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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N 특집다큐 - 성각스님의 산은 산, 물은 물 깨달음의 여정
등록일 : 2024-02-13 15:50:59.0
조회수 : 645
-(해설) 내 안의 부처를 보지 못하고
번뇌하는 중생들을 위해 붓끝으로 선의
세계를 펼치는 승려가 있습니다.
선서화를 통해 깨달음을 전하고 만행을
통해 구도의 길을 보여주는 성각 스님.
중생이 본래 부처요, 현실이 바로
극락이라는 깨달음의 여정을 스님과 함께
따라가 봅니다.
부처님의 넓은 품을 닮은 망운산.
남해에서 가장 높은 이곳 산자락에는
중생들을 품은 사찰 망운사가 있습니다.
고려시대 이후 800년 동안 수도승들의
기도처였던 작은 암자를 부처님의
원력으로 일으킨 성각 스님.
그는 붓끝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선화승입니다.
점 하나 찍는 것.
선 하나 긋는 것까지 수행력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깨달음의 그림.
30여 년을 선화에 매진해 온 성각 스님은
2013년 부산시 무형문화재 선화 제작
분야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었습니다.
간결한 선과 여백으로 채움이 아닌
비움을 이야기하는 선서화.
비우고 비울수록 참된 나에게 다가갈 수
있음을, 그리고 자애로울 수 있음을
성각 스님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가운 손님들이 망운사에 찾아왔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귀한 걸음을 이렇게 해 주셨네.
김 회장님.
-잘 계셨습니까?
-다들 이렇게 고운 얼굴을 가지셨네.
-감사합니다.
-들어가시죠.
-(해설) 고요한 산사에서 체험하는
성각 스님의 선화.
선화를 배우고자 먼 곳에서 찾아온
불자들을 위해 기꺼이 붓을 들었습니다.
-사인하듯이 하네.
여러분, 다 들었죠?
보세요.
이렇게.
원 자체가, 원 자체는 마음인데 이게
바로 내 성품이고 내 자성이다.
아시잖아, 그렇죠?
자성이고 내 성품이자 모든.
-한 번 만에 돌려야 해요?
-한 번 만에 돌려도 되고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쭈굴쭈굴 해질까 봐.
-아무 관계 없습니다.
-(해설) 작은 종이 위에 그려 보는 마음
하나.
-틀렸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끝까지.
-붓만 이렇게 한번 여기로 했으면.
-한 방향으로.
-한 방향으로.
-한 방향으로, 한 방향으로.
-그러면 다시 한번 해 보겠습니다.
-(해설) 단순히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담아 그리는 것이기에
쉽지만은 않은데요.
그래서 선화를 마음의 거울이라 부르나
봅니다.
-(해설) 부처님의 넓은 품을 닮은 망운산.
구도자가 되겠다는 뜻을 세우고 처음
1000일 기도를 회향했던 곳입니다.
스님은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이곳에서
참선을 하는데요.
만물이 행동하는 봄.
겨울잠에서 깨어난 뱀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뱀이 지척에 와도 미동조차 없는
성각 스님.
삼매에 빠져든 스님을 어찌 한낱
미물이 깨울 수 있을까요?
성각 스님은 그렇게 앉은 채로 한 자락
산이 되었습니다.
지난 2014년, 달마도로 유명한
조선 시대 화원 김명국의 발자취를 따라
일본의 천년 수도 교토로 향한 성각 스님.
일본의 불교문화 유산으로 전해지고 있는
건축, 정원, 회화 작품들은 대부분
임제종 선생들이 창조한 예술이라고
하는데요.
그중 교토의 대표적인 임제종 사찰인
료안지를 찾았습니다.
돌과 모래만으로 선의 경지를 표현한
가레산스이 정원.
일본 선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바다를 상징하는 흰 모래 위에 놓인
15개의 바위는 그 어떤 위치에서도 한
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인데요.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며 한 번에
모든 것을 이룰 수 없다는 선의 정신을
표현한 것입니다.
오유지족.
남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자신에 대한
만족함을 알라는 선의 가르침이 메마른
세상을 적셔주는 것 같습니다.
교토에서 1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시가현.
이곳에는 성각스님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일본의 승려가 있습니다.
지난 2002년 선, 예술의 재조명이라는
학술대회를 통해 한국에서 알게 된
니시무라 에싱 스님.
당시 일본 하나조노대학 총장이자
승려인 니시무라 에싱 선생을 만나러 온
것입니다.
성각스님과 일행들을 위해 마련한
조촐한 자리.
니시무라 스님이 자신의 선화를 먼저
선보입니다.
-달마가 부끄러워해요.
이걸 내가 선물하려고.
선생님, 선생님...
-(해설) 성각의 선서화를 선물로 받은
니시무라 스님.
그가 생각하는 선이란 무엇일까요?
-(해설) 두 사람.
한국과 일본의 선 예술에 대한 각기
다른 생각들을 교환하며 석별을
나눕니다.
일본에 이어 태국으로 만행을 떠난
성각스님.
태국은 국민의 대부분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교의 나라입니다.
태국의 불교는 한국의 대승불교와 달리
남방불교 또는 상좌부불교라 부르며
고대 인도어인 팔리어로 전승된 불교
경전을 전통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태국을 방문한 성각스님과 일행들은
방콕 시내에 있는 왓 아룬 사원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왓은 불교 사원을, 아룬은 새벽을
뜻하는 말로 왓 아룬은 새벽 사원을
의미합니다.
왓 아룬 사원의 관계자들이 성각스님을
초대한 이유는 탁발 체험을
위해서인데요.
탁발은 태국 스님들의 중요한 수행 중
하나로 승려들은 집집마다 보시를
받으며 무소유를 실천하고 보시를 하는
불자들에게는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온 승려들을 위해 정성스레
아침 공양을 준비한 태국의 불자들.
성각스님은 사원의 배려로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탁발을 체험해
보는데요.
생활 속 깊이 자리 잡은 태국의
불교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불교 대학교라 불리는
마하출라롱컨대학교.
한국에서 찾아온 성각스님과 일행들을
맞이해 총장 스님이 직접 환영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성각스님이
자신의 선서화를 선물로 전하는데요.
성각스님의 작품에 대한 총장 스님의
감상이 이어졌습니다.
-(해설) 과거를 되새김질하지 말고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말며 지금, 이
순간에 충실히 하라는 위파사나.
선을 추구하고 선을 그리는 선승으로서
그 의미를 찬찬히 되새겨 봅니다.
일본과 태국에 이어 또 다른 여정의
뜻을 품은 성각스님.
쌍계총림의 방장이신 고산 혜원
큰스님을 뵙기 위해 쌍계사를
찾았습니다.
성각은 고산 혜원 큰스님의
법제자입니다.
-큰스님께서 지난번에 저에게 만행에
대해서 이렇게 쭉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한번 제가 이번에 중국
쪽으로 한번 장가계나 이런 쪽으로 한번
다녀왔으면 하는 생각에서 큰스님의 그런
좋은 말씀을 한번 듣고 싶습니다.
-사람은 본래 이제 대국으로부터 시작해서
전 세계를 한 바퀴 이리 돌면 자연히
배우는 것이 굉장히 많아져요.
견문을 넓힘으로 해서 모든 것이 다
자연의 이치를 배우는 것인데 스님은
참선만 하는 게 아니고 서예에도 상당히
관심을 갖고 오늘날까지 해 나갔고
꾸준히 여러 가지 만행으로부터 시작해서
기도 정진 열심히 하면 성불은 자연히
재기 중이라 그 가운데 있으니까 열심히
노력하도록 하세요.
-명심하겠습니다, 큰스님.
감사합니다.
-(해설) 불교는 깨달음의 방법에 따라
교종과 선종으로 나누어집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말로 표현한 것이
교이며 깨진 마음을 직접 보이는 것이
선입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교라면 달은 선
그 자체에 비유할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 불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선종은 인도 출신의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건너와 싹을 틔웠고 그 후 당나라 시대에
육조 혜능 대사에 이르러 지금의 선
사상이 완성되었습니다.
쌍계총림 금당에 모셔진 육조 정상탑에
예의를 갖추는 성각 스님.
탑 안에는 육조 혜능 대사의 두개골인
정상이 모셔져 있는데요.
선의 고향인 중국을 찾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더욱 깊어집니다.
성각 스님과 선종 사찰
순례단이 중국 후난성에 위치한 창더시
덕산으로 향했습니다.
덕산은 당나라 시대의 고승, 덕산 선감
선사의 법호에서 유래된 지명인데요.
그가 주석했던 덕산사는
지금 사라지고 없지만 인근에서 그
선맥을 잇고 있는 건명사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한국의 사찰보다 크고 화려한
분위기의 중국 사찰 건명사.
방장 스님의 안내로 사찰 안을 순례해
봅니다.
한때 주금강으로 불릴 만큼 금강경과
계율에 정통했던 덕산 선사.
하지만 교리에 얽매이면 진리를 바로 볼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그 즉시
금강경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가차 없는 방망이질로 수도승들을
깨우쳤던 그의 기운이 아직도 흐르는 것
같습니다.
-뒤의 산 이름이 덕산이죠.
-덕산, 덕산.
-(외국어)
-(외국어)
-(외국어)
-(외국어)
-그러니까 여기가 지금 덕산의 최고봉에
있는.
-이게 덕산봉.
-지금 덕산이에요.
-(외국어)
-(외국어)
무림, 무림의.
-(외국어)
-덕산방, 한 방, 한 방에 이렇게 해서.
방, 방, 활.
-활.
-갈.
-갈.
-(해설) 멀리서 찾아온 성각 스님과
순례단에게 방장 스님이 차를 공양합니다.
덕산 선사로부터 43대째 선맥을 잇고
있는 건명사의 방장, 명선 스님.
그의 융숭한 대접에 성각 스님도
보답을 하는데요.
뜻밖의 선물에 방장 스님이 매우
기뻐합니다.
-다선 일미, 다선 일미라 다의 맛과 선의
맛이 한 맛이다.
다와 선이, 선과 다가.
-선...
-(해설) 종이 위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성각 스님의 불사.
그의 선화에, 그리고 그의 마음에
감복했는지 명선 스님은 성각과
일행들을 또 다른 사찰로 초대했습니다.
송나라 시대의 선승, 원오 극근 선사가
머물렀던 협산사.
협산사로 가기 전에 그 앞에 있는
벽암천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이게 바로 금천이구나.
-(외국어)
-1000년이 넘어가는...
-(외국어)
-그리고...
-(해설) 협산사의 주지였던 원오 극근
선사는 이곳에서 벽암록을
집필했는데요.
벽암록은 역대 고승들의 화두 가운데
100칙을 선정해 원오 선사가 해석한
주석서입니다.
졸음을 쫓기 위해 온천수로 차를 마셨던
원오 극근 선사.
이곳에서 차와 선의 참뜻을 깨닫고
다선일미라는 네 글자를 남겼습니다.
1000년 전 원오 선사가 마셨던 물에 손을
적셔보는 성각 스님.
벽암천에 흐르는 선의 기운이 마음 깊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외국어)
-(해설) 한국에서 손님들이 왔다는 소식에
창더시 부시장이 찾아왔습니다.
현재 중국인들은 대부분 무신론자인
까닭에 중국 정부에서 방장스님을
임명하고 유서 깊은 사찰들을
직접 관리한다고 합니다.
870년에 창건된 협산사는 당, 송,
원나라의 왕들이 별도의 부서를 만들어
관리할 만큼 유명한 거찰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산문에서부터 대응보전까지
말을 타고 이동했다고 하니
그 규모를 한번 짐작해 볼 따름인데요.
지금은 비록 사찰의 위용이 예전 같지
않지만, 이곳에서 수행했던 수많은
선승들을 떠올리며 깨달음을 향한 그들의
고뇌와 번민의 흔적들을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한국 선화의 대가를 맞이한 협산사에서
의미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지필묵을 준비해 놓고 성각스님에게
선필을 부탁한 것인데요.
명선스님의 요청에 붓을 들어 화답하는
성각스님.
그의 붓끝이 움직일 때마다
박수가 터집니다.
구도자로서 30년 동안 한결같이
정진해 온 성각스님.
그동안 닦아온 공력이 일필휘지
종이 위에 펼쳐집니다.
한국에서 찾아온 선승의 필력에 중국의
불제자도 적잖게 놀란 모양입니다.
-(해설) 중국인들에게는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 있습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국가 삼림공원 장가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절경을 자랑하는데요.
장가계 안에서도 천자산을 보기 위해
성각이 케이블카에 올랐습니다.
천자산은 가장 늦게 개발되어
자연의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곳입니다.
오랜 세월 침수와 붕괴로 빚어진
자연의 예술품.
안개까지 더해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기암괴석이네, 기암괴석이야.
-못 볼 뻔했는데 보여주네.
-이게 하나의 정과 선과 점으로 그렇게
다 이뤄져 있는 것 같아, 수려하다.
-(해설) 가늘어진 빗줄기 사이로 드러난
장가계의 모습.
눈앞에 펼쳐진 기이한 봉우리들,
바위들이 마치 꽃을 피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자연의 경관이 진여일색의
한 모습인데.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정작 화장세계의
모습이다.
진여의 세계다, 묘유의 세계다.
-(해설) 성각스님이 바라는 선화의
이상향이 있다면 지금 이 모습이
아닐까요?
장가계를 향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원가계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이런 모습을 이걸 누가 이렇게 빚어
놓았나.
-(해설) 천 길 낭떠러지에서 솟은
아찔한 바위기둥들.
세상에 이런 풍광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마치 한 폭의 수묵화가 눈앞에 그려진 것
같습니다.
-원가계의 비경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
몰랐다.
참...
대단하다.
-(해설) 누구 하나 평을 내릴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산수.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진 않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아쉽지만, 장가계, 원가계의 비경에
작별 인사를 합니다.
오늘의 이 감동을 어떻게 선화로
풀어낼지 스님에게 새로운 화두가
던져졌습니다.
-(해설) 중국 만행을 마치고 성각이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천년 고찰
은해사를 찾았습니다.
은빛 은 자에 바다 해 자를 쓰는 은해사.
전성기 시절 은빛 파도가 출렁이듯
암자와 말사들이 중중무진으로 서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천년의 세월 동안 중수와 불사를 거듭해
온 은해사는 원효대사의 의상대사
지눌스님과 일연스님 그리고 성철스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승들을 배출한
곳입니다.
은해사가 자랑하는 성보박물관.
이곳에는 다양한 불교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성각스님의 발길을 붙잡는
작품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지장보살도.
지장보살은 관세음보살과 함께
불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스님,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오래간만입니다.
-반갑습니다.
-먼 길 오셨습니다.
-(해설) 이대로 떠나기가 아쉬워 은해사
주지, 돈관스님을 찾았습니다.
지난 2008년,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 주지로 취임한 돈관스님.
성보박물관을 개관하고 선화여고를
운영하는 등 대중불교, 사회불교
운동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어디를 또...
지장성지로 가시려고 합니까?
-이번에는 중국에 지장왕보살님이
계시는 성지 구화산.
-교각스님.
-교각스님이 계시던 구화산 그리고
중국의 황산, 아마 이런 곳을 다녀올
계획을 가지고 만행을 떠날까,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에도 무여정법이라고 해서
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또
큰스님은 포교하는 그런 방법이 산림에
사는 저희와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만
대중불교, 생활불교, 사회불교, 또 시대가
변하는 그런 종교에 대한 큰 서원은
같은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 이번에 또 중국에 먼 길,
지장성지를 무탈하게 잘 다녀오시기를
저는 기도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다녀오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건강하게 다녀오십시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성불하십시오.
-(해설) 중국 지장보살의 성지로 만행을
결심한 성각스님이 또 다른 고견을 듣기
위해 통도사를 찾았습니다.
사형 사제의 연을 맺고 있는 법산
큰스님.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장을 역임한
대학승입니다.
-그러면 큰스님께서도 한때 구화산에
다녀온 걸로 제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좀 말씀을 한번
해주시겠습니까?
-보살이다.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가고 볼 수 있을
때까지 가고.
그릴 수 있을 때까지 그려서 많은
사람에게 깨우침을 주는.
그래서 심연과 지혜와 용기, 그래서
실천해서 많은 생명에게 새로운 지혜를
발산할 수 있는 그런 계기를 만들어
주소.
-사형님의 그런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제가 열심히 과업을 다 수행해 나가도록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해설) 중국 안휘성에는 지장보살의
성지로 알려진 구화산이 있습니다.
보현보살의 성지 아미산, 문수보살의
성지 오대산, 관세음보살의 성지
보타낙가산과 함께 중국 불교 4대
성산으로 불리는데요.
성각스님이 이번에는 중국 구화산을
찾았습니다.
수려한 구화산 자락에 거대한 금빛
동상이 우뚝 서 있습니다.
2013년에 세워진 세계 최고 높이의
지장보살 동상.
하지만 이 규모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동상의 모델이 바로 우리나라
신라시대 왕족 출신인 김교각
스님이라는 것인데요.
김교각 스님은 어떻게 중국인들로부터
지장보살의 화연신으로 불리게 된
걸까요?
아홉 개의 아름다운 봉우리가 마치
연꽃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
구화산.
성각스님이 케이블카에 몸을 싣고
구화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
천대로 향합니다.
천대 입구에 내려서 30분을 더 오르면
천대사가 나타나는데요.
천대사는 김교각 스님의 수행처라고
알려진 작은 동굴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사찰입니다.
천대사 뒤편엔 작은 법당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지장보살상을 모셔 놓은
지장전인데요.
김교각 스님을 생각하며 1000배를 드리는
성각 스님.
신라 성덕왕의 아들로 태어난 김교각
스님은 출가 후 716년 중국 구화산으로
건너와 수행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중국어)
-(해설) 천대사의 뒤편에
위치한 지장고동.
좁은 동굴 안에는 김교각 스님의 모습을
한 지장보살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속세와 연이 끊긴 이 동굴에서 김교각
스님은 8년 동안 수행을 했다고
합니다.
-(해설) 가파른 절벽 옆에 서 있는
아름다운 사찰.
고배경대입니다.
고배경대는 김교각 스님이 화엄경을
독경했던 곳으로 신비롭게도 그의
발자국이 이곳에 남아 있습니다.
현지 승려의 권유로 조심스레 발을
올려보는 성각 스님.
마음을 다해 향 공양을 올려봅니다.
돌에 발자국이 새겨질 만큼 정성을 다해
독경을 멈추지 않았던 김교각 스님.
구도를 향한 수행자의 간절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합니다.
김교각 스님의 행적을 더 따르고 싶은
마음에 거센 비를 뚫고 화성사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김교각 스님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구화산 최초의 사찰입니다.
1000배를 마친 후 도련을 둘러보는 성각
스님.
화성사에는 김교각 스님의 유품이 남아
있습니다.
제법 커 보이는 신발과 보관.
기록에 따르면 김교각 스님은 2m가 넘는
키에 장정 10명을 상대할 정도로 기골이
장대했다고 합니다.
그는 신라에서 당나라로 넘어올 때
볍씨와 차, 그리고 삽살개를 가지고
왔다는데요.
차와 볍씨는 중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그리고 삽살개는 외로운
수행 길에 길동무를 하기 위해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살아생전에 이미 김지장왕이라고
불렸다는 김교각 스님.
성불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먼저
구제하려는 모습에서 중국인들은
자연스레 지장보살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성각 스님이 이번엔 관세음보살의 성지인
중국 보타낙가산으로 향했습니다.
섬의 규모는 작지만 1년에 약 700만 명의
순례자가 찾는 불교 성지인데요.
그중 유독 눈에 띄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1보에 부처님께 귀의하고 2보에 진리에
귀의하고 3보에 스님들께 귀의한다는 3보
1배.
이토록 정성을 다해 그녀가 찾는 곳엔
무엇이 있는 걸까요?
성각 스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보타낙가산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남해관음상입니다.
보타산의 동남쪽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남해관음상은 그 규모 면에서 중국에서는
으뜸이라고 하는데요.
자비의 화신으로 중생들의 간곡한 부름에
어디든 나타난다는 관세음보살.
뜨거운 불길 속이든 매서운 풍랑속이든
그 이름만 불러도 살 수 있다고 하니
이토록 많은 중생들이 관음보살을 찾는
게 아닐까요?
보타낙가산에 처음 불교가 들어온 것은
당나라 시대.
인도의 이름 모를 스님이 이 섬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소문이
전해지면서부터입니다.
그리고 50년 후 일본의 승려 혜악이
관음보살상을 모시고 일본으로 가려는데
갑자기 풍랑이 일었다고 하는데요.
일본행을 포기한 혜악은 이곳에 법당을
짓고 관음부를 모셨습니다.
그곳이 바로 이곳, 보타낙가산 최초의
사원 불긍거관음원입니다.
불긍거관음원에는 신비로운 풍경이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가섬의
모습인데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치 바다 위에 누워
있는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낙가섬.
오직 부타섬에서만 이런 형상을 볼 수
있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해설) 보타섬에서 바라보는
낙가섬의 모습.
관세음보살이 현신한 듯한 착각마저
드는데요.
실제로 당신을 애타게 찾는 중생들을
위해 낙가섬의 형상으로 누워 계시는 건
아닐까요?
고산큰스님의 말씀대로 만행을 다녀왔던
성각스님이 다시 쌍계사를
찾았습니다.
큰스님의 손길이 묻어 있는 쌍계사의
녹차 시배지.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차나무 시배지입니다.
30여 년을 쌍계사에 머물며 선농일치의
모범을 보였던 고산 대선사.
지금은 비록 속세에 안 계시지만
큰스님을 50여 년간 모셔왔던 영담
스님과 함께 회상에 잠겨보는데요.
영담 스님은 성각의 사형입니다.
-형님이야 근 50년 가까이 시봉을
해오셨으니까 그 생각이야
오죽하겠습니까?
큰스님께서 우리 중생들에게 일러주시는
제일 큰 말씀, 그 말씀 한 말씀
해주시죠.
-항상 이렇게 하시는 말씀이 불식촌음을
강조하셨거든요.
한시도 헛된 시간을 보내지 마라.
염불을 하든지 참선을 하든지 경전
공부를 하든지 밭에 가서 일을 하든지
저녁 자는 시간 외에는 등을 붙이지
마라.
또 당신도 평생 동안 그렇게
해오셨고요.
하루를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굶어라.
그러니까 불식존음의 대안이
일일부작일일불식인데 그렇게 했을
때라야 물위결용지인하고
능위서타지인하라 하는 거였거든요.
그러니까 남에게 용서를 구걸하지 말고
내가 남을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해설) 서릿발 같은 수행가풍을 전하던
고산큰스님께서 원적이 되신 지 3주기를
맞았습니다.
그리운 마음에 큰스님이 계셨던 방을
찾아가 봅니다.
생전에 사제의 연을 맺어왔던
고산큰스님과 성각스님.
초창기 성각의 작품을 보고 깨달음이
부족하다는 걸 가르쳐주었던 스승님은
때로는 호랑이처럼, 때로는 어머니처럼
품어주셨습니다.
-(해설) 고산 대선사가 원적에 들어가신
후 성각은 큰스님을 하루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큰스님이 그저 그립고 또 그립습니다.
일점선도라 불리는 남해도 안에는
석가세존이 머물렀다는
전설의 섬이 있습니다.
날씨와의 인연이 닿아야 입도를 허락하는
섬.
성각이 오랜만에 세존도를 찾았습니다.
보이는 만물은 관음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이라.
이외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각 스님이 사부대중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칼끝에 물이 묻었으면 그 단물을
단맛을 의식해서 계속 칼끝에 혓바닥을
대고 우리가 핥잖아요.
빨아먹다 보면 결국은 자기가 자기 칼에
베이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지 못하고, 일깨우지
못하면 허망한 짓에 산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이 소중한 것은 자기 본성을 알고
자성을 깨우치라는 말이다.
깨우치면 맑은 하늘과 밝은 달과 해를 다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번뇌하는 중생들을 위해 붓끝으로 선의
세계를 펼치는 승려가 있습니다.
선서화를 통해 깨달음을 전하고 만행을
통해 구도의 길을 보여주는 성각 스님.
중생이 본래 부처요, 현실이 바로
극락이라는 깨달음의 여정을 스님과 함께
따라가 봅니다.
부처님의 넓은 품을 닮은 망운산.
남해에서 가장 높은 이곳 산자락에는
중생들을 품은 사찰 망운사가 있습니다.
고려시대 이후 800년 동안 수도승들의
기도처였던 작은 암자를 부처님의
원력으로 일으킨 성각 스님.
그는 붓끝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선화승입니다.
점 하나 찍는 것.
선 하나 긋는 것까지 수행력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깨달음의 그림.
30여 년을 선화에 매진해 온 성각 스님은
2013년 부산시 무형문화재 선화 제작
분야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었습니다.
간결한 선과 여백으로 채움이 아닌
비움을 이야기하는 선서화.
비우고 비울수록 참된 나에게 다가갈 수
있음을, 그리고 자애로울 수 있음을
성각 스님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가운 손님들이 망운사에 찾아왔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귀한 걸음을 이렇게 해 주셨네.
김 회장님.
-잘 계셨습니까?
-다들 이렇게 고운 얼굴을 가지셨네.
-감사합니다.
-들어가시죠.
-(해설) 고요한 산사에서 체험하는
성각 스님의 선화.
선화를 배우고자 먼 곳에서 찾아온
불자들을 위해 기꺼이 붓을 들었습니다.
-사인하듯이 하네.
여러분, 다 들었죠?
보세요.
이렇게.
원 자체가, 원 자체는 마음인데 이게
바로 내 성품이고 내 자성이다.
아시잖아, 그렇죠?
자성이고 내 성품이자 모든.
-한 번 만에 돌려야 해요?
-한 번 만에 돌려도 되고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쭈굴쭈굴 해질까 봐.
-아무 관계 없습니다.
-(해설) 작은 종이 위에 그려 보는 마음
하나.
-틀렸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끝까지.
-붓만 이렇게 한번 여기로 했으면.
-한 방향으로.
-한 방향으로.
-한 방향으로, 한 방향으로.
-그러면 다시 한번 해 보겠습니다.
-(해설) 단순히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담아 그리는 것이기에
쉽지만은 않은데요.
그래서 선화를 마음의 거울이라 부르나
봅니다.
-(해설) 부처님의 넓은 품을 닮은 망운산.
구도자가 되겠다는 뜻을 세우고 처음
1000일 기도를 회향했던 곳입니다.
스님은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이곳에서
참선을 하는데요.
만물이 행동하는 봄.
겨울잠에서 깨어난 뱀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뱀이 지척에 와도 미동조차 없는
성각 스님.
삼매에 빠져든 스님을 어찌 한낱
미물이 깨울 수 있을까요?
성각 스님은 그렇게 앉은 채로 한 자락
산이 되었습니다.
지난 2014년, 달마도로 유명한
조선 시대 화원 김명국의 발자취를 따라
일본의 천년 수도 교토로 향한 성각 스님.
일본의 불교문화 유산으로 전해지고 있는
건축, 정원, 회화 작품들은 대부분
임제종 선생들이 창조한 예술이라고
하는데요.
그중 교토의 대표적인 임제종 사찰인
료안지를 찾았습니다.
돌과 모래만으로 선의 경지를 표현한
가레산스이 정원.
일본 선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바다를 상징하는 흰 모래 위에 놓인
15개의 바위는 그 어떤 위치에서도 한
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인데요.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며 한 번에
모든 것을 이룰 수 없다는 선의 정신을
표현한 것입니다.
오유지족.
남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자신에 대한
만족함을 알라는 선의 가르침이 메마른
세상을 적셔주는 것 같습니다.
교토에서 1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시가현.
이곳에는 성각스님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일본의 승려가 있습니다.
지난 2002년 선, 예술의 재조명이라는
학술대회를 통해 한국에서 알게 된
니시무라 에싱 스님.
당시 일본 하나조노대학 총장이자
승려인 니시무라 에싱 선생을 만나러 온
것입니다.
성각스님과 일행들을 위해 마련한
조촐한 자리.
니시무라 스님이 자신의 선화를 먼저
선보입니다.
-달마가 부끄러워해요.
이걸 내가 선물하려고.
선생님, 선생님...
-(해설) 성각의 선서화를 선물로 받은
니시무라 스님.
그가 생각하는 선이란 무엇일까요?
-(해설) 두 사람.
한국과 일본의 선 예술에 대한 각기
다른 생각들을 교환하며 석별을
나눕니다.
일본에 이어 태국으로 만행을 떠난
성각스님.
태국은 국민의 대부분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교의 나라입니다.
태국의 불교는 한국의 대승불교와 달리
남방불교 또는 상좌부불교라 부르며
고대 인도어인 팔리어로 전승된 불교
경전을 전통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태국을 방문한 성각스님과 일행들은
방콕 시내에 있는 왓 아룬 사원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왓은 불교 사원을, 아룬은 새벽을
뜻하는 말로 왓 아룬은 새벽 사원을
의미합니다.
왓 아룬 사원의 관계자들이 성각스님을
초대한 이유는 탁발 체험을
위해서인데요.
탁발은 태국 스님들의 중요한 수행 중
하나로 승려들은 집집마다 보시를
받으며 무소유를 실천하고 보시를 하는
불자들에게는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온 승려들을 위해 정성스레
아침 공양을 준비한 태국의 불자들.
성각스님은 사원의 배려로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탁발을 체험해
보는데요.
생활 속 깊이 자리 잡은 태국의
불교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불교 대학교라 불리는
마하출라롱컨대학교.
한국에서 찾아온 성각스님과 일행들을
맞이해 총장 스님이 직접 환영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성각스님이
자신의 선서화를 선물로 전하는데요.
성각스님의 작품에 대한 총장 스님의
감상이 이어졌습니다.
-(해설) 과거를 되새김질하지 말고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말며 지금, 이
순간에 충실히 하라는 위파사나.
선을 추구하고 선을 그리는 선승으로서
그 의미를 찬찬히 되새겨 봅니다.
일본과 태국에 이어 또 다른 여정의
뜻을 품은 성각스님.
쌍계총림의 방장이신 고산 혜원
큰스님을 뵙기 위해 쌍계사를
찾았습니다.
성각은 고산 혜원 큰스님의
법제자입니다.
-큰스님께서 지난번에 저에게 만행에
대해서 이렇게 쭉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한번 제가 이번에 중국
쪽으로 한번 장가계나 이런 쪽으로 한번
다녀왔으면 하는 생각에서 큰스님의 그런
좋은 말씀을 한번 듣고 싶습니다.
-사람은 본래 이제 대국으로부터 시작해서
전 세계를 한 바퀴 이리 돌면 자연히
배우는 것이 굉장히 많아져요.
견문을 넓힘으로 해서 모든 것이 다
자연의 이치를 배우는 것인데 스님은
참선만 하는 게 아니고 서예에도 상당히
관심을 갖고 오늘날까지 해 나갔고
꾸준히 여러 가지 만행으로부터 시작해서
기도 정진 열심히 하면 성불은 자연히
재기 중이라 그 가운데 있으니까 열심히
노력하도록 하세요.
-명심하겠습니다, 큰스님.
감사합니다.
-(해설) 불교는 깨달음의 방법에 따라
교종과 선종으로 나누어집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말로 표현한 것이
교이며 깨진 마음을 직접 보이는 것이
선입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교라면 달은 선
그 자체에 비유할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 불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선종은 인도 출신의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건너와 싹을 틔웠고 그 후 당나라 시대에
육조 혜능 대사에 이르러 지금의 선
사상이 완성되었습니다.
쌍계총림 금당에 모셔진 육조 정상탑에
예의를 갖추는 성각 스님.
탑 안에는 육조 혜능 대사의 두개골인
정상이 모셔져 있는데요.
선의 고향인 중국을 찾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더욱 깊어집니다.
성각 스님과 선종 사찰
순례단이 중국 후난성에 위치한 창더시
덕산으로 향했습니다.
덕산은 당나라 시대의 고승, 덕산 선감
선사의 법호에서 유래된 지명인데요.
그가 주석했던 덕산사는
지금 사라지고 없지만 인근에서 그
선맥을 잇고 있는 건명사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한국의 사찰보다 크고 화려한
분위기의 중국 사찰 건명사.
방장 스님의 안내로 사찰 안을 순례해
봅니다.
한때 주금강으로 불릴 만큼 금강경과
계율에 정통했던 덕산 선사.
하지만 교리에 얽매이면 진리를 바로 볼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그 즉시
금강경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가차 없는 방망이질로 수도승들을
깨우쳤던 그의 기운이 아직도 흐르는 것
같습니다.
-뒤의 산 이름이 덕산이죠.
-덕산, 덕산.
-(외국어)
-(외국어)
-(외국어)
-(외국어)
-그러니까 여기가 지금 덕산의 최고봉에
있는.
-이게 덕산봉.
-지금 덕산이에요.
-(외국어)
-(외국어)
무림, 무림의.
-(외국어)
-덕산방, 한 방, 한 방에 이렇게 해서.
방, 방, 활.
-활.
-갈.
-갈.
-(해설) 멀리서 찾아온 성각 스님과
순례단에게 방장 스님이 차를 공양합니다.
덕산 선사로부터 43대째 선맥을 잇고
있는 건명사의 방장, 명선 스님.
그의 융숭한 대접에 성각 스님도
보답을 하는데요.
뜻밖의 선물에 방장 스님이 매우
기뻐합니다.
-다선 일미, 다선 일미라 다의 맛과 선의
맛이 한 맛이다.
다와 선이, 선과 다가.
-선...
-(해설) 종이 위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성각 스님의 불사.
그의 선화에, 그리고 그의 마음에
감복했는지 명선 스님은 성각과
일행들을 또 다른 사찰로 초대했습니다.
송나라 시대의 선승, 원오 극근 선사가
머물렀던 협산사.
협산사로 가기 전에 그 앞에 있는
벽암천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이게 바로 금천이구나.
-(외국어)
-1000년이 넘어가는...
-(외국어)
-그리고...
-(해설) 협산사의 주지였던 원오 극근
선사는 이곳에서 벽암록을
집필했는데요.
벽암록은 역대 고승들의 화두 가운데
100칙을 선정해 원오 선사가 해석한
주석서입니다.
졸음을 쫓기 위해 온천수로 차를 마셨던
원오 극근 선사.
이곳에서 차와 선의 참뜻을 깨닫고
다선일미라는 네 글자를 남겼습니다.
1000년 전 원오 선사가 마셨던 물에 손을
적셔보는 성각 스님.
벽암천에 흐르는 선의 기운이 마음 깊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외국어)
-(해설) 한국에서 손님들이 왔다는 소식에
창더시 부시장이 찾아왔습니다.
현재 중국인들은 대부분 무신론자인
까닭에 중국 정부에서 방장스님을
임명하고 유서 깊은 사찰들을
직접 관리한다고 합니다.
870년에 창건된 협산사는 당, 송,
원나라의 왕들이 별도의 부서를 만들어
관리할 만큼 유명한 거찰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산문에서부터 대응보전까지
말을 타고 이동했다고 하니
그 규모를 한번 짐작해 볼 따름인데요.
지금은 비록 사찰의 위용이 예전 같지
않지만, 이곳에서 수행했던 수많은
선승들을 떠올리며 깨달음을 향한 그들의
고뇌와 번민의 흔적들을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한국 선화의 대가를 맞이한 협산사에서
의미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지필묵을 준비해 놓고 성각스님에게
선필을 부탁한 것인데요.
명선스님의 요청에 붓을 들어 화답하는
성각스님.
그의 붓끝이 움직일 때마다
박수가 터집니다.
구도자로서 30년 동안 한결같이
정진해 온 성각스님.
그동안 닦아온 공력이 일필휘지
종이 위에 펼쳐집니다.
한국에서 찾아온 선승의 필력에 중국의
불제자도 적잖게 놀란 모양입니다.
-(해설) 중국인들에게는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 있습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국가 삼림공원 장가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절경을 자랑하는데요.
장가계 안에서도 천자산을 보기 위해
성각이 케이블카에 올랐습니다.
천자산은 가장 늦게 개발되어
자연의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곳입니다.
오랜 세월 침수와 붕괴로 빚어진
자연의 예술품.
안개까지 더해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기암괴석이네, 기암괴석이야.
-못 볼 뻔했는데 보여주네.
-이게 하나의 정과 선과 점으로 그렇게
다 이뤄져 있는 것 같아, 수려하다.
-(해설) 가늘어진 빗줄기 사이로 드러난
장가계의 모습.
눈앞에 펼쳐진 기이한 봉우리들,
바위들이 마치 꽃을 피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자연의 경관이 진여일색의
한 모습인데.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정작 화장세계의
모습이다.
진여의 세계다, 묘유의 세계다.
-(해설) 성각스님이 바라는 선화의
이상향이 있다면 지금 이 모습이
아닐까요?
장가계를 향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원가계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이런 모습을 이걸 누가 이렇게 빚어
놓았나.
-(해설) 천 길 낭떠러지에서 솟은
아찔한 바위기둥들.
세상에 이런 풍광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마치 한 폭의 수묵화가 눈앞에 그려진 것
같습니다.
-원가계의 비경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
몰랐다.
참...
대단하다.
-(해설) 누구 하나 평을 내릴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산수.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진 않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아쉽지만, 장가계, 원가계의 비경에
작별 인사를 합니다.
오늘의 이 감동을 어떻게 선화로
풀어낼지 스님에게 새로운 화두가
던져졌습니다.
-(해설) 중국 만행을 마치고 성각이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천년 고찰
은해사를 찾았습니다.
은빛 은 자에 바다 해 자를 쓰는 은해사.
전성기 시절 은빛 파도가 출렁이듯
암자와 말사들이 중중무진으로 서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천년의 세월 동안 중수와 불사를 거듭해
온 은해사는 원효대사의 의상대사
지눌스님과 일연스님 그리고 성철스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승들을 배출한
곳입니다.
은해사가 자랑하는 성보박물관.
이곳에는 다양한 불교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성각스님의 발길을 붙잡는
작품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지장보살도.
지장보살은 관세음보살과 함께
불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스님,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오래간만입니다.
-반갑습니다.
-먼 길 오셨습니다.
-(해설) 이대로 떠나기가 아쉬워 은해사
주지, 돈관스님을 찾았습니다.
지난 2008년,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 주지로 취임한 돈관스님.
성보박물관을 개관하고 선화여고를
운영하는 등 대중불교, 사회불교
운동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어디를 또...
지장성지로 가시려고 합니까?
-이번에는 중국에 지장왕보살님이
계시는 성지 구화산.
-교각스님.
-교각스님이 계시던 구화산 그리고
중국의 황산, 아마 이런 곳을 다녀올
계획을 가지고 만행을 떠날까,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에도 무여정법이라고 해서
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또
큰스님은 포교하는 그런 방법이 산림에
사는 저희와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만
대중불교, 생활불교, 사회불교, 또 시대가
변하는 그런 종교에 대한 큰 서원은
같은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 이번에 또 중국에 먼 길,
지장성지를 무탈하게 잘 다녀오시기를
저는 기도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다녀오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건강하게 다녀오십시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성불하십시오.
-(해설) 중국 지장보살의 성지로 만행을
결심한 성각스님이 또 다른 고견을 듣기
위해 통도사를 찾았습니다.
사형 사제의 연을 맺고 있는 법산
큰스님.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장을 역임한
대학승입니다.
-그러면 큰스님께서도 한때 구화산에
다녀온 걸로 제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좀 말씀을 한번
해주시겠습니까?
-보살이다.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가고 볼 수 있을
때까지 가고.
그릴 수 있을 때까지 그려서 많은
사람에게 깨우침을 주는.
그래서 심연과 지혜와 용기, 그래서
실천해서 많은 생명에게 새로운 지혜를
발산할 수 있는 그런 계기를 만들어
주소.
-사형님의 그런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제가 열심히 과업을 다 수행해 나가도록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해설) 중국 안휘성에는 지장보살의
성지로 알려진 구화산이 있습니다.
보현보살의 성지 아미산, 문수보살의
성지 오대산, 관세음보살의 성지
보타낙가산과 함께 중국 불교 4대
성산으로 불리는데요.
성각스님이 이번에는 중국 구화산을
찾았습니다.
수려한 구화산 자락에 거대한 금빛
동상이 우뚝 서 있습니다.
2013년에 세워진 세계 최고 높이의
지장보살 동상.
하지만 이 규모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동상의 모델이 바로 우리나라
신라시대 왕족 출신인 김교각
스님이라는 것인데요.
김교각 스님은 어떻게 중국인들로부터
지장보살의 화연신으로 불리게 된
걸까요?
아홉 개의 아름다운 봉우리가 마치
연꽃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
구화산.
성각스님이 케이블카에 몸을 싣고
구화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
천대로 향합니다.
천대 입구에 내려서 30분을 더 오르면
천대사가 나타나는데요.
천대사는 김교각 스님의 수행처라고
알려진 작은 동굴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사찰입니다.
천대사 뒤편엔 작은 법당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지장보살상을 모셔 놓은
지장전인데요.
김교각 스님을 생각하며 1000배를 드리는
성각 스님.
신라 성덕왕의 아들로 태어난 김교각
스님은 출가 후 716년 중국 구화산으로
건너와 수행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중국어)
-(해설) 천대사의 뒤편에
위치한 지장고동.
좁은 동굴 안에는 김교각 스님의 모습을
한 지장보살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속세와 연이 끊긴 이 동굴에서 김교각
스님은 8년 동안 수행을 했다고
합니다.
-(해설) 가파른 절벽 옆에 서 있는
아름다운 사찰.
고배경대입니다.
고배경대는 김교각 스님이 화엄경을
독경했던 곳으로 신비롭게도 그의
발자국이 이곳에 남아 있습니다.
현지 승려의 권유로 조심스레 발을
올려보는 성각 스님.
마음을 다해 향 공양을 올려봅니다.
돌에 발자국이 새겨질 만큼 정성을 다해
독경을 멈추지 않았던 김교각 스님.
구도를 향한 수행자의 간절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합니다.
김교각 스님의 행적을 더 따르고 싶은
마음에 거센 비를 뚫고 화성사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김교각 스님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구화산 최초의 사찰입니다.
1000배를 마친 후 도련을 둘러보는 성각
스님.
화성사에는 김교각 스님의 유품이 남아
있습니다.
제법 커 보이는 신발과 보관.
기록에 따르면 김교각 스님은 2m가 넘는
키에 장정 10명을 상대할 정도로 기골이
장대했다고 합니다.
그는 신라에서 당나라로 넘어올 때
볍씨와 차, 그리고 삽살개를 가지고
왔다는데요.
차와 볍씨는 중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그리고 삽살개는 외로운
수행 길에 길동무를 하기 위해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살아생전에 이미 김지장왕이라고
불렸다는 김교각 스님.
성불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먼저
구제하려는 모습에서 중국인들은
자연스레 지장보살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성각 스님이 이번엔 관세음보살의 성지인
중국 보타낙가산으로 향했습니다.
섬의 규모는 작지만 1년에 약 700만 명의
순례자가 찾는 불교 성지인데요.
그중 유독 눈에 띄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1보에 부처님께 귀의하고 2보에 진리에
귀의하고 3보에 스님들께 귀의한다는 3보
1배.
이토록 정성을 다해 그녀가 찾는 곳엔
무엇이 있는 걸까요?
성각 스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보타낙가산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남해관음상입니다.
보타산의 동남쪽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남해관음상은 그 규모 면에서 중국에서는
으뜸이라고 하는데요.
자비의 화신으로 중생들의 간곡한 부름에
어디든 나타난다는 관세음보살.
뜨거운 불길 속이든 매서운 풍랑속이든
그 이름만 불러도 살 수 있다고 하니
이토록 많은 중생들이 관음보살을 찾는
게 아닐까요?
보타낙가산에 처음 불교가 들어온 것은
당나라 시대.
인도의 이름 모를 스님이 이 섬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소문이
전해지면서부터입니다.
그리고 50년 후 일본의 승려 혜악이
관음보살상을 모시고 일본으로 가려는데
갑자기 풍랑이 일었다고 하는데요.
일본행을 포기한 혜악은 이곳에 법당을
짓고 관음부를 모셨습니다.
그곳이 바로 이곳, 보타낙가산 최초의
사원 불긍거관음원입니다.
불긍거관음원에는 신비로운 풍경이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가섬의
모습인데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치 바다 위에 누워
있는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낙가섬.
오직 부타섬에서만 이런 형상을 볼 수
있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해설) 보타섬에서 바라보는
낙가섬의 모습.
관세음보살이 현신한 듯한 착각마저
드는데요.
실제로 당신을 애타게 찾는 중생들을
위해 낙가섬의 형상으로 누워 계시는 건
아닐까요?
고산큰스님의 말씀대로 만행을 다녀왔던
성각스님이 다시 쌍계사를
찾았습니다.
큰스님의 손길이 묻어 있는 쌍계사의
녹차 시배지.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차나무 시배지입니다.
30여 년을 쌍계사에 머물며 선농일치의
모범을 보였던 고산 대선사.
지금은 비록 속세에 안 계시지만
큰스님을 50여 년간 모셔왔던 영담
스님과 함께 회상에 잠겨보는데요.
영담 스님은 성각의 사형입니다.
-형님이야 근 50년 가까이 시봉을
해오셨으니까 그 생각이야
오죽하겠습니까?
큰스님께서 우리 중생들에게 일러주시는
제일 큰 말씀, 그 말씀 한 말씀
해주시죠.
-항상 이렇게 하시는 말씀이 불식촌음을
강조하셨거든요.
한시도 헛된 시간을 보내지 마라.
염불을 하든지 참선을 하든지 경전
공부를 하든지 밭에 가서 일을 하든지
저녁 자는 시간 외에는 등을 붙이지
마라.
또 당신도 평생 동안 그렇게
해오셨고요.
하루를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굶어라.
그러니까 불식존음의 대안이
일일부작일일불식인데 그렇게 했을
때라야 물위결용지인하고
능위서타지인하라 하는 거였거든요.
그러니까 남에게 용서를 구걸하지 말고
내가 남을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해설) 서릿발 같은 수행가풍을 전하던
고산큰스님께서 원적이 되신 지 3주기를
맞았습니다.
그리운 마음에 큰스님이 계셨던 방을
찾아가 봅니다.
생전에 사제의 연을 맺어왔던
고산큰스님과 성각스님.
초창기 성각의 작품을 보고 깨달음이
부족하다는 걸 가르쳐주었던 스승님은
때로는 호랑이처럼, 때로는 어머니처럼
품어주셨습니다.
-(해설) 고산 대선사가 원적에 들어가신
후 성각은 큰스님을 하루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큰스님이 그저 그립고 또 그립습니다.
일점선도라 불리는 남해도 안에는
석가세존이 머물렀다는
전설의 섬이 있습니다.
날씨와의 인연이 닿아야 입도를 허락하는
섬.
성각이 오랜만에 세존도를 찾았습니다.
보이는 만물은 관음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이라.
이외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각 스님이 사부대중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칼끝에 물이 묻었으면 그 단물을
단맛을 의식해서 계속 칼끝에 혓바닥을
대고 우리가 핥잖아요.
빨아먹다 보면 결국은 자기가 자기 칼에
베이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지 못하고, 일깨우지
못하면 허망한 짓에 산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이 소중한 것은 자기 본성을 알고
자성을 깨우치라는 말이다.
깨우치면 맑은 하늘과 밝은 달과 해를 다
볼 수 있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