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
토요일 오전 8시 30분
TV
종영

다시보기

마음의 산책

등록일 : 2017-12-09 17:26:19.0
조회수 : 272
-사람이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합니다.
내 마음 나도 몰라.
내 안에 내가 많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 말을 들어보면 사람들
마음에서부터 병이 시작이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
마음을 고쳐먹는 게 중요합니다.
밥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찌지만 마음을
잘 먹으면 좋은 사람이 됩니다.
저는 오늘 성경에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먹어야 되는가.
성경 누가복음 15장에는 세 사람의
주인공이 나옵니다.
탕자가 나오고 탕자 형님이 나오고.
그리고 탕자 아버지가 나오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할 때 세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고 한 사람 마음속에 있는
세 가지 마음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마음속에 여러 형태의
마음이 있다는 거예요.
탕자와 같이 철딱서니 없는 막내둥이.
막둥이의 그런 기질.
갈 데까지 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많은
막내의 기질이 누구에게나 다 있다는
거예요.
탕자의 기질이 다 있을 뿐만 아니라
탕자 형님의 마음이 있다는 거예요.
집에 잘 있는 거 같지만 아빠의 마음을
훨씬 더 속을 썩히는 그런 탕자 형님의
마음.
그리고 결국은 누가복음 15장에서
마음의 주인공은 애비의 마음입니다.
아버지의 마음.
자식 키워봐야 부모 마음 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식을 키워가면서 자식들이 애를
먹이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부모님이
얼마나 많은 순간을 밤을 새우고 울고
그러면서 자식이 자라가잖아요.
그 자식이 어릴 때는 부모 마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이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주와 목욕탕에 갔는데
할아버지가.
아기야, 이 목욕탕이 시원하다.
열탕에 뜨거운 물에 손주를
불러들입니다.
손주가 들어갔더니 앗, 뜨거워.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하잖아요.
-혼자가 어릴 때는 그 온천물이 열탕이
뜨겁지만 그 아이가 70, 80이 되고
골다공증이 오고 세월이 많이 흘러서 그
아이 나중에 온천물에 뜨거운 데에
들어가면 그때는 뜨거워 소리를 안 하고
시원하다 할 것입니다.
한국 사람 마음속에 그런 시원하다는
것이 복합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
사람이 마음이 여러 가지로 흘러가는데
그 흘러가는 마음속에 마음을 잘 잡아야
합니다.
중심을 잘 잡아야 합니다.
미워도 다시 한번.
눈 뜨고 봅시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상황 같았는데도
눈을 뜨고 봐야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흐름이 있습니다.
마음이 잘 흘어갈 때는 명랑하고
행복하지만, 마음의 병이 생기면
불안하다.
이 불안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합니다.
마음에 불안증이 오고 공황장애가 오면
사람이 굉장히 힘들어집니다.
마음의 병이 불안증이고 한국 사람들은
한의 민족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그런
아픔이 많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긍정적인
마음보다는 부정적인 마음이 훨씬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음을
힐링을, 치유를, 회복을 하지 않으면
마음에 병이 쌓여서 마침내 차곡차곡
마일리지가 쌓이듯이 마음에 앙금 같은
게 남을 때 마음의 성질이 생기고 그
마음이 굳어지고 사람이 괴짜가 되고,
괴팍하게 되고 까칠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어떻게 잘 기경한다.
내 마음을 잘 케어해야 합니다.
내 마음을 항상 옥토와 같이
부들부들하게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
마음의 흐름이 누가복음 15장에는 세
사람으로 대표가 된다는 겁니다.
탕자가 있고 탕자 형님이 있고 탕자
아버지가 있는데 그 마음이 세월이
흘러가면서 변화가 된다.
내 마음 나도 몰라, 내 안에 내가 많아,
이렇게 사람들은 말을 하지만, 내 마음을
내가 모르는 게 아니고 내 마음을 내가
잘 생각을 해서, 묵상을 해서 내가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사람을 바라보고 좋은
꽃을 바라보고 그러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쓰레기장 같이 만들지 말고
마음을 정갈하게, 마음을 깨끗하게 내
마음을 늘 새롭게 바꾸어 먹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세 명의 주인공이
나오는데 탕자라는 사람은 막내의 어떤
그런.
탕자가 그 집안에서 볼 때 내가 이 집에
있어봤자 영원히 세컨드밖에 안 되겠다.
내 몫을 챙겨서 내가 독립을 하자.
내가 객지에 나가서 사업을 해 보자.
이 집에서 영원히 둘째 해 먹느니 내가
나가서 스스로 독립을 해서 사업을 해
보자.
그래서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아버지, 제 재산을 주세요.
여러분, 그 성경에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아버지라는 존재는 둘째 아들의
마음을 다 압니다.
이 아이가 자기 것 챙겨서 나가면 망할
것을 알고.
그런데도 망할 것을 알면서도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반대하지 않고 밀어주고
속아주고 기다려주고, 그게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겁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다 자기가
챙겨서 객지에 나가서 하지만, 그게 참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그런 말들이 있더라고요.
인생의 3대 비극이 무엇이냐?
초반의 성공.
중년의 사별.
노년의 빈곤, 이게 인생의 3대
비극이라고 하더라고요.
초반에 성공한 사람은 세상 물정을
모르고 초반에 잘나가는 사람은 세상
어려운 점을 모르기 때문에 인생
후반전을 살아갈 때 거의 교만해서
기고만장해서 실패한다는 거죠.
이 탕자가 처음에는 아버지 재산을
챙겨서 잘 나갔지만, 이내 거덜 나고
쪽박 차고 허랑방탕한 생활을 지내면서
완전히 빈털터리가 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그 마음이 누구든지
있다는 거예요.
갈 데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
호기심 천국.
내 몫을 챙기는 아주 이기적인 그런
유치찬란한 탕자의 기질.
탕하의 그 모습이 사람은 누구든지 다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 모습이 없는 사람은
귀엽지도 않습니다.
막내는 막내로서의 그런 귀여움이
있잖아요.
막둥이가 가지고 있는 것, 막내의 기질.
철딱서니 없는 것 같지만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그런 기질이 막내다운
것입니다.
이 성경 누가복음에 탕자 아버지의 둘째
아들은 귀염둥이고, 귀염둥이, 예쁜둥이,
우리 자기, 한국 도자기 할 정도의 그런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아이였다가
아버지의 간섭, 아버지의 어떤 간섭을
부담스러워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말들이 있습니다.
부담스러운 것이 축복이다.
지겨운 것이 축복이다.
지겨운 것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반복적인 것을 삼시세끼 밥을 먹을 때
그게 지겹지 않습니다.
삼시세끼 밥을 먹을 때 그게 항상
맛있고, 물을 마셔도 물리지 않는 게
물이잖아요.
지겨운 게 안 지겨운 사람 반복적인 게
안 지겨운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간섭, 아버지의 그
어떤 보호가 자기는
귀찮게 느껴지고 나는 독립하리라.
내 마음대로 살아가리라, 내 혼자
살아가리라.
그것이 탕자의 독립 같지만 사실 그
마음이 탕자를 슬프게 만드는 탕자를
독립이 아니라 방황으로 만드는 끈
떨어진 연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진 그
처사가 탕자가 자기 몫을 챙겨서 아버지
간섭을 싫어하고 멀리 가서 혼자 내
마음껏 해 버리라.
그 부분이 탕자의 미스입니다.
아버지의 간섭은 불편한 게 아니고
아버지의 사랑은, 아버지의 그 세밀한
잔소리는 불편한 게 아닙니다.
엄친 슬하에서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가면 반듯하게 되잖아요.
오늘 이 시대는 어른도 없고, 원로도
없고, 부모님의 그런 잔소리도 싫어하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탕자가 그야말로 그런 아빠의
간섭을 싫어해서 독립을 해서, 객지를
혼자 나갔지만 결국은 허랑방탕하고
빈털터리가 돼서 그런 남의 집에 가서
빌어먹고, 빌 붙어서 기생충과 같이 그런
기생하는 삶을 살다가 짐승들이, 돼지가
먹는 그 지엽열매를 가지고 연명을 하고
그런 비참한 지경까지, 밑바닥까지
떨어지고 난 뒤에 깨닫는 것이 내가
아버지한테 돌아가자.
아버지한테 돌아가면 우리 아버지는
좋은 게 많다는 것이죠.
귀향.
고향으로 돌아가자.
내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사람은 자기 마음의 고향이 있습니다.
내 마음 나도 몰라가 아니라 내 마음 둘
곳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곳에
마음이 좌소를 정하고 마음의 닻을 내릴
때 그때 비로소 평강이 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잃어버려야 알 게 되는 게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건강입니다.
사람이 평소에는 운동하래도 운동을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건강을 잃어버리면 운동을
저절로 합니다.
100 빼기 1은 얼마일까요?
100 빼기 1은 99라고 하는 것은 산수
수준이고 100 빼기 1.
건강 하나를 잃으면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건강 하나를 잃으면 모두가 다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건강을 잃을 때 건강을
잃어버리고 난 연후에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걸 알고 수술을 하고 큰
병치례를 하고 입원한 사람들이 애써서
건강을 조심해서 운동을 하고
식이요법을 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건강을 잃어버리기 전에는 건강의
소중함을 잘 모릅니다.
두 번째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지고 난 뒤에
사랑하고 부모님이 돌아나시고 난
뒤에야 그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
끊임없는 사랑, 변함없는 사랑, 엄청난
사랑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둘째 아들이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애
둘째 아들이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옆에 계실 때는 귀찮은 존재,
부담스러운 그런 존재였지만 아빠가
멀리 떨어지고 난 뒤에 자기 혼자
독립을 해서 그때부터는 자립이, 독립이
아니라 방탕이, 방황이 되고 난 것을
깨닫고 난 이후에야 아버지의 자리,
아빠의 소중함을 깨닫고 아버지께
돌아가게 되는 것이 탕자의 비유의
귀향입니다.
사람은 반드시 내 마음의 고향이 있는
거예요.
내 마음이 자리 잡아야 될, 그곳에
자리를 잡을 때 편안하고, 안락하고,
명랑하고, 쾌적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내 마음을 두어야 될, 내 마음의
근본적인 고향이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가 탕자의 형님입니다.
그 성경에 보면 탕자의 형님은 가출도
하지 않고 집에서 일을 잘하고, 아주 일
중독일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하고,
내가 아니면 이 가문을 지킬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장자 의식을 가지고
맏아들답게 일을 열심히 하는 아들이
장남입니다.
그런데 사건이 생긴 것이 집 나간 아들.
객지에 가서 허랑방탕하고, 창기들하고
놀고, 온갖 짓을 다한 그 허랑방탕한 미운
아들, 미운 동생이 돌아왔을 때 문제가
생깁니다.
큰아들이 들에 가서 열심히 일을 하고
그날도 어김없이 일 중독 환자처럼
그렇게 일만 하던 아들이 집에 들어왔을
때 갑자기 집안에 풍악 소리가 울리고,
잔치가 벌어지고,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나니까 이게 무슨 냄새냐, 이게 무슨
소리냐 물어보니까 그 종이
이야기하기를 집 나간 이 집의 둘째
아들이 돌아왔다.
바로 그 동생이 돌아왔기 때문에
아버지가 큰 잔치를 이렇게 잔치를
벌였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큰아들이
뚜껑이 열립니다.
큰아들이 거기서 흥분을 하는 것입니다.
큰아들이 아버지한테 아버지, 아버지는
어떻게 저렇게 집 나간 아들, 허랑방탕한
아들, 아버지 속썩인 아들을 위해서 살찐
송아지를 잡고 이렇게 거창하게 잔치를
벌입니까?
아빠, 저는 한 번도 가출을 한 적도
없고, 아버지 속썩인 적도 없는데,
저한테는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준 적이
없으면서 왜 저 못난 동생에게 저렇게
많은 재산을 주느냐.
따지고, 흥분하고 할 때 아빠가 이야기를
합니다.
얘야, 너는 장남이지 않냐.
너는 형이잖아.
내 모든 재산이 네 것이잖아.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 탕자 형님의
마음을 지적을 합니다.
여러분, 저는 이렇게 볼 때 우리 속에
그런 탕자의 기질, 막내의 기질, 갈
때까지 가보고 싶은 호기심 천국에, 그런
탕아의 기질도 귀여울 뿐이지, 책임감도
없고, 이기적인 그런 모습도 있지만,
탕자의 형님의 모습이 많다는 거예요.
탕자 형님은 한 번도 가출한 적이
없습니다.
눈에 드러나는 큰 잘못은 없지만, 이
탕자 형님의 잘못은 완벽주의입니다.
완벽주의, 결벽증이 정신병의 시초다,
이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완벽한 사람, 결벽증이 있는 사람은
남들이 조금만 문제가 있어도 눈 뜨고
못 봅니다.
그래서 굉장히 인간관계가 까칠해지고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100%는 존재할 수가 없는
거예요.
세상에는 많은 문제투성이가 현실입니다.
그 못난 동생을 바라볼 때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데, 내 친동생인데,
그 동생을 향한 애정은 손톱만큼도 없고,
완벽주의, 결벽증을 가지고 볼 때 저
동생은 없어져야 될 존재.
저 동생은 내 동생도 아니라는 거.
저 동생은 나쁜 녀석이라는 거.
그런 그 형님의, 장남의 어떤 잘못된
심보.
그 장남의, 장남으로서 동생에 대한
애정은 없이 자기는 이 집안을 이끌어
가야 된다는 일에 대한 부담감.
일 중독, 일에 대한 완벽한 것은
있었지만 마음의 한 켠에 동생에 대한
사랑이 없었던.
신의 성품이라는 성경의 말씀에
있습니다.
배드로후서 1장에 보면 신의 경지, 신의
한 수, 신의 직장, 신의 직장이 있잖아요.
신의 한 수가 있습니다.
신의 성품이 있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이 내려주신 독특한 성품이
있는데 그 성품의 단계가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믿음에 힘써라.
믿음에 덕을 힘써라.
덕에 지식을 힘써라.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의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배짱이 있는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담대하게 밀고 나갑니다.
그래서 믿음이 좋은 사람은 약간 뻥이
심하고 약간 배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협력해서 소원을 이루시고
믿는 자에게는 넘지 못함이 없기 때문에
현실은 아니지만 현실은 부족하지만
담대하게 나가는 것입니다.
배짱을 가지고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에 힘을 써야 돼요.
믿음도 자랍니다.
믿음에도 근육이 있고 마음에도 알통이
있고 생각에도 뼈대가 있다.
여러분 마음에도 생각에도 통뼈가
있듯이 믿음 있는 사람, 믿음을 힘쓰다
보면 믿음이 그다음에 덕스럽게
다가가는 거예요.
믿음이 좋은 사람이 다 마음씨가 좋은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믿음이 좋은 사람이 오히려
남에게 상처를 주기가 쉬운데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다음 단계로 덕스러워
됩니다.
덕이 안 되면 독이 된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덕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은 그다음에는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배우기를
힘쓰고 지식이 있어야 됩니다.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 있는 사람은 교만하기 쉽기 때문에
절제의 힘을 써야 돼요.
참고 견디고 인내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 지식이 있는 사람은 절제, 절제
다음이 인내, 예수님처럼 참아라.
이것까지 참아라, 끝까지 참아라.
한계선 상이 올 때까지 참으라는 거죠.
이번에 영국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결혼
70주년을 지나면서 그 필립공과 같이
70년을 어떻게 행복하게 살았냐.
한 가지 대담 가운데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70 평생을 아무 문제 없이 그저
행복하게 산 것은 아니고 인내와 끈기와
참음과 버팀과 개김을 통해서 오랜 세월
동안 참으면서 살았기 때문에
행복했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나오는 마지막 단계가 형제
우애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좋다는 것은 가까운 가족,
형제 자매들 간의 우애가 좋아야 됩니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가까운
사람에게 물어보면 단번에 알 수가
있습니다.
형제 우애, 사랑을 공급하는 게 신의
성품의 제일 고수입니다.
그 사람이 성품이 좋다.
성품이 좋은 사람이 제일 마지막 단계는
가까운 형제와 우애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탕자의 형님, 맏
아들은 문제가 많은 것이죠.
일에는 완벽했지만 장남으로서 감투
정신은 있었지만 철딱서니 없는 동생에
대한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그 형님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 형이 아버지의 본심, 아버지의 진심을
알아차렸다면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간 이후부터 잠을 못 주무시고
오매불망, 노심초사, 그 막내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형이 집을 나가서 살림을, 재산을 관리를
조금 덜 하더라도 동생을 찾으러 가서
집에 가자.
아버지가 잠을 못 주무신다.
집에 가자, 이 녀석아.
동생의 멱살을 잡고라도 끌고 와야 되는
게 형의 할 일이라는 거예요.
그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돌아왔을 때
하나도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또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 나한테 염소 새끼 한
마리라도 줘 본 적 있냐.
10원짜리 이야기하고 이권을 더 밝히고
조목조목 따지면서 아버지의 억장을
무너지게 한 것은 탕자가 아니고 탕자
형이라는 거예요.
우리 마음속에 그 기질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철이 들어간다는 것은
사람도 익어간다, 생각도 철이 들어가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막내의 기질.
철딱서니 없는 이기적인 무책임한
막둥이에서 이제는 형식이라도
껍데기라도 무늬라도 그럴듯한 형님의
어떤 자세.
형님의 수준을 지나야 합니다.
그런데 탕자 형님도 2% 부족한 것이
동생에 대한 애정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탕자
형님의 심보도 고약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야기할 때 막내는 집
나간 탕자고 또 형님은 집 안에 있는
탕자다.
두 아들 다 아버지 속을 썩인
건 똑같습니다.
그런데 누가 보면 15장의 주인공은
돌아온 탕자도 아니고 심보가 고약한
형님도 아니고 아버지라는 거예요.
우리의 마음속에는 누구든지 자식 키워
봐야 부모 마음 알듯이 우리의 마음은
누구든지 세월이 지나가면서 여유가
생기고 측은지심.
물가에 아이 세워 놓은 것처럼 짠해하는
그런 마음이 다 있다는 겁니다.
그 마음이 생길 때 아비의 심정, 모정의
세월, 어미의 마음이 생기면 그때는 모든
게 좋아진다는 겁니다.
성경에 어떤 아버지가 자식이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냐.
어떤 아빠가 자식이 빵을 달라고 하는데
돌멩이를 주냐는 말입니다.
악할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찾는 자에게, 구하는
자에게, 두드리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
좋은 것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 믿는
사람은 마음의 부자가 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비의 심정을 갖춘다.
어머니의 마음을 갖춘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오매불망 내 새끼.
오매불망 내 딸아이를 위해서라면 피를
뽑아서라도 내 자식 잘 된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게 엄마의
마음입니다.
아버지의 심정입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우리가 철없는
막내가 아니라 그저 이름만 그럴듯한
형식만, 무늬만, 컬러만 그럴듯한 장남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본심,
아버지의 진심을 가지면 그 사람은 그게
성숙한 것이고 그 철없는 동생을 볼 때도
마음이 짠해지면서 사랑으로 공급하게 될
때 형제의 우애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청애인이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형제간의 우애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그런 넉넉한
마음, 여유 있는 마음, 아버지의 심정,
목자의 마음을 가지면 우리가 훨씬 더
따뜻한 가정.
따뜻한 이웃을 만들어가는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회복하는.
막내의 기질을 지나서 형님의 단계를
넘어서 아버지의 마음, 엄마의 심정을
갖추는 우리 시청자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이트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