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유산아카이브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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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유산아카이브 오래된 미래 - EP23. 부산시민공원

등록일 : 2026-06-22 18:07:54.0
조회수 : 111
부산시민공원, 경마장·미군부대 지나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다


부산시민공원이 일제강점기 경마장과 미군 하야리아 부대를 거쳐 시민의 공간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역사를 품은 장소로 소개됐습니다.

부산진구에 자리한 부산시민공원은 100여 년 전 일본인이 범전동 일대에 조성한 경마장 부지에서 출발했습니다.

태평양전쟁 이후 이곳에는 포로수용소와 일본군 병참기지가 들어섰고, 한국전쟁 뒤에는 주한미군 부산기지 사령부인 하야리아 부대로 사용됐습니다.

하야리아 부대 주변은 전쟁 이후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주민들의 삶터이기도 했습니다.

부대 인근 주민들은 벽을 따라 건빵과 빵을 팔거나 기름을 모아 되파는 방식으로 생계를 꾸렸다고 회상했습니다.

미군 부대에서 나온 음식물은 ‘꿀꿀이죽’으로 다시 끓여 팔리며 배고픈 시절 서민들의 허기를 달래기도 했습니다.

1975년부터 1995년까지 하야리아 부대에서 탄약정비관으로 근무한 김수현 씨는 당시 부대가 높은 담장과 철조망, 망대로 둘러싸인 통제된 공간이었다고 떠올렸습니다.

또 전후 복구기 부산의 다른 지역과 달리 하야리아 부대만은 24시간 전기가 공급돼 늘 밝았고, 당시에는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하야리아 부대는 주민들에게 생계의 현장이자 미국식 음식과 음악, 생활문화를 접하는 통로이기도 했습니다.

1986년 하야리아 부대에서 밴드 연주자로 활동한 김화남 씨는 장교클럽에서 공연하며 미군들과 어울렸고, 그곳에서 햄버거와 스테이크, 커피 같은 미국 음식을 처음 접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후 하야리아 부지 반환과 시민공원 조성을 요구하는 시민운동도 본격화됐습니다.

정부가 부지 일부를 선수촌 아파트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시민사회는 평지 공원이 부족한 부산에 전체 부지를 시민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인간띠 잇기와 종이비행기 날리기 등 평화적인 방식의 운동이 이어졌고, 시민 152만 명의 서명이 모였습니다.

2006년 하야리아 부대는 공식 폐쇄됐고, 2010년 부산시에 부대 열쇠가 반환되면서 빗장이 열렸습니다.

이후 조경 설계를 거쳐 2014년 부산시민공원이 문을 열었고, 일제 경마장과 미군 부대 시절의 흔적을 품은 도심 공원으로 시민 곁에 돌아왔습니다.

프로그램은 부산시민공원이 억압과 동경, 생계와 변화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땅이자, 시민의 힘으로 되찾은 공간이라고 조명했습니다.

-또 옛날에 미군 부대가 있고 그 옆에 거기서 장사하면서 살았는데
건빵도 갖다 놓고 빵도 갖다 놓고 막 이런 거 해서 장사를 했습니다.
고생 많이 했어요. 얘기 다 못 합니다.
-전쟁하고 나서복구하는 시기였는데 이 부대만은 특별히 전기가 24시간 보급이 돼서 항상 밝습니다.
저기는 다른 세상인가. 저렇게 전기가 밝고 참 좋다.
-담장은 전부 다 벽돌 해서 높이 쌓아 놓고 그 위에 또 철조망도 하고 그 망대가 있습니다.
출입자를 통제하는 보초병이 있었고. 너무 다르고 옛날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어요. 너무 달라져서.
-북한 공산군은 38도선 전역에서.
-사직동 들어간 도로가 있고 이쪽은 큰 부대가 있는데 거기 벽에다가 요만치 계단을 이렇게 놔서
건빵도 갖다 놓고 빵도 갖다 놓고 막 이런 거 해서 장사를 했습니다.
어지간한 사람은 건빵도 못 먹고 살았어요.
하천이 있는데 사직동 있는 데서 물이 내려와서 기름이 둥둥 떠가지고 내려옵니다.
납작하게 이래가지고 깡통으로 해가지고 기름을 걷어가지고 한 통씩 해가지고 갖다 팔아라.
부두 가서 와서 팔았어요. 돈벌이 참 괜찮았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알고 남자가 그걸 뺏으려고 아줌마 이제 여기 하면 벌금 내야 돼요.
벌금은 절대 낼 리가 없다. 우리 아저씨가 이 부대 안에 아주 높은 사람이 돼 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병사들이 많으니까 식사를 하고 다 못 먹고 한 반절쯤 먹고 나서 그걸 이제 버립니다.
담배 피우다가 꽁초도 버리고 휴지도 버리고. 막 그걸 모아가지고 제가 또 계약이 돼가지고 들어와서 그걸 가져갑니다.
그걸 막 걸려서 다시 끓입니다.
막 끓여서가지고 그래서 시장통에 갖다 놓고 팝니다, 그거를. 그 당시에는 우리가 참 배고플 때였습니다.
꿀꿀이죽을 상당히 저렴하게 풍성하게 한 그릇씩 이렇게 주니까 많이 배를 채우는 거예요.
-미국 부대 자체에 가면 이런 목욕 시설이 잘 돼 있어요, 샤워 시설이.
콘센트 해 가지고 따로 하나씩 있으면 클럽에서 악기를 들고 샤워실에다 옮겨 놓고 거기서 막 연습을 했거든요.
양키들이 지나가다가 창문 열고 오, 유 크레이지 보이 하면서 인정을 받으려면
진짜 자신도 연습을 많이 해야 되고. 드럼 솔로를 막 하면 정신없이 춤을 추기 시작해요.
그래서 네가 이기냐, 내가 이기냐 시합을 하는 거예요.
한 양키가 딱 와서 내가 맥주 한 박스를 내겠다.
그래가지고 시합을 했는데 걔네들은 춤을 시작하면, 일단 시작하면 천천히 추는 게 없어요.
끝까지 막 해서 숨이 헐떡헐떡 될 때까지. 그때는 20대니까 힘이 넘치고
스피드도 있고 막 빨리 해가지고 그래 하니까 내가 이겼어요.
햄버거라든가 스테이크 제가 즐기게 된 게 토마토 케찹. 이게 또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요.
클럽 안에 입구에 뭡니까? 이런 큰 스텐인리스통으로 수도 꼭지같이 딱 달려 있어요.
그래서 딱 트니까 까만 물이 나오는데 그게 커피야. 쓰고 신맛도 나고 아주 오묘하다 할까.
그런 맛으로 커피를 먹기 시작했어요.
-70년대만 해도 전쟁하고 나서 복구하는 시기였는데 많이 초라했습니다.
저쪽 너머에는 판잣집도 많고 이 부대만은 특별히 전기가 24시간 보급이 돼서 항상 밝습니다.
어디서 봐도 여기는. 아, 저기는 딴 세상인가 저렇게 전기가 밝고 참 좋다.
카드를 가지면 외부에 있는 한국 민간인들을 초청할 수가 있어요.
손님이 오면 특별한, 특색 있는 하야리아 부대에 가서 대접하는 걸 상당히 즐거워하더라고요.
무슨 큰 특권을 가진 것처럼 그래가지고 그 사람들이 자랑도 하고.
-부산 시민들의 숙원이기도 한 16만 평에 달하는 하야리아 부대에 대해서
그곳은 공원으로 만들고 일부를 선수촌으로 만들어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그러면 16만 평 전체를 시민공원으로 하기에는 좀 그렇고
반은 2002년도 아시안게임 때 아시아드 선수촌을 만들고 반은 공원하자라는 제안이 들어왔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 됩니다. 부산은 평지 공원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야리아 부대는 오로지 전부 다 시민공원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하고 정부의 역제안을 거절하고.
모든 행사는 평화가 가장 앞서 나갔거든요. 그리고 맨 앞에 어린아이들이 앞장서게 됩니다.
그러니까 경찰들이 와서도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이유가 없었거든요.
부산진중학교에서 양정 현대아파트까지 줄을 씌워서 아이들과 함께 인간띠 잇기를 하고
비행기를 하야리아 부대 안으로 날리고 풍산을 띄우고 하는 이런 과정들 속에서
평화적인 운동이 훨씬 더 폭력적인 시위보다는 효과적이다라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됐고요.
-2010년 4월 24일. 철조망과 높은 담에 둘러싸여 있던 하야리아는 100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일제 강점기 때 아니면 미군 주둔기 때 미군 부대 주변에 있었던 그런 패브릭까지
저희가 생각을 했을 때 이 역사 사이트가 가지고 있는 그런 역사적인 굉장히 특성에
점점점 역사가 쌓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가졌기 때문에 저희가 알루비움이라는 걸 생각을 했고
굉장히 역사적 가치가 있는 그런 자취들을 최대한 많이 남기자.
-머시 다르노~ 우리가 머시 다르노~
-시민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뿌듯함을 느끼고 있고요.
시민공원의 역사와 시민공원이 만들어진 이야기 이런 것들을 이야기해 주고
함께 놀고 함께 즐기고 있는 것에 대해서 너무 행복하고요.
-우린 알고 있다가~
그래 이제 함께해 보는 거야~ 시작이야~ 벌써 뒤돌아볼 필요는 없어~
우린 이렇게 손을 잡은 거야~ 함께 꿈꾸는 거야~ 우리의 내일~
평화의 날들을 위해~ 평화의 날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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