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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의 근대유산 “대한도기”를 아십니까?

[앵커]
혹시 오래 전 부산의 기업인 대한도기를 아십니까?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부산 영도에 있던 도자기 회사인 대한도기는 국내 도자기의 80%를 생산했던 곳인데요.

세월이 흐르면서 그 존재 역시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조진욱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한복을 곱게 입고 널뛰는 여인들부터, 물을 기르는 아낙의 모습까지.

한폭의 풍속도가 접시에 그려졌습니다.

도자기에서 피어난 예술품!

바로 대한도기에서 만든 작품들 입니다.

{이명우/박물관카페 알라딘 대표(수집가) / “크기도 크고 색상도 완벽하고 (작가의) 뛰어난 필치와 한국의 고유한 정서가 제일 잘 담겨져 있는 (도자기입니다.)”}

대한도기는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9년, 일본 도자기 회사의 부산 분점으로 영도에 지어졌습니다.

1925년엔 아예 본점이 영도로 넘어왔고, 한국전쟁 이후엔 월 100만 장씩 만들 정도로 규모가 컸습니다.

{유성균/영도문화원 사무국장/
“영도에 사시는 많은 분들이 대한도기를 통해서 일을 하고. 조선방직에 버금갈만큼 대한도기도 그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피란 온 김은호와 김환기, 전혁림 등 많은 작가들이 대한도기에서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이중섭 화가 역시 대한도기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국내 근대 회화의 거장들이 그림을 직접 그린 대한도기의 작품들은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전영근/고 전혁림 작가 아들 “아시아 최고의 큰 도기회사라 할 정도로 제품들은 상당히 멋있었고 거의 수출을 했고 회사 위상이 좋았어요.}

하지만 스테인리스 제품 보급과 함께 도자기 수요가 급격히 줄면서 대한도기는 1972년 문을 닫았습니다.

대한도기가 있던 자리입니다. 담벼락에 무성히 자란 풀들은 50년이란 긴 세월을 실감하게 하는데요.

지금은 아파트와 공장들이 들어서 그 흔적을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몇 개 없는 담벼락 일부도 얼마전 도로공사를 이유로 철거됐습니다.

{이일록/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저문위원/ “대한도기를 단순하게 도자기로만 보지 말고 예술적인 작품, 지역에서 좀더 조명이 되고 확장이 되고 대한도기와 관련된 일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부산 근현대사에 한 획을 남긴 도자기 회사 대한도기.

지금이라도 기억해야 할 부산경제의 중요한 흔적이자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KNN 조진욱입니다.

조진욱 기자
  • 조진욱 기자
  • jojo@kn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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