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마음까지 불 탄 사람들]-산불, 마음까지 불 탄 사람들
<앵커>
지난해 경남에서는 초대형 산불과 수해로 15명이 실종되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시간이 흘렀지만 마음의 상처는 더 깊어지고, 정겹던 마을 공동체마저 흔들리고 있는데요.
KNN은 주민들에게 남아 있는 '심리적 피해'를 단독 입수한 데이터를 통해 조명하는 기획보도를 준비했습니다.
첫 순서로 1년 반이 지나서도 고통받는 산청·하동 산불 피해 주민들을 목소리를 정기형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지난해 3월 21일.
경남 산청군 외공마을 김원중 이장은 이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열흘 넘게, 213시간 동안 꺼지지 않은 산청·하동 산불이 시작된 날입니다.
꺼지지 않을 것 같던 산불이 겨우 꺼진지 1년 반.
김 씨는 아직도 악몽을 꿉니다.
왜 하필 우리 터전에서라는 원망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김원중/산청 외공마을 이장/"큰 소리가 들리거나 헬기 소리가 들리면 불 난 것이 아닌가라고 해서 여전히 불안한 심정입니다. 평상시 우리가 뭘 잘못했나 그런 자책도 많이 했었고..."
주민들의 심리적인 상처는 수치로도 드러납니다.
KNN이 단독 입수한 산청·하동 산불 피해 주민 심리 상담 데이터입니다.
"약 네 명 가운데 한 명이 스트레스 장애 증후군, PTSD 증후군의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늘 주변을 경계하거나 쉽게 놀라고, 죄책감과 원망을 멈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산불이 휩쓴지 1년 반. 풍성했던 소나무숲에는 새카맣게 탄 기둥만 남았습니다.
송이버섯 농사를 짓던 이황석 씨는 생계 기반을 모두 잃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눈시울부터 붉어집니다.
가슴이 터질 듯한 울분이 밀려옵니다.
이황석/산청하동 산불 피해 주민/"정말...아이 참 눈물이 나려 해서...그냥 울화통이 치밀고 억장이 무너지죠. 억장이..."
상담에서 주민들은 여전히 악몽에 시달리고, 자꾸 그 날이 떠오른다고 응답했습니다.
생각하지 않으려 온갖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역대 두 번째로 오래 타오른 산불.
축구장 5천 2백개 면적인 3,701ha와 205곳이 잿더미가 됐습니다.
중태마을 신원식 씨의 보금자리도 한줌 재로 변했습니다.
집은 새로 지었지만, 삶의 흔적과 추억은 영영 되찾을 수 없습니다.
주민들은 여전히 검게 그을린 산자락을 매일 마주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신원식/산청·하동 산불 피해 주민/"하다 못해 영정사진도 다 태웠고... 집에 자신이 마지막에 입을 영정사진과 수의 그런 것까지 다 태우다 보니까..."
불 탄 것은 숲과 건물 만이 아닙니다.
피해 주민 2,158명의 마음도 함께 타버렸습니다.
김명희/경상국립대 사회학과 교수/"트라우마라는 것이 늘 과거의 그 사건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과 정서적인 반응들이기 때문에 일생을 두고 지속될 수 있는 것이고... 사회적 관계가 깨지면 마음이 아프고, 마음과 몸과 사회라고 하는 것이 함께 갈 수 밖에 없잖아요."
산에는 다시 새순이 돋아나고 있지만, 주민의 마음에 남은 흉터는 점점 더 짙어지고 있습니다.
KNN 정기형입니다.
영상취재: 권용국
종합편집: 노율우
음향: 김재옥
<본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정기형
2026.09.24 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