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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듯, 도시기행 마실가요 - 추억을 부르다, 부산 동구·중구

등록일 : 2024-09-02 15:39:46.0
조회수 : 2588
-(해설)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은 이른 아침. 설렘을 가득 안고 부산으로 출발합니다.
여행에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음악이죠. 음악을 친구 삼아 여행길에 나서는데요.
오랜만에 올라탄 무궁화호에서 여행이 주는 기분 좋은 떨림을 느껴봅니다.
-오랜만에 좀 여유 있게 동네도 좀 가보고 그래서 좀 못 가본 것도 살펴보고
좀 사람 냄새나는 곳도 좀 다니면서 뭔가 부산에 사시는 분들한테 기도 좀 팍팍 얻으려고 가려고 합니다.
너무 기대되고 설레요.
-(해설) 부산의 그 거리, 중구의 그 사람.
아름다운 풍경과 나의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노래하듯 마실을 떠나봅니다.
드디어 도착한 부산. 부산역 정말 오랜만이네요.
-저기 저쪽에 산도 있고 그 앞에 아파트 있고 그 앞에 항구에 어선들 있고 되게 신기하다.
뭔가 현재와 과거, 미래가 막 다 섞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해설) 생동감 넘치는 항구를 보니 바다의 도시 부산에 왔구나 실감이 납니다.
-저게, 저게 영도다리구나, 영도대교구나. 그 유명한.
74년 전에는 그러면 여기에 막 사람들이 여기까지 다 와서 꽉 차 있었다는 거잖아요.
여기에서 막 몰려서 삶의 터전이 되었던 곳이잖아.
-(해설) 영도다리는 피란 수도 부산의 상징이기도 한데요.
피린민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공간 중 하나죠.
전쟁의 아픔을 딛고 억겁의 시간을 이겨낸 피난민들의 삶은 부산 곳곳에 녹아있습니다.
항구 끝에 다다르자 자갈치시장이 나타납니다.
알록달록 줄지어진 점포와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반겨주는데요.
바닷바람에 말리는 생선부터 각종 해산물까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산시장답게 없는 게 없습니다.
-갈치 봐, 크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너무 젊으시다.
-여기서 장사...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실물이 더 잘생겼네요.
-감사합니다. 너무 미인이신데요?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TV에서 보는 거하고 진짜 다르다.
-그래요?
-너무 종류가 많다. 이건 뭐예요, 이거.
-이거는 상어요.
-상어. 상어도 잡혀요?
-(해설) 상어에 병어에 자연산 개조개까지 진짜 싱싱하네요. 살아있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손질하시는 거예요?
-그럼.
-이렇게 팔기 전에 손질해서 내보내시는 거구나. 나무젓가락 이렇게 꽂는 건 왜 그러는 거예요?
-바람 들어가야 마를 거 아니야.
-바람 들어와서 잘 마르라고.
-(해설) 해풍에 말린 생선이 그렇게 쫄깃하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맨날 포도만 재배하다가. 갈치가 엄청 크네.
-오만석 씨보다 더 크죠?
-안녕하세요?
-제 이름 아세요?
-알지, 몰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갈치. 너무 튼실해 보인다. 많이 파세요. 감사합니다.
-(해설) 정겨운 시장을 뒤로 하고서 본격적인 마실가요, 그 첫 번째 여정을 시작합니다.
-산복도로 가는 버스, 괜히 기대가 되네.
부산은 산복도로가 많잖아요.
피난 생활을 했었어야 하니까 산비탈에다가 집 지어놓고 많이 사시고 하다 보니까
그래서 이제 산복도로가 많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 버스가 산복도로를 간다고 하니까 너무 기대돼요.
-(해설) 부산 원도심에 살아있는 풍경을 즐기기 위해서는 86번 버스가 필수라는데요.
산복도로의 허리를 지나는 버스로써 주민부터 관광객까지 즐겨 찾는 노선입니다.
-안녕하세요? 기사님, 이 버스가 산복도로 올라가서 막 다니는 버스 맞는 거죠?
-맞습니다.
-제가 소문 듣고 왔습니다. 이 버스를 꼭 타야 한다고 부산 오면.
-부산에서 경치가 최고 좋은 산복도로를 운행하는 버스입니다.
-그렇구나.
-안녕하세요? 저는 삼O 여객에 근무하고 있는 승무원 박익균입니다.
우리 86번이 연산9동에서 출발하여 연산교차로를 거쳐서 서면교차로, 수정동, 영주삼거리,
충무동, 자갈치를 경유해서 다시 돌아오는 버스입니다.
산복도로에 계시는 어르신들 발입니다, 발.
이게 없으면 어디를 움직이지를 못해요, 이 차가 없으면. 어서 오세요.
할머니, 여기 잔돈 몇 개 있는지 한번 보세요.
-있네요.
-몇 개 있는데요?
-한 개.
-한 개 있어요? 여기 세 개. 200원 모자라시네. 갚으세요.
-그래요?
-원래 1700원이야.
-드릴게, 드릴게.
-앉아서. 현금은 1700원. 카드는 1550원.
-그런데 지금 이거는... 여기가 길이 험하기로 유명하다는데.
-좀 굴곡이 심합니다, 굴곡이. 산복도로, 굴곡이.
여기는 기술이 좀 좋아야 합니다, 운행하는데.
-(해설) 아슬아슬 굽이진 길은 긴장감을 안겨주지만 때로는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여기서부터 산복도로입니까?
-산복도로입니다. 여기부터.
-저기 부산항대교.
-네, 부산대교.
-또.
-여객터미널.
-여객터미널이 있고 부산역도 보이고.
-부산역도 보이고.
-그런데 멋있긴 하다.
-(해설) 아름다운 산복도로를 내려다보니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입니다.
-시내버스이자 관광버스이자 정을 싣고 가는 버스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
산복도로를 진짜 매일같이 안전하게 운행해 주셔서 제가 다른 분들을 대신해서 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안전운전 하세요.
-고맙습니다.
-오늘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고맙습니다. 박수쳐 줄 정도 되는 그런 기사가 되고 싶습니다.
-(해설) 굽이진 골목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진심이 더해져 더욱더 따스한 삶의 풍경.
치열했던 한 시절이 녹아든 장소라 그런지 유난히 더 애틋하게 느껴집니다.
30분 남짓 달려온 이곳은 부산 동구의 이중섭거리.
고즈넉한 동네의 분위기가 발길을 재촉하는데요.
-여기구나. 이중섭 문화거리, 이중섭 전망대. 뭐야? 희망길 100계단?
이거 계단이 100개라는 이야기예요? 하나, 둘, 셋, 넷, 진짜.
-100개 넘는데요?
-100개 넘어요?
-네.
-주민분이 100개 넘는다고.
-(해설) 가파른 계단 길을 따라 올라서면 이중섭의 작품 세계가 펼쳐집니다.
-이거 소, 소 그림이 있다. 소, 소.
-(해설) 흰 소, 황소 등 소 그림으로 유명한 이중섭.
한국인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화가 중 한 명이죠.
-여기까지가 딱 절반인가 보네, 보니까.
대충 세보진 않았는데 여기까지 50계단 정도 올라온 것 같거든요.
괜찮다. 여기 너무 멋있다. 이게 이 좁은 곳이 뭔가 미술관 같은 그런 느낌이에요.
난간에 쫙 그림도 있고.
-(해설) 이중섭은 모진 피난 생활 끝에 아내 마사코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내야만 했는데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절절한 편지 내용을 통해 전해지네요.
-나의 소중하고 사랑하는 아내여.
자신이 사랑하는 소중한 아내를 진심으로 모든 걸 바쳐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결코 훌륭한 일을 할 수 없소, 이중섭 마사코 편지 중.
난 제주도만 있는 줄 알았는데 부산, 여기가 더 멋있네요.
운치 있다.
진짜 멋있다.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이렇게 올라가면서 그 그림들이 옆에 있다 보니까 뭔가 그분이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살아오셨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예술의 혼을 불태우셨던
그 발자취가 그대로 이렇게 옮겨진 것 같아서 뭔가 걸음, 한 걸음 한 걸음이 되게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좋네.
여기 쫙, 온갖 색깔 집들이 이렇게 있는 거 보니까 난간 따라서 그림 봤잖아요.
그러니까 저 집들도 왠지 그림처럼 보여요, 저 지금.
-(해설) 이곳저곳 골목길을 누비다 보니 오래된 약국과 상점들이 즐비한 동네가 나타납니다.
추억을 부르듯 옛 정취가 느껴지는데요.
-잠깐만 쉬었다 가자.
여기 오다 보니까 뭐 미술, 조그만 미술학원, 작은 중국집 그다음에 정육점,
떡집 그다음에 조그마한 슈퍼, 미용실.
이 동네에 사시는 분들이 이용할 수 있는 딱 필요한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있는데 그 느낌이 되게 정겹네요, 뭔가.
이 건물은 아파트예요, 뭐야, 이거. 오래된 것인 것 같은데.
-(해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외관이 발길을 사로잡은 오래된 아파트.
아파트도 아파트지만 사뭇 분위기가 다른 간판 하나가 눈에 띄는데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디 찾으세요?
-네, 여기 건물이 너무 특이해 보여서 뭔가 싶었는데 갤러리 수정, 이렇게 쓰여 있네요?
-이 동네에서 갤러리를 보기는 좀 쉽지 않겠죠.
-저기 여기 카메라도 들고 계시고.
-갤러리 주인장입니다. 반갑습니다.
-(해설) 이 빛바랜 아파트에 어떤 갤러리가 있을지 궁금해지는데요.
-딱 봐도 색은 예쁘게 칠하기는 했는데 역사가 좀 있어 보이거든요.
-그래도 이 아파트가 부산의 최초 아파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산에서 지어진 최초의 아파트가 이거예요?
-네.
-(해설) 지금은 부산 곳곳이 아파트라지만 힘들었던 그 시절,
서민들을 위해 산비탈에 처음으로 아파트를 지었답니다.
-부산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이 산복도로가 망양로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망양로.
-바다를 바라본다고 해서 바다를 바라보는 도로인데 이 망양로에 69년도에 지어진 아파트가
좌천아파트, 수정아파트, 영주아파트, 보수아파트, 이렇게 4개가 그 시기에 다 들어섰습니다.
이 망양로라는 이 길이야말로 부산 원도심의 가장 중심에 있는 길인 거죠.
-(해설) 무려 6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 그 내부로 들어서 봅니다.
-이거, 되게 독특한데 이게 계량기가.
-재미있죠?
-네.
-건물 안에 또 하나의 아파트가 들어서 있습니다.
-그런데 잠깐만, 그런데 아래층에는 이렇게 꽉 차 있었는데?
-4층, 5층으로 올라가면서 거주율이 많이 떨어집니다. 사실은 다 살아야 이 건물이 오래가거든요.
-그렇죠.
-다 누군가가 계속 살러 들어와 줘야 하는데 그 지점이 좀 안타깝습니다.
-(해설) 동그란 근대식 계량기부터 다닥다닥 마주한 복도까지. 여기서 영화 한 편 찍어도 되겠어요.
-양쪽으로, 양쪽으로 이렇게 집이 있는 거?
-네. 여기가 갤러리입니다.
-이게 뭐야.
-(해설) 아파트 한 채를 개조한 갤러리, 어떻게 만들게 된 걸까요?
-(해설) 윤창수 작가님이 직접 살았던 집이라니, 집안 풍경 하나하나가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이쪽으로 이제 한번 돌아보시면 여기 이제 오래된 벽지 느낌이 있지 않습니까?
-벽지, 뭐야. 저기 일기장 같은 것도 막 붙어 있고 그런데요?
-저기 경계로 해서 이제 다락이 있었습니다.
-다락. 여기 위로.
-여기는 이렇게 타일 발라져 있는 곳이 유일하게 여기서 물을 쓰는 공간이었습니다.
여기서 빨래도 하고 밥도 하고 샤워도 하고.
-씻기도 하고.
-큰방이라고 불리는 곳에는 부모님이 계시고 저는 역시 작은방이라는 곳에서 생활하며
가끔 이제 다락이라는 곳에도 올라가서 엎드려서 창밖을 쳐다보면
그때 영도가 반짝반짝 빛날 정도로 앞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었거든요.
-(해설) 행복했던 추억이 많아서인지 다시 돌아오게 됐다는 이곳.
그래서 이 공간으로 다시 돌아왔던 것 같습니다.
-(해설) 그 길로 자신이 살던 동네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는 윤창수 작가.
익숙한 산복도로지만 카메라를 들고 거닐다 보면 뜻밖의 공간이 눈에 들어올 때도 있습니다.
-여기 보니까 계단은 있는데 통하는 문이 없어져 버렸네요.
예전에는 문이 있었던 것 같은데 벽으로 바뀌어버렸어요.
점점 이곳이 다르게 바뀌는 풍경인 것 같아서 제 시선을 끄는 공간입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여기 옆에 혹시 예전에 구멍가게 같은 거 하나 있었죠?
-우리가 구멍가게 했잖아. 여기가 이발소하고.
-제가 예전에 그래, 어디 다닐 때.
-기억력이 좋네요.
-구멍가게가 한 개 있었는데 싶었거든요.
-맞아요, 맞아요, 맞아요.
-(해설) 조각난 추억을 기록하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데요.
산복도로의 옛이야기가 더해지자, 작가님의 사진이 더욱더 특별해집니다.
-영광이네.
-저도 어머니 만나서 너무 좋고. 오늘의 기념을. 그대로, 그대로. 그대로 계세요. 너무 예뻐.
-(해설) 윤창수 작가님의 따뜻한 시선 끝에 담기는 산복도로 사진들.
오늘도 그의 사진과 오래된 아파트의 갤러리에서 산복도로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갑니다.
-오늘 좀 걸었더니 배가 고프네요, 배가 고파.
그런데 여기가 동네가 지대가 높아서 계단도 많고, 예쁜데도 많고 되게 느낌 뭐라 그래야 하지?
고즈넉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되게 묘한 느낌이 있는 곳이에요.
걸으면 걸을수록 이 세월의 고소함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고소함이라고 하니까 더 배고파지는 것 같아. 뭐 좀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여기 그런데 건물이 심상치 않은데, 역사가 있어 보여요. 시락 국밥, 추억의 도시락, 소고기국밥.
추억의 도시락 오랜만에 한번 먹어봐야겠다. 맛있을 것 같아. 안녕하세요.
-(해설) 자연스레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어 주는 식당 하나.
가득 쌓인 양은 도시락마저 정겹네요.
-여기 뭔가 맛집의 포스가 확 느껴져서 여기 들어왔어요.
-맞아요.
-여기 뭐가 맛있어요? 국밥도 있는 것 같고.
-네, 시락 국밥 있고. 언니가 잘 끓이시는 육개장도 있고.
-육개장도 있고.
-옛날 나오는 도시락.
-추억의 도시락.
-네, 추억의 도시락. 도시락도 있고.
-오늘 이렇게 여행 가는 길이니까 오랜만에 그러면 추억의 도시락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추억의 도시락, 잘 먹겠습니다.
-네, 맛있게 드세요.
-일단은 한 번은 흔들어봐야 하니까.
-흔들어 보고.
-제가 또. 도시락은 조금 흔들어본 경력이 있기 때문에. 제가 또 이거.
이거, 이거, 이거. 이거 흔들어줘야 해요.
그렇게 엄청 먹음직스럽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잘 섞였어요, 나름.
-그래서 숟가락으로 섞어야 해.
-섞어서. 이게 맛있거든. 이렇게 흔들었을 때 끝에. 이거, 이거, 이거.
이게 맛있거든. 딱 그, 말 그대로 딱 추억의 도시락 맛이네.
-추억의 도시락.
-진짜 맛있네요.
-옛날대로지.
-옛날 그때 그 맛이에요?
-두 분은 가게, 그러면 사장님이신 거예요?
-사장님은 오늘만 사장이야, 우리 일할 때만 사장이고.
시에서 운영하고 복지관에서 책임지고 하고.
-(해설) 어르신들의 손맛으로 든든한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이 식당은
동구청에서 운영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이루어지는데요.
어르신들은 2인 1조로 한 팀을 이뤄 식당을 일궈 나가고 있습니다.
일상에 활력은 덤이라죠.
-반찬으로 나가려고요, 무생채. 그리고 깨소금 좀 넣고.
-언니가 주로 이렇게 하시면 저는 보조.
그런데 제가 하는 건 또 마음에 안 들어 하셔요.
-잘해요.
-(해설) 어머니들의 진심이 전해져서일까요?
동네 분들이 편하게 찾는 식사 장소가 되었습니다.
168계단 옆인 식당은 여행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도 충분한데요.
가파른 계단에 지친 이들의 피로를 녹이는 시원한 팥빙수.
저거 완전 옛날 스타일이네. 맛있겠다.
-맛있게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해설) 어머니들이 직접 담근 식혜는 이곳의 별미.
따끈한 추억의 도시락 한 그릇에 달콤한 디저트까지.
이보다 완벽한 추억의 밥상이 있을까요?
-여기서 앞으로 얼마나 더 일을 여기서 하실 생각이십니까?
-우리는 한 80살까지 하고는 그만둬야 해요.
-더 할 수 없고.
-그래요? 여든까지면 아직도 한 20년 이상은 더 남으신 것 같은데.
-한 5년 남았어요. 한 5년 남았어요.
-그거밖에 안 남았어요? 이렇게 정정해 보이시는데?
두 분이 얼굴에서 미소가 자연스럽게 싹 배어 나오세요.
-배우님 보니까 너무 반갑고 이래서.
-아닙니다.
-딱 들어오는데 아는 사람이 들어와서.
-엔도르핀이 막 생겨요.
-그만하라고 해도 내가 즐거우니까 나옵니다.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잘 먹었다.
여기 남포역, 여기로 바로 들어가면 남포역이구나.
-(해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부산의 낭만을 전하는 동네.
남포동에 도착하자 멋쟁이 노신사 한 분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노신사의 정체는 바로 광복동 꽃할배 여용기 씨.
7080 패션의 성지였던 광복동을 대표하는 1세대 재단사 중 한 분이죠.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여기가 그럼 선생님 계신 곳인 거죠? 혹시 안에 좀 구경해도 될까요?
-들어오세요.
-감사합니다. 입구부터 멋있어.
-들어오세요.
-입구도 멋있고. 감사합니다. 멋있다. 옷들이 좀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데.
-(해설) 세련된 양복들이 참 많죠? 곳곳에 가봉의 흔적도 보이고요.
-혹시 여기 뭐 이렇게, 기성복 파는 데가 아니고.
-맞춤 정장.
-그래서 재봉선이나 이렇게 또 만들어져 있고.
요즘은 솔직히 진짜 맞춤 정장 하러 가고 싶어도 눈에 띄는 데가 별로 없거든요.
-그렇죠. 옛날에는 많이 있었는데 요즘은 많이 사라졌어요.
이제 얼마 안 남은 것 같아요, 기술자들이 없어졌더라고.
-맞춤 정장의 장인, 명인을 만나 뵙게 돼서 너무 영광입니다.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가 요즘 살이 너무 쪄서 맞는 옷이 없거든요.
그래서 안 그래도 옷을 한 벌 맞춰야 하나, 이러고 있었는데 그러면 부탁을 한번 드려보겠습니다.
나 옷 맞춘다! 이게 지금 몇 년 만에 재 보는 건지 모르겠네. 이게 손길이 다르다.
몸에 닿는 손길이 달라요. 뭔가 장인의 느낌이...
선생님, 실례지만 몇 살 때부터, 이거 시작하신 지 몇 년 되셨어요? 이 옷 만드신 지?
-내가 17살 때. 17살 때부터 했어요.
-17살 때부터요?
-네.
-그럼 혹시 죄송하지만 지금...
-72살. 53년생.
-그러면 몇 년을 하신 거예요, 도대체? 엄청 오래되셨네요.
-그렇죠. 서울에서 양복 일하는 사람들이 부산에 취직하러 오면 힘들어요.
-오히려.
-우리는 안 된다고, 변두리 가서 일하라고 하고.
-진짜. 부산 광복동이랑 남포동에서 하시는 분들이 서울로 오면 진짜 잘하시는 분 오셨다고 환영하고.
-그 당시에는 여기가 더.
-여기가 더.
-일을 잘했어요.
-(해설) 패션 트렌드, 섬유 등 외국 문물이 가장 먼저 들어왔던 부산항.
한때 광복동은 유행을 선도하는 동네였습니다.
-가슴둘레는 거의 나하고 같고 허리도 거의 같네.
-비슷해요?
-(해설) 지금 저 옷 갈아입는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오랜만에 입어보는 맞춤복입니다.
-선생님, 이거 제가 대충 입어봤는데...
-(해설) 어때요? 좀 태가 나나요? 멋진 양복 한 벌 입으니 괜히 어깨에 힘도 들어가네요.
-질감이 너무 좋은데요?
아니, 그런데 이렇게 현대적인 감각의 옷을 사실은 오래 하셨으면 이렇게 따라가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10년 전에, 그때 새로운 공법을 배웠어요. 젊은 친구들한테, 서울 다니면서 서울에서...
-이미 명장이신데 다시 또 공부하시고 배우셔서 변화를 주신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내가 쓰고 있는 것은 옛날에 쓰던 거고 새로 연구해서 다 배운 거예요.
허리가... 한번 보자, 전하고. 지금 현재 허리가. 내려가면 위치에 딱 올려서 여기에 딱 매야 한다고.
-네.
-(해설) 젊은 감각을 갖추자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도 늘어났다는데요.
-됐어요.
-(해설) 최소 세 번의 가봉을 고집하는 여용기 재단사.
수일간 정성을 다해야만 제대로 된 옷 한 벌이 완성된다고 하는데요.
-선생님한테 이거 한번 배워보겠다고 젊은 친구들이 한 열댓 명 왔을 거야.
내가 각서도 다 받았어요. 자신 있다고 했는데 다 나가떨어져 버렸어. 그만큼 힘들더라는 거야, 이게.
젊은 친구들이 대를 이어주고 가야 하는데 그게 목표인데 잘 될는지 모르겠어.
-(해설) 재단사의 명맥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 고민이 깊어지는 요즘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 동네를 지켜주시고 또 이렇게 맞춤 정장의 맥을 또 이어가 주시고 하니까
제가 다 든든하고 여기 막 몸에서 기운이 막 솟아오르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도 너무 감사하고 늘 건강하시고 좋은 옷 많이 만들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이거 입고 갈래요.
-가세요.
-(해설) 광복동을 지키는 우리 세대 마지막 맞춤복 장인.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와 지치지 않는 열정까지 많이 배우고 갑니다.
광복동 메인 거리를 지나서 작은 갈림길로 들어서면 오랜 세월 중구를 지켜온 찻집이 있습니다.
간판부터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데요.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너무 예쁘다, 여기.
-걸어가는 길~ 저기 멀리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처음 뵙겠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해설) 잔잔한 노랫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부산 토박이 싱어송라이터 김일두입니다.
부산에서 음악 좀 한다면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네요.
솔직담백한 가사와 멜로디로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여기는 저는 그냥 차 마시는데 인줄 알았는데 어떻게 여기서 그렇게 음악 작업을 여기서 하시는 거예요?
-저는 뭐 딱히 작업할 때가 없어서 여기서 원장님께서 편하게 차도 마시고 생각나면
기타도 치고 그렇게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해설) 곡이 절로 써질 것 같은 분위기죠. 80년대의 낭만을 간직한 이 오래된 찻집은 그의 아지트라고 합니다.
-짠 한 번 할까요?
-짠 한 번 할까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마음을 싹 녹여주네, 차도.
-자주는...
-곡 쓰고 계셨어요?
-네, 곡 쓰고 있었어요. 커버하는 곡을 갖다가 이제 가사 쓰고 있었어요.
-(해설) 이곳은 그의 음악 생활의 시작점부터 함께한 오래된 친구 같은 공간입니다.
-누나, 안녕하세요?
-네. 그렇죠.
많은 추억이 있고 그 추억들을 연결하다 보면 제 역사가 되니까, 제 인생의 역사가 있는 거죠, 여기에.
-부산시 안에서도 중구 이쪽에서 계속 뭔가 활동을 계속하시는 건가 봐요?
여기를 잘 안 벗어나시나 봐요?
-여기를 좀 벗어나요, 여기. 왜냐하면 사는 곳은 여기 사는데 공연을 하러는 갈 수 있는 곳은 다 가요.
-그렇구나. 부산을 좀 그리고 좀 지키고 계시는 거잖아요.
-그냥 오래전부터 여기에서 살아왔고 진짜 한 43년 정도 살았거든요, 이 동네에서만.
여기, 그러니까 여기를 못 벗어나겠더라고요. 여기가 좋으니까.
거기에다가 이 동네가 여기 국제시장, 깡통시장 이런 이쪽이 자갈치 이런 데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해줍니다.
그러니까 아이디어를 막 주는 거죠.
-(해설) 고단한 삶을 달래주는 그의 노래의 원천은 다름 아닌 부산 앞바다인데요.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항구를 걷다 보면 자연스레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합니다.
지난 세월 동안 용기를 잃지 않고 노래를 하게 해준 원동력이기도 하고요.
활기, 활기라고. 이 활기가 저한테는 엄청난 힘을 줍니다. 용맹함도 주고.
-이 동네 향이 나로 하여금 힘을 솟게 만들어준다. 멋집니다.
산복도로랑 버스도 타고 다니고 뭐 여기 항만도 걸어 다니고 했는데 저도 뭔가 지역, 지역마다 그 냄새도 있고
사람들 그 말소리 그다음에 바다에서 나는 소리들 또 도로에서 나는 소리들, 시장에서 나는 소리들 이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뭔가 이렇게 막 에너지를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렇습니다. 그걸 제가 받고 있어요.
-(해설) 자신의 동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산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
훌쩍 떠난 마실 길에서 그 애틋한 마음들을 오롯이 느끼고 갑니다.
-이고 다녀야지, 두 번 세 번 안 움직이지. 손맛이죠, 손맛이고. 꼬시다. 꼬시네.
어머니 그 얼마나 하셨어요?
-한 60년.
-위하여!
-재미있어요, 이게.
-재미있네.
-나무 닦는 소리가.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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