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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앤썰 - 어묵계 '일론 머스크' 도전하는 박용준 삼진식품 대표
등록일 : 2026-04-29 17:49:23.0
조회수 : 40
부산 어묵의 전통과 혁신…삼진식품 박용준 대표의 도전
부산 향토기업 삼진식품의 박용준 대표가 전통 식품인 어묵의 프리미엄화와 글로벌 시장 진출에 힘쓰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과거 서민 음식 이미지가 강했던 어묵을 다양한 어종과 위생적인 제조 환경을 기반으로 한 프리미엄 식품으로 발전시키며 전국 19개 매장을 운영 중입니다.
삼진어묵은 기존 전통 어묵의 맛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어묵 베이커리, 간편식 등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이며 소비층 확대에 나서고 있습니다.
특히 MZ세대를 겨냥한 신제품 개발과 유통 채널 확장에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삼진어묵은 뉴욕페스티벌 국가브랜드대상 수상과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 선정 등을 통해 브랜드 경쟁력을 인정받았으며, 미국 등 해외 시장 진출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기본에 충실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것이 경영 철학”이라며 “어묵을 한국을 대표하는 식품문화로 성장시키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부산 향토기업 삼진식품의 박용준 대표가 전통 식품인 어묵의 프리미엄화와 글로벌 시장 진출에 힘쓰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과거 서민 음식 이미지가 강했던 어묵을 다양한 어종과 위생적인 제조 환경을 기반으로 한 프리미엄 식품으로 발전시키며 전국 19개 매장을 운영 중입니다.
삼진어묵은 기존 전통 어묵의 맛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어묵 베이커리, 간편식 등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이며 소비층 확대에 나서고 있습니다.
특히 MZ세대를 겨냥한 신제품 개발과 유통 채널 확장에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삼진어묵은 뉴욕페스티벌 국가브랜드대상 수상과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 선정 등을 통해 브랜드 경쟁력을 인정받았으며, 미국 등 해외 시장 진출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기본에 충실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것이 경영 철학”이라며 “어묵을 한국을 대표하는 식품문화로 성장시키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과거의 부산은 대한민국 식품 산업의 중심이었죠.
1950년대에 설탕, 제분 이런 것들이 부산의 중심이다 했고요. 라면, 통조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산에서 성장한 식품 기업들이 지금은 대부분 서울로 본사를 옮겼죠.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말에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는 회사가 있는데요.
이름 얘기하면 여러분 다 아실 겁니다.
지역의 먹거리를 넘어서 지역 관광까지 견인하고 있는 기업 대전에 성심당이 있다고 하면 부산에는 바로 삼진어묵이 있지요.
예 부산을 대표하는 식품 기업 삼진 식품을 이끄는 잘생긴 박용준 대표 만나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네, 반갑습니다. 박용준입니다.
-참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늘 제가 좋아하는 마지막에 이렇게 여러 사람들하고 자리를 하다가
마지막에는 꼭 어묵하는 집에 가게 되는데 그때마다 생각이 나더라고요.
방송을 통해서 본 멋진 젊은 박 대표의 이 박용준 대표의 모습이 참 보고 싶었습니다.
지금 보니까 역시 연예계에 계셔야 될 분이 기업을 하고 있어
-아닙니다. 저는 사업가가 너무 좋습니다.
-회계학 전공했어요?
-맞습니다. 회계학 전공했고요 미국 뉴욕주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회계사로 꿈을 꿨었는데요.
갑작스럽게 부모님의 부름으로 한국에 스물아홉의 나이에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벌써 시간이 빨라서 15년 차입니다.
-아 그래요? 이 비디오가 기업을 시작한 지 15년이 지난 사람이니까 참 부럽네요.
그래도 저하고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회계학 전공했다고 하는 거 보니까 다행이에요.
그런 공통점이라도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어요.
-대표님 회계학
-그렇죠. 그런데 뭐 잘 모릅니다. 그 별명이 어묵계의 스티브 잡스라고 해요. 그 별명 좋아요? 어때요?
-너무 과분한 별명이고요. 사실 너무 좋아합니다. 요즘에는 어묵계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어묵계 일론 머스크라고
-그때그때?
-네, 그때그때 혁신의 아이콘을 오마주해서 듣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분들을 너무 좋아한 게 남들이 좀 안 된다 할 때 해내고
또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이뤄낼 때마다 혁신가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사실 저희도 뭐 영역은 다르지만 전통 식품인 어묵을 새롭게 또 불가의 영역으로 만들어 가는 것들이
저는 혁신을 이뤄내고 있지 않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패기 아주 좋아요.
그런데 이게 기업을 하다 보면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게 기업을 상장한다
기업을 여러 대중에게 공개하는 거 아니에요 소유를 열어서 자본을 조달하고 해서 이제 다시 한번 도약을 한다 이런 뜻인데
-맞습니다.
-자,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어서 기업을 공개를 했겠죠 목표가 뭡니까?
-사실은 정말 전통식품이다 그리고 가치가 없다라고 하는 이 산업을 훨씬 더 글로벌하게 만들고 싶고요.
훨씬 더 가치 있게 만들고 싶습니다. 사실 아직도 잠재되어 있는 가치들이 이 수산업 특히나 수산 가공업에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는 뭐 덴푸라 어묵 이렇게 길거리 음식으로 먹었지만 앞으로 미래의 시대에는 전 세계에서 되게 영양소 있는 수산
단백질 편리하지만 또 저렴하고 하지만 맛이 다양한 이런 식문화들로 다양하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사실 어묵의 출발 제가 저희 회사에서 이 다큐멘터리도 제작하고 그랬는데 그때 보면 뭐 이름 없는
여러 고기들 잡어라고 흔히 부르는 그 고기를 이렇게 갈아서 만드는 그런 식품이었단 말이에요.
서민들이 단백질을 보충하는 그런 식품이었는데 지금은 개념이 좀 달라졌어요.
-언제든지 공장을 보여드릴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게 만들고 있고 어종들도 다양한 어종들을 순수하게 이렇게 섞어서 쓰고 있습니다.
-이 세계 3대 광고제에 제가 광고 쪽에는 관심이 아주 많은 그런 사람인데 그중에 뉴욕 페스티벌이라는 게 있죠.
거기서 그 국가 브랜드 대상에서 어묵 부문에서 삼진어묵이 1등을 했어요.
이제 명실공히 그러면 어묵계의 간판 스타로 인정을 받은 건가요?
-너무 감사한 일이고요.
사실은 뭐 여러 광고제가 있지만 특히나 이제 글로벌리하게 인지도가 있는 광고제에서
카테고리를 어묵이라는 카테고리를 하나 신설해서 그렇게 상을 줬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이게 입상을 했다 안 했다를 떠나서 아 이게 사람들이 주목해 주고 계시구나
그리고 어묵의 위상이 달라졌구나 라는 데에서 뿌듯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어묵이 이렇게 위상이 올라갔는데 그중에도 지금 박용준 대표가 이끌고 있는 삼진어묵의 위상은 또 독보적이란 말이에요.
이게 어디서 이게 계기가 됐다고 생각하세요?
-저희가 관점을 바꾸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냥 단순히 어묵을 제조한다 하는 게 아니라 어묵을 사람들이 어떻게 더 가치 있고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묵을 소비하는 공간 우리가 어묵을 섭취하는 방식 이 모든 것들을 함께 고민하고 신경 썼기 때문에 가능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편리하게 어묵을 데워 먹을 수도 있고 더 편리하게 사람들이 마트나 편의점에서 접할 수가 있고요.
또 베이커리 스타일로 더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이런 경험들이 쌓여 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어묵이 되었고요.
정말 다양한 형태로 또 어묵을 더 독특한 식감으로 이렇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든 게 저희는 어묵의 경험을 디자인한다.
사람들이 어묵을 그냥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어떤 형태로 어떻게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걸 많이 신경 쓰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업종이 하나 있는데 언제 기회가 되면 제가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업종 중에 하나예요.
포차 주인이시죠? 광안리에 포차를 해요. 사실 뭐 남자들의 로망이기도 한데 거기에 이 벚꽃 엔딩을 부르는 가수 이름이 뭐더라
-장범준 씨
-근데 몇 번 왔잖아요?
-몇 번 왔습니다.
-출연료도 비싼데
-네, 그런데 저희가 이 포차를 하게 된 계기가요 어쨌든 저희는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묵이 예전에 저희가 어렸을 때는 막 길거리에서 많이 접하고 했지만
점점 어묵을 접할 수 있는 경험이나 공간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희는 어릴 때부터 어묵을 경험하고
또 커서도 어묵을 경험하고 해야지 미래의 저희 주 고객이 될 수 있다라는 마음으로
어릴 때 어묵 체험할 때 엄마 손 잡고 와서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고
또 학생들이 이제 학창시절에 뭐 분식집으로 이렇게 접할 수 있게 만들지만
또 포차나 이런 걸 열어서 부산에 왔을 때 또 앞바다에서 이제 그런 경험을 추억하면서
저희 삼진어묵을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습니다.
요즘은 이런 브랜드의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차원에서 또 다른 도전을 하였습니다.
-드디어 1천억 대의 매출을 달성을 했어요.
작년 숫자 보니까 1천억 원이 넘었던데 이렇게 계속 1천억 뭐 2천억 쭉 이렇게 성장을 해 나가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 저희가 사실 뭐 1천억, 2천억, 3천억이라면 M&A를 한다든지 종합 식품회사로 식품 가짓수를 늘린다든지 할 수 있지만
저희는 1천억, 2천억, 3천억 달성하는 것보다 어묵을 좋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느는 거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숫자는 지금까지 당연히 따라온 것 같고요.
백화점에 들어가서 또 더 고급스러운 형태로 먹으면 어떨까 코스트코에 들어가서
더 대형 할인에 걸맞은 소비로 이루어지면 어떨까 온라인에서 어떻게 판매하면 좋을까
이렇게 밴드를 계속 확보하다 보니까 이렇게 성장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아직 잠재돼 있는 고객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희 그런 분들을 이렇게 매료시키고 당겨옴으로써 이 산업의 플레이어들도 많아지고 산업 자체가 커질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뭐 닿을 수 없는 데까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네. 어묵에 집중하겠다. 성장보다는 내실을 기하겠다라는 얘기로 들리는데
이게 선물 세트가 그러면 매출액 비중이 제일 큰가요? 어떻게 돼요?
-선물 세트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전체 매출의 거의 20%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1등은 그럼 뭔가요?
-1등은 여전히 반찬용 그리고 기존 어묵들입니다.
사실 저희가 그래서 혁신과 전통 중에 뭐가 중요하냐 했을 때 기존에 해오던 걸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저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존에 있지만 조금 더 고객들이 바라는 개선점들, 일종의 첨가물을 줄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프리미엄이었으면 더 식감이 좋았으면 좋겠다 이런 부분들을 개선해서 만든 것들이
지금은 프리미엄 어묵으로 기존 시장에서 더 성장하고 있습니다.
-고급화는 됐지만 소비의 행태 근본적인 행태는 그렇게 바뀌지 않았다는 얘기인데
그러면 전국에 지금 19군데의 매장을 운영 중이라고 그렇게 제가 자료를 봤는데 그중에서 매출이 제일 높은 곳이 어디일까요?
혹시 부산역인가요?
-저희 매출이 가장 높은 곳은 저희 영도에 있는 본점입니다.
-아 영도까지 다들 가서
-맞습니다.
-거기서 사요?
-네. 10년 동안 부동의 1위였고요. 그만큼 오리진이라고 하죠.
근본이 되는 이 오리지널리티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예전부터 찾아오셨기 때문에 그 고객들이 계속 팬덤이 돼서 이용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다 본부가 가지는 매력이 있거든요.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업이라는 것은 업력이라고 하잖아요.
쌓여가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기존의 것에서 새로운 것을 더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본 얘기할 때 몇 대째 경영한다 뭐 이런 얘기 많이 듣는데 이렇게 단일 식품회사 지금 3대째
처음 경영권을 딱 받았을 때 어떻게 보면 뭐 그렇게 하고 싶어 했던 그런 건 아니라고 했으니까
큰 짐을 졌을 때 그때 몇 살이었어요?
-29이었습니다. 20대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정말 놀고 싶을 때인데
-제가 나름 미국이라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생존 경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회계사를 선택한 이유도 그나마 아시아인이 살아남기 용이하지 않을까 해서 선택했었는데
그 시점에 부모님의 사업을 하는 행태를 지금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잠깐 들어왔습니다.
너무 어려워 보였고 너무 풍전등화처럼 이렇게 보였습니다.
-재무 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면서요?
-맞습니다. 재무 상태도 많이 안 좋고 기업의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요.
현장 분위기가 너무나도 패배 의식이 강하고 아, 우리는 이제 다 됐다
-접어야 된다
-접어야 된다 이런 분위기가 많아서 부모님도 사실은 저한테 그 얘기를 꺼내시기 위해서 불렀던 것 같아요.
이젠 좀 접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아들이 아직 결혼도 못 했는데 엄마 아빠 뭐 하시노 하다가 무직입니다.
-그거 곤란한데
-네, 그런 부분들이 신경이 많이 쓰이셨나 봐요.
그래서 보시고 어떻게 생각하냐 이제 접을까 말까 하는 상황에 다시 미국에 돌아가니까 손에 잡히지 않았죠.
저에 대한 책임과 사명으로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뭐 엄청난 사명감으로 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저 절박한 상황을 같이 책임져야 된다라는 생각은 있었고요.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온라인 쇼핑몰을 열었어요.
-맞습니다.
-그 쇼핑몰 열자마자 불티나게 막 팔리던가요? 어땠어요?
-쇼핑몰 열자마자 아무도 안 왔습니다.
저희 어머니 아버지가 열 때부터 걱정 많이 하셨거든요 이전에 7, 8년 전에 다 해봤는데 왜 또 이런 짓은
안 되더라 왜 또 하냐 이랬는데 제가 해보면 좀 다를 줄 알았는데 막상 열어보니까 안 되더라고요.
-역시 안되고.
-역시 안됐습니다.
-그래서 역시 안 돼서 그다음 선택한 건 뭐였어요?
-그다음 선택한 것들이 오만 방법을 다 썼던 것 같습니다 그때 막 메일이 이메일이 있어서
이메일 보내서 뭐 당시에 소셜 커머스라는 사이트들이 있었는데 거기 보내고 연락 받은 곳을 찾아가서
제발 한 번만 좀 입점하게 해 주십시오 해서 입점해서 홍보도 하고
그런 거 하나하나들이 좀 반응이 보이면서 저희 사이트에 사람들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어묵 베이커리 제가 처음 보고 충격을 받았던 그곳이에요.
그 어묵 베이커리를 영도에 1호점을 냈어요. 그때 반응이 어떻던가요?
-여기도 마찬가지죠.
-또 역시 안 됐어요?
-역시나 안 됐습니다. 두 달 동안 손님이 너무 없어서 하루 종일 정말 좌절을 엄청 많이 했던 기억이 있고요.
어머니가 또 역시나 이 영도에 누가 오겠냐 이렇게 크게 지어가지고 텅텅 비어서
-유학까지 보내놨더니 계속 안 되는 일만 하네.
-안 되는 일만 하네. 그래서 정말 주변에 보면 신문소라고 있습니다.
당시에 조선일보, 동아일보 이렇게 신문 돌리는
-신문 보급소
-신문 보급소에 찾아가서 예전에 알바도 했었거든요.
거기에 전단지 넣어서 홍보하고 막 이랬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베이커리가 히트 상품이 됐잖아요.
어떻게 된 거예요? 그 변화가 어떻게 온 겁니까?
-지금이야 뭐 SNS나 이런 것들이 되게 활성화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지만 네이버 지식인
이런 데 그 빵집 같은 베이커리 같은 어묵집이 어디 있냐를 보고 오신 분들이 꽤 있으시더라고요.
그 알음알음 입소문이 타기 시작한 거죠.
온라인에서 그러면서 백화점이나 이렇게 트렌드를 쫓아오시는 이런 MD 분들이 찾아오셔서
팝업 행사를 한번 하는 게 어떻겠냐 그리고 언론이나 방송사에서도 그때가 관찰 특공대
이런 뭐 관찰에 이런 프로그램들이 이 유니크한 걸 한번 찾아가 보자 해서 취재를 했는데
그런 부분들이 일파만파 터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갑자기 아무도 찾지 않는 영도 봉래동 시장에 줄을 서면서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에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 이렇게 자리도 잡혔고 거기다 상장도 하고 뭐 이랬으니까 해외에서의 분위기는 어때요?
좀 진출은 했잖아요.
-해외 진출을 2018년도 본격적으로 진출을 했었는데요.
딱 2019년도에 하필 코로나가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저희가 해외 진출에 대한 동력을 3년 동안 잃었습니다.
그 사이에 조금 더 저희는 체력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회사의 구조를 다지는 시간
그다음에 회사의 체력을 올리기 위한 상장까지 이렇게 진행을 하게 됐고요.
본격적으로 지금 또 케이푸드가 또 많이 알려져 있고 또 우리나라 식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커졌을 때
기회라고 생각해서 또 열심히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AI에게 도움을 좀 요청했는데 AI가 질문 몇 개 뽑아줬어요.
뭐 이거 밸런스 게임이라고 그러는데 선택을 하면 된답니다.
첫 번째 둘 중에 어디가 더 마음에 드는지 선택하는 거예요.
1번 2011년으로 돌아가 꿈꿨던 미국 회계사로 살기 기업을 천억 매출로 키워낸 삼진어묵 대표로 살기 둘 중에 어느 걸 하고 싶어요?
-저는 삼진어묵 대표 선택하겠습니다.
-그래요. 선택에 후회는 없다.
-네, 너무 이 15년 동안 과정이 힘들었고 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스토리들이지만 지금은 너무 만족하고요.
오히려 이 과정을 즐기고 행복해하면서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더라도 저는 이 미래를 다시 꿈꿀 것 같습니다.
-결국 젊은 시절의 꿈보다 지금 현재와 미래가 더 가치 있다라는 말씀이네요.
경영 스타일을 볼 수 있는 건데 어디 한번 선택해 보세요 마라, 초코민트 같은 MZ세대의 취향 저격의 어묵 개발하기
아니면 1953년부터 내려온 할아버지의 오리지널 맛 보존하기 어느 쪽을 선택하겠습니까?
-저는 사실 둘 다 할 것 같긴 한데 둘 다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데 하나를 꼭 선택해야 된다면 MZ 쪽으로 가겠습니다.
-역시
-민트맛, 왜냐하면 MZ들을 공략해야지 그 사람들이 또 30대, 40대, 50대, 60대까지도 사실 계속 저희 고객으로 둘 수 있기 때문에
-저도 그럴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자 이거 어느 쪽이 상대적으로 더 나을지 선택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자, 첫 번째 야심차게 내놓았는데
반응이 제로인 신메뉴 매출은 좋은데 원가가 90%인 메뉴 둘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하겠어요?
-저는 후자. 매출은 좋은데 원가가 90%를 선택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고객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이게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고 원가는 줄여 나가면 됩니다. 그게 저희가 존재하는 이유고요.
-그래요 자, 글로벌 시장은 또 어떻게 보는지 볼까요? 동남아 모든 편의점에 저가형 어묵을 깔겠다.
2번은 뉴욕 고급 미슐랭 레스토랑에 프리미엄 어묵을 납품하겠다
-이거 뭐 같이 선택할 수 없는 건가요
-없어요. 반드시 선택해야
-반드시 하나. 반드시 하나를 선택한다면 저는 동남아에서 저변을 확대하는 쪽을 선택하겠습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산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저변이 넓어야 됩니다.
프리미엄은 이후에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랑 공통점이 많다니까요.
이거 마지막 질문은 이거 너무 쉬운데 귀한 손님이 부산에 왔을 때 대접할 소울푸드는
1번 영도 바다를 보며 먹는 어묵 요리 2번 줄 서서 먹는 돼지국밥 노포
-이건 너무
-너무한 질문인데
-저는 만약에 돼지국밥을 먹어야 한다면 돼지국밥에 어묵을 넣어서 한번 만드는 건 어떨까 할 정도로
사람들이 어묵을 더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뭐 이런 질문을 하고 그래요. 이거 이거 AI가 좀 가끔은 실수할 때도 있더라고요.
사실 일본에 지금 1조짜리 어묵 회사도 있잖아요.
-맞습니다.
-그렇게 키우려면 노력 많이 해야 되겠어요
-네, 맞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갈 수 있을까요?
-저는 제 스스로의 가장 큰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냐면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꾸준히 노력해서 성장해 나간다면 20년, 30년 뒤에는 그 기본이라는 회사입니다.
그 회사처럼 1조짜리 회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회사가 특별한 게 없습니다.
아까 말씀 주신 오뎅을 일본 내수 시장에서도 대중적인 문화로 만들고 또 그뿐만 아니라
수출해서 주변에 인공 국가부터 해서 미국 시장까지 오뎅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저희도 어묵탕 어묵 만들 수 있습니다.
-성공의 기준을 뉴욕타임스의 그 회사 삼진어묵의 기사가 나오면 성공한 것이다라고 생각하겠다고 그랬어요.
그 기준 지금도 안 변했어요?
-네, 왜냐하면 뉴욕타임스에서 이 어묵이라는 것을 대서특필 하는 거는
그만큼 미국이라는 메인 스트림 시장에 대중화되어 있지 않을까라고 하고요.
제가 생각하는 게 뭐 저희가 매출이 얼마나 커졌다 회사 규모가 커졌다 보다
이 어묵을 얼마나 대중화를 시키는 데 일조했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저희 회사 뭐 가다가 망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이제 이 회사 일을 알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희의 이런 문화나 철학을 이어받은 누군가가 또 계속 그걸 이어가서
그런 산업의 대중성을 대중화를 이루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지금 생산을 동생이 책임지고 있다고 하는데 동생이 일 잘해요?
-동생이 잘합니다. 네, 동생이 책임자는 아니고요. 동생은 혁신실이라고 맡고 있습니다.
마치 어묵 산업의 혁신을 제가 이끌듯이 어묵 제조의 혁신을 동생이 책임지고 사실 그게 이렇게 미래를 그리고 있고
또 실적에 구애받지 않고 오너가 아니면 지금 하는 것들에 대한 그 한꺼풀 이제 벗겨내고 또 나아가는 것들을 하기 힘듭니다
이제 직장인들은 또 실적이 있어야 되고 또 그런 부분이 있기 때문에 부담이 있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지금 하는 것들을 어떻게 또 더 나은 방법으로 탈바꿈 시킬까
또 즉 기존의 성공 방정식을 깨부수고 또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이렇게 미래의 의지를 가질 수 있는 친구들이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또 그중에 한 명을 또 동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마지막 질문을 제가 뽑아봤는데요. 이거 한번 우선 읽어보죠.
할아버지가 만든 회사 이렇게 망하면 되겠나 절박함, 간절함이 몰입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게 10년 전에 한참 일할 때 박용준 대표가 한 얘기예요. 본인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기억합니다. 그때를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때 그렇게 열심히 기업을 하고 성장시키고 시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던 그때의 절박함이었어요.
자, 이제 천억이 넘는 회사가 됐습니다. 자, 많이 달라졌잖아요.
자, 지금의 동기부여는 무엇인지를 마지막으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당시에는 절박함으로 인해서 흔히 말하는 똥줄 탄다 악으로 깡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10년, 20년을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고 스스로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무엇을 상상했을 때 가장 재미있고 동기부여가 됐을까 정말 30년 뒤에
저희 회사가 100년 됐을 때 세상에 너무 당연하듯이 사람들이 어묵을 사랑해 주고 가치 있게 여겨주고
또 그런 가치 있는 혜택들을 소비자뿐만 아니라 저희 직원들 또 이 산업에 있는 모든 분들이 즐길 수 있는
메이저리그가 되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것을 제가 모든 걸 다 만들지 않다 하더라도
그렇게 이루어져 있는 이 스포츠처럼 그걸 지켜본다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그래서 그걸 상상했을 때 또 그걸 한 발 한 발 이 이정표들을 이어 나갈 때 너무 즐거운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희 어묵을 전국을 또 글로벌 시장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우주까지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항상 그렇기 때문에 저희 어묵을 우주로 가는 그 이미지를 항상 회사에 달아놓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 동기 기업가에게 사실 동기부여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이게 그 초점 이를테면 목표를 이룬 기업과는 회사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가장 결정적인 그런 요인이 되는데
그런 끊임없는 동기고 아직은 뭐 젊으니까 잘 해내리라고 믿겠습니다.
사실 늘 제가 접하는 어떻게 보면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 중에 가장 싼 음식이라고 어렸을 때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지폐 단위가 조금씩 더 커지는 그런 고급화를 이끈 큰일을 했어요.
근데 그러니까 그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을 한 거죠.
자 앞으로도 정말 할 일이 많은 박용준 대표를 오늘 만나게 돼서 저는 개인적으로 참 기쁘고요.
시청자 여러분도 어떠십니까?
이렇게 잘생긴 아직은 청년 소리 들어도 될 만한 이런 대표가 회사를 이끌고 상장도 하고 하는 모습 멋지지 않습니까?
그 여러분들 볼 때마다 눈에 딱 띄니까 볼 때마다 좀 이렇게 응원도 해주고 그러셨으면 좋겠습니다.
자, 오늘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에 어떠세요? 한번 어묵 그중에도 아주 내 입맛에 요새 어묵 메뉴가 굉장히 다양해졌거든요.
그중에 몇 개 골라서 집에 가서 한번 바글바글 끓여서 반죽 살짝 해서 가족들끼리 둘러앉아서 먹으면
사실 그렇게 비싸지 않은 그렇게 크지 않은 지출로 가족들끼리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어묵 요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정했습니다. 오늘 저녁 메뉴는 어묵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