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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N 특집다큐 - 1부 바다의 길, 해양을 누비는 사람들

등록일 : 2025-12-15 13:11:24.0
조회수 : 66
-(해설) 지난 5월 울산에 위치한 HD현대중공업 암벽에 노르웨이 해운사 크누센의 회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찾아왔습니다.
노르웨이 대표 해운사인 크누센은 지난 2022년에 17만 4000㎥급 LNG 운반선 2척을 HD현대중공업에 발주했었습니다.
-원, 투, 스리.
-(해설) 오늘은 완성된 선박을 선주에게 인도하기 전에 배에 이름을 붙여주는 명명식이 있는 날입니다.
명명식은 선주나 조선소에도 아주 의미 있는 행사인데요. 밧줄을 자르며 선박과 선원의 무사 항해를 기원합니다.
고. 원, 투, 스리, 고.
-(해설) 두 배의 이름은 므나이크와 메사이이드.
크누센은 폴란드 가스 회사이자 LNG 수입 업체인 PGNiG와 계약을 맺고 두 척의 선박을 계약했습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해설) 첨단 기술이 집약된 므나이크와 메사이이드.
두 선박은 이제 다른 배들처럼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에너지 자원을 실어 나를 겁니다.
선박으로 대륙과 대륙을 거미줄처럼 이으며 전 지구를 연결하는 산업 해운.
지금 해양을 가로지르며 글로벌 경제를 이끌어가는 거대한 산업.
해운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부산은 잘 알려진 대로 세계적인 항만 시설을 갖춘 도시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출발한 배가 부산에 도착해 물건이 담긴 컨테이너를 내리고 또 다른 물건이 담긴 컨테이너를 싣고 다른 나라로 떠납니다.
이렇게 먼바다를 건너 대한민국까지 실려 온 물건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작은 바늘과 커피부터 옷과 신발, 자동차를 움직이는 가솔린, 집을 따뜻하게 데우는 가스까지.
배가 실어나르는 물건 대부분은 우리의 의식주. 즉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다 위에서 세계의 물류와 가치를 연결하는 거대한 힘. 이것이 바로 해운입니다.
해운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우리 삶 깊숙한 곳까지 영향을 미치는 산업입니다.
-(해설) 국가와 국가. 대륙과 대륙을 연결하며 물건을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해운.
전 세계 화물의 8, 90% 이상이 해운을 통해 운송되고 있어 전문가들은 해운업을 글로벌 경제의 핵심 산업으로 분류합니다.
해운에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산업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배를 운항하는 산업이 아니라 육상, 해상, 항공 물류부터 조선, 항만, 금융, 보험까지 광범위하게 얽힌 거대한 종합 산업군입니다.
그리고 국경을 초월한 산업이 해운의 본질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해설) 영국은 전통적인 해운 강국이자 오늘날에도 글로벌 해운의 지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나라입니다.
해운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기구인 국제해사기구 IMO도 영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해설) 영국 항해의 역사는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런던이 로마제국의 주요 수출항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전성기를 열고 잉글랜드를 유럽 열강의 지위로 끌어올린 사람은 엘리자베스 여왕입니다.
이후 영국의 해상 활동은 활발해졌지만 문제는 거리와 운송 비용이었습니다.
-(해설) 이런 이유로 화물 운송 비용은 계속 상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효율적인 흐름을 바꾼 것은 새로운 첨단 선박, 증기선이었습니다.
-(해설) 이렇게 영국은 해운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성장의 배경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많은 수입품이 다름 아닌 식량이었기 때문입니다.
해상 교역이 국민의 밥상과 직결되어 있었던 겁니다.
이 무렵 대양을 항해하는 전 세계 선박 8400여 척 중 절반이 영국 소유였습니다.
이 수치는 영국의 해상 지배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이드 조지는 1916년 12월 총리가 된 직후 첫 연설에서 해운은 심하게 손상되면
국가의 목숨이 끊어지는 경동맥이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
-(해설) 선박에 주민등록처럼 국적을 부여하고 해당 국가의 법과 규제에 따라 운항하도록 정부가 선박을 공식적으로 등록하는 선박등록제도.
이 제도도 19세기 초 영국에서 시작됐습니다. 해상 보험의 출발지 역시 영국입니다.
-(해설) 산업혁명과 함께 대양을 호령하던 영국.
영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신흥 공업국이 탄생하고 무역 질서가 바뀌는 1970년대 접어들면서 그리스에 1위 자리를 내주게 됩니다.
그러나 비록 상선 보유량 자체는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줄었지만 해사 서비스, 금융, 보험,
법률, 표준 재정 영역에서는 지금까지 여전히 영국이 세계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해운업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해설) 1952년 한진해운의 전신인 해운공사가 한-일 항로를 신설하고 이듬해 처음으로 미국 항로까지 개척합니다.
1952년 민간 기업도 해운 산업에 뛰어듭니다. 극동해운이 고려호를 미국 포틀랜드로 보내는 역사적인 장면도 이때 등장합니다.
이즈음 세계 해운업은 격동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말콤 맥클린이 표준화된 강철 박스인 컨테이너를 개발하면서 혁신적인 전환점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재정적으로도, 인력 면에서도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외항 해운 산업을 살리려면 이 어려움을 돌파해야 했습니다. 결국 전국에 있는 선주들이 힘을 합쳤습니다.
-(해설) 1954년에 발족한 대한선주협회는 1960년 11개사 선박 39척을 가지고 한국선주협회로 명칭을 변경한 후 새롭게 도약합니다.
1964년에는 고려해운이 국내 최초로 외항 상선을 건조하며 조선업의 새로운 역사를 씁니다.
-(해설) 대한민국 해운 산업의 기반을 다지던 1965년에는 대한해운공사에서 처음으로 대미정기항로를 개설합니다.
1972년 대한민국 해운은 운임 수입 1억 달러를 돌파하고 선박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총량, 즉 선복량도 처음으로 100만 톤을 넘어섭니다.
-(해설) 1970년대를 거치면서 해운은 대한민국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특히 무역 적자에 시달렸던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외화 획득을 통해 국민 경제에 커다란 기여를 합니다.
한국해운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1964년부터 1975년까지 2만 명의 파독 근로자가 벌어들인 외화는 1억 달러인 반면
1964년부터 1979년까지 10만 명의 상선 선원들이 벌어들인 외화는 5억 6000달러로 파독 근로자의 5배가 넘었습니다.
-(해설) 이 시기를 거쳐오면서 1996년 글로벌 종합 해운 기업 펜오션.
1976년 대한민국 대표 국적 선상 HMM 등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해운 기업들도 창립하게 됩니다.
19770년대부터 한국의 해운업은 글로벌 도약을 시작했습니다. 정부의 역할도 컸습니다.
-(해설) 해수부와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체가 바로 한국해운협회입니다.
한국해운협회는 정부와 조율하여 정책을 만들어 내고 선복량 증대를 이끌며 업계에 위기가 닥쳤을 때 안전판 역할도 해왔습니다.
1960년에 출발했던 한국선주협회는 2020년 11월 60년 만에 한국해운협회로 다시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그동안 11개였던 회원사는 157개로 늘어났습니다. 대한민국 해운 산업의 구심점 역할을 맡은 한국해운협회.
대한민국 해운 산업의 역사는 곧 해운인들의 역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나라 역시 선주협회가 해운 산업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해설) 해운업계가 다양한 노선 개척과 선박의 도입으로 국제적 확장을 이끌었다면.
한국해양대학과 같은 전문 교육기관은 해운 인력 양성에 매진했습니다.
한국해양대학은 전문 인력 양성과 연구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며 해운 산업의 탄탄한 성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해설) 국립한국해양대학교는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문을 열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해양 특성화 국립 대학으로 해운, 조선, 해양 수송, 항만, 해양 과학과 공학 등
해상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전문 인재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해설) 대한민국은 이처럼 전문 인력 양성과 함께 1990년 이후에는 컨테이너선과
초대형 유조선의 도입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며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해운 선대는 총 8000만 DWT를 넘는데 이는 전 세계 선박 규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수치입니다.
주요 국가별 해운 선복량 순위로는 2024년 기준 4위입니다.
특히 컨테이너선, 벌크선, LNG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부문에서 경쟁력이 높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해운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수출 경제의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수출입 화물의 99.7%를 선박으로 운송하고 있으며 석탄, 철광석, 원유, LNG 등 주요 원자재는 100% 선박으로 운송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물류 대란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항만에 화물선이 입항을 못 해 바다가 주차장으로 변했는데요.
-(해설) 코로나 팬데믹 물류 대란 때에도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수출 제품을 운송하기 위해
선박이 긴급하게 추가 투입되었으며 2022년 요소수 대란 때에도 선박이 긴급 대량 운송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해운 산업은 다른 산업을 함께 성장시키는 역할도 했습니다.
-(해설) 대한민국 주요 외화가득산업을 살펴보면 2023년 기준 반도체 987억 달러, 자동차 709억 달러,
석유 제품 520억 달러, 해운이 319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이 수치는 우리나라 해운 산업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해운 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는 대한민국.
이러한 발전은 힘겨운 시련을 견뎌낸 해운인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국제해사기구인 IMO는 해마다 IMO 용감한 선원상 수상식을 가집니다. 이 상은 지난 2007년에 처음 제정됐습니다.
-(해설) 올해는 한국인이 이 영예로운 상을 받았습니다. 바로 이태영 항해사입니다.
-이 상은 제 개인의 용기가 아니라 함께 바다를 누비며 살아온 선원들을 위한 상이라고 생각했고.
-(해설) 이태영 항해사는 지난 2024년 11월 제주 해상에서 발생한 고등어잡이 어선
금성호의 전복 사고 당시 구조 훈련 없이도 자신의 몸을 던져 선원 12명을 구출한 영웅입니다.
-(해설) 해운 산업은 조선, 물류, 항만 등 다양한 산업과 기술이 집약된 거대한 종합 산업이지만
그 산업을 끌어가는 주체는 역시 해운인 사람입니다.
오늘도 대한민국 상선이 세계 바다를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합니다.
부산신항을 출발해 광양항에 도착한 멜번 브리지호가 다시 출항을 앞두고 있습니다.
멜번 브리지호는 길이 272m, 폭 43m, 8000TEU급 선박으로 1년 정도 된 최신 선박입니다.
이번 항해의 책임자는 경력 30년의 베테랑 권오영 선장입니다.
모든 선장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안전, 그다음 목표는 정시 도착입니다.
-(해설) 멜번 브리지호에게 주어진 일정은 6주, 그동안 부산, 광양,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파키스탄을 거칠 예정입니다.
정박하는 항구마다 싣고 간 컨테이너를 내리고 새로운 컨테이너를 싣는 작업을 반복하며 한 달 보름을 보내게 됩니다.
이번 일정에는 선장과 항해사를 포함 20여 명의 선원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해설) 네 척의 자매선 중 1호선으로 탄생한 멜번 브리지호의 심장은 바로 기관실.
최신형 엔진이 설치된 기관실은 13년 차 기관장이 맡았습니다.
-(해설) 멜번 브리지호는 연료와 비용 절감 장치를 갖춘 친환경 선박인 셈입니다.
급변하는 해운 환경으로 선박의 선진화는 필수가 되었습니다.
멜번 브리지호도 그 자격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멜번 브리지호가 중국 상하이에 도착했습니다.
컨테이너 하역과 선적 작업이 끝나면 또 다른 목적지를 향해 출항해야 합니다.
화물을 실어가고 다시 실어오는 일, 대한민국 선박 멜번 브리지호와 선원들은 지금 세계 해운 산업의 한가운데에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 중입니다.
-(해설)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세계 4위의 위상을 달성한 대한민국 해운 산업.
70여년 만에 일군 놀라운 기록입니다. 이 배경에는 해운 산업을 움직이는 대한민국의 해운인들과 뛰어난 기술력이 있습니다.
-(해설) 진정한 해운 강국을 꿈꾸는 대한민국. 지금 대한민국의 위대한 도전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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