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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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산책

등록일 : 2017-12-17 12:56:19.0
조회수 : 288
-망운산이 달을 품었네.
공작새는 꾀꼬리의 목소리를 부러워하지
않고 뿔을 지닌 무소는 호랑이의 발톱을
탐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자신을 살필 줄 아는 사람은
허둥대지 않지만 바깥을 살피느라
바쁘면 허수아비처럼 알맹이 없는 삶을
살게 된다는 옛 성인의 불꽃 같은
심지의 뜻이 담긴 말입니다.
꽃들은 모진 비바람도 탓하지 않고
피어나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모두 저 꽃들처럼 올 한 해 활짝활짝
피어나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선악이 모두 불법이라고 했습니다.
선을 따지기보다도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때로는 미움, 욕심, 원망, 그리고 분노를
쏟아낼 때가 더러 있습니다.
이런 게 악업이지만 내게도 우리에게도
똑같은 허물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개인의 업이 곧 공업, 세상
사람들의 공동의 업인 것입니다.
나는 평소 부모은중경을 독경할 때가
많습니다.
속가의 어머니와 산사에서 함께 해온
지도 어언 40년의 세월을 버텨 왔습니다.
그런데 금년 들어 향년 92세를 일기로
왕생극락의 영면에 들었습니다.
불효가 막심한지라 늘 마음 한구석에는
편찮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부모은중경으로 효를
대신해 베풀어 드립니다.
사실 이 부모은중경은 모든 선행 공덕의
근본과 시작이 효도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수행자의 효도는 제대로 불도를 닦아서
부모님까지 중생에서 구제하는 일입니다.
또 세상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의 부모
은혜까지 갚는 차원 높은 효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부모은중경을 읽어가면서 더 큰 효도를
하기 위해 효를 대신할 뿐입니다.
세상 만물의 은혜를 갚기 위해 자기
본분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는 게 매우
소중합니다.
자신이 올바르게 살아야 효도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부모은중경은 강한 생명력이 있습니다.
오늘 달을 품은 망운산이 큼지막한
보름달인 망월을 안았습니다.
달빛으로 계속 그림자가 환하게 마당을
쓸어내는 맑고 눈부신 밤입니다.
새해 소망을 이루소서.
망운삼소.
어느 봄 햇살 쨍쨍한 화창한 봄날에
오늘은 망운산이 하하하 껄껄껄
웃습니다.
온갖 꽃과 연둣빛 잎새 피는 소리에
그만 세속 오욕이 저만치
나가떨어집니다.
그 옛날 한산, 습득 스님께서 껄껄껄
웃으며 가가소수능식이라고 쓴 찻상보
다포를 찾아온 손님들께 나눠줬습니다.
감히 그 누가 껄껄껄 웃는 뜻을 능히
알겠습니까?
그러면서 그 뜻을 떠올려봅니다.
한산과 습득은 중국 당나라 때의
선승입니다.
자유분방한 기행과 풍자시, 그리고 늘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것으로 유명한
스님입니다.
불교는 자비의 종교이죠.
모든 사람이 자비, 존경, 양보, 용서 이
네 가지만 잘 지키면 뭘 해도 옳고 어떤
일을 해도 원만합니다.
세계 평화가 저절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어느 선승이 선시 한 편을 가리키며
자비에 대해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산은 모든 짐승을 가족으로 품어주고,
물은 모든 어해를 어루만져 준다네.
산과 같고 물과 같은 마음을 내면 그게
바로 자비입니다.
본래 세상 만물에는 일체 흉허물이 없는
법입니다.
사람이든 미물이든 어떤 차별도 하지
말아야 자비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난 사람, 윗사람에게만
하는 건 진짜 존경이 아니라는 존경론을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 만물이 다 한 가지씩은 재주가
있고 쓸모가 있거늘, 파리는 천장에 붙는
재주가 있고 모기는 어둠 속에서
날아다니는 재주가 있듯이 모두 다
존경받을 만합니다.
껄껄껄.
하하하.
길 가다가 만나는 이 모두가 선지식.
즉 마음의 스승이고 원수라 해도 다
역행보살로서 가르치려고 일부러 나쁜
일을 하는 보살이니 인욕으로써
받들어야 합니다.
꽃은 벌떼를 불러 모으고 벌은 꽃향기를
좋아해서.
꽃과 벌이 서로 도우니 영원히 그 마음
변치 않네.
즉 부처의 마음을 일으키는 자나 중생의
번뇌망상을 일으키는 자는 똑같이 바로
나 자신이며 진흙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청정한 꽃을 피우는 연꽃처럼 나
자신이 생각을 바르게 만들고 심성을
정화하며 살아야 한다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 사는 이치에 승과 속이 따로
없습니다.
모든 것이 초심을 지키는데 달렸으며
비록 작은 시련이나 장애가 있을지라도
너끈히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고 또 용서를 구걸하지 말고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참사람입니다.
때론 이놈의 팔자라고, 팔자탄식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다 자작자수입니다.
즉 자기가 지은 대로 자기가 받는
것이라며 부처님은 작은 부자는
부저런함에 있고 큰 부자는 베푸는데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으로 감사하고 늘 웃고 말을 아껴서
침묵하면 행복은 저절로 찾아옵니다.
언제나 혼나는 사람에게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욕하는 사람도
웃는 낯빛으로
대해보면 웃는 날이 있고 감사하다라는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입은 세상 모든 시비의
문입니다.
대문을 열어놓으면 보물이 나가고
도둑이 드나들 듯이 꼭 필요한 때
말고는 입을 잠가 놓고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즉 구업을 조심하라는 것이지요.
선에서 말하는 변함없는 지혜란 어찌
보면 세탁기와도 같습니다.
나와 너.
좋고, 나쁨.
있고, 없음 같은 분별심과 이기심, 갈등,
대립, 투쟁, 집착이라는 때가 깨끗이
세탁됩니다.
그래서 마침내 구름이 걷히니 저절로
해가 비추어지는 것처럼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조화로운 삶은 최고의 행복.
인생에서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려는 한 가지 의무일 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지.
헤르만 헤세는 행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연말연시가 되면 한해의 삶을
되돌아보고 새해는 새로운 소원을
세우고는 합니다.
인생무상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슬픈
늬앙새를 품고 있습니다.
세월은 나이 숫자대로 빨리
지나간다라는 시쳇말처럼 소리소문없이
흐르는 물처럼 매정하게 빨리도
지나간다는 세월의 무상함에 많은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가 봅니다.
과연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있을까요?
세월을 이기는 삶.
무상한 세월 속에서 순간순간의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삶이란 진정 올바른 가치를
세우고 실천하며 나누는 공동체적 삶에
있습니다.
부처님은 우리가 행복에 이르는 길을.
중도, 즉 조화로운 삶으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팔정도라는 중도 실천을 통해 갖가지
고통을 없애고 행복을 만드는
이고득락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욕망을 갖고 태어납니다.
이 욕망이라는 것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 만족을 위해 존재하고
진행해갑니다.
또한, 욕망이라는 것은 항상 구체적으로
어느 하나의 특정 욕망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라서 자기 모순적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욕망은 추구, 완성,
소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또 다른 구체적인
특정의 욕망이 이를 뒤따르고 없고,
소멸하기는 반복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차례로 일어나는 연쇄작용의
속성 때문에 욕망은 무한하다라고도
합니다.
즉 무지라는 고통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하여 고통받는 경우처럼 우리
주변에 대한 올바른 지식정보와 사고와
판단의 지혜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고통입니다.
그리고 인간 그 자체.
소위 실존의 기인하는 고통을 흔히 사고
팔고라고 합니다.
생로병사의 네 가지 고통과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 오음성고를 합한
여덟 가지 고통을 말합니다.
그래서 일체 모든 것은 생주이멸
성주괴공의 성질을 갖기에 일시적
쾌락이나 찰나를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는 한 고통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난날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풍요라면 싸울 일도 없고
행복해야 할 텐데 웬일인지 물질적
풍요의 비율을 높아지는 만큼 자살률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무차별적인 개발,
그 결과로 생긴 환경오염 등은 전
지구적인 문제가 되어 인간 스스로
위협당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지배를 위한 약탈 전쟁이
끝나지 않습니다.
자기 편집인 이기주의로 인해 부조화는
더욱더 심화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옛날부터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대로
배고파합니다.
오히려 지난날보다 더 악화되고 있는
기현상이 우리 주변의 숨길 수 없는
현실이죠.
이것을 부처님의 눈으로 보면 기현상이
아닌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물질의 속성과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아집은 그 발전 속도에 비례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인생 100세 시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 60년대에는 평균 수명이
52.4였으나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느냐면
푸념만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남아 있는 생이 30년이나 되는
때가 왔습니다.
생의 마지막 후반부 3분의 1이 생의 한
부분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과거 우리는 떠벌 30, 적 30년 플러스
30년의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초반기의 30년은 부모의 보호 아래
자라며 보호받고 결혼해서 세상을
살아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 30년은 자신이 부모에게
받았던 것처럼 아이를 낳고 기르며,
가르치며, 보냈습니다.
이것이 서로 쳇바퀴처럼 맞물려
굴러가면서 세상이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후반부의 30년을
마치고도 남는 수명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트리플 30으로 세상이
바뀐 것이지요.
이제 이 생을 남은 생이 아닌 아름다울
려, 날생 적.
아름다운 생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대개 50대가 되면 남자들은 가정에
귀환하게 되면서부터 부부가 서로
함께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무려 30년이 넘도록 돈을 벌어다가
주었는데 찬밥 대접을 받고 있다는
신세타령입니다.
남자들은 어느새 가정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치열하게 전투하며, 생존해온
노고를 치하받기는커녕 잃어버린 자리를
회복하기도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처럼 남편과 아내의 권력 지도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경제 활동을 뒷바라지
해주고 가사를 상당 부분 책임져줄 머슴
같은 남편을 찾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백마 탄 왕자보다는 돌쇠를 찾는다고
합니다.
아, 옛날이여 하고 그리움에 매달릴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급변하는 요즘 부부의 풍속들을
바라보면서 누구나 노후를 아름답게
보내기를 함께 염원해 봅니다.
재앙은 입으로부터 생긴다.
옛날 어떤 사람이 한 마리 말을 타고
적진을 치려고 전쟁터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적을 두려워 한 탓에 감히
싸워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얼굴에 피를 바르고 거짓으로
죽은 것처럼 꾸며 죽은 사람 속에 누워
있었고 그가 탔던 말은 다른 사람이
빼앗아 갔습니다.
군사들이 모두 떠나자 그도 집으로
돌아오려고 남의 흰 말 꼬리를 베어서
돌아왔습니다.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네가 탔던 말은 지금 어디에 두고 그냥
왔는가?
내 말은 벌써 죽었다.
그래서 그 말의 꼬리를 가지고 왔다.
곁에 있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내 말은 본래 꼬리가 검었는데 왜 흰가?
그는 거짓말이 금방 탄로가 나 마침내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습니다.
부처님은 나는 갖가지로 거짓말하는
것을 꾸짖고 거짓말하지 않는 이를
칭찬했다.
나아가 장난으로라도 오히려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거늘, 하물며 일부러
거짓말을 하겠느냐 하면서 거짓말의
죄와 과보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독약은 반드시 죽지 않으나, 거짓말은
반드시 죽는 것입니다.
만일 누구나 거짓말을 하면 그는 죽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누구나 나쁘게 분별하여
거짓말하기 기뻐하고, 즐기면
불칼위에나마 떨어지는 것처럼 그러한
괴로움을 받을 것입니다.
무엇을 거짓이라 하고, 무엇을
거짓말이라고 하는가.
거짓이라는 말은 일이 진실이 아닌 것을
허라 하고, 생각 등 진실이 아닌 것을
광이라 하니 이것을 바로 거짓이라고
합니다.
거짓말이라 함은 탐냄, 성냄,
어리석음으로써 일과 생각을 어긋나게
말하며, 다른 이로 하여금 그렇게 알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이 거짓말은 다섯 가지 인연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제 마음으로 자기를 속이고, 그다음에는
남을 속이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거짓말은 자기와 남을 모두
속이는 것이죠.
이른바 탐욕과 분노와 사법에 포섭되는
것과 그리고 욕심과 두려움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치한 사람은 이런 다섯 가지 인연으로
거짓으로 말하는데, 그들은 모두
어리석은 법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나 태어날 때는 그 입안에 커다란
독기가 있어 그렇게 자기 몸을 능히
변하니, 그것은 바로 거짓말입니다.
누구나 진실한 말을 떠나면 착한
사람들에게 버림받나니, 이 생에서는
마치 풀 같고, 저 생에 가서는
불태워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입으로 네 가지 행을
성취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을 시켜서 거짓말을 하게 하지도
않으며, 남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면
마음으로 좋아하거나 기뻐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을 일러 지혜로운 사람은 그 입을
보호하게 되죠.
그리고 꾸민 말, 악한 말, 남과 다투게
하는 말, 남을 시켜서 꾸민 말, 악한 말,
남과 싸우게 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간의 갖가지 재앙은
입으로부터 생기니 입을 조심해야
합니다.
입에서 생긴 재앙은 맹렬한 불길보다
심하니, 맹렬한 불길의 치성함은 한
세상을 태우지만, 악고의 치성함은
무수한 세상을 태운다고 했습니다.
입안의 혀는 몸을 파괴하는 도끼이자
자신을 멸망시키는 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싸우기 좋아하고, 아첨하는 마음을
품고, 다른 사람 흉보는 것을 좋아하며,
이간질, 거짓말, 욕, 꾸밈말로 중생을
천하게 보고, 헐뜯어 욕하며 다시 아픈
말로 남의 마음을 찌르면서 몸과 말과
뜻을 단속하지 않으면 지혜로운 사람은
그를 떠나 다른 곳으로 달아남으로써
대인관계까지 어렵게 됩니다.
나와 이웃, 나와 자연은 본래 하나의
생명이며, 상호 상관적 연계의 원리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계의 원리에 대한 자각에서
나오는 깊은 사랑을 동체대비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대 자비 정신에 따라
구체적으로 인간의 금기에 따른
원형교육의 실천, 사회복지 활동, 자연과
환경 보존 운동의 실천 그리고 더불어
사는 길을 실천해 나가야 하는 길은
거짓 없는 행동, 거짓말하지 않는
스스로의 불성을 깨달아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 불성의 힘은 과학과 첨단, 정보사회를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무한한 창조적
에너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오늘의 이 법문을 통해서 여러분이 듣고,
지니고, 깨달아서 성불하시기를 간절히
기원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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