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특집

KNN 특별기획 3부작 한반도의 보석 국립공원 - 1부 산 山

등록일 : 2022-12-26 13:44:09.0
조회수 : 436
소백산 연화봉
-(해설) 해가 떠오르면 숨어 있던
안개는 구름이 되고 바다가 됩니다.
춤을 춥니다.
물은 산을 밀어내지 않고, 산은 물을
가두지 않습니다.
산과 숲은 단 한 순간도 같은 얼굴인
적이 없습니다.
담비(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그 속에서 담비는 한반도 야생의 대표적
포식자가 됐습니다.
한반도에 국립공원이 들어선 지 반세기가
훌쩍 넘었습니다.
여기는 한반도 국립공원, 생명의
땅입니다.
KNN 특별기획 3부작 한반도의 보석 국립공원 1부 산 山
해가 진다고 세상이 어둠으로 뒤덮이지는
않습니다.
달은 어김없이 해의 빈자리를
메꿉니다.
밤의 생명들에게 약하게나마 태양 빛을
아낌없이 반사해줍니다.
죽어서 1000년을 서 있는 주목에도
달빛이 스며듭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인 이른 아침.
잔뜩 구름이 끼어 있지만 산을 오르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60대 중반을 넘어선 그녀는 지금
지리산을 오를 것입니다.
이곳에 온 뒤로 하루도 거르지 않는
일과입니다.
잃어버린 백두대간을 찾아내고 그
백두대간을 처음으로 걸어가고 또
걸어왔습니다.
-내 앞에 놓인 긴 길.
내가 걷지 않으면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
인생도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야 한다.
나는 내 삶을 살 듯 길을 가고 있다.
수천 번 같은 산, 같은 길을 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 길은 단 한 순간도 같은
풍경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해설) 이 소나무는 그녀가 산을 오를
때면 꼭 찾는 벗입니다.
-(해설) 그녀는 산악인의 노벨상이라는
알베르 마운틴상을 받고 얼마 전
돌아왔습니다.
-당당하다, 품위가 있다.
나이 들수록 나무들은 더 당당해진다.
-당당하고 싶다, 우아해지고 싶다.
나도 나무처럼 나이 들고 싶다.
-(해설) 하지만 이곳에 오면 그녀의
마음은 아픕니다.
송진을 얻기 위해 도려낸 상처는 80년이
지난 지금도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그대로 두자.
그대로 두자.
제발 그대로 두자.
-(해설) 만물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거대한 산들도 시간에 따라 오만 가지
모습으로 바뀝니다.
계절은 그 변화의 중심입니다.
자연의 시간은 그래서 정직합니다.
한때 자취를 감출 뻔했던 담비는 이제
산과 숲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됩니다.
썩은 나무에서 뭔가를 놓고 까마귀
무리와 시비가 붙었습니다.
어느 쪽도 포기하지 않을 기세입니다.
1년에 단 한 번.
10월 마지막이 되면 해발 800m
삼성궁에서는 하늘에 감사의 제를
올립니다.
잊히고 또 잃어버렸던 의식들이
복원됐습니다.
이제는 외국인들이 더 찾는 예술
공연장이 됐습니다.
1000년 전 주목은 죽었지만, 아직 살아
있습니다.
백두산에서 뻗어 나온 줄기는 한반도의
등뼈가 됐습니다.
그리고 국립공원은 한반도의 보석처럼
뿌려져 지금에 이릅니다.
최후의 보루처럼 국립공원은 산들을
지켜내고 숲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봄이 가기 전 수리부엉이는 새끼들을
길러내야 합니다.
무성해진 숲은 다양한 생명을
품습니다.
홀로 자전거에 살림살이를 싣고 다니며
전국 100개의 산을 두 다리로 올랐다.
산을 오를 때마다 땀이 흐른다.
생각은 녹아내리고 감정은
조용해진다.
비는 비대로 내리고
풀벌레는 풀벌레대로 운다.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불과 한 달여 사이 수리부엉이 둥지가
어미만큼 자란 새끼들로
비좁아졌습니다.
사라져가던 산양이며 여우, 반달곰까지
야생동물 복원도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산을 찾는다고 해서 이들을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 그래, 올라와.
-옳지, 올라와.
-어서 와.
-여기 위에 있네.
-말 잘 듣네요.
-(해설) 한 야생동물이 산 아래 문명의
한복판에 나타났습니다.
-여기 와.
-이리 와, 이리 와.
-아기, 이리 와, 우리 아기.
이리 와봐.
착하지, 여기 있네.
여기 있네, 여기 밑에 있네.
엄마 던져준 거 있네.
-옳지, 옳지.
-빨리 와, 먹고 힘내자.
이리 와.
-옳지.
-(해설)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에
익숙해진 이 여우는.
-잘한다.
-예쁘다.
-(해설) 지난 2021년 12월
소백산에 풀어놓은 수컷입니다.
GPS로 역추적해 보니 8개월 동안
동해안을 따라 400km를 이동해 남쪽으로
왔습니다.
밀렵과 쥐약 등으로 사실상 멸종에
이르렀던 여우는 지난 2012년부터
국립공원에서 복원이 시작됐습니다.
이후 휴전선을 넘어 북한으로 넘어간
개체까지 지금은 전국으로 확산한 것이
확인됐습니다.
세 마리 새끼를 비롯해 어미까지 여기
다섯 마리는 모두 한 가족입니다.
이 가족은 지금 소백산으로 풀어 놓기 전
야생 적응 훈련 중입니다.
야생에서 토끼는 여우의
먹잇감입니다.
호기심은 가득하지만 쉽사리 다가가지
못합니다.
그러다.
본능적으로 달아나는 토끼의 뒤를
쫓습니다.
토끼는 금방 지쳐버리지만 어떻게
잡을지는 모릅니다.
아직 훈련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우리 속에서의 사냥과는 달리 야생에선
두 번의 기회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해설) 자연의 두려움과 어려움은 인간의
크기를 작고 겸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럴 때 마음이 숨을 죽인다.
문명의 빛이 들지 않는 곳.
그래서 별빛은 오랜 세월 이 산 구석구석
모든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조용하게 가라앉았던 물이 떠오른
태양으로 다시 춤을 춥니다.
물은 비로 내리지 않아도 안개로서
만물을 골고루 적셔줍니다.
물이 태양을 질투하면 안개로 변해
한낮을 조용하게 만듭니다.
-저 새소리요.
새가 법문을 하네.
이런 생각이 드네.
-(해설) 중력으로 떨어졌던 물이 다시
하늘로 솟구칩니다.
세상은 단 한 순간도 멈춤 없이 이렇게
변화하고 순환합니다.
그 물이 바위로 스며들고.
뒤이어 그 작은 틈으로 또 바람이
스며듭니다.
그래서 세상에 모난 것들은 물과 바람이
시간을 만나 해결해줍니다.
산들은 느리지만 그렇게 천천히 모습을
바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만이 느린 변화를 답답해하는
듯합니다.
아찔한 높이의 이 절벽은 한때 경외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중독성 강한 취미의
대상입니다.
사람들은 목숨을 내놓고 절벽을 오르고.
이 식물은 아예 목숨을 절벽에 얹어
놓고 살아왔습니다.
이 험한 산지에서 쌀을 맛보려면 논은
이처럼 계단으로 만들어야 벼를 심을 수
있습니다.
여름 산에는 모든 것이 자라납니다.
파괴적인 문명을 피해 산으로 내몰렸던
식물들은 이곳에서 다시 번성하고
있습니다.
복원을 위해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했던
곳들을 살짝 들여다봅니다.
숨겨졌던 보석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숨겨지기에는 너무 거대한 것도
있습니다.
너무 높아 1km 밖에서 봐야 전체가
보입니다.
3단으로 모두 320m.
물과 바람이 시간과 손을 잡고 빚은
모습입니다.
물의 인내가 바위에 새겨지고 또
새겨지고 있습니다.
너무 높은 탓에 떨어지는 물은 물보라가
되고 다시 물로 모입니다.
그러기를 반복하며 물은 이 절벽에서
잠깐 짜릿하고 호기심 어린 여행을
이어갑니다.
가을은 소리 없이 색으로 다가옵니다.
도로가 없는 이 높고 깊은 곳에도
사람이 삽니다.
아랫마을에 벼 수확이 시작될 즈음,
여기서는 다른 것을 수확합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늘 가까이에
있습니다.
-(해설) 물과 땅과 햇살이 길러낸
이 배들은 약으로 쓰일 것입니다.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식물이라도 다
성질이 다릅니다.
그 성질을 알면 그것이 약초가 되고
약이 됩니다.
알면 보입니다.
키 큰 이 배나무도 나에게는 약입니다.
여기서는 공기조차 약입니다.
-(해설) 이 시기 나무에 오르는 것은
사람만이 아닙니다.
뭘 하는 걸까요?
키 큰 상수리나무에서 이 곰은 열심히
뭔가를 따 먹습니다.
도토리입니다.
열매를 흘리면서 따 먹는 듯 보이지만
입은 아주 섬세합니다.
열매만 꼭지에서 쏙 빼내 씹은 뒤.
껍질은 버립니다.
입이 섬세한 손입니다.
배를 다 땄으면
다 먹었으면
이제 내려와야죠.
지리산에 반달곰을 풀어놓은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반달곰이 지리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오삼이라고 불리는 한 수컷의 1년 동안의
이동 모습입니다.
지리산을 떠나 어느샌가 가야산에서
목격되더니 5개 도를 여행하듯
다녔습니다.
그다음 해에는 더 북쪽인 속리산
부근까지 갔다 옵니다.
이 혈기 왕성한 오삼이를 시작으로
지리산은 이제 반달곰들에게
비좁아졌습니다.
2022년 말까지 79마리.
지리산의 경계를 훨씬 벗어나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이제 전국 깊은 산 어디에서든 반달곰을
만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산은 어머니 품과 같습니다.
그래서 산에 들어설 때는 항상
감사하다는 마음이 듭니다.
좋은 마음을 가져야 좋은 약초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해설) 태양이 쉬는 밤에도 야생은
달빛과 별빛으로 길을 잃지 않습니다.
모두가 곤히 잠든 새벽 4시.
달빛과 별빛을 삼키는 강한
인공의 불빛들이 물 밀듯
산 정상으로 오릅니다.
부지런한 이들의 재촉으로 태양은
오래 쉴 수가 없습니다.
같은 태양이지만 한 번도 같은
모습인 적은 없습니다.
설악의 해는 바다에서 떠오르고
월악의 해는 소나무 숲 사이로 보입니다.
어디서든 떠오르는 해는
물에 씻은 듯 맑았습니다.
-(해설) 이 삼층석탑은 그렇게 1500년의
시간 동안 아침 해를 맞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했지만
이제부터 바쁩니다.
오전 예불을 드리기 전
꼭 할 일이 있습니다.
-땅콩도 주세요.
-땅콩이...
-(해설) 깊은 산 사찰에 터를 잡은
이 다람쥐의 볼이 터져 나갈수록
다가오는 겨울은 안전해집니다.
이곳 계단은 절벽처럼 가파릅니다.
그래서 모든 이는 허리를 숙여야 합니다.
겸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극락의 세상에 지어진 무량수전은
욕심과 화려함을 덜어냈습니다.
나무로 지었지만 1000년의 세월 동안
비와 바람, 태양을 벗 삼아 서 있습니다.
구별도, 차별도, 경계도 없는 보이는
그대로가 진리라는 화엄 사상이
이곳에 녹아 있습니다.
1년에 한 번.
거대한 탱화가 내걸립니다.
조용하던 산사가 오늘만큼은
야단법석입니다.
어머니에게 매일 차를 공양했던
인도에서 왔다는 연기조사의
효심은 이렇게 돌로 남아 1300년의
세월을 견디고 있습니다.
산의 색이 달라집니다.
산이 색을 토해냅니다.
몇 개의 폭포가 보이는가요.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생명들은 자연의
질서를 압니다.
물은 그들을 내쫓지 않고 새로운 자리를
찾아줍니다.
혼돈스럽게 보일지라도
전혀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물은 이 시기에도 분주합니다.
수리부엉이는 진즉 새끼들을
독립시켰습니다.
야생의 초가을 산은 이미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시들어도
차나무의 잎은 푸릅니다.
하지만 가을은 하룻밤 새
겨울로 변합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어도 생명은 기회가
주어지면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하지만 높은 산은 사정이 다릅니다.
눈과 바람에 생명들이 숨을 죽였습니다.
그러다 또 눈이 내리고
모든 것이 파묻혀 갑니다.
생명들은 늘 그렇듯 견뎌내야 합니다.
견뎌내는 법을 압니다.
이 시기 벌통 속의 벌꿀은 참기 힘든
유혹입니다.
또 시간은 그렇게 흘러갑니다.
그 순환의 과정에서 물은 하늘로 또
땅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한순간도 멈추지
않습니다.
아침 산행을 마친 그녀가 의식을 치르듯
꼭 하는 일과가 있습니다.
햇살 좋은 마당 평상에서 산을 보며 차를
마시는 일입니다.
-산은 나의 신이자 나의 종교이며
나 자신이다.
신을 섬기듯 산을 섬긴다.
나는 남북이 하나로 이어지는
완성된 백두대간을 걷고 싶다.
정말 간절하게 걷고 싶다.
-(해설) 여기는 한반도 국립공원.
생명의 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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