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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조선통신사 위대한 유산 - 2부 필담창화

등록일 : 2024-04-08 16:1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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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조선인들과 일본인들의 기본적인 소통 방식은 필담이었습니다.
이 필담이라는 것은 붓으로 대화를 나눈다.
그래서 글로 써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인데요.
창화는 시를 주고받는 것인데 이때 글은 한문을 가르칩니다.
-(해설) 일본인 화가 하나부사 잇초가 그린 마상휘호도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머리를 땋고 있는 소동.
그러니까 동자가 말을 타고 있고 말 위에서 일본인들에게 글을 써주는 장면이에요.
소동은 실제로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조선인의 글씨를 하나라도 얻기 위해서 소동에게까지 글씨를 부탁을 했던 것이죠.
통신사의 실제 교류는 대부분 통신사들이 묶었던 객관, 숙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통신사들이 주로 그 도시의 가장 큰 사찰에서 묵고는 했는데요.
예를 들어 후쿠젠지라든가 시즈오카의 세이켄지.
그곳에서 많은 서화 교류가 이루어졌었죠.
당시 동아시아의 사람들은 마음대로 다른 나라를 여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통신사의 만남이라고 하는 것은 평생에 한 번 거의 유일한 기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나라의 위치, 문화의 수준, 정체성 이런 것들을 돌아보고 조정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양국인의 대화가 아주 주제가 다양하고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안부 인사말부터 시작해서 양국의 문화와 사회.
그리고 학술과 문학, 지리.
또 중국이라든가 외국, 그러니까 서양 이야기도 있고요.
그리고 의학과 의술, 이런 다양한 대화들이 나와 있는데요.
역대 필담 창화집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또 널리 읽혔던 책은
1711년의 계림창화집이라고 하는 필담집이 있습니다.
15권, 11책으로 되어 있고요.
필담창화는 기본적으로 한시를 증정하고 한시를 화답하기 때문에
많은 부분의 내용은 그런 한시로 이루어져 있고요.
한시 외의 부분이 대화, 그리고 편지입니다.
필담창화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1763년 계미통신사 시기에 정점을 이루게 되죠.
제술관 남옥, 서기였던 성대중, 원중거.
이 세 사람의 문인은 일본에 대해서 오랑캐라고 무시할 게 아니라
일본은 어떤 나라인지 일본의 학술과 문학은 어떤지 이런 것들을 열심히 탐구했어요.
일본에 있을 동안.
그리고 갔다 와서도 차행의 결과를 조선 문인들과 공유하고 이렇게 노력을 했습니다.
통신사 일행이 아카마가세키라는 곳에 도착을 합니다.
지금의 시모노세키입니다.
그래서 그때 방문을 한 유자들 일행 중에 하타 겐코라고 하는 젊은이가 있었어요.
28살 젊은이였는데 우리 아버지가 어떤 분이냐 하면
이 주자학, 성리학에 아주 잠심한 분이시다.
그래서 그 아버지께 통신사의 글을 가져다드리고 싶다고 부탁을 해요.
그러니까 이 통신사가 들었을 때는 일본에는 이단의 학문이 많고
성리학이 별로 없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 굉장히 반갑다.
그래서 앞으로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는 그런 내용의 남욱의 답변이 있어요.
필담을 통해서 이렇게 대화를 하고 교류를 하고 함으로써 일본이 문을 숭상하게 되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거예요.
동아시아가 다 평화로 가게 된다고 조선인들은 생각했던 겁니다.
세계사적으로 바로 붙어 있는 나라끼리 200년 동안 한 번도 충돌이 없었던 경험은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통신사가 유일하죠.
문화의 힘으로, 대화와 소통의 힘으로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을지.
어떤 동아시아의 평화라고 하는 더 큰 목적을 향해 갈 수 있는
그 원동력이라든가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그런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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