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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유산아카이브 오래된 미래 - EP2. 산복도로
등록일 : 2025-07-28 13:55:32.0
조회수 : 97
-너무너무 가난하게 살아서 우리 6남매 키운다고 고생한 거. 너무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참 잘 살았구나. 이 동네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흥남부두에 오니까 이 미국 돈 가지고 가면 남한에 가면 못 쓴다.
북한 돈 바꿔가라고 해서 그거를 거기서 다 바꿔서 LST 타고 오는데.
거제도 바닷가에 수용소를 지어둔 거를 우리는 피란민이 돼서 못 산다고 난리
쳐서 거기서 나라에서 조금 주는 거하고 숟가락도 없고 하니까 쌀을 가져와서
거기서 불을 때서 밥해서 홍합 껍데기로 숟가락을 하고요.
그래서 영주동 왔는데 영주동에서 또 불이 나서.
-대통령 각하께서는 12월 2일 경보처장, 육군총참모장을 대동하시고 미...
-세상에 물이 없으니까요. 물을 하루에 9동 길렀다고요.
그 물 퍼서 빨래해서 도로 붓고 또 그 물 퍼서 하고는 그래 갖다 또 널고.
고생을 말도 못 했어요. 우리 아저씨가 결혼해서 애 하나 배어 놓고 군대에 간 거야.
부산으로 배치됐어요. 사모님 그 빵 외상 좀 주세요.
어떻게 알고 외상을 주냐 하면 휴가 가서 돈 갖다드릴게요. 알았다.
거기서 내가 돈을 엄청 벌었습니다.
45번지에 가면 큰 배가 들어오면 거기서 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여자들 깡깡이 한다고 하면서 막 망치를 가지고 배에 녹난 거 두드려서 이래서
하루 얼마씩 받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사 먹으러 나올 수가 없어요.
한 번 배에 들어가면 못 나와요. 저녁이 돼야 나오지.
가서는 비행기 만드는 공장에 아버지가 만드는 거는 비행기 날개 쪽만 계속 만들었다고 그래요.
해방이 되고 나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무서워서 못 살아서 도망을 왔다 합니다.
아주 큰 배인데 우리를 줄로 세워놓고 주먹밥을 한 개씩 주더라고.
그거 얻어먹고 배 타고 왔어요. 아이고 한국에 와서 힘들게 살았지요.
어머니가 6남매를 데리고 여기 와서 못 사니까 친정에 가서 쌀도 얻어오고 간장,
된장도 얻어오고 하루에 세 끼 먹어야 하는 거 두 끼 먹으면 잘 먹는 거고 한
끼씩은 굶고 그 시절에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살았는지 제가 까마득합니다.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은요. 너무너무 가난하게 살아서 우리 6남매 키운다고 고생한 거.
너무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시절에 살기 힘들지요.
그러니까 내가 14살, 15살 때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 회사에 봉제 기술 미싱하는
기술 배워서 15살 때부터 미싱해서 일제강점기 때 군복을 만들었단 말이야.
여기 개돌이 딱 치고.
배워서 할 만할 때 해방이 돼서 전부 안 돌아갔거든, 우리 한국에 있는 공장이.
그러고 있는데 낙하산 있지요.
낙하산이 흰색이고 되게 두꺼운 방수천이더라고 면도칼로 그거로 일일이 바느질밥을 따서 그거를 염색을 해.
아무것도 일할 게 없으니까 그렇게 옷 만들어서 애들 원피스, 남자분들 와이셔츠 참 고생 많이 했어.
화장품 장사도 해봤고 아이를 업고 진주, 사천으로 경주, 의성, 포항, 흥해, 영해.
국제시장 제품 하는데 가죽점퍼도 팔고 원피스고 바지고 아파트 짓는 데도 일하러 다니고.
식당을 했어요. 5년, 만 5년 해서 내가 아파트 33평짜리 하나 사고 참 고생 많이 했어.
-지금의 수정아파트가 있는 곳이 그곳이야말로 저는 원초적 부산, 오리진 부산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내 20대 청춘이 녹아 있던 그곳에서의 내 인생이 시작되었던 곳이고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안녕하세요, 약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산복도로 작업하고 있잖아요. 산복도로 이야기에서는 동일약국이 빠질 수 없는 곳이라.
-나이 많은 분이 여기는 많은데 우리 약국이 없어지면 진짜 밑으로 내려가야 하거든요.
제발 다른 데 가지 말고 이 약국을 계속해서 꼭 해야 한다고.
이 공간이 어쨌든 너무 좋습니다.
너무 좋고 여기서 쫙 쳐다보면 옛날에는 그냥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전부 다 그냥
올라갔는데 지금은 다리가 아파서 뒤로 가는 사람도 있고 앞으로 가는 사람도
있고 여러 사람을 지금 보고 있거든요.
그러면 너무 안타까워요. 참 잘 살았구나.
그리고 동네가 경치는 없어도 공기가 좋고 그러니까 이 동네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곳을 봐. 하나, 둘, 김치. 잠깐만요. 다시 한번 더 찍을게요.
오케이, 다시 한번, 여기 보시고 하나, 둘.
아름답습니다. 어머니들 너무 오늘 아름답네요.
제가 생각하는 산복도로는 특별하지 않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행복을 찾는 사람들.
-참 잘 살았구나. 이 동네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흥남부두에 오니까 이 미국 돈 가지고 가면 남한에 가면 못 쓴다.
북한 돈 바꿔가라고 해서 그거를 거기서 다 바꿔서 LST 타고 오는데.
거제도 바닷가에 수용소를 지어둔 거를 우리는 피란민이 돼서 못 산다고 난리
쳐서 거기서 나라에서 조금 주는 거하고 숟가락도 없고 하니까 쌀을 가져와서
거기서 불을 때서 밥해서 홍합 껍데기로 숟가락을 하고요.
그래서 영주동 왔는데 영주동에서 또 불이 나서.
-대통령 각하께서는 12월 2일 경보처장, 육군총참모장을 대동하시고 미...
-세상에 물이 없으니까요. 물을 하루에 9동 길렀다고요.
그 물 퍼서 빨래해서 도로 붓고 또 그 물 퍼서 하고는 그래 갖다 또 널고.
고생을 말도 못 했어요. 우리 아저씨가 결혼해서 애 하나 배어 놓고 군대에 간 거야.
부산으로 배치됐어요. 사모님 그 빵 외상 좀 주세요.
어떻게 알고 외상을 주냐 하면 휴가 가서 돈 갖다드릴게요. 알았다.
거기서 내가 돈을 엄청 벌었습니다.
45번지에 가면 큰 배가 들어오면 거기서 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여자들 깡깡이 한다고 하면서 막 망치를 가지고 배에 녹난 거 두드려서 이래서
하루 얼마씩 받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사 먹으러 나올 수가 없어요.
한 번 배에 들어가면 못 나와요. 저녁이 돼야 나오지.
가서는 비행기 만드는 공장에 아버지가 만드는 거는 비행기 날개 쪽만 계속 만들었다고 그래요.
해방이 되고 나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무서워서 못 살아서 도망을 왔다 합니다.
아주 큰 배인데 우리를 줄로 세워놓고 주먹밥을 한 개씩 주더라고.
그거 얻어먹고 배 타고 왔어요. 아이고 한국에 와서 힘들게 살았지요.
어머니가 6남매를 데리고 여기 와서 못 사니까 친정에 가서 쌀도 얻어오고 간장,
된장도 얻어오고 하루에 세 끼 먹어야 하는 거 두 끼 먹으면 잘 먹는 거고 한
끼씩은 굶고 그 시절에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살았는지 제가 까마득합니다.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은요. 너무너무 가난하게 살아서 우리 6남매 키운다고 고생한 거.
너무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시절에 살기 힘들지요.
그러니까 내가 14살, 15살 때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 회사에 봉제 기술 미싱하는
기술 배워서 15살 때부터 미싱해서 일제강점기 때 군복을 만들었단 말이야.
여기 개돌이 딱 치고.
배워서 할 만할 때 해방이 돼서 전부 안 돌아갔거든, 우리 한국에 있는 공장이.
그러고 있는데 낙하산 있지요.
낙하산이 흰색이고 되게 두꺼운 방수천이더라고 면도칼로 그거로 일일이 바느질밥을 따서 그거를 염색을 해.
아무것도 일할 게 없으니까 그렇게 옷 만들어서 애들 원피스, 남자분들 와이셔츠 참 고생 많이 했어.
화장품 장사도 해봤고 아이를 업고 진주, 사천으로 경주, 의성, 포항, 흥해, 영해.
국제시장 제품 하는데 가죽점퍼도 팔고 원피스고 바지고 아파트 짓는 데도 일하러 다니고.
식당을 했어요. 5년, 만 5년 해서 내가 아파트 33평짜리 하나 사고 참 고생 많이 했어.
-지금의 수정아파트가 있는 곳이 그곳이야말로 저는 원초적 부산, 오리진 부산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내 20대 청춘이 녹아 있던 그곳에서의 내 인생이 시작되었던 곳이고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안녕하세요, 약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산복도로 작업하고 있잖아요. 산복도로 이야기에서는 동일약국이 빠질 수 없는 곳이라.
-나이 많은 분이 여기는 많은데 우리 약국이 없어지면 진짜 밑으로 내려가야 하거든요.
제발 다른 데 가지 말고 이 약국을 계속해서 꼭 해야 한다고.
이 공간이 어쨌든 너무 좋습니다.
너무 좋고 여기서 쫙 쳐다보면 옛날에는 그냥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전부 다 그냥
올라갔는데 지금은 다리가 아파서 뒤로 가는 사람도 있고 앞으로 가는 사람도
있고 여러 사람을 지금 보고 있거든요.
그러면 너무 안타까워요. 참 잘 살았구나.
그리고 동네가 경치는 없어도 공기가 좋고 그러니까 이 동네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곳을 봐. 하나, 둘, 김치. 잠깐만요. 다시 한번 더 찍을게요.
오케이, 다시 한번, 여기 보시고 하나, 둘.
아름답습니다. 어머니들 너무 오늘 아름답네요.
제가 생각하는 산복도로는 특별하지 않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행복을 찾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