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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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산책

등록일 : 2017-11-04 12:19:40.0
조회수 : 259
-KNN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대연 성결교회 임석웅 목사입니다.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여러분과 가정과 자녀,
하시는 일들 위에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우리들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제주 공항에서 겪은 일입니다.
당일 활주로에 문제가 생겨서 여러
비행기가 제시간에 뜨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항에 대한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마침 거기에 수학여행을 다녀가는 남녀
중학교 수백 명도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무엇이 그렇게 재밌는지
깔깔대고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말 그대로 청소년, 아주 풋풋하고 싱싱한
모습이었습니다.
마침 그 아이들 옆에 빈자리가 있어서
제가 그 자리를 앉으려고 가다가 본의
아니게 그 아이들의 대화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겁니다.
저는 그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거를
듣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의 대화 전부가
욕에서 욕으로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말에 욕이 들어가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였었습니다.
정녕 매스컴에서 청소년들의 언어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청순하고 예쁜
여학생들의 입에서 그런 지저분한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들이 하는 욕은 저의 경우에는
평생의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욕이었습니다.
방송에서 흉내 내기도 부적절하고 또
마차 제 입이 더러워질까 봐 그런 말은
담고도 싶지 않은 그런 욕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친구의 어머니를 성적으로
모욕하는 욕이 있었고요.
그러한 욕을 듣는 친구도 익숙해서
그런지 아무렇지 않게 보였었습니다.
제가 볼 때에는 그 욕들이 무엇이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습관적으로
입에 배어서 그런 욕들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런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안타까웠습니다.
왜냐하면, 말은 그 자체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의미를 알고 하든, 모르고 하든 자신이
하는 말에는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말로 1000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1000냥이라는 엄청난 금액도 말만
잘하면 갚을 수 있다는 뜻이죠.
또 옛날 어르신들은 자녀들이
경망스러운 말을 하거나 부정적인 말을
하면 입방아 찧는다라면서 책망을
하시곤 했습니다.
자기가 한 말대로 된다는 것을 인생
경험을 통해서 아셨기 때문에
말조심하라고 그렇게 책망하신 것이죠.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한 말대로 됩니다.
마치 누에 자기 입에서 실을 내뱉어서
그거로 고치를 짓고 그 안에 자기가
갇히는 것과 똑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십니다.
소, 돼지, 말 등 여러 짐승을 만든
다음에 마지막에 사람을 지으셨는데
그러한 것들을 지으신 분이 한 분
하나님이시고 그러한 것들을 지은
재료로 흙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당연히
비슷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좀 더 우등하냐,
열등하냐의 차이가 있었겠죠.
음식을 먹고 또 소화를 시키고 배설을
하고 이런 생리학적인 구조에
있어서는 별다른 바가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의학이 발달한 요즘은
무균실이라는 곳에서 키운 돼지의
장기를 사람의 몸에 이식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생리학적 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이처럼 사람은 하나님이 지은 피조물
중의 가장 탁월한 존재인 거는
맞습니다마는, 근본적으로는 다른 짐승과
별다를 바가 없는 것이죠.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성서 창세기 2장 7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 지라.
짐승과 사람의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만 유일하게 자기의
영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사람은
영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인격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다른 짐승과 다른 것은 바로 그
사람 안에는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영으로 사람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만일 사람들이 인격적인 교제를 나눌 수
없다면 인간은 너무나 외로운 존재가
되고 말았을 겁니다.
서로 인격적인 교제가 가능했기 때문에
서로 돕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힘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서로 얻는
것이죠.
그런데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서로 인격적인
교제를 나눌 때 사용하라고 주신 도구가
말, 언어입니다.
이 말이 인격적인 교제의 필요한
도구라는 것이죠.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축복하고,
위로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말을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사랑하고, 축복하는
데 써야 됩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
청소년들이 이 말을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데 씁니다.
게다가 자기 인생을 저주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합니다.
안 됩니다.
말 한대로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전에 어떤 글을 보니까 가수들은 많은
경우에 자기가 부른 노래의 가사처럼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죽음을 노래한 가수가 일찍 죽기도
하고요.
사랑의 이별을 노래한 가수가 곧 사랑의
이별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왜 이처럼 사람은 자기가 한 말대로
되는 걸까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사용하신 도구가
말이었습니다.
사람이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생겼고요.
공중에 새가, 물속에 물고기가 있으라
하면 그대로 되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말에는 권세,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 말의 권세를 우리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겁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는 말에도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권세를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사랑하는 용도로 써야 됩니다.
저주하는 데 사용하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대로 우리
청소년들이 아무렇지 않게 이 말을
친구를 저주하고 자기를 저주하는 데
사용하기 때문에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고
문제가 많다고 합니다.
저는 문제가 많다기보다는 한 가지의 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 한 가지 문제만 해결되면 다른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거죠.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말의 문제입니다.
이 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려면 국민들의
언어가 달라져야 합니다.
지저분한 욕이 사라지고 부정적인 말이
사라져야 합니다.
저주하는 말이 없어져야 되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비판하고, 정제하는
사람이 사라져야 합니다.
한동안 젊은이들 사이에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지옥이라는 영어 단어 헬에 우리나라를
의미하는 조선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만든 유행어입니다.
그대로 표현하면 지옥 같은 우리나라
그런 뜻이겠죠.
과거에 선조들은 조국과 부모와도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다
이렇게 부르면 그것은 스스로 우리의
부모와 같은 조국을 저주하는 꼴이 되는
겁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까 세계 여러 나라를
가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게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을 욕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사람들밖에 없더라고요.
전 세계 모두가 하나 같이 대한민국의
발전을 놀라워합니다.
부러워하고요.
다 칭찬하고 배우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사람만
대한민국을 저주하고 욕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겁니다.
고쳐야 합니다.
저는 앞에서 말씀드린 그 청소년들을
보면서 이 아름다운 청소년들이
어쩌다가 입에 저런 말을 담게 되었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그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아주
양복을 잘 차려입은 점잖은 아저씨 몇
분이 들어왔습니다.
옆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며 하는 그 대화 속에는 정말 듣기
거북한 욕들이 많이 섞여 있었습니다.
옆 테이블에는 초등학생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 부모들이 아이들의 귀를 가리는 거를
보면서 제가 그 아이들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양복을 번지르르하게 입고 비싼
넥타이를 찼다고 해서 신사가 아닙니다.
말은 그 사람 속에 있는 것이 겉으로
나오는 것이죠.
말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공항에서 만난 그
중학생들이 그 지저분한 욕을 어디서
배웠겠습니까?
어른들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어른들이 만든 폭력적인 영화를 보면서
그러한 것들을 배웠겠죠.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탓할 수 없습니다.
내 자신부터 바뀌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 사무실에서 말의 순화가 있어야
합니다.
미래는 항상 지금의 작은 변화로부터
달라지는 것입니다.
말만 바뀌어도 내 인생의 미래가
바뀌고요.
내 자녀의 미래가 달라집니다.
말만 바뀌어도 집안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대한민국이 좋아집니다.
어떤 사람이 취업을 위해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면접관이 그 사람을 보고 약간 조롱하는
말투로 물었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아주 눈동자가 흐리멍덩하니
머저리처럼 보이는구먼.
자네는 머저리와 바보가 어떻게 다른지
아는가?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당연히 불쾌해하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태연하게 대답합니다.
네, 면접관님.
그런 결례되는 질문을 하는 쪽이
머저리고요.
그런 머저리 같은 질문에 대답을 하는
쪽이 바보입니다.
그 대답에 면접관은 감탄을 하고 당연히
그 사람을 합격시키게 된 거죠.
그렇습니다.
지혜로운 대답이 면접관을 감동시킨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어떤 말을 해야
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말을 지혜롭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말을 지혜롭게 한다는 것은 어떤
걸까요?
구약성경 잠언 25장 1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그렇습니다.
지혜로운 말은 경우에 합당한 말입니다.
경우에 합당하다는 것은 그 자리에 딱
맞는다는 뜻이겠죠.
그러려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거 이것을
배려라고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서 배려해주는 지혜로운 말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식당에서 봉사해주시는 그분들의 그
힘든 것을 배려해서 그분들에게 아주
다정하게 말을 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택시를 탈 때에도 하루 종일 힘든 일을
하시는 분들의 그 수고로움을 배려해서
그분들을 격려하고 힘을 실어주는 말을
해야 될 것입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 말을 지혜롭게 하지
못해서 자꾸 문제를 일으킨 분이
계셨습니다.
제가 그분을 만나서 왜 그런 말을 하고
다니세요, 이렇게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목사님, 제가 없는 말
한 거 있습니까라고 되묻는 것
아닙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있는 말만 하기는
하셨습니다.
없는 말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또 그래도 조심하셔야죠.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목사님, 제가 언제 틀린 말 한 거 본 적
있습니까?
가만히 또 들어보니까 맞는 말만 하기는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있는 말이라고 하고 맞는 말이라고 하는
것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지혜로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있는 말이라고 하고 맞는
말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한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된다면 그 말을 꿀꺽 삼킬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덮어주는 말, 감싸주는 말을
하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말에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참 재밌는 것은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하는 거를 가만히 들어보십시오.
두 시간을 대화하든, 세 시간을 대화하든
그 대화한 것을 정리해보면 결국 두
가지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잘났다.
나 좀 알아봐 달라 그거입니다.
그런데 한참 대화하다 보면 거기에
자기보다 잘난 사람이 있다는 거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 은근히 그때부터 대화가
바뀝니다.
그 사람을 깎아내리는 말을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심보입니다.
우리가 많은 시간을 이야기해도 결국은
이 두 가지, 자기 자랑 아니면 남을
깎아내리는 말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남을 감동시키는 말을 해야 합니다.
이 말이 정말 경우에 합당한 말인지 잘
생각해서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이 누군가를 배려하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은 감동을 합니다.
그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그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죠.
그렇게 상대를 배려하는 말을 하면
상대에게서도 좋은 말이 돌아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욕이 하면 욕이 돌아오고요.
축복의 말을 하면 축복의 말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바꾸는 거, 지난번 시간에는
우리가 저녁에 조금 일찍 귀가해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서 가정을
회복해야 대한민국이 달라진다고
말씀드렸죠?
오늘은 우리의 말을 바꾸자는 것을
제안하는 겁니다.
나부터 남을 칭찬하고, 축복하고,
격려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상대를 배려하고 감동시키는 말을 하면
나에게도 감동할 일이 많이 생기는
겁니다.
항상 큰 변화는 지금의 작은 변화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죠.
KNN 시청자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축복하는 말, 감사하는 말로
사용해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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