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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 (김종대 / 부산대첩기념사업회 명예이사장)

등록일 : 2022-07-05 09:42:38.0
조회수 : 342
-부산 시민의 날이 10월 5일인데요.
그 유래가 이순신 장군과 관련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가덕도와 영도 등 지금의
부산 앞바다에서 왜선 100여 척을 물리친
부산 대첩이 바로 1592년, 9월
1일인데요.
     
이것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10월 5일이
되고요.
부산시는 1980년도부터 이날을 부산
시민의 날로 정해 왔습니다.
오늘은 성웅이기에 앞서 인간 이순신을
만나보겠습니다.
-난중일기를 쓸 때 그 심정, 시작할 때
심정.
이순신이.
2월에 부임하거든요.
임진 전 년에, 1591년 2월에 부임해서
임진년 1592년 4월에 전쟁이 일어난단
말이에요.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것은 1591년
2월인데 왜 그때부터 일기를 안 쓰고 또
전쟁은 1592년 4월인데 전쟁이 일어날
때부터 왜 안 쓰고 1592년 1월 1일부터
썼을까.
-그것도 묘한 거네요.
-그거는 내가 쭉 책을 쓰면서도 여기에
대해서도 답을 뭔가 하나 내보는 것이
독자들에 대한 의무 아니겠느냐를 쭉
간직했는데 이번에 어렴풋이 답을 쓴 게
기억이 나고.
두 번째는 이거는 누구나 다 의문을 가질
것인데 명량 영화에도 내가 조언을
하면서 똑같은 의문을 제기했는데 원균이
거북선도 두 척, 판옥선도 백수십 척,
이순신이 그만큼 한산도에 있을 때
준비한 거죠.
그걸 안 봤습니까?
총포, 화약, 뭐 군량미, 군사도요.
1만 수천 년명을 봤습니다.
그런데 7월 16일에 칠천량에서
다 잃잖아요.
거북선 두 척도 다 불태워 버리고 배설이
12척 가지고 도망간 그 12척만 남아
있지, 나머지는 배는 다 못 쓰게 되고.
원균 스스로도 죽고 자기도 죽고 많은
장수가 수사가 죽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8월 3일,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고 그러면 이순신이
그것을 수용해서 회령포 쪽에서 12척을
발견하고 건집니다.
지금 12척 가지고 당장 싸움을 할 준비가
안 돼 있잖아요.
우리의 대군을 물리친 왜군은 서해를
향해서 지금 오고 있고 회룡포에서 이제
일단은 도망간다는 게 적절한
표현입니다.
서해 쪽으로, 일단은 그렇게 도망갈 때
이순신 심정은 어디에서 내가 죽어야 할
것인지를 생각했을 것 같아요.
-(해설) 헌법재판관을 역임은 김종대
법관이 정신적 사표인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정리한 평전입니다.
세 번의 파면과 두 번의 백의종군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그의 충의의 저변이
무엇인지를 분석합니다.
-더 이상 물러갈 수 없는 곳이
명량입니다.
거기에서 특수한 지형에서 내가 죽으면
죽지 않고 싸우면 적에게 가장 많은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자기가 살고 이긴다는 생각은 나는
없었다고 봐요.
그래서 전쟁을 했는데 이겼잖아요.
12척이 133척을 깼잖아요.
133척이라는 말은 뒤에 사실 400척이
있습니다.
왜 133척이냐, 명량이 진을 치니까 이
좁은 길로는 133척밖에 못 와요.
그런데 133척을 깬, 10:1를 항상 해본
게임이거든.
그래서 이순신도 거기까지는 누구나
이순신 공부 첫 단계에서 공부하는
것인데 문제 마지막 단계에서 보면
이순신은 도망병 아닙니까, 12척에 탄
사람이.
그런 사람이 도망병 장수에 도망병으로
모여진 12척이 장수는 또 도망가고 이
군사들을 데리고 승승장구해 오는 저
적을 어떻게 치느냐.
-거기에서 제대로 리더십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그렇죠, 이순신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도망병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어서
저쪽을 칠 수 있도록 만들었느냐는 거죠.
장수 한 사람이 바뀌면서 군대를 이렇게
변화시킬 수 있느냐.
전력은 원균이 가졌던 전력의 20분의
1밖에 안 됩니다.
그 20분의 1, 이게 또 20분의 1도 그냥
병력이 아니고 도망간 병력이야.
정신 자세가 이렇게 된 병력을 어떻게
하느냐.
그래서 그것을 저는 회룡포 침식의
침사에서부터 내일, 내일 명량해전할 때
오늘 밤까지 그 역사를 읽고 또 읽으면
재미난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해설) 이순신은 완승을 눈앞에 두고도
육지에 남아있는 백성의 안위를 위해
적의 배를 몇 척 남겨둡니다.
이순신 전략의 종점이나 애민정신, 즉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내 공부는 그렇습니다.
이순신 리더십의 뿌리가 무엇이냐.
이순신이 그 역경 속에서도 23전 23승을
하고 우리 역사상 성공한 인물 중에서
이순신만큼 성공한 사람도 없지 않느냐,
성공이라는 국민은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이거든요.
이순신은 세운 목표를 달성했죠,
왜냐하면 이순신이 세운 목표는 적어도
군인으로 들어갈 때에는 왜적이 침략했을
때는 구국이었습니다, 구국.
나라를 구한다는 것이었고 북방에 근무할
때는 여진족으로부터 나라를 구했고.
남쪽으로부터는 왜적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는데 이 구국이라는 목적을
그 악조건 속에서도 어떻게 이 사람은
이뤄냈느냐, 그 요체가 무엇이냐.
그것은 결국은 외면에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이순신이라는 사람의 내면에 있다.
원균과 이순신을 외면으로 비교하면
원균이 훨씬 더 강할 수 있지만 내면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은 범접할 수 없는
이순신의 내면적 단단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고 찾아본 것이 이제 제가
그것이 이순신를 성공으로 이끌었을
테니까 그것이 선공후사, 왜
선공후사했냐, 이순신은.
솔선수범, 왜 솔선수범을 했느냐.
신상필벌, 왜 이순신은 신상필벌을 했냐,
그러면.
이유를 따져서 계속 물어보자.
찾을 수 없을 때까지 더 이상 그거는
이유가 없겠다, 하는 것까지 가보자했을
때 제가 찾아낸 이제 더 이상 이유가
없다는 게 기층적 두 가치가 있다고
하는데 그게 사랑과 정성이라고 봤고
거기에 덧붙여서 중층적 가치가 정의과
자력이라고 봤습니다.
사랑과 정성이 극대화했을 때 나는
기적을 만들어낸다고 보거든요.
그다음에 이 기적을 만들어내되 이순신은
정의의 길에 어긋나면 기적을 사양하고
자력의 길이 아니면 정의를 사양한다.
-그렇죠.
-왜 그러냐면 정의로 길의 안 가서
성공한 것은 언젠가 무너진다는 것을
알았다는 거죠.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읽을 때부마다
그 당시 무능했던 조정과 왕이 오히려
적보다 이순신을 질투하는 마음이 더
컸음에 분노하고 또 화가 치미는데요.
하지만 장군은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모함 세력을 원망하지도 또
격분하지도 않았죠.
진실로 그 마음에 도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가슴 속에 이순신를 품고
산다면 비록 부조리와 모순에 삶일지라도
분명 이 시대의 삶이 행복해지리라는
확신을 가져봅니다.
행복한 책 읽기, 황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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