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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앤썰 - 75주년, 우리가 몰랐던 참전용사 이야기 (서정인 유엔기념공원 관리처장)
등록일 : 2026-04-29 17:47:16.0
조회수 : 49
75주년 맞은 유엔기념공원…참전용사의 희생과 평화 되새겨
70여 년 전 한국전쟁 당시 이름도 낯선 나라를 위해 먼 바다를 건넌 2300여 명의 참전용사들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유엔기념공원은 올해 75주년을 맞아 기록사진전과 다양한 기념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정인 유엔기념공원관리처장은 공원의 역사적 의미와 관리 과정을 소개하며,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전우애를 담은 사진과 기록물을 전시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부산 남구에 위치한 유엔기념공원에는 14개국 2300여 명의 유엔군 참전용사가 안장돼 있으며, 매년 120여 회의 안장식과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서 처장은 참전용사들의 헌신이 오늘날 한미동맹의 기반이 됐다며, 전쟁의 아픔과 평화의 가치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당신의 내일을 위해 우리의 오늘을 바쳤다”는 영국 참전용사의 문구는 참전용사들의 희생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습니다.
유엔기념공원은 한국전쟁의 기억을 간직한 공간이자, 세계인이 함께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장소로 그 역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70여 년 전 한국전쟁 당시 이름도 낯선 나라를 위해 먼 바다를 건넌 2300여 명의 참전용사들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유엔기념공원은 올해 75주년을 맞아 기록사진전과 다양한 기념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정인 유엔기념공원관리처장은 공원의 역사적 의미와 관리 과정을 소개하며,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전우애를 담은 사진과 기록물을 전시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부산 남구에 위치한 유엔기념공원에는 14개국 2300여 명의 유엔군 참전용사가 안장돼 있으며, 매년 120여 회의 안장식과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서 처장은 참전용사들의 헌신이 오늘날 한미동맹의 기반이 됐다며, 전쟁의 아픔과 평화의 가치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당신의 내일을 위해 우리의 오늘을 바쳤다”는 영국 참전용사의 문구는 참전용사들의 희생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습니다.
유엔기념공원은 한국전쟁의 기억을 간직한 공간이자, 세계인이 함께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장소로 그 역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톡앤썰 곽병익입니다.
70여 년 전에 바다를 건너온 이방인 젊은이들이 이름조차 생소한 나라를 위해서 싸웠습니다.
이들 가운데 2300여 명은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우리 부산에 영면했습니다.
그들이 잠든 곳이 바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부산에 조성된 유엔기념공원이죠.
전 세계에 하나뿐인 유엔묘지입니다. 지난 6일이 유엔기념공원 조성된 지 75주년 된다고 하네요.
오늘 서정인 재한유엔기념공원 관리처장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제가 정식 명칭에 이 재한이라는 이름이 재한유엔기념공원 이렇게 들어가는 건 오늘 처음 알았네요.
-그렇습니다. 보통은 유엔묘지 옛날 이름은 유엔묘지였는데요.
이제 한 2001년도쯤 유엔묘지 하면 아무래도 아직도 우리 국민 정서상
조금 이렇게 먼 좀 거북한 이런 게 있어서 그걸 위해서 공원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그래서 재한유엔기념공원 뭐 이렇게 나이 드신 분들은 다 유엔묘지로 알고 있죠.
-요즘에 이제 그 공원이라는 명칭이 많이 익숙합니다. 요즘도. 처장님은 외교부 외교관 출신이시고요.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근무지 보니까 멕시코 대사
-예, 멕시코 대사를 하고 그 전에는 인도네시아에는 아세안 대사를 이렇게 했습니다.
-부산은 어떻게 익숙하세요?
-부산에 익숙하고 아주 좋아합니다. 이제 1년 반 정도 됐는데요.
아주 뭐 이렇게 살기 좋은 곳이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도 좀 있으시다고요?
-그렇습니다. 제가 경북 상주가 고향인데 그 유학을 왔습니다.
그때만 해도 부산이 아주 유학지로서 굉장히 유명한 곳이었는데 부산 감천국민학교에서 70년대 초에 3년을 지금 다녔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희 이모님이 거기에 부산 감천마을 지금 문화마을이죠.
맞은편에 그 달동네에 아직도 살아 계십니다.
-멋진 곳입니다. 조성 75주년을 맞이해서 기록사진전을 가졌다 지금도 열리고 있다고 하는데 이 소개 좀 해 주세요.
-예, 그렇습니다. 지금도 이제 4월 6일부터 시작을 해서 4월 30일까지 이달 말까지 이렇게 열립니다.
그래서 아직도 못 보신 분들은 한번 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희들이 그 유엔기념공원 역사 하면 75주년이라고 하는데 저희들이 조금 더 통으로 한다기보다
조금 그 내부적으로 자세하게 쳐다보면 한 3개 시기로 구분이 돼 있습니다.
첫 번째 시기가 저희들이 초기 시기인데 1951년부터 59년간 유엔군 사령관이 그 전쟁 중이지 않습니까?
그때 이제 그 묘지를 조성하던 그런 시기 그리고 두 번째 시기가 본격적인 유엔의 관리 시기입니다.
2기가 되는데 그때는 1960년부터 1973년까지 보통 우리가 국사 책에서 배운 유엔평화부흥위원회 언커크라고 하죠.
그런데 거기 설치 기간 동안에 유엔이 직접 관리를 했습니다.
거기에서 이제 저 같은 사람이 유엔에서 파견이 된 거죠.
그리고 이제 그분들이 떠나고 난 후에부터는 안장국 11명이 그 당시에 있었는데요.
지금은 14개국으로 늘어났습니다만 거기 주한 대사들로 이루어진 위원회, 관리위원회 시기
뭐 이렇게 있는데 사실은 첫 번째하고 두 번째 시기에 미국하고 유엔이 가면서 자기 자료를 다 가져갔습니다.
그래서 뉴욕에 있는 유엔아카이브에도 갖다 놓고 그리고 그 미국의 메릴랜드에 미국 아카이브에도 갖다 놓고 해서
그래서 그게 사실 역사 공백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75주년을 맞이해서 역사를 잊으면 안 되겠다 그래서 좀 더 완결판을 만들어 봐야 되겠다
이런 차원에서 제가 이번에 지원을 미국으로 보내서 거기 시위 작품을 한 60점을 가져왔는데요.
저만 보기에는 너무 아깝고 또 마침 75주년이라서 그중에서 아주 20점 아주 알찬 것만 이렇게 저희들이 전시를 합니다.
그래서 상당히 의미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특히 제가 여러 사진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몇 가지 인상 깊었던 사진은 이 사회자분도 한번 오셔서 보시면 첫 번째는 안장식 사진이 이렇게 있습니다.
안장식 그거 사실 전쟁 중이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이 전쟁 속에서도 동료에 대한 전우에 대한 예우가 이렇게 물씬 풍겨나는 그런 모습을 제가 느낄 수 있고
또 하나는 유해보관실 그리고 유품수습실 이런 것들도 이렇게 보이는 작품이 있어요.
스웨덴 아마 저기 의사들 같이 보였어요. 뭐 그런 거 보면 적십자, 유가족에 대한 예우 이런 것도 했구나.
그리고 마지막에 저로서는 유엔기념공원의 관리처장으로서의 제가 눈여겨 본 거는
그 리지웨이 제2대 유엔사령관이 헌정식 때 4월 6일 날 경례를 딱 하는 그런 장면 그게 조금 저한테는 새롭게 와닿았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리지웨이는 역사적인 인물이지 않습니까?
맥아더가 해고되고 난 후에 이제 2대 사령관이 돼 가지고 잘 그 당시 유엔군을 잘 통솔을 했는데
그거는 뭐냐 하면 우리의 유엔기념공원의 첫 출발을 알리는 것이자
그분의 경례에 담긴 그 의미는 전사자들한테 대한 존경의 표시 이런 것들을 저는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총장께서 유엔기념공원을 보통 이렇게 소개를 할 때 간단하게 이렇게 소개를 하잖아요.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게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다. 아주 아름다운 곳이다.
이와 함께 1961년 설립된 한국 내 최초의 국제기구다라고 소개를 하셨어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61년도에 그럼 처음 우리나라에 유엔 산하 국제기구가 생긴 거네요
-그렇습니다. 예
-예, 그 내용 좀 설명해 주시죠
-그래서 다들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그것도 서울도 아닌 부산에 1961년도에 이렇게 됐으니까 얼마나 오래된 겁니까?
그래서 그런 의미도 있고 또 하나는 그 세계에 있는 유일한 유엔묘지입니다.
사실은 유엔군 이름으로 이렇게 파견돼 가지고 참여한 데가 없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사실은 처음이자 마지막 이런 곳이 되고 현재로서는 14개국에 2336명이 안장돼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저희들이 1년 내내 한 120회 정도 행사가 이렇게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부산이 아주 대표적인 턴투워드 부산 뭐 이런 걸 포함해서
120회 정도 이렇게 있는데 수시로 이렇게 안장식 등이 열립니다.
당장 5월달에 5월 14일하고 5월 27일에는 화란 참전 용사 안장식
그리고 27일에는 프랑스 참전 용사 안장식 언론에도 나왔습니다마는 그래서 아주 조용하게 경건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사들도 오고요. 그래서 한번 언제 시간 되시면 그때 한번 와보시면
아, 이렇게 유엔기념공원이 이런 곳이구나 이런 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분들이 지금 그 스스로 애써 지킨 나라가 이렇게 발전한 모습 보고 뭐라 하던가요
-저는 일단 그 에이팩이라는 저도 외교관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그 에이팩이라는 국제 행사를 두고 정상들이 시간을 쪼개서 올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겁니다.
-그렇죠.
-아, 그래서 야 어떻게 이분들이 이렇게 올 수 있을까 시간을 쪼개서 이렇게 왔는데 아마 그분들에게는 이런 것 같습니다.
이게 결국은 부산에 있는 한국에 있는 자국 용사들 희생된 용사들의 현충원이다.
그러니까 이제 꼭 와봐야 된다는 이런 마음이 있으셨을 것 같고
우리 대통령님도 해외에 방문할 때 한국전 참전비는 이렇게 꼭 가거든요.
-그렇죠.
-뭐 그런 느낌하고 같은 거고요.
그래서 제가 그때도 오래되신 참전 용사분들 뭐 이런 것들이 있는데 저도 깜짝 놀란 게
이분들이 그 당시에 폐허가 된 그 모습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대한민국 특히 부산 이런 데를 보니까 좀 감동을 한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이게 자기들이 유엔기념공원에 와 보니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우냐 뭐 이런 것들 그래서 사실은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꽃다운 나이에 이렇게 전사한 당신의 전우들을 위해서 이렇게 아름답게 가꾸어줘서
참 고맙다라고 하는 모습을 보고 말씀을 들었고 더욱이 90대 중반쯤 되면 눈물이 말랐을 텐데도
거기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제가 오히려 이렇게 울 뻔했던 그런 기억도 있습니다.
-사실 뭐 우리나라는 그 어떤 기관이든지 이 홈페이지가 없는 곳은 사실 없습니다. 요새는 뭐 다 잘 해놨어요.
그런데 이 유엔기념공원 홈페이지에는 특이하게 뭐 불어, 영어 이렇게 있는 거는 알겠는데 튀르키예어가 있어요.
튀르키예 용사들이 많이 오셨다.
-맞습니다. 튀르키예 많습니다. 튀르키예도 많으시고 튀르키예는 여기가 일종의 성지로 여깁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오시는 분들은 서울에 오시는 분들도 반드시 와야 되는 곳
뭐 그리고 사실은 이게 그분들이 이 터키, 튀르키예의 흙을 조금씩 가져옵니다.
원래는 그거 안 되는데
-반입 금진데
-반입 금지인데 어디 해서 조금 오는데 아마 봐주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너무나 소중한 그거니까 이만큼 가져와서 그럴 정도로
-거기다 이렇게 뿌리고
-아닙니다. 그걸 갖다가 이렇게 함이 있는데 거기다가 이렇게 넣어놓고 이렇게 합니다.
-뭐 그 정도는 또 살짝 눈 감는 것도
-그런 것 같습니다.
-네, 그럴 것 같고요. 사실 이게 지금은 헌화 다 먼 고향이 머니까 헌화를 하고 싶을 때마다 우리나라에 올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온라인 헌화를 한다고요? 어떻게 하는 겁니까?
-네, 그게 대리 헌화 제도라고 하는데요.
유가족들이 멀리 있으니까 요청을 하면 저희 관리처에서 대리 헌화를 해서 그러면 저희들이 하는지 안 하는지 잘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진을 찍어서 이렇게 보내드립니다.
그래서 꽃 비용은 물론 유가족들이 부담하고
-그게 의미가 더 있겠죠.
-그래서 1년에 한 50회 정도 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꼴로 뭐 이렇게 합니다.
-점점 늘어나겠네요.
-예, 점점 늘어나고 그렇게 아주 가슴 아픈 사연 아주 뭉클한 사연 뭐 이런 것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저 숫자가 주는 그 의미가 있는데 이 숫자 한번 200만 정도
그러니까 198만 정확하게는 198만 8천400명 이렇게 하는데 200만 명이 유엔군으로 파병이 됐고요.
그중에 전사자가 4만 896명이네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보니까 가장 많이 파병한 것은 역시 미국. 그런데 숫자가 179만 명이에요. 179만 명의 숫자 의미가
-연장 저기 계속 3년 동안 계속 이렇게 교대를 한 거죠.
1년이나 2년 6개월 이렇게 하는 거니까 보통 있는 게 3년 안 있게 되고요.
보통 한 1년 뭐 1년 반 이렇게 하다 보니까 이렇게 총 이렇게 해가지고 그렇게 되는 거
-연인원이라는
-연인원이라 3년 이렇게 연인원 그리고 사실은 4만 1천 명이 희생을 했지만 그 미국이 90%인 3만 9천이거든요.
저도 이제 외교관 생활을 오래 하면서 한미 관계가 혈맹이다 이렇게 하는 건
이게 외교적인 용어겠지라고 했는데 여기 와서 그 참전비에 이렇게 쫙 새긴 모습에서 그걸 보니까
아 진짜 혈맹이구나 피로 다져진 관계다 이런 걸 제가 몸소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체 영면하시는 분들의 숫자로 보면 비율로 보면 또 미국은 상당히 적은 편이고
오히려 유럽 쪽에서 오셨던 분들이 많이 안장이 되어 계시네요.
문화의 차이가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문화의 차이입니다.
문화하고 정책의 차이인데 미국은 기본적으로 해외에서 전사하신 분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데려가시겠다는 그런데 그 대신에 지금 한 41분 정도가 여기 계시는 이유는 본인이 희망을 한 경우에 예외를 하고
프랑스 같은 경우에는 본인이 희망하는 대로 이렇게 해 주는 거고
영국하고 영연방은 주로 현장 전사하신 곳에 남겨두는 이렇게 문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국이 890몇 명 상당히 많고요. 튀르키예는 조금 독특하더라고요.
물어봤더니 이분들이 종교적으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다.
그래서 육체는 남아있고 영혼은 아마 자기 살던 고향으로 간다 뭐 이렇게 해서
그래서 일부는 여기 남고 일부는 거기 가 있고 아마 그런 거
-뭔가 차이가 좀 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그때 전 한국전쟁 때 그때 전사하신 분들이 영면에 계시는 거는 알겠는데
지금 이제 그때 참전하셨던 참전 용사들이 많이 계시잖아요.
-그렇습니다.
-그분들이 그냥 이렇게 다니러 가는 게 아니라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그 부산에 있는 유엔묘지에 묻히고 싶다고 해서 오시는 경우도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이게 사실은 그런 분들이 그런 분들의 희망도 있고 해서 저희들이 2015년부터 새로운 제도를 도입을 했습니다.
이제 그 한국 전쟁에서 살아가셔서 이렇게 오래오래 사시다가
결국은 여기 한국 여기 우리 유엔기념관에 묻히고 싶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했는데 지금 현재 34분이 안장 이렇게 돼 있고요.
그리고 제가 조금 전에 소개했던 5월달에 있다는 그 프랑스 참전 용사분들도 그 살아남아서
오래오래 계시다가 여기 전우 곁에 묻히고 싶다 해서 이번 행사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에 34분이니까 거의 한 3~4명씩은 꼭 이런 행사가 있다고 봅니다.
계속 그래서 이분들의 연세가 90대 중반이니까 제가 보기에는 한 앞으로 한 30여 분은 더 오시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좀 듭니다.
-사실 뭐 이제 그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를 포함한 젊은이들에게도
좀 널리 알리기 위한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계시는데 그중에서 보니까 눈에 띄는 게 웹툰 작가
-아, 그렇습니다.
-키크니 다 이게 웹툰 작가들은 이름을 또 다 이렇게 짓나 몰라요 팔로워가 121만인데 이분하고
협업을 해가지고 이 캐나다판 태극기 휘날리며 뭐 이거 지금 협업하고 계신다고 하는데 이거 소개 좀 해 주시죠.
-그런데 우리 사회자님은 키크니가 누구신지 잘 아세요?
-저는 잘 모르죠.
-사실은 저도 몰랐습니다.
우리 직원이 젊은 세대들을 위해서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앞으로 그래서 키크니 작가가 누구냐 그랬더니 아주 얼굴 없는 작가랍니다.
마스크를 끼고 쓰고 나오시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팔로워가 120만 명인가 130만 명이 엄청난 그래서 아 옳거니 그러면
이분을 잘 저거를 해서 저기 하면 뭔가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이렇게 우리 유엔기념공원에 관심을 보이겠다 이렇게 해가지고
그분하고 지금 계약을 해서 올해 저희들이 허쉬 형제가 캐나다 유명한 게 있습니다.
허쉬 형제의 이야기를 그걸로 그 웹툰으로 해서 6월 25일 계기로 해 가지고 저희들이 이렇게 내려고 그럽니다.
그래서 되게 한번 기대하셔도 좋은데 내용 자체도 굉장히 스토리가 있고요.
이제 동생 아치볼드가 전쟁에 이렇게 먼저 참전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형이 걱정이 돼서 자기도 참전을 했어요. 그런데
-태극기 휘날리면 맞네요.
-맞습니다.
-급박한 전투 중에 전투 중에 서로 만나지 못했는데 나중에 옆 동 옆에 그 전투지에서 그 자기 성이 같은 사람이 사망을 했다.
그래서 아 그게 이제 형이 있다 이렇게 알고 그래서 자기는 살아 돌아갔는데
캐나다에서 평생 그 형에 대한 그리움 죄책감 뭐 이런 것들이 느껴져서
사망 전에 형 곁에 꼭 묻히고 싶다 그래가지고 2012년 그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안장식에서 아주 엄숙하게 안장식을 일으켰습니다.
제가 우리 동영상에도 있는데 눈물이 흐르는 정도입니다.
-그럴 것 같아요.
-그분이 유일하게 형제 모로 유일한 형제 합장묘입니다. 나머지 부부면은 한 13분 정도 있어요. 형제는 아주 유일한 거죠.
그래서 아주 이런 키크니 작가가 되게 쉽지 않은데 이렇게 저희한테 호응해 주셔서 감사를 드리고
이를 통해서 저희들이 유엔공원의 역사 의미 이런 걸 재고를 하고
좀 이렇게 우리 희생의 무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이디어가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뭐 이렇게 의미가 있는 곳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또 이 자원봉사를 많이 하잖아요.
유엔 연구원에도 많이 있죠. 그분들 활동 좀
-저는 사실은 우리가 선진국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도 유엔평화봉사단이 16년째 매주 일요일 9시에 가족이 같이 와서 이제 그 봉사를 하는데
저도 한번 참여를 해 봤습니다 하는 거 보니까 그냥 만만한 데가 아닙니다.
그냥 사진 찍으러 이렇게 오시는 분이 있으면 아주 큰일 날 정도입니다.
그러니 묘비도 이렇게 닦고 그리고 그 잡초도 제거하고 뭐 그래서 이렇게 젊은 애들이
젊은 학생들이 아침잠을 포기하고 엄마 아버지 손 잡고 이렇게 오는데 그래서 처음에는 그랬답니다.
이게 왜 이렇게 오는데 이게 또 뭐 점수 따기 위해서 오는 거 아니냐 그래서
불통하고 이렇게 했다는데 시간이 쌓이면서 이렇게 안장자 이야기를 궁금해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동판 닦고 이렇게 하면서 여기 보니까 나이가 뭐 이렇게 젊잖아요.
그래서 이게 뭔가 하면서 처음에는 형하고 이제 오빠 아 오빠 오빠였다가
다음에는 자기들이 계속 16년 했으니까 안장자들이 동갑내기가 된 거예요.
그리고 이제는 동생이 되는 시간들 그래서 이런 과정을 일으키면서
몸소 이런 자유와 평화 이런 것들의 소중함을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거기 어떤 부산 여성회관에서 봉사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한 분 노인이 80대 분이신데 거의 40년을 봉사를 하고 오셨대요.
한 10분이 이렇게 11분이 하시는데 아 그래서 어떻게 하시게 됐습니까?
그랬더니 옛날에는 그 대현동 쪽에 사셨다가 집을 양산으로 이사 갔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오셨다고
그래서 아이고 이거 다리 저도 젊은 저도 이렇게 그 쭈그리고 앉으면 힘든데 괜찮습니까
이러니까 아이고 저 조금 쭈그리고 앉은 게 뭐가 불편합니까?
이분들은 젊은 나이에 이 보세요. 이렇게 젊은 나이에 이렇게 돌아갔는데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이죠.
그래서 아 사실 제가 오히려 감동을 받았고 고마웠습니다. 굉장히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유엔묘지 유엔기념공원이 되는데 역시 자원봉사자들의 역할이 아주 크군요.
-더군다나 부산의 자원봉사들이 있습니다.
-잠시 전에 저 앞에 턴투워드 부산 잠깐 얘기했잖아요. 저희 시간이 좀 많이 가기는 했는데 짧게 잠깐 소개해 주실까요.
-제가 저희들이 1년에 120회 정도 행사를 하는데 그중에서 제일 하이라이트 이런 게 턴투워드 부산 아닙니다.
아마 우리 사회자님도 아마 아실 텐데 2007년도에 캐나다 참전 용사가 제안을 했습니다.
거기에 보면 유엔기념공원에 가면 캐나다 동상에 그 아이들을 이렇게 안고 있는 모습 그분의 제안인데
그분의 제안으로 2007년도에 시작했다가 국가보안부가 행사로 2008년도에 이렇게 하고
2020년도에는 법정기념일로 승격이 됐습니다.
그래서 올해가 20주년입니다. 20주년이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올해 매우 의미 있는 해라서 많은 분들이 오고
중앙에서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좀 기울여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여기에 계시는 분들은 365일 동안 혹시 사이렌이 울리시면 유엔기념공원에 못 오시면
1분만 서셔서 그들의 희생과 기여를 기억하는 시간 이런 것들이 되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11월 11일입니다.
-11시입니다.
-이날 무슨 과자 날이거든요.
-아, 빼빼로.
-과자 뭐 먹는 날 뭐 이렇게 얘기하는데 그날 한번 유엔기념공원 한번 생각해 보시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이 토론 대담을 이렇게 하면서 항상 맨 마지막 질문을 뭘 드릴까 이렇게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중에서 이게 우리는 당신의 내일을 위해 우리의 오늘을 바쳤다라는
이 문구 처장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그런 그 안장자의 생전의 말씀이라고
-그렇습니다.
-전하셨어요. 이 소개해 주시는 걸로 마무리를 하면 어떨까 합니다.
-그 그룬디 그 영국 참전 용사의 말씀인데요. 그래서 저도 가슴이 뭉클해서 영어로 그러더라고요.
위 게이브 투데이 포 유어 투마로 이렇게 하는데 사실은 그런 그거를 갖다 너무 좋아서
제가 유엔기념공원에 양산에 그거를 갖다 새겨놨습니다.
모든 거에도 그 정도인데 결국은 그분들이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그 내일을 희생하지 않았으면
사회자님이나 저나 저희들이 이렇게 아주 당연히 여기는 이런 평화 이런 것들이 우리가 일상을 누릴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문구가 아주 가슴에 계속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네, 사실 당연한 거는 아, 우리가 숨 쉬는 공기도 사실 이게 당연하지 않은데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평화와 번영이 다 이렇게 여러분들 그 한국전쟁 때도
우리나라를 지켜주기 위해서 왔던 그분들의 큰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이 있지 않나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처장님 모시고 의미 있는 그런 얘기 많이 들어봤습니다.
올해의 턴투워드 부산은 아마도 훨씬 더 많은 그 세계에서 또 우리 시민들도 이렇게 호응을 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이렇게 긴 시간 말씀 나눠서 참 감사합니다.
-아, 감사합니다. 초대해 주셔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