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유산아카이브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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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유산아카이브 오래된 미래 - EP17. 40계단

등록일 : 2026-05-11 13:12:48.0
조회수 : 97
40계단, 피란민의 눈물과 희망이 쌓인 부산의 기억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부산 중구 40계단의 역사가 소개됐습니다.

40계단 일대는 전쟁으로 고향을 떠난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대표적인 공간이었습니다.

함경도 출신 차순자 씨는 1·4 후퇴 당시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란 와 남부민동 산복도로에서 판잣집 생활을 시작했다고 회상했습니다.

당시 산복도로 일대에는 피란민들이 모여 살았으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삶을 이어갔습니다.

피란민 상당수는 생계를 위해 부두 노동자로 일하며 40계단을 오르내렸습니다.

특히 물이 귀했던 시절, 주민들은 계단 아래까지 내려가 물을 길어 올리며 생활했습니다.

40계단은 피란민들에게 단순한 통행로가 아닌 가족과 친척을 만나던 약속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북에 두고 온 가족의 소식을 기다리며 많은 사람들이 40계단을 찾았습니다.

현재의 40계단은 원래 자리에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소장은 현재 위치에서 약 25미터 떨어진 곳이 원래의 40계단 자리였다고 설명했습니다.

40계단이 자리를 옮기게 된 배경에는 1953년 중구 일대를 덮친 대화재가 있었습니다.

당시 화재로 판잣집 3천여 채가 불타고 3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이후 정부는 주택 복구와 도로 정비 등 대대적인 복구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폐허 위에 새로운 길과 집이 들어섰고 사람들은 다시 삶의 터전을 일궜습니다.

한때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했던 40계단 일대는 원도심의 쇠퇴를 겪었지만 피란민들의 삶과 기억을 간직한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프로그램은 피란민들의 눈물과 희망이 서린 40계단이 부산 원도심의 역사와 함께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너무 살기가 힘들었으니까는 부모님들이 엄청난 고생을 하셨죠.
-북한 괴뢰가 도발한 비극의 6.25.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괴뢰는 삼팔선 일대에서 불법 남침을 감행하여 민족 사상 유례없는 비극의 불씨를 뿌렸다.
-그러니까 쌀을 한 사람당 한 홉 반, 한 홉 반 받으면 완전 물에다가 쌀 몇 개 둥둥 띄워서 그렇게 먹고살았어요.
지금 수산센터 자리 남부 민동에다가 이제 다 떨어진 하꼬방을 하나 얻었어요.
-그런 것 같습니다.
-중앙동 보면은 저기 40계단이 있다 아닙니까.
그게 그때는 돌 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했거든요.
-또 헤어졌던 가족들이 40계단에서 만나자.
-그랬던 것이 여기 산자락에서 밑에 있었던 논치 어장으로 가는 이 경사진 산 비탈길이.
쌍산 착평 공사 끝나고 난 뒤에 원래 있었던 자리에 계단을 만든 게 그게 딱 40개였던 거죠.
-그때는 제 몸이 떨려 갖고예. 온 식구가 불이 막 벌겋게 해갖고 막 올라오고 오는데 저녁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예.
-저를 이렇게까지 성장시켜 주신 아버님, 어머님의 옛 모습을 적나라하게 잘 보고 가며 또 성장시켜 준 것에 감사드립니다. 아들이.
-부산에서 그냥 자리를 잡고 여기저기 장사를 하시다가 당시에 메리야스 장사를 하게 되죠.
이렇게 오늘날처럼 반듯반듯한 이런 길들이 생겨나게 되고 서류상의 날짜가 54년도에 토지 사용 승낙을 받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55년도에 건축 허가가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 근처에 또 세관이 있으니까 어떤 무역 같은 것 그런 빌딩들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던 그러한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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