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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유산아카이브 오래된 미래 - EP30. 안용복 관련 유적

등록일 : 2026-08-10 13:22:52.0
조회수 : 143
안용복이 지킨 울릉도·독도…기록과 문화로 이어지는 영토의 기억


조선시대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안용복의 활동과 관련 기록들이 다시 조명됐습니다.

1693년 울릉도를 찾은 안용복은 현지에 머물던 일본 어부들과 충돌했고, 박어둔과 함께 일본으로 끌려갔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울릉도와 독도를 둘러싼 문제가 양국 간 외교 문제로 번졌고, 조선과 일본 사이의 분쟁은 5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안용복은 일본에서 독도와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주장했으며, 막부로부터 각서까지 받아 돌아오던 중 나가사키에서 대마도주에게 이를 빼앗긴 것으로 소개됐습니다.

두 번째로 일본 돗토리를 찾았을 당시 안용복과 돗토리번 관리들이 접촉한 것으로 추정되는 약 2주 동안의 자료는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에도 막부는 안용복이 일본에 가기 전인 1696년 1월 이미 도해 금지령을 내렸지만 이를 조선에는 알리지 않았다는 설명도 나왔습니다.

울릉도가 조선의 땅임을 보여주는 일본 측 자료로는 1837년 니가타현에서 제작된 경고판인 ‘죽도제찰’이 소개됐습니다.

죽도제찰에는 울릉도를 조선국의 땅으로 규정하고 해당 지역으로 항해해 어로활동을 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설명됐습니다.

이 자료는 일본에서 낙찰받아 국내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끝에 현재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것으로 소개됐습니다.

또 일본의 문서인 태정관 지령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는 설명도 이어졌습니다.

영토 수호의 의미를 후대에 전하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 영토를 함께 지켜나가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습니다.

독도를 지리적·역사적·국제법적 근거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지켜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소개됐습니다.

독도를 주제로 한 노래를 만들고 외국어로 번역하거나 숏폼과 SNS, 밈 등 미디어 콘텐츠를 활용해 세계에 알리는 방안도 제시됐습니다.

프로그램은 안용복과 관련 유적·기록을 통해 울릉도와 독도를 지켜온 역사를 되짚고, 영토 수호의 의미를 후대에 이어갈 필요성을 전했습니다.

내 조국 내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그 단순하고도 정말 고귀한 생각으로
-울릉도와 독도 일대의 영유권을 확정을 하고 돌아온
-이 인물을 좀 더 확실하게 조사를 할 필요는 있는데 자료가 없습니다.
-1693년입니다.
울릉도를 가셨을 때 일본 어부들이 그곳에서 상주해 있는 걸 보고 충돌을 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서 안용복 장군과 박어둔 2명이 대표로 일본에 납치되어 갑니다.
-안용복이 거기에서 끌려가지 않고 만약에 무사히 돌아왔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겠죠.
울릉도의 영토 문제가 울릉도, 독도 문제가 그런데 안용복이 거기에서 끌려감으로 인해서
양국 간의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영토 문제가 분쟁이 돼서 약 5년 조금 넘게 조선과 일본
간의 외교 분쟁이 발생한 것이죠.
-독도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하루 만에 가지만 너희 나라는 닷새가 걸린다.
그러므로 3살 먹은 아이가 봐도 독도, 울릉도는 조선의 영토라고 당당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막부로부터 그 각서까지 받고 돌아오시다가 나가사키에서 대마도주에게 꾐에 빠져서
그 각서를 빼앗깁니다.
-안용복이 두 번째에 돗토리에 왔을 때 돗토리 성에서 돗토리번의 관리들하고 만나 가지고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약 그 기간 동안에 2주 동안의 기간이 있는데 그 기간의 자료가 없어요.
사라졌습니다. 딱 그 기관에 자료가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지금 생각으로는 이게 안용복과 만나서 돗토리번 사람들이 만나가지고 무슨 대화를
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에도 막부가 어떤 지시를 내려오냐 하면 그 사람하고 아무런 접촉을
하지 말고 돌려보내라고 지시가 내려옵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접촉한 게 다 명령 위반인 거예요.
그러니까 그 관련된 자료를 다 삭제한 것 같아요.
실제로는 안용복이 가기 전에 1696년 1월달에 에도 막부는 이미 도해 금지령을 내렸어요.
그리고 조선 쪽에 알리지 않은 거죠.
그걸 외교문서로 남기기가 거북했을 거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일본이 울릉도라고 하는 조선의 땅을 불법으로 침략한 침범한 거잖아요.
그걸 문서상으로 남겨두기가 싫은 거죠.
-죽도제찰은 일종의 경고판이거든요.
1837년에 제작이 된 거고 일본의 니가타현에서 만든 경고판인데 경고판의 내용은 이제
울릉도가 조선국 땅이니 원나라로 그러니까 이국의 땅으로 도해, 그래서 그 나라로
항해를 해가지고 거기서 어로활동하는 거를 금지한다.
그 울릉도 일대를 조선국 땅이라고 인정하는 내용이 그 죽도제찰에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 낙찰 받을 때도 한국인 신분으로 낙찰을 받기가 힘들어 가지고 일본 친구분한테 부탁해서
낙찰을 받아서 또 가지고 나오기까지도 좀 어려운 과정이 있어 가지고 일본 정부의 그 제약
때문에 어렵게 돼서 이제 몇 년 동안 가지고만 계시다가 겨우 한국으로 가져오셔서 저희
박물관으로 이렇게 소장할 수 있게 이렇게 해 주셨습니다.
-그 문서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과는 관계가 없다라고 분명히 선언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태정관 지령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는 일언반구 언급을 안 합니다.
자기들한테 가장 불리한 자료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인정한 거거든요.
-제일 중요한 거는 그분이 이름을 알리거나 어떤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고
이 영토의 중요성을 후대나 이런 많은 사람들이 지켰으면 하는 바람으로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후손들이 함께 우리나라를 각각이 지킬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독도가 지리적, 역사적 국제법적으로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근거에 더해서 독도 노래를 통해서
독도가 문화뿌리 영토라는 것을 제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주장을 전 세계에 알리고 확산시키기 위해서 독도 노래를 계속하고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노래) 등대 불이 깜빡이는 외로움 섬에
-문화적으로다가 독도운동을 펼쳤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뭐 독도 노래를 만들고 또 외국어로 번역을 해서 전 세계에 알리는 그런 일.
그래서 우리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숏폼이라든가 또는 무슨 뭐 SNS나 밈 이런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서
전 세계에 알려서 우리의 높은 문화 수준 또 영토 수호의 정신을 일깨워줬으면 합니다.
-독도 포에버 러일전쟁 직후에 임자 없는 섬이라고 억지로 우기면 정말 곤란해.
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한국 땅
-(노래) 저 멀리 동해 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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