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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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산책

등록일 : 2017-12-03 17:05:34.0
조회수 : 289
-KNN 방송 가족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날씨가 제법 쌀쌀하죠?
모두 건강하신 줄 압니다.
부산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어느 한식집에서 오시는 고객분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새옹지마라는 문구를
한자로 써놓았답니다.
그 이야기는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시는
대로 중국의 변방에 살던 할아버지에게
말이 있었는데 이 말이 도망가서 이웃
사람들이 안 됐다고 말하니까
세상만사는 두고 봐야 알지요,
했는데 얼마 후에 그 말이 다른
한 말을 데리고 들어와서 참 잘됐다고
그러니까 글쎄요,
두고 봐야 알지요 그랬는데 이 새로
들어온 말을 외아들이 타다가 말에서
떨어져서 다리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게 되죠.
사람들이 모두 그 말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이렇게 안 됐다고 말할 때
글쎄요, 두고 봐야 알지요.
할 때 마침 그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서
모든 젊은이들이 징집이 되었는데
다리가 골절된 이 아들은 전쟁터에
나가지 않게 되었고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죠.
물론 애국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이
사자성어는 좀 맞지 않습니다만 인생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의
어려운 것이 영원히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하는 좋은 의미를
담은 사자성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귀를 식당에 한켠에 이렇게
한자로 써놓았는데 젊은 남녀가
데이트하다가 들어왔습니다.
식사하려고.
그래서 젊은 아가씨가 이 글자를 보니까
갈 지자와 말 마자는 알겠는데 앞에
있는 글자는 알 수 없는 거였어요.
그래서 데이트하는 그 청년에게,
남자에게 말했다죠.
오빠, 이 사자성어 말이야.
앞에 두 글자는 모르겠고 뒤의 두
글자만 알겠어.
지마인데 앞에 있는 두 글자가 뭐야?
그랬더니 그 남자 청년이 가만히 보니까
자기도 모르는 단어였습니다.
그래서 모른다고 하기는 그렇고 체면에,
이것은 남기지마야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새옹지마를 남기지마라고 읽은 것이죠.
여러분 어쨌든 이 주말에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작은 기쁨과 행복이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좋으신
하늘 아버지, 세 번째 시간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성경은 마태복음 7장, 7절로 12절을
근거로 여러분에게 말씀을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앞선 시간에 잠시 이야기해드리면
하나님 아버지가 왜 좋으시냐 하면 7절에
보면 그리하면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게 될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하나님 아버지가 좋으신 이유는 우리가
기도할 때 반응이 없는 무반응하시는
분도 아니고 또 무능력해서 도와줄 수
없는 분도 아니죠.
그래서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해주시기
때문에 좋으신 하늘 아버지가 됩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제가 LA에서
목회할 때 한 성도의 아들이 미
공군사관학교에 대기 번호
293번이었는데 함께 기도하다 보니까
합격되었고 지금 미 공군 장교로
아주 훌륭하게 근무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이었지만
아빠와 아들이 다 포기한 상황에서
믿음에는, 기도에는 장애가 없어서
기도하는 가운데 이런 놀라운
응답을 받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두 번째로 7절로 11절에 보면 기도
응답에 대한 약속이 일곱 번 나옵니다.
일곱은 완전수이죠.
그 완전한 응답은 우리가 기도한 그대로
응답해주시는 예스의 응답이 있습니다.
그래도 응답되는 거죠?
그다음에 두 번째로는 노의 응답이
있습니다.
내가 기도한 대로 되지 않았지만
지내놓고 보니까 더 좋은 것이죠.
세 번째로는 기다리게 하시는 응답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기다리게 한 그
인물 중에 한 사람, 요셉의 이야기를
들려드렸고요.
그 이야기에 이어서 한 인물을 오늘 좀
소개함으로써 좋으신 하늘 아버지 세
번째 시간을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건국대 부총장을 지내신 류태영
박사님, 그 분은 새마을운동에 청와대에
초대담당관을 지낸 한국 근대사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태영 박사는 아주 가난한
집안, 빈농의 집안에서 자라났습니다.
전라북도 임실면 청옹면 사람인데요.
아버님은 남의 집 머슴을 20년이나
살았던 그런 아버님이셨고 본인이
얼마나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 어머니 등에 업혀서
교회당에 나가게 되었어요.
멀리 있는 예배당에 나가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에는 집 근처에 예배당이
세워지게 되죠.
청웅 교회라는 예배당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때에 이 교회를 담임하시던
분은 목사님이 아니고
전도사님이었습니다.
1950년대는 한국이 목회자가 많지 않을
때였기 때문에 전도사님이 담임을 하고
계셨어요.
기도를 참 많이 하는 분이었는데 이
분은 기도할 때 먼저 조국을 위해서
기도해라.
그리고 살고 있는 고장을 위해서
기도해라.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라,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라, 너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라.
어릴 때부터 이것을 배우고 기도의 삶을
살아요.
그리고 새벽기도 시간이 참 좋아서 이
어린 태영이가 새벽기도를 나가게 돼요.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날, 저도
기억나요.
예전의 한국 교회는 지금부터 건물이
좋지 않았고요.
마룻바닥 예배당이었고 거기에 방석을
깔고 앉았는데 이 마룻바닥도 틈이
커서요.
틈이 벌어져 있어서 겨울이면 그 추운
바람이 밑에서부터 이렇게 들어오는
그런 예배당이었죠.
게다가 옛날에 시골 분들은 내의도 못
입었기 때문에 홑바지만 입고 가서
새벽기도를 하는 거예요.
초등학교 5학년생인 태영이가
새벽기도를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눈을
감고 기도하는데 담요를 덮어주는
느낌을 받아요.
너무 좋았어요.
우리 전도사님이 어린 나를 위해서
담요를 덮어주시는구나.
그리고 한참 기도하고 눈을 떴는데
담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따뜻한
거예요.
그래서 깜짝 놀라서 전도사님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여쭙니다.
전도사님, 제가 기도하는데 혹시 담요
덮어주지 않으셨어요?
아니.
저는 담요 덮어주신 줄 알았어요.
누군가 이렇게 담요를 덮어주는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으로 이 추운
겨울에 저 새벽기도 하는데 너무
좋았어요, 전도사님.
그랬더니 전도사님이 말씀하십니다.
태영아, 하나님이 너를 덮어주신 거란다.
이때부터 비록 가난했지만, 태영이는
기도의 삶을 알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는데
집이 너무 가난하다 보니까 옛날에는
중학교를 시험을 치고 갔고 또 등록금이
생활비에 비해서는
비쌌기 때문에 진학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태영이도 남의 집 머슴을 알게
돼요.
그런데 너무나도 공부하고 싶어서
집에서 키우던 집토끼를 팔아서 중학교
학습서를 사서 혼자 자습을 하게 돼요.
지게에 넣고 다니다가 시간이 되면
공부하고 그리고 새벽기도 나가고.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태영이가 18살 되던 해에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에 있는 임실교회에서 큰
부흥회가 열렸을 때 어머니가 부흥회에
참석하게 되고 마침
그 교회 장로님이 식사 대접을 할 때
식사에 참여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렇게 공부를 잘하던 아이가 돈이
없어서 진학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러면 데리고
오라고 해서 장로님 댁에 데리고 갔더니
초등학생인 장로님 자녀들을 가르치라고
하더랍니다.
초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중학교 과정을 자습했던 태영이는
대단히 잘 가르치게 되었고 그때부터
입주 가정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로님의 후원 가운데 중학교
과정을 공부하게 되는데 임실 중학교에
가서 시험을 쳤는데 세상에, 성적이 너무
좋아서 중학교 1학년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 중학교
3학년으로 입학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새벽기도하고 그리고
아이들을 잘 가르쳐서 아이들이 성적이
올라가고 그러던 사이에 어느덧 중학교
3학년, 1년의
과정이 다 마치게 돼요.
졸업할 때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죠.
그리고 졸업을 하고 이제 고등학교를
가려고 하는데 장로님께서 내가 너를 더
도와주고 싶은데 내 여건이 여기밖에 안
되는구나.
그래서 태영이는 집으로 돌아오게 되죠.
태영이는 고등학교를 나오고 싶어서
기도하는 가운데 어머님께 부탁을
드렸더니 어머님께서 서울 갈 수 있는
차비를 마련해줬어요.
잔여빚을 내서 서울에 올라옵니다.
아무도 기다려주는 이 없는 서울에
올라와서 그는 서울역에서 노숙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신문을 팔고 구두를 닦고 돈을 모아서
공부를 하려고, 쓰레기통의 밥을 10년
이상 먹게 되는 거죠.
버려진 빵이나 그리고 버려진 밥
덩어리를 물에 풀어서 먹는 삶을 살아요.
한 푼이라도 아껴서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서.
그런데 불량배들이 태영이를 때리고
돈을 빼앗아서 기도하는 가운데 마침
친구가 노량진에 있는 미군 부대에
하우스 보이로 일하는데
도와줘서 거기서 일하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일하면서도 그는 돈을
모으기 위해서 정말 아끼고 절약하게
되죠.
그리고 노량진 산꼭대기에 있는
동양공고라고 하는 야간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거기서 그는 평생을 바꿀 수 있는 책 한
권을 만나게 되죠.
그 책은 서울 음대 유달영 박사님의
덴마크의 농촌부흥 운동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전쟁으로 비옥한 땅을 빼앗겼던 덴마크.
크룬투비 목사와 달가스가 농촌운동을
일으켜 풍요로운 농촌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책을 통해 읽으면서 그는 우리
아버지가 새벽 일찍부터 밤늦게
까지 일하는데 이렇게 한국의 농촌이
못사는 것은 이것은 노력하지 않아서
이런 문제가 아니라 농촌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덴마크 유학을 꿈꾸게 됩니다.
쓰레기통의 밥을 먹으면서, 미군 부대에
일하면서도 그는 돈을 아끼기 위해서
쓰레기통의 밥을 먹으면서 돈을
모읍니다.
그리고 그는 덴마크 유학의 꿈을 꾸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군대를 갔다 와서 건국대
야간학부를 마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대학을 마치면서 이제
덴마크의 가장 높은 분에게 편지를 써야
되겠다는 마음을 기도하면서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짧은 영어지만 한국의 상황을
알리고 자신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기회를
주신다면 유학을 마치고 한국의
농촌을 살리고 싶다고 이런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누구에게 쓸까
생각해보니까, 백과사전을 찾아보니까
덴마크에서 제일 높은 분이
프레데리크라는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프레데리크에게 폐하, 하고
편지를 다 쓰게 되죠.
다 쓰고 난 다음에 주소를
모르겠더랍니다.
지금 같았으면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알
수 있는데 그 당시에는 그것이 없었던
때이죠.
그래서 이분은 기도하게 되니까 태영아,
그렇게 높은 사람은 그 나라 수도
이름과 국가 이름만 쓰면 된단다.
그래서 프레데리크 폐하, 그리고 코펜하겐
덴마크에서 기도하게 보냈대요.
그런데 한 달만인가, 답이 오더래요.
왕의 비서관이 우리 국왕 폐하께서
당신의 편지를 매우 감동적으로 읽었고
당신이 원하는 학교에서 당신이 원하는
기간 동안 유학할 수 있는 전액
장학금, full scholarship을 주겠다고.
잠시 후에 외무성에서 편지가 갈 텐데
거기에는 비행기 표가 같이 있을 거라고.
이 편지를 받고 태영이는 너무나
기뻤어요.
그래서 기도하면서 기다리는데 한 보름
지나서 편지가 왔어요.
일본을 경유해서 코펜하겐 공항까지
가는 비행기 표였습니다.
그는 청운의 꿈을 안고 덴마크로
날아갑니다.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해서
나가는데요.
입국수속을 하는데, 그리고 덴마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속에
긴장이 되기 시작하더래요.
덴마크 말을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한국말 잘하고 일본말 조금 하고 영어
조금 하는데 덴마크 말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더래요.
그런데 너무나 긴장이 되어서 호텔에
들어와 있는데 이 분이 기도하게
되었답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데
하나님께서 어떤 물음을 주셨냐 하면
태영아, 너 어떻게 한국말 배우게
되었니?
네, 어머니 따라 하다 배우게 됐죠.
그러면 내일 아침부터 길거리에 나가서
너 영어 조금 아니까 영어로 이 말이
무슨 뜻이냐고 덴마크어로 어떤
말이냐고 물어보면 알려줄
것 아니니, 그것 받아 써서 외우면 되지
않니.
그렇군요, 하나님.
그러면 너 하루에 몇 문장 할 수
있겠니?
10문장은 외울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너 몇 문장 하면 대화가 될 것
같니?
영어로 쭉 써보니까 한 300문장이면
되겠더래요.
300문장이요, 그랬더니 너 한 달만 하면
덴마크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 좀 잊어버리는 것도 있을
테니까요.
시간을 좀 들여서 3개월이면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마음의 응답을 받고 보니까 너무나
기뻐서 그 날 밤 푹 자게 되었대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침
식사하고 또 새벽기도하고 아침
식사하고 거리로 나갑니다.
그리고 그분들에게 인사를 한 다음에
왓 이즈 유어 네임?
이런 식으로 알려주더래요.
그래서 이것을 전부 써서 외우니까 글쎄,
하루 만에 10문장이 외워지더래요.
그리고 한 달 하니까 웬만큼 대화가
되더래요.
3개월을 하니까 완전하게 덴마크 말이
통하더래요.
그리고 3개월을 더 하니까 학술용어까지
배워서 6개월 만에 덴마크 대학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6개월이 되던 때, 덴마크의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전화를 했더랍니다.
이 분의 이야기가 6개월 만에
덴마크어를 떼고 대학 공부를 한다는
것이 신문에 대서특필 됐다는 것을 알게
된 교장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와서 한국을 소개하는 강연을
해달라고 이런 요청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학교에 가서 60분 동안
덴마크 말로 대한민국을 소개하는
강연을 했답니다.
마치고 내려오려고 하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손을 붙잡더래요.
미스터 유, 정말 이 덴마크에 오기
전까지 덴마크 말을 배운 적이
없습니까?
네, 없습니다.
덴마크 사람 만난 적도 없습니까?
네, 없습니다.
와우, 당신은 천재인가 봅니다.
이때 태영이가 말합니다.
저는 대한민국에 가면 천재 축에
들어가지 못하고요.
저는 야간 실업계 고등학교 나왔고 야간
대학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천재 축에 들어가려면 서울고,
경기고 나와야 되고 그리고 서울대,
연고대를 다녀야 좀 머리 좋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저는 천재가 아닙니다.
그랬더니 교장 선생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깜짝 놀라더래요.
대한민국은 천재의 나라인가 봅니다.
그 후에 그는 덴마크에서 학사를 잘
마치게 됩니다.
그리고 덴마크와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한국의 농촌을 살릴
계획을 세우는데 그 당시의 60년대
한국과 유럽은 너무나도 격차가 커서
도저히 접목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는 기도하는 가운데
6일전쟁이 벌어지고 승리한 이스라엘에
대한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전후에 독립한, 신생 독립국가가 키부츠와
모샤브의 농촌운동을 통해서 아주 살기
좋은 이스라엘을 이루어가고 있는 그
이야기를 듣고 아, 저 이스라엘이
우리나라에 맞겠구나.
그래서 기도하면서 이스라엘 수상도
있지만,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게 됩니다.
그랬더니 아시아, 아프리카 대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모든 경비를
우리가 제공할 테니까 오라고 해서
한 달 동안 그는 거기에서
교육을, 영어로 하는 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귀국을 했더니
이곳저곳에서 강연을 하다 보니까
청와대에 소문이 나서 청와대의 부름을
받고 강연을 했더니 대통령께서
지금 새마을운동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당신이 적임자다.
그래서 새마을운동 초대 담당관으로
임명을 받습니다.
그리고 전국을 다니면서 새마을운동을
일으키는데요.
가니까, 유학 다녀왔다고 하니까 전부
박사님이라고 부르더래요.
아직 학사 하나 더한 것밖에 없는데.
건국대 학사, 덴마크 대학 학사.
두 개밖에 없는데, 나 학사라고.
그래도 자꾸 박사라고 불러서 에이, 유학
가야 되겠다 이런 마음을 가졌답니다.
그리고 대통령께 말씀을 드리니까 지금
나라가 한창 일어나는데 어디 공부하러
가냐고, 더 있으라고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대통령 영부인께 부탁을
드렸더니 그분이 대통령을 움직여서
유학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때도 그분의 목표는 이스라엘에
있는 히브리 대학이었습니다.
전액 장학금을 히브리 대학에서 받아서
가게 되는데 히브리어는 정말
어렵거든요.
창세기 1장 1절을 제가 한번
읽어드릴까요?
여러분 이렇게 이 히브리 말이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를 공부하는데도 걱정이
안 되더래요.
왜냐하면, 덴마크 말을 처음 그렇게
받아써서 배운 적이 있기 때문에.
그랬더니 정말 히브리어도 3개월 만에
소통이 되고 또 3개월을 공부하니까
대학에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석사 과정 열 몇
명이 모여서 세미나를 하지 않습니까?
수업을 마치는데 교수님께서 얇은 책 한
권을 주시더래요.
130쪽 되는 책이더래요.
던져주면서 다음 주에 발표하라고
하더래요.
딱 보니까 영어 같은데 영어가
아니더래요.
그래서 교수님, 이거 영어 아니네요?
이거 무슨 언어죠?
스페인어야.
스페인어야.
교수님, 저 스페인어 못하는데요?
쉬워, 한번 해봐.
정말 쉬운 줄 알고 도서관에서 번역을
해봤더니 사전 놓고 번역을 하니까 세
시간 만에 두 줄밖에 번역이 안
되더래요.
이 분이 또 뭐했을까요?
이 어려운 문제를 놓고 기도했대요.
기도하다 보니 하나님이 어떤 마음을
주셨냐 하면 태영아, 너네 학교가 세계
20대 대학에 들어가는 히브리 대학이다.
분명히 스페인에서 온 유대인 학생이
있을 것이다, 찾아봐라.
했더니 있더래요.
이 학생이 기숙사에 있더래요.
기숙사 문을 똑똑 두드렸더니 한 총각이
나오는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부스스하고 자다가 일어난 이 유태인
학생이 나오더래요.
자기를 소개하고 내가 스페인어 때문에
도움받을 수 있느냐, 스페인어 잘 하냐고
그러니까 자기는 히브리어, 스페인어,
영어를 똑같이 잘한다고 그러더래요.
우리 기숙사 가서 내 아내가 준비한
식사를 좀 대접하고 싶다고 그랬더니
배고팠는지 따라 오더래요.
그래서 서양 아이들이 좋아하는
잡채에다가 불고기에다가 그리고
백김치를 만들어서 먹이게 되었대요.
그랬더니 이 총각이 잘 먹고 난 다음에
뭐 도와줄 것 없냐고 그래서 말했대요.
도와줄 게 있는데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책을 한번 좀 봐달라고
그래서 목차를 쭉 보니까 그 스페인어로
된 그 목차를 히브리어로 읽어주는데 한
12개 챕터 중에 두 챕터가 다른 책이
없는 거더래요.
아하, 교수님이 이것을 발표하라는거구나
생각을 하고 시간 좀 더 되냐고
그러니까 시간 된다고 그러더래요.
그래서 이 두 챕터를, 두 장을 이 사람은
스페인어에서 히브리어로, 태영이는
히브리어에서 한국말로 받아 썼대요.
두 시간 만에 끝나고 다음 날 발표날이
되었대요.
가서 발표를 딱 하니까 교수님이
그러더래요.
미스터 유, 오늘 발표 정말 좋았어.
그런데 지난 시간에 말하기를 일주일
전에 스페인어 모른다고 그랬잖아.
그랬더니 태영이가 말합니다.
교수님, 스페인어 너무 쉽던데요?
그러니까 교수님이 놀라면서 어떻게 할
수 있었냐고 모르는 언어를.
그것은요, 교수님.
제가 믿는 엘로이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런 지혜를 주셔서
풀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석박사 통합 과정을 마치고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건국대 부총장까지 지내며
한국의 근대화에 큰 역할을 하는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는 머슴의 아들이었고 본인도
머슴의 삶을 살았습니다.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기다림의 세월을 보낼 때
좋으신 하늘 아버지께서 그의 인생을
이토록 풍요롭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기도하면서 좋으신 하늘
아버지의 도움 받아 그분이 주신 지혜로
최선을 다한다면 여러분의 인생에
새로운 페이지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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