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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할매 시즌3 - 내 어릴 적 그녀 이난애

등록일 : 2021-09-27 13:57:27.0
조회수 : 1115
-(해설) 정이 그립고 잔소리가 고플 때 찾아가고픈 그녀가 있습니다.
바다보다 크고 하늘보다 넓은 품을 가진 난애 씨를 지금 만나러 갑니다.
전라남도 여수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1시간 반. 그곳에 손죽도가 있습니다.
아득히 멀지만 사철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곳이죠. 물 색깔이 너무 아름다워. 너무 좋다.
마을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는데 마을 예쁘다. 집들이 깨끗하게 단장이 잘됐네.
이난애 할머니를 찾아야 하는데 어디 가셨나?
시골에도 전방이 있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120명, 130명 정도.
-많이 사네요. 그렇구나.
-가구는 한 90가구 정도.
-네, 유일한 전방입니다.
-섬에서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는데.
-조금 줄어들고.
-여기 구경 좀 해도 될까요? 나 진짜 너무 신기한 거예요.
-너무 작아요.
-그래요?
-코끼리 콧구멍만 해.
-과연, 작구나, 이게 전부구나. 난 이게 안에 넓은 데가 있는 줄 알았더니 보인 게 전부네요. 너무 멋지다.
-(해설) 없는 거 빼고 다 있다는 손죽도 만물상.
가공품부터 과자에 라면까지 도시에 있는 웬만한 마트가 부럽지 않습니다. 게다가 외상까지 된다네요.
-엄청나네요.
-제 고모님이십니다.
-그러면 제대로 내가 여기를 찾아왔네.
-진짜 잘 찾아오셨는데요.
-아니, 빙빙 돌아도 어디 가서 찾을 데가 없어, 사람이 없으니까.
-여기 마을회관 앞으로 해서요. 올라가시면 큰 당산나무가 있고
당산나무에서 왼쪽으로 가시면 파란색 지붕이 보일 겁니다.
-당산나무에서. 그리고 이제 제가 할머니를 처음 인사드리러 가는데 할머니한테 뭐 선물을
내가 못 사서 왔어요. 맛있는 거, 할머니 혹시 뭐 좋아하세요?
-글쎄, 부드러운 게 낫겠죠.
-그러니까요.
-황도 있는데.
-황도. 깡통.
-네, 깡통.
-어르신들이 그거 단거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이거. 다른 거 뭐 또.
-어르신들이 이런 거 좋아해요.
-그거. 그거 하나 줘보세요. 이거. 사장님, 이것 좀 싸주세요.
제가 할머니한테 선물로 드려야겠습니다.
이건 제가 가지고 가서 할머니한테 가서 인사하러 갔다 오겠습니다.
-가져가십시오.
-고맙습니다. 이리 한번 가볼까요?
-(해설) 도랑치고 가재 잡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모락모락 피어나는 동심을 흥얼거리며 할머니에게로 향해봅니다.
-이 돌담을 기가 막히게 쌓아놨네. 정말 예쁘네. 여기 같은데?
-들어가세요. 어머니, 더운데 어떻게 사세요?
-사는 대로 살죠.
-그런데 보니까 여기가 지대가 좀 높아서 밑에 다 바다도 보이고 산도 보이고 좋네요, 위치가.
-여기 걸어 다니기가?
-네.
-그러시구나. 어머니 들어가세요, 들어가세요.
-이제 안으로, 안으로 들어오세요.
-들어가시죠. 뭘 좀 사 오려 했는데 어머니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이 더운 날.
-이게 옛날, 이거 옛날 과자. 그리고 이게 시원하다고 이렇게 하는데 황도를, 황도를 몇 개 샀어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시원할 때.
-저는 제가 알아서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어머님, 머리를 이렇게 파마를 하신 거예요?
-원래?
-아니, 그런데 물 안 들이는 게 훨씬 예뻐요. 엄청 예뻐.
-이 동네에서 태어나서.
-동네가, 친정이 여기예요?
-이제 87년이 됐으니까.
-그냥 여기서 사셨구먼, 87년이면.
-87년을 여기서, 1살에 태어나서 살고 있어요.
-할아버지 작년에 돌아가셨구나. 다 늙으면 다 누가 가도 하나 가고, 짝을 잃을 때가 되는 거지.
-그러시구나. 오늘 제가 왔으니까 제가 어머니 벗이 되어 드릴게요. 그래서 말동무도 해주고.
지금 할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은데 하고 싶은 일 있어도 지금 못 하고 계시잖아요.
그거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오늘 대신해드릴게.
-오메 으짜까.
-그러니까 뭘 도와드리면 되겠어, 어떤 거?
-뭐.
-전동차?
-그러면 시동을 걸어서 어디 딴 데다.
-갑시다.
-그럴까요?
-(해설) 어디 구경만 하면 되나요? 심부름을 제대로 해드려야지.
-못 버리고.
-이거 할아버지 계실 때는 할머니가 이거 계속 타고 다니시죠?
저기 갔다 올라오기 성가시니까 할아버지가 태워다주고 그런 거지?
-쓸모가 없어요.
-이거 몰 방법이 없어, 버려야 돼. 배터리가 살아 있으면 밀어서 가라 그러는데 이건 다 버려야 되겠구먼.
오래돼서. 안 빠진다. 이거 분해를 해놔야 마을 사람들이 싣기가 편하죠? 통째로 못 가져가니까.
-네, 못 가져가지. 그래서 쓰레기장에 저기에 갖다 그렇게 놔두면.
-그럼 내가 분해해드릴게.
-(해설) 땅에 코 박고 다시 열심히 일해보는데요. 어디가 불편한지 이리 들썩, 저리 들썩.
역시 저 자세가 체질인가 봅니다. 우리 할머니, 계 타셨네.
-다 했다. 빠졌네. 이놈 하나 떨어지겠네. 이렇게 놔야 싣기가 편하지.
어머니, 이 배터리가 이놈이 다 닳아서 되지도 않아요. 어때요?
-시원해요.
-시원해?
-그러니까 어머니가 이거 어디다가 버려야 하는데 그냥...
-어머니, 지금 나 잘하고 있어요?
-잘하고 있어요.
-나도 원래 이런 거 잘 못하는데 내가 오늘 어머니 보면서 힘을 내야겠어.
이 바퀴만 빼면 되겠네. 속이 다 시원하기는 한데 그래도 또...
-섭섭해.
-섭섭하지. 할아버지가 다 태워다주고 태워오고 그래서.
-시원 섭섭하지, 시원 섭섭해.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청산할 건 청산해야지.
-어쩔 거야, 이거 버려야지.
-맞아요. 이게 생생하게 다 살아 있으면 써도 되는데.
-(해설) 묵직한 쇳소리가 가슴에 내리 박힙니다.
여기가 저 산이 지대가 좀 높네. 그러니까 이게 녹슬어버린 거네.
-그러고 여기 노인당에 갔다 오면 몇 번씩 실어서 와요.
-그러면 옛날에는 할아버지가 이걸로 다 태워다 주셨구먼.
-할아버지가 싣고 갔다가 싣고 왔다가.
-할아버지가 그립겠네.
-뭘 그리워, 나이가 많이 잡쉈는데.
-그래도 있어야지. 많이 성실했어요? 어머니한테 잘해 주시고?
-농부도 되고 또 배 타서 벌어서 고생도 말도 못 하게 했어요.
-할아버지? 그래도 어머니한테 잘해 주셨어요? 생각나시겠네.
-뭔 생각 안 나요. 이게 또 오래되니까.
-그래도.
-사람 손이 없으니까 너도 없어진다.
-(해설) 할아버지는 참 오뚝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없는 살림에 6남매를 키우느라 고생스러웠지만 어떤 시련에도 무너지지 않았죠.
하지만 흐르는 세월 만큼은 이기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시원해요, 아주. 100년이나 살고 싶어요.
-100년이나 살고 싶어요? 앞으로 100년 넘게 살아야 하시겠구먼.
-100년을 살아서 뭐 하겠어.
-이거 다 하니라고 고생했으니까 맛있는 것 좀 해 먹어야 하는데 뭐가 좋을까요?
-허리 아프셔서.
-걸음을 못 걸으니까 못 가요.
-그러면 어머니가 집에 계시면 내가 가서 뭐가 있는가 한번 찾아서 와서 할 수 있으면 내가 해드릴게요.
내가 맛있는 거.
-고맙습니다.
-그래. 오토바이 치웠버렸잖아.
-무릎이 까져버렸어.
-(해설) 할머니의 특명 아래 바다로 향한 김 선수.
-우뭇가사리가 뭔가, 청각이 뭔가는 내가 알 수가 없네.
-(해설) 밀물에 실려 오는 우뭇가사리를 제대로 건져올 수 있을까요?
-이건가? 이게 맞나?
-드세요. 이런 걸 어떻게 먹는지 모르겠어요. 이거 어떻게 먹어.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어떻게 먹는지도 모르겠고. 이걸 어떻게 먹겠어요?
나는 도저히 먹는다는 게 상상히 안 가. 그런데 일단 갖고 가봐야겠네. 있다. 이런 것도 다 맞나.
이것으로 묵을 해준다니까 열심히 주워서 가보자. 뭔가가 조금 서운함이, 한 가슴에 뭉클한 마음이 생기네, 또.
막상 이런 느낌 처음 들어보네. 잘 가라~ 내일 또 나 태우러 와라~
이제 가 보자, 할머니한테 가자. 가면 칭찬 받겠다.
-(해설) 고요한 할머니 집에 다시 거대한 김 선수가 들이닥칩니다.
-어디서 그렇게.
-어머니 나오셨네.
-어디서 그렇게 가셔서.
-이거, 이거 맞아요?
-벌써 가서 하고 왔습니까?
-빨리 봐, 이게 맞아요?
-귀한 거를 이렇게 하고 오십니까?
-이게 맞아요?
-맞습니다.
-나는 어떻게...
-이거는 청각이고.
-이게 청각.
-청각이고 이건 우뭇가사리고 그래요. 수고했습니다. 많이 갖고 왔어요.
-묵 돼요.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묵이 된다는 게 이해가 안 돼.
-원래 가지고 이렇게 변해서 하얗게 변해서.
-이거는 지금 나중에 하고 지금 이거, 옛날에 잡아 놓은 거?
-지금은? 시간이 가야 하는구나.
-옛날에 해녀질 할 때 해 놓은 거.
-그러시구나.
-방망이로 두드려서 저거를 다 떼야 해요.
-어머니, 거기가 놓고 지금 두들겨. 그렇게. 계속 두드려?
-그래요?
-그러면 구정물도 빼고.
-어머니, 힘드시니까 내가 두드려줄게. 이거 내가 두드리는 거 선수야, 선수.
-선수.
-세게, 세게 잘 두드려요?
-잘 두드려.
-어머니, 이 방망이, 이것이 이거 두드리라고 있는 방망이인가?
-아니요, 옛날에 명지 떼다가. 명지 옷 떼다가 다듬이질. 다듬이질하는 방망이에요.
-이게?
-네.
-그러게. 이러고 쓰는구나, 이렇게.
-방망이 빨래할 때 하고 이런 거하고 그래요.
-그러시구나.
-그니까요. 어머니,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셨었죠?
-네.
-내가 이 방망이 들고 야구 볼 쳐서 홈런 치는 사람이에요.
-그랬다고 해요.
-그렇게 한 번도 보신 적 없으시죠? 막 씨름하는 것도 보고. 또 그것을 보고.
우리 아범이 이거를 좋아하니까, 야구를 좋아하니까.
-그러시구나. 그러면 내가 한번 보여줄까요?
-네.
-이놈을 이렇게, 이렇게 들고 빡 이러고 치는 거예요. 이렇게 들고 빡, 이렇게.
그런데 이놈을 들고 빡 치는 게 아니라 이놈을 들고 이거를 두드려야 해, 이렇게.
어머니 이거 물을 어떻게 한 대접 해야 해요?
-그놈 붓고 불을 때세요, 이제.
-여기도 물이 있어.
-그만. 그만큼만 하세요.
-이만큼만?
-네, 그만두세요.
-이제 이거 다 털어 넣는다는 이 말이죠?
-네, 네.
-(해설) 염분을 뺀 우뭇가사리는 솥에 물과 함께 넣고 푹 고아야 합니다.
-불을 붙이고.
-이거요.
-잠깐만요.
-이렇게 작게.
-불붙었어요.
-여기에다가 이런 큰놈도 해야죠?
-네. 그대로 되게 놔두세요. 뭉개요, 그렇게 하면.
-아니, 어머니 내가 다리 힘 좀 자랑하려고.
-그러면 알아서 하세요. 그런데...
-힘자랑하려고.
-그래, 맞아요.
-아저씨가 힘도 세네요.
-한 번 더.
-아저씨 근력 쓰네, 힘쓰고. 근력 쓰네.
-내가 가진 것이 힘밖에 없어.
-남들은 몰라요.
-내가 늘었다니까.
-섬사람도?
-네.
-선수지.
-나는 선수가 아니고.
-선수라고도 보죠.
-그렇죠?
-네.
-또. 민물은 안 돼?
-민물은 사람이 가라앉아버려요. 우리 조카가 옛날에 초등학교 다닐 때 수영 선수로 나갔어요.
-여기?
-네, 수영 선수로 나갔는데 여기서는 갯물에서만 연습을 했고. 여수 가서 민물에 가서 하니까 안 돼요.
-바닷물은 떠서 가는데 민물에 가니까 이것이 안 가버려?
-네, 네.
-그래요?
-차이가 그렇게 있대요.
-물 그 염도 때문에 그런가 봐요.
-그냥 딱 가면, 물속에 딱 들어가면 어디서 무엇이 있겠다고 딱 나오셔요?
-네, 어디 가면 뭐가 있고, 어디 가면 뭐가 있고. 저 이렇게 딱 들어가면 딱 보여요.
전복이 이런 평평한 데에 없어요. 이런 물속에 가면 고랑이 있어요.
-고랑이 있어, 전복 뭍으로.
-이런 바위 사이에. 한 30만 원 받아. 그때 돈으로 30만 원 받을 때가 있고.
-30만 원이면 큰돈이네?
-그때 돈으로 큰돈이죠. 못하는 사람들은 엄청 못하고 또 못할 때는 못 하고.
-잘하는 사람하고 또 틀려요?
-네, 이제.
-어머니는 잘하신 편에 속했어요?
-잘했다고 보죠, 잘했다고 보죠.
-아직 멀었어요?
-막, 막 넘어?
-네, 넘고 그래요.
-나도 사실 아까 배고픈데 말을 못 하고 이거 때느라고.
-그랬어요?
-네.
-할머니도 뭐.
-그래요? 그러면 얼른 먹읍시다. 말씀을 하셔야지. 둘이서 그러면?
-그래요.
-(해설) 갈수록 미안해지는 마음에 있는 반찬, 없는 반찬 다 꺼내서 한 상 차려 봅니다.
평소였다면 밥에다가 물 말아서 휘 먹고 말았을 저녁.
밥 친구가 있으니 손수 담근 김치도 예쁜 그릇에 보기 좋게 담아봅니다.
-차려봐야 드실 게 없어.
-어머니 무엇을 차려주시려고 이렇게.
-(해설) 그사이 고슬고슬 잘 지어진 콩밥. 주걱으로 잘 저어서 고봉으로 담아주면
이만한 꿀맛이 있을까요? 온기 가득한 한 끼입니다.
-어머니. 밥상은 내가 갖고 왔습니다.
-어쩔까요, 국도 없어.
-국 필요 없다니까. 어머니, 잘 먹겠습니다. 그런데 반찬이 7가지나 돼요.
엄청 많네. 이게 다 어머니가 만드신 거죠?
-네.
-드셔보셔요. 맛있어, 아주 맛있어.
-아니에요.
-탕도 없고. 반찬 많아.
-그렇지, 그렇지.
-네, 못 해 주죠.
-그래요? 고양아.
-(해설) 오늘만큼은 식구가 된 두 사람. 숟가락,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정겹습니다.
-밥 더 드릴까요?
-아니요, 아니요. 딱 한 그릇만 먹어요.
-응?
-넘어.
-넘어요, 뭐가 넘어? 넘어버려. 뚜껑 열어놔요, 이제?
-네.
-열어놔 버려? 잘 끓여진다. 왜, 뭐, 또. 내가 저을 건데.
-아니야.
-노래요?
-어, 뭣을?
-사랑은 아무나 하나.
-이것도 아무나 과나.
-내가 부을게요. 조금만 넣어? 반만? 어떻게 다 넣어버려?
-다 붓지 마셔.
-노래 한번 하셔봐요.
-사랑은~
-나보다 더 잘하시네. 불이.
-우물이 적어?
-물 받느라고?
-등불.
-도깨비도 만나?
-도깨비도 만나고
-있어 있기는, 도깨비가 진짜?
-도깨비가 있어요. 없는게 아니야.
-거기다 폭 집어넣으면 빙 돌아버려? 자기가 다 알아서 말려서 나와요?
-볕만 쬐면 되고.
-그전에는 더.
-어렵지.
-(해설) 궁핍했던 섬에서의 삶. 해초라도 뜯어말려 자식들의 허기를
달래주었던 어머니가 유난히 그리운 난애 씨입니다.
그 옛날 어머니가 그랬듯 배불리 먹일 입이 있으니 푹 고아진 우뭇가사리 물을 채반에 걸러봅니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림뿐이죠.
-도시에서 큰아들과 비슷한 아들이 왔다. 말동무도 해주고 심부름도 해주고
보면 볼수록 귀엽다. 내일은 더 예뻐해 줘야지.
-(해설) 눈 깜짝할 사이에 찾아온 마지막 아침. 김 선수의 마음이 분주해집니다.
-오늘 하나 꼭 잡아서 할머니한테 드리고 가야 할 텐데.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아니, 지금 오늘 내가 고기를 잡아서 할머니한테 고기 선물을 좀 하고 싶은데 요즘에 고기 어떤 고기가 나와요?
-요즘 나오는 것은 농어하고 참돔이에요.
-참돔, 농어하고 참돔. 그렇습니까? 낚시를 뭘, 무슨 낚시라고 그럽니까?
-루어 낚시인데요.
-그런데 밑밥이 없어요. 밑밥 없이 하는 겁니까?
-이걸로 고기를 유인하는 거죠.
-그렇죠, 제가 힘이 좋으니까. 농어가 힘이 좋죠?
-힘이 좋아요.
-(해설) 바다에 나오지 못하는 난애 씨에게 제철 생선만큼 좋은 선물은 없을 터.
손죽도 강태공과 함께 낚시 명당으로 향해 봅니다. 왠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죠?
아따, 오늘 해가 좋습니다. 날씨가 해 뜨면서 고기도 빼꼼 머리를 올릴 것 같은데?
여기, 지금 여기서 잡는 거죠?
-여기서 잡습니다.
-원래 농어는 바위 틈새 이런 데에 있는가요?
-바위에 근접해 있습니다.
-그래요?
-(해설) 루어 낚시는 낚싯줄을 원하는 곳에 던지고 감아들이며 물고기를 잡는 건데요.
어째 신통치가 않은 것 같죠. 사실 이 두 사람에게는 화려한 전적이 있었으니. 어젯밤.
아침 찬거리 마련을 위해 암흑을 뚫고 장어 낚시에 나섰다가 허탕만 치고 돌아온 겁니다.
-이래서 할머니 장어 못 드리겠는데?
-(해설) 김 선수의 효심을 용왕님이 알아주셨다면 좋았을 텐데요.
-수고하셨습니다.
-(해설) 기대가 컸던 탓일까요?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어머니!
-어서 오세요. 오시느라고 수고했어요. 더운 이 날씨에.
-아니요, 잠자면서 했어요.
-그랬어요?
-네.
-위에 채에다 받쳐서.
-바구니에 받쳐서.
-받쳐서.
-바구니에 받쳐요.
-안 그래요, 이거 시간이.
-시간이 있어요. 시간 하루, 그날에 못 먹어요.
-제때? 어머니, 이거 내가 맛을 좀 봐도 돼요? 간이 좀 됐어요?
-간은 안 했어요.
-간은 안 했고.
-이걸 해서 무칠 때.
-무칠 때.
-간을 해요.
-잘라서.
-이왕이면 탱글탱글한 거 잡수세요.
-그게 더 훨씬 탱글탱글해, 첫 물이라.
-예쁘게도 잘리네.
-예쁘게 잘라버렸네.
-예쁘게도 잘리네. 잘라서 채 썰어서 야채랑 이렇게.
-콩물이랑.
-그러실래요? 고맙습니다. 어머니는 이것을 이렇게 저녁 내내 해서
양념해서 주신다고 했는데 나는 미안해서 어쩔까요?
-일 없어요.
-아니, 내가 이제는 고기를 잡는다고.
-마음대로 고기가 잡힙니까? 안 잡히지요.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있는데 물 밑의
잡은 고기는 마음대로 못 해요. 그러니까 옛날에 우리가 해녀를 하러 가도 오늘은 재수가 좋으면
많이 잡아 올 것이고 재수가 없으면 못 할 것이다 그랬는데 그날 재수가 좋으면 많이씩 잡아요.
-미리 딱딱 보여요?
-네. 그런데 같이 가도 못 하는 사람은 없어요. 빈 바구니 들고 와요. 그러니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제가 고기를 못 잡아서 고민을 좀 했어요.
-고민할 것도 없어요!
-그래서 제가 닭을 한 마리 사 왔어요. 어머니가 이거 우뭇가사리 간 맞추고
이렇게 할 때 할 동안에 제가 어머니 닭 한 마리 날이 뜨겁고 그러니까. 맛나게 잡수시고 힘을 내십시오.
-아저씨가 해 드리니까 더욱더 먹으렵니다.
-그러니까. 아따, 닭이 통통하다. 이것은 빼내 버리고. 여기다 푹 삶아서 할머니 보양식으로. 맛있게 익어라.
-(해설) 투박한 손으로 예쁘게도 깝니다.
-마늘 듬뿍 넣어 버려. 마늘 듬뿍. 마늘을 많이 넣어야 맛있지.
-(해설) 김 선수가 보양식을 만드는 동안. 손죽도 별미 무침에 나선 난애 씨.
밤새 내려앉은 불순물을 걷어내고 우무묵을 채 썰듯 썰어줍니다. 기본양념은 마늘과 깨, 참기름뿐.
풋고추와 홍고추도 색을 더하고 짭짤한 소금으로 간을 맞춰주면 완성이죠.
그 흔한 상추, 양파 하나 없지만 먹을 게 귀한 섬에서 최상의 맛을 낸 무침 요리입니다.
어머니, 닭이 드디어 잘 익었어요.
-수고했습니다.
-(해설) 무더운 여름 보내며 떨어진 기력 보충하기에 이만한 성찬도 없겠죠? 뜨거운 것, 이렇게. 이렇게 제가.
-더운 날씨에 이렇게.
-잘게 잘게 제가 썰어드릴게요. 뜨거워라, 뜨거워. 소금 찍어서.
-그래요? 그런데 난 신기해요.
-잡숴보세요.
-이렇게, 이렇게 묵이 된 줄은. 어머니도 잡숴보세요.
-맛있다.
-그러니까요. 체면 때문에 못 먹어. 손으로 잡아야겠네. 말캉말캉하다.
-그러니까, 시원해.
-(해설) 서로를 향한 마음으로 음식을 만든 두 사람. 마주보며 꽃처럼 웃는 이 순간이 무엇보다 맛납니다.
-친구가 말도 못 하게 많죠.
-지금도?
-그런데 다 도시에 가서 살고 여수에 살고.
-나가서?
-부산에서 살고 그리고 저는 하나뿐이에요.
-그랬구나.
-그런데 이 동네가 사람이 많아서 와싹 부대.
-와싹 부대가 뭐예요?
-갑바 부대, 와싹 부대, 명오 부대.
-그게 무슨 말...
-책보 부대. 부대가 4부대예요.
-그게 무엇무엇이에요, 그게?
-저녁에 끼리끼리 노는 부대가 노인네는 갑바 부대. 갑바는 비올 때 갑바입고 놀러다녀.
거기서 다 먹고 놀고 그다음에 이제 조금 젊은 사람은 와싹 부대.
-와싹 부대.
-와싹 갔다고 와싹 부대. 우리는 이제 명오 부대.
-왜 명오 부대예요?
-명오부대는 용사들 하고 우리 친구들은 명오 부대. 그 밑에는 책보 부대. 책보에 뭐 싸서 다니는.
-책보.
-그래서 그렇게 씩씩하게.
-어렵게 한 번씩 오면 무슨 얘기를 해요?
-옛날 추억. 옛날에 우리 젊어서 물에 다니면서 이런저런 거 했다. 물질 가면 추워. 남은 옷 입고 가요.
-바다 들어가면 엄청 춥겠네.
-고무 옷이 없고.
-고무 옷 없이 어떻게?
-그러니까 춥죠. 고무 옷도 없고 이런 옷도 이렇게 길게 입은 건 아니었고 뒤에 휑하게
그렇게 해서 다 입고 물에 가서 많이 있어야 한 30분.
-물에서, 추우니까.
-추우니까. 그러면 불 때 가면서 있는 것이 3시간.
-불 피워서?
-구워서도 먹고?
-그런 얘기 해놓고 웃고.
-웃고.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그랬구나.
-(해설) 그날 오후 추억을 먹고 사는 난애 씨를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한 김 선수.
-(해설) 어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참 기특하죠. 투박한 손으로 꽃잎을 톡톡톡 열심히 찧어봅니다.
-하나 되네.
-소원이 이루어진다?
-그런 말이 있어요.
-그렇지.
-대부분 다 어머님들이 이 연세에 소원이 뭐냐고 하면 다 자식들 걱정밖에 안 해.
-자식들 걱정밖에 안 돼요.
-내가 1박 2일 동안에 할머니하고 저하고 이렇게 쭉 있었잖아요.
-나를?
-자식같이.
-감사합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더운 날씨에 누추한 데를 찾아오느라고.
-어머니, 들어가세요, 들어가세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들어가세요. 어떻게 해요?
-씌워 놔요.
-씌워야 합니까? 나도 원래 이런 거 잘 못 하는데, 내가 오늘 어머님 덕에 힘을 내고 있어요.
-(해설) 생판 남으로 만나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됐습니다.
아낌없는 정으로 누구에게나 사랑을 주는 사람. 아름다운 당신 덕분에 참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더우니까 들어가세요. 가서 에어컨 쐬고, 안에서. 갑니다.
-바이바이.
-가요. 들어가세요. 들어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들어가세요, 들어가세요.
-더운데. 바이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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