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특집

특별대담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에게 듣는다

등록일 : 2023-08-28 14:20:05.0
조회수 : 635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박영환입니다.
보훈 하게 되면 보통의 경우는 시혜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죠.
국가가 일방적으로 베푸는 거다, 이런 인식이 있는데요.
진정한 보훈이라고 하는 거는 예우하는 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우 속에는 존경한다는 뜻이 내포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보훈 문화 혁신을 위해서 아주 굵직굵직한 정책을 내고 계시고 또 여러 현안에 대해서 분명한 자기 소신을 드러내면서 정치적인 존재감까지 키워 가는 분이 계시죠.
국가보훈부의 초대 수장이십니다. 박민식 장관 만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관님,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62년 만에 숙원 사업을 이루셨습니다.
장관급으로 격상이 됐는데 어쨌든 지금 여소야대기 때문에 보훈에 진영은 없다고 하지만 끌어내시는 데는 여러 가지 노력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정말 제가 국가보훈부처장으로 임명되자마자 제가 윤석열 대통령께 직접 말씀을 드렸습니다.
정말 국가 보훈이라는 것이 대한민국의 사활적 가치를 다루는 곳이기 때문에 이게 지위가, 위상이 그동안 차관급이다, 장관급이라고는 하지만 정식 부가 아니다.
왔다 갔다 했는데 이래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많은 여야 국회의원들한테도 이것은 정쟁의 또 정치의 영역이 아니다.
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그런 정치인들 아니냐 해서 정말 1년 만에 그렇게 국가보훈부 승격을 만장일치로 국회를 통과시켰고 저는 우리 대한민국 정부
조직의 역사에서 큰 그런 획을 그었던 그런 아주 감동적인 일이었다라고 자평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역대 보훈부 장관 가운데는 뉴스에 굉장히 많이 등장하시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제가 그것도 직접 봤는데 오성규 애국지사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광복군 3지대 출신으로.
-그렇죠.
-유일하게 생존해 계시는 분이죠. 그분 직접 김포공항에서 맞으셨지 않습니까?
-김포공항이 아니라 실제 제가 도쿄로 날아갔습니다.
-가서 모시고 오셨죠.
-그래서 직접 같이 식사도 하고 또 댁에도 찾아뵙고 또 비행기에 오면서 옆자리에 앉아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정말 저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상당히 뿌듯했고 또 보훈부 장관으로서도 이것은 당연히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해서
모시고 왔는데 의외로 많은 국민들이 정말 박수를 쳐 주셨고 오성규 지사님 역시 지금 마지막은 고국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
그 소원을 이루어 주어서 고맙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평소에 한 분의 독립운동가라도 더 찾아내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계시잖아요.
-그렇습니다.
-최근에 관심이 갖던 분이 윌리엄스 선생님이신데 그분은 어떻게 해서 발굴을 했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어떤 국적이 다른 분들도 많이 계시는데 아직까지도 많은 분들이 제대로 조명이 안 된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우리 그런 담당하는 부서도 있고 실제로는 어떤 경우에는 현지를 찾기도 하고 또 오래된 서적을 일일이 찾아보기도 하고 그런데 그분이 아마
광복군에게 또 영어를 가르쳐 주시고 이렇게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우리 장관님들 출연을 하시면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한번 점검을 해 봅니다.
그래서 제가 보훈부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는데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전에 이달의 독립운동가는 제가 몇 번 봤던 건데 전쟁 영웅을 매달 뽑아서.
-그렇습니다.
-스토리를 게재를 하고 있더라고요.
8월 같은 경우는 귀신 잡는 해병 신화, 이게 미국 종군 특파원이 썼던 건데.
-마가렛 히긴스, 여성 종군 기자가.
-그렇죠. 그런 부분이 있었고 지난 7월에는 윌리엄스라고 미국 해병 대위인데 이분이 유명한 미국 보스턴 레드삭스의 대표 선수였어요.
-그렇죠.
-이런 것들은 어떻게 발굴을 하시는 거죠?
-그것도 미국 국방부다, 또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다.
여러 가지 전쟁 편찬, 사료, 그런 거를 일일이 검색을 하고 테드 윌리엄스 경우는 메이저리그 거의 100년 넘는 역사에서 가장 전설적인 타자 아니겠습니까?
그분이 제가 알기로 수십 번의 파일럿으로 출격을 한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일 뿐만 아니라 6.25 전쟁의 가장 빛나는 그런 전쟁 영웅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가 예우를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최근에 우리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잖아요. 고 채수근 상병.
10년간 시험관 아기로 어렵게 태어난 아들인데 안타깝게 숨졌어요.
그래서 모든 국민이 안타까워하던 마당에 다음 날 보국훈장 광복장을 곧바로 추서했습니다.
그런데 기존까지만 해도 군인, 경찰, 소방관, 이런 분들 서훈을 위한 보훈심사위원회 절차가 넉 달, 석 달, 이렇게 소요됐다고 들었거든요.
-저도 개인적으로 아들이 군대에 있습니다.
채수근 상병 일이 있었을 때 저도 직접 조문하고 또 아버님을 만나고 했는데.
아버님이 제 손을 잡으면서 양지 바른 데 꼭 좀 묻어달라.
제가 너무 마음이 짠하고 했는데. 지금 말씀하신 그런 일이 두 번 다시는 생겨서는 안 되겠지만 또 그분들이 현역병으로 복무하는 것이 결국 우리 보훈 대상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그 숭고한 일이기 때문에 이분들에게 혹여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기왕 다른 방식.
그러니까 일반적인 방식에 따라서 보훈심사위원회를 거치고 입증을 누가 하고 증거는 뭐고 이렇게 하면 사실 그 과정이 너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당사자들 입장에서 상당히 나라에 대해서 서운한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패스트트랙.
그런 방식을 밟아서 자동적으로 사실상 아주 신속하게 그런 서훈 조치를 하는 것이 맞겠다 해서 이번에 어떻게 보면 첫 사례였습니다.
-국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패스트트랙을 채용해서 아이디어를 얻으셨군요.
-저희는 좋은 의미의 또 대한민국 국민이 박수 치는 그런 패스트트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유공자 범위 저도 찾아보니까 종류가 많아요.
-많습니다.
-독립운동, 참전용사, 민주화운동 또 공무 수행과 관련된 순직.
보훈 대상도 넓고 또 유형이 복잡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보상금 지급 규모를 놓고도.
특히 참전 명예 수당은 어느 도에 거주하느냐에 따라서 10배까지 차이가 난다고 하거든요.
그러면 이게 많이 받는 분은 좋아하실 수도 있지만 약간 서운함을 느끼는 분도 있잖아요.
이런 거는 좀 조정을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우선 제가 하나 정정하겠습니다.
우리 국가유공자가 있고 민주화유공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5.18 같은 경우는 민주화유공자. 그리고 독립이든 6.25 전쟁 때 전사한 분들, 이런 분들은 국가유공자.
이렇게 나뉘어 주시길 바라고. 지금 말씀하신 그런 부분.
참전용사가 다 청춘과 또 자기 일생의 빛나는 시간을 나라를 위해서 바치고 희생한 건 비슷한데 어떻게 지역에 따라서 그 예우, 보상금이 다르느냐.
말씀하신 대로 어떤 경우는 10배도 차이난다, 이런 기사도 있고 한데.
이렇게 되면 그런 분들이 나라에 대해서 공정하다는 생각을 못 가지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시다시피 그런 차이가 나는 이유 중 하나는 각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선거로 뽑히다 보니까 그분들이 뭔가 표심을 생각해서 어떤 곳에서는
훨씬 많이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훨씬 적게 하고 하다 보니까 그런 차이가 나서 앞으로는 국가보훈부가 불공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중앙정부에서 적극적인 가이드라인을 권고할 예정입니다.
-이제 가족 이야기를 여쭤보고 싶은데요. 고 박순유 중령, 아버님이시죠?
-그렇습니다.
-베트남전의 맹호부대 정보통역장교로 참전했다가 순직하셨어요.
제가 보니까 7살 때 아버님이 그렇게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어땠습니까, 그때 그 소식 듣고.
-저는 사실 기억이 그렇게 뚜렷하지 않습니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어려서.
다만 선친의, 맹호부대 첩보부대장입니다, 정확하게.
정보통역장교라기보다는 맹호부대 첩보부대장이었는데 전사했고. 그때 제가 시골에 살 때인데 군복.
군복을 그 동네 분들이 다 모여서 태우는 그 장면이 제가 10년, 20년 어른이 되고 나서도 계속 기억에 트라우마같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 시간이 많이 지났고 또 제가 국가보훈부 장관이기 때문에 제 개인적인 그런 걸 떠나서 어릴 때부터 그런 전사자의 아들이기 때문에 다른
분들보다는 우리 보훈의 의미나 정책에 대해서 더 피부로 저는 체감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관님이 시혜적 보훈이 아닌 보훈의 일상화, 이걸 말씀하고 계시고.
-그렇습니다.
-아까 예우라는 표현도 제가 오프닝에서 했습니다만.
-맞습니다.
-이런 것들이 어렸을 때 경험이 녹아 있다고밖에 볼 수 없어요.
-그렇습니다. 아까 저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게 보훈이 시혜가 아니라 예우라고 정리를 해 주셔서 너무 제가 감사드리는데 과거에는 보훈 하면 그냥
어려운 분들, 우리가 구휼 제도, 도와주는 국가가 일방적으로. 그런 것으로 많이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경우에는 받는 사람 입장에서 상당히 부끄럽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제가 원호 대상자로 어린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선생님이 원호 대상자 손 들어라라고 하면 아버지가 나라가 위해서 전사했는데 그런 것은 온데간데없고
그냥 나라가 뭔가 어려운 나를 일방적으로 도와줘서 내가 참 부끄럽다. 숨고 싶다, 이거는 아니죠.
그래서 우리나라를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한 분들에 대해서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나라가 정책적으로 지금 와서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그것은 시혜가 아니라 아까 말씀하신 대로 예우다.
이게 참 중요한 저는 개념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제 어디 언론 인터뷰 보니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자부심보다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 나랏돈을 도움받는다는 그런 부끄러움이 컸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언급을 하셨어요. 그래서 어찌 보면 보훈부 장관 낙점이라고 하는 게 운명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또 윤석열 대통령하고는 검찰 선후배 사이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잘나가던 특수 검사 시절에 그만두려고 사표 냈을 때 점심 먹자, 밥이나 먹자 하면서 말렸다는 이야기도 있더라고요.
-제가 윤석열 대통령님하고 검찰에서 같이 근무를 한 적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이름은 아는 정도였는데 제가 사표, 서울지검특수 1부에 제가 수석 검사로 있다가 갑자기 사표를 쓰게 되었고 그 당시에 이름만 아는 정도의 그런
선배였는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좀 나와 봐라.
-밥 먹자.
-밥 먹는 것보다 밖으로 어디 식당으로 나와 봐라 해서 일과 시간 중인데 아주 1시간 동안 아주 극구 만류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속으로는 약간 솔직히 뜬금없었습니다.
그런데 들어오면서 이분이 저하고 거의 인간관계가 없는 분인데 어떻게 직접 불러내서 참 이렇게 만류를 하니까 인간적으로 상당히 큰 형 같은 그런 고마움을 느꼈던 것은 사실입니다.
-보훈부 초대 장관 되시고 나서 처음 맞이하는 현충일에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선친의 묘를 참배했다고 하는데 제가 화면을 찾아보니까 원래 약속된 건 아니었더라고요.
-그때 저는 너무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실은 비서실장께 그게 갑자기 대통령께서 가자 해서 제가 비서실장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대통령의 스케줄이나 동선은 다 미리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대통령께서 저의 선친 묘소만 가시려고 한 건 아니고 월남전 참전용사의 묘역과 대간첩 작전에서 희생된 그 묘역을 꼭 가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걸 제3 묘역이라고 하거든요. 제3 묘역.
-그래서 월남전 참전 전사자 묘역에 가서 저희 선친 묘역에서도 참배를 하시고 그 주변에 있던 모든 분의 묘역을 일일이 다 돌아보셨습니다.
그래서 유가족들하고도 다 인사를 하고 거기서 시간이 거의 제가 알기로 한 30분 이상 아마 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 대통령이 제3 묘역 방문한 건 42년 만이라는 이야기도 있고요.
또 거기에 유가족들이 살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온다 해서 굉장히 감격했다.
그런 이야기도 있고 그 부분에서도 대통령이 그런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대한민국을 자유와 번영은 전사하신 분들의 피 묻은 전투복 위에서 시작된다. 그 말씀을 하셨는데.
-맞습니다.
-그 말씀 듣고 나서 보훈부 장관 잘해야겠다, 이렇게 더 결심을 했죠?
-우선 그때 상황이 전혀 예상하지 않은 어떤 시나리오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현장에서 정말 한 분, 한 분 손을 꼭 잡으면서 유가족들하고 인사하고 또 그런 말씀을 하셔서 거기에 오신 분들이 자기 평생 국민 묘지를 왔지만
현직 대통령이 다른 대통령 묘소나 또 유명하신 분들 그런 데는 가지만 일반 사명이나 작묘의 묘역에는 온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현직 대통령이 방문까지 해서 또 그렇게 위로를 해 주시니까 참 너무 모든 유가족이 이분은 정말 진정성이 있는 분이다.
그렇게 아마 생각을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이제 보훈의 생활화와 관련해서 관심을 끄는 게 제가 검색을 해보니까 1월에 이스라엘 방문을 하셨는데 쉘라흐라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요.
국가 정체성 교육 프로그램. 그러니까 우리가 보훈이라는 거를 아까 말씀드렸듯이 단순하게 시혜 아니면 예우
이런 차원을 넘어서 이게 우리 후손들에게 뭔가 교훈을 주고 교육의 효과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게 진짜 뿌리 내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혹시 그런 프로그램이나 이런 거 구상을 하고 계시는 게 있습니까?
-저는 제가 국가보훈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가장 제가 해야 할 그런 책무다라고 하면 저는 지금 말씀하신 그런 국가 정체성 교육을 꼽고 싶습니다.
아쉽게도 지난 정부에 제가 사실은 참 방송에서 이런 말 하기가 저도 좀 곤혹스럽습니다마는 우리 국가보훈부에
사실은 나라 사랑 교육이 과하다는 게 있었습니다.
그런 나라 사랑 들어가는 그런 조직을 다 없앴어요. 저는 너무 사실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대한민국 공직자가 또 대한민국의 중앙 부서가 나라 사랑하자고 하는데 뭐가 그게 잘못됐습니까?
참 이 정체성 문제가 이렇게 혼란스러워서는 안 된다.
그래서 항상 고민하고 있던 차에 이스라엘을 가보니까 쉘라흐 프로그램 보고 너무나 감동을 받았고.
우리나라에서도 정말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것은 진보다, 보수다, 그런 정치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잘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 어린 학생들이 우리 후세 넥스트 제너레이션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이 대한민국 사랑하고
대한민국에 소속감을 더 가지고 대한민국의 더 그렇게 응원하는 그런 마음을 갖게 하자는 건데.
그래서 그런 것을 시스템으로 빨리 도입하려고 관계 부서와도 교육부다 이런 데와도 협의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에는 현안이랄까요. 이런 거 관련된 질문을 좀 드려보겠습니다.
백선엽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 적힌 친일 반민족 행위자 표현, 이게 삭제되지 않았습니까?
이 부분과 관련해서 윤봉길 의사 손녀인 윤주경 의원은 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한 건 아닌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했고요.
광복회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절차적 논의나 국민적 공감대 없이 일방적으로 삭제한 건 국민을 분열시킬 수 있는 거 아니냐, 원상회복해라, 이건 어떻게 보십니까?
-제가 우선 팩트 체크를 하겠습니다.
우선 광복회의 그런 보도는 그때 보도가 어떻게 났는지는 모르지만 광복회장 이종찬 광복회장한테 두 번, 세 번, 네 번을 제가 확인해서 이렇게 방송에서도
공개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광복회장한테 그걸 물어봤습니다, 어떻게 된 거냐고.
그런데 광복회장님 말씀이 뭐냐면 백선엽 장군은 결코 친일 반민족 행위자가 아니다.
이게 이종찬 광복회장의 정확한 입장입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그분이 광복 독립지사의 후손이지 않습니까?
선배 광복군들의 조사에 따르면 선배 광복군들의 조사에 따르더라도 백선엽 장군은 그런 친일 반민족 그게 아니다.
이게 우리 이종찬 광복회장의 입장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팩트 체크를 해주시고.
또 윤주경 의원께서 그렇게 말씀을 한 취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기본적으로 그 부분도 아마 윤주경 의원이 팩트 체크를 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백선엽 장군이 우선 친일파냐.
그러면 친일파의 정의가 뭡니까? 그런 부분에 대해서 정확하게 윤 의원님께서 확인해 주셨으면 좋겠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당시에 백선엽 장군 친일파 기재, 기재한 그 자체가 문재인 정부 때 쉽게 말해서 아무 법적 근거 없이 억지로 그것을 어떤 쉽게 말해서 기재해 놓은 거예요.
공무원이 어떤 행위를 하려면 우리가 법치 행정이기 때문에 법령에 의한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재미로 또는 자기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무렇게나 빼고 넣고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 국립묘지 안장 사이트에 이분이 친일파다라고 기재하려면 그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겁니다. 위법 행위죠.
그러면 국가보훈부 장관으로서 당연히 그걸 삭제하는 것은 그것은 의무입니다.
-그때 논란이 됐을 때 장관님이 내 직을 걸고 친일파가 아니라고 이야기할 자신이 있다 하셨어요.
그런데 우리 방송 보시는 분들이 그런 생각을 하실 것 같아요.
요즘 정치권에 직을 걸겠다는 분들이 원희룡 장관도 양평 고속도로 관련해서 직을 걸겠다고 했고.
장제원 과방위원장도 우주항공청특별법 통과시키시면 과방위원장을 내려놓겠다 해서 공직자가 너무 직을 많이 거는 게 상대측 주장을 압박하려는 거 아니냐.
-저는 다른 분들이 어떻게 말씀했는지는 제가 잘 모르겠고.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입장이 너무나 확실하고 자신이 있기 때문에 지금도 또 앞으로도 100번을 누가 물어보더라도 자신이 있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백선엽 장군의 친일 반민족 행위 삭제 부분에 대해서는 저는 100% 당당하고 또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오늘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부분인데요.
광주 태생으로 북한, 중국에서 혁명 음악 대부로 평가받는 정율성을 두고 엄청난 논란이 뜨겁습니다.
우리 장관님과 강기정 광주시장이 정면충돌했어요.
광주시가 48억 원을 들여서 정율성 역사 공원 조성을 추진하는 게 발단인데. 정율성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보세요, 장관님?
-저는 참 우선 강기정 시장이 제가 국회에 있을 때 같이 같은 상임위원회에서 상당히 가깝게 지냈습니다.
저는 강기정 시장도 사실은 곤혹스러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강기정 시장이 지금 시작을 한 게 아니고 그전부터 이어져 온 겁니다, 보니까.
-전임 시장 때 실행된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여러 가지 어떤 진영 간의 또 정치적으로 논쟁이 있다 하더라도 저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 대한민국의 어떤 헌법 가치, 우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하는 헌법 1조 1항 이런 것은 사실 누구라도 다 지켜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이 정율성이라는 분은 우리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분이에요.
이 사람은 인생이 지금 개인적으로 보면 광주에서 태어난 것 이외에는 그 이후부터는 모든 것이 공산 혁명, 그것도 중국 그리고 6.25 전쟁 전에는 북한
정권 수립에 도움을 줘서 김일성한테 표창까지 받고 6.25 전쟁 때는 우리 수많은 우리 국민과 국군의 그런 가슴에 총부리를 들이대었던 그런 인민해방군
또 북한 인민군 그 사람들 열심히 싸우라고 지금에서 보면 나팔을 불고 응원 대장 역할을 한 사람 아니겠습니까?
아니, 그러면 아닌 것은 아닌 것이죠. 어떻게 그런 사람을 그것도 국민 세금으로 수십 억 들여서 기념한다.
공원을 만든다. 이것은 우리가 정말 아무리 양보하려고 해도 진짜 이런 선은 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광주 시민들한테 한번 물어봐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여론조사를 하더라도.
광주라는 데가 어디입니까? 5.18 민주화 정신이 올곧이 깃들어 있는 곳 아닙니까?
그러면 잠들어 있는 그 민주 그런 투사들. 또 광주는 우리 독립지사들을 2600명을 배출한 곳입니다.
6.25 때 수많은 학도병들이 우리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나섰던 그런 어떻게 보면 독립과 호국의 본산입니다.
임진왜란 때도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그런 숭고한 땅에 이 자유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무너뜨리려고 했던 그런 사람을 기념하는 그것도
공원뿐만 아니라 길 이름도 짓고 무슨 음악제도 하고 동묘제도 하고 생가도 복원하고 고향집도 복원하고 이것은 정말 저는 제가 진짜 또 한 번 더 장관직을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저는 이것은 잘못된 겁니다.
-그렇지만 여기 강기정 시장이 안 계시기 때문에 제가 강기정 시장 입장에서 질문 하나 더 드릴게요.
-그렇습니다.
-강기정 시장 생각은 그런 것 같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한중 우호에 이바지한 인물로 김구 선생과 정율성을 꼽았다.
그리고 중국인 관광객는 유치가 목적이라고 이렇게 얘기를 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회해야 합니까?
-당연하죠. 우선은 관광객에서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라의 정체성을 그렇게 훼손시켜서 번 돈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건 말이 안 되는 것이고 그런 논리라고 하면 아니, 러시아 관광객 유치하기 위해서 광주에 스탈린 공원 만들고 일본인 관광객 유치하기 위해서 일본 천황 공원을 만들어야 합니까?
말이 안 되는 것이고 시진핑 주석이 물론 중국의 국가 지도자이지만 그야 그 사람은 그 사람이지 그 사람이 무슨 평가할 권한이 있습니까?
그러면 미국 대통령이 그러면 누구 이 사람 두 사람이 중요하다고 하면 공원을 만들어야 합니까?
그것은 저는 전혀 국민들 특히 광주 시민들 또 젊은 세대들한테 설득할 수 있는 무기가 안 됩니다.
-이제 독립유공자 서훈에 대한 재평가도 추진을 하고 계시고 장관께서는 대표적인 인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꼽고 기념관 건립 추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다큐에서도 나오신 걸 봤어요, 장관님.
그런데 반대로 여운형 선생하고 홍범도 장군 서훈과 관련해서는 전 정권이 과오를 범했다 이런 입장이시잖아요?
이렇게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와 아울러서 어떤 생각이신지 밝혀주시죠.
-기본적으로 진보 또는 보수 여러 가지 보는 어떤 입장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겁니다만 그래도 모든 분이 찬성하는 수밖에 역사적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죠.
저는 역사적인 진실, 역사적인 팩트를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예를 들어서 이승만이라는 인물은 왕정을, 조선 500년 왕정, 그 망해가는 왕정을 민주공화정으로 바꿔서 3.1 운동 임시 정부가 마련됐지 않습니까?
임시 정부 들어왔을 때 이분이 임시 정부의 최고 지도자가 된 사람, 대통령을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일제 36년 동안 미국에서 그런 아주 해외 독립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해방 1945년 이후에 상당히 어지러운 해방 공간에서 우리가 김일성의 길을 갈 것이냐 쉽게 말해서 인민민주주의 공화국 길을 갈 거냐,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길을 갈 거냐 할 때 결국 이 이승만의 선택이 옳았던 것이 지금 우리 70년 우리는 발전을 하고 북한은 지금 저렇게 피폐한 나라로
전락한 이게 증거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6.25를 어떻게 막아냈고 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런 공이 있는 겁니다.
그 이후에 제가 이분을 신격화하고 무슨 그거를 만들자는 게 아니라 그 이후에 이분이 노년의 독재 또 부정 선거 이런 것에 대한 정치적 책임이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역사의 공과를 지금 말해서 있는 그대로 평가를 해야 하는데 과는 침소봉대하고 공은 그냥 지하로 처박아두면 이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그래서 이승만, 건국의 아버지들 중에서 가장 최일선에 있는 사람이고 또 초대 대통령입니다.
그런 사람이 기념관 하나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이 세계에.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뭐냐 하면 지금 그 이후에 박정희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이런 분들이 지금 서울 도서관이든 기념관이든 다 있습니다.
-다 있죠.
-그러면 그런 분들에 비해서 이승만이 그렇게 공이 형편없는 그런 인물입니까?
아니죠. 그러면 두 번째 지금 여운형 이런 말씀하셨는데 여운형, 홍범도의 서훈 그 부분은 저는 서훈은 공적심사위원회가 있습니다.
거기서 객관적으로 판단하면 되는 것이고 어떤 특정 인물 놓고 표적 심사할 이유는 없습니다마는 그 두 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유일하게 어떻게 보면 서훈을 두 번 받은 분이에요.
중복 서훈이 원래 안 되는 겁니다. 중복 서훈이 안 되는데 그렇게 특별나게 왜 이분들만 받았나.
안중근, 김구 선생보다도 어떻게 보면 더 큰 서훈 아니냐, 이렇게 되면. 이런 논란이 있는 것이죠.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가 1919년이 건국이냐, 1948년이 건국이냐, 이것도 약간 소모적인 역사 내전이랄까요, 논쟁이랄까요?
이런 게 여전히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선언적인 건국이었고 48년에 실효적으로 건국됐다고 보거든요.
우리 장관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기본적으로 저는 상당히 소모적인 논쟁이다.
제가 국가보훈부 장관이기 때문에 제 개인 소신이 있습니다마는 명백하게 밝히기보다는 이번에 대통령께서 광복절에 천명을 했지 않았습니까?
건국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겠냐. 이거는 흐름이다, 과정이다.
-그렇죠. 과정.
-지금 말씀하신 대로 저도 개인적으로는 어떤 분들이 여러 가지 학설이 있습니다마는 어떤 정신적인, 꼭 말을 붙이자면.
1919년은 어떤 정신적 건국. 1948년은 실질적 건국, 이렇게 주장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저는 상당히 경청할 만한 그런 의견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까 이승만 대통령 취임사에 대한민국 30년이라고 돼 있고 정부 관보 1호도 대한민국 30년 9월 1일 이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하여튼 이거는 논란은 있지만 대통령이 말씀하신 과정이라는 게 맞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슈가 민주유공자법에 관한 겁니다.
이게 여당이 지금 반대했는데 민주당 단독으로 정무위 소위를 통과했습니다.
이 법률안을 놓고 우리 장관님은 나라의 근본을 뒤집어엎는 일이다, 이거 안 된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저는 절대 반대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선 제가 법률가지 않습니까?
법률가이기 때문에 기본법률 원칙에 직접 위배됩니다.
왜냐하면 법률은 어떤 범위를 정해서 위임해야 하는데 지금 야당에서 제출한 법률안을 보면 그런 구체적인 범위를
지정한 거 없이 그냥 민주화 유공자한테 뭘 줘야 한다, 이런 식으로 돼 있는데 첫째 누가 민주화 유공자냐, 어떤 사람이
민주화 유공자냐에 대한 그런 범위가 아주 애매합니다.
그것을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에서 정해줘야 하는데 그것을 그냥 장관이다 또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것은 포괄위임 금지에 직접 위배가 되고.
두 번째, 두 번째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법은 들어가 보면 좀 어렵습니다마는 뭐냐 하면 민주화 관련자로 국가폭력에 의해서 이른바 피해를 본 사람들.
그 사람들을 거의 자동적으로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해달라는 그런 꼴인데 이거를 국가폭력에 의해서 피해를 본 사람이 자동적으로 유공자가 된다는 거는, 이거는 안 맞죠.
피해를 본 거는 피해 보상을 하면 되는 것이지 그분이 나아가서 피해를 봤다고 자동적으로 유공자다, 이거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무리하게 해서는 안 되고 제가 하나만 우리 시청자들을 위해서 쉽게 설명해 드리면, 케이스를.
오래전에 부산에, 제가 부산 출신이지 않습니까?
동의대 사태라는 게 있었습니다.
-경찰관이 7명이 죽었죠.
-경찰관 7명이 불에 타 죽었습니다.
-4명은 불에 직접 타서 희생되었고 3명은 그 불을 피하기 위해서 창문에 매달려 있다가 희생당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민주화 유공자법이 어떤 식이냐 하면 그런 비극적인 사건의 가해자라고 할 수 있죠.
그런 사람을 지금 유공자로 하자는 법이거든요.
이 대한민국 국민이 그걸 인정하겠습니까?
지하에 억울하게 봉직하다가 순직한 젊은, 다 20살, 21살 젊은 경찰관들 아니겠습니까?
지하에서 눈을 감겠습니까? 이거는 아니죠.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광주시에 대한민국 국민 국군을 죽이기 위해서 총부리를 겨눴던 그런 인물 기념 공원 만드는 거나 우리 그런 경찰관들 불에 타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던 사람 유공자로 하는 거나 나라가 거꾸로 가는 것이죠, 이거는.
저는 이거는 제 온몸을 바쳐서라도 결사반대할 생각입니다.
-굉장히 강력하게 직을 걸고 이런 식의 표현까지 받아들일 정도로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일종의 중재안을 내놨어요.
다툼이 많은 만큼 일단 사망자에 대해서만 논의를 해보자. 이것도 반대하시는 거죠?
-이것은 어떤 뭐를 서로 절충하자, 서로 싸우고 하니까 우리가 반씩, 반씩 양보하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원칙의 문제죠. 우리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이냐.
우리 길이 무엇이냐는 것인데 이게 무슨 뭐 우리 전통시장에서 옷을 사면서 이거 1000원인데 500원.
그러면 750원으로 우리가 서로, 서로서로 양보하자.
그런 거하고는 다른 것이죠. 원칙적인 문제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기 때문에 이거는 협상과 양보의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우리 장관님 개인적인 질문을 우리가 너무 긴장되어 있었으니까 편안하게 물어보겠습니다.
검사 시절에 불도저 검사로 유명했다고 하더라고요.
국정원장, 판검사, 이런 인물들도 구속시켰고.
그래서 특기에 저돌적인 돌파력이 있다. 어떻습니까? 장관 해 보시니까 본인이 국회의원도 두 번 하셨죠?
-네.
-국회의원하고 장관, 행정가인데 어떤 게 체질에 더 맞는 것 같습니까?
-둘 다 특징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회가 상당히 국민들 기대에 못 미치지 않습니까?
상당히 소모적이고 어떻게 보면 입으로는 많이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는데.
그에 따른 생산적인 그런 실천이 잘 안 된다.
여야를 불문하고. 어떤 정권을 불문하고 그런 비판을 많이 받고 있는데.
행정부 장관은 그에 비해서는 상당히 그래도.
어떤 실천 그런 게 눈에 보이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는 상당히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년 총선이 윤석열 정부의 명운을 건 선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 북강서갑에서 의원 생활을 하셨잖아요. 그래서 거기가 지금 당협위원장도 공석으로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 언론에서 질문을 드린 것 같아요.
그때마다 우리 장관님이 알 듯 모를 듯 답변하셨는데 저는 그냥 넘어가지 않고 정확하게 수치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출마하지 않는다 0점, 출마한다 100점. 수치로 어느 지점에 있습니까, 지금?
-상당히... 갑자기 또 그렇게 질문을 하니까 참 당혹스러운데.
제가 진심입니다. 제가 정치라는 영역에서 두 번 당선되고 두 번 낙선을 해봤습니다.
낙선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거기에서도 제가 교훈을 얻었습니다.
뭐냐 하면 선거라는 것은 본인의 의사도 중요하지만 유권자의 갈증, 거기에 자기가 얼마나 응답하느냐.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선거를 떨어지면서 그런 교훈을 얻었는데.
우리 고객들이 유권자가 이 사람은 이번에 선거로 나오는 게 좋겠다.
아니면 그냥 나오지 말고 다른 사람으로 해도 충분하고 또 이 사람 별 필요가 없으니까 차라리 다른 일을 하는 게 좋겠다.
이런 평가가 자연스럽게 선거 국면에 들어가면 나오더라고요, 보니까.
그거를 보통 나오는데 정치인들은 자기 독선에 빠져서 거기는 별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이번에 꼭 선거에 나가서 당선되어야겠다.
내가 이번에 3선 해야 한다, 내가 4선 해야 한다.
여기에 많은, 제가 사실 그래서 그랬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제가 또 낙선하게 되었는데 이번만큼은 어쨌든 저의 의지보다는 고객의 갈증이 무엇인지 거기에 제가 계속 고민해 보겠습니다.
-하여간 대단하십니다. 우리 오세훈 시장도 저 질문을 피해가지 못했는데 제가 답을 못 들었습니다.
중국이 안중근 전시실, 윤동주 생가 폐쇄하고 공사 중이라고 이렇게 했는데.
이게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어요. 그래서 장관님이 이 부분에 대해서 속 좁은 소인배 같다 이렇게 비판하셨습니다.
지금 이거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중국 측의 반응은 제가 그런 문제 제기를 하고 난 뒤에 언론에서 많이 보도되었습니다만 중국 측에 제가 듣기로는 그렇지 않다.
쉽게 말해서 오해다. 실제로 공사하는 것이 맞다.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저는 언뜻 들었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건 팩트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이 관광객이 거기를 가고 또 언론에서도 취재하고 했지 않습니까?
그러면 공사하고 있다고 하면 포크레인 한 대든지 삽 한 자루라도 거기서 공사, 무슨 철거물 한 개라도 한 포대라도 우리가 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없다.
-이게 없는 거죠. 없고, 어떻게 한 뤼순 감옥 전체가 유적지인데 그중에 지금 안중근, 신채호, 이회영.
우리 독립지사 전시실만 폐쇄되어 있습니다.
비가 와서. 비가 어떻게 거기만 새냐고요.
그 같은 건물인데 그거는 말이 안 되는 것이고 특히 또 윤동주 생가 폐쇄도 뭐 그동안 잘해오다가
또 오비이락이라고 요즘 한중 관계가 좀 안 좋아지니까 폐쇄된 거 아니냐는 그런 의심을 전문가들 그 일대에 있는 우리 뭐 한국
또 중국 또 특히 조선족 그런 전문가들 사이에서 그런 소문이 많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안중근 의사 같은 경우에 국민 정말 엄청나게 많은 분이 사랑하시는 분 아닙니까?
그런데 유해가 어디 묻혔는지 전혀 위치도 모르고 그리고 저희가 후손으로서 도리를 못 하고 있는데 뤼순 감옥의 그 사형수 공동묘지 위치를 찾아내기 위해서
일본의 비공개 사료들을 좀 확인하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리고 이제 한일 관계가 다행히 요즘
되게 풀렸고 어찌 보면 콘텐츠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대사를 만날 생각이 있나요?
이후 관련해서.
-그렇습니다. 제가 수차 언론을 통해서 그런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벌써 10년, 20년째 민족 독립 영웅, 절대 영웅이죠.
안중근 의사는 아쉽게도 그 유해를 찾지를 지금 못 했는데 한 번은 제대로 한 번 중국의 협조를 얻어서 시도를 했습니다.
저도 당시에 국회의원 때 제가 또 현장도 가보고 했습니다마는 안 됐죠.
그런데 그동안의 중국 측의 그런 협조나 사료에만 너무 의존했던 것 아니냐.
그래서 앞으로는 그 당시에 이토 히로부미의 정치적인 위상 이런 거를 생각할 때 어마어마한 그 사건이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일본에서도 저는 틀림없이 그 형사재판 기록이 다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거 이제 사형이라는 게 집행이거든, 형사재판의 집행 그런 자료기 때문에 일본이 틀림없이 저는 당연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말씀하신 대로 한일 관계가 새로운 그런 어떤 발전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이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좀 흔쾌히 협조를 저는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조만간에 우선 일본 대사를 만날 생각입니다.
-서울 현충원을 직접 이제 국가보훈부가 관리하게 됐죠.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공간을 보훈 문화의 성지로 만들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애국 그러면 국뽕을 떠올리고 좀 부정적인 시선이 많은데 이게 애국심이 없으면 국가 유지가 안 되잖아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떤 프로그램들을 좀 도입할 생각이신가요?
-우선 제가 그 70년 만에 우리 국립 서울 현충원을 국방부 관할에서 국가보훈부 관할로 바뀌게 됩니다.
제가 왜 그 주장을 했냐 하면 아주 호국의 성지라고 우리가 말은 하지만, 말은 하지만 그동안 그런 역할을 과연 했느냐.
우리 국립 서울 현충원이. 왜냐하면 서울이 어떻게 보면 한가운데에 어마어마한 그 땅을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동안 사실은 보면 좀 우리가 좀 비판적으로 평가를 하면 죽어있는 공간으로 그쳤다.
너무 엄숙주의에 빠져서 우리 일반 국민들이 잘 찾지 않는 공간.
365일 중에서 6월 6일 현충일 하루만 찾아가는 공간. 364일은 죽어있는 공간에 그친 것 아니냐. 이렇게 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호국의 성지가 될 수 없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그런 장소가 되려면 우리 어린아이들부터 우리 할아버지까지 손잡고 자주 찾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현충원을 엄숙주의에서 탈피해서 우리 국민들과 호흡하는 그런 어떤 문화복합 공간으로 그렇게 이제 탈바꿈시킬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시간이 다 되어서요. 마지막으로 어떤 장관으로 남고 싶은지 또 이 시청자들에게 좀 당부하고 싶은 말씀 한 20초 정도만 정리를 해 주시죠.
-보훈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국립묘지에서 그냥 참배하는 머리 숙이는 과거에 대한 추모의 저는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미래 번영의 가장 튼튼한 그런 초석이 바로 보훈이라고 봅니다.
우리 보훈이 국민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갈 수 있도록 국가보훈부 장관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가 오늘 좀 곤혹스러운 질문도 드렸는데 성의 있게 답변을 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수고하셨고요.
특별 대담 박민식 장관에게 듣는다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사이트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