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유산아카이브 오래된 미래
토요일 오전 9시
TV
방영중

다시보기

지역유산아카이브 오래된 미래 - EP39. 부산 곰장어 구이

등록일 : 2026-10-19 14:34:19.0
조회수 : 7
구경 온 사람도 있었고 아주 고딕식이라서 소위 그 벽돌로 쌓아진 그런 집이 있었거든
명물이었지
-그 당시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해외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습니다.
-우리 부산이라고 하는 도시가 근대의 무역 국제무역항으로 개항했을 때 어떻게 보면
그 국제무역항을 대표하는 시설로 지어진 게 이 세관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고요.
-우리나라가 해관이 그러니까 초창기에 들어서는 것은 1882년에 우리나라와 미국 간에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 때문입니다.
이 조약을 맺는 데는 청나라 지금의 중국이 중간에 중재 역할을 한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세관이 만들어질 적에는 그다음 해에 1883년에 세관이 만들어졌고
그래서 이름도 청나라 따라서 부산 해관이라는 명칭을 달게 됐습니다.
세관 명칭이 1907년에 해관에서 세관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것은 청일전쟁 이후에
이 동북아 지역의 해상권 장악을 한 것이 일본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힘의 원리에
따라서 해관이 세관으로 명칭을 바뀌게 되는 겁니다.
그와 동시에 이 또 해관을 세관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지금의 이 위치로 옮기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옛 청사를 먼저 짓게 되고 부산항 1부두도 만들어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 당시에 우리 동아시아 지역에서 유행했던 서양의 어떤 이러한 건축 스타일 즉
어떻게 보면 뭐 르네상스 스타일이라고도 얘기를 하기도 하는데 이런 어떤 서양 스타일의
양식 그리고 서양의 어떤 이러한 건축 재료였던 붉은 벽돌 이런 어떤 근대적인 어떤
속성을 띠고 있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이 건물을 지었다는 거죠.
말 그대로 국제도시 부산이라고 하는 거를 상징할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었다.
이렇게 설명드릴 수 있겠네요.
-그 당시에 부산항에서 그런대로 볼만한 건물은 부산 그 옛날에 세관 옛 청사였죠.
그래서 미군이 제일 먼저 그 부산세관 청사를 징발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산세관의 그 보세창고에 하나의 탄약고가 들어오는 그런 병참기지 역할을
하는 것이죠.
주변에 부두가 있고 그리고 또 철도가 놓였기 때문에 이러한 연관성 때문에 부산세관이
아주 참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됩니다 부산세관 창고에는 화약이 들어 있었죠.
탄약고였죠.
만약에 여기에 불이 붙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부산항이 불바다가 될 겁니다. 그래서 미군 소방대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산세관청사의 창고에 불이 붙는 것을 막았던 겁니다.
그래서 유일하게 부산세관 옛 청사가 남아 있었던 거죠.
-밀수 잡으러 간다고 대마도 특공대 잡으러 간다고 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때는 소위 목조선이었거든. 10톤짜리. 그럼 그게 언제 빠질지 모르는데 파도는 뭐
산더미 같지 정말로 겁났어요.
뭐 전기밥솥이라든지 화장품이라든지 이런 게 아주 인기가 최고였거든요
전기밥솥이 우리나라에 없으니까
-아깝죠.
자그마치 68년 동안의 부산항의 상징적인 건물이 부산세관 옛 청사였죠.
그야말로 부산항의 랜드마크였습니다.
그리고 부산시 지방문화재 제22호로 있었고요.
그러한 참 아름다운 건물이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을 할 수 없었는데
-그 당시에는 지역에 있는 역사문화자산을 보존하기보다는 개발이라는 어떤 이러한
행위들이 더욱더 어떻게 보면 그 가치를 인정하고 또 그쪽으로 시정 방향이 갔지
않았나 이런 점들을 우리가 얘기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런 측면에서 볼 때는 과연 우리가 이 역사문화자원을 다루는 데 있어서 도대체
어떻게 이 문제를 다뤄야 될 것인가를 좀 깊이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것들이 같은 지금 전공을 하고 있는 제 입장에서 볼 때는 너무나 아쉬운 점이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역사적인 건물을 세상에 그렇게 막 도시계획 한다고 해서 헐어버리고
그런 것은 이게 안 된다 많이 섭섭했죠.
그러니 원망도 많이 하고 도시계획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가 역사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냐
-사실 지역 주민들도 복원을 원했고 당시에 그 아름다웠던 건물이 부산대교를 만들면서
없어졌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염원도 있었고 저희 부산세관도 사실은 부산에서는
가장 큰 기관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저희도 상당히 원했던 일이어서 복원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미래와 근현대 역사 중심에 설 수 있는 그런 장소로 저희는 만들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1911년도에 옛 청사에 실제로 사용되었던 러시아산 벽돌입니다.
이 벽돌을 최대한 질감과 색감을 맞추어서 저희가 제작하여서 지금 복원되는 청사에
최대한 맞춰서 사용될 예정입니다
-원도심 지역의 방문과 그리고 또 이런 부산의 근대 역사를 학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집결시키고 또 네트워크 시켜 줄 수 있는 그런 입지적인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이곳이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지역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그런 매체로서의 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노래) 꿈틀꿈틀 꿈틀댄다 저녁 시간 두근두근 두근댄다 내 심장이 쫄깃쫄깃 입맛
돈다 내 뱃속이 소주소주 소주 한 잔 생각난다
-부산에만의 그런 힘이랄까?
곰장어를 이용해서 별 쓸모가 없이 하는 거를 이렇게 먹거리로 만들었다는 거에 대해서
뭐 좀 자부심을 갖고 있죠
-뜨거운 불 위에서 미친 듯이 꿈틀거리면서 여전히 살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있다 이렇게 소리치는 곰장어는 부산을 온몸으로 말해주는 부산의
음식인 것입니다.
-(노래) 소금구이 양념 상관없어요
내가 아무리 곰장어를 좋아해도 중간의 하얀 심 나도 몰라요
그냥 입속에 들어가면서 살살 녹는 그 맛을 못 잊을 뿐이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따라서 피란을 와가지고 7남매 맏이인데 장녀로서 식구들을
건사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생활을 좀 열심히 했죠, 어머니가 아버지가 여러 가지 일을
하는데 그중에서 사진관을 하셨다고 이야기, 내가 어렸을 때 기억이 나요
하다가 그게 장사가 안 돼서 너무 어려우니까 옆집에 보면 아구찜 하는 할머니가 있었어요.
할머니가 하는 걸 옆에서 도와주고 거기서 거들어주고 하다가 독립을 해서 이 충무동
자갈치 쪽으로 와서 장사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그때는 뭐 어머니 혼자 장사하다 보니까 뭐 장사하다 보면 재료가 떨어지든가
고기가 떨어지면 곰장어도 사러 갈 때도 있고 그래요.
자갈치 시장 내에 곰장어 벗기는 할매들이 있어서 가면은 이제 1kg에 비닐봉투 한 요만한
1kg에 500원에서 1천 원 주고 그렇게 사 온 기억이 있어요.
학교 갔다 오면은 그런데 일손이 좀 부족할 때는 어머니가 부르시면 가서 연탄불에 곰장어를
구워다가 그러면 그때는 좀 배고프니까 그때 하나씩 하나씩 손님 드릴 것 그렇게 하나씩
훔쳐먹는 걸로 그때 처음 맛봤어요.
하여튼 꿀맛이었던 것 같아요. 쫄깃쫄깃하니
-부드럽고 맛있네요.
곰장어를 이용한 식품 가공 가능성에 대한 시험이 이루어졌는데요.
이러한 그 실험은 사실 그때 당시에 일제가 침략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전투 식량의 어떤
그런 그 필요에 의한 것이었죠.
곰장어를 이용한 건제품이나 어묵이나 그리고 통조림 같은 것의 실험이 이루어졌습니다.
실험 결과는 별로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1939년에 곰장어의 가죽을 가공하는 실험이 진행됐던 것 같습니다.
전쟁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서였죠 이 실험은 일제의 입장에서는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곰장어의 피혁은 다른 가죽보다 더 부드럽고 질겨서 그때 당시에 좋은 어떤 대용품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39년 보고서에 태평양 전쟁 준비로 피혁의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서 부산에서 피혁
제조가 왕성하게 이루어졌다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엄청난 피란민들이 몰려들었고 모든 사회 기반 시설이 부족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사실 곰장어는 굉장히 먹을 것이 없었던 그 피란 시절에 그래도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이 피란민들의 중요한 구황 음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방어
-방어 1만 원
-겨울철에 빨랫감이 나오면 옷이 크잖아요.
그걸 일거리 마치고 그걸 빨고 그때 세탁기가 없었으니까 빨고 그걸 하면 2, 3시 되고
그리고 잠시 쪽잠을 잤다가 5, 6시 되면 또 시장에 가서 고기를 때우러 가고 시장 보러
가고 그게 기억이 나서 참 애처로워요.
-(노래) 쫄깃쫄깃 뚝뚝 곰장어랍니다 꿈틀꿈틀 탁탁 곰장어랍니다 비싼 집에 가야 퍼포먼스
봅니다
소금구이 양념 상관없어요 징그럽다 꿈틀댄다 뭐라 하지 마 너가 먹던 모든 생선 꿈틀거렸어
무서워서 못 먹으면 너만 손해야 이 식감은 어디서도 못 먹을거야
-오래됐죠.
곰장어는 우리가 처음 먹었을 때가 고등학교 다닐 때인가 먹어봤는데 생 거, 파닥파닥 살아
있는 거 또 이 장 찍어 먹으면 죽입니다.
이 맛에 이거 먹는 거야
-25살 그쯤에 한 30년 됐네요.
이런 맛은 처음이니까 환장했죠.
한 두세 달에 한 번씩은 옵니다. 뭐 부산 토박이로서 자부심 생깁니다.
-공수, 이기대부터 시작해서 오륙도 앞에서부터 이쪽으로 곰장어가 지천에 깔렸어요
그때는 곰장어를 거의 먹을 수 있다고 생각을 안 하고 만약에 고기를 잡으러 나갔잖아요?
곰장어가 잡히면 그냥 다 선착장에 그냥 놔둬 버려요.
추수할 때쯤 되면 추수하면 일하면 배가 고프잖아요.
외할머니 집에서 추수 때 되면 그 짚불에 던져가지고 끝나고 나서 그 먹는 그 맛이 너무
좋아가지고 어릴 때부터 그날만 하면 무조건 참석을 하죠.
오늘은 타작하는 날이다 이러면 그냥 그 시절만 기다려지는 거죠.
곰장어를 볏짚에 굽으면 다른 잡내가 없고 이 볏짚이라는 게 자연적인 연료가 되니까.
그래서 다른 것보다 구운 것보다도 볏짚에 굽으니까 그 맛이 불향도 있고 담백하고 깔끔하게
나오니까 볏짚에 굽게 된 것 같아요.
논에서 바로 큰 걸 타작을 해가지고 떡가루처럼 지어높은 짚은 화력이 좋아요.
연탄이나 이런 불은 순간적으로 계속 지속적으로 세잖아요.
그러면 탈 수가 있는데 짚불은 불이 확 올라왔다가 은은하게 하면서 나머지 갈 때까지 쭉
있으면 골고루 안에까지 맛있게 익죠.
그런 차이가 있어요. 곰장어를 가지고 짚불에 구워내는 그 부산에만의 힘이랄까 곰장어를
이용해서 별 쓸모가 없이 하는 걸 그래서 이렇게 먹거리로 만들었다는 거에 대해서 뭐 좀
자부심을 갖고 있죠.
제 인생이죠. 더불어 같이 가야 될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사이트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