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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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듯, 도시기행 마실가요 - 뚝심으로 산다, 경남 거제시

등록일 : 2024-11-05 16:59:42.0
조회수 : 1288
-(해설) 나지막한 구릉에 둘러싸인 해안평야와 멀리 쪽빛 거제만을 그림처럼 비추며 우뚝 선 정자 하나.
동서남북 막힌 데 없이 뻥 뚫린 시원한 풍광에 답답했던 마음이 절로 상쾌해집니다.
-구름까지 그림이다, 그림. 시원하다. 멋있다.
바다랑 섬들이 쫙 있고 이쪽에 논밭 쫙, 집들도 있고 뒤에 산도 있고.
이건 뭐, 그냥 360도가 다 그냥 절경이네.
옛날에 적들 쳐들어오고 그러면 여기서 쫙 지켜보고 있다가 볼 수도 있겠구나.
-(해설) 해발 143m의 수정봉 정상을 둘러싼 옥산성은 통일신라 초기 최초로 축성된 성곽으로
조선의 마지막 산성이라고도 불린답니다.
-안 와봤으면 진짜 후회할 뻔했네.
그래서 오늘은 이곳에서, 이곳 거제에서 뚝심 있게 자신의 길을,
또 자신의 행복을 일구어가는 사람들을 한번 만나볼까 합니다.
오늘 저랑 같이 거제 함께 떠나보시죠. 출발합니다. 기분 좋다, 아침부터.
-(해설) 오늘 첫 마실은 거제도 사람들의 삶과 역사가 오롯이 남아 있는 읍내길을 걸어봅니다.
-뭐야. 뭐야. 여성의 도시 외출을 도와드립니다.
-(해설) 느긋하게 동네를 마실 하다 보니 재미난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네요.
-옛날에 이런 모습이었나 보구나. 멋있다. 뭐야, 거제 극장? 이거 뭐야, 동시 상영? 상영할 시간인데?
-(해설) 아직도 이런 극장이 남아있다니 궁금한 마음에 들어가 봤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구경하는데.
-깜짝 놀라라.
-지나가다가 여기 간판이 재밌어서. 진짜로 무슨 안에서 혹시 영화 상영하나 싶어서.
-옛날에 여기 거제 극장이라는 데가 있었어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걸 추억해서 한번 그려봤습니다.
-일부러 재미로 해놓으신 거구나. 저 같은 사람은 바로 얻어걸리네.
-여러 사람 계세요.
-가게 이름이 문채네 구멍가게예요?
-문채네 구멍가게요? 우리 딸 이름이 이제, 대표님이십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이름이 문채예요?
-네.
-문채, 몇 살이에요, 몇 학년?
-3학년.
-3학년이에요?
-(해설) 대표님이 좀 어리시죠?
늦둥이로 얻은 귀여운 딸을 위해 엄마, 아빠가 마련한 아주 특별한 구멍가게랍니다.
-이거 뭐야? 이게 그 영화관처럼, 뭐지, 이거?
-이거는 우리 어릴 때 할머니 집 가면 그 아늑한 그게 그립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좀 표현해 봤어요.
-(해설) 어린 시절 시골집 안방이 딱 이랬는데, 그때가 그립네요.
문채 사장님, 덕분에 재미나게 놀다 갑니다. 안녕.
즐거운 추억 여행을 마치고 읍내 중심으로 발길을 옮겨 봅니다.
어느새 화창하게 갠 날씨 덕분에 발걸음도 아주 가벼워졌는데요.
그런데 걷다 보니 제 눈길을 끄는 곳이 있네요.
-뭐야? 금성, 금성 라사?
-(해설) 독특한 간판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여기 간판이 특이해서.
금성 라사라고 쓰여 있어서 들어와 봤는데 양복점이 아니네요.
원래를 라사 하면 옛날에 양복점 아니었나?
-맞아요. 전에 여기가 양복점 자리여서. 그 이름 따라.
-그래요. 안에 들어오니까 완전히 또, 완전히 색다르다.
그거 뭐, 무슨 뜨개질하시는 거예요? 이게 뭐예요?
-이게 뜨개질은 아니고요. 이게 해녀들이 쓰는 물건인데요. 태왁 큰 거 말고 조그맣게 작은 조락이라고.
오늘은 바다 날씨가 안 좋아서 쉬는 날 이렇게 수선하고 있습니다.
-오늘 바람 많이 불더라고요. 그래서. 그러면 이거 사모님이 하시는 거예요?
-아니요.
-그럼요?
-제가 해녀입니다, 해남이죠. 해남.
-해남이요? 진짜요? 신기하다, 저 해남 처음 뵙습니다.
-그러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해남이시고 또 쾌남이시네요.
-과찬이십니다.
-제가 요즘 아재 개그에 꽂혀서.
-(해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조용한 시골 살이를 꿈꿨던 신철 씨와 준선 씨 부부는
2년 전 이곳 거제면으로 이사를 왔답니다.
아내는 카페 사장으로, 남편은 해남으로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알콩달콩 살고 계시다네요.
-감사합니다.
-향이 아주 좋습니다.
-맛있네요, 고소한데요. 나마스테. 그러면 원래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의류 회사에서 거의.
-라사 맞네.
-둘 다.
-두 분 다?
-그렇게 있다가 해녀가 너무 하고 싶더라고요.
-하고 싶어서.
-나는 꼭 해녀가 될 거야라고 주변에 이야기하고 다니고 했는데 다들 제정신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죠.
-그렇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이렇게 선택하는 게 아니니까.
-(해설)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서 잘 살던 청년이
갑자기 해녀가 되고 싶다고 했으니 그럴 만도 하죠.
하지만 운명처럼 신철 씨의 가슴에 콕 박혀 버린 해녀.
아니, 해남의 꿈은 누가 뭐래도 진지했답니다.
1년, 1년, 1년 해서 한 3년째 됐을 때 거제아카데미에만 입학을 하게 됐는데.
드디어 끈 하나를 잡았다?
이게 끊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잘 끌고 가야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저한테는 소중한 끈이었고요.
-(해설) 그렇게 소중한 끈을 꼭 붙든 신철 씨는 1년간 거제도를 오가며 소망하던 해녀학교를 졸업했답니다.
그리고 지금은 거제도에 10명 남짓한 해남 중 한 명이자
일주일에 5일 이상 물질을 나가는 당당한 본업 해남이라네요.
-체온을 유지하고 그리고 바다 밑에 바위가 많아서 보호도 해야 하고 해파리도 조심해야 하고 고무 옷이고요.
부력이 세다 보니까, 부력이 있다 보니까 내려가기 위해서 이렇게 추를 달아서 무겁게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해설) 이른 아침부터 가까운 바다로 나가 하루 평균 4시간 넘게 물질을 하는데요.
평소에는 해녀 어머님들과 팀을 이루어 조업을 한답니다.
-수경에 습기 차지 말라고 침을 이렇게. 이거는 빗창이라고 전복 딸 때.
전복이 한 번 바위에 들러붙으면 이게 사람 손이나 호미로는 안 떨어지거든요.
호미 또는 떼다가 전복 살이 다칠 수 있어서 이거로 슉 넣어서 얼른 이렇게 떼면
요즘 자연산 전복이 너무 없어서 만나 보기가 힘드네요.
-(해설) 바다가 허락하지 않으면 인간의 힘으로는 그 무엇도 얻을 수 없는 일.
그래서 물질은 욕심과 얕은 기술에 미혹되기보다 겸허한 마음으로 바다를 만나는 일이랍니다.
오늘은 또 어떤 바다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지 서울에서 온 신참 해남 실력 좀 볼까요?
물질을 위해 들어가는 수심은 평균 10m.
해녀들은 공기 호스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한 번 잠수하면
1분 남짓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조업을 해야 한답니다.
신철 씨, 드디어 오늘의 첫 수확인가요? 이거 꽤 실해 보이죠?
-이거 엄청 크네요.
-돌문어, 작은 거예요. 삶아 먹기 딱 좋은 크기.
-(해설) 날씨가 꽤 쌀쌀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바닷속 수온이 높은 편이라
물질이 생각만큼 쉽지 않을 때가 많답니다.
하지만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고 뛰어든 해남의 길.
일희일비하는 대신 처음의 그 간절함을 기억하며 뚝심 있게 가겠답니다.
-작은 배에 몸을 싣고 해녀 장비를 처음으로 착용을 하는데
그 엔진 소리와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가 막 섞여서 되게 웅장한 음악 소리 같은 느낌?
철썩이는 파도에서 작업을 하는데 많이 떨리기도 하고 또 반대로 너무 뿌듯하고 재밌고.
그게 되게 잊을 수가 없었어요.
-(해설) 그런데 신철 씨 부부가 서울 생활을 접고 두 사람만의 길을 찾게 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답니다.
-아버지도 직장인이셨습니다.
은행원이었는데 은퇴를 하고 나서 귀촌 생활을 하고 싶다 해서 시골 한적한 마을에 땅도 사고
설계까지 마무리를 해 놓은 상태에서 발병을, 암이 좀 발병을 해서 결국에는 귀촌을 못 하고 돌아가셨어요.
-준비만 하시고.
-맞습니다.
그리고 장인 어르신도 저희가 결혼을 승낙받고 날짜까지 잡아 놨는데 그때 또 암이 발병을 하셔서.
지금 행복하기 위해서 지금 애쓴다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뒤집어. 무슨 색깔이야?
-초록색.
-(해설) 2년 넘는 간병 끝에 양가 아버님을 보내드리고 나서야 거제도에 내려온 두 사람은 더 늦기 전에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로 했답니다.
-엄마, 사랑해.
-사랑해요. 하트.
-사랑해, 사랑해.
-하트. 다 사랑해.
-다 사랑해.
-(해설) 간절히 원했고 온 마음을 다해 찾아낸 길이기에 오늘이 더욱 당당한 신철 씨와 준선 씨.
지금 여기에서 행복한 두 분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동네가 아주 한적하니 좋네. 그나저나 오늘 날씨가 아주 비바람에 햇빛 쨍쨍에 변화무쌍하다.
-(해설) 아침부터 부지런히 걸어 다녔더니 출출했는데 저기 특이한 식당 간판이 보이네요.
-어르신,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청소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여기 가게 사장님이세요?
-맞습니다. 앞에까지 이렇게 청소도 하시고.
-그런데 이거는 뭐, 깨끗하게 해야 하니까.
-돌판 찜이라고 쓰여 있네요?
-맞습니다. 돌판 찜.
-돌판 찜. 옷도 돌판 찜.
-우리 딸내미가 만들어 준 거예요.
-만들어 준 거예요?
-(해설) 인상 좋은 사장님이 만드는 돌판 찜이라. 맛이 어떨지 궁금한데요.
-인사해라.
-실례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사모님께서 이렇게 고우시다.
-사모님 보니까 얼굴이 더 밝아지시네. 그런데 테이블들이 있는데 돌판은 안 보이는데요?
-돌판은 밖에서 관리하는 게 아니고.
-안에 있어요?
-주방 안쪽에 있어서.
-들어가도 돼요, 그런데?
-네.
-(해설) 보기만 해도 묵직한 이 녀석이 바로 사장님의 1호 보물이자 전매특허 돌판이랍니다.
10년의 세월 찜 맛을 책임져온 일등 공신이라네요.
-묵직한데요?
-진짜 돌이에요. 10년 가까이 이거 하면서 집사람이 손목이 고장이 났어요.
-그러니까.
-안쓰럽고 미안하죠.
-철판으로 바꾸시든지.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는데.
-이거.
-이놈을 갔다 버리지를 못해서.
-이거만 한 게 없구나.
-그렇죠.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맛이 궁금해집니다, 이거. 갑자기 확 출출해지는데.
-(해설) 평소에도 워낙 찜을 좋아했던 사장님은 언젠가는 꼭
내 손으로 찜 요릿집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답니다.
그러다 불현듯 돌판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그길로 창업을 향해 직진했다네요.
-한 번 나왔던 고기는 내일 되면 끝나버려요. 소비가 다 돼 버려요.
이걸 안 팔린다고 해서 냉동실에 집어 넣고 그거는 절대 안 돼요.
-(해설) 동네 장사라 음식값을 올리기 힘들어 급랭 대구목살을 쓰는 대신
매일 재료를 구매해 당일에 전량을 소진하는 것이 원칙이랍니다.
-이 칼집 내는 이유는 말 그대로 육수가 스며들면서 고기가 빨리 익도록 하는 거예요.
-(해설) 무와 대구 살에서 빠져나온 육수가 돌판 위에서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이제 양념을 만들 차례.
고춧가루, 마늘, 들기름을 비롯한 식재료들은 모두 시골에서 부모님이 직접 농사지으신 것들이라네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네요.
-이거 냄새가.
-찜부터 일단 제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돌판에 있으니까 이거 뭐 불 켜지 않았는데도 계속 부글부글 끓네요.
-다 드실 수까지 따뜻하게 드실 수 있어요.
-이게 돌판에 하시는 이유가 따로 있었구나.
-그렇죠.
-고기를, 이것도 아주 그냥 탱글탱글하다.
-좋습니다.
-이렇게 뜬 다음에.
-그다음에 소스를 좀 붓고.
-소스를 딱 붓고.
-콩나물을.
-콩나물을 좀.
-한 젓가락을 뜨셔서 얹어놓고.
-얹어서.
-그리고.
-이렇게.
-맞습니다. 대구찜은 하얀 쌀밥하고 식사를 하실 때 가장 맛있습니다.
-하얀 쌀밥.
-그렇죠. 방금 뭐라고, 방금 이게 뭐라고요?
-상주 쌀이에요, 상주 쌀.
-쌀.
-경북 상주 쌀.
-쌀.
-쌀.
-쌀.
-깜짝 놀랐어요. 이 살도 그래서 이게 무슨 쌀이지. 쌀.
-좀 이해를.
-아닙니다, 아닙니다. 농담, 농담입니다.
-(해설) 제가 좀 짓궂었나요?
-너무 맛있는데요.
-괜찮죠?
-이게 진짜 밥을 부르네.
이 생선 탱글탱글한 이 식감도 그대로 살아있으면서 콩나물 안에 넣으면 숨이 죽는다고 해야 되나?
그렇게 되는데 이거는 풍성하게 맛이 살아있네.
-(해설) 뜨거운 돌판에서 조리하는 대구찜이라 이렇게
상식을 뒤엎는 아이디어를 생각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답니다.
-여기서 장사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이제 10년 거의 다 되어 가요.
-10년. 그런데 원래 고향이 여기서 쭉 사셨던 거예요? 아니면 어디.
-원래 고향은 경북 쪽이에요, 경북.
-경북이세요?
-그리고 이제 제가 조선소에 취업하면서 거제도가 온 지가 30년.
-(해설) 23살 무렵 아내와 거제도로 내려온 사장님은
국내 굴지의 중공업에서 20년 넘게 근속한 조선맨이었답니다.
특유의 추진력으로 능력도 인정받았지만 수십 년 좁은 파이프 안을 기어다니다시피 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축나고 말았답니다.
-(해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돌판 찜.
매일 퇴근하면 빈 프라이팬에 모래를 담아 팔이 떨어져라 웍질을 연습했답니다.
그리고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100번 넘게 레시피를 고쳐 썼다네요.
정말 맛있다고 그러더라고.
-제가 먹어본 찜 중에서는 최고의 맛이었죠.
-(해설) 아내의 맛있다라는 한마디에 당당히 창업을 선언한 병길 씨.
하지만 평생을 직장이라고 믿었던 조선소를 그만두겠다는 말에
아내 영숙 씨는 밤잠을 못 이룰 만큼 걱정도 컸답니다.
그런 믿음. 그렇게 한번 해보자. 그냥 그렇게 따라 준 거죠.
-믿음 반, 불신 반이지.
-이쪽에 하나 드릴게요. 공깃밥은 안 드셔도 돼요?
-나중에 볶음밥 먹을 거예요.
-부족한 거 있으면 이야기하세요. 그래서 후회는 되지는 않아요 지금이 즐거워요.
-인생이 한 달 뒤에 틀어볼 수 있는 재방송도 아니고. 맞잖아요.
지나가면 끝이에요. 그걸 왜 후회해. 절대 후회한 적 없어요. 지금도 마찬가지.
-(해설) 따끈한 돌판처럼 온기와 뚝심으로 제2의 인생을 찜하신 두 분.
남은 인생의 생방송도 뜨겁게 직진입니다.
거제면 읍내를 떠나 멋진 섬 풍경이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멋있다. 다리도 예쁘고. 좋다.
-(해설)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거가대교 넘어
역대 대통령들의 여름 별장 저도를 지척에서 볼 수 있는 동네.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입니다. 동네를 걷다 보니 정겨운 풍경이 보이네요.
두 분 뭘 하시는 걸까요?
-안녕하세요?
-(함께) 안녕하세요?
-뭘 탁탁 터시는데 뭐 하시는 거예요?
-깨 터는 거예요.
-깨 털어요, 깨.
-깨 터시는 거예요. 깨를 이렇게 터는구나.
-(해설) 늘상 짜놓은 참기름, 들기름만 먹다가 나무에 열린 깨는 처음 봅니다.
-어머니 되게, 되게 고우세요.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알아맞혀 보세요.
-알아맞혀 보라고요? 가만 있어 봐. 한 일흔아홉? 일흔여덟?
-10년이나 낮게 부르네.
-일흔여덟? 일흔일곱?
-여든아홉.
-여든아홉이시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건강하세요? 이렇게 고우세요?
-나는 건강 하나 보고 삽니다.
-너무 건강하시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은데.
-저요?
-그런데 TV에서는 좀 못나게 나왔는데 엄청 잘생겼는데.
-집에서는.
-만득이, 만득?
-만득이는 아니고 만석이.
-만석이.
-만득이나 만석이나, 뭐. 집이 이 근처세요?
-네, 바로 여기 뒤에.
-그래요? 그럼 더우시니까.
-(해설) 뙤약볕에 마실을 다니는 만석이가 안쓰러우셨는지 초대를 해주셨네요.
이 맛에 제가 동네 마실 다닙니다.
-집이 좋네요. 시원하다, 여기는. 여기는 무슨 사진이 이렇게.
-가족이 많아요.
-어머니, 집에 무슨 가족사진이 이렇게 많아요?
-전부 딸들, 사위들, 며느리들.
-이게 딸 분들, 사위분들.
-1번, 2번, 3번, 4번, 5번, 6번, 7번 아들.
-(해설) 말 그대로 정말 대가족입니다.
-7남매면 몇인 줄 압니까? 49명. 손자, 손녀.
-그럼 할머니 밑으로 49명이 있는 거예요, 지금?
-그렇죠.
-증손자까지, 벌써.
-증손자까지 있지, 그러면.
-대한민국을 가장 빛내시는 분이시네요.
-이것만 봐도.
-훈장 받으셔야겠는데요, 훈장?
-줘야 받지.
-(해설) 그런데 벽에 걸린 사진들이 범상치가 않죠? 다 이유가 있답니다.
-저 앞에 있는 게 그럼 섬 이름이.
-저도.
-저게 저도예요?
-네, 저게 저도예요.
-저도로 보려고.
-저도에서 살았죠.
-원래 저기 사셨어요?
-일생을 바친 섬입니다, 거기가.
-그래요?
-(해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의 여름 별장이 있는 섬, 저도.
할머님은 이곳에 대통령 별장이 완공되기 직전까지 살았던 저도의 마지막 주민이십니다.
섬을 떠난 지 어언 50년.
하지만 할머님의 마음만큼은 단 한 번도 저도를 떠난 적이 없으시답니다.
섬이 한눈에 보이는 이곳에 집을 짓고 매일같이 저도를 보며 눈을 뜨고 또 잠이 드신다네요.
-어머님, 그러면 저 저도라는 섬에 어떻게 해서 들어가시게 되셨어요?
-신랑이 결혼할 때 군인이더라고요.
군인 제대하고 군 복무도 못 하고 아무 취직자리도 없고.
저 섬은 부지런하면 살거든요. 톳 캐고, 미역 캐고, 이런 거거든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들어간 거예요.
-그렇구나.
-(해설) 신접살림을 시작한 부산에서 먹고 살기 어려웠던 할머님과 남편은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저도로 들어가셨답니다.
행여 자식들이 배를 곯을까 밤낮 없이 앞만 보고 살았던 세월.
덕분에 형편도 나아지고 식구도 더 느셨다네요.
-그 남편분이 어디가 그렇게 좋으셔서 그래서 자식을 일곱이나.
-아들을 낳으려고.
-아들을 낳으려고 그랬죠.
-옛날에는.
-그랬어, 옛날에.
-난 또 섬에 사시니까 밤 되면.
-섬에서 애만 낳았다고.
-낮에도 바쁘셨고 밤에도 바쁘셨겠네요.
-바쁘지.
-많이 생각나시겠어요.
-생각나지. 참 좋았습니다. 나보다 사람이 더 좋았어.
-(해설) 할머님은 지금도 사람 좋았던 남편이 눈에 선하시답니다.
-그때가 11시에, 저 애를 밤 11시에 낳았는데 그 노를 저어서 할아버지들 고기 낚는,
그때 고기 낚을 줄도 모르고 처음 들어가서 그 고기를 가져와서 미역국을 끓여주고 그런.
-(해설) 몸만 부지런하면 풍족했던 섬 살림.
할머님과 남편은 물질부터 고기잡이에 농사일까지.
자식들을 위해 참 열심히도 사셨답니다.
-이건 군인이고 나고 우리.
-넷째 딸.
-넷째 딸이고 그러네. 군인, 이거는 군인. 저도 바닷가에서 찍은 거다.
-이건 선창이네, 선창. 물 때 있는 데.
-물 때.
-부둣가, 부둣가.
-바다, 그래, 바닷가.
-물 때 들어오는 데 거기네.
-바닷가.
-수병들하고.
-항상 생각나죠. 즐거웠던 일도 생각나고 모여서 앉아서.
거기는 할 일이 없으니까 우리 형제들끼리 모여서 복닥복닥하면서 살았고.
-(해설) 가족 외에는 의지할 곳 없었던 외로운 섬 생활.
덕분에 할머님의 대가족은 지금도 이렇게 화목하시답니다.
가족의 추억이 남아 있는 섬을 아쉽게 떠나긴 했지만
지금도 할머님은 매일 바다를 건너 저도에 가신답니다.
동네 분들과 함께 별장 주변을 돌보는 소일거리를 하신다네요.
-우리가 그 환경 정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손 볼 데, 우리가 가야 그 섬이 좋아진다.
-(해설) 이렇게라도 매일 저도에 갈 수 있어 행복하시다는 할머님.
할머님에게 저도는 어떤 의미일까요?
-좋았지, 뭐. 힘들었던 거 없다, 다 좋더라.
마음의 고향이다, 정말. 한 평생인데, 내가.
-(해설) 거제도까지 마실을 왔는데 바다 구경은 하고 가야죠.
-멋있다.
-(해설) 아침부터 날씨가 오락가락 심상치 않더니 바다 길이 그만 막혀버렸네요.
저기 유람선 위에 누가 계시네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갑판 위에서 뭐 하고 계세요?
-지금 폭풍주의보가 내려져서 배가 운항을 못하니까 이렇게 날아가면 안 되니까 고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오늘 바람이 너무 많이 분다 했더니 기상이 안 좋아서 배가 안 뜨나요?
-네.
-그렇구나. 혹시 배가 뜨나 싶어서 왔는데. 저 안에 구경 좀 해도 될까요?
-그러면 이쪽으로 올라오십시오.
-이렇게.
-(해설) 아쉽게 그냥 가나 싶었는데 운 좋게도 유람선에 들어가볼 수 있었답니다.
-배가 슈퍼스타들이 많네요.
-그렇죠.
-저기 배 이름들이 다 스타네.
-스타는 다 있어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맞네요, 맞네.
-안녕하십니까?
-진짜 확실하게 알겠다.
-그래요? 멀리서 보고도 아시겠어요, 누구인지?
-그때는 모르겠더니 이제 보니까 확실하게 알겠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가만히 있어 봐, 안으로 넘어가야 하죠?
-(해설) 그런데 이렇게 호탕하게 저를 반겨주시는 이분은 대체 뭘 하시는 분이실까요?
-저기 여기 선장님이세요?
-옛날에는 했죠.
-옛날에는 선장님. 지금은 선장님 아니세요?
-지금은 선주.
-안녕하십니까? 선장님 생활은 몇 년 하시고 지금.
-저는 배는 한 42년 탔는데 이 유람선만 한 26년.
-그렇게 안 보이시는데.
-쭉 유람선은 선장만 했죠.
-그러셨어요. 사실 유람선 타고 저기 뭐야, 여기 앞에 섬들도 많고 해서 구경할 수 있나 싶어서 왔는데
유람선이라도 그러면 이번 기회에 한번 구경 좀.
-바다는 못 나가도 확실하게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쪽에는 뭐예요, 저기는?
-확 트이죠, 그래요. 여기는 이제 예구마을이고 저기는 내도.
-내도.
-내도.
-(해설) 원래 이 배는 구조라항을 출발해 해금강과 외도를 일주하는 유람선이랍니다.
-해금강을 먼저 가서.
-해금강.
-해금강 선상 관광, 해상관광이라고 하죠.
그래서 해금강을 둘러서 외도를 건너서 외도에서 2시간 정도 섬에서 머무르고.
-정박하고.
-관광을 즐기시고 다시 구조라 들어올 때는 한 15분이면 바로 들어옵니다.
-(해설) 거제도 해금강과 외도의 수려한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이 유람선은 구조라해수욕장에서 빠질 수 없는 인기 코스 중 하나랍니다.
날씨만 좋으면 그림 같은 해금강의 빼어난 경치를 바로 눈앞에서 즐길 수 있는데요.
아쉽게도 해금강 투어를 가지 못한 저를 위해
오늘은 특별히 선주님이 기관실 안을 구경시켜주신답니다.
-여기 있네요.
-마이크.
-아, 아, 아.
-바로 나오네.
-잘 왔다! 함 보자, 가서. 안전 방송을 딱 틀어놓고 틀기 직전에 이제 제가 습, 습, 습.
세 번을 하죠. 뒤에 있는 배들은 좀 피해달라. 나는 뒤에 눈이 안 달렸다, 이런 뜻이죠.
-(해설) 은퇴한 지가 오래되셨다는데
아직도 실력이 여전하시죠.
알고 보니 선주님은 지루하고 딱딱한 유람선 안내 방송을 재미있게 바꾸어내신 장본인이시랍니다.
-여기 있는 사투리 말. 뭐 예를 들어 좋나 이렇게 물어보잖아요. 좋나!
이렇게 물어볼 수도 좋나, 좋나! 물어볼 수도 있고 이런 것을 이제 내가 만담처럼 하다 보니까
그것도 또한 멀미하는 데는 딱이더라고요.
-그렇죠, 그렇죠, 그렇죠.
-웃다 보면 멀미도.
-그렇죠, 그렇죠, 맞아요, 맞아요.
-잊어버리고 이러니까.
-잊어버리니까. 마이크 켜시고 원래대로 한번 보여주시죠. 간다.
-습습습~ 여러분 앞쪽에 펼쳐지는 이 섬이 해금강입니다.
이 해금강 원래의 이름은 닳고 닳은 그러한 섬이었습니다만 쇠 금, 구슬 강, 바다의 금강산이 되어버렸습니다.
-귀에 착착 감기네, 그냥 착착 감겨.
듣다가 보면 아예 멀미를 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게 그냥 싹 시간이 금방 순삭이네요.
-그렇죠, 그렇죠.
-(해설) 이렇게 매력적인 캐릭터 놓칠 수 있나요? 한 수 배우고 가야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고 부 부~ 마이크 나오나? 부 부 부 부~
-잘하네.
-승객 여러분, 승객 여러분, 승객 여러분, 타신 걸 대단히 환영합니다.
이제부터 해금강, 내도, 외도 관광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안전에 유의하시고 본 유람선 출발합니다.
-역시 약장사 같다. 완전히 다 걸었어.
-이렇게, 이렇게.
-(해설) 원작자 마음에 드셨다니 뿌듯합니다.
해양 관련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주님은 상선의 외항선원으로 일을 하셨답니다.
20년 넘게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재미난 경험도 원 없이 하셨다는데요.
덕분에 고향에 돌아와서도 남들과는 다른 파격적인 시도를 할 수 있었답니다.
그런 방식으로 하는데 저는 조금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우스갯말, 만담 이런 쪽으로 가려고 노력을 했고 그리고 해금강은 전설 따라 삼천리.
무엇보다도 승객들이 내가 안전하다는 걸 느껴야 마음껏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출발과 동시에 저는 안전 방송을 저 나름대로 그 시절에는 나온 게 없었지만 만들어서 활용을 했습니다.
들어가십시오, 저쪽에. 기관장님, 고생합니다.
-(해설) 배안 가득 손님들을 태우고 한 시절 참 신나게도 거제 앞바다를 누볐다는 선주님.
은퇴를 한 지금도 여전히 고향 구조라를 지키며 자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신답니다.
-고향은 제가 떠나지 못하는 곳이다, 이런 생각이 많이 들고요.
제가 어렸을 때 자랐던 곳이기 때문에 행복했던 그런 추억을 가지고 있는 곳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요.
-(해설) 사랑하는 고향에서 뜨겁게 타오를 선주님의 멋진 황혼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해설) 거친 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자기만의 뚝심을 지켜가는 분들과 함께한 거제도 마실.
오늘도 참 행복했습니다.
-여기 웬 승마장이 있어?
-경주 퇴역마예요, 경주마.
-얘도 경주마였던 친구예요?
-네, 경주마였습니다.
-차 타고 또 이동하셔서?
-대야도 팔고 빗자루도 팔고 하려고. 장사 시작합시다.
-양봉장이에요?
-벌통 하나가 사람 사는 거하고 똑같아요.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네요.
벌써 26년을 이 길을 쭉 파오신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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