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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토크 - 212년 만의 항해 조선통신사선 (이미연 / 부산문화재단 대표)
등록일 : 2023-08-21 15:10:52.0
조회수 : 837
임진왜란이 끝나고 조선과 일본이 평화를 유지하는 계기가 바로 조선통신사 파견이었습니다.
1607년 선조 때부터 1811년 순조 때까지 12차례에 걸쳐서 일본을 방문했는데요.
지난 1일입니다. 부산항에서는 조선통신사선 13차 13번째 항해가 드디어 이루어졌습니다. 마지막 항해가 1811년이라고 아까 말씀드렸으니까 212년 만의 항해였는데요.
오늘은 212년 만의 항해 조선통신사선 이야기 파워토크에서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산문화재단 이미연 대표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셨는데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또 부드러움으로 대한해협까지도 잠잠하게 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떠셨어요?
감회가 무척 남달랐을 것이다, 이런 예상을 해보게 되는데요.
-아까 말씀하셨듯이 13차 항해를 저희가 계획한 것은 실질적으로는 4년 전입니다.
4년 전 2019년 8월에 쓰시마의 아리랑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 조선통신사선과 행렬단이 함께 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조선통신사선은 어디에서 만든 것이냐면 목포에 있는 문화재청 산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2015년에 시작해서 설계를 시작해서 만든 배입니다.
그래서 2018년 10월에 진수식을 했어요. 그러면 진수식을 했으니 배를 띄웠고이제 일본으로 가는 일만 남았는데 그게 2019년이었습니다.
그랬는데 2019년에 정말 뜻하지 않게 한일 관계가 매우 경색되는 그런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부산도 일본과의 교류를 중단하게 되는 그런 어떤 여러 가지가 있어서 사실 출항을 일주일 앞두고 배가 입항하는 것은 무산되었습니다.
그리고 2023년 4년 만에 코로나를 이겨내고 올해 8월에 첫 이즈하라항 축제에 조선통신사선과 그다음에 이 행렬단 저희가 사행단이라고 하는 행렬단이 완전체가 되어서 일본으로 첫 항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즈하라항에서 그 배가 이렇게 정박해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그 지난한 세월 동안 노력했던 그런 마음이 느껴져서 굉장히 울컥하고 굉장히 감개무량했습니다.
-그러한 감격스러운 순간을 목격하신 부산문화재단의 대표가 되셨어요.
그것도 참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너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선통신사라는 이름을 보면 통신사. 말 그대로 믿음이 통하는 사절단이다.
그 당시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 참 기가 막힌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조선통신사 한국, 조선과 일본을 오고간 외교 사절단 정도로만 알고 있다면 저희가 많은 걸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조선통신사 역할 또 역사적 가치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어떤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까?
-사실 조선 시대 전기에도 중국 쪽이라든가 일본 쪽하고 이렇게 사신단이 오갔던 적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조선통신사가 중요하게 됐냐 하면 임진왜란 이후에 사실상 한일 간에는 국교가 완전히 단절되어 버렸습니다.
아주 긴 전쟁을 거쳤기 때문에 조선과 일본 간에 굉장히 어려운 어떤 단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조선 같은 경우도 임진왜란 이후에 굉장히 황폐해졌죠. 그리고 일본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집권했는데 더 이상 조선과 어떤 전쟁을 할 그런 상황이 아니었고 또 그런 의사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즈음에 어떻게 본다면 어떻게 하면 조선과 국교를 다시 이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일본에서도 한 거죠.
그래서 1604년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명대사께서 포로를 이렇게 데리고 오기 위해서 그러니까 이거를 우리가 쇄환이라고 하는데요.
포로를 데려오는 역할을 자처해서 일본에 혈혈단신 건너가셨어요.
건너가셔서 실질적으로 포로를 데리고 오면서 정말 전쟁할 의사가 없느냐, 이렇게 물었던 거죠.
그래서 일본에서도 사실은 사절단을 파견해 달라.
우리는 이제 평화를 원한다.
-일본이 먼저 우리에게 요청한 거네요?
-요청을 한 거죠.
그러니까 그래서 이때 사실상 시작했을 때는 12차례의 사절단을 그동안 보내게 되는데 최초의 한 3번 정도는 실질적인 역할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쇄환사, 그러니까 포로를 데려오는 사절.
그다음에 회례사, 포로를 보내줘서 고맙다, 이렇게 해서 또 사절을 보내는.
-감사의 의미.
-감사의 의미로 이런 의미로 한 3차례 갔었습니다.
이건 에도 막부에서 요청한 것이고요, 쇼군이.
그런데 그다음 4회차부터는 실질적인 정말 통신사의 어떤 교류라든가 외교, 정말 평화 구축 그다음에 물론 일본의 어떤 정세를 알아보는 그런 이유도 있었겠죠.
이런 어떤 의미를 가지고 파견이 되었고요.
사실상 갈 때는 조선 국왕의 국서를 이렇게 전달합니다. 그래서 국서를 실어 가는 가마가 있습니다.
그 역할을 정사가 했고요.
그리고 돌아올 때는 도쿠가와 쇼군의 답서를 받아와서 우리 조정의 임금님께 바치는 그런 어떤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12회 동안 사실 한양을 출발해서 에도까지 가는 여정이 육로를 쭉 거쳐오고요.
그다음에는 해로를 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과정이 짧게는 5개월, 길게는 돌아오기까지 1년이 훨씬 넘는 그런 어떤 기간이 걸린 정말 긴 그런 여정이었습니다.
-1년짜리 빅 이벤트다, 지금으로 따지면. 1년짜리.
그것도 사절단의 규모도 지금과 비교했을 때도 참 대단하다는 게 한 500명 이상 갔다고 하니까.
지금도 그렇게 그 숫자만큼 감행키가 어려운 규모잖아요.
그런데 1년 동안 또 올 때 배가 묶이면 그 시간도 담보할 수 없는 그런 참 대단한 조선통신사의 면면을 저희가 좀 이해할 수 있게 되는데요.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2017년입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상징적 의미도 엄청나다, 이렇게 좀 부여할 수가 있겠죠.
-사실 조선통신사가 200년간 오가면서 남긴 그런 기록들은 굉장히 많습니다.
그게 조선통신사의 기록물인데요. 이 기록물은 두 나라가 전쟁이라는 시련을 극복하고 평화 유지를 위해서 상호 간 정말 노력해 온 하나의 기록입니다.
사실은 인접한 두 나라가 통신사를 파견했던 기간에는 한 차례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세계사적으로 굉장히 의미가 있는.
-그렇네요.
-그런 일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어떻게 시작되었느냐면 등재는 2012년에 우리는 부산문화, 그러니까 부산은 부산문화재단이 조선통신사 행사를 다 주관하고 있지만 일본은 NPO 법인 조선통신사 연지연락협의회가 있습니다.
이 연지연락협의회는 우리가 사실 육로로 갈 때는 우리나라를 거쳐오고 해로로 가서 다시 일본의 육로로 가는데 그 거쳐 가는 곳마다 연고지가 다 있습니다.
그러니까 통신사가 머물렀던 곳이죠.
그러니까 그곳들의 지자체도 있을 것이고 예를 들면 기관도 있을 것이고 개인도 있는데 이런 분들이 다같이 모여서 만든 것이 연지연락협의회입니다.
그래서 이 연지연락협의회는 95년에 만들어졌어요.
이 조선통신사의 어떤 것들을 한번 이어가 보자고 해서 그런데 부산문화재단은 부산에서 2002년부터 이 사업을 했기 때문에 2012년에 이 양 단체가 모여서 이 기록물을 한번 등재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시작했고
시간이 한 5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사실 12회 사행처럼 12번의 학술대회가 양국으로 오가면서 열렸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 어려운 과정 끝에 2017년 10월 30일에 외교의 기록, 여정의 기록, 문화교류의 기록 그렇게 해서 111건, 333점이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가 되었습니다.
-일본 에도 막부 시대 때부터 그들의 요청에 의해서 저희가 응했고 한양에서부터 부산 그리고 대한해협을 거쳐서 대마도, 시모노세키 그리고
오사카 육로로 해서 교토 또는 도쿄까지 갔다는 건데 참 대단한 여정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런 생각이 들고 그 당시의 조선통신사 역할 아까 포로 송환과 거기에 대한 보답, 감사 차원 그리고 정보적인, 전략적인 차원에서도 이게 이루어졌다고 보이는데 물론
거기엔 평화를 담보로 하고 있습니다마는 과거의 조선통신사의 그런 역할과 지금 13번째 항해를 통해서 앞으로 이어갈 조선통신사가 관례가 된다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역할이 조금 달라질 것 같습니다.
시대상에 따라서.
-사실 부산문화재단에서는 조선통신사를 매개로 각 일본 연고지 지역들과 다양한 교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행렬을 재현함으로써 조선통신사가 갔던 길을 따라서 이어가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굉장한 의미를 두네요.
-그래서 지금 쓰시마와 시모노세키, 시즈오카, 가와고에.
가와고에는 연고지 근처였기 때문에 실제 연고지는 아니라도 그곳에서 일본 측에서 먼저 행사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이어가고 있고요.
실질적으로 사실상 신조선통신사라고 저희가 명명한 이유는 조선통신사의 상징적인 가치는 이웃하는 나라 간에 충돌하는 이 세계에서 어떻게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건 외교 사절이었지만 사실상 그때 갔던 분들을 보면 화가라든가, 화원들, 그다음에 제술관, 기록하는 사람들, 그다음 악대, 군관, 심부름하는 소동까지 그러니까 각계각층의, 의원들도 있었죠.
각계각층이 다 있었던 거예요. 어떻게 보면 지금의 K-컬처를 선도하는.
-맞아요.
-그런 어떤 한류처럼.
-문화적인 총합이다.
-그러니까 당시에 어쩌면 한류라고 볼 수도 있었던 거죠.
이 조선통신사 행렬이 가면 그 행렬을 보려고 구름떼처럼 몰려서 금지령 같은 것을 내리고 그랬다더라고요. 어떻게 본다, 이런.
그래서 그렇다면 사실상 포로 송환이나 평화 유지, 문화 교류, 이런 역할을 과거에 했다면 오늘날에는 조선통신사의 정신, 어쩌면 가치, 그러니까 평화의 가치, 이것을 미래 세대에 전하는 것이
저는 굉장히 중요하고 큰 역할이다.
그래서 청소년, 청년, 또는 시민들이 교류할 수 있는 그런 미래적인 좋은 영향을 미쳐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미래 세대들에게 서로 화합할 수 있는 어떤 초석을 놓는 자리가 다시 이어진 항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클 것 같습니다.
올해 행사가 더 의미가 있는 이유를 들자면 무엇보다도 재현선이라고 해야겠죠?
-네, 재현선.
-조선통신사 복원을 해서 재현해서 똑같이 만들어서 일본에 갔다는 것인데.
이게 배가 그 당시 자료들이 있나요? 남아 있나요?
설계도나 그림 같은 것, 완성도 같은 게 있나요?
-설계도는 없었답니다.
이게 아까 말씀드린 기록물 안에 보면 배가 그려진 그림들은 이렇게 상세하게 남아 있었다고 보이고 설계나 어떤 배에 대한 어떤 기록이 정확하게 남아 있는 것은 11차 사행 때 부사기선으로 이렇게
몰았던 변탁이라는 분이 계미수사록에 조선통신사선의 건조와 운항에 관한 기록을 수록해 놓았나 봐요. 그게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고 하시고
그다음에 12차 사행의 정사 김이교가 기록한 신미통신일록에 이런 연구가 좀 있었답니다.
그래서 이걸 토대로 만들다 보니까 설계를 무려 28번을 수정할 정도로 지속적으로 배를 연구하고 그리고 진수할 때까지는 사실상 한 3, 4년 이상이 이렇게 걸렸습니다.
그래서 2018년 10월에 배가 만들어져서 진수식을 띄우는 행사를 했습니다.
-아무쪼록 정치가 풀지 못하는 것을 이런 사상과 예술, 학술의 교류로서 풀 수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문제 해결의 중심에 조선통신사가 꼭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생각을 덧붙여 보는데 이게 재원이 그래도
기록에 남은 거 보면 길이가 몇 미터다, 너비가 몇 미터다, 이런 기록들이 있던 모양이에요?
심지어는 재료로 강원도 금강송을 900그루를 썼다, 이런 내용도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만들어서 실제로 이 배를 띄웠습니다.
그 날짜가 8월 1일, 부산을 출발했는데 몇 분이나 가신 거예요, 이번에?
-이번에는 아홉 분이 승선을 하셨어요.
-배에 타신 분은 아홉 분.
-원래는 70명까지 탈 수 있는 배입니다. 예전 조선시대에도 6척의 배가 갔거든요, 제일 많이 가면?
-배가 몇 척이 갔군요?
-네, 6척이 갔는데 이번에 재현된 배는 정사기선입니다.
그러니까 정사가 탔던 배니까 가장 핵심이 되는 중심 배죠.
그래서 그 배에도 한 100명이 예전에 탔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봤을 때 저희도 70명은 탈 수 있지만 이번에 항해는 아홉 명의 인원만 허락을 받아서 운항을 하시는 분 여섯 분 하고
그다음에 촬영하시는 분이나 이런 분 해서 아홉 명이 타고 갔습니다.
-배가 요즘 건조가 됐으니까 동력 장치는 물론 있었을 것 같고.
-네, 동력 장치는 무조건 있어야 하죠.
-갈 때는 어떻게 그래도 풍력으로 갔습니까?
-아닙니다. 예전에는 풍력으로 갔죠.
돛을 달고 가잖아요? 그런데 이제 지금 갈 때는 동력을 써서 가지만 20노트로 최대가 20노트니까 저는 노트 단위를 잘 모르지만.
-빠른 건 아니네요.
-굉장히 느리게 갈 수밖에 없는 그런 배입니다.
그러다 보니 가는데 히타카츠까지 거의 대여섯 시간, 또 히타카츠항에서 이즈하라로 이렇게 내려와야 하거든요.
거기까지도 또 한 대여섯 시간. 거의 10시간 이상이 걸린 그런 항해였습니다.
-배멀미하시는 분들 굉장히 힘드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굉장히 고생을 하셨던 것 같아요.
-가는 과정도 갔을 때 일본에 도착해서 환영하는 인파들이 꽤 많이 나왔다는 이야기 들었거든요?
정작 도착했을 때 그 많은 분이 옛날과도 같은 그런 환영의 인파들이 박수 치고 환대하는 모습에 또 감회가 새롭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2019년에 이 배가 가기로 약속을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때 이미 쓰시마 시민들은 이 배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봐야죠.
그런데 그 배가 4년 만에 코로나를 지나고 온다고 하니까 쓰시마에 사시는 뿐만이 아니라 이 배를 보기 위해서 본토에 계시는, 일본의 본토에 계시는 분들도 많이 오셨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본토에서까지도?
-네. 이 배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지금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하셔서.
그래서 배가 입항할 때도 실제 예전처럼 어선이 호위해서 이렇게 멀리서 호위해서 들어오는 것으로 해서 시장님께서 직접 환영을 해주시고
시민들이 다 나와서 환영하고 이런 행사를 했다고 합니다.
-조선통신사선이 출연하기 전에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해신제도 되게 빅이벤트라고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진행이 됐나요?
-해신제는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정말 길일을 잡아서 해신에게 무사 안녕을 기원하면서 지낸 제례 의식입니다.
-기원제.
-기원제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번에도 저희가 이 해신제를 준비하면서 실제 이 해신제는 1719년에 제술관으로 따라갔던 신유한이 해유록이라는 책을 썼는데 거기에 음식을
어떻게 어떻게 놓고 지냈다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기록을 저희가 토대로 해서 사실 매년 영가대에서 이렇게 해신제를 재현한 지가 몇 년이 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재료를 올릴 때도 음식이 지금의 제하고는 다릅니다.
그러니까 이게 국가 제례이기 때문에 그 제례 음식들 순서라든가 이런 종류들이 다 다른데 그게 지금 없는 것도 많이 있는 거예요.
-사슴 고기 육포도 올리는 그런 것도 있고, 그렇죠?
-사슴 고기 육포는 지금 그래도 구할 수 있으니까 그걸 구해서 올리고 어쨌든 그렇게 해서 복원을 우리 이경희 원장님께서 수차례 고증을 하셔서 복원해 내셨고요.
그래서 출항을 앞두고 이번에 저희가 해신제를 영가대에서 이렇게 모셨습니다.
-저도 저 위의 쓰시마, 대마도를 가본 적이 있는데 참 고즈넉하더라고요.
그리고 정서가 우리 조선, 그러니까 한국 정서가 있어요.
그만큼 우리가 초행을, 그쪽을 해서 일본 육로로 들어가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도 조선통신사 역사관이 있고 그런 흔적들, 우리 조선의 흔적들이 많이 있던데 유적지로.
부산에도 조선통신사 역사관이 있으니까 서로 앞으로 교류를 하고 어떠한 다양한 사업들을 이어갈 계획인지 그것도 궁금해지네요.
-이번에 사실 쓰시마에 가서 참 놀라운 것은 쓰시마 박물관이 다시 지어져, 박물관이 원래 조그마했었는데 새롭게 크게 지어졌고 그다음 없었던 조선통신사
역사관이 2021년 코로나 중에 2021년 10월에 개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름도 똑같아요. 부산에 있는 것도 조선통신사 역사관이고.
-통신사 역사관.
-쓰시마에도 조선통신사 역사관이에요. 그래서 저희는 11년에 개소했으니까 지금 사실 13년을 맞이하고 있고 또 쓰시마는 작년에 개소를 했기 때문에 부산과
쓰시마, 조선통신사 역사관 간에 올해 MOU를 맺었고 교류 전시 같은 형태.
왜냐하면 쓰시마 역사관에는 실질적으로 기록물, 진본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진본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만든 영인본을 가지고 있지만 그 쓰시마는 진본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진본이나 저희 영인본들을 또 교류하면서 이렇게 전시를 하는 그런 계획도 있고요.
또 시민 왕래 프로그램이라든가 이런 것들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지난 화요일 광복절이었습니다. 한일 관계 참 굴곡이 많았습니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은 차갑게 얼어붙다시피 했던 역사의 시간이었는데요.
과거사 문제 해결도 반드시 필요하고 또 미래를 위한 발걸음 역시도 중요합니다. 조선통신사가 한일 이제 통신사가 돼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제가 아까도 정치가 풀지 못한 걸 바로 문화와 또 예술 그리고 사상의 교류를 통해서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는데 대표님께서는 앞으로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사실 올해 5월에 우리 황범 앵커님이 사회를 봐주신 유네스코 콘퍼런스를 저희가 열었습니다.
-기억납니다.
-그 유네스코 콘퍼런스의 주제가 뭐였냐 하면 충돌하는 이 세계에서 이웃하는 두 나라 간에 우리가 문화 예술을 통해서 어떻게 평화를 복원하고 같이 번영할 수 있는가. 이런 주제였습니다.
-맞아요.
-그렇다면 사실 국가 간의 관계는 항상 어려울 수도 있죠.
어려울 수 있고 정치인은 항상 문제가 안 풀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저희도 19년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고 그런데 민간 차원의 교류를 절대 끊어지면 안 된다는 것이 정치권에서도 이렇게 얘기하시고 시민들도 그렇게 얘기를 하셔요.
그렇다면 그 역할을 결국은 저희가 담당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문화 예술을 통해서 사실 이 조선통신사의 정신을 통해서 우리가 이웃 간의 평화를 회복시키고 나아가서는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그래서 참 어려움이 많지만, 앞으로도 아까 말씀드린 대로 높은 신뢰감을 바탕으로 21세기를 준비하는 그런 새로운 한일 관계.
이것을 미래 세대들과 함께 좀 열어가야 하겠다 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가 좀 되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조선통신사의 가치란 한 말씀을 드리자면 성신교린이다. 성실과 신뢰로 서로 교류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을 텐데요.
무엇보다도 미래 세대로 이것이 이어지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늘 마지막 말씀으로 미래 세대 그리고 국민들께 시민들께 부탁하고 싶은 당부의 말씀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부산문화재단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조선통신사를 통해서 평화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계속 노력을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런 어떤 마음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양국을 이어가는 그런 노력을 해나갈 생각입니다.
사실 200년간 평화 유지를 위해서 힘쓴 그 정신을 발신하기 위해서 우리 시민들도 많이 관심을 기울여 주시고 앞으로도 더 많은 성원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 땅에도 저 땅에도 한국과 일본의 혼혈의 자손들이 꽤 많습니다.
더 이상 그들에게 아픔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덧붙여 보고요. 다시 열린 이 조선통신사 뱃길이 평화와 화합의 뱃길이 되기를 그리고 새로운 한일 관계를 풀어나가는 귀중한 씨앗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 보겠습니다. 오늘 나오셔서 도움 말씀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파워토크는 다음 시간에 인사드리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1607년 선조 때부터 1811년 순조 때까지 12차례에 걸쳐서 일본을 방문했는데요.
지난 1일입니다. 부산항에서는 조선통신사선 13차 13번째 항해가 드디어 이루어졌습니다. 마지막 항해가 1811년이라고 아까 말씀드렸으니까 212년 만의 항해였는데요.
오늘은 212년 만의 항해 조선통신사선 이야기 파워토크에서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산문화재단 이미연 대표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셨는데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또 부드러움으로 대한해협까지도 잠잠하게 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떠셨어요?
감회가 무척 남달랐을 것이다, 이런 예상을 해보게 되는데요.
-아까 말씀하셨듯이 13차 항해를 저희가 계획한 것은 실질적으로는 4년 전입니다.
4년 전 2019년 8월에 쓰시마의 아리랑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 조선통신사선과 행렬단이 함께 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조선통신사선은 어디에서 만든 것이냐면 목포에 있는 문화재청 산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2015년에 시작해서 설계를 시작해서 만든 배입니다.
그래서 2018년 10월에 진수식을 했어요. 그러면 진수식을 했으니 배를 띄웠고이제 일본으로 가는 일만 남았는데 그게 2019년이었습니다.
그랬는데 2019년에 정말 뜻하지 않게 한일 관계가 매우 경색되는 그런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부산도 일본과의 교류를 중단하게 되는 그런 어떤 여러 가지가 있어서 사실 출항을 일주일 앞두고 배가 입항하는 것은 무산되었습니다.
그리고 2023년 4년 만에 코로나를 이겨내고 올해 8월에 첫 이즈하라항 축제에 조선통신사선과 그다음에 이 행렬단 저희가 사행단이라고 하는 행렬단이 완전체가 되어서 일본으로 첫 항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즈하라항에서 그 배가 이렇게 정박해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그 지난한 세월 동안 노력했던 그런 마음이 느껴져서 굉장히 울컥하고 굉장히 감개무량했습니다.
-그러한 감격스러운 순간을 목격하신 부산문화재단의 대표가 되셨어요.
그것도 참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너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선통신사라는 이름을 보면 통신사. 말 그대로 믿음이 통하는 사절단이다.
그 당시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 참 기가 막힌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조선통신사 한국, 조선과 일본을 오고간 외교 사절단 정도로만 알고 있다면 저희가 많은 걸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조선통신사 역할 또 역사적 가치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어떤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까?
-사실 조선 시대 전기에도 중국 쪽이라든가 일본 쪽하고 이렇게 사신단이 오갔던 적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조선통신사가 중요하게 됐냐 하면 임진왜란 이후에 사실상 한일 간에는 국교가 완전히 단절되어 버렸습니다.
아주 긴 전쟁을 거쳤기 때문에 조선과 일본 간에 굉장히 어려운 어떤 단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조선 같은 경우도 임진왜란 이후에 굉장히 황폐해졌죠. 그리고 일본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집권했는데 더 이상 조선과 어떤 전쟁을 할 그런 상황이 아니었고 또 그런 의사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즈음에 어떻게 본다면 어떻게 하면 조선과 국교를 다시 이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일본에서도 한 거죠.
그래서 1604년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명대사께서 포로를 이렇게 데리고 오기 위해서 그러니까 이거를 우리가 쇄환이라고 하는데요.
포로를 데려오는 역할을 자처해서 일본에 혈혈단신 건너가셨어요.
건너가셔서 실질적으로 포로를 데리고 오면서 정말 전쟁할 의사가 없느냐, 이렇게 물었던 거죠.
그래서 일본에서도 사실은 사절단을 파견해 달라.
우리는 이제 평화를 원한다.
-일본이 먼저 우리에게 요청한 거네요?
-요청을 한 거죠.
그러니까 그래서 이때 사실상 시작했을 때는 12차례의 사절단을 그동안 보내게 되는데 최초의 한 3번 정도는 실질적인 역할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쇄환사, 그러니까 포로를 데려오는 사절.
그다음에 회례사, 포로를 보내줘서 고맙다, 이렇게 해서 또 사절을 보내는.
-감사의 의미.
-감사의 의미로 이런 의미로 한 3차례 갔었습니다.
이건 에도 막부에서 요청한 것이고요, 쇼군이.
그런데 그다음 4회차부터는 실질적인 정말 통신사의 어떤 교류라든가 외교, 정말 평화 구축 그다음에 물론 일본의 어떤 정세를 알아보는 그런 이유도 있었겠죠.
이런 어떤 의미를 가지고 파견이 되었고요.
사실상 갈 때는 조선 국왕의 국서를 이렇게 전달합니다. 그래서 국서를 실어 가는 가마가 있습니다.
그 역할을 정사가 했고요.
그리고 돌아올 때는 도쿠가와 쇼군의 답서를 받아와서 우리 조정의 임금님께 바치는 그런 어떤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12회 동안 사실 한양을 출발해서 에도까지 가는 여정이 육로를 쭉 거쳐오고요.
그다음에는 해로를 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과정이 짧게는 5개월, 길게는 돌아오기까지 1년이 훨씬 넘는 그런 어떤 기간이 걸린 정말 긴 그런 여정이었습니다.
-1년짜리 빅 이벤트다, 지금으로 따지면. 1년짜리.
그것도 사절단의 규모도 지금과 비교했을 때도 참 대단하다는 게 한 500명 이상 갔다고 하니까.
지금도 그렇게 그 숫자만큼 감행키가 어려운 규모잖아요.
그런데 1년 동안 또 올 때 배가 묶이면 그 시간도 담보할 수 없는 그런 참 대단한 조선통신사의 면면을 저희가 좀 이해할 수 있게 되는데요.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2017년입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상징적 의미도 엄청나다, 이렇게 좀 부여할 수가 있겠죠.
-사실 조선통신사가 200년간 오가면서 남긴 그런 기록들은 굉장히 많습니다.
그게 조선통신사의 기록물인데요. 이 기록물은 두 나라가 전쟁이라는 시련을 극복하고 평화 유지를 위해서 상호 간 정말 노력해 온 하나의 기록입니다.
사실은 인접한 두 나라가 통신사를 파견했던 기간에는 한 차례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세계사적으로 굉장히 의미가 있는.
-그렇네요.
-그런 일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어떻게 시작되었느냐면 등재는 2012년에 우리는 부산문화, 그러니까 부산은 부산문화재단이 조선통신사 행사를 다 주관하고 있지만 일본은 NPO 법인 조선통신사 연지연락협의회가 있습니다.
이 연지연락협의회는 우리가 사실 육로로 갈 때는 우리나라를 거쳐오고 해로로 가서 다시 일본의 육로로 가는데 그 거쳐 가는 곳마다 연고지가 다 있습니다.
그러니까 통신사가 머물렀던 곳이죠.
그러니까 그곳들의 지자체도 있을 것이고 예를 들면 기관도 있을 것이고 개인도 있는데 이런 분들이 다같이 모여서 만든 것이 연지연락협의회입니다.
그래서 이 연지연락협의회는 95년에 만들어졌어요.
이 조선통신사의 어떤 것들을 한번 이어가 보자고 해서 그런데 부산문화재단은 부산에서 2002년부터 이 사업을 했기 때문에 2012년에 이 양 단체가 모여서 이 기록물을 한번 등재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시작했고
시간이 한 5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사실 12회 사행처럼 12번의 학술대회가 양국으로 오가면서 열렸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 어려운 과정 끝에 2017년 10월 30일에 외교의 기록, 여정의 기록, 문화교류의 기록 그렇게 해서 111건, 333점이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가 되었습니다.
-일본 에도 막부 시대 때부터 그들의 요청에 의해서 저희가 응했고 한양에서부터 부산 그리고 대한해협을 거쳐서 대마도, 시모노세키 그리고
오사카 육로로 해서 교토 또는 도쿄까지 갔다는 건데 참 대단한 여정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런 생각이 들고 그 당시의 조선통신사 역할 아까 포로 송환과 거기에 대한 보답, 감사 차원 그리고 정보적인, 전략적인 차원에서도 이게 이루어졌다고 보이는데 물론
거기엔 평화를 담보로 하고 있습니다마는 과거의 조선통신사의 그런 역할과 지금 13번째 항해를 통해서 앞으로 이어갈 조선통신사가 관례가 된다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역할이 조금 달라질 것 같습니다.
시대상에 따라서.
-사실 부산문화재단에서는 조선통신사를 매개로 각 일본 연고지 지역들과 다양한 교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행렬을 재현함으로써 조선통신사가 갔던 길을 따라서 이어가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굉장한 의미를 두네요.
-그래서 지금 쓰시마와 시모노세키, 시즈오카, 가와고에.
가와고에는 연고지 근처였기 때문에 실제 연고지는 아니라도 그곳에서 일본 측에서 먼저 행사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이어가고 있고요.
실질적으로 사실상 신조선통신사라고 저희가 명명한 이유는 조선통신사의 상징적인 가치는 이웃하는 나라 간에 충돌하는 이 세계에서 어떻게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건 외교 사절이었지만 사실상 그때 갔던 분들을 보면 화가라든가, 화원들, 그다음에 제술관, 기록하는 사람들, 그다음 악대, 군관, 심부름하는 소동까지 그러니까 각계각층의, 의원들도 있었죠.
각계각층이 다 있었던 거예요. 어떻게 보면 지금의 K-컬처를 선도하는.
-맞아요.
-그런 어떤 한류처럼.
-문화적인 총합이다.
-그러니까 당시에 어쩌면 한류라고 볼 수도 있었던 거죠.
이 조선통신사 행렬이 가면 그 행렬을 보려고 구름떼처럼 몰려서 금지령 같은 것을 내리고 그랬다더라고요. 어떻게 본다, 이런.
그래서 그렇다면 사실상 포로 송환이나 평화 유지, 문화 교류, 이런 역할을 과거에 했다면 오늘날에는 조선통신사의 정신, 어쩌면 가치, 그러니까 평화의 가치, 이것을 미래 세대에 전하는 것이
저는 굉장히 중요하고 큰 역할이다.
그래서 청소년, 청년, 또는 시민들이 교류할 수 있는 그런 미래적인 좋은 영향을 미쳐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미래 세대들에게 서로 화합할 수 있는 어떤 초석을 놓는 자리가 다시 이어진 항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클 것 같습니다.
올해 행사가 더 의미가 있는 이유를 들자면 무엇보다도 재현선이라고 해야겠죠?
-네, 재현선.
-조선통신사 복원을 해서 재현해서 똑같이 만들어서 일본에 갔다는 것인데.
이게 배가 그 당시 자료들이 있나요? 남아 있나요?
설계도나 그림 같은 것, 완성도 같은 게 있나요?
-설계도는 없었답니다.
이게 아까 말씀드린 기록물 안에 보면 배가 그려진 그림들은 이렇게 상세하게 남아 있었다고 보이고 설계나 어떤 배에 대한 어떤 기록이 정확하게 남아 있는 것은 11차 사행 때 부사기선으로 이렇게
몰았던 변탁이라는 분이 계미수사록에 조선통신사선의 건조와 운항에 관한 기록을 수록해 놓았나 봐요. 그게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고 하시고
그다음에 12차 사행의 정사 김이교가 기록한 신미통신일록에 이런 연구가 좀 있었답니다.
그래서 이걸 토대로 만들다 보니까 설계를 무려 28번을 수정할 정도로 지속적으로 배를 연구하고 그리고 진수할 때까지는 사실상 한 3, 4년 이상이 이렇게 걸렸습니다.
그래서 2018년 10월에 배가 만들어져서 진수식을 띄우는 행사를 했습니다.
-아무쪼록 정치가 풀지 못하는 것을 이런 사상과 예술, 학술의 교류로서 풀 수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문제 해결의 중심에 조선통신사가 꼭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생각을 덧붙여 보는데 이게 재원이 그래도
기록에 남은 거 보면 길이가 몇 미터다, 너비가 몇 미터다, 이런 기록들이 있던 모양이에요?
심지어는 재료로 강원도 금강송을 900그루를 썼다, 이런 내용도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만들어서 실제로 이 배를 띄웠습니다.
그 날짜가 8월 1일, 부산을 출발했는데 몇 분이나 가신 거예요, 이번에?
-이번에는 아홉 분이 승선을 하셨어요.
-배에 타신 분은 아홉 분.
-원래는 70명까지 탈 수 있는 배입니다. 예전 조선시대에도 6척의 배가 갔거든요, 제일 많이 가면?
-배가 몇 척이 갔군요?
-네, 6척이 갔는데 이번에 재현된 배는 정사기선입니다.
그러니까 정사가 탔던 배니까 가장 핵심이 되는 중심 배죠.
그래서 그 배에도 한 100명이 예전에 탔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봤을 때 저희도 70명은 탈 수 있지만 이번에 항해는 아홉 명의 인원만 허락을 받아서 운항을 하시는 분 여섯 분 하고
그다음에 촬영하시는 분이나 이런 분 해서 아홉 명이 타고 갔습니다.
-배가 요즘 건조가 됐으니까 동력 장치는 물론 있었을 것 같고.
-네, 동력 장치는 무조건 있어야 하죠.
-갈 때는 어떻게 그래도 풍력으로 갔습니까?
-아닙니다. 예전에는 풍력으로 갔죠.
돛을 달고 가잖아요? 그런데 이제 지금 갈 때는 동력을 써서 가지만 20노트로 최대가 20노트니까 저는 노트 단위를 잘 모르지만.
-빠른 건 아니네요.
-굉장히 느리게 갈 수밖에 없는 그런 배입니다.
그러다 보니 가는데 히타카츠까지 거의 대여섯 시간, 또 히타카츠항에서 이즈하라로 이렇게 내려와야 하거든요.
거기까지도 또 한 대여섯 시간. 거의 10시간 이상이 걸린 그런 항해였습니다.
-배멀미하시는 분들 굉장히 힘드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굉장히 고생을 하셨던 것 같아요.
-가는 과정도 갔을 때 일본에 도착해서 환영하는 인파들이 꽤 많이 나왔다는 이야기 들었거든요?
정작 도착했을 때 그 많은 분이 옛날과도 같은 그런 환영의 인파들이 박수 치고 환대하는 모습에 또 감회가 새롭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2019년에 이 배가 가기로 약속을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때 이미 쓰시마 시민들은 이 배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봐야죠.
그런데 그 배가 4년 만에 코로나를 지나고 온다고 하니까 쓰시마에 사시는 뿐만이 아니라 이 배를 보기 위해서 본토에 계시는, 일본의 본토에 계시는 분들도 많이 오셨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본토에서까지도?
-네. 이 배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지금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하셔서.
그래서 배가 입항할 때도 실제 예전처럼 어선이 호위해서 이렇게 멀리서 호위해서 들어오는 것으로 해서 시장님께서 직접 환영을 해주시고
시민들이 다 나와서 환영하고 이런 행사를 했다고 합니다.
-조선통신사선이 출연하기 전에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해신제도 되게 빅이벤트라고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진행이 됐나요?
-해신제는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정말 길일을 잡아서 해신에게 무사 안녕을 기원하면서 지낸 제례 의식입니다.
-기원제.
-기원제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번에도 저희가 이 해신제를 준비하면서 실제 이 해신제는 1719년에 제술관으로 따라갔던 신유한이 해유록이라는 책을 썼는데 거기에 음식을
어떻게 어떻게 놓고 지냈다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기록을 저희가 토대로 해서 사실 매년 영가대에서 이렇게 해신제를 재현한 지가 몇 년이 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재료를 올릴 때도 음식이 지금의 제하고는 다릅니다.
그러니까 이게 국가 제례이기 때문에 그 제례 음식들 순서라든가 이런 종류들이 다 다른데 그게 지금 없는 것도 많이 있는 거예요.
-사슴 고기 육포도 올리는 그런 것도 있고, 그렇죠?
-사슴 고기 육포는 지금 그래도 구할 수 있으니까 그걸 구해서 올리고 어쨌든 그렇게 해서 복원을 우리 이경희 원장님께서 수차례 고증을 하셔서 복원해 내셨고요.
그래서 출항을 앞두고 이번에 저희가 해신제를 영가대에서 이렇게 모셨습니다.
-저도 저 위의 쓰시마, 대마도를 가본 적이 있는데 참 고즈넉하더라고요.
그리고 정서가 우리 조선, 그러니까 한국 정서가 있어요.
그만큼 우리가 초행을, 그쪽을 해서 일본 육로로 들어가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도 조선통신사 역사관이 있고 그런 흔적들, 우리 조선의 흔적들이 많이 있던데 유적지로.
부산에도 조선통신사 역사관이 있으니까 서로 앞으로 교류를 하고 어떠한 다양한 사업들을 이어갈 계획인지 그것도 궁금해지네요.
-이번에 사실 쓰시마에 가서 참 놀라운 것은 쓰시마 박물관이 다시 지어져, 박물관이 원래 조그마했었는데 새롭게 크게 지어졌고 그다음 없었던 조선통신사
역사관이 2021년 코로나 중에 2021년 10월에 개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름도 똑같아요. 부산에 있는 것도 조선통신사 역사관이고.
-통신사 역사관.
-쓰시마에도 조선통신사 역사관이에요. 그래서 저희는 11년에 개소했으니까 지금 사실 13년을 맞이하고 있고 또 쓰시마는 작년에 개소를 했기 때문에 부산과
쓰시마, 조선통신사 역사관 간에 올해 MOU를 맺었고 교류 전시 같은 형태.
왜냐하면 쓰시마 역사관에는 실질적으로 기록물, 진본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진본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만든 영인본을 가지고 있지만 그 쓰시마는 진본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진본이나 저희 영인본들을 또 교류하면서 이렇게 전시를 하는 그런 계획도 있고요.
또 시민 왕래 프로그램이라든가 이런 것들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지난 화요일 광복절이었습니다. 한일 관계 참 굴곡이 많았습니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은 차갑게 얼어붙다시피 했던 역사의 시간이었는데요.
과거사 문제 해결도 반드시 필요하고 또 미래를 위한 발걸음 역시도 중요합니다. 조선통신사가 한일 이제 통신사가 돼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제가 아까도 정치가 풀지 못한 걸 바로 문화와 또 예술 그리고 사상의 교류를 통해서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는데 대표님께서는 앞으로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사실 올해 5월에 우리 황범 앵커님이 사회를 봐주신 유네스코 콘퍼런스를 저희가 열었습니다.
-기억납니다.
-그 유네스코 콘퍼런스의 주제가 뭐였냐 하면 충돌하는 이 세계에서 이웃하는 두 나라 간에 우리가 문화 예술을 통해서 어떻게 평화를 복원하고 같이 번영할 수 있는가. 이런 주제였습니다.
-맞아요.
-그렇다면 사실 국가 간의 관계는 항상 어려울 수도 있죠.
어려울 수 있고 정치인은 항상 문제가 안 풀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저희도 19년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고 그런데 민간 차원의 교류를 절대 끊어지면 안 된다는 것이 정치권에서도 이렇게 얘기하시고 시민들도 그렇게 얘기를 하셔요.
그렇다면 그 역할을 결국은 저희가 담당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문화 예술을 통해서 사실 이 조선통신사의 정신을 통해서 우리가 이웃 간의 평화를 회복시키고 나아가서는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그래서 참 어려움이 많지만, 앞으로도 아까 말씀드린 대로 높은 신뢰감을 바탕으로 21세기를 준비하는 그런 새로운 한일 관계.
이것을 미래 세대들과 함께 좀 열어가야 하겠다 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가 좀 되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조선통신사의 가치란 한 말씀을 드리자면 성신교린이다. 성실과 신뢰로 서로 교류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을 텐데요.
무엇보다도 미래 세대로 이것이 이어지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늘 마지막 말씀으로 미래 세대 그리고 국민들께 시민들께 부탁하고 싶은 당부의 말씀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부산문화재단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조선통신사를 통해서 평화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계속 노력을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런 어떤 마음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양국을 이어가는 그런 노력을 해나갈 생각입니다.
사실 200년간 평화 유지를 위해서 힘쓴 그 정신을 발신하기 위해서 우리 시민들도 많이 관심을 기울여 주시고 앞으로도 더 많은 성원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 땅에도 저 땅에도 한국과 일본의 혼혈의 자손들이 꽤 많습니다.
더 이상 그들에게 아픔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덧붙여 보고요. 다시 열린 이 조선통신사 뱃길이 평화와 화합의 뱃길이 되기를 그리고 새로운 한일 관계를 풀어나가는 귀중한 씨앗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 보겠습니다. 오늘 나오셔서 도움 말씀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파워토크는 다음 시간에 인사드리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