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왜 그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부분도 여성이 항쟁에 참여했던 관련 내용들을 조금 더 활발히 좀 더 찾아보고자 하고 있고 진압 과정이나 또는 경찰에 이동하는 과정 중에 성폭력이 있었다..

성적인 수치심을 줬던 그런 사례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런 것들도 조금 더 이참에 고문 피해 내용과 함께 따로 분석을 해 볼 조사를 할 그런 예정을 하고 있습니다.

Q
아무래도 부마민주항쟁은 5.18 민주화 운동과 같은 선상에서 많이 다뤄지는데 혹시 차별적인 의미를 부여하실 수 있을까요?

A
글쎄요 부마민주항쟁은 지역적으로 부산 마산에서 대학생들이 우선적으로 횃불을 먼저 들었고 그래서 그 당시에 정부가 굉장히 박정희 정권에 대한 경제적으로는 굉장히 위기였고 유신 헌법 유신 체제에 대한 어떤 불안, 불만 이런 것들이 전체 국민들이 굉장히 마음으로 불만을 많이 갖고 있었던 상황에 횃불을 든 부산대학교 학생들에게 함께 동조할 수 있었던 함께 합류할 수 있던 그런 내용이었고 부마항쟁 때는 사실은 부마항쟁이 났을 때 소요다.. 소요 사태다.. 부산의 대학생들이 사태를 일으켰다.. 소요가 일어났다.. 이렇게 해서 그렇게 큰 대처를 하지 않았던 사실을 인지하고 전두환이 5.18 광주에 대거 탱크를 몰고 들어가는 그런 상황이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의 역사 선상에 있었던 거고 동일한 점이라면 군부 독재에 대한 장기 독재에 대한 집권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이었고 또 차이점이라 한다면 하나는 유신 체제에 대해서 헌법이 전국민적으로 일어났던 내용인가 하면 5.18 같은 경우에는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한 것에 대해서 그 피해 양상을 광주에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했는데 거기는 워낙에 피해가 직접적인 탱크라든지 군용 무기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피해가 많았고 그래서 지금 저희들에게는 5.18이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상황이죠.

저희는 부마민주항쟁이 한국 근현대사에서 4.19의거 정신을 또 이어내고 6월 항쟁까지 가게 하는 그런 어떤 중요한 자리매김을 하는 역사적 사실이다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은 거죠.

Q
앞으로 위원회 과제도 좀 궁금한데요.

짧게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A
위원회에서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관련자 저희는 피해자 이렇게 하지 않고 관련자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관련자는 지나가다가 저기 뭐 하네 데모하네 해서 참여했던 분들이 있었고 그런 분들마저도 모두가 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애를 썼던 국민이고 시민이었다라는 국민과 시민들의 힘으로 민주화를 민주주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과제로 여러 가지 내용들은 물론 관련자 조사뿐만 아니라 그런 역사적인 자리매김을 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Q
잘 알겠습니다. 위원회 역할이 말씀하신 대로 정말 중요한데 아주 꼼꼼하게 진실을 잘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출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A
감사합니다.

하정민 구성작가
  • 하정민 구성작가
  • poohaha@kn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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