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유산 10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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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유산 100선 - 조선의 화력, 임진왜란과 총통(銃筒)

등록일 : 2024-07-08 14:35:18.0
조회수 : 1083
-(해설) 1592년 5월.
야욕을 드러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
7년간 지속된 이 전쟁은 훗날 임진왜란으로 기록됩니다.
진주성은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 중 하나입니다.
임진왜란 동안 조선의 놀라운 무기는 왜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전쟁과 함께한 조선 화력의 역사, 지금 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임진왜란 전쟁사 특성화 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이 위치한 진주성.
진주성에는 아픈 역사가 남아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그해 10월.
진주 목사 김시민과 3800명의 조선인은 2만 명의 왜적을 물리치며 진주성을 사수했습니다.
목숨을 내줄지언정 물러나지 않았던 진주성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낸 조선의 무기.
조선군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강력한 신형 무기들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진주대첩에서 큰 공을 세운 다양한 총통도 그중 하나입니다.
-좌수사 영감.
200보까지 접근하였소이다.
-방포하라.
-방포하랍신다.
-방포하라!
-한 발 더.
-방포하라!
-(해설) 박물관에는 다양한 무기가 전시되어 있는데요.
이 가운데 화약을 사용한 무기, 총통이 있습니다.
-(해설) 현자총통은 중소형 화포입니다.
무게 약 50kg, 길이 79cm, 포구 7.5cm.
기존 화포와 비교했을 때 화약은 4배 이상 절약하면서도 강력했던
현자총통은 여러 전투에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해설) 이순신 장군과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전라우수사 김억추 장군은
현자총통은 해전에서 가장 유용하게 쓰이는 무기라고 기록했습니다.
-150보.
현자포 준비.
-(함께) 현자포 준비.
-방포하라!
-(해설) 총통의 외관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대나무 마디 모양의 죽절.
죽절은 총통의 크기 등을 논할 때 죽절의 개수로 표시하는 것으로 보아
규격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총통에는 생산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해설) 430여 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진주목사 김시민가 진주성 사람들은
성을 에워싼 2만 명의 왜적과 마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총통도 진주성을 향해 달려드는 왜군을 향해 거대한 불을 뿜었을 것입니다.
-(해설) 총통에 대한 기록은 고문서에 잘 남아 있습니다.
특히 왜선이 포구에서 나오지 않았던 안골포 해전의 기록을 보면
조선군이 대장군전을 쏘며 왜선을 공격했다는 부분이 나오는데요.
대장군전은 천자총통의 포탄 대신 사용했던 거대한 화살입니다.
현자총통과 천자총통은 100보와 200보 사이의 거리에서 더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특히 거대한 통나무에 무쇠 촉을 끼운 대장군전은 배를 부수는 위력을 보였는데요.
이런 조선의 무기에 왜군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설) 조선 시대 병서, 신기비결에는 각종 화약 무기 제작법이 담겨 있는데요.
총통과 관련된 내용도 있습니다.
어떤 재료를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도 기록돼, 그 위력을 짐작해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제작된 현자총통 중 보물로 지정된 것은 국립진주박물관이 소장한 현자총통이 유일합니다.
-(해설) 임진왜란 중이던 1596년 7월.
서울 장인 이춘회가 만든 국립진주박물관의 현자총통은 조선 화력의 역사를 간직한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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