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기
지역유산아카이브 오래된 미래 - EP41. 요산 김정한문학관
등록일 : 2026-10-26 10:47:26.0
조회수 : 26
불의에 타협하거나 굴복하는 것은 사람이 가야 할 길이 아니다.
선생님의 삶 자체가 그렇게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삶 그리고 저항하는 삶 그 삶을 살아오셨어요
부산시민들이 반드시 기억하고 또 찾아뵈어야 할 그런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을숙도는 그 모래톱 이야기에서 조마이섬이라는 이름으로 나오거든요.
이게 주머니처럼 길쭉하게 생겼다 해서 조마이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래톱이라는 거는 그 강물의 흐름에 따라서 이게 없어지기도 하고 또 모양이 계속
변하는 곳이거든요 그래서 이 불안정한 땅입니다.
거기서 삶을 꾸려 나가고 있는 농민들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모래톱 이야기거든요.
-(해설) 복숭아꽃도 살구꽃도 아기 진달래도 피지 않는 섬 수천 년 풍상과 홍수를 겪은 모래톱
위에 지어진 조마이섬 대대로 살아온 그 땅이 어느 날 갑자기 왜놈 명의로 둔갑해 버렸다
-선생님은 글을 잘 쓴다 카데요 우리 섬에 대한 글 한 번 써보이소.
멋지기 재미실 낌데이
-선생님의 생애 전반이 어떤 작품 하나 몇 개에만 치우친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생애와 선생님의
전 작품을 통해서 어떤 저항정신이 그리고 굴복하지 않는 그런 민중을 향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요산 선생님이 교사로 부임을 해가지고 보니까 일본인 교사보다 조선인 교사가 월급을 6할 적게 받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는 차별 대우다 부당하다 해가지고 조선인 교원 명부를 갖다 구해서 그 교원들에게
조선인 교원연맹을 만들자라고 엽서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당시의 분위기가 검열이 자행이 되고 경찰에 구속이 되었습니다.
와세다 대학 1학년 때까지 시를 한 30편 가까이 쓰거든요.
굉장히 시적 전성기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유행했던 사회과학 공부, 마르크스주의라든지
이런 사회과학 공부를 하면서 시에서 소설로 전환을 합니다.
-(해설) 은하수가 돌아져도 성동리의 들은 가을답지 않았다.
그 해는 모두들 맥없이 말라빠졌다. 보광사로부터 산 땔나무터에도 이제는 더 할 것이 없고 도둑
나무를 하러 다니는 사람이 있지만 붙잡히면 혼이 나곤 했다.
소작료. 농민들에게는 이 말이 무엇보다도 무섭고 또 분했다.
-당시에는 조선어 사전이 없었습니다.
조선어 사전은 1938년에 처음으로 나오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이 작품을 쓰려니까 우리 말을 알아야 되겠다.
그래서 직접 삶의 현장에서 우리말 채취에 나선 겁니다.
-실제 뭐 이렇게 창작론 이런 수업을 할 때 뭐 이렇게 이름 없는 새 뭐 저기 길 가다가 이름 모를 곳 굉장히 혼이 났다.
그래서 이 세상에 이름 없는 것이 어디 있냐 본인이 하나하나 어떤 것도 뭔가 이렇게 다 이름을
붙이면서 뭔가 작업을 해왔던 그분의 삶의 어떤 그 궤적과도 연결이 있는 것 같고 현실에 내가
발을 딛고 이렇게 현실과 계속 이렇게 만나면서 보다 보면 모든 사건이나 사물이나 사람이나 다
그 의미들이 아주 우리가 꼼꼼하게 찾아내야 된다 뭐 그런 어떤 의미하고도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해방 이후의 전국은 사실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당시 지식인들은 그걸 당연한 의무로 여겼고 그래서 요산 선생님도 거기에 많은 참여를 하셨고
건국준비위원회라든지 부산의 인민위원회라든지 이런 쪽도 활동을 하시고 나중에 보도연맹에도 연루가
되고 그래서 1950년에 6.25가 일어나자마자 엄궁동 이쪽으로 피신을 하시는데 결국은 김창룡 특무대 잡혀가셔서 고생도 많이 하고 그랬습니다.
-감옥에서 그쪽에 면회를 가는데 하루는 아버지가 고문을 당했던가 봐요.
아이고 아파라 하면서 고함 지르는데 엄마, 저기 우리 아버지 소리다 하면서 오빠가 그래가 같이 울었다는 그 얘기를 제가 들었어요.
학교 선생님이 저를 보고 교무실로 오래서 갔더니 선생님이 아버지한테 편지가 왔다 하고 그걸 보여줬어요.
근데 아버지가 이곳에 사루비아가 너무 불꽃이 많이 피어 있다고 아버지가 이 타는 마음을 아는
것 같다고 사루비아 빨간 꽃이 많이 피었으니까 아버지가 이렇게 가슴이 타고 하는 게 사루비아 같다 이런 편지를 썼더라고요.
그러면서 친구야 이래갖고 그걸 아버지라고 안 하고 복연아, 여기 있는 사루비아가 너무 많이 피었다.
그래서 제가 사루비아 꽃만 보면 아버지 그 편지 생각이 납니다.
-82, 3년도부터 해서 한 몇 년간 강의를 들었는데 우리가 그 당시도 선생님께서 조금
연로하셔가지고 우리가 댁으로 찾아 뵙고 강의를 듣고 그랬거든요.
선생님의 문학관에 입각해서 그런 리얼리즘 이론이라든지 작가의 사회적 책무라든지 그런 주제를 두고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한국문학에서 상당히 독특한 열정을 보여주신 작가였고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수라도라는 작품의 맨 끝 쪽에 보면은 진실에서 모든 감동들이 출발하고 그것이 결국은 올바른 발전을 이룰 것이다라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 부분이 요산 선생님이 평생 가졌던 신념인 것 같고
-요산 김정환 문학관 개관 20주년이고요.
기념 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요산 선생님의 어떤 가르침은 지역을 넘어서서 한국 현대사에서
사람답게 사는 세상 사람이 먼저라는 어떤 생각과 사상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세상 그거는 오늘도 여전히 앞으로도 계속 추구해 나가야 될 것이기 때문에
요산 선생님의 가르침은 유효하다고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삶 자체가 그렇게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삶 그리고 저항하는 삶 그 삶을 살아오셨어요
부산시민들이 반드시 기억하고 또 찾아뵈어야 할 그런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을숙도는 그 모래톱 이야기에서 조마이섬이라는 이름으로 나오거든요.
이게 주머니처럼 길쭉하게 생겼다 해서 조마이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래톱이라는 거는 그 강물의 흐름에 따라서 이게 없어지기도 하고 또 모양이 계속
변하는 곳이거든요 그래서 이 불안정한 땅입니다.
거기서 삶을 꾸려 나가고 있는 농민들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모래톱 이야기거든요.
-(해설) 복숭아꽃도 살구꽃도 아기 진달래도 피지 않는 섬 수천 년 풍상과 홍수를 겪은 모래톱
위에 지어진 조마이섬 대대로 살아온 그 땅이 어느 날 갑자기 왜놈 명의로 둔갑해 버렸다
-선생님은 글을 잘 쓴다 카데요 우리 섬에 대한 글 한 번 써보이소.
멋지기 재미실 낌데이
-선생님의 생애 전반이 어떤 작품 하나 몇 개에만 치우친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생애와 선생님의
전 작품을 통해서 어떤 저항정신이 그리고 굴복하지 않는 그런 민중을 향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요산 선생님이 교사로 부임을 해가지고 보니까 일본인 교사보다 조선인 교사가 월급을 6할 적게 받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는 차별 대우다 부당하다 해가지고 조선인 교원 명부를 갖다 구해서 그 교원들에게
조선인 교원연맹을 만들자라고 엽서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당시의 분위기가 검열이 자행이 되고 경찰에 구속이 되었습니다.
와세다 대학 1학년 때까지 시를 한 30편 가까이 쓰거든요.
굉장히 시적 전성기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유행했던 사회과학 공부, 마르크스주의라든지
이런 사회과학 공부를 하면서 시에서 소설로 전환을 합니다.
-(해설) 은하수가 돌아져도 성동리의 들은 가을답지 않았다.
그 해는 모두들 맥없이 말라빠졌다. 보광사로부터 산 땔나무터에도 이제는 더 할 것이 없고 도둑
나무를 하러 다니는 사람이 있지만 붙잡히면 혼이 나곤 했다.
소작료. 농민들에게는 이 말이 무엇보다도 무섭고 또 분했다.
-당시에는 조선어 사전이 없었습니다.
조선어 사전은 1938년에 처음으로 나오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이 작품을 쓰려니까 우리 말을 알아야 되겠다.
그래서 직접 삶의 현장에서 우리말 채취에 나선 겁니다.
-실제 뭐 이렇게 창작론 이런 수업을 할 때 뭐 이렇게 이름 없는 새 뭐 저기 길 가다가 이름 모를 곳 굉장히 혼이 났다.
그래서 이 세상에 이름 없는 것이 어디 있냐 본인이 하나하나 어떤 것도 뭔가 이렇게 다 이름을
붙이면서 뭔가 작업을 해왔던 그분의 삶의 어떤 그 궤적과도 연결이 있는 것 같고 현실에 내가
발을 딛고 이렇게 현실과 계속 이렇게 만나면서 보다 보면 모든 사건이나 사물이나 사람이나 다
그 의미들이 아주 우리가 꼼꼼하게 찾아내야 된다 뭐 그런 어떤 의미하고도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해방 이후의 전국은 사실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당시 지식인들은 그걸 당연한 의무로 여겼고 그래서 요산 선생님도 거기에 많은 참여를 하셨고
건국준비위원회라든지 부산의 인민위원회라든지 이런 쪽도 활동을 하시고 나중에 보도연맹에도 연루가
되고 그래서 1950년에 6.25가 일어나자마자 엄궁동 이쪽으로 피신을 하시는데 결국은 김창룡 특무대 잡혀가셔서 고생도 많이 하고 그랬습니다.
-감옥에서 그쪽에 면회를 가는데 하루는 아버지가 고문을 당했던가 봐요.
아이고 아파라 하면서 고함 지르는데 엄마, 저기 우리 아버지 소리다 하면서 오빠가 그래가 같이 울었다는 그 얘기를 제가 들었어요.
학교 선생님이 저를 보고 교무실로 오래서 갔더니 선생님이 아버지한테 편지가 왔다 하고 그걸 보여줬어요.
근데 아버지가 이곳에 사루비아가 너무 불꽃이 많이 피어 있다고 아버지가 이 타는 마음을 아는
것 같다고 사루비아 빨간 꽃이 많이 피었으니까 아버지가 이렇게 가슴이 타고 하는 게 사루비아 같다 이런 편지를 썼더라고요.
그러면서 친구야 이래갖고 그걸 아버지라고 안 하고 복연아, 여기 있는 사루비아가 너무 많이 피었다.
그래서 제가 사루비아 꽃만 보면 아버지 그 편지 생각이 납니다.
-82, 3년도부터 해서 한 몇 년간 강의를 들었는데 우리가 그 당시도 선생님께서 조금
연로하셔가지고 우리가 댁으로 찾아 뵙고 강의를 듣고 그랬거든요.
선생님의 문학관에 입각해서 그런 리얼리즘 이론이라든지 작가의 사회적 책무라든지 그런 주제를 두고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한국문학에서 상당히 독특한 열정을 보여주신 작가였고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수라도라는 작품의 맨 끝 쪽에 보면은 진실에서 모든 감동들이 출발하고 그것이 결국은 올바른 발전을 이룰 것이다라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 부분이 요산 선생님이 평생 가졌던 신념인 것 같고
-요산 김정환 문학관 개관 20주년이고요.
기념 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요산 선생님의 어떤 가르침은 지역을 넘어서서 한국 현대사에서
사람답게 사는 세상 사람이 먼저라는 어떤 생각과 사상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세상 그거는 오늘도 여전히 앞으로도 계속 추구해 나가야 될 것이기 때문에
요산 선생님의 가르침은 유효하다고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