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유산아카이브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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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유산아카이브 오래된 미래 - EP3. 돼지국밥

등록일 : 2025-07-28 13:55:48.0
조회수 : 246
"뜨거운 한 그릇에 담긴 억척의 삶… 부산 돼지국밥, 그 위로와 진화의 기록"


부산 시민의 마음 한편에 소울푸드로 자리한 돼지국밥, 당신의 '최애 돼지국밥집'은 과연 어디인가요?

-고단한 삶을 위로한 서민 음식, 돼지국밥-

명실상부한 돼지국밥의 도시 부산, 그 역사 깊은 국밥 한 그릇에는 부산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부산 서구에 자리 잡은 'ㅅ' 국밥은 1969년에 개업하여 무려 56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그 시작은 지독한 가난을 이겨내려는 한 어머니의 억척스러운 삶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여든이 넘은 서혜자 여사는 남편의 사업 부도 후 어린 자식을 업고 국제시장에서 작은 국밥 가게를 열었습니다. 6.25 전쟁으로 피란민이 가득했던 부산에서 이북 할머니에게 돼지국밥 조리법을 배운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고집과 철학, 한 그릇의 진심-

서혜자 여사는 국밥에 대한 깊은 진심과 철학으로 매일 좋은 재료를 직접 고르고 모든 반찬을 손수 만듭니다.

특히, 고기 손질에 대한 고집은 남다릅니다. 매일 들어오는 깨끗한 고기를 직접 씻어 사용하며, 진한 국물을 위해 돼지의 전 부위를 2시간 동안 삶아냅니다.

가장 중요한 맛의 비결은 '토렴'인데, 뜨거운 국물에 밥알이 끓으며 단물이 배어 나오는 이 수고로운 과정을 통해 비로소 완벽한 한 그릇이 완성됩니다.

마치 그녀의 삶에 고된 토렴의 순간이 많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고아로 자란 서 여사는 '자식들 공부'라는 첫 번째 소원을 위해 억척스럽게 4남 1녀를 키워냈습니다.

그녀의 딸 최정은 씨는 어릴 적 어머니에게서 맡았던 국밥 냄새를 "엄마의 냄새"로 기억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부산의 소울푸드, 단골들의 변치 않는 사랑-

돼지국밥은 허기를 채우는 것을 넘어 부산 사람들의 소울푸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30~40년간 'ㅅ' 국밥을 찾아온 단골 신만성 씨와, 어릴 적 아버지 손을 잡고 국밥집에 갔던 기억을 떠올리는 박정환 씨의 이야기처럼, 돼지국밥은 여러 세대에 걸쳐 삶의 애환과 함께해 온 소중한 음식입니다.

-전통을 잇고 미래를 열다: 3대째 국밥의 진화-

삶에 지친 이를 위로하던 돼지국밥은 이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부산 해운대에서는 3대째 대를 이어 국밥의 명품화를 꿈꾸는 김성운 씨의 'ㅇ' 국밥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산뜻한 분위기로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는 이곳은, 6.25 전쟁 당시 할머니가 남포동에서 시작했던 고깃국 장사의 유산을 이어받았습니다.

김성운 씨는 전통적인 '토렴'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젊은 세대를 위한 스테이크 순대, 돼지국밥면 등 트렌디한 메뉴 개발에 끊임없이 고뇌합니다.

어머니가 "국밥이 최고의 한 그릇이고 최고의 사치"라고 말했듯, 김성운 씨에게도 국밥은 어린 시절의 전부이자 삶의 철학입니다.

그는 국밥 한 그릇이 할머니의 음식을 다음 세대까지 이어가는 자신의 "최대 사명이자 숙명"이라고 밝히며, 아내 정지은 씨와 함께 4대, 5대를 향한 노력을 다짐했습니다.

허기를 채우던 음식에서 미식의 진화를 이루며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하는 돼지국밥, 그 뜨거운 한 그릇은 앞으로도 부산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자리할 것입니다.


-못 해 준 거는 맨날 뭐. 난 아무것도 필요 없고, 자식들 공부만 시키려고 내가 했는데.
돼지국밥은 뭐냐. 나의 생명이라고 쳐야죠.
-삶의 열기가 분출하는 시장.
-돈이 있는 대로 며칠 모은 거, 일주일 동안 모은 거.
그 일수한 거 보태서 아주 조그마한 거 얻었죠. 제일 작은 거.
막걸리 하루에 5되 파는 그런 조그마한 가게를 얻었어요.
피란 오신 할머니, 나한테 돼지국밥 가르쳐 준 할머니도 이북 사람이에요.
어머님, 나 국밥 장사 할래요. 좀 가르쳐 주세요.
하니까 미쳤냐, 네가 돼지국밥을 어떻게 할 줄 안다고 하겠나, 이랬어요.
자꾸자꾸 하다 보니까 배워지긴 배워졌어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안녕하세요?
-그냥 전화하면 다 가져다주는데요. 마음에 안 들어요, 난.
내가 가서 보고 더 좋은 거 있으면 좋은 거 사야 하고.
사람들이 뼈를 담가서 핏물을 다 빼서 하는데 저는 그렇게 안 해요.
씻어서 그냥 해요, 깨끗하니까. 매일 고기 오늘 들어오는 거 쓰거든요.
그래서 또 2시간 삶아야 해요.
그래서 국물을 우려내니까 국물이 맛있는데 보통 보면 그렇게 안 하려고 해요.
수월하게 장사하려고.
토렴하다 보면 밥알이 이렇게 솥에 들어가잖아요.
밥알 하나씩 들어간 게 끓어서 거기에서 밥물이 나옵니다, 밥 삶은 물이.
-(외국어)
-우리 엄마, 아버지가 그때 그길로 호열자 걸려서 우리 엄마가 그날부터 1년, 2년 만에 다 돌아가셨어요.
두 분이 다. 우리 오빠는 공부하고 싶어서 고아원에 들어갔어요.
고아원에 가면 공부를 시켜주니까.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못해서.
공부를 못했어요, 내가.
그러니까 우리 아들은 공부를 시키는 게 내가 첫째 조건이지.
고기 살 돈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우선 국물이라도 갖다주면 애들이 밥 말아 먹고 그랬어요.
애들이 착하고 공부도 잘하고 그래도 대학은 다 갔잖아요.
그것만으로도 내 소원은 풀린 거예요.
-여기 계단이 있네.
-9살 때였던 것 같은데 초등학교 2학년이죠.
아침에, 일요일 아침에 그날은 엄마가 쉬는 날이었어요.
이렇게 엄마랑 같이 이불을 개고 이불을 장롱에 넣고 이렇고 하던 순간이었는데
엄마를 이렇게 안았는데 국밥 냄새가 났어요.
이게 엄마 냄새구나.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고 나는 이렇게 엄마가 좋은데.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걸 제가 알고, 엄마는 엄마 없이 그렇게 살았어요?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거든요.
절대 안 식어 펄펄 끓어 절대 안 식어 펄펄 끓어
그래서 딱 먹기 좋게, 알맞은 온도와 알맞은 식감을 딱 정해서 토렴해서 손님한테 나갑니다.
생생육면이라는 저희가 직접 반죽도 하고 면을 뽑는다고 하거든요.
국밥 한 그릇이 그 어떠한 산해진미보다 맛있다고 어머니는 항상 말하고 다니셨어요.
이게 최고의 한 그릇이고 최고의 사치고.
그래서 그 친구들이 이제는 커서 자기 자식을 낳고 이제 아기들 손잡고 오거든요.
할머니는 안 계시지만 할머니 음식은 남아 있다.
그래서 이 자리를 지키는 게 제 최대 사명감이자 숙명 아닐까요?
그래서 저희도 잘 운영을 해서 4대, 5대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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