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유산 10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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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유산 100선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그린 화가 ② 동래부 화원

등록일 : 2025-04-28 17:33:17.0
조회수 : 236
-(해설) 왜관이 있어 대일 무역의 중심지였던 부산.
조선 후기 부산 동래는 평양과 더불어 지방 화단의 존재가 확인되는 유일한 지역이었습니다.
활동하는 화가도 20명 이상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중앙의 유명 화가 못지않은 역량을 가진 동래부 화원들은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가기도 했습니다.
조선 후기. 한일 회화 교류의 중심지인 부산에서 꽃 피운 동래부 화원.
그들의 눈부신 활동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며 오늘날 더욱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동래는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유일한 대일 외교 및 교역 창구인 왜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통신사가 중단된 시기에는 왜관을 통해 조선 화가의 그림을 요구했습니다.
동래부 화원들의 활동에는 이런 지역적, 역사적 특성이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해설) 동래부 화원들은 조선통신사 수행 화원인 유명 화가들이 부산에서
제법 오랜 시간을 체류하게 되자 중앙화단과 직접 소통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해설) 변박은 부산 화단의 싹을 틔운 인물입니다.
변박은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관청인 무청 소속이었지만 문자에 능하고 그림을 잘 그린 것으로 유명했는데요.
부산진순절도와 동래부순절도를 배껴 그린 후 그의 평판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소문을 들은 조선통신사의 정사인 조엄은 변박을 데리고 대마도로 향하는데요.
도착하자마자 일본 지도를 그릴 것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해설) 매화는 선비의 의지와 취향을 잘 표현할 수 있어 크게 사랑받는 소재였습니다.
이 그림은 늙은 매화 가지에 새로 난 줄기에서 매화꽃 봉우리가 피어나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비틀린 가지와 위로 쭉 뻗은 줄기를 대조적으로 그린 것은 조선 후기의 매화도 화풍을 따른 것입니다.
이 그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변박의 아들인 변지한이 그린 화조도입니다.
변지한 역시 동래부 화원에서 대일 교역용 회화를 주로 제작했습니다.
-(해설) 변지한의 그림에서 조선국이라고 적힌 것은 일본으로 수출됐음을 뜻하는데요.
변지한의 작품은 일본에도 여러 점이 남아 있습니다.
부산의 김홍도라고 불린 화원도 있습니다.
바로 송암 이시눌입니다.
이시눌은 군사와 관련된 일을 맡다 보니 전쟁 기록화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해설) 그림 하단에 보이는 조선 송암이라는 낙관이 이 작품 역시 일본 수출용으로 그려졌음을 증명합니다.
그림은 근경과 원경, 2단으로 나뉘는데요.
원경에는 왼쪽으로 치우친 주산과 낮은 언덕이 그려져 있습니다.
근경에는 작은 집과 비스듬한 언덕에 나무 몇 그루와 사람이 보입니다.
이러한 화풍은 18세기 문인화가들이 크게 유행시킨 남종 화풍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동래부 화원들은 지역의 역사적 맥락을 그림에 담기도 했습니다.
-(해설) 18세기 후반 그림의 도시였던 부산의 특별한 역사.
그 이야기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그린 동래부 화원들이 그림으로 전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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