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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유산아카이브 오래된 미래 - EP31. 박차정 생가

등록일 : 2026-08-18 10:40:53.0
조회수 : 189
조국 위해 싸운 박차정 의사…독립운동의 길을 되짚다


박차정 의사의 독립운동 활동과 그를 기억하기 위한 노력들이 조명됐습니다.

박 의사는 여성들도 남성들과 함께 조국의 광복을 위해 일본군에 맞서 싸우고자 했던 인물로 소개됐습니다.

박 의사의 심정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되는 글에는 배고픔과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억압에 맞서 싸우겠다는 생각이 담겼습니다.

박 의사의 활동은 단순한 독립운동을 넘어 반외세·반제국·반봉건을 지향하는 민족해방운동으로 설명됐습니다.

박 의사는 서울 여학교 만세 시위 운동에 참여했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돼 고문을 당했고, 풀려난 뒤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이후 오빠 박문호의 권유로 국내보다 국외에서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망명했습니다.

국외 활동 과정에서는 약산 김원봉과의 인연이 소개됐으며, 조선혁명간부학교 교관으로 활동했다는 설명도 나왔습니다.

또 조선혁명간부학교 교가를 박 의사가 작사·작곡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도 이어졌습니다.

이후 민족혁명당을 적극적으로 돕기 위해 남경 부녀복무단이 조직됐고, 박 의사는 부녀복무단장을 맡아 선무공작에 나섰습니다.

일본 측을 향해 투항을 권유하거나 팸플릿과 포스터를 활용하는 선무공작을 벌였으며, 나아가 직접 총칼을 들고 전투에도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박 의사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김원봉이 직접 유해를 수습해 돌아왔으며, 박 의사가 총상을 입었을 당시 입고 있던 피 묻은 적삼을 장모에게 건넸다는 기록도 소개됐습니다.

하지만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사회주의 성격을 띤 연구가 터부시됐고, 김원봉의 이름 역시 지역에서 금기시됐다는 설명이 나왔습니다.

박 의사는 계급보다 민족을 우선하고, 국민 대중 전체가 민족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인물로 설명됐습니다.

박 의사를 기억하기 위한 노력도 소개됐습니다.

학생들은 허물어지고 풀 한 포기 없던 박 의사의 묘소를 찾은 뒤 직접 나무판과 못을 구해 표지판 2개를 만들었습니다.

또 묘소까지의 거리를 평균 86걸음으로 계산해 ‘그녀에게 가는 길 86걸음’이라는 메시지를 표지석에 남겼습니다.

프로그램에서는 남성 독립운동가와 여성 독립운동가를 구분하려는 경향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모든 독립운동가의 업적과 활동을 기억하고 미래 세대에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또 국가로부터 독립장을 받은 박 의사의 묘가 현재 ‘약산 김원봉 장군의 처 박차정 여사의 묘’로 표현돼 있다며, 앞으로 ‘여성 독립운동가 박차정의 묘’라고 새겨지는 날이 오길 바란다는 뜻도 전해졌습니다.

박차정 의사께서는 여성들도 남성들과 함께 조국의 광복을 위해서 일본군에 대항해서 싸우려고
노력하셨던 분입니다.
-단순히 여성이라기보다는 아주 혁명성, 투쟁성이 아주 남다릅니다.
-학생들이 왔는데 박차정 묘소가 완전히 허물어져 있고 풀 한 포기가 없었어요.
애들이 철물점에 가서 나무판 사고 못도 사고 해서 손수 만들어서 표지판 2개를 만들었습니다.
모퉁이를 돌았는데 묘소가 보이지 않으니까 몇 걸음인지 궁금해할 거다.
평균치로 낸 게 86걸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가는 길 86걸음이라는 저희들한테 희망 띤 메시지를 그 표지석에 남긴 것이죠.
-토지 조사 사업을 하지 않으면 한국의 근대화는 경제적인 어떤 부분에서는 도저히 발전이 없다는
그 말에 솔깃해서 탁지부 주사로 이제 취업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 탁지부라는 것이 우리는 독립운동, 한국의 토지 조사를 연구하는 곳이거든요
막상 그걸 끝날 때 보니까 결국 토지 조사 사업이라는 거는 결국 우리나라 토지를
강탈하는 거거든요.
일본의 지배의 경제적인 기반을 만들어주는 거 그거를 느껴서 알아차린 거죠.
그래서 비분강개해 가지고 자결하게 되는 겁니다.
-철애는 배가 몹시 고파서 동생의 배고파 하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철호 옆에 앉아 곁에 있는
찬물 그릇을 들고 입에 대었다.
인생이란 것은 어찌하여 이다지 잔인한 사회를 가졌을까 사람이란 왜 이렇게 배고픈 때에
먹지를 못할까 하고 그녀는 불합리한 현대사회를 저주하였다.
내가 이왕 죽을 바에야 힘껏 싸워 볼 것이지 압박의 흑암을 헤쳐버리며 서슴없이 전 세계의
폭군들을 향하여 싸워 보자
-박차정 의사가 내세우는 것은 민족 해방운동이거든요.
이게 단순한 어떤 독립운동이라기보다는 민족 해방운동이라는 것은 반외세, 반제국, 반봉건을
해야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아마 소설을 써서 자기 심정을 글로 표현한 거 아닌가
-서울 여학교 만세 시위 운동에 참여를 하면서 그 일경에 체포가 됐었습니다.
그 이후에 모진 고문을 당했고 공보속으로 풀려나게 되면서 이제 부산으로 내려와서 오빠였던
박문호가 망명을 권유해서 이 국내에서의 활동보다는 국외로 나가서 조금 더 활동을 펼치고자
망명을 했습니다.
-이 근처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다던데
-너 뭐하는 놈이야?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약산 김원봉 장군께서 처가에 가서 하신 얘기가 있답니다.
세상에서 가장 미인이 고모였다.
너무 예뻐서 혼인하자 했는데 자꾸만 혼인하지 않겠다고 해서 너무 애를 태웠다라는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래) 우리는 한국 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중국에 조선혁명간부학교 교관을 했다든가 교가를 독립운동가라 박차정 의사가 작사, 작곡을
한 것 같아요.
어릴 때 저 인문학적인 자질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까
-(노래) 악마의 원수 처물리자 나가 나가 압록강
-간부학교의 출신들이 민혁당이라고 조선민주혁명당이 이제 민족혁명당이 구성됩니다.
거기에서 남경 부녀복무단을 조성해 가지고 민혁당을 갖다가 적극적으로 도웁니다.
그리고 여성들이 조직을 해서 민혁당의 이제 지평을 넓히게 되는 거고 단순히 여성이라기보다는
아주 혁명성, 투쟁성이 아주 남다릅니다.
-부녀복무단장을 하면서 선무공작을 합니다.
선무공작이라는 거는 마이크를 잡고 일본들을 향해서 너희들은 일본제국주의에 속고 있는 거다.
일본이 너희도 스스로 투항하라라든가 팜플렛을 보낸다든가 포스터도 날리고 그러다가 또 더 나아가서는
총칼을 들고 본인이 직접 전투에 참여합니다.
-약산 김원봉 장군께서 손수 그 유해를 수습하셔서 품에 안고 오셨어요.
그 기록에 보면 박차정 의사께서 총 맞았을 때 입고 계셨던 적삼을, 피 묻은 적삼을 장모에게 건네주고
유해를 안고 오셔 가지고 이곳에 이제 묻게 되신 거죠.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사회주의 성격을 띤 연구 자체가 좀 터부시되고 사실 그 손을
놓았죠.
박차정 의사는 계급보다는 민족이 우선이니 자기는 민족의 주체가 국민 대중 전체가 돼야지 어떤 특정한
계급 투쟁을
하게 되지 않는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약산이라는 이름을 꺼내는 것이 이 지역에서도 금기시 되어 왔기 때문에 미국에 있는 조카가 이제
1966년에 작은 크기의 비석을 하나 만들어 놓으면 나는 미국에 있기 때문에 밤에 몰래 세우고 나서
미국으로 떠나버리면 사람들이 그걸 알지 못할 것이다라고 해서 살아있는 사람이 잊는 순간 저승에
있는 영혼도 사라진다고 합니다.
조국을 위해서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 바쳤던 그분들을 기억해 줌으로 인해 가지고 그분들의 노력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남성 독립운동가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고 있지 않습니까?
여성들에게는 여성 독립운동가라는 표현을 쓰면서 두 개로 나누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모든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업적과 내용들을 우리가 훌륭하다고 여기고 그것을 미래 세대에게도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당신께서도 뛰어난 독립 운동가이신데 약산 김원봉 장군의 처 박차정 여사의 묘라고 돼 있는데
국가에서도 인정한 독립장을 받으신 분인데 당당하게 여성 독립운동가 박차정의 묘라고 새겨지는
날이 곧 올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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