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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듯, 도시기행 마실가요 - 그곳에 마을이 있다, 부산 금정구
등록일 : 2024-09-09 17:47:58.0
조회수 : 2253
-(해설) 바다의 도시 부산에서 만나는 청정한 호수 풍경. 금정구 회동수원지에 왔습니다.
-물이 맑아서 그런지 물고기가 꽤 많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머니.
-오만석 씨.
-어떻게.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보니까 안면이 있네.
-이런 행운이.
-잘생겼다.
-이런 행운이 다 있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두 분은 아침에 웬일이세요, 여기?
-힐링.
-잠깐 산책 나왔어요.
-산책?
-여기 뷰가 너무 좋거든요, 아침에.
그래서 저는 아침마다 이 길을 와서 다리를 한 번 건너면 힐링이 딱 되거든요.
-그러면 아침마다 여기 왔다 갔다 하시는 거예요?
-네.
-매일매일 이런 뷰를 볼 수 있으니까 너무 좋으시겠어요. 그런데 두 분 무슨 일 하세요?
-조리사.
-병원의 조리사.
-병원 조리사.
-진짜요?
-아침 식사 드리고.
-잠깐.
-잠깐 쉬는 시간. 자유 시간을 이렇게 느낀답니다.
-그러시구나. 하루하루 너무 행복하시겠어요.
-네, 행복해요.
-그러니까 얼굴에 펴 있어.
-그중에 이 시간이 최고 행복해요.
-그렇구나.
-그리고 오늘은 더 행운이고.
-그러니까요. 오늘 또 저도 행운이네요, 이렇게 두 분 만날 수 있게 돼서.
-감사합니다. 우리 사진 찍어주실 거예요?
-(해설) 유쾌한 두 분 덕분에 오늘은 마실 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울 것 같습니다.
-좋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구름이 한 점이 없네.
-바람 있는 게 좋아.
-그래요? 이 동네 사세요? 몇 년 사셨어요?
-오래 살았죠.
-맨날 이 길 가시는 거예요?
-아니요, 밭에, 여기.
-밭에. 저기서부터 계속 맨발로 아예 도로 걸어가시는 거구나?
-숲속이니까 햇빛이 감싸서.
-그렇구나.
-안쪽이 더, 안쪽에서 한번.
-감사합니다.
-좋은 일만 생기세요.
-감사합니다.
-(해설)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풍경과 하나 된 사람들이 사는 곳.
오늘은 도심 속에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 금정구 곳곳으로 행복한 마실을 떠나보겠습니다.
총길이가 20km에 이르는 회동수원지 둘레길은 어디를 걸어도 절경입니다.
오랜 세월 상수도 보호 구역으로 인적이 닿지 않았던 덕분에 곳곳에 원래의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답니다.
그런데 어디서 북적북적한 소리가 들리네요?
-이런 데 족구장이 다 있어. 식당인가 봐요, 족구장도 있고. 이런 데 식당이 있네?
-(해설) 시골집 안마당인가 했는데, 식당이 있었네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여기 이런 데 식당이 있어요.
-그렇죠.
-여기 그런데 되게 건물이 예스러워요.
-건물은 한 60년 정도 오래됐어요.
-60년이나 됐어요?
-처가에서 운영하던 가게거든요.
-그러면 원래 장인 어르신이 하시던 거를 이제는 전수 받아서 하시는 거예요?
-그렇죠.
-뭐야, 이거.
-좀 특이하죠, 일반 수족관하고는 달라요.
-목욕탕같이 돼 있는 게 있어요.
-(해설) 이 녀석이 바로 회동수원지 일대 식당들의 대표 메뉴, 향어랍니다.
-이게 민물고기다 보니까 햇빛 보면 얘들한테 이끼도 끼고 위생상 안 좋아요.
그래서 특히 민물고기 이 담수어들은 안쪽으로 항상 햇빛 안 보게.
-들어오니까 안 먹고 그냥은 못 가겠네요.
-식사하고 가세요.
-뭘 먹으면 좋을까요, 여기 그러면.
-보통 저희 향어회하고 꿩샤부샤부가 제일 잘 나가요.
-그러면 향어랑 꿩샤부샤부 좀 부탁드릴까요?
-네, 그럼요.
-(해설) 젊은 사장님은 지난해 장인어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로
장인의 60년 손때가 묻은 이 식당을 책임지게 됐답니다.
가족들이 다 같이 식당 일을 돕기는 하지만 주방만큼은 오직 한 사람.
사위이자 장인의 1등 수제자인 종오 씨의 몫.
기름기가 많아 손질이 까다로운 향어회도 절대 기계를 쓰지 않고 100% 손으로만 회를 뜬답니다.
-손맛이죠, 손맛이고. 아무래도 기계로 하면 철이기 때문에 열이 나요, 기계에서.
고기도 좀 물러지고. 그게 제일 큰 것 같아요, 이유는.
이제 저희 장인어른도 한 30년, 40년 넘게 이거 손으로 하시는 걸 고집하셨거든요.
그런데 회 손질 자체가 칼, 칼이 되게 중요하거든요.
장인어른하고 새벽에 시장 가서 칼 사고, 장비 사는 거 그런 게 많이 기억에 남죠.
그리고 고기 잡으러 다니고 이러는 거.
-(해설) 철모르는 나이에 아내를 만나 집안의 가장이 된 사장님.
세상 경험이 없던 어린 사위에게 장인어른은 부모이자 인생의 선배였답니다.
-제일 처음에는 솔직히 반대했어요. 제가 이제, 안 가르쳐 주려고 그랬죠, 워낙 힘들고 고되니까.
처음에는 어깨너머로 계속 보고 있었죠.
칼 먼저 갈고 이제 조금 조금씩, 이제 원래 향어 같은 경우가 고기가 되게 크거든요.
작은 고기부터 해서 차근차근 배웠죠.
-그래도 열심히 하는구나, 이러면서. 어릴 때 왔는데 되게 철없이 생각할 거 같은데 또 안 그렇고.
잘 해줘서.
-(해설) 고된 식당 일도 아들처럼 아껴주신 장인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는 사장님.
지금도 그 따뜻한 품이 문득문득 그립답니다.
-하나하나 할 때마다 자주 생각나요. 이거를 어떻게 해야 혼자 이렇게 다 했을까, 이런.
대단한 거죠. 지금 우리로서는 상상이 안 되죠. 그 수많은 혼자 하신 걸 보면.
그럴 때 되게 생각 많이 나요.
-(해설) 과연 장인어른의 손맛을 이은 사위의 밥상은 어떨지 궁금하시죠?
-이게 이고 다녀야지, 두 번, 세 번 안 움직입니다. 올라가.
-(해설) 일단 등장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쪽, 이쪽으로.
-나는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주신 것도 지금 신기한데 이거를 머리에 이고 오신 게 더 신기하네요.
-우리는 옛날부터 이고 다녔습니다.
-(해설) 밥상을 나르는 법부터 회 뜨는 방식까지 수십 년 노하우 그대로 차려진 한 상.
보기만 해도 군침이 절로 넘어갑니다.
-이거 양념장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해서 향어.
-여기, 여기.
-이거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해설) 100% 손으로 만든 향어회 맛. 궁금하시죠?
-엄청 고소하네요?
-향어회가 정말 담백하고 꼬시다 하죠, 이게.
-꼬시네. 꼬시네. 맛있다. 이런 맛이구나.
-(해설) 향어회만큼이나 인기라는 꿩고기도 한번 맛을 봐야죠.
-살짝 담가서. 이렇게 바로 꺼내서 바로 드시면 돼요.
-이렇게요?
-너무 익으면 이게 질겨지거든요.
-그래요? 이거 이렇게 꺼내서.
-간장에 찍어서.
-간장에.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해설) 담백한 꿩고기는 살짝만 익혀 특제 간장에 푹 찍어야 제맛이랍니다.
-되게 부드러울 거예요.
-너무 맛있는데요, 이거? 상상보다 훨씬 더 맛있는데?
-(해설) 장인어른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사위의 정성 덕분일까요?
그 진한 그리움이 담겨 있어 더욱 특별한 밥상입니다.
-되게 새롭고 먹는 게 맛있으면서도 재밌고 하거든요.
두 분은 오륜동에서 가게를 계속 고집스럽게 하시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그냥 부모님들, 이제 여기서 나고 자라고 하니까 지켜나가는 거죠.
-지켜나간다.
-감사하죠, 이런 자연환경 속에 애도 키울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고.
제일 좋은 건 이렇게 항상 붙어 있으니까, 그게. 집 같아요, 그냥. 동네라기보다는.
진짜 그냥 포근해요. 집 같은 존재?
-어릴 때는 여기가 교통편도 불편하고 하니까 되게 나가고 싶었거든요, 여기서?
밖에 놀러 갔다가 들어와도 공기가 다르잖아요.
평생 여기서 컸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곳?
-(해설) 어린 시절 가족과의 추억이 오롯이 남아 있는 고향에서 소박하고 우직하게
행복을 만들어가는 두 분의 모습을 아마 하늘에서 장인어른도 흐뭇하게 지켜보시겠죠?
든든하게 배도 채웠으니, 소화도 시킬 겸 특별한 산책로를 걸어봅니다.
-누가 사진 찍어주면 좋겠는데, 이거 이렇게?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해설) 생각해 보니 이렇게 맨발로 땅을 딛고 느긋하게 걸어본 지가 언제였나 싶은데요.
황톳길을 빠져나와 예쁜 동네 안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지금 뭐 하고 계신 거예요?
-지금 꽃에 물 주고 있습니다.
-이게 뭐예요?
-이게 다 먹는 채소들인데.
-키우는 게.
-이건 당근이고.
-이게 당근.
-(해설) 지인이 직접 기른 유기농 채소를 판매하는 중이랍니다.
-당근이 딱 나옵니다.
-당근이네, 진짜.
-이게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커지는데, 지금 이 사이즈일 때는 딱 샐러드 해 먹기 좋은 사이즈로.
-이 상태로.
-(해설) 그런데 안쪽에 독특한 공간이 보이죠?
바로 오륜동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로 요리하는 채식 전문 식당이랍니다.
궁금한 마음에 한 번 들어가 봤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기 밖에서 채소 구경했는데 이 안에 음식 하신다고, 구경까지 된다고 해서.
-구경하세요.
-진짜요? 봐도 돼요? 이게 뭐예요, 그런데?
-이거는 가죽나물 아스파라거스 볶음이에요. 가죽나물 아세요?
-가...
-가죽나물.
-가죽나물. 가죽나물이 뭐예요? 처음 들어보는데?
-한번 드셔보세요.
-여기서, 먹어도 돼요?
-네.
-진짜요?
-(해설) 가죽나물은 참죽나무의 여린 잎을 데친 건데요. 독특한 향이 아주 별미랍니다.
-좀 특이한 향이 나죠?
-네. 짭조름하면서 간을 해주셔서. 맛있다, 향도 좋고.
-(해설) 부엌의 주인장 나까 씨는 지역에서 나는 유기농,
친환경 식재료로 요리를 하는 비건 요리 전문가입니다.
손님들과 함께 오륜동의 숲을 산책하며 자연을 느끼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아주 특별한 부엌을 운영 중이라네요.
-오셔. 뭘 또 들고 오셨네?
-지나가다가 이 앞에 미나리 키우시는 분이 계셔서, 가끔씩 주민들이 이렇게 주십니다.
-그래요?
-이 앞에 미나리밭이 많아서.
-두 분이 그러면?
-밀접한 관계입니다.
-나까 씨와 건우 씨는 올해로 11년 차 한일 국제 커플이랍니다.
대학 졸업 후 부산에서 문화예술 운동을 하던 건우 씨는 도쿄에서 카페를 하며
싱어송라이터이자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던 나까 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는데요.
-두 분이 혹시 싸우거나 하시는 일은 없으실 것 같아요.
워낙 두 분이 이렇게 다 차분하고 하셔서.
-그거는 싸움의 등식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거는.
-등식이 성립을 안 한다고요? 일방적이에요?
-설교를 하고.
-설교를?
-설교를 주로 이제.
-누가, 누구에게?
-여기.
-나까 상이 우리 건우 님께?
-한국말로 이제 설교를 하십니다.
-한국말로. 주로 어떤 거 가지고 말씀을 해주세요?
-글쎄요.
-(해설) 국적을 불문하고 부부들은 다 비슷한가 봅니다.
오늘은 나까 씨가 건우 씨의 직장 동료들을 위해 특별히 한 상 차리신답니다.
역시나 주재료는 유기농 채소들. 죽순에 표고버섯, 미나리, 토마토, 비트.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100% 채식 밥상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해설) 덕분에 저도 운 좋게 함께했습니다.
-드시죠, 잘 먹겠습니다.
-(함께)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오늘의 메인 요리는 두릅장을 올린 죽순밥. 재료 모두 오륜동에서 재배한 친환경 농산물이라네요.
-이 동네는 또 대나무가 되게 많이 나와서 가끔 죽순을 주시는 주민들도 계시고.
-이게 아까 아카시아꽃 튀김, 이것도 먹어요?
-네.
-(해설) 봄철이면 지천에 핀 아카시아꽃을 따서 별미로 즐긴다는데요.
튀김옷을 살짝 입혀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 낸 아카시아꽃 튀김, 그 맛은 어떨까요?
-꽃이 이렇게 맛있는지 처음 먹어보네. 진짜 맛있네요.
-(해설) 나까 씨의 부엌 바로 옆에는 건우 씨와 동료들의 일터가 있는데요.
버섯 농장이었던 폐건물을 개조해 작업실로 사용 중이랍니다.
-계단이 좀 가파른데. 다락 같은 느낌입니다.
-(해설) 부산의 1세대 문화예술 활동가인 건우 씨는 이곳에서 동료들과 함께 공유기업을 운영 중인데요.
재래시장 상가를 활용해 지역 예술가들에게 창작 공간을 제공하는 일을 해 왔답니다.
하지만 어렵게 일궈 온 소중한 공간을 지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네요.
-(해설) 그렇게 쫓기듯 떠났던 두 사람이 운명처럼 찾아낸 곳이 바로 오륜동이랍니다.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서 참 귀하고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설) 더 이상 밀려나거나 쫓겨날 걱정 없이 자연 속에서 아이들과 소박한 일상을 지켜갈 수 있는 곳.
건우 씨와 나까 씨 가족의 오륜동 드림을 응원해 봅니다.
호숫가 마을을 떠나 산 아래 마을로 왔습니다.
-여기 진짜 높다. 여기가 금정산성의 동문. 여기 높은 데 이렇게 마을이 있나 봐.
-(해설) 해발 415m, 금정산의 허리께인 동문을 통과해 아랫길로 쭉 내려오면
성곽 안 분지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동네, 금정산성마을을 만납니다.
시내 중심에서 자동차로 불과 30여 분 거리일 뿐인데 마을 풍경이 참 느긋하고 정겹죠?
동네를 걷다 보니 막걸리를 좋아하는 제 눈을 사로잡는 곳이 있네요.
-이게... 냄새가 술 냄새가 나는데? 산성 막걸리 박물관, 여기인가 보다.
-여기 맞습니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저 때문에 일부러 나오신 거예요?
-네, 이리로 들어가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해설) 금정산성 막걸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개량 누룩을 쓰지 않고
500년 전 전통 방식 그대로 누룩을 빚어서 만드는 걸로 유명합니다.
게다가 특별한 비결은 바로 이 열정의 족타법.
수십 년 경력의 누룩 밟기 달인들이 하루 평균 500개가 넘는 누룩 반죽을 만든답니다.
-어머니 양말 제가 빌려 신었습니다.
-네, 잘했습니다.
-분홍색 양말이 너무...
-결 따라.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옳지, 잘하시네.
-이렇게, 이렇게.
-(해설) 누룩 밟기는 난생처음인데요. 어떻게, 실력이 좀 괜찮아 보이나요?
이렇게 발로 꾹꾹 밟아 줘야 공기층이 빠져서 누룩이 더 잘 뜬답니다.
-어느 정도 됐거든.
-네.
-됐으면 발끝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야 해.
-이렇게 동그라미를 만들어야 해.
-피자 만드는 것처럼, 끝부분처럼?
-네, 맞아요.
-알겠습니다.
-그래, 돌아.
-오케이, 오케이. 이게 생각보다 해 보니까 쉽지 않은데 어머니는 이거 얼마나 하셨어요?
-저는 오래됐어요. 한 60년 했어요.
-악!
-악!
-(해설) 제 나이보다 오랜 세월 누룩을 밟아 오셨다니, 이만하면 장인, 아니 달인이라고 해야겠죠?
달인의 발에서 빚어진 누룩 반죽은 연탄불을 뗀 발효 방으로 옮겨
은은한 온도에서 일주일간 발효를 시켜 줍니다.
드디어 겉면에 하얗게 누룩 꽃이 피면 1차 완성, 다시 햇볕에서 2, 3일간 바짝 말려 살균하고
창고에서 한 달 이상 건조한 다음 깨끗한 암반수와 섞어 막걸리 원액을 만듭니다.
그리고 마지막 주인공은 바로 이 미생물들.
-처음에 어머님, 누구한테 배우셨어요?
-어머니한테.
-어머니한테?
-네, 우리는 가족, 옛날에는 가족끼리 하니까 큰어머니하고 우리 어머니하고
우리 사촌오빠하고 가족들끼리 이렇게 디뎠어, 옛날에는.
-가족이 다?
-네, 가족이 다.
-(해설) 조선 초기 화전민들이 생계를 위해 빚기 시작한 누룩은 농토가 척박했던
산성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밥벌이 수단이었답니다.
한때는 마을의 모든 집에서 누룩을 빚고 막걸리를 만들어 팔았다는데요.
할머니 역시 13살 댕기 머리 소녀 시절부터 평생 누룩을 밟아 오셨답니다.
-어머니, 손 좀 볼 수 있어요, 손?
-손 얄궂다, 이거 봐라.
-누룩을 매일 만지셔서 이렇게 손이...
-팔십 평생을 했으니 이 손이, 훈장이다.
-진짜 훈장이다, 훈장. 역사다, 역사. 대단하세요. 이거 해서 자식들 교육시키고...
-자식들도 키우고 교육도 시키고 먹고 살고. 딸 여섯에 아들 하나. 가당찮다.
-(해설) 한시도 손에서 물 마를 날이 없었던 고단한 세월.
할머니를 버티게 한 힘은 언제나 누룩이었답니다.
-(해설) 비록 몸은 고되었지만 가족을 건사할 수 있어 감사하고 떳떳했던 일.
할머님과 동료들에게 누룩은 어쩌면 인생 그 자체이자 자랑스러운 삶의 훈장이겠죠?
누룩 방 할머님들의 웃음과 눈물로 익은 진한 막걸리, 그래도 맛은 보고 가야죠.
-감사합니다.
-시원한 거 한 잔 잡숫고 가세요.
-빛깔이 곱네.
-빨리 드세요.
-조금만.
-됐습니다.
-오케이.
-(함께) 위하여.
-산성마을 막걸리를 위하여!
-맛있다.
-진짜 시원하니 맛있죠?
-시원하니 맛있다.
-나 좀 더 먹어야겠다.
-진짜 맛있다.
-좀 더 부어주세요.
-어머님은 리액션이 왜 이렇게 좋으세요? 어머님들 무슨 연기하시는 것 같아요.
-진짜로...
-진짜 맛있다.
-둘이 더 먹읍시다.
-그럴까요? 어머님처럼...
-(해설) 할머님들과 함께해서인지 막걸리 맛이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함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해설)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누룩 방 할머님들의 청춘과 인생이 녹아 있는 막걸리.
저는 오늘 참 귀한 막걸리를 맛보고 갑니다. 이제 산성마을을 떠나 도심 가까이로 내려왔습니다.
길을 따라 쭉 걸어오면 만나는 동네. 흔히 식물원 길이라고 부르는 소정마을입니다.
-그렇구나.
-(해설) 어쩐지 도심 한복판인데도 동네 풍경이 참 고즈넉하죠?
걷다 보니 살짝 출출했는데 마침 분위기 좋은 카페가 보이네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마실까 하고 왔는데. 커피 따뜻한 거?
-따뜻한 아메리카노...
-네, 한 잔만 주세요. 한 잔 주시고, 그런데 빵이 많네요? 종류가 되게 많네?
빵도 좀 맛있는 거 있으면...
-추천해 드릴까요?
-네, 빵도 좀 주세요. 그런데 두 분이 은근히 닮으신 것 같아요.
-엄마랑 딸이에요.
-모녀지간이구나. 여기 이게 눈매랑 콧방울이랑 입가가 판박이시네, 판박이.
따님이 약간 은근히 기분 나빠하시는 것 같은데?
-아니, 아니에요.
-(해설) 사이 좋게 꼭 닮은 두 모녀 사장님은 5년 전 이곳 소정마을에 자리를 잡았답니다.
딸 아라 씨의 필살기는 유기농 호밀과 특별한 발효종으로 만든 건강한 빵.
얘가 저희 집의 자랑입니다.
-(해설) 직접 키운 천연 발효종으로 반죽하고 신선한 재료를 아낌없이 쓰는 것이 이 집 빵 맛의 비결.
처음에는 동네가 너무 한적해 손님이 올까 걱정도 많았지만 지금은 단골이 끊이지를 않는답니다.
왠지 빵 맛이 더 궁금해지는데요?
-감사합니다. 앉으세요, 앉으세요. 커피 잘 마시겠습니다. 아니, 빵이 종류가 많아요.
-많죠?
-두 분이 같이 만드신 거예요?
-네, 엄마가 만든 빵이랑 제가 만든 빵이랑 이렇게 같이...
-따로따로 있어요?
-네.
-실명제로.
-그래요? 이거 가만있어 봐. 어느 쪽이 더 맛있나, 제가 한번 조금씩 맛을 보겠습니다.
이게 소금빵?
-네, 맞아요.
-여기를 뜯는데 바삭하네요.
-네, 안은 촉촉하고.
-진짜 맛있네. 약간 겉바 속촉.
-(해설) 꼭 닮은 두 모녀지만 제빵 스타일만큼은 확실히 다릅니다.
딸은 주로 건강한 호밀빵, 어머니는 달달한 디저트 담당이라네요.
-얼굴도 두 분 다 웃는 상이셔서 싸울 일은 없으실 것 같아.
-초반에는 많이 싸웠어요.
-그래요? 뭐 때문에, 뭐 때문에 싸워요?
-서로 빵을 같이 만들다 보니까 실수죠.
실수가 일어나고 또 크고 사소한 실수도 있고 중대한 실수도 있고 이러다 보니까 서로 예민해져서.
빵 만들 때는 굉장히 예민해지더라고요.
-다른 때보다 오히려 빵 만들 때 더 막...
-(해설) 빵에서만큼은 결코 양보가 없다는 두 모녀. 그래서 생각해 낸 특단의 해결책이 있답니다.
-좁아서...
-이게 지금 기계가... 이 방이 좀 춥거든요, 지금, 약간?
느낌이 약간 저온 숙성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좀 더 강하게 들어요. 아마도 이거 어머님 방?
-아니요, 제 방이요.
-이런, 따님 방이구나.
-(해설) 눈치채셨나요? 해결책은 바로 한 지붕 두 제빵실.
빵을 만드는 재료부터 베이킹 도구, 냉장고, 오븐까지 각자 원하는 스타일로 구비했답니다.
따로 또 같이.
개성 강한 모녀 제빵사의 평화로운 공존법이랍니다.
그런데 사실 아라 씨의 원래 꿈은 제빵 쪽이 아니었답니다.
그러면서 뭐를 해야지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그래서 고민을 좀 많이 하고 이것저것 해보다가.
-(해설) 간절히 꿈꿔왔던 첼리스트의 길을 포기하고 방황하던 시절,
문득 아라 씨를 붙잡았던 기억이 있었다는데요.
바로 어린 시절 어머니가 구워주시던 빵 냄새였답니다.
그래서 아, 내가 빵 만드는 걸 좋아하는 구나, 이렇게.
-(해설) 새로운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딸을 보며 어느새 어머니도 든든한 동지가 되었답니다.
지금은 뭐 안 힘든 일이 어디 있나요? 그래서 지원해 주고 있어요.
저를 이렇게 끌고 이렇게 이끌어줘서 같이 잘 앞으로도 일하고 싶습니다.
-(해설) 좀 돌아가면 어떤가요?
좋아하는 일이 있고 든든한 응원군까지 함께 하니 앞으로 꽃길만 있을 겁니다.
아무렴요. 마을 길을 걷다가 눈에 띄는 재미난 나무를 발견했습니다.
-이거 뭐야? 물고기네, 물고기 나무네. 멋있다.
-(해설) 대체 누가 이런 근사한 작품을 만들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여기 잠깐 지나가다가 물고기 모양이 되어 있는 나무 보고 재밌어서 너무 예뻐서 한번 구경 왔는데.
-그래요?
-여기 작업을 하고 계셨나 봐요?
-네, 작업하고 있습니다.
-저 혹시 구경 좀 해도.
-들어오세요.
-감사합니다.
-어디서 많이 뵌 분인데?
-(해설) 알고 보니 유명한 작가님의 공방이랍니다.
1999년부터 목조형 작품을 만들어온 이용기 작가는 올해로 25년째 목공예 한 길만 걸어온 공예 장인이랍니다.
오랜 세월 나무를 다듬어온 장인의 작업실이라서일까요? 구석구석 연륜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이거 뭐 이렇게 많아요? 뭐예요, 이게 다?
-이게 대패들이에요, 목공 대패들.
-이게 다 나무를 이렇게 다 가는, 이제 다.
-그렇죠, 그렇죠.
-(해설) 여러분, 대패가 이렇게 다양한 줄 알고 계셨나요?
100여 종이 넘는 이 대패들은 모두 작가님이 손수 만든 것들이랍니다.
-기계가 엄청 많아요.
-이 기계들이 아마 내 나이보다도 많은 기계들이에요. 오래됐어요.
-오래된 기계들이에요?
멋있다.
-이 기계 같은 경우에는 한 7, 80년 가까이 되는.
-저기 녹슨 거 봐.
-그렇죠.
-너무 재밌어요.
저기 옆에 영커피라고 스티커 붙어 있어.
-맞아요.
-(해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작가님은 유년 시절부터 그렇게 나무가 좋았답니다.
남달리 손재주도 좋아 장난감 대신 나무를 깎으며 놀았고
그렇게 나무의 따뜻함에 반해 평생 나무와 함께하기로 결심했답니다.
-(해설) 사각사각 나무 깎는 소리가 참 편안하죠? 저도 목공이 로망이었는데 한 수 배워봐야겠습니다.
-이 끝이 날이 있어서 이거를 각을 치면서 쫙쫙 당깁니다.
-이렇게 당겨요? 세게 당겨야 하나요?
-살살 그냥 살짝. 그렇죠, 그렇죠, 그렇죠. 끝까지 쭉. 그렇죠, 그렇죠, 그렇죠.
-(해설) 이 조그마한 대패는 곡면을 깎을 때 쓰는 남경대패인데요.
-대패로 움직이면서.
-재밌다.
-재밌어요, 이게.
-재밌네.
-이 대패 소리가 있잖아요, 나무 깎는 소리가. 예쁘지 않아요?
-그러네요.
-아름다워요.
-뭔가 슥슥.
-그렇죠.
-(해설) 작업실 위층에는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도 있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 집사람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사모님이시구나.
-제가 아는 그분이네요.
-사모님이 아는 그분이 접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두 분이 매일 같이 출근하시는 거예요?
-네, 그렇죠.
-밑층에서 일당백, 제가 여기서 위로 일당백.
-일당백.
-(해설) 큐레이팅부터 사무 업무까지 혼자서 척척 해내는 일당백 아내이자 든든한 동반자이시랍니다.
-이용기 작가님 같은 경우에는 우리나라 특수목들, 느티나무나 회화나무나,
우리나라의 사계절을 담아서 이제 결이 굉장히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표현할 수 있는 이런 나무를 소재로 작업을 많이 하고요.
-(해설) 한국적인 소재와 주제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면서도 가구와 생활 소품처럼
실용적인 작품까지 골고루 포용하는 것이 작가님의 철학이랍니다.
-여기서는 몇 년 동안 하셨어요? 건물은 그렇게 오래돼 보이진 않던데.
-저희가 여기에 정착을 한 지가 거의 15년 전이에요.
-벌써 15년 되셨어요?
-공방을 네 번째 이사를 다니면서 정착한 곳이 여기거든요.
-(해설) 마음 편히 작업할 공간이 절실했던 작가님에게 소정마을은 최적의 장소였답니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널찍한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도 더 왕성하게 할 수 있었다네요.
큰 원목 자재나 대형 작품들을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언제나 고민이었는데
소정마을에 와서야 이렇게 멋진 창고도 만들 수 있었답니다.
작품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목자재를 구해서 보관하고 운반하는 일까지
하나하나 작가님의 손을 거쳐야 하다 보니 곁에서 돕는 아내 역시 마음 졸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요즘 이제 최근 한 2, 3년이 제가 좀 많이 힘들었던 것 같고요.
그때는 코로나가 끝났는데 경기가 회복되지도 않았고 체력은 떨어지고.
대상포진으로 고생도 했었고요.
그때는, 그때는 정말 지금 생각해도 너무 힘들었고요.
-(해설) 몸과 영혼을 온전히 바쳐야 비로소 완성되는 예술의 길.
굵어진 손마디는 그 모든 것을 내어준 뒤에 얻은 훈장이겠죠.
-아까 선생님 저 손을 좀 봤는데 거의 지문이 닳아서 많이 희미해질 정도로 작업을 많이 하셨나 봐요?
-지문 때문에 늘 고생을 좀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손 보시면 사모님은 어떤 생각 드세요? 좀 어떠세요?
-소심한 저 같은 사람은 볼 때마다 너무 안쓰럽고요.
특히 이제 저희 집의 작은 딸이 어릴 때부터 아빠가 귀가를 하게 되면 딱 보면서 아빠, 검사, 하거든요.
그러면 손을 보고 얼굴을 보고 막 몸을 훑어요.
-다친 데 있나, 없나?
-네, 잘하셨다고 이렇게 하고.
혹시라도 상처가 보이면 내가 못 살아, 이러면서 약을 가져와서 발라주고.
-발라주시고.
-(해설) 상처와 굳은살을 숙명처럼 달고 살아야 하는 목조형 작가의 삶.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은 그 상처와 굳은살에 언제나 말랑말랑한 새살을 돋게 하는 힘이자 삶의 원천이랍니다.
그러고 보니 두 분 아낌없이 서로에게 그늘이 되어 주는 든든한 나무를 닮았네요.
말 한마디도 따뜻하게 이렇게 격려해 주는 그런 말 한마디가 저한테는 큰 힘이 됐으니까요.
-지금도 예뻐요. 싫어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볼 때마다 설레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고.
말 한마디 하면 다 챙겨주고 할 때마다 사랑스럽죠, 저에게는.
-(해설) 나무의 속살처럼 따뜻하고 향기로운 두 분의 모습을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즐겁게 마실을 다니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기 시작합니다.
한적한 마을을 떠나 복잡한 도시의 불빛 속을 걸어봅니다.
-음악 소리 들리는 것 같은데?
-(해설) 시원한 바람에 실려 온 음악 소리를 따라가 봤습니다. 숨 가쁘게 달려온 하루의 끝.
거리를 물들인 아름다운 선율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쉼표를 찍어봅니다.
오늘도 참 따뜻한 마실이었습니다.
-다시마 냄새가 엄청 진하네. 바다 냄새.
-힘을 더 줘요.
-더 줘.
-더 당겨, 더 당겨, 더 당겨.
-더 당겨.
-바깥으로.
-바깥으로 넓혀.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잡았다.
-잡았어.
-잡았어.
-늴리리야 늴리리~ 늴리리 맘보~
-물이 맑아서 그런지 물고기가 꽤 많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머니.
-오만석 씨.
-어떻게.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보니까 안면이 있네.
-이런 행운이.
-잘생겼다.
-이런 행운이 다 있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두 분은 아침에 웬일이세요, 여기?
-힐링.
-잠깐 산책 나왔어요.
-산책?
-여기 뷰가 너무 좋거든요, 아침에.
그래서 저는 아침마다 이 길을 와서 다리를 한 번 건너면 힐링이 딱 되거든요.
-그러면 아침마다 여기 왔다 갔다 하시는 거예요?
-네.
-매일매일 이런 뷰를 볼 수 있으니까 너무 좋으시겠어요. 그런데 두 분 무슨 일 하세요?
-조리사.
-병원의 조리사.
-병원 조리사.
-진짜요?
-아침 식사 드리고.
-잠깐.
-잠깐 쉬는 시간. 자유 시간을 이렇게 느낀답니다.
-그러시구나. 하루하루 너무 행복하시겠어요.
-네, 행복해요.
-그러니까 얼굴에 펴 있어.
-그중에 이 시간이 최고 행복해요.
-그렇구나.
-그리고 오늘은 더 행운이고.
-그러니까요. 오늘 또 저도 행운이네요, 이렇게 두 분 만날 수 있게 돼서.
-감사합니다. 우리 사진 찍어주실 거예요?
-(해설) 유쾌한 두 분 덕분에 오늘은 마실 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울 것 같습니다.
-좋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구름이 한 점이 없네.
-바람 있는 게 좋아.
-그래요? 이 동네 사세요? 몇 년 사셨어요?
-오래 살았죠.
-맨날 이 길 가시는 거예요?
-아니요, 밭에, 여기.
-밭에. 저기서부터 계속 맨발로 아예 도로 걸어가시는 거구나?
-숲속이니까 햇빛이 감싸서.
-그렇구나.
-안쪽이 더, 안쪽에서 한번.
-감사합니다.
-좋은 일만 생기세요.
-감사합니다.
-(해설)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풍경과 하나 된 사람들이 사는 곳.
오늘은 도심 속에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 금정구 곳곳으로 행복한 마실을 떠나보겠습니다.
총길이가 20km에 이르는 회동수원지 둘레길은 어디를 걸어도 절경입니다.
오랜 세월 상수도 보호 구역으로 인적이 닿지 않았던 덕분에 곳곳에 원래의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답니다.
그런데 어디서 북적북적한 소리가 들리네요?
-이런 데 족구장이 다 있어. 식당인가 봐요, 족구장도 있고. 이런 데 식당이 있네?
-(해설) 시골집 안마당인가 했는데, 식당이 있었네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여기 이런 데 식당이 있어요.
-그렇죠.
-여기 그런데 되게 건물이 예스러워요.
-건물은 한 60년 정도 오래됐어요.
-60년이나 됐어요?
-처가에서 운영하던 가게거든요.
-그러면 원래 장인 어르신이 하시던 거를 이제는 전수 받아서 하시는 거예요?
-그렇죠.
-뭐야, 이거.
-좀 특이하죠, 일반 수족관하고는 달라요.
-목욕탕같이 돼 있는 게 있어요.
-(해설) 이 녀석이 바로 회동수원지 일대 식당들의 대표 메뉴, 향어랍니다.
-이게 민물고기다 보니까 햇빛 보면 얘들한테 이끼도 끼고 위생상 안 좋아요.
그래서 특히 민물고기 이 담수어들은 안쪽으로 항상 햇빛 안 보게.
-들어오니까 안 먹고 그냥은 못 가겠네요.
-식사하고 가세요.
-뭘 먹으면 좋을까요, 여기 그러면.
-보통 저희 향어회하고 꿩샤부샤부가 제일 잘 나가요.
-그러면 향어랑 꿩샤부샤부 좀 부탁드릴까요?
-네, 그럼요.
-(해설) 젊은 사장님은 지난해 장인어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로
장인의 60년 손때가 묻은 이 식당을 책임지게 됐답니다.
가족들이 다 같이 식당 일을 돕기는 하지만 주방만큼은 오직 한 사람.
사위이자 장인의 1등 수제자인 종오 씨의 몫.
기름기가 많아 손질이 까다로운 향어회도 절대 기계를 쓰지 않고 100% 손으로만 회를 뜬답니다.
-손맛이죠, 손맛이고. 아무래도 기계로 하면 철이기 때문에 열이 나요, 기계에서.
고기도 좀 물러지고. 그게 제일 큰 것 같아요, 이유는.
이제 저희 장인어른도 한 30년, 40년 넘게 이거 손으로 하시는 걸 고집하셨거든요.
그런데 회 손질 자체가 칼, 칼이 되게 중요하거든요.
장인어른하고 새벽에 시장 가서 칼 사고, 장비 사는 거 그런 게 많이 기억에 남죠.
그리고 고기 잡으러 다니고 이러는 거.
-(해설) 철모르는 나이에 아내를 만나 집안의 가장이 된 사장님.
세상 경험이 없던 어린 사위에게 장인어른은 부모이자 인생의 선배였답니다.
-제일 처음에는 솔직히 반대했어요. 제가 이제, 안 가르쳐 주려고 그랬죠, 워낙 힘들고 고되니까.
처음에는 어깨너머로 계속 보고 있었죠.
칼 먼저 갈고 이제 조금 조금씩, 이제 원래 향어 같은 경우가 고기가 되게 크거든요.
작은 고기부터 해서 차근차근 배웠죠.
-그래도 열심히 하는구나, 이러면서. 어릴 때 왔는데 되게 철없이 생각할 거 같은데 또 안 그렇고.
잘 해줘서.
-(해설) 고된 식당 일도 아들처럼 아껴주신 장인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는 사장님.
지금도 그 따뜻한 품이 문득문득 그립답니다.
-하나하나 할 때마다 자주 생각나요. 이거를 어떻게 해야 혼자 이렇게 다 했을까, 이런.
대단한 거죠. 지금 우리로서는 상상이 안 되죠. 그 수많은 혼자 하신 걸 보면.
그럴 때 되게 생각 많이 나요.
-(해설) 과연 장인어른의 손맛을 이은 사위의 밥상은 어떨지 궁금하시죠?
-이게 이고 다녀야지, 두 번, 세 번 안 움직입니다. 올라가.
-(해설) 일단 등장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쪽, 이쪽으로.
-나는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주신 것도 지금 신기한데 이거를 머리에 이고 오신 게 더 신기하네요.
-우리는 옛날부터 이고 다녔습니다.
-(해설) 밥상을 나르는 법부터 회 뜨는 방식까지 수십 년 노하우 그대로 차려진 한 상.
보기만 해도 군침이 절로 넘어갑니다.
-이거 양념장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해서 향어.
-여기, 여기.
-이거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해설) 100% 손으로 만든 향어회 맛. 궁금하시죠?
-엄청 고소하네요?
-향어회가 정말 담백하고 꼬시다 하죠, 이게.
-꼬시네. 꼬시네. 맛있다. 이런 맛이구나.
-(해설) 향어회만큼이나 인기라는 꿩고기도 한번 맛을 봐야죠.
-살짝 담가서. 이렇게 바로 꺼내서 바로 드시면 돼요.
-이렇게요?
-너무 익으면 이게 질겨지거든요.
-그래요? 이거 이렇게 꺼내서.
-간장에 찍어서.
-간장에.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해설) 담백한 꿩고기는 살짝만 익혀 특제 간장에 푹 찍어야 제맛이랍니다.
-되게 부드러울 거예요.
-너무 맛있는데요, 이거? 상상보다 훨씬 더 맛있는데?
-(해설) 장인어른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사위의 정성 덕분일까요?
그 진한 그리움이 담겨 있어 더욱 특별한 밥상입니다.
-되게 새롭고 먹는 게 맛있으면서도 재밌고 하거든요.
두 분은 오륜동에서 가게를 계속 고집스럽게 하시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그냥 부모님들, 이제 여기서 나고 자라고 하니까 지켜나가는 거죠.
-지켜나간다.
-감사하죠, 이런 자연환경 속에 애도 키울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고.
제일 좋은 건 이렇게 항상 붙어 있으니까, 그게. 집 같아요, 그냥. 동네라기보다는.
진짜 그냥 포근해요. 집 같은 존재?
-어릴 때는 여기가 교통편도 불편하고 하니까 되게 나가고 싶었거든요, 여기서?
밖에 놀러 갔다가 들어와도 공기가 다르잖아요.
평생 여기서 컸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곳?
-(해설) 어린 시절 가족과의 추억이 오롯이 남아 있는 고향에서 소박하고 우직하게
행복을 만들어가는 두 분의 모습을 아마 하늘에서 장인어른도 흐뭇하게 지켜보시겠죠?
든든하게 배도 채웠으니, 소화도 시킬 겸 특별한 산책로를 걸어봅니다.
-누가 사진 찍어주면 좋겠는데, 이거 이렇게?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해설) 생각해 보니 이렇게 맨발로 땅을 딛고 느긋하게 걸어본 지가 언제였나 싶은데요.
황톳길을 빠져나와 예쁜 동네 안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지금 뭐 하고 계신 거예요?
-지금 꽃에 물 주고 있습니다.
-이게 뭐예요?
-이게 다 먹는 채소들인데.
-키우는 게.
-이건 당근이고.
-이게 당근.
-(해설) 지인이 직접 기른 유기농 채소를 판매하는 중이랍니다.
-당근이 딱 나옵니다.
-당근이네, 진짜.
-이게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커지는데, 지금 이 사이즈일 때는 딱 샐러드 해 먹기 좋은 사이즈로.
-이 상태로.
-(해설) 그런데 안쪽에 독특한 공간이 보이죠?
바로 오륜동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로 요리하는 채식 전문 식당이랍니다.
궁금한 마음에 한 번 들어가 봤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기 밖에서 채소 구경했는데 이 안에 음식 하신다고, 구경까지 된다고 해서.
-구경하세요.
-진짜요? 봐도 돼요? 이게 뭐예요, 그런데?
-이거는 가죽나물 아스파라거스 볶음이에요. 가죽나물 아세요?
-가...
-가죽나물.
-가죽나물. 가죽나물이 뭐예요? 처음 들어보는데?
-한번 드셔보세요.
-여기서, 먹어도 돼요?
-네.
-진짜요?
-(해설) 가죽나물은 참죽나무의 여린 잎을 데친 건데요. 독특한 향이 아주 별미랍니다.
-좀 특이한 향이 나죠?
-네. 짭조름하면서 간을 해주셔서. 맛있다, 향도 좋고.
-(해설) 부엌의 주인장 나까 씨는 지역에서 나는 유기농,
친환경 식재료로 요리를 하는 비건 요리 전문가입니다.
손님들과 함께 오륜동의 숲을 산책하며 자연을 느끼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아주 특별한 부엌을 운영 중이라네요.
-오셔. 뭘 또 들고 오셨네?
-지나가다가 이 앞에 미나리 키우시는 분이 계셔서, 가끔씩 주민들이 이렇게 주십니다.
-그래요?
-이 앞에 미나리밭이 많아서.
-두 분이 그러면?
-밀접한 관계입니다.
-나까 씨와 건우 씨는 올해로 11년 차 한일 국제 커플이랍니다.
대학 졸업 후 부산에서 문화예술 운동을 하던 건우 씨는 도쿄에서 카페를 하며
싱어송라이터이자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던 나까 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는데요.
-두 분이 혹시 싸우거나 하시는 일은 없으실 것 같아요.
워낙 두 분이 이렇게 다 차분하고 하셔서.
-그거는 싸움의 등식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거는.
-등식이 성립을 안 한다고요? 일방적이에요?
-설교를 하고.
-설교를?
-설교를 주로 이제.
-누가, 누구에게?
-여기.
-나까 상이 우리 건우 님께?
-한국말로 이제 설교를 하십니다.
-한국말로. 주로 어떤 거 가지고 말씀을 해주세요?
-글쎄요.
-(해설) 국적을 불문하고 부부들은 다 비슷한가 봅니다.
오늘은 나까 씨가 건우 씨의 직장 동료들을 위해 특별히 한 상 차리신답니다.
역시나 주재료는 유기농 채소들. 죽순에 표고버섯, 미나리, 토마토, 비트.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100% 채식 밥상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해설) 덕분에 저도 운 좋게 함께했습니다.
-드시죠, 잘 먹겠습니다.
-(함께)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오늘의 메인 요리는 두릅장을 올린 죽순밥. 재료 모두 오륜동에서 재배한 친환경 농산물이라네요.
-이 동네는 또 대나무가 되게 많이 나와서 가끔 죽순을 주시는 주민들도 계시고.
-이게 아까 아카시아꽃 튀김, 이것도 먹어요?
-네.
-(해설) 봄철이면 지천에 핀 아카시아꽃을 따서 별미로 즐긴다는데요.
튀김옷을 살짝 입혀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 낸 아카시아꽃 튀김, 그 맛은 어떨까요?
-꽃이 이렇게 맛있는지 처음 먹어보네. 진짜 맛있네요.
-(해설) 나까 씨의 부엌 바로 옆에는 건우 씨와 동료들의 일터가 있는데요.
버섯 농장이었던 폐건물을 개조해 작업실로 사용 중이랍니다.
-계단이 좀 가파른데. 다락 같은 느낌입니다.
-(해설) 부산의 1세대 문화예술 활동가인 건우 씨는 이곳에서 동료들과 함께 공유기업을 운영 중인데요.
재래시장 상가를 활용해 지역 예술가들에게 창작 공간을 제공하는 일을 해 왔답니다.
하지만 어렵게 일궈 온 소중한 공간을 지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네요.
-(해설) 그렇게 쫓기듯 떠났던 두 사람이 운명처럼 찾아낸 곳이 바로 오륜동이랍니다.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서 참 귀하고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설) 더 이상 밀려나거나 쫓겨날 걱정 없이 자연 속에서 아이들과 소박한 일상을 지켜갈 수 있는 곳.
건우 씨와 나까 씨 가족의 오륜동 드림을 응원해 봅니다.
호숫가 마을을 떠나 산 아래 마을로 왔습니다.
-여기 진짜 높다. 여기가 금정산성의 동문. 여기 높은 데 이렇게 마을이 있나 봐.
-(해설) 해발 415m, 금정산의 허리께인 동문을 통과해 아랫길로 쭉 내려오면
성곽 안 분지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동네, 금정산성마을을 만납니다.
시내 중심에서 자동차로 불과 30여 분 거리일 뿐인데 마을 풍경이 참 느긋하고 정겹죠?
동네를 걷다 보니 막걸리를 좋아하는 제 눈을 사로잡는 곳이 있네요.
-이게... 냄새가 술 냄새가 나는데? 산성 막걸리 박물관, 여기인가 보다.
-여기 맞습니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저 때문에 일부러 나오신 거예요?
-네, 이리로 들어가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해설) 금정산성 막걸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개량 누룩을 쓰지 않고
500년 전 전통 방식 그대로 누룩을 빚어서 만드는 걸로 유명합니다.
게다가 특별한 비결은 바로 이 열정의 족타법.
수십 년 경력의 누룩 밟기 달인들이 하루 평균 500개가 넘는 누룩 반죽을 만든답니다.
-어머니 양말 제가 빌려 신었습니다.
-네, 잘했습니다.
-분홍색 양말이 너무...
-결 따라.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옳지, 잘하시네.
-이렇게, 이렇게.
-(해설) 누룩 밟기는 난생처음인데요. 어떻게, 실력이 좀 괜찮아 보이나요?
이렇게 발로 꾹꾹 밟아 줘야 공기층이 빠져서 누룩이 더 잘 뜬답니다.
-어느 정도 됐거든.
-네.
-됐으면 발끝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야 해.
-이렇게 동그라미를 만들어야 해.
-피자 만드는 것처럼, 끝부분처럼?
-네, 맞아요.
-알겠습니다.
-그래, 돌아.
-오케이, 오케이. 이게 생각보다 해 보니까 쉽지 않은데 어머니는 이거 얼마나 하셨어요?
-저는 오래됐어요. 한 60년 했어요.
-악!
-악!
-(해설) 제 나이보다 오랜 세월 누룩을 밟아 오셨다니, 이만하면 장인, 아니 달인이라고 해야겠죠?
달인의 발에서 빚어진 누룩 반죽은 연탄불을 뗀 발효 방으로 옮겨
은은한 온도에서 일주일간 발효를 시켜 줍니다.
드디어 겉면에 하얗게 누룩 꽃이 피면 1차 완성, 다시 햇볕에서 2, 3일간 바짝 말려 살균하고
창고에서 한 달 이상 건조한 다음 깨끗한 암반수와 섞어 막걸리 원액을 만듭니다.
그리고 마지막 주인공은 바로 이 미생물들.
-처음에 어머님, 누구한테 배우셨어요?
-어머니한테.
-어머니한테?
-네, 우리는 가족, 옛날에는 가족끼리 하니까 큰어머니하고 우리 어머니하고
우리 사촌오빠하고 가족들끼리 이렇게 디뎠어, 옛날에는.
-가족이 다?
-네, 가족이 다.
-(해설) 조선 초기 화전민들이 생계를 위해 빚기 시작한 누룩은 농토가 척박했던
산성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밥벌이 수단이었답니다.
한때는 마을의 모든 집에서 누룩을 빚고 막걸리를 만들어 팔았다는데요.
할머니 역시 13살 댕기 머리 소녀 시절부터 평생 누룩을 밟아 오셨답니다.
-어머니, 손 좀 볼 수 있어요, 손?
-손 얄궂다, 이거 봐라.
-누룩을 매일 만지셔서 이렇게 손이...
-팔십 평생을 했으니 이 손이, 훈장이다.
-진짜 훈장이다, 훈장. 역사다, 역사. 대단하세요. 이거 해서 자식들 교육시키고...
-자식들도 키우고 교육도 시키고 먹고 살고. 딸 여섯에 아들 하나. 가당찮다.
-(해설) 한시도 손에서 물 마를 날이 없었던 고단한 세월.
할머니를 버티게 한 힘은 언제나 누룩이었답니다.
-(해설) 비록 몸은 고되었지만 가족을 건사할 수 있어 감사하고 떳떳했던 일.
할머님과 동료들에게 누룩은 어쩌면 인생 그 자체이자 자랑스러운 삶의 훈장이겠죠?
누룩 방 할머님들의 웃음과 눈물로 익은 진한 막걸리, 그래도 맛은 보고 가야죠.
-감사합니다.
-시원한 거 한 잔 잡숫고 가세요.
-빛깔이 곱네.
-빨리 드세요.
-조금만.
-됐습니다.
-오케이.
-(함께) 위하여.
-산성마을 막걸리를 위하여!
-맛있다.
-진짜 시원하니 맛있죠?
-시원하니 맛있다.
-나 좀 더 먹어야겠다.
-진짜 맛있다.
-좀 더 부어주세요.
-어머님은 리액션이 왜 이렇게 좋으세요? 어머님들 무슨 연기하시는 것 같아요.
-진짜로...
-진짜 맛있다.
-둘이 더 먹읍시다.
-그럴까요? 어머님처럼...
-(해설) 할머님들과 함께해서인지 막걸리 맛이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함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해설)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누룩 방 할머님들의 청춘과 인생이 녹아 있는 막걸리.
저는 오늘 참 귀한 막걸리를 맛보고 갑니다. 이제 산성마을을 떠나 도심 가까이로 내려왔습니다.
길을 따라 쭉 걸어오면 만나는 동네. 흔히 식물원 길이라고 부르는 소정마을입니다.
-그렇구나.
-(해설) 어쩐지 도심 한복판인데도 동네 풍경이 참 고즈넉하죠?
걷다 보니 살짝 출출했는데 마침 분위기 좋은 카페가 보이네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마실까 하고 왔는데. 커피 따뜻한 거?
-따뜻한 아메리카노...
-네, 한 잔만 주세요. 한 잔 주시고, 그런데 빵이 많네요? 종류가 되게 많네?
빵도 좀 맛있는 거 있으면...
-추천해 드릴까요?
-네, 빵도 좀 주세요. 그런데 두 분이 은근히 닮으신 것 같아요.
-엄마랑 딸이에요.
-모녀지간이구나. 여기 이게 눈매랑 콧방울이랑 입가가 판박이시네, 판박이.
따님이 약간 은근히 기분 나빠하시는 것 같은데?
-아니, 아니에요.
-(해설) 사이 좋게 꼭 닮은 두 모녀 사장님은 5년 전 이곳 소정마을에 자리를 잡았답니다.
딸 아라 씨의 필살기는 유기농 호밀과 특별한 발효종으로 만든 건강한 빵.
얘가 저희 집의 자랑입니다.
-(해설) 직접 키운 천연 발효종으로 반죽하고 신선한 재료를 아낌없이 쓰는 것이 이 집 빵 맛의 비결.
처음에는 동네가 너무 한적해 손님이 올까 걱정도 많았지만 지금은 단골이 끊이지를 않는답니다.
왠지 빵 맛이 더 궁금해지는데요?
-감사합니다. 앉으세요, 앉으세요. 커피 잘 마시겠습니다. 아니, 빵이 종류가 많아요.
-많죠?
-두 분이 같이 만드신 거예요?
-네, 엄마가 만든 빵이랑 제가 만든 빵이랑 이렇게 같이...
-따로따로 있어요?
-네.
-실명제로.
-그래요? 이거 가만있어 봐. 어느 쪽이 더 맛있나, 제가 한번 조금씩 맛을 보겠습니다.
이게 소금빵?
-네, 맞아요.
-여기를 뜯는데 바삭하네요.
-네, 안은 촉촉하고.
-진짜 맛있네. 약간 겉바 속촉.
-(해설) 꼭 닮은 두 모녀지만 제빵 스타일만큼은 확실히 다릅니다.
딸은 주로 건강한 호밀빵, 어머니는 달달한 디저트 담당이라네요.
-얼굴도 두 분 다 웃는 상이셔서 싸울 일은 없으실 것 같아.
-초반에는 많이 싸웠어요.
-그래요? 뭐 때문에, 뭐 때문에 싸워요?
-서로 빵을 같이 만들다 보니까 실수죠.
실수가 일어나고 또 크고 사소한 실수도 있고 중대한 실수도 있고 이러다 보니까 서로 예민해져서.
빵 만들 때는 굉장히 예민해지더라고요.
-다른 때보다 오히려 빵 만들 때 더 막...
-(해설) 빵에서만큼은 결코 양보가 없다는 두 모녀. 그래서 생각해 낸 특단의 해결책이 있답니다.
-좁아서...
-이게 지금 기계가... 이 방이 좀 춥거든요, 지금, 약간?
느낌이 약간 저온 숙성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좀 더 강하게 들어요. 아마도 이거 어머님 방?
-아니요, 제 방이요.
-이런, 따님 방이구나.
-(해설) 눈치채셨나요? 해결책은 바로 한 지붕 두 제빵실.
빵을 만드는 재료부터 베이킹 도구, 냉장고, 오븐까지 각자 원하는 스타일로 구비했답니다.
따로 또 같이.
개성 강한 모녀 제빵사의 평화로운 공존법이랍니다.
그런데 사실 아라 씨의 원래 꿈은 제빵 쪽이 아니었답니다.
그러면서 뭐를 해야지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그래서 고민을 좀 많이 하고 이것저것 해보다가.
-(해설) 간절히 꿈꿔왔던 첼리스트의 길을 포기하고 방황하던 시절,
문득 아라 씨를 붙잡았던 기억이 있었다는데요.
바로 어린 시절 어머니가 구워주시던 빵 냄새였답니다.
그래서 아, 내가 빵 만드는 걸 좋아하는 구나, 이렇게.
-(해설) 새로운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딸을 보며 어느새 어머니도 든든한 동지가 되었답니다.
지금은 뭐 안 힘든 일이 어디 있나요? 그래서 지원해 주고 있어요.
저를 이렇게 끌고 이렇게 이끌어줘서 같이 잘 앞으로도 일하고 싶습니다.
-(해설) 좀 돌아가면 어떤가요?
좋아하는 일이 있고 든든한 응원군까지 함께 하니 앞으로 꽃길만 있을 겁니다.
아무렴요. 마을 길을 걷다가 눈에 띄는 재미난 나무를 발견했습니다.
-이거 뭐야? 물고기네, 물고기 나무네. 멋있다.
-(해설) 대체 누가 이런 근사한 작품을 만들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여기 잠깐 지나가다가 물고기 모양이 되어 있는 나무 보고 재밌어서 너무 예뻐서 한번 구경 왔는데.
-그래요?
-여기 작업을 하고 계셨나 봐요?
-네, 작업하고 있습니다.
-저 혹시 구경 좀 해도.
-들어오세요.
-감사합니다.
-어디서 많이 뵌 분인데?
-(해설) 알고 보니 유명한 작가님의 공방이랍니다.
1999년부터 목조형 작품을 만들어온 이용기 작가는 올해로 25년째 목공예 한 길만 걸어온 공예 장인이랍니다.
오랜 세월 나무를 다듬어온 장인의 작업실이라서일까요? 구석구석 연륜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이거 뭐 이렇게 많아요? 뭐예요, 이게 다?
-이게 대패들이에요, 목공 대패들.
-이게 다 나무를 이렇게 다 가는, 이제 다.
-그렇죠, 그렇죠.
-(해설) 여러분, 대패가 이렇게 다양한 줄 알고 계셨나요?
100여 종이 넘는 이 대패들은 모두 작가님이 손수 만든 것들이랍니다.
-기계가 엄청 많아요.
-이 기계들이 아마 내 나이보다도 많은 기계들이에요. 오래됐어요.
-오래된 기계들이에요?
멋있다.
-이 기계 같은 경우에는 한 7, 80년 가까이 되는.
-저기 녹슨 거 봐.
-그렇죠.
-너무 재밌어요.
저기 옆에 영커피라고 스티커 붙어 있어.
-맞아요.
-(해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작가님은 유년 시절부터 그렇게 나무가 좋았답니다.
남달리 손재주도 좋아 장난감 대신 나무를 깎으며 놀았고
그렇게 나무의 따뜻함에 반해 평생 나무와 함께하기로 결심했답니다.
-(해설) 사각사각 나무 깎는 소리가 참 편안하죠? 저도 목공이 로망이었는데 한 수 배워봐야겠습니다.
-이 끝이 날이 있어서 이거를 각을 치면서 쫙쫙 당깁니다.
-이렇게 당겨요? 세게 당겨야 하나요?
-살살 그냥 살짝. 그렇죠, 그렇죠, 그렇죠. 끝까지 쭉. 그렇죠, 그렇죠, 그렇죠.
-(해설) 이 조그마한 대패는 곡면을 깎을 때 쓰는 남경대패인데요.
-대패로 움직이면서.
-재밌다.
-재밌어요, 이게.
-재밌네.
-이 대패 소리가 있잖아요, 나무 깎는 소리가. 예쁘지 않아요?
-그러네요.
-아름다워요.
-뭔가 슥슥.
-그렇죠.
-(해설) 작업실 위층에는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도 있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 집사람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사모님이시구나.
-제가 아는 그분이네요.
-사모님이 아는 그분이 접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두 분이 매일 같이 출근하시는 거예요?
-네, 그렇죠.
-밑층에서 일당백, 제가 여기서 위로 일당백.
-일당백.
-(해설) 큐레이팅부터 사무 업무까지 혼자서 척척 해내는 일당백 아내이자 든든한 동반자이시랍니다.
-이용기 작가님 같은 경우에는 우리나라 특수목들, 느티나무나 회화나무나,
우리나라의 사계절을 담아서 이제 결이 굉장히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표현할 수 있는 이런 나무를 소재로 작업을 많이 하고요.
-(해설) 한국적인 소재와 주제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면서도 가구와 생활 소품처럼
실용적인 작품까지 골고루 포용하는 것이 작가님의 철학이랍니다.
-여기서는 몇 년 동안 하셨어요? 건물은 그렇게 오래돼 보이진 않던데.
-저희가 여기에 정착을 한 지가 거의 15년 전이에요.
-벌써 15년 되셨어요?
-공방을 네 번째 이사를 다니면서 정착한 곳이 여기거든요.
-(해설) 마음 편히 작업할 공간이 절실했던 작가님에게 소정마을은 최적의 장소였답니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널찍한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도 더 왕성하게 할 수 있었다네요.
큰 원목 자재나 대형 작품들을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언제나 고민이었는데
소정마을에 와서야 이렇게 멋진 창고도 만들 수 있었답니다.
작품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목자재를 구해서 보관하고 운반하는 일까지
하나하나 작가님의 손을 거쳐야 하다 보니 곁에서 돕는 아내 역시 마음 졸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요즘 이제 최근 한 2, 3년이 제가 좀 많이 힘들었던 것 같고요.
그때는 코로나가 끝났는데 경기가 회복되지도 않았고 체력은 떨어지고.
대상포진으로 고생도 했었고요.
그때는, 그때는 정말 지금 생각해도 너무 힘들었고요.
-(해설) 몸과 영혼을 온전히 바쳐야 비로소 완성되는 예술의 길.
굵어진 손마디는 그 모든 것을 내어준 뒤에 얻은 훈장이겠죠.
-아까 선생님 저 손을 좀 봤는데 거의 지문이 닳아서 많이 희미해질 정도로 작업을 많이 하셨나 봐요?
-지문 때문에 늘 고생을 좀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손 보시면 사모님은 어떤 생각 드세요? 좀 어떠세요?
-소심한 저 같은 사람은 볼 때마다 너무 안쓰럽고요.
특히 이제 저희 집의 작은 딸이 어릴 때부터 아빠가 귀가를 하게 되면 딱 보면서 아빠, 검사, 하거든요.
그러면 손을 보고 얼굴을 보고 막 몸을 훑어요.
-다친 데 있나, 없나?
-네, 잘하셨다고 이렇게 하고.
혹시라도 상처가 보이면 내가 못 살아, 이러면서 약을 가져와서 발라주고.
-발라주시고.
-(해설) 상처와 굳은살을 숙명처럼 달고 살아야 하는 목조형 작가의 삶.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은 그 상처와 굳은살에 언제나 말랑말랑한 새살을 돋게 하는 힘이자 삶의 원천이랍니다.
그러고 보니 두 분 아낌없이 서로에게 그늘이 되어 주는 든든한 나무를 닮았네요.
말 한마디도 따뜻하게 이렇게 격려해 주는 그런 말 한마디가 저한테는 큰 힘이 됐으니까요.
-지금도 예뻐요. 싫어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볼 때마다 설레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고.
말 한마디 하면 다 챙겨주고 할 때마다 사랑스럽죠, 저에게는.
-(해설) 나무의 속살처럼 따뜻하고 향기로운 두 분의 모습을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즐겁게 마실을 다니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기 시작합니다.
한적한 마을을 떠나 복잡한 도시의 불빛 속을 걸어봅니다.
-음악 소리 들리는 것 같은데?
-(해설) 시원한 바람에 실려 온 음악 소리를 따라가 봤습니다. 숨 가쁘게 달려온 하루의 끝.
거리를 물들인 아름다운 선율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쉼표를 찍어봅니다.
오늘도 참 따뜻한 마실이었습니다.
-다시마 냄새가 엄청 진하네. 바다 냄새.
-힘을 더 줘요.
-더 줘.
-더 당겨, 더 당겨, 더 당겨.
-더 당겨.
-바깥으로.
-바깥으로 넓혀.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잡았다.
-잡았어.
-잡았어.
-늴리리야 늴리리~ 늴리리 맘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