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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할매 시즌3 - 행복한 여장부 박수림

등록일 : 2021-08-09 17:43:30.0
조회수 : 968
-(해설) 푸른 바다를 가로질러 배가 달립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전남 완도군에 속한 노화도인데요.
해남 땅끝에서도 배를 타고 30분을 더 가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섬입니다.
-여기가 노화도네.  기가 막히는구먼. 섬이라는 섬에 이렇게 좋은 섬, 조용한 섬 처음 봤네.
온갖 전복 양식장이 그냥, 배에. 끝내주네, 섬.
-(해설) 전복의 주산지 하면 완도를 빼놓을 수가 없죠.
그런데 그중에서도 전복이 가장 많이 나는 곳이 바로 이 노화도입니다.
-(해설) 부자 섬이네.
-(해설) 그런데 뭘 그렇게 품에 꼭 쥐고 다닌대요?
할매 찾으려 했더니 별수를 다 씁니다, 다 써.
수고한 보람이 있으려면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보다는 쉬워야 할 텐데. 어디 한번 지켜봐 볼까요?
내가 여기 사람을 찾으러 왔어요. 혹시 박수림 할머니. 혹시 아시겠어요?
-모르겠어요.
-미라리, 북고리 가면.
-미라리.
-북고리.
-북고리. 그러면 미라리, 북고리로 가야겠네. 고맙습니다.
-(해설) 이름 석 자 달랑 외우고 찾아온 섬. 발품 팔아서 포위망을 점점 좁혀 봅니다.
무슨 아이들 소리가 나네? 여기 섬에 아이들 소리가 나. 섬에 여기 조그마한 애들이 있네요.
-안녕하세요?
-안녕~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래. 몇 학년? 너 몇 학년, 몇 살이야? 예쁘게 생겼다, 너.
-몇 살?
-몇 살이야?
-너는 몇 학년이야? 이 애들이 섬에서 귀한 보물 대접 받겠는데.
-저희 어머니입니다.
-뭔 소리야.
-어머니입니다.
-등잔 밑이 어둡네, 다른 데로만 돌아다니다가. 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
-여기?
-집이 지금 2개예요? 그렇구나. 할머니 집 안내 좀 해주실 수 있겠어요?
-(해설) 하늘이 도운 걸까요? 운 좋게 할매 아들을 만났습니다.
바로 지척에 산다니 고지가 코앞인데요. 우리 할매, 어디 마실 나간 것은 아니겠죠?
-그러면 광주에서 아드님도 광주에서 사세요?
-그러시구나. 아이들 교육 때문에. 토요일 왔다가 일요일에 가나요?
-금요일.
-이제 인사드리고 가려고요.
-그러면 내가 잘 찾았네. 그러면 다음 주 금요일에 또 오시는 거예요? 그러시구나.
할머니가 엄청 반가워하겠는데, 일주일에 1번씩 보면?
-저기 어머니.
-어머니세요? 제가 이렇게 오매불망 찾던 박수림 할머니가 맞아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여기 남편분?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사진보다 훨씬 얼굴도 예쁘고.
-그래요? 감사합니다.
-김씨는 어디 김씨?
-저는 안동 김씨예요.
-안동?
-우리는 김해.
-김해 김씨. 반갑습니다. 두 남자의 사랑을 받고 아주 듬뿍 받고 살고 있는 박수림입니다.
-(해설) 애정 표현 넘치는 사랑꾼 남편에. 깨가 쏟아지네.
묵묵하지만 늘 곁에서 손과 발이 되어 주는 듬직한 아들까지.
남편 복에 자식 복까지 터진 그녀. 평소에 다니는 거 잘 안 좋아하시구나?
-이렇게 손이 빨라?
-(해설) 모든 일에 전력투구를 다 하는 노화도 여장부. 수림 씨의 삶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아니요, 줄 것이 있어요.
-얼른 싸보세요. 무엇이 있을까?
-담아서.
-그러시구나.
-(해설) 엄마들은 꼭 자식들을 못 챙겨줘서 안달일까요?
얼마 남지 않은 배 시간에 하나라도 더 챙기려고 부산을 떠니 자꾸만 손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해설) 그런데 참 이상하죠? 짧은 시간에도 반찬은 뚝딱 나옵니다.
-(해설) 보따리에 쌀 음식들은 온통 며느리를 위한 것들뿐.
-어머니, 무엇을 이렇게 며느리 주려고, 손자들 주려고?
-직접 낳은 달걀.
-달걀. 닭 달걀.
-이거? 장어? 민물, 그 뭐라고 하더라.
-바닷장어.
-바닷장어? 이거는 또 뭐예요?
-상어? 상어도 먹어요?
-먹죠.
-먹죠.
-이건 전복인가?
-그건 전복이고.
-전복이네요, 전복. 역시 노화도 다르구먼. 상어에 전복에 아주 없는 게 없네.
-(해설) 모두가 웃어넘기는 농담 속에 진심을 투척했던 한 사람.
-이게 뭐지?
-(해설) 보따리 가뜩 싸인 산해진미에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합니다. 아침밥도 건너뛰고 찾은 섬.
밥 생각이 절로 나지만 속으로만 외쳐봅니다. 어머니. 저 배고파요.
-어머니 달걀은 여기에서 닭이 몇 마리나 돼요?
-우리 아재네가 여기 왔다고 들렀는데 인사차 갔는데 이거 낳은 놈을 그때.
저거 갖고 가라. 잡수세요, 잡수세요.
-먹어도 돼요? 생으로?
-네, 이제 막 낳은 달걀들이니까 내가 봉지 하나 갖고 와서 담아주려고요.
-나중에.
-이놈 이렇게 해서 담고. 저놈 담자, 물 흐르니까.
내가 사인을 하나 멋지게 해서 내가 너한테 하나 선물해주마. 이거 갖고, 받아 괜찮아.
-감사합니다.
-옳지. 내가 좀 실어드릴게요. 그래.
-잘 가.
-안녕.
-이리 와. 잘 가, 잘 가라.
-어서 가. 그래. 어서 가.
-(해설) 늘 그렇듯 다시 부부만 남은 집. 평범한 오후 일상을 시작해 봅니다.
-이거 바다에 가면 기본으로 우의를 가지고 가야 해요. 옷을 안 망치게.
-나도 일을...
-이거는요?
-더우니까?
-맞아. 그러면 바다에서 뭐 합니까? 일단 가십시다.
-바다에 가면요.
-일이?
-(해설) 일단 배부터 타야겠죠? 이게 지금 아들이 배 운전을 해요?
-네.
-(해설) 아들의 배를 타고 아들이 일군 다시마밭으로 향합니다.
노화도 바다 농사터에는 전복 양식장만큼이나 다시마 양식장이 많은데요.
굵은 밧줄에 포자를 붙여 1년 내 키워낸 겁니다.
바닷속이 거뭇거뭇한 게 언뜻 봐도 많이 자란 것 같죠? 이게 다 김 선수 일거리려나?
-건져 올린다.
-저게. 어마어마하네.
-좋다.
-어머니 여기 왔으니까 한 번씩 조금 도와드릴게요.
-(해설) 배가 고프긴 진짜 고픈가 봅니다.
-사각사각하니 맛있구먼.
-아삭아삭하죠. 이거를 어떻게 따야 해, 이걸.
-이것을 이렇게, 우선 이렇게 잡고.
-그 위에 줄기를.
-이렇게 해야 해요.
-그렇게 해서.
-이렇게, 여기 놓죠.
-그렇구나.
-나 한번 해볼까요? 이놈 갖고.
-잘하시네.
-그래요?
-네.
-(해설) 모자 둘이 하던 일에 손 하나가 더 보태지니 일이 수월하게 진행됩니다.
-어머니, 이렇게 지금 딴 것은? 나 해주려고?
-이놈으로?
-네.
-오늘 나 호강하게 생겼네.
-호강 받겠어.
-(해설) 노화도에서는 주로 전복 먹이용으로 다시마를 키우는데요.
7월부터 9월 사이 제철을 맞아 통통해진 다시마는 이렇게 채취해서 건조해
두었다가 찬거리에 보태 쓴다고 합니다.
-사각사각 맛있구먼.
-맛있어요.
-전부?
-네.
-둘이 싸워?
-일이 피곤하면 뭘 시키면 자동으로 조금 반박이 나오죠, 짜증이.
-뭐 이거 하라고 하면?
-네, 바다에 와서 둘이. 힘드니까.
-아직도?
-네.
-이제 죽을 때가 됐나?
-젊어서. 죽을 때는 안 됐고.
-아니, 성질이 죽을 때가 됐다 그 말이죠.
-응, 성격이.
-말 잘못하면 큰일 나는데.
-그렇지.
-성질이 죽을 때가 됐다 그 말이에요.
-안 받아줘요?
-그런 건 아버지가 잘 받아줘야지. 그것을 사실은.
-이래서 나이 차이가 있지. 이래서.
-그렇지.
-(해설) 잘해줬다가 못해줬다가. 할배가 밀당의 고수구먼.
-(해설) 얼마나 애를 태웠으면 할 말이 수두룩 쌓였을까요.
우리 할배 지난 세월 만회하려면 할매한테 더 잘해야겠어요.
내 편인지 남편인지 모를 한 사람 덕에 급격히 친해진 두 사람.
찰떡궁합으로 채취해 온 다시마를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말려줍니다. 저 뒤가.
-(해설) 바닷가에서 사는 맛이 어디 이뿐일까요?
제대로 된 재미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그날, 그날 얻은 재료들로 한 끼 밥상을 차려낸다는 섬.
점심 메뉴는 김 선수가 그토록 바라왔던 다시마 쌈밥입니다.
-(해설) 뭍에서 온 손님을 위해서 오늘은 특별히 고기반찬도 볶아냅니다.
뜨끈한 밥과 함께 다시마에 싸 먹으면 별미가 따로 없겠죠?
-어머님, 뭘 겁나게 많이 차리셨네. 이거, 이거 뭐예요? 뭐, 뭐예요? 이거는 돼지고기 주물럭 한 것이고.
-주물럭이고요.
-이게 무슨 생선?
-딱돔이에요.
-딱돔.
-우리말로는 채래기예요.
-여기 동네 말로는?
-네.
-이거는 뭐예요?
-이것은 우리 남편이 잡아서 여기 바다에서.
-잡았어요?
-돌게예요, 돌게.
-돌게.
-돌게예요.
-어머니, 하여튼 잘 먹겠습니다. 돼지고기 한 점 딱 놓고. 어머니도 드세요. 맛있겠다.
-(해설) 내 입에 넣고 싶네.
-그렇죠? 겁나게 이게 맛있어. 사각사각하면서.
-맛있어요.
-쫀득쫀득하니.
-그렇죠?
그러니까 전복이 잘 크고 좋죠.
-나는 이 다시마 이렇게 싸서 먹는 거 처음 먹어 봐요.
-(해설) 그러고 보면 도시 사람들이 제일 못 먹는 것 같죠?
수림 씨도 조신하게 김 선수의 뒤를 따라봅니다.
함께 밥 한 끼를 나눈다는 건 서로를 깊이 알아간다는 것.
-태어나서.
-이 집 태 자리예요?
-네, 태어나서.
-스물한 살?
-네, 옆 마을이에요, 옆 마을.
-저는 옛날에 중신이라고 그랬잖아요. 지금 들어보니까 중신, 옛날에. 지금도 중신인가 몰라.
중신아비. 중신아비가 서 가지고 결혼했지요.
-선봐서, 선을 봐서 만나게 되신 거구나.
-그렇죠.
-어떻게, 딱 마음에 들던가요?
-그런 질문은 뭐 하러 해요.
-네, 뭐 들고 자꾸 해서 그냥 보고 눈이 맞아서 했던 거예요.
-부모의 명령을 따라서. 부모가 하라면 하라는 대로 했죠.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꼭 마음에 들기보다는 지금은 연애하고 연애 시절이 시작이 돼 가지고 마음에
들고 안 들고 그런다마는 그때는 부모가 지정해주면 어쩔 수 없이 마음에 들든지 안 들든지 우리 시절만 해도...
-그래도 아버님, 그때 당시 선을 딱 봤는데 딱 마음에 드셨을 것 같아요.
어땠어요, 그때 당시. 기억 좀 한번 더듬어보세요.
-그랬어요? 어머니는 어땠어요?
-마찬가지예요.
-21살 때, 그렇죠.
-아주 싫지는 않았어요.
-싫지는 않았어요?
-네.
-50년 어떻게 살아 보니까 어떤가요, 50년.
-50년이 어떻게 넘어갔는지 모르겠어.
-진짜로? 살 때 어땠어, 힘들었나?
-힘들었지요. 어려운 세상에 모두 만나서 살았으니까.
-그렇죠, 논밭이 없더라.
-많이 넉넉했구먼, 식량이.
-넉넉했어요. 부자든 안 부자든 간에 먹는 것이 제일 중요했어.
-그렇지, 그렇지.
-그때는 지금같이 전복도 안 하고 그때는 김발만 했다면서요.
-그렇죠.
-네, 김발만 했어요.
-김발이 돈이 좀 됐나요, 그 당시에?
-같이 먹고 살았어요.
-그러면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겠네.
-그렇죠, 많았죠, 고생 좀 했죠.
-고생했지요.
-그러고는 어떻게 살까나, 참 정주고 인내를 갖고 했기 때문에 오늘날이 있지 않나, 이렇게.
-(해설) 사는 게 바빠 청춘이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 덕에 자식을 먹였고 살림을 불릴 수 있었습니다. 다 이 바다 덕분에 말이죠.
-어머니, 저기 아들이 저기 가 있는데.
-우리 아들 집에서는 없더니 배에 가 있구나.
-그러니까. 여기 또 친구도 계시나? 조카들?
-우리 조카들도 다 왔네. 홍민아, 원준아, 고마워. 우리 아들, 반갑다.
-이분들이?
-네.
-오늘 고맙습니다.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가면 100% 잡아 올립니까?
-네, 100%.
-기대를 한번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번 가시죠.
-(해설) 고기가 가장 잘 낚인다는 밀물 때. 추억의 줄낚시를 나가봅니다.
-우리 아드님, 바다가 그 뭐야 저 파도가 하나도 없네요.
-이런 날을 장판이라고 그래요, 장판.
-장판? 오늘 같은 날을 장판이라고 그런대요.
-장판.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이 얼마나 가는 거예요?
-10분 정도요.
-10분?
-네.
-5km, 10km?
-이렇게 가는데 10분이면 가진대?
-빨리 가야죠.
-빨리 가야 해.
-훨씬 빨라요.
-날아가요.
-날아?
-여기 감독님들 이거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빨리 가라고 할까요?
-한번 살짝 세게 가볼까요?
-홍민아.
-뒤로 젖혀져 버리네. 허리. 아까하고 완전 딴판이네.
-아따 좋다.
-(해설) 우리 수림 씨, 스피드 좀 즐길 줄 아는 여자였네요.
거침없이 물살을 가르며 도착한 노화도 공짜 수산 시장.
-이게 지금 줄낚이에요?
-네, 줄낚입니다.
-이거 어떻게.
-미끼 끼우는 거 있잖아요. 미끼 끼우고.
-미끼 끼워서 쭉 내리는 거예요?
-네.
-그러면 내렸다가 바로 걷어요?
-아니요, 한 30분 있다가 걷어요.
-밑에 끼워놓고. 그렇구나.
-닻에 닿도록 반만.
-지금 이게, 이놈이 스르륵 빠지면서 이제 같이 풀린다, 이 말인가요?
-네, 닻에서 올릴 때.
-이거는 올릴 때 올리는 거고. 자기가 알아서 가네요, 살살.
-정말로.
-이거 잡으면 오늘 내가 저녁에 이놈 먹을 수 있을까요?
-잡기만 하면 된다. 못 잡으면 어떡할까, 우리. 잡겠지?
-네.
-(해설) 노화도 용왕님의 넓은 아량으로 바다 곳간이 활짝 열리기만을 바랄 수밖에요.
짧고도 긴 30분이 흐른 후 천천히 낚싯줄을 거둬들여 봅니다. 재미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안에 많이 들었을것 같은데.
-네.
-60m. 이것이 엄청 무거운데 이거 고기가 많이 잡힌 것 같은데?
-밥값 해야 하니까.
-밥값 해야죠.
-(해설) 영차영차. 젖 먹던 힘까지 짜봅니다.
-없다.
-다 떠먹어버렸네.
-다 빈 것이구나.
-못 먹지.
-야구나 어머니, 야구나 해야지.
-야구 감독이나 하세요.
-왔다! 여기 잡혔어, 잡혔어!
-쏨뱅이.
-쏨뱅이. 여기 쏨뱅이. 보세요. 또 있어요, 딱돔.
-딱돔.
-좋아.
-좋아 부러.
-계속 쏨뱅이. 계속 잡힌다. 돔이 많네. 계속 올라온다.
-올렸어. 누가 물었다.
-보세요.
-이게 뭐라고요?
-이게 이제 딱돔. 잡았다, 잡았어! 어머니, 봐봐.
-크네요!
-보세요. 싱싱한 거. 또 왔어!
-밥값 해요, 어머니. 여기 장어도 나온다. 장어.
-꽤 크다.
-나는 고기를 내 생전에 이렇게 많이 잡아본 건 처음이네.
-처음이죠.
-한 마리도 내 손으로 잡아본 적이 없는데.
-북고리 와서.
-(해설) 오늘 노화도 용왕님이 육지 손님에게 인심을 팍팍 쓴 것 같죠?
-네.
-아까는 안 된다고 했잖아요.
-아까는 안 됐죠.
-야구나 하라고 하고. 그런데 이제는...
-조금 나아졌어요.
-금방 나아지겠네.
-네, 금방 나아버렸어.
-감사합니다. 가시죠, 이제! 오늘 대성공이네.
-많이 잡았습니다.
-(해설) 서둘러 집으로 향합니다. 갓 잡아 온 싱싱한 먹거리를 손질하는 건 아들의 몫.
능수능란한 손길로 솜씨를 발휘해봅니다.
껍질이 두꺼운 딱돔과 쏨뱅이는 구이로 먹어야 제맛. 소금 살살 뿌려서 노릇하게 익혀줍니다.
그사이 주방에서는 수림 씨의 실력 발휘가 한창인데요.
노화도의 여름 별미라는 전복 물회입니다. 모자가 함께 준비한 섬 만찬. 밥상에 정성이 내려앉았습니다.
-어머니, 잘 먹겠습니다. 아주 진수성찬을 만들어주셨네.
-맛있게 드십시오.
-지금 이게 딱...
-딱돔이에요.
-딱돔, 아까 제가 잡은 거. 어머니랑 같이 가서 잡은 거.
-네, 여기 우리 말로는 채배기예요.
-채배기. 그다음에 이제 아드님이 전복 양식을 하니까 전복이 통째로 구워져서 나왔습니다.
이거는 어머니 솜씨.
-전복 물회예요.
-전복 물회. 그리고 아까 우리 잡았을 때 이거 붕장어.
-붕장어.
-그다음에 이거는 하이라이트가 뭐냐 하면 이 전복 내장. 내장 무침.
이게 뜨거운 밥하고 먹으면 아주 환상적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게 먹고 싶었어요. 이것이...
-잡숴보세요.
-이게 전복 저기니까. 내장.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어머니. 이렇게 맛있는 밥상 차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이 드세요.
-자주 먹어도 전복은 안 질려요.
-밥 안 먹어도?
-(해설) 한번 입을 댄 이상 숟가락을 멈출 리 없는 김 선수. 일단 먹고 봅니다.
덩달아 먹방을 찍는 수림 씨의 두 남자. 황새 따라가려다 배 찢어집니다, 배 찢어져. 김 선수, 이제 그만!
-여기가.
-문화 활동을 할 수 없네요.
-네.
-그러면서 또 좋은 점이 있을 거 아니에요?
-좋은 점, 오늘도 다녀왔잖아요.
-바로 이거.
-네.
-맞아, 맞아.
-맞다.
-그렇지, 참. 정답을 말한다.
-그렇지.
-우리 로망이 섬에 사시는 분들은, 우리 생각인데 날마다 이것을 잡아서 날마다 싱싱한 것만 드실 것 같아.
또 좋은 점?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하루 이틀 정도.
-누구한테 그런 잔소리를 듣지 않고도 때 되면 내가 좀 쉬고 싶으면 쉬고. 또 일하러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왜?
-짠하지 않고 고마웠을 때는 없을까?
-고마웠을 때.
-어떤 때가, 그때가?
-옆에 늘 어머니 생각하고.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는 하던가요?
-네, 곁에 사는 것이 정말 고맙죠, 든든하죠.
-그렇구나. 있는 것, 옆에 있는 것 자체만 해도 힘이구먼.
-그렇죠.
-(해설) 부모에게 자식은 영원한 짝사랑 상대라고 하죠.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 저릿한 인생의 전부가 같은 곳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사니 고마운 수림 씨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식구들끼리 다 서로 고맙다고, 고맙다고 해.
-진짜로.
-속을 알 수 없어요?
-그래서 내가 시험을 한번 봐야겠어.
-(해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가족 속은 전혀 모르는 수림 씨네를 위한 긴급 처방.
가족의, 가족을 위한, 가족에 의한 모의고사입니다.
-(해설) 각 주제별 15개 문항을 열심히 풀기만 하면 가족 간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시험.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박수림 님, 1번에 가족 중 한 명과 하루를 인생을 바꾼다면 누구와 바꾸고 싶은가,
내가 질문했더니 엄마도 아니고 아빠도 아니고 아들, 딸, 며느리, 손주 아무도 아니고 기타로 했어.
-네, 기타로.
-왜 기타로 하셨어? 나는 그게 상당히 궁금한데? 왜, 이유가 뭐예요?
-이유가. 이제 우리 영감님하고는. 살다 보니까 성격 차이도 조금 있었고.
그래서 간단하게 바꾸고 싶지 않다, 하루도.
-하루도.
-그렇게 생각이 되고.
-그다음에.
-이제 우리 아들, 딸 우리 손주들. 어떻게 그렇게 됐어.
-그래서 안 바꾸고 싶다?
-네, 그냥.
-그러면 기타는 뭐예요, 그럼? 누가.
-그냥.
-누구하고 바꾸고 싶은 거예요?
-아니요, 그냥 나 자신이 사는 대로. 그냥 안 바꾸고.
-안 바꾸고.
-네.
-그냥 나는 나대로 내 인생을 내가 살고 싶다? 누구하고도 바꿀 인생이 없다.
-네.
-어머니, 자식에게 바라는 큰 효도는?
이렇게 했더니 어머니가 애정표현을 자주 하는 것이라고 썼어요. 그게 자식한테 크게 바라는 거예요?
-그냥 기본적으로요. 바라는 것은 없지만 훌륭한 자식도 있습니다만 마음대로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마음대로.
-그래서 우리가 우선 사는 동안 서로가 애정 표현, 엄마, 아빠.
어디를 가더라도 갔다 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
-그렇지.
-그게 같이 살면서 제일 좋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애정표현을 엄마가 바라서 그런 것 같은데 저도 하고 싶은데 성격상 안 되더라고요.
좀 낯간지러워서 많이 안 하는 편이에요.
-낯간지러워서. 그런데 이제 보면 아들들이 또 엄마한테 살갑게 애정표현을 잘 안 해.
딸들은 자주 애정표현도 하고 하던데, 아들들은 잘 안 하더라고요.
그러면 여기서 어머니한테 애정표현 한 번만 해줘 보실래요? 이런 기회를 통해서.
-할 것이 뭣이 있대요, 다 알고 있을 텐데.
-아니, 그래서. 내 마음속으로만 있지 표현을 안 했단 말이에요. 이번, 이번.
오늘 같은 날은 표현을 한번 하시면 상당히 좋을 것 같아요. 그렇죠, 어머니?
-네.
-듣고 싶죠?
-네.
-듣고 싶다잖아요.
-꼭 해야 돼요?
-해라.
-해야지.
-엄마, 아빠 많이 사랑합니다.
-고마워요. 저도 사랑해요.
-우리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사실은 아들이 좀 무뚝뚝하고 표현을.
마음은 내가 보니까 엄청나게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아.
그러면 아드님은, 아드님한테 내가 한번 질문해볼게요.
가족 중 한 명과 하루만 인생을 바꾼다면 누구와 바꾸고 싶은가 했는데 아빠라고 정했어요. 그 이유가 뭐예요.
-저도 이제 아이들을 키워보고 그러니까 가장으로서 너무 힘들더라고요.
아버지도 저 나이 때 자식들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가.
그때 한번 아버지 모습, 생각이 스쳐 지나가서 아버지를 선택했어요.
-그러시구나.
-우리 아들.
-아버님 아들이 이렇게 답했어요. 아버님은 뭐라고 말씀하실 수 있겠어요?
-글쎄요. 저는 76년 동안 살아오면서 처음. 뭐라고 해야 할까요? 감격스러운 소리를 들었네요.
-참말로.
-아들한테. 사실은 자식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가장 기쁘다고 하대요.
내가 옆에서 기분이 좋아지네. 대견하죠, 엄청.
-엄청, 그렇지.
-그동안 고생해서 잘 자라준 것이 감사하고.
-(해설) 품에 안기던 작은 몸짓이 언제 이렇게 커버린 걸까요?
아버지가 된 아들의 애틋한 고백에 지난했던 삶이 훈장처럼 마음에 새겨집니다.
-아들아 그동안 아빠 밑에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감개무량하고 고맙다, 고마워.
-그러면 우리 아드님이 아버지한테 또 답사 한번, 답가를 한번 해주셔야겠네.
-아빠 덕택에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그동안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다, 내 아들 고마운 말 한다. 고마워.
-어머니 이 말 되게 눈물 나려고 하죠. 가족이.
-가족이. 항상 곁에 있어서 고맙고 든든하고 또 아직까지도 그렇고 우리 어르신도 물론
몸도 편찮으시지만 건강해서 같이 이렇게 산다는 거.
또 참 좋고 우리 아들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든든하고.
-(해설) 바람 잘 날 없었을 섬에서의 삶. 서로가 있기에 거센 파도를 잘 헤쳐올 수 있었던 거겠죠.
가족의 밤이 깊어갑니다.
-아들 마음을 처음 알았을 때 너무나 감동하였어요.
말이 없어 표현만 못 했지 마음속에는 다 깊은 뜻이 있었다는 것을.
아들 낳아서 어려운 세대에 키우고 할 때 그 어린 모습이 계속 상상에 떠올랐어요.
어쨌든지 그저 곁에서 살면서 우리 아들네 건강하고. 우리가 또 건강해야만 되고. 건강하게만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안녕하세요? 일찍들 나오셨습니다. 어머니. 사람들이 엄청 많이 나오셨네, 반갑습니다.
-전복 일은 사람이 많이 필요합니다.
-여기가, 전복이? 나는 기계로 쑥 들어 올리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
-기계 일이 있고 사람 할 일이 다 있어요.
-그렇구나. 어머니 이거 왜 여기를 깔아야 해요, 이거.
-전복을 올리면 여기다 전복을 따서 놓아야 돼요. 들은 거 안 떨어지게, 전복이. 힘이 세서.
-전복이 여기에 붙으면 안 떨어져요?
-힘이 세서 못 떼어.
-카펫에.
-감독님 힘으로는 전복을 못 떼요.
-못 떼.
-(해설) 부지런한 섬의 아침. 수림 씨네 가족이 오늘도 어김없이 바다로 출근 도장을 찍습니다.
-여기가 거기야, 아들네?
-그런 것이에요.
-여기가?
-네.
-여기서 따는구나.
-네, 거기서 따요. 이리 가져와요.
-여기 다닥다닥 붙었어. 아주. 어머니, 이거 이 정도면 어느 정도나 키운 거예요?
-많이 먹었지요.
-지금도 먹고 있지요.
-이거 큰 것 봐. 이거 엄청 크네. 엄청 싱싱하게 크네.
-좋아요, 좋아요.
-이거 봐요.
-이렇게 칼을 여기다 딱 대세요. 그래서 이렇게 미세요.
이렇게 여기 딱 대고 이렇게. 이렇게 하세요, 이렇게.
-나 하나 딸 때 어머니는 15개를 따버리네.
-저는 많이 해서 선생님이 돼 버렸습니다.
-나는 이거 상하면 안 되니까 천천히.
-감독님은 천천히 해야 해요.
-왜 그러냐면 상하니까.
-상하면 돈 물고 가야 해요.
-(해설) 그런데 너무 느린 거 아닌가? 수임 씨가 일 다 하겠네.
-어머님 손이 엄청 빠르네.
-이렇게 손이 빨라?
-네.
-(해설) 전복을 수확하는 건 농사꾼이 벼를 베는 일이나 마찬가지.
바다 추수 날에 옆집, 앞집, 뒷집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힘을 보탭니다.
채취한 전복은 크기와 무게에 따라 12등급으로 나누어지는데요.
이렇게 저울대 위에 올려주기만 하면 저절로 분류가 됩니다.
참 신기한 세상이죠? 안 떨어져요.
-맞아요, 그렇네.
-나는 옛날에 닥치는 대로 왜냐하면 힘써야 하니까 닥치는 대로 먹어버렸지요.
-그러니까.
-(해설) 우리 수림 씨 정곡을 콕 찌르네요, 찔러.
-감독님.
-네, 생을? 여기서 먹어요?
-네, 기가 막혀요.
-맛 좀 보세요.
-바로 이놈.
-이 부러지게 생겼지요.
-씹을수록 달콤하네요.
-어느 누가 배에서 이런 걸 먹어보겠어, 그것도 생으로 이렇게 말야.
-(해설) 귀한 걸 얻어먹었으니 더 열심히 일해야겠죠?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보탠 덕에 어느새 농사의 결실이 수북이 쌓였습니다.
-품앗이. 그러면 나중에 이분들 작업할 때 다 같이 가서 해 주시고.
-네.
-그렇죠. 저희가 야구 동호회를 활동을 하고 있어요.
-야구?
-섬이어도 저희가 완도에서 같이.
-바다에서 무슨 야구를 해요?
-야구 동호회 감독님도 하셨고.
-그러셨구나.
-나 온다고 해서, 오늘?
-글러브도 가지고 왔습니다.
-글러브도?
-여기서 한 번 시범 좀 보여주세요. 감독님이 시범 보여주시면 저희가 공 한 번 받아보는 걸로.
-그래요?
-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이거 될까 모르겠는데. 또 배 위에서 이것을.
-여기 있습니다.
-힘 있다. 잘 받네.
-잘한다.
-좋아, 좋아. 팔이 이 손가락이 약간 옆으로 나오니까 회전이 이렇게 먹어요.
여기서 똑바로 쥐어야 회전 속도가 많이 붙는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래야 볼 스피드가 좋아져. 이렇게.
-이렇게요?
-잘한다.
-유격수로 땅볼.
-(해설) 세상에 하나뿐인 바다 마운드.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그려.
-어머니, 한번 나와 보실래요, 어머니?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래도 한번 해 봐요.
-아니야.
-오른손잡이면 글러브를 왼쪽에 끼워, 이렇게. 이렇게, 그렇죠?
어머니, 내가 땅볼로 굴려줄 테니까 잡아서 나한테 던지세요.
-네.
-잘 잡네. 던져. 우리 어머니, 소질 있으시네.
-잘했어요.
-한 번만 더.
-스트라이크.
-(해설) 우리 수림 씨, 내일부터 야구 동호회 활동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추억과 풍요를 실은 배가 다시 육지에 닿습니다. 서둘러 찾은 곳은 또 다른 일터.
어마어마하네. 이게 전부 전복이에요?
-네, 전부 치패예요.
-안녕하세요? 사장님이시구나.
-사장님.
-이게 다 뭐예요, 이게?
-이게 전부 치패예요.
-이거 너무 적다.
-이제 커요, 이놈이 커요.
-이놈이.
-3개월 컸네요.
-그리고 11월까지.
-11월까지 키워.
-키워서 3cm 이상 되면 출하하는 거예요.
-그러면 3cm 되면 이제 이거를 거기에 심는 건가? 어머니네 거기?
-네.
-그렇구나.
-그러니까요.
-이 자잘한 이걸 골라야 해요. 이거를.
-이거는 이제 왜 안 커?
-이것은 버려야 해?
-맛없어요.
-그렇구나. 이게.
-(해설) 암컷과 수컷 전복이 만나 사랑을 나누면 무려 20만 마리의 새끼가 태어나는데요.
안타깝게도 자라는 과정에서 절반 가까이가 죽는다고 합니다.
성장성이 떨어진다는 건 가망이 없다는 것.
다른 녀석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쏙쏙 미리 골라내줍니다.
-진짜 잘했네요.
-그렇죠?
-네.
-감사합니다. 나는 오늘 어머니한테 칭찬만 먹어서 춤을 한번 춰야겠어.
가오리 춤 한번 춰야겠어, 가오리.
-(해설) 떠들썩한 아침나절을 보내고 집으로 복귀한 두 사람. 그런데 웬 곰손이 주방을 점령합니다.
아침부터 고생한 수림 씨를 위해서 방망이 대신 칼을 쥔 김 선수.
-(해설) 먹기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요리도 잘합니다.
-얼마나 잘 맞췄는가 한번 평가를 한번 해 주십시오. 제가 정성을 들이긴 들였습니다만.
-그래요? 미역국하고 어머니가 담근 묵은지하고 궁합이 잘 맞아요.
어머니 그래도 이렇게 어제부터 쭉 이제 헤어지려고 생각하니까 좀 아쉬워.
-그렇죠.
-섭섭하고.
-그래요? 고맙습니다.
-진짜로요?
-네. 어저께.
-아쉬움도 많이 있고 이제 할 테죠.
-안 했죠.
-감사합니다. 그러면 하겠습니다. 여보.
-예.
-고마워, 사랑해.
-감사합니다. 나도 사랑해요.
-뭘, 뽀뽀하고 또.
-해야지. 그렇지.
-(해설) 산다는 건 작은 기쁨이 조금씩 쌓여가는 일.
하루하루 즐거움 하나씩 보태며 칠십여 년을 살다 보니 어느새 행복이 완성됐습니다.
수림 씨, 앞으로도 지금처럼 웃고 사랑하며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바랄게요.
-경상도 쪽에 한번 가보신 적 있으세요?
-안 가봤습니다.
-부산?
-부산 못 가봤어요.
-그러면 이번에 부산 한번 가보시면 어떨까?
-그랬으면 좋겠네요.
-이만기 씨, 우리 지금 할머니께서 부산을 가신다고 하니까 직접 마중을
나오시고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부산 관광을 시켜주십시오.
어머니, 이만기 씨가 오케이 했어요, 지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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