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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피란수도 부산, 한의학의 脈을 잇다

등록일 : 2026-06-15 13:2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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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바다를 품은 도시. 치열했던 삶들이 이어진 곳 이곳은 부산입니다.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켜온 한의원이 있습니다. 벌써 70년째 오늘도 문을 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한의원은 병을 치료하는 공간인 동시에 사랑방이기도 하죠.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째 한의사의 길을 걷고 있는 염현식 원장.
그에게 아버지는 늘 생명의 귀함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는 오랜 시간 이어져온 한의학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지난 시간 헤아릴 수 없는 날들이 이 골목을 지나갔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의사도 환자도 함께 나이를 먹었습니다.
그는 쉬지 않고 오늘도 진료를 봅니다. 서울 강서구에는 허준박물관이 있습니다.
조선의 위대한 의학자 허준 선생의 업적을 엿볼 수 있죠.
조선인의 몸과 풍토에 맞춘 동의보감. 사람의 몸을 단순한 기관의 집합이 아닌
기와 혈이 흐르는 하나의 우주로 바라보았습니다.
동의보감에는 400여 년 전 전란 이후 무너진 조선에서 백성을 위했던 고민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전란과 굶주림 속 백성들이 실제 삶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치료법과 현실에 맞는 의학들이 담겨졌죠.
이 땅에서 나는 다양한 동식물들이 동의보감에 기록돼 있습니다.
야저육, 멧돼지 고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쓰여져 있을까요?
바다를 오가던 조선통신사. 그 길 위에는 조선의 의학도 오갔습니다.
동의보감은 일본으로 전해졌고 에도시대 일본 의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남기게 되죠.
여기 두 권의 동의보감이 있습니다. 오른쪽은 일본에서 재출판된 것이죠.
1799년 일본에서 다시 간행된 정정동의보감입니다.
서문에는 허준의 이름과 함께 이 책의 가치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의학이 일본의 중요한 의학서로 읽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19세기 후반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서구식 근대 국가를 만들기 위한 개혁에 속도를 내기 시작합니다.
정치와 군사, 교육은 물론 많은 것들이 빠르게 서양식으로 재편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보다는 근대, 동양보다는 서양. 국가의 기준이 바뀌며 의학의 흐름 역시 변화를 맞게 되죠.
같은 시기 조선은 다른 길을 선택하고 있었습니다.
대한제국의 황제가 된 고종. 그는 전통의학을 국가제도 안에 남기려고 했습니다.
1900년 대한제국이 발행한 관보입니다.
여기에 쓰여진 의사 규칙에는 맥을 짚고 침과 뜸, 한약을 다루는 한의사를 공식 의료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전통의학은 국가제도 안에서 자리 잡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1905년 총칼 앞에서 체결된 을사늑약. 대한제국의 주권은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이 땅에 들어온 일본군. 조선제도의 질서 역시 식민지 체제로 재편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의료 체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죠.
1914년 이 땅에서 한의사는 더 이상 의사로 인정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조선총독부가 의생규칙을 공포했기 때문이죠.
수백 년을 이어온 전통의학은 단 한 줄의 규칙으로 밀려났습니다.
조선총독부는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만 의생면허를 허용했습니다.
전통의학은 독립된 의학이 아니라 이제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1944년 전쟁의 시대 조선의 의료는 총독부의 통제 아래 더욱 강하게 재편됩니다.
전통의학은 의생이란 이름으로 살아남았지만 그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죠.
나라를 잃은 것만으로도 모자랐을까요.
수백 년을 이어온 한의학은 이제 이름조차 달라졌습니다.
한의사들은 모든 것을 부정당한 시절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제도는 그들을 밀어냈습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1945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전쟁도 마침내 막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일본제국은 무너졌고 올 것 같지 않던 해방은 그렇게 찾아왔죠.
하지만 해방과 동시에 이 땅의 제도와 질서 역시 새로운 혼란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미군정은 조선의 기존 법령과 제도를 당분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합니다.
일제가 만든 의료체계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던 거죠.
해방 이후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기도 전에 1950년 6월 우리나라는 또 다른 아픔을 맞게 됩니다.
한국전쟁이죠. 국토는 파괴됐고 피란민들은 전쟁을 피해 아래로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그 끝에는 부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시는 이미 한계를 넘어선 상태였죠.
피란민들이 몰려들던 부산. 어떻게든 삶을 살아가야 했지만 부족한 식량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질병은 빠르게 번져갔습니다.
그러나 이때 빛을 발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의사들이었죠.
전쟁은 모든 것을 멈춰세운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폐허 속에서도 살아가야 했기에 누군가는 그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한의학도 그렇게 살아남았습니다.
부산 서구에 위치한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입니다.
오랜 시간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품어온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중요한 공간 가운데 하나였죠.
당시 이곳은 피란수도 부산의 정부청사였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1950년대 피란수도 부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부회장님 따라가면 되겠죠?
-반대!
-막아!
-(해설) 전라남도 나주에 왔습니다. 여기까지 왜 왔냐고요?
이곳에는 피란수도 부산에 남겨진 한의학의 역사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박훈평 교수가 있습니다.
그가 보관하고 있는 자료들에는 그 시절 부산 한의계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해설) 중풍의 질환과 증상, 처방과 예방법까지 세세하게 기록된 동의보감 잡병편입니다.
그런데 부산의 한의사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핵심 처방으로 압축된 것을 볼 수 있죠.
기록 속에 남아 있던 이름들과 그들이 살았던 도시. 이야기는 다시 부산으로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박훈평 교수가 이곳을 방문했네요.
자료를 찾아나선 두 사람.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은데요. 네, 우리도 따라가 볼까요?
잊혀진 기록들은 오랜 시간 조용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격동의 시간을 견뎌낸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습니다.
전쟁과 이전을 거치며 많은 기록들이 사라졌죠.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 어디론가 흩어진 것들 그럼에도 잊혀지지 않고 남아 있는 흔적들이 있습니다.
낡은 종이 한 장, 빚바랜 이름 하나에도 그 시절 한의사들의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63년도 것도 있네요.
-네, 63년.
-(해설) 그리고 지금 잊혀졌던 기록들이 조금씩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휴전 이후 부산에서는 한의사협회가 만들어집니다.
그 중심에는 이우룡 선생이 있었죠.
한의사이자 교육자이던 그는 동양의학전문학원을 이끌며 후학을 길러냈고
한의사제도를 법으로 되살리기 위해 누구보다 앞장섰던 인물이죠.
그리고 그의 곁엔 뜻을 함께한 한의사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오인동지회죠. 이 다섯 명의 한의사들은 혼란한 현실 속에서도 한의학을 지켜내기 위해 함께 힘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경남 창원에 위치한 한 한의원입니다.
대를 이어 한의원을 지켜오고 있는 정현지 원장. 그녀의 할아버지는 오인동지회의 정원희 선생입니다.
-이 책들도 다 일일이 적으신.
-(해설) 늘 국회에 보낼 편지를 쓰시던 모습으로 기억되던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지키려 했던 그 한의학의 정신은 이제 손녀에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간절한 편지 한 장으로 한의학을 지켜냈던 것처럼 그녀도 오늘 진료실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1951년 국민의료법이 공포되던 순간을 누구보다 기다렸던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흩어진 한의계 인사들을 연결했던 인물 바로 배원식 선생입니다.
배원식 선생의 수제자인 이종안 원장. 그는 지금도 스승의 이름을 단 한의원을 지키며 스승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죠.
혼란 속에 흩어졌던 한의계. 배원식 선생은 원로 한의사들과
부산 지역 한의계 인사들을 연결하며 한의사제도를 되살리기 위해 힘썼습니다.
흩어진 것들을 다시 잇는 일, 그것이 선생이 택한 길이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사라지고 도시는 변합니다.
한때 피난민들의 터전이었던 부산은 이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대한 현대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우리의 의료 역시 끊임없이 변화를 이어오고 있죠.
이제 의료를 바라보는 방식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현대 의학과 한의학은 한때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이제는 각자의 강점을 함께 고민하게 된 시대가 된 것입니다.
몸을 바라보는 방식은 달라도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은 거죠.
의료가 발전할수록 사람의 몸을 하나로 이해하려는 노력 역시 조금씩 이어지고 있습니다.
진단은 더 정밀해지고 설명은 더 명확해지고 있네요.
한의학이 쌓아온 경험과 직관, 서양의학이 열어준 객관적 언어. 두 의학이 만나면서 환자는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전통의학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의학은 현대 의료기술과 만나며 보다 객관적인 진단을 시도하고 있죠.
과거 경험과 감각에 의존했던 진단 방식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현대 의료장비를 통해 환자의 상태를 보다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방적인 진단과 치료를 함께 고민하는 시대가 된 거죠.
그리고 변화는 치료 방식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한약 치료를 넘어 약침과 같은 새로운 방식들이 등장하며 한의학 역시 시대에 맞춰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시상.
-오늘 어떤 게 불편해서 오셨을까요?
-마음이 답답한 것도 있고.
-(해설) 한의학은 이제 몸의 질환을 넘어 정신의학의 영역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함께 바라보려는 시도 역시 조금씩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현대사회에서 정신건강의 문제는 점점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죠.
이 가운데 한의학은 몸과 마음을 함께 보며 다양한 방식의 치료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약물 치료를 넘어 몸의 균형과 마음의 안정을 함께 살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정신의학에서도 한의학이 함께하고 있다니 이거 정말 신기하죠?
-발바닥, 발등, 발가락에 거쳐 주위의 이동을 서서히 진행해 보겠습니다.
-(해설)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한의학은 과연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요?
수백 년의 경험을 품은 한의학이 이제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바로 인공지능 AI죠.
가상 환자와 대화하고 데이터를 쌓고 패턴을 읽으며 오래된 지혜와 첨단기술이 한 교실 안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한의학의 다음 세대를 열어갈 이들이 지금 이곳에서 그 첫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어스름이 내려앉은 저녁. 부산한의사회 불은 아직 환합니다.
이 불이 켜질 수 있었던 것은 수백 년의 시간과 전쟁과 혼란의 시대를 견뎌낸 수많은 한의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하겠지요.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사라지고 도시는 변하지만 피란수도 부산에서 이어졌던 그 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편지를 썼고 누군가는 교실을 열었고 누군가는 진료실을 지켰기 때문이죠.
조선의 가장 위대한 의학서 동의보감. 그 지혜는 한때 빼앗기고 밀려나고 지워지면서도
이 도시에서 살아남아 그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백발의 한의사는 어김없이 의원의 문을 열고 할아버지의 뜻을 품은 손녀는 오늘도 환자를 만납니다.
그렇게 한의학은 오랜 시간을 견뎌내며 오늘도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경험은 가장 위대한 과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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