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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유산아카이브 오래된 미래 - EP18. 낙동강 재첩국
등록일 : 2026-05-18 14:31:43.0
조회수 : 92
낙동강 재첩국, 가난한 시절을 건너게 한 부산의 맛
부산 강서구 덕두마을과 낙동강 하구에서 이어져 온 재첩국의 역사와 의미가 소개됐습니다.
1980년대 초까지 낙동강 하구 덕두마을에서는 재첩잡이가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주민들은 봄이면 재첩을 잡아 부산 전역에 판매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홍분연 씨와 양순옥 씨는 당시 낙동강에 재첩이 풍부했고 재첩국이 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책임졌다고 회상했습니다.
재첩은 국과 찜, 전 등 다양한 음식으로 활용되며 낙동강을 대표하는 향토 식재료로 자리 잡았습니다.
덕두마을에서 2대째 재첩잡이를 해온 김순철·김순도 형제는 전후 어려웠던 시절 재첩이 중요한 먹거리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재첩국은 낙동강 유역 주민들의 생계수단이자 허기를 달래주던 음식이었습니다.
과거 낙동강 하구는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기수역으로 재첩이 풍부하게 서식했습니다.
하지만 1987년 낙동강 하굿둑이 준공된 이후 물의 순환이 달라지면서 재첩 생산량이 크게 감소했습니다.
김순철 씨는 하굿둑 건설 이후 재첩이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서진원 낙동강하구에코센터장은 하굿둑 건설 전 연간 1만 톤 이상 생산되던 재첩이 이후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낙동강에서는 재첩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삼락재첩거리 일대에서는 일부 음식점들이 재첩국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국내산 재첩이 거의 사라지면서 상당수 업소는 수입산 재첩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상인들은 하굿둑 개방 등을 통해 언젠가 낙동강 재첩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은 낙동강이 남긴 재첩국의 추억과 부산 사람들의 삶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부산 강서구 덕두마을과 낙동강 하구에서 이어져 온 재첩국의 역사와 의미가 소개됐습니다.
1980년대 초까지 낙동강 하구 덕두마을에서는 재첩잡이가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주민들은 봄이면 재첩을 잡아 부산 전역에 판매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홍분연 씨와 양순옥 씨는 당시 낙동강에 재첩이 풍부했고 재첩국이 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책임졌다고 회상했습니다.
재첩은 국과 찜, 전 등 다양한 음식으로 활용되며 낙동강을 대표하는 향토 식재료로 자리 잡았습니다.
덕두마을에서 2대째 재첩잡이를 해온 김순철·김순도 형제는 전후 어려웠던 시절 재첩이 중요한 먹거리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재첩국은 낙동강 유역 주민들의 생계수단이자 허기를 달래주던 음식이었습니다.
과거 낙동강 하구는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기수역으로 재첩이 풍부하게 서식했습니다.
하지만 1987년 낙동강 하굿둑이 준공된 이후 물의 순환이 달라지면서 재첩 생산량이 크게 감소했습니다.
김순철 씨는 하굿둑 건설 이후 재첩이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서진원 낙동강하구에코센터장은 하굿둑 건설 전 연간 1만 톤 이상 생산되던 재첩이 이후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낙동강에서는 재첩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삼락재첩거리 일대에서는 일부 음식점들이 재첩국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국내산 재첩이 거의 사라지면서 상당수 업소는 수입산 재첩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상인들은 하굿둑 개방 등을 통해 언젠가 낙동강 재첩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은 낙동강이 남긴 재첩국의 추억과 부산 사람들의 삶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물 반, 재첩 반이지 그런데 우리 재첩이라 안 했어 그냥 조개. 그냥 조개야, 조개
-아침에 새벽 4시 되면 팔러 가는 거지 옛날에 재첩국 사이소 하는 게 골목마다 그 소리가 울렸거든요.
재첩국이 우리를 살려준 거지 조개 그거 때문에 우리가 살아난 거 아닙니까? 재첩국 때문에
-물 반, 사람 반 재첩을 앉아서 그 자리에서 바구니 가져다 놓고
막 퍼 담아도 금세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바구니씩 잡았어요. 그때는
-아 , 그립지요. 그 재첩이 얼마나 맛있고 그랬는데 삶아서 먹으면 국이 진국이었거든요.
끓여서 부추 썰어 넣고 먹으면 정말 맛있었습니다.
우리 집에 잡아 놨다 하면 그 집에 가면 소문을 듣고 저 집에 사러 가라하고 사 가셨어요, 전부 다.
그렇게 잡아서 국을 끓여 가지고 시장에, 마을에 다니면서 팔고 이고 다니면서 팔고 그랬죠.
-우리는 전후 세대이기 때문에 먹을 게 없기 때문에 강에 오면 재첩을 잡아서 먹을 수 있으니까 강으로 오는 거지
-둑만 넘어가면 나만 잡으러 온 게 아니고 주위에 친구들도 똑같이 엄마가 잡아 오라 한 거야
그 정도로 많았지 대충 손 넣어서, 한마디로 말하면 그냥 끌어 담는다고 보면 되지 그만큼 재첩이 흔했지요.
가지고 가면 아직 밥이 다 안 됐어. 그걸로 이제 된장 끓이는 거지. 그런 추억이 많았죠.
하나 둘 셋 아이고, 지금은 없죠. 없는데 우리는 안타깝지. 친구들하고 지금도 모이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술을 한잔할 적에 저 하굿둑만 열어도 하굿둑을 열고 3년에서 4년만 딱 되면 옛날 그대로 바로 복원된다.
하굿둑이 생기고 나서 하굿둑이 생기고 딱 그 이듬해부터
이게 바닷물과 민물이 순환이 돼야 하는데 하굿둑을 만드니까 순환이 안 된다 아입니까.
그러니까 재첩이 다 죽어버린 거지 뭐.
-하굿둑 건설 이전인 79년, 80년도 당시에는 연간 1만 3천 톤 또는 1만 톤 가량의 재첩이 생산된 반면에
하굿둑 건설 이후에는 88년, 89년도에는 생산량이 매우 감소하였습니다.
4대강 사업이 끝날 무렵인 2010년, 2011년도 당시에는 다시 또 감소하는 경향에서 거의 이제 잡히지 않았고요.
어민들 체감으로는 재첩 수확량은 최근에는 거의의 없다는 표현을 많이 하고 계십니다.
-지금 국내산이 거의 없습니다. 환경적으로 얘들이 못 살아나더라고 보니까. 많이 그립지요.
이거는 맛이 국내산 못 따라가니까 옛날에 국내산은 정말 맛이 좋았거든요.
그 시절이 한번 다시 올지 모르겠습니다.
-신랑 따라와서 먹다 보니까 이제 너무 맛있어요. 달큰하면서도 시원하면서 이 맛이 그런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졸업하고부터 여기 한 40년 됐네.
예전보다는 조금 시원한 맛이 덜한데 그래도 아침 새벽에 속이 허할 때는 먹고 나면 제일 담백한 국물이니까
-우리가 이제 60년 조금 넘었지. 60년 다 돼 가지, 이제. 한 육십 몇 년 됐습니다.
그렇게 오래 했는데 그런 재주 때문에 그리고 있으니 이렇게 살아지네 조개가 좋은 줄 알아야지.
-수문만 열어주면 진짜 감사하죠. 그것밖에 없죠.
재첩이 있어야 장사를 하니까 바람은 그 재첩에 대한 바람은 그것뿐이에요.
-중국에서도 지금 뭐 잡히긴 잡히는 것 같은데 언제까지 갈지를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어요.
어떨 때는 뭐 있니 없니 할 때도 있고 막 이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