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유산 10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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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유산 100선 - 조선의 기록 오희문 쇄미록, 김광려 삼남매 화회문기

등록일 : 2025-05-26 13:20:42.0
조회수 : 860
-(해설) 고조선의 단군 신화가 적힌 최초의 기록 삼국유사.
고려 시대 전반의 내용을 기록한 고려사.
조선 왕조 500년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거기에 전쟁 중에도 적어 나간 개인의 일기까지.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멈추지 않고 기록에 진심을 다해 온 민족인데요.
여기 또 다른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의 역사와 문화, 생활을 있는 그대로 담은 글.
그 빛나는 기록을 펼쳐봅니다. 서부 경남의 중심 진주.
도시를 관통해 흐르는 남강과 강을 굽어보며 우뚝 서 있는 진주성은 서슬
퍼런 진주의 상징이면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논개의 얼이 서린 곳인데요.
이 호국 충절의 성지에 국립진주박물관이 있습니다.
-(해설) 임진왜란 특성화 박물관답게 당시 조선군이 사용했던 화기 유물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승자총통은 가장 진화된 무기이자 대표적인 소형 화기로 전쟁에서 큰 몫을 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서서히 숨통을 조여 단숨에 함락시킬 것이다.
여기서 물러나면 다음은 없다. 한 놈도 들이지 마라.
-(해설) 기개와 전술로 진주성을 호령했던 김시민 장군.
박물관에는 그 영광의 기록이 전시돼 있습니다.
선조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이들에게 내린 교서로 공적과 포상 내역 등이 기록돼 있습니다.
박물관에는 교서 외에도 임진왜란에 관한 또 다른 기록이 있는데요.
오희문의 피란 일기, 쇄미록입니다.
-(해설) 해주 오씨 13대손으로 태어나 학문에는 뛰어났지만 과거시험이나 벼슬과는 인연이 없었던 오희문.
남행길에 올랐다가 왜란을 만나 피란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해설) 거적으로 덮어둔 어미의 시체 곁에서 두 아이가 울고 있다.
뼈를 묻으려 해도 땅을 팔 도구를 얻을 수 없다고 한다.
슬프고 탄식스러움을 이길 수가 없다.
전쟁의 참상은 물론 군대 증발이나 군량미 조달 등 9년 3개월 동안 꼼꼼하게
적은 일기 덕분에 수백 년이 흐른 지금에도 그날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데요.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 김광려 삼 남매 화회문기는 조선의 또 다른 모습을 살펴보게 됩니다.
-(해설) 당시에는 토지와 함께 노비도 재산에 포함됐기 때문에 하회문기에는
배분받는 노비의 수도 기록돼 있는데요.
재산 분배는 나이에 따라 장남, 딸, 차남 순서로 하고 각자 이름 아래 수결을 했습니다.
단 출가한 딸 김 씨는 사위인 한건이 대신 수결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엄격한 신분 사회였지만 적어도 유산 분배에서만큼은 아들과 딸이 평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선 전기의 재산 상속 관행들은 17세기 후반, 18세기로 넘어가게 되면
대체로 장남이 재산을 상속한다고 하는 방식으로 바뀝니다.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시대의 재산 상속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왜 이렇게 됐느냐 하면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조상에 대한 제사를 장남이
모셔야 한다고 하는 그러한 관념이 조선 후기에 지배적으로 생겼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설) 남겨진 기록이 없었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과거의 역사와 문화.
이것이 바로 기록이 가진 힘일 것입니다.
전쟁 중에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선조들의 기록.
우리가 배우고 이어 나가야 할 진정한 민족정신이자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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