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유산아카이브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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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유산아카이브 오래된 미래 - EP37. 김해 대성동 고분군

등록일 : 2026-09-28 13:03:53.0
조회수 : 65
출토 유물이라든지 무덤 그걸 다시 하나 보니까 이거야말로 왕묘가 틀림없다.
-대성동 고분군 발굴이 김해 금관가야의 뿌리 즉 가야 전체의 시원지가 되기 때문에
여기가 만약에 발굴이 안 됐더라면 가야 문화를 해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던 거죠.
-대성동 고분군에 있는 마지막 왕묘인데 대성동 1호분이라 그래요.
뭔가 금공품이라든지 그다음에 무덤의 규모로 봤을 때 이게 그토록 찾았던 금관가야의
왕묘다 했을 때 현기증이 일어났죠, 한마디로. 그다음에 전율 전율이라 할까 많이 흥분됐죠.
주변에 오래 사신 분들에게 탐문을 해 보니까 애꾸지라 그래요, 애꾸지. 그 애꾸지라는 것은 우리 경상도 사투리죠.
아이 구지 여기 옆에 가야의 건국 설화가 있는 구지봉 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아이구 제2의 구지봉이라는 뜻이거든요.
일단 전승 상으로 그렇게 내려오고 그다음에 입지를 살폈죠.
입지를 살피고 이게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해가지고 1990년대에 조사를 하게 됐죠.
-(해설) 경상남도 김해의 대성동 고분군에서 음으로 금관가야 왕묘가 발견돼 그동안
우리나라 고대사 연구에서 풀지 못했던 가야사의 실체 규명은 물론이고 일본 측의 임나일본부설을 뒤엎는 획기적인 발굴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아마 금동제품 나온 것이 그 당시로서는 우리나라 신라, 가야에서는 가장 오래된 걸 겁니다.
그 부산 유물 중에 가야 토기에도 아주 최상급의 가야 토기 이런 부산 유물을 전반적으로 봤을 때 그거는 최고위층의 물품이다.
이 때문에 이 정도의 유물은 그 당시에 신라, 가야에는 없었고 처음이었고 또 가장 고수준의 물품이었기 때문에 그걸 종합적으로 판단한 거죠.
이거야말로 왕묘가 틀림없다 그렇게 확신을 하게 됐죠.
-가장 중요한 게 철입니다.
그 덩이쇠라든지 이런 철제 유물들을 많이 만들고 그걸 수출해가지고 성장한 국가인데 그 시절에는 아주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철기를 이렇게 대량으로 생산했다는 거는 거기에 걸맞은 우수한 기술뿐만 아니라
사회구조 전체가 이제 그걸 전승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춰져 있었다.
그래서 가야의 사회 시스템이 아주 첨단 공학적으로 발전해 있었다라는 증거가 될 수 있죠.
-이 각지에 있는 철을 여기로 전부 다 모으죠.
모아가지고 또 배분을 하는 거죠.
중국에서도 그 중화사상에 의해서 좀 주변을 약간 낮춰 보잖아요.
그러나 중국의 기록조차도 김해를 앞서부터 김해를 굉장히 높게 평가합니다.
-가야 시대는 여기가 바다였거든요 농경을 기반으로 했던 나라가 아닙니다.
그럼 뭘 가지고 이 고대 가야라는 왕국이 들어섰을까 하면 바로 철과 해상 교역을 통한 성장이었거든요.
29호분은 무덤의 규모라든지 출토 유물의 질과 양 측면에서 금관가야 최초의 왕묘라고도
일컬어지는데 특히 선비족의 유물이라고 또는 부여족의 유물이라고 하는 동복, 청동 솥이 나왔습니다.
그거는 유목민족의 왕들이 소유하는 아주 희귀한 유물인데 그게 거의 한 2천km 정도
떨어진 한반도의 끝 김해에서 출토됨으로 해서 가야 세력을 세운 지배 세력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제공을 하는 유물이 출토가 되었고 순장이라는
거는 말 그대로 아주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돌아가셨을 때 그분을 위해서 그분을
시종하던 신하와 시녀 이런 분들도 같이 죽여서 넣는 풍습을 얘기합니다.
가야 사람들은 죽으면 그걸로 끝이 나는 게 아니라 사후 세계가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높은 신분을 가지고 다시 사후에도 그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 커다란
궁전 같은 무덤도 만들고 또 그 안에 사후 세계에서 쓸 식량이라든지 곡식이라든지
또 술이라든지 그다음에 갑옷이나 그런 왕들이 쓰던 물건들을 다 집어넣고 그 왕을
모셔야 될 신하와 시녀들도 같이 죽여서 이렇게 넣었던 걸로 보입니다.
-사실 어릴 때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고 산이었거든요, 야산같이.
그리고 동네 어르신들이 밭을 경작하기도 했기 때문에 고분에 대해서는 그렇게 어릴
때는 별 그게 없었고 보자기 같은 거 목에 딱 메고 슈퍼맨처럼 뛰어다니고 그냥
술래잡기 뭐 기둥 말타기, 슈퍼맨 놀이 이런 거 하고 놀았거든요.
바쁘게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가도 여기 오면 그냥 내려놓는 그냥 그리고 쉼 할
수 있는 그런 힐링의 장소로 생각을 하고 탁 트이니까 일단 그리고 너무 마음이 위로받는 그런 곳으로 제가 가끔씩 찾아오곤 하는 곳입니다.
실생활하고 밀접되어 있는 이곳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또 과거의 또 1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고분군이라고 할 때에 뭉클하죠. 뭉클해요.
또 유네스코에 이곳이 등재되었다 하는 것도 너무 가슴이 뛰는 그런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제가 그런 곳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이라는 것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고 해야 됩니까?
당당하다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분의 건축 과정에 대해서 잘 알 수가 있었고 재미있었어요.
-바로 그 옆에 있는 게 바로 세계 유네스코 유산에 이렇게 돼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자랑스럽기도 했어요.
-우리나라 고대사는 신라 중심의 역사관으로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에 반해서 가야는 기록이 없잖아요.
대성동 고분군이 존재했을 때 여기에 우리가 말하는 금관가야는 신라를 압도하고 있다.
그것을 고고학적으로 접근해 가지고 올바르게 복원을 해가지고 그래야 우리나라 고대사가 바르게 접근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이 대성동 고분군이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은 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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