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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듯, 도시기행 마실가요 - 보물처럼 귀하다, 경상남도 남해
등록일 : 2024-09-24 13:37:15.0
조회수 : 1391
-(해설) 꿈결인 양 겹겹이 솟은 수많은 섬들과 시원하게 뻗은 남해 바다.
이 모든 것을 가장 짜릿하게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이렇게 앉아 있으니까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들어요. 너무 좋다.
바람이 시원하게 부니까 진짜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그냥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아.
-(해설) 하늘과 바다 사이 그 아찔한 간극 때문일까요?
평소보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니겠죠?
생명력 넘치는 자연과 설렘 가득한 이국적 풍광.
그리고 80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어우러진 신비의 섬 남해는 그 별명도 보물섬이랍니다.
-저 멀리 해무도 쫙 깔려 있고 섬들이 차자작.
그냥 아주 옅게 보이는 것, 짙게 보이는 섬들이 이렇게 같이 있으니까 한 폭의 그림 같아.
여기가 옛날 선조들은 일점선도라고 해서 한 점 신선의 섬이다, 이렇게 표현을 했대요.
그래서 그런지 정말 뭔가 하나하나의 작은 섬들을 다 품어내고 있는 그런 곳 같아요.
오늘은 바로 이 일점선도, 남해. 남해를 한번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랑 한번 떠나보시죠. 아주 기대됩니다.
-(해설) 오늘 첫 마실은 남해 속 작은 유럽, 독일마을에서 시작합니다.
마치 유럽의 어느 마을을 통째로 옮겨 놓은 듯한 이국적인 풍경에 벌써 마음이 설렙니다.
남해 독일마을은 1960년대 산업역군으로 독일에 파견된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을 위해 국내에 조성된 마을인데요.
지금은 아름다운 동네 풍경이 입소문을 타면서 남해의 대표 관광 명소가 됐답니다.
특히 매년 10월 열리는 독일마을 맥주 축제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행사라네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 여행 오셨어요?
-네.
-독일마을 어떠세요? 처음 오셨어요?
-아니요, 저희 세 번째요.
-여기.
-청주에서 왔어요.
-청주에서. 세 번째예요, 벌써? 독일마을 오니까 좋아요?
-네.
-뭐가 그렇게 좋아요?
-그거야 집도 예쁘고 맛있는 독일 음식들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그냥 준비도 안 했는데 준비한 것처럼 말 잘하네.
-(해설) 반가운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마실을 떠나봅니다.
-이곳은 성 같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화단 정리하시는 거세요?
-네, 화단 정리합니다.
-여기 동네 집들이 너무 예뻐요.
-그렇죠? 독일에서 인부들이 와서.
-진짜?
-인부들이 독일에서 가져와서 5년 걸렸습니다.
-이게 직접 지으셔서 이렇게 집이 달라 보이는구나. 일반 집이랑 좀.
-다르죠?
-네.
-독일식이에요. 건축양식이 독일식.
-(해설) 이런 집에는 누가 살까 궁금했는데 운 좋게도 초대를 받았습니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세상에.
-(해설) 현관문 하나 열고 들어왔을 뿐인데 마치 독일의 어느 집 거실로 순간 이동을 한 것 같죠?
-집이 엄청 넓고 겉에서 봤을 때는 엄청 거대한 성처럼 보였는데
들어오니까 오히려 아담하고 아주 너무 딱 좋은데요? 이거는 뭐예요?
-여기서 식사하는 거예요.
-여기서 식사하시는 거예요?
-식사, 사람들이 많이 오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저기서 하는데.
-손님들 오시면 여기서. 여기 기가 막히네, 뷰가.
-열어 보세요.
-(해설) 이렇게 멋진 전망을 매일같이 볼 수 있다니. 어르신, 정말 부럽습니다.
그런데 찬찬히 둘러보니 작은 소품 하나하나까지 예사롭지가 않은데요.
모두 어르신이 독일에서 직접 공수해 온 것들이랍니다.
-책장도.
-책장이고. 저기 괴테 쉴러 책들도. 저희 딸이고요. 딸.
-배우 사진 아니에요?
-아니요, 딸이에요.
-따님이라고요?
-네.
-따님이 너무 미인이시다.
-여기는 아들이고. 아들 결혼해서.
-파독 간호사 1세대로 처음 독일 땅을 밟았던 어르신은 그곳에서 독일인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일구셨답니다.
그러다 20년 전 독일마을에 집을 짓고 지금은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살고 있다네요.
-들어보니까 너무 궁금해졌는데 남편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남편분은 환자였어요, 그냥. 병원에서.
-환자. 이 남자가 내 남자 같다는 그런 게 있었어요?
-아니요. 저는 전혀 독일 사람하고 결혼한다는 건 생각도 못 했죠.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네.
-독일 남자는 그냥 남자도 보이지도 않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남편은 쾰른에 살고 저는 뤼덴샤이트라는 곳에 살았는데 100km 정도 돼요.
그런데 매일, 퇴원해서 매일 방문을 오고.
-지금 우리로 치면 서울, 대전 정도 거리 되는데 그 거리를 매일?
-(해설) 이런 멋진 신랑감의 열렬한 구애라면 무조건 예스죠.
남편의 사랑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답니다.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아내를 위해 한국에서 장인, 장모님을 모셔와 1년 동안 함께 살기도 했다네요.
-어머니, 아버지 참 성공했죠. 성공했다고 저 한국에서 다 난리예요.
생전 비행기도 안 타보고 그래서. 재미있었어요, 이게.
여행 가고, 알프스도 여행 가고. 여행 많이 했어요.
-이게 그 사진이에요?
-네, 66년 때.
-40년 전 독일 땅에 첫 발을 디딜 때의 모습.
-그때 내가 40년 됐을 때 그런 거예요.
-이게. 여기 제일 고우신 분?
-네.
-정든 고향을 떠난 지 어언 40년이 되었네.
부모, 형제, 정든 벗들과 이별한 지 40년.
-(해설) 전남 순천에서 7남매 중 넷째 딸로 태어난 어르신은 그 시절 많은
파독 간호사들이 그랬듯 어려운 집안을 위해 꽃다운 나이에 독일행을 결심했답니다.
-부모, 형제들은 반대는 했지만 그래도 제가 동생들 공부시키고 그러기 위해서 제가 가게 됐습니다.
그냥 무조건 내려서 저 국기를 흔들면서 그래도 조국 생각을 하면서 내렸습니다.
-(해설) 그렇게 딱 3년만 버텨보자며 시작했던 일.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어쩔 수 없는 게 있었답니다.
-향수병에 걸려 눈물로 밤을 지새운 세월.
어느새 환자는 내 부모처럼 느껴졌고 이제는 그 인내의 시간이 열매가 되었다.
울었지, 맨 처음에 가서. 그때 향수병이 있어서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어요.
너무 밥도 못 먹고 울고 그래서 빼빼했어. 눈물 많이 흘렸지.
그래서 저녁때는 동료들이랑 모여서 밥을 해서 먹고 노래도 부르고 저는 노래 부를 때,
그때가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향수병이 생기더라고요. 그게, 향수병이 문제였지.
-(해설) 하지만 결혼과 함께 가족이 생기고 독일 상황에도 적응하면서
다짐했던 3년은 어느덧 40년을 훌쩍 넘겼답니다.
평생 심장외과 간호사로 일한 어르신은 우선의 이름을 건
치료센터까지 운영할 만큼 열정적으로 사셨다네요.
-정말 내 모든 것을 지금, 지나간 일을 쭉 이렇게 보면 내가 그 일을 어떻게 했을까.
참 신기하다. 그래도 잘했다, 그렇게 생각이 들어요. 마인 트라움 하우스라고 생겼어요, 이 집이.
트라움이 뭐냐? 꿈, 꿈의 집에. 꿈의 집이라고 제가 생각을 하고 지었습니다.
-(해설)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와 이제는 제2의 고향이 된 독일을 추억하며 손수 지어 올린 꿈의 집.
어르신에게 남해 독일마을은 아름다운 인생의 종착역이랍니다.
독일마을을 내려와 한적한 어촌마을로 마실을 왔습니다.
남해 삼동면 바다 남쪽 끝에 위치한 대지포는 그 옛날 마을 한가운데
큰 연못이 있어 큰못개라고도 불렸답니다.
천천히 동네를 걷다 보니 마을 정자에 반가운 분들이 계시네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머님들. 여기 나오셔서 뭐 하고 계셨어요?
-카메라를 이렇게 많이 가져와?
-우리가 이렇게 놀고 하는...
-어디서 많이 본 얼굴 같아요?
-네.
-남해 사람입니까?
-네? 남해 사람은 아닌데 놀러 왔어요.
-시원해요.
-여기 앉아보니까 어머님들이 여기 왜 앉아 계시는지 제가 알겠네.
시원하네요. 여기 바람도 시원하게 불고.
-오늘은 바람이 별로 안 불어서.
-바람 불면 시원해.
-여기, 어머님, 여기 사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66.
-60.
-66년이다, 올해 내가.
-66년.
-20살 먹고 여기 왔거든?
-20살. 어머님은 얼마나 되셨어요?
-얼추 비슷하게 있었지, 뭐.
-처음에 여기 시집오셨을 때 동네가 어땠어요?
-그때는 사람들 좀 많이 살고.
-그때는 많이 살았지.
-그때는 사람이 많이 살았어요.
-많이 살고.
-다 나가버리고 빈집이 많아, 이제.
-빈집이 많고.
-(해설) 한때는 동네가 북적북적했다는데 요즘은 갈수록 인구가 줄어서
마을에도 빈집이 하나둘 늘고 있답니다.
-우리 어머님들 저기 진지는 드셨어요?
-진지 드셨어요?
-식사 안 하셨어요?
-네, 여기 마을 좀 돌아다니다 여기 근처에 먹을 만한 데 있으면 좀 찾아보려고요.
-여기 먹을 데도 없어요.
-없어요?
-여기는 식당도 없고 우리가 아직 내가 밥을 안 먹었으니까 가서
그러면 우리 집에 가서 밥을 한 그릇 먹고 가세요, 같이.
우리 며느리가 밥 준비도 해 놓고 했을 테니까 한번 같이 가서 식사를 합시다.
-진짜요?
-며느님이랑 같이 사세요?
-요즘 세상에, 구경 가봐도 돼요?
-네.
-그러면 실례를 무릅쓰고 한번 찾아뵐게요. 어머님들 좋은 시간 되시고 건강하세요.
-(해설) 마침 출출했는데 감사하게도 식사 초대를 받았네요.
-저기 있네. 아가. 여기 손님 모시고 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강아지.
-용복이도 좋다고 나왔네.
-아이고, 좋아.
-안녕하세요?
-여기 뭐 하고 계세요?
-저희...
-잡초 매고.
-저희 수박 따려고.
-수박.
-집에서 키운 건데 다 익어서.
-잠깐만. 수박이 왜 수박밭이 아니고 돌 위에서 이렇게 수박이. 돌이 엄청 크네요?
-네, 엄청 큽니다.
-집 앞에 이렇게 큰 돌이 있어요?
-그러니까 대지포, 큰못개. 이게 못이 가라앉은 데라 집에 이렇게 큰 돌이 많아요.
이 돌은 여기 우리 집 전체가 다 돌이 있어요.
-(해설) 크기가 어마어마하죠?
대지포마을에서는 집 마당이나 동네 길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랍니다.
-이렇게 돌 위에 수박이 있는 건 저는 태어나서 처음 보네.
-(해설) 큰 바위를 타고 자라서 그런지 아주 생긴 것도 야무집니다.
-뭐야.
-수박이 실하다.
-엄청 무겁네요.
-(해설) 그나저나 주방에 온 식구가 총출동하셨네요.
드시던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놔주시면 되는데 죄송해서 어쩌죠?
-아니, 아버님. 이렇게 잘 차려놓고 드신다고요, 평소에?
-매일 그렇진 않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문어숙회인데.
-문어숙회.
-우리 대지포 앞바다에서 통발로 잡아서.
-통발로 잡은. 이거는 뭐예요?
-멸치, 이건 바닷물에 밀려 들어왔어요. 선창가에 그거 주워서 한 겁니다.
-진짜? 그냥 알아서 들어오는 거예요?
-네, 지가 알아서.
-제가 설명을 듣다가 도저히 침이 계속 고여서 더 못 참겠어요.
-어서 드셔보세요.
-아버님, 먼저 한술 뜨시죠. 잘 먹겠습니다.
-(해설) 일단 남해 특미, 멸치 쌈부터 맛을 봐야죠. 멸치 쌈은 처음 먹어봤는데요.
딱 제 취향입니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계속 나오는데요?
-참기름도 제가 직접 농사지은 참기름입니다. 국내산 참기름.
-아까 오면서 보니까 깨가 엄청 많이 심겨 있더라고요.
그 깨로 이렇게 참기름 하신 거예요?
-네, 참기름 하고 깨소금도 하고.
-이 집안의 분위기가 여기가 그냥 깨가 쏟아지네.
-우리 아기가 복덩이라 그래요.
-우리 며느님.
-작년 4월에 결혼했어요.
-4월 19일에.
-진짜, 진짜 신혼부부시네. 신기하다. 어떻게 두 분은 만나시게 되셨어요?
-저희가 3년 전에 코로나 때 남해에서 한 달 살기 하는 프로그램을 인터넷으로 광고를 봐서.
-한 달 살기로 시작해서 한 평생 살기로.
-저희 한 달 살기 할 때 캐치 프레이징이 됐습니다. 지금 방금 말씀하신 게.
-그래요?
-한 달 살러 왔다가 평생 살다 간다.
-진짜 실제로 이렇게 직접.
-기획자로서 성공한 거죠, 저도.
-그러네요.
-(해설)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을 퇴사한 뒤 남해로 내려온 금실 씨는 이곳에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남편 성훈 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답니다.
-쉬고 싶어서 내려왔던 건데 뭔가 느낌이 좋았어요.
여기에 있으면 내가 할 일이 있을 것만 같고 그냥 내가 여기에
온전히 나로서 있을 수 있다, 그런 느낌이 좀 많이 강했어요.
-(해설) 어르신이 대부분인 이 마을에서 금실 씨와 성훈 씨 부부는 유일한 젊은이들이랍니다.
덕분에 어딜 가나 동네 어르신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네요.
-어머니, 안녕하세요?
-안녕!
-언제까지 계실 거예요.
-나는 언제까지 이런 거 없다, 더워서 뭐.
-알겠어요. 그러면 이따가, 이따가 복숭아 좀 가지고 올게요. 이따 봬요.
-잘 갔다 와. 바이 바이.
-(해설) 마을에서 가장 젊은 새댁답게 금실 씨의 일과도 아주 바쁘게 흘러간답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자전거를 타고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부지런히 오간다네요.
특히 올해부터는 금실 씨와 성훈 씨가 함께 준비한 야심 찬 프로젝트가 있답니다.
-저희 동네에 오래된 민박집이 하나 있어서 운영이 잘 안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저랑 남편이 한번 인수를 해서 좀 바꿔서 운영을 해보고자.
각박한 도시를 떠나 남해에서 행복을 발견한 금실 씨처럼 대지포마을을 찾는
그 누군가에게도 이곳이 특별한 의미가 되기를 바란답니다.
그런데 금실 씨가 남해에서 찾은 보물은 남편 말고도 또 있다는데요.
-어머니! 어머니!
-어서 와.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고생했어요. 밥 다 돼 간다, 앉아라.
-(해설) 바로 딸처럼 아껴주시는 시어머님이랍니다.
-일부러 빠트린 거 아닌데, 어떡해.
-먹으려고 빨리 빼니 자꾸 빠트리지.
-어떡해.
-든든하죠. 그냥 며느리라는 소리도 아까워서 못 하고 그냥 아가, 우리 아기, 그럽니다.
내 눈에는 아기. 딸도 아까워.
-큰일 났네, 큰일 났어. 응애, 해야겠네.
-딸같이 예뻐요. 그리고 자기가 잘하고.
요즘 젊은 사람들 이렇게 시골 와서 생활 안 하려고 하잖아요.
그래도 와서 같이 열심히 노력하고 막 하려고 노력하는 게 너무 예뻐서.
그리고 안쓰럽고.
-(해설) 세상에, 이렇게 훈훈한 고부지간 보셨나요? 모녀 사이보다 더 정답네요.
-눈물 날 것 같아. 진짜 눈물 날 것 같아, 어떡하지? 그냥...
-좋은 현상이야.
-처음 뵀을 때부터 되게 예쁘다, 예쁘다 하면서 많이 챙겨주셨거든요.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잘 봐주셔서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황송하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을 잘 못 하겠어요.
많이, 많이 감사합니다.
-(해설) 마음씨도 고운 금실 씨와 성훈 씨. 앞으로 두 분이 꼭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일까요?
-대지포마을은 진짜 딱 도로를 가운데 두고 이제 윗마을, 논과 밭이 있는
윗마을 그다음 아래에 바닷가를 볼 수 있는 아랫마을이 있는데.
개구리 소리도 들리고 귀뚜라미 소리도 들리고, 그런 소리를 들어오다가 딱 이제
아랫마을 도로 넘어가면서부터 파도 소리가 멀리서 들리기 시작해요.
-이 마을이 얼마나 예쁜지를 좀 보여주고 저희 동네에 빈집이 좀 많거든요.
그래서 그런 빈집에 이사를 좀 많이 왔으면 좋겠다?
이사를 와서 저희랑 같이 친구가 되고.
-그냥 정말로 슬리퍼 질질 끌고 가서 편하게 차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는
그런 친구들이 이제 마을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해설) 두 분 다음에는 동네 친구들과 편하게 둘러앉아서 밥 한 끼 꼭 같이했으면 좋겠네요.
바닷가 마을을 떠나 읍내로 왔습니다. 역시 읍내는 이렇게 사람들이 북적북적해야 제맛이죠.
그런데 오래된 읍내를 걷다 보니 귀한 구경도 하게 되네요?
-이거. 이거 거목이 엄청난 거목이네. 450년. 450년이면 나의 몇 배를 사신 거야?
아홉 배를 사셨네. 마을 잘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 저기 만석, 만석장 모텔이 있던데.
-(해설) 읍내 풍경이 유난히 친근하다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네요.
그런데 여기에도 독특한 간판이 보이네요?
-여기 이름이 재밌다.
-(해설) 궁금한데 한번 들어가 볼까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 밖에서 보니까 이름이, 간판이 예뻐서. 마파람?
-마파람이 남풍이라는 뜻이라서 제가 남해에 있다 보니까 저렇게 지었어요.
-남풍이라는 뜻이구나.
여기 그런데 사진들이 좀 독특한 것 같아요.
저거는 저기 할아버님 사진 멋지게 찍어주셨네?
-네, 저건 남해 어르신인데 제가 남해에 있는 어르신들 이렇게
집 앞에서 찍고 영정사진으로 봉사하는 걸 하고 있어요.
-(해설) 서울에서 영상 관련 일을 했던 양희수 작가는 6년 전
고향인 남해로 내려와 읍내에 사진관을 열었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영정사진을 찍은 건 아니었다네요.
-저런 영정사진을 대신 찍어주시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시게 되신 거예요?
-그건 처음에는 무작정 남해에서 사진을 찍고 싶은데 저도 인물 사진도 찍어보고 해야 하니까,
그런데 인물이 노인들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찍었던 건데.
-젊은 사람들은 다 이제 도시로 떠났으니까.
-그렇죠. 그렇게 찍다가 제가 좀 희귀병을 발견하게 되고 뇌에 큰 수술을 했거든요.
-(해설) 어느 날 갑자기 걸음걸이가 이상해지고 몸 한쪽에 감각이 사라졌던 이유도 바로 그 병 때문이었답니다.
-(해설) 힘든 수술 끝에 어렵게 건강을 되찾은 양희수 작가는 앞으로 남은 삶은 선물이라 생각했답니다.
무료로 영정 사진 봉사를 시작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라네요.
-어머니,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이 안 웃고 있습니다. 진짜 웃어야 합니다.
거짓말입니다, 그거는. 얼굴 조금만 숙이고. 하나, 둘, 셋. 고사리~
살짝만 미소 짓고 하나, 둘.
-(해설) 어르신, 이만하면 프로모델인데요?
-기분 참 좋습니다, 오늘. 사진 찍은 지가 지금 참 오래, 몇 년 됐나 모르겠다.
약간 열셋, 한 10년도 넘었지 싶은데. 보니까 잘생기고 참 좋네요.
-(해설) 요즘에는 영정 사진뿐만 아니라 집을 방문해서 출장 가족사진도 찍어주신답니다.
-오늘 한 분씩 찍고 두 분 같이, 같이 하나 찍고 해서 액자 만들어서 보내드릴게요.
-그래, 하나씩만...
-깍지 끼고.
-깍지 끼라고?
-깍지 끼고. 사진 찍을 때는 친한 척해야 합니다. 아버지, 몸 이쪽으로 조금만, 어머니 쪽으로 돌릴까요?
조금만 마주 보는 것처럼 살짝만 돌리고. 살짝만 웃으면서 하나, 둘. 마주 본 채로 소고기, 하나, 둘, 셋.
-(함께) 소고기~
-한 번 더. 메르치, 하나, 둘, 셋. 메르치~ 흐흐흐 하면서, 흐흐흐.
-(해설) 촬영이 어색한 어르신들을 위해서 즉석에서 확인은 필수.
-아범은 예쁘게 나왔네.
-사진이 많아서 제가 잘 웃은 거로 골라서.
-기분이 좋죠. 이렇게 늙은이들도 와서 반겨주는구나 하고 기분이 좋아요.
-(해설) 가끔 힘들다가도 좋아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피로가 싹 사라진답니다.
-(해설) 이렇게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어르신들이 어느덧 팔백여 분에 이른다네요.
-저렇게 사진 찍으면서 좀 특별히 기억에 남으시는 분도 있나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일단 저 할아버지가 기억에 남아서 걸어놓은 거거든요.
-이분이, 이분은 어떻게 해서.
-저 할아버지는 제가 봉사 거의 초창기 때 그냥 아는 형이랑 지나가다가 가만히 앉아계시는 거예요.
아무 말도 안 하시고 그냥 가만히 있더라고요.
그래서 사진 찍어도 되겠냐고 여쭤보니까 그냥 고개만 끄덕이시길래 그냥 찍고, 그냥 갔어요.
-(해설) 어쩌면 어르신도 작가님의 사진을 기다리고 계셨던 거 아니었을까요?
-사진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고.
아프지 말고 오늘처럼 그냥 제가 찍고 싶은 사진 찍고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해설) 처음 본 작가님의 사진이 유난히 따뜻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작가님, 건강한 모습으로 좋은 사진 오래오래 찍어 주세요.
-(해설) 이번에는 좀 특별한 곳으로 마실을 왔습니다. 어딘지 궁금하시죠?
-여기인가? 금해정.
바다 보면서 활 쏠 수 있는 데가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가 그 이름 같은데, 금해정.
-(해설) 과연 여기가 제가 찾던 그곳이 맞을까요?
-안녕하세요. 여기 활 쏘는 곳이라고 해서 구경 왔는데.
-잘 오셨습니다.
-여기 바다 보이면서 활 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거든요.
-잘 오셨습니다.
-여기예요?
-네, 남해 바다 보이잖아요, 저기 바다.
-그렇네, 이렇게 착.
-(해설) 이곳이 바로 시원한 남해 바다와 울창한 숲을 벗 삼아
활쏘기를 즐길 수 있는 남해 최고의 활터랍니다.
전국에서도 경관이 좋기로 손꼽힌다네요.
-저게 맞으면 불이 들어오나요?
-네, 맞으면.
-엄청 먼데.
-거리가 145m이기 때문에 과녁 내에만 맞히면 관중이에요.
-(해설) 사거리가 무려 양궁의 2배가 넘다 보니 전통 활쏘기에서는
과녁에 맞기만 하면 점수로 인정한답니다. 여기까지 온 이상, 한 수 배우고 가야겠죠?
-쏠 수 있어요?
-그럼요.
-쏴 볼 수 있어요?
-그러면, 활을 쏘시려면 대한민국에서 활을 제일 잘 쏘시는 분한테 배워야 할 거 아닙니까?
그분한테 인사를 깍듯이 해야지.
-그래요, 누구, 누구입니까?
-여기에 있는 우리 박해동 명궁님인데 대한민국에서 9단. 9단이 최고 단이 높아요.
-활 쏘는 것도 단수가 있어요?
-네, 다 있습니다.
-9단이 마지막이야, 9단이.
-그다음에 대한민국에서 여덟 번째로 따신 분이에요.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큰절해야 하는데.
-반갑습니다.
-(해설) 일단, 자세부터 명궁의 포스가 느껴지죠.
박해동 명궁은 서부 경남 최초이자 국내에서는 여덟 번째로 국궁 최고의 경지에 오른 분이시랍니다.
명궁님의 특별 가르침에 힘입어 드디어 사대로 진출해 봤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하고.
-어깨너비, 어깨너비 정도로.
-잡고.
-높이가 여기 상단, 상단, 과녁 상단.
-저 과녁의 상단.
-좌측 상단.
-이렇게, 이렇게 날아가야 하니까? 상단 하고.
-꽉 잡고.
-꽉 잡고.
-준비됐습니까? 할 수 있겠어요?
-떨리는데요.
-떨리죠.
-더 높이 드세요.
-이렇게 해서 4번. 갈까요?
-그렇지. 멀리 가네.
-과녁 옆으로 갔는데?
-잘하면 맞겠다.
-과녁 옆으로.
-재미있네.
-다음에 활터에서 우리 만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요, 이게.
-(해설) 활쏘기는 난생 처음인데 은근히 승부욕이 생기더라고요.
-쭉 당긴 다음에.
-비슷하게 갔어.
-화살 봤어요, 어디로 갔는지?
-네, 지금 3번과 4번 사이로 날아간 것 같아요.
-그래요?
-이제 조금 영점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이게 또 명궁님께서 잘한다고 칭찬해 주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시니까 자신감이 생겨서.
그런데 방금 활이 여기를 살짝 스쳤는데 아프네.
-여기 빨갛죠.
-(해설) 영광의 상처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데요?
-재미있죠?
-스트레스가 확 풀리네.
-재미있으니까 삼십몇 년을 지금까지 하고 안 계시겠습니까?
-이 활이 5000년 넘게 쏜, 우리 민족이 쏜 활입니다.
-제가 이거 마지막 한 번만 더 쏴보겠습니다.
-(해설) 꼭 한 번, 명중시켜 보고 싶더라고요.
-그대로.
-아깝다.
-(해설) 마음만은 백발백중인데, 생각만큼 쉽지 않네요.
사실 초보자들은 언감생심, 과녁을 맞히긴커녕, 화살이 시위를 떠나게 만드는 것조차 힘들답니다.
-2번.
-(해설) 이토록 멀고도 험한 궁도의 길을 명궁님은 무려 30년 넘게 걸어오셨다네요.
-여기가 보니까 뒤에 바다도 있고 경치가 기가 막혀요.
여기서 활 쏘고 있으면 진짜 근심, 걱정이 싹 사라지겠어요.
제가 저기 아까 얼핏 들었어요. 우리 선생님께서 우리 명궁님 기록이 있으시다고.
-대한민국 궁도에 길이 남을 만한 기록들을 많이 가지고 계시죠.
한 번 쏠 때 5발을, 화살 5발을 갖고 쏘는데 그 5발을 다 맞히면 몰기라고 그럽니다, 몰기.
-몰기. 몰아서 맞혔다.
-그 몰기를 17연몰을 했습니다.
-17번.
-17번 몰기를 하고 그리고 4중을 하고 그러면 89발을 맞혔다는 거죠.
마지막 한 발이 딱 짧아서, 조금 짧아서 90발을 못 채우셨어.
왜 그러셨냐고 내가 물어보니까 배가 고파서 열심히 하니까 도저히 배가 고파서
못 쏘겠다고 해서 힘이 빠져서 자기가 그렇게 됐돼요.
-내가 배가 고프지만 않았다면 밤새 이 과녁을 뚫었을 것이다.
-지금도 배고프신 표정이신데.
-(해설)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기록 달성에 걸린 시간만도 무려 8시간.
박해동 명궁이 세운 17연속 몰기는 지금도 깨어지지 않는 대기록이랍니다.
이뿐인가요?
나가는 대회마다 상을 휩쓸어 온 박해동 명궁은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명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 활을, 활시위를 당기실 생각을 하시게 되셨어요?
-제가 건강이 좀 안 좋았어요.
그때 당시에 촌에서 없는 돈에 병원비만 해도 한 3000만 원 넘게 이렇게 쓰고 다녀도 병명이 안 나와요, 병명이.
그래서 굿도 해 보고 좋다는 하는 약도 먹어보고 이렇게 해도 아무 병명도 없어요.
-몸은 안 좋은데 병명 못 찾을 때 진짜 답답하잖아요.
-답답하죠. 절에도 가보고 교회도 가보고 차도가 없었어요.
그런데 활을 쏘고 나서 이제 나도 모르게 1년 지나니까 조금 나아지는 느낌이 오고 2년 지나니까 조금 나아지는.
그래서 쭉 빠지게 됐죠.
-(해설) 32살 무렵 싱크대 공장을 운영하며 남 부러울 것 없이 살았던 박해동 명궁.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지병으로 운명처럼 궁도에 눈을 뜨게 되면서 인생이 180도 바뀌었답니다.
그래서 내가 활하고 화살을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먹고살려고 그렇게 하게 됐어요.
-(해설) 활을 놓고 살 수 없다면 차라리 활로 먹고살아보리라 시작한 일.
그런데 막상 활을 만들기 시작하자 또 다른 인생의 문이 열렸답니다.
-이 활이 이렇게 반대로 돼서 활이 돼요.
이게 우리 보기에는 이렇게 돼 있지만 이렇게 펴져서 돌아와서 이런 모양이 나옵니다, 이런 모양이.
-(해설) 처음에는 초보자용 개량 활을 생산했지만 지금은 전통 수제활인 각궁까지 제작하고 있답니다.
-이렇게 전부 깎아서 만들었어요. 이렇게 봐서 세밀하게 활의 모양을 만들 때는 다 깎아요.
또 우리나라의 최고 명인한테 배웠으니까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지금까지 쭉 30년 동안 해왔고 활은 내 인생의 전부다. 그렇게 생각해요.
활은 그냥 운명처럼 내가 활을 그냥 쏘게 돼요.
나 자신도 모르게 그냥 활을 쏘게 되고 앞으로도 계속 쏠 것이고 평생 쏠 것입니다.
-(해설) 때로는 생각지도 못했던 길에서 운명을 만나기도 하는 것이 인생.
시위를 떠나 떳떳하게 날아가는 저 화살처럼 당당히 바람과
맞설 각오만 있다면 우리 인생도 언제나 명중 아닐까요?
보물처럼 귀하고 보석처럼 빛나는 사람들과 함께한 남해 마실.
오늘도 참 행복했습니다.
-주로 계급장, 명찰. 그다음에 가슴에 마크. 어림잡아서 1만 명 이상은 안 했겠나 싶어요.
-(함께) 노래하라 춤을 추라 행동하라~ 지금 당장 여기에서~
-지금 당장 여기 한 번 더.
-여기서 원래 빨래하시는 거예요?
-원래.
-이게 씨앗 폭탄이라고요?
이 모든 것을 가장 짜릿하게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이렇게 앉아 있으니까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들어요. 너무 좋다.
바람이 시원하게 부니까 진짜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그냥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아.
-(해설) 하늘과 바다 사이 그 아찔한 간극 때문일까요?
평소보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니겠죠?
생명력 넘치는 자연과 설렘 가득한 이국적 풍광.
그리고 80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어우러진 신비의 섬 남해는 그 별명도 보물섬이랍니다.
-저 멀리 해무도 쫙 깔려 있고 섬들이 차자작.
그냥 아주 옅게 보이는 것, 짙게 보이는 섬들이 이렇게 같이 있으니까 한 폭의 그림 같아.
여기가 옛날 선조들은 일점선도라고 해서 한 점 신선의 섬이다, 이렇게 표현을 했대요.
그래서 그런지 정말 뭔가 하나하나의 작은 섬들을 다 품어내고 있는 그런 곳 같아요.
오늘은 바로 이 일점선도, 남해. 남해를 한번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랑 한번 떠나보시죠. 아주 기대됩니다.
-(해설) 오늘 첫 마실은 남해 속 작은 유럽, 독일마을에서 시작합니다.
마치 유럽의 어느 마을을 통째로 옮겨 놓은 듯한 이국적인 풍경에 벌써 마음이 설렙니다.
남해 독일마을은 1960년대 산업역군으로 독일에 파견된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을 위해 국내에 조성된 마을인데요.
지금은 아름다운 동네 풍경이 입소문을 타면서 남해의 대표 관광 명소가 됐답니다.
특히 매년 10월 열리는 독일마을 맥주 축제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행사라네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 여행 오셨어요?
-네.
-독일마을 어떠세요? 처음 오셨어요?
-아니요, 저희 세 번째요.
-여기.
-청주에서 왔어요.
-청주에서. 세 번째예요, 벌써? 독일마을 오니까 좋아요?
-네.
-뭐가 그렇게 좋아요?
-그거야 집도 예쁘고 맛있는 독일 음식들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그냥 준비도 안 했는데 준비한 것처럼 말 잘하네.
-(해설) 반가운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마실을 떠나봅니다.
-이곳은 성 같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화단 정리하시는 거세요?
-네, 화단 정리합니다.
-여기 동네 집들이 너무 예뻐요.
-그렇죠? 독일에서 인부들이 와서.
-진짜?
-인부들이 독일에서 가져와서 5년 걸렸습니다.
-이게 직접 지으셔서 이렇게 집이 달라 보이는구나. 일반 집이랑 좀.
-다르죠?
-네.
-독일식이에요. 건축양식이 독일식.
-(해설) 이런 집에는 누가 살까 궁금했는데 운 좋게도 초대를 받았습니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세상에.
-(해설) 현관문 하나 열고 들어왔을 뿐인데 마치 독일의 어느 집 거실로 순간 이동을 한 것 같죠?
-집이 엄청 넓고 겉에서 봤을 때는 엄청 거대한 성처럼 보였는데
들어오니까 오히려 아담하고 아주 너무 딱 좋은데요? 이거는 뭐예요?
-여기서 식사하는 거예요.
-여기서 식사하시는 거예요?
-식사, 사람들이 많이 오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저기서 하는데.
-손님들 오시면 여기서. 여기 기가 막히네, 뷰가.
-열어 보세요.
-(해설) 이렇게 멋진 전망을 매일같이 볼 수 있다니. 어르신, 정말 부럽습니다.
그런데 찬찬히 둘러보니 작은 소품 하나하나까지 예사롭지가 않은데요.
모두 어르신이 독일에서 직접 공수해 온 것들이랍니다.
-책장도.
-책장이고. 저기 괴테 쉴러 책들도. 저희 딸이고요. 딸.
-배우 사진 아니에요?
-아니요, 딸이에요.
-따님이라고요?
-네.
-따님이 너무 미인이시다.
-여기는 아들이고. 아들 결혼해서.
-파독 간호사 1세대로 처음 독일 땅을 밟았던 어르신은 그곳에서 독일인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일구셨답니다.
그러다 20년 전 독일마을에 집을 짓고 지금은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살고 있다네요.
-들어보니까 너무 궁금해졌는데 남편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남편분은 환자였어요, 그냥. 병원에서.
-환자. 이 남자가 내 남자 같다는 그런 게 있었어요?
-아니요. 저는 전혀 독일 사람하고 결혼한다는 건 생각도 못 했죠.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네.
-독일 남자는 그냥 남자도 보이지도 않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남편은 쾰른에 살고 저는 뤼덴샤이트라는 곳에 살았는데 100km 정도 돼요.
그런데 매일, 퇴원해서 매일 방문을 오고.
-지금 우리로 치면 서울, 대전 정도 거리 되는데 그 거리를 매일?
-(해설) 이런 멋진 신랑감의 열렬한 구애라면 무조건 예스죠.
남편의 사랑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답니다.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아내를 위해 한국에서 장인, 장모님을 모셔와 1년 동안 함께 살기도 했다네요.
-어머니, 아버지 참 성공했죠. 성공했다고 저 한국에서 다 난리예요.
생전 비행기도 안 타보고 그래서. 재미있었어요, 이게.
여행 가고, 알프스도 여행 가고. 여행 많이 했어요.
-이게 그 사진이에요?
-네, 66년 때.
-40년 전 독일 땅에 첫 발을 디딜 때의 모습.
-그때 내가 40년 됐을 때 그런 거예요.
-이게. 여기 제일 고우신 분?
-네.
-정든 고향을 떠난 지 어언 40년이 되었네.
부모, 형제, 정든 벗들과 이별한 지 40년.
-(해설) 전남 순천에서 7남매 중 넷째 딸로 태어난 어르신은 그 시절 많은
파독 간호사들이 그랬듯 어려운 집안을 위해 꽃다운 나이에 독일행을 결심했답니다.
-부모, 형제들은 반대는 했지만 그래도 제가 동생들 공부시키고 그러기 위해서 제가 가게 됐습니다.
그냥 무조건 내려서 저 국기를 흔들면서 그래도 조국 생각을 하면서 내렸습니다.
-(해설) 그렇게 딱 3년만 버텨보자며 시작했던 일.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어쩔 수 없는 게 있었답니다.
-향수병에 걸려 눈물로 밤을 지새운 세월.
어느새 환자는 내 부모처럼 느껴졌고 이제는 그 인내의 시간이 열매가 되었다.
울었지, 맨 처음에 가서. 그때 향수병이 있어서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어요.
너무 밥도 못 먹고 울고 그래서 빼빼했어. 눈물 많이 흘렸지.
그래서 저녁때는 동료들이랑 모여서 밥을 해서 먹고 노래도 부르고 저는 노래 부를 때,
그때가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향수병이 생기더라고요. 그게, 향수병이 문제였지.
-(해설) 하지만 결혼과 함께 가족이 생기고 독일 상황에도 적응하면서
다짐했던 3년은 어느덧 40년을 훌쩍 넘겼답니다.
평생 심장외과 간호사로 일한 어르신은 우선의 이름을 건
치료센터까지 운영할 만큼 열정적으로 사셨다네요.
-정말 내 모든 것을 지금, 지나간 일을 쭉 이렇게 보면 내가 그 일을 어떻게 했을까.
참 신기하다. 그래도 잘했다, 그렇게 생각이 들어요. 마인 트라움 하우스라고 생겼어요, 이 집이.
트라움이 뭐냐? 꿈, 꿈의 집에. 꿈의 집이라고 제가 생각을 하고 지었습니다.
-(해설)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와 이제는 제2의 고향이 된 독일을 추억하며 손수 지어 올린 꿈의 집.
어르신에게 남해 독일마을은 아름다운 인생의 종착역이랍니다.
독일마을을 내려와 한적한 어촌마을로 마실을 왔습니다.
남해 삼동면 바다 남쪽 끝에 위치한 대지포는 그 옛날 마을 한가운데
큰 연못이 있어 큰못개라고도 불렸답니다.
천천히 동네를 걷다 보니 마을 정자에 반가운 분들이 계시네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머님들. 여기 나오셔서 뭐 하고 계셨어요?
-카메라를 이렇게 많이 가져와?
-우리가 이렇게 놀고 하는...
-어디서 많이 본 얼굴 같아요?
-네.
-남해 사람입니까?
-네? 남해 사람은 아닌데 놀러 왔어요.
-시원해요.
-여기 앉아보니까 어머님들이 여기 왜 앉아 계시는지 제가 알겠네.
시원하네요. 여기 바람도 시원하게 불고.
-오늘은 바람이 별로 안 불어서.
-바람 불면 시원해.
-여기, 어머님, 여기 사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66.
-60.
-66년이다, 올해 내가.
-66년.
-20살 먹고 여기 왔거든?
-20살. 어머님은 얼마나 되셨어요?
-얼추 비슷하게 있었지, 뭐.
-처음에 여기 시집오셨을 때 동네가 어땠어요?
-그때는 사람들 좀 많이 살고.
-그때는 많이 살았지.
-그때는 사람이 많이 살았어요.
-많이 살고.
-다 나가버리고 빈집이 많아, 이제.
-빈집이 많고.
-(해설) 한때는 동네가 북적북적했다는데 요즘은 갈수록 인구가 줄어서
마을에도 빈집이 하나둘 늘고 있답니다.
-우리 어머님들 저기 진지는 드셨어요?
-진지 드셨어요?
-식사 안 하셨어요?
-네, 여기 마을 좀 돌아다니다 여기 근처에 먹을 만한 데 있으면 좀 찾아보려고요.
-여기 먹을 데도 없어요.
-없어요?
-여기는 식당도 없고 우리가 아직 내가 밥을 안 먹었으니까 가서
그러면 우리 집에 가서 밥을 한 그릇 먹고 가세요, 같이.
우리 며느리가 밥 준비도 해 놓고 했을 테니까 한번 같이 가서 식사를 합시다.
-진짜요?
-며느님이랑 같이 사세요?
-요즘 세상에, 구경 가봐도 돼요?
-네.
-그러면 실례를 무릅쓰고 한번 찾아뵐게요. 어머님들 좋은 시간 되시고 건강하세요.
-(해설) 마침 출출했는데 감사하게도 식사 초대를 받았네요.
-저기 있네. 아가. 여기 손님 모시고 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강아지.
-용복이도 좋다고 나왔네.
-아이고, 좋아.
-안녕하세요?
-여기 뭐 하고 계세요?
-저희...
-잡초 매고.
-저희 수박 따려고.
-수박.
-집에서 키운 건데 다 익어서.
-잠깐만. 수박이 왜 수박밭이 아니고 돌 위에서 이렇게 수박이. 돌이 엄청 크네요?
-네, 엄청 큽니다.
-집 앞에 이렇게 큰 돌이 있어요?
-그러니까 대지포, 큰못개. 이게 못이 가라앉은 데라 집에 이렇게 큰 돌이 많아요.
이 돌은 여기 우리 집 전체가 다 돌이 있어요.
-(해설) 크기가 어마어마하죠?
대지포마을에서는 집 마당이나 동네 길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랍니다.
-이렇게 돌 위에 수박이 있는 건 저는 태어나서 처음 보네.
-(해설) 큰 바위를 타고 자라서 그런지 아주 생긴 것도 야무집니다.
-뭐야.
-수박이 실하다.
-엄청 무겁네요.
-(해설) 그나저나 주방에 온 식구가 총출동하셨네요.
드시던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놔주시면 되는데 죄송해서 어쩌죠?
-아니, 아버님. 이렇게 잘 차려놓고 드신다고요, 평소에?
-매일 그렇진 않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문어숙회인데.
-문어숙회.
-우리 대지포 앞바다에서 통발로 잡아서.
-통발로 잡은. 이거는 뭐예요?
-멸치, 이건 바닷물에 밀려 들어왔어요. 선창가에 그거 주워서 한 겁니다.
-진짜? 그냥 알아서 들어오는 거예요?
-네, 지가 알아서.
-제가 설명을 듣다가 도저히 침이 계속 고여서 더 못 참겠어요.
-어서 드셔보세요.
-아버님, 먼저 한술 뜨시죠. 잘 먹겠습니다.
-(해설) 일단 남해 특미, 멸치 쌈부터 맛을 봐야죠. 멸치 쌈은 처음 먹어봤는데요.
딱 제 취향입니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계속 나오는데요?
-참기름도 제가 직접 농사지은 참기름입니다. 국내산 참기름.
-아까 오면서 보니까 깨가 엄청 많이 심겨 있더라고요.
그 깨로 이렇게 참기름 하신 거예요?
-네, 참기름 하고 깨소금도 하고.
-이 집안의 분위기가 여기가 그냥 깨가 쏟아지네.
-우리 아기가 복덩이라 그래요.
-우리 며느님.
-작년 4월에 결혼했어요.
-4월 19일에.
-진짜, 진짜 신혼부부시네. 신기하다. 어떻게 두 분은 만나시게 되셨어요?
-저희가 3년 전에 코로나 때 남해에서 한 달 살기 하는 프로그램을 인터넷으로 광고를 봐서.
-한 달 살기로 시작해서 한 평생 살기로.
-저희 한 달 살기 할 때 캐치 프레이징이 됐습니다. 지금 방금 말씀하신 게.
-그래요?
-한 달 살러 왔다가 평생 살다 간다.
-진짜 실제로 이렇게 직접.
-기획자로서 성공한 거죠, 저도.
-그러네요.
-(해설)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을 퇴사한 뒤 남해로 내려온 금실 씨는 이곳에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남편 성훈 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답니다.
-쉬고 싶어서 내려왔던 건데 뭔가 느낌이 좋았어요.
여기에 있으면 내가 할 일이 있을 것만 같고 그냥 내가 여기에
온전히 나로서 있을 수 있다, 그런 느낌이 좀 많이 강했어요.
-(해설) 어르신이 대부분인 이 마을에서 금실 씨와 성훈 씨 부부는 유일한 젊은이들이랍니다.
덕분에 어딜 가나 동네 어르신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네요.
-어머니, 안녕하세요?
-안녕!
-언제까지 계실 거예요.
-나는 언제까지 이런 거 없다, 더워서 뭐.
-알겠어요. 그러면 이따가, 이따가 복숭아 좀 가지고 올게요. 이따 봬요.
-잘 갔다 와. 바이 바이.
-(해설) 마을에서 가장 젊은 새댁답게 금실 씨의 일과도 아주 바쁘게 흘러간답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자전거를 타고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부지런히 오간다네요.
특히 올해부터는 금실 씨와 성훈 씨가 함께 준비한 야심 찬 프로젝트가 있답니다.
-저희 동네에 오래된 민박집이 하나 있어서 운영이 잘 안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저랑 남편이 한번 인수를 해서 좀 바꿔서 운영을 해보고자.
각박한 도시를 떠나 남해에서 행복을 발견한 금실 씨처럼 대지포마을을 찾는
그 누군가에게도 이곳이 특별한 의미가 되기를 바란답니다.
그런데 금실 씨가 남해에서 찾은 보물은 남편 말고도 또 있다는데요.
-어머니! 어머니!
-어서 와.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고생했어요. 밥 다 돼 간다, 앉아라.
-(해설) 바로 딸처럼 아껴주시는 시어머님이랍니다.
-일부러 빠트린 거 아닌데, 어떡해.
-먹으려고 빨리 빼니 자꾸 빠트리지.
-어떡해.
-든든하죠. 그냥 며느리라는 소리도 아까워서 못 하고 그냥 아가, 우리 아기, 그럽니다.
내 눈에는 아기. 딸도 아까워.
-큰일 났네, 큰일 났어. 응애, 해야겠네.
-딸같이 예뻐요. 그리고 자기가 잘하고.
요즘 젊은 사람들 이렇게 시골 와서 생활 안 하려고 하잖아요.
그래도 와서 같이 열심히 노력하고 막 하려고 노력하는 게 너무 예뻐서.
그리고 안쓰럽고.
-(해설) 세상에, 이렇게 훈훈한 고부지간 보셨나요? 모녀 사이보다 더 정답네요.
-눈물 날 것 같아. 진짜 눈물 날 것 같아, 어떡하지? 그냥...
-좋은 현상이야.
-처음 뵀을 때부터 되게 예쁘다, 예쁘다 하면서 많이 챙겨주셨거든요.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잘 봐주셔서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황송하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을 잘 못 하겠어요.
많이, 많이 감사합니다.
-(해설) 마음씨도 고운 금실 씨와 성훈 씨. 앞으로 두 분이 꼭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일까요?
-대지포마을은 진짜 딱 도로를 가운데 두고 이제 윗마을, 논과 밭이 있는
윗마을 그다음 아래에 바닷가를 볼 수 있는 아랫마을이 있는데.
개구리 소리도 들리고 귀뚜라미 소리도 들리고, 그런 소리를 들어오다가 딱 이제
아랫마을 도로 넘어가면서부터 파도 소리가 멀리서 들리기 시작해요.
-이 마을이 얼마나 예쁜지를 좀 보여주고 저희 동네에 빈집이 좀 많거든요.
그래서 그런 빈집에 이사를 좀 많이 왔으면 좋겠다?
이사를 와서 저희랑 같이 친구가 되고.
-그냥 정말로 슬리퍼 질질 끌고 가서 편하게 차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는
그런 친구들이 이제 마을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해설) 두 분 다음에는 동네 친구들과 편하게 둘러앉아서 밥 한 끼 꼭 같이했으면 좋겠네요.
바닷가 마을을 떠나 읍내로 왔습니다. 역시 읍내는 이렇게 사람들이 북적북적해야 제맛이죠.
그런데 오래된 읍내를 걷다 보니 귀한 구경도 하게 되네요?
-이거. 이거 거목이 엄청난 거목이네. 450년. 450년이면 나의 몇 배를 사신 거야?
아홉 배를 사셨네. 마을 잘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 저기 만석, 만석장 모텔이 있던데.
-(해설) 읍내 풍경이 유난히 친근하다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네요.
그런데 여기에도 독특한 간판이 보이네요?
-여기 이름이 재밌다.
-(해설) 궁금한데 한번 들어가 볼까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 밖에서 보니까 이름이, 간판이 예뻐서. 마파람?
-마파람이 남풍이라는 뜻이라서 제가 남해에 있다 보니까 저렇게 지었어요.
-남풍이라는 뜻이구나.
여기 그런데 사진들이 좀 독특한 것 같아요.
저거는 저기 할아버님 사진 멋지게 찍어주셨네?
-네, 저건 남해 어르신인데 제가 남해에 있는 어르신들 이렇게
집 앞에서 찍고 영정사진으로 봉사하는 걸 하고 있어요.
-(해설) 서울에서 영상 관련 일을 했던 양희수 작가는 6년 전
고향인 남해로 내려와 읍내에 사진관을 열었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영정사진을 찍은 건 아니었다네요.
-저런 영정사진을 대신 찍어주시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시게 되신 거예요?
-그건 처음에는 무작정 남해에서 사진을 찍고 싶은데 저도 인물 사진도 찍어보고 해야 하니까,
그런데 인물이 노인들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찍었던 건데.
-젊은 사람들은 다 이제 도시로 떠났으니까.
-그렇죠. 그렇게 찍다가 제가 좀 희귀병을 발견하게 되고 뇌에 큰 수술을 했거든요.
-(해설) 어느 날 갑자기 걸음걸이가 이상해지고 몸 한쪽에 감각이 사라졌던 이유도 바로 그 병 때문이었답니다.
-(해설) 힘든 수술 끝에 어렵게 건강을 되찾은 양희수 작가는 앞으로 남은 삶은 선물이라 생각했답니다.
무료로 영정 사진 봉사를 시작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라네요.
-어머니,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이 안 웃고 있습니다. 진짜 웃어야 합니다.
거짓말입니다, 그거는. 얼굴 조금만 숙이고. 하나, 둘, 셋. 고사리~
살짝만 미소 짓고 하나, 둘.
-(해설) 어르신, 이만하면 프로모델인데요?
-기분 참 좋습니다, 오늘. 사진 찍은 지가 지금 참 오래, 몇 년 됐나 모르겠다.
약간 열셋, 한 10년도 넘었지 싶은데. 보니까 잘생기고 참 좋네요.
-(해설) 요즘에는 영정 사진뿐만 아니라 집을 방문해서 출장 가족사진도 찍어주신답니다.
-오늘 한 분씩 찍고 두 분 같이, 같이 하나 찍고 해서 액자 만들어서 보내드릴게요.
-그래, 하나씩만...
-깍지 끼고.
-깍지 끼라고?
-깍지 끼고. 사진 찍을 때는 친한 척해야 합니다. 아버지, 몸 이쪽으로 조금만, 어머니 쪽으로 돌릴까요?
조금만 마주 보는 것처럼 살짝만 돌리고. 살짝만 웃으면서 하나, 둘. 마주 본 채로 소고기, 하나, 둘, 셋.
-(함께) 소고기~
-한 번 더. 메르치, 하나, 둘, 셋. 메르치~ 흐흐흐 하면서, 흐흐흐.
-(해설) 촬영이 어색한 어르신들을 위해서 즉석에서 확인은 필수.
-아범은 예쁘게 나왔네.
-사진이 많아서 제가 잘 웃은 거로 골라서.
-기분이 좋죠. 이렇게 늙은이들도 와서 반겨주는구나 하고 기분이 좋아요.
-(해설) 가끔 힘들다가도 좋아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피로가 싹 사라진답니다.
-(해설) 이렇게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어르신들이 어느덧 팔백여 분에 이른다네요.
-저렇게 사진 찍으면서 좀 특별히 기억에 남으시는 분도 있나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일단 저 할아버지가 기억에 남아서 걸어놓은 거거든요.
-이분이, 이분은 어떻게 해서.
-저 할아버지는 제가 봉사 거의 초창기 때 그냥 아는 형이랑 지나가다가 가만히 앉아계시는 거예요.
아무 말도 안 하시고 그냥 가만히 있더라고요.
그래서 사진 찍어도 되겠냐고 여쭤보니까 그냥 고개만 끄덕이시길래 그냥 찍고, 그냥 갔어요.
-(해설) 어쩌면 어르신도 작가님의 사진을 기다리고 계셨던 거 아니었을까요?
-사진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고.
아프지 말고 오늘처럼 그냥 제가 찍고 싶은 사진 찍고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해설) 처음 본 작가님의 사진이 유난히 따뜻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작가님, 건강한 모습으로 좋은 사진 오래오래 찍어 주세요.
-(해설) 이번에는 좀 특별한 곳으로 마실을 왔습니다. 어딘지 궁금하시죠?
-여기인가? 금해정.
바다 보면서 활 쏠 수 있는 데가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가 그 이름 같은데, 금해정.
-(해설) 과연 여기가 제가 찾던 그곳이 맞을까요?
-안녕하세요. 여기 활 쏘는 곳이라고 해서 구경 왔는데.
-잘 오셨습니다.
-여기 바다 보이면서 활 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거든요.
-잘 오셨습니다.
-여기예요?
-네, 남해 바다 보이잖아요, 저기 바다.
-그렇네, 이렇게 착.
-(해설) 이곳이 바로 시원한 남해 바다와 울창한 숲을 벗 삼아
활쏘기를 즐길 수 있는 남해 최고의 활터랍니다.
전국에서도 경관이 좋기로 손꼽힌다네요.
-저게 맞으면 불이 들어오나요?
-네, 맞으면.
-엄청 먼데.
-거리가 145m이기 때문에 과녁 내에만 맞히면 관중이에요.
-(해설) 사거리가 무려 양궁의 2배가 넘다 보니 전통 활쏘기에서는
과녁에 맞기만 하면 점수로 인정한답니다. 여기까지 온 이상, 한 수 배우고 가야겠죠?
-쏠 수 있어요?
-그럼요.
-쏴 볼 수 있어요?
-그러면, 활을 쏘시려면 대한민국에서 활을 제일 잘 쏘시는 분한테 배워야 할 거 아닙니까?
그분한테 인사를 깍듯이 해야지.
-그래요, 누구, 누구입니까?
-여기에 있는 우리 박해동 명궁님인데 대한민국에서 9단. 9단이 최고 단이 높아요.
-활 쏘는 것도 단수가 있어요?
-네, 다 있습니다.
-9단이 마지막이야, 9단이.
-그다음에 대한민국에서 여덟 번째로 따신 분이에요.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큰절해야 하는데.
-반갑습니다.
-(해설) 일단, 자세부터 명궁의 포스가 느껴지죠.
박해동 명궁은 서부 경남 최초이자 국내에서는 여덟 번째로 국궁 최고의 경지에 오른 분이시랍니다.
명궁님의 특별 가르침에 힘입어 드디어 사대로 진출해 봤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하고.
-어깨너비, 어깨너비 정도로.
-잡고.
-높이가 여기 상단, 상단, 과녁 상단.
-저 과녁의 상단.
-좌측 상단.
-이렇게, 이렇게 날아가야 하니까? 상단 하고.
-꽉 잡고.
-꽉 잡고.
-준비됐습니까? 할 수 있겠어요?
-떨리는데요.
-떨리죠.
-더 높이 드세요.
-이렇게 해서 4번. 갈까요?
-그렇지. 멀리 가네.
-과녁 옆으로 갔는데?
-잘하면 맞겠다.
-과녁 옆으로.
-재미있네.
-다음에 활터에서 우리 만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요, 이게.
-(해설) 활쏘기는 난생 처음인데 은근히 승부욕이 생기더라고요.
-쭉 당긴 다음에.
-비슷하게 갔어.
-화살 봤어요, 어디로 갔는지?
-네, 지금 3번과 4번 사이로 날아간 것 같아요.
-그래요?
-이제 조금 영점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이게 또 명궁님께서 잘한다고 칭찬해 주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시니까 자신감이 생겨서.
그런데 방금 활이 여기를 살짝 스쳤는데 아프네.
-여기 빨갛죠.
-(해설) 영광의 상처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데요?
-재미있죠?
-스트레스가 확 풀리네.
-재미있으니까 삼십몇 년을 지금까지 하고 안 계시겠습니까?
-이 활이 5000년 넘게 쏜, 우리 민족이 쏜 활입니다.
-제가 이거 마지막 한 번만 더 쏴보겠습니다.
-(해설) 꼭 한 번, 명중시켜 보고 싶더라고요.
-그대로.
-아깝다.
-(해설) 마음만은 백발백중인데, 생각만큼 쉽지 않네요.
사실 초보자들은 언감생심, 과녁을 맞히긴커녕, 화살이 시위를 떠나게 만드는 것조차 힘들답니다.
-2번.
-(해설) 이토록 멀고도 험한 궁도의 길을 명궁님은 무려 30년 넘게 걸어오셨다네요.
-여기가 보니까 뒤에 바다도 있고 경치가 기가 막혀요.
여기서 활 쏘고 있으면 진짜 근심, 걱정이 싹 사라지겠어요.
제가 저기 아까 얼핏 들었어요. 우리 선생님께서 우리 명궁님 기록이 있으시다고.
-대한민국 궁도에 길이 남을 만한 기록들을 많이 가지고 계시죠.
한 번 쏠 때 5발을, 화살 5발을 갖고 쏘는데 그 5발을 다 맞히면 몰기라고 그럽니다, 몰기.
-몰기. 몰아서 맞혔다.
-그 몰기를 17연몰을 했습니다.
-17번.
-17번 몰기를 하고 그리고 4중을 하고 그러면 89발을 맞혔다는 거죠.
마지막 한 발이 딱 짧아서, 조금 짧아서 90발을 못 채우셨어.
왜 그러셨냐고 내가 물어보니까 배가 고파서 열심히 하니까 도저히 배가 고파서
못 쏘겠다고 해서 힘이 빠져서 자기가 그렇게 됐돼요.
-내가 배가 고프지만 않았다면 밤새 이 과녁을 뚫었을 것이다.
-지금도 배고프신 표정이신데.
-(해설)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기록 달성에 걸린 시간만도 무려 8시간.
박해동 명궁이 세운 17연속 몰기는 지금도 깨어지지 않는 대기록이랍니다.
이뿐인가요?
나가는 대회마다 상을 휩쓸어 온 박해동 명궁은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명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 활을, 활시위를 당기실 생각을 하시게 되셨어요?
-제가 건강이 좀 안 좋았어요.
그때 당시에 촌에서 없는 돈에 병원비만 해도 한 3000만 원 넘게 이렇게 쓰고 다녀도 병명이 안 나와요, 병명이.
그래서 굿도 해 보고 좋다는 하는 약도 먹어보고 이렇게 해도 아무 병명도 없어요.
-몸은 안 좋은데 병명 못 찾을 때 진짜 답답하잖아요.
-답답하죠. 절에도 가보고 교회도 가보고 차도가 없었어요.
그런데 활을 쏘고 나서 이제 나도 모르게 1년 지나니까 조금 나아지는 느낌이 오고 2년 지나니까 조금 나아지는.
그래서 쭉 빠지게 됐죠.
-(해설) 32살 무렵 싱크대 공장을 운영하며 남 부러울 것 없이 살았던 박해동 명궁.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지병으로 운명처럼 궁도에 눈을 뜨게 되면서 인생이 180도 바뀌었답니다.
그래서 내가 활하고 화살을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먹고살려고 그렇게 하게 됐어요.
-(해설) 활을 놓고 살 수 없다면 차라리 활로 먹고살아보리라 시작한 일.
그런데 막상 활을 만들기 시작하자 또 다른 인생의 문이 열렸답니다.
-이 활이 이렇게 반대로 돼서 활이 돼요.
이게 우리 보기에는 이렇게 돼 있지만 이렇게 펴져서 돌아와서 이런 모양이 나옵니다, 이런 모양이.
-(해설) 처음에는 초보자용 개량 활을 생산했지만 지금은 전통 수제활인 각궁까지 제작하고 있답니다.
-이렇게 전부 깎아서 만들었어요. 이렇게 봐서 세밀하게 활의 모양을 만들 때는 다 깎아요.
또 우리나라의 최고 명인한테 배웠으니까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지금까지 쭉 30년 동안 해왔고 활은 내 인생의 전부다. 그렇게 생각해요.
활은 그냥 운명처럼 내가 활을 그냥 쏘게 돼요.
나 자신도 모르게 그냥 활을 쏘게 되고 앞으로도 계속 쏠 것이고 평생 쏠 것입니다.
-(해설) 때로는 생각지도 못했던 길에서 운명을 만나기도 하는 것이 인생.
시위를 떠나 떳떳하게 날아가는 저 화살처럼 당당히 바람과
맞설 각오만 있다면 우리 인생도 언제나 명중 아닐까요?
보물처럼 귀하고 보석처럼 빛나는 사람들과 함께한 남해 마실.
오늘도 참 행복했습니다.
-주로 계급장, 명찰. 그다음에 가슴에 마크. 어림잡아서 1만 명 이상은 안 했겠나 싶어요.
-(함께) 노래하라 춤을 추라 행동하라~ 지금 당장 여기에서~
-지금 당장 여기 한 번 더.
-여기서 원래 빨래하시는 거예요?
-원래.
-이게 씨앗 폭탄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