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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스페셜 - 큰장, 또 다른 100년

등록일 : 2023-07-17 13:08:03.0
조회수 : 335
-(해설) 때는 바야흐로 1900년대 당시 큰장 저잣거리에는 온갖 인생 역전의 희로애락이 각본 없는 드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으니.
서문시장 면포상에서는 가짜 은화를 사용하려던 이가 당국의 엄중한 추적에 검거되는가 하면 1916년 가을에는 대구에 콜레라가 발생해 서문시장과 동문시장이 전면 휴업에 들어가며 날품팔이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은 입에 풀칠을 하기도 어려워진 것이었다.
허나 궂은일이 있으면 희소식도 찾아오는 것이 우리네 인생 지사 아니던가.
대구 부민들이 그토록 손꼽아 기다리던 부영버스가 드디어 1929년 7월 운행을 시작하게 되어 서문시장을 이용하는 이들도 편히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1938년에는 거금 5만 원을 투자한 조선 홍보 영화 대륙으로의 길이 붐비는 서문시장을 배경으로 촬영하였다.
한편 큰장에 돈이 나돌자 불량배들도 활개를 치기 시작했는데 매일같이 피해자가 수십 명에 이르는데도 경찰은 천하 파렴치한 시정잡배, 협잡 모리배들과 오히려 형님, 동생 하며 지내기까지 한다 하니 너나없이 배곯고 서럽던 그 시절 그래도 이고 지고 큰장에 나서면 식구들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귀 밝아지던 우리네 귀한 서문시장의 운명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하나, 둘, 셋.
내빈 여러분, 뒤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해설) 지난 4월 한 세기 동안 대구 시민들 삶의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대구큰장 서문시장이 또 한 번의 봄날을 맞았습니다.
그렇죠?
-세월이 변해도~
-(해설) 100년을 이어온 민생 경제의 최전선.
하나의 시장이 무려 100년간 한자리를 지키며 오늘까지 왔다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통시장의 명맥을 이어온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는 얘기죠.
묵묵히 삶의 자리를 지켜온 숱한 상인과 시민들이 이 100년의 주인공들입니다.
-(해설) 꼭 100년 전 오늘입니다.
일제 강점기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이곳에 새 둥지를 틀고 내일의 희망을 부려놓았을 첫 밤.
그날도 오늘과 같이 눈부신 봄이었습니다.
4월 1일이 예정이다.
그리고 그다음에 또 찾으니까 조그마하게 4월 8일, 9일에 시장 이전 축하연을 했다고 되어 있어요.
그러면 4월 1일이 맞겠다는 추정은 할 수 있었지만.
-(해설) 이후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도 서문시장은 이곳에 단단히 뿌리 내려 생존의 최전선을 지켜 왔습니다.
이전한 역사만 100년이지 무려 16세기부터 시작된 깊은 역사와 단단한 저력이 있었거든요.
-(해설) 1900년대 초반에 작성된 이 지도를 보면 대시라고 표시된 주변으로 말, 소, 닭을 파는 곳이 따로 적혀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 왕래가 많던 달서교 오른쪽으로 난전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도 아주 많았죠.
매월 2일과 7일에 개시하던 대구장은 18세기 후반에 이미 대구 지역 크고 작은 향시의 중심장이 됐고 전국적으로 명성을 펼치며 전국 3대 장시로 발전하게 됩니다.
-(해설) 1905년 경부선 대구역이 개통되고 이듬해 대구읍성이 헐리면서 그 주변으로 일본인 상가가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은 성 바로 밖에 있던 서문시장의 금싸라기 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는데 결국 성이 헐리고 도시가 확장되면서 서문시장도 외곽으로 옮겨진 것이죠.
일본은 당시 서문시장 서남쪽에 있던 천황당못을 메우고 이 자리로 서문시장을 옮기는데 이때 식민 지배 만행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해설) 1919년 대구의 만세운동도 3월 8일 서문시장 장날에 맞춰 일어난 거사였죠.
큰장 만세운동 이후 일제는 터를 옮겨 서문시장의 공간을 조정함으로써 눈엣가시같던 조선의 자본가들과 드높던 민족정신을 억압하려 했던 겁니다.
하지만 밟을수록 더욱 퍼렇게 일어서는 잡초처럼 삶이 고달플수록 더욱 치열하게 자신의 자리를 다져온 이들이 바로 대구의 상인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숱한 위기와 고비 속에서도 서문시장은 조금씩 그 영역을 넓혀 가며 어느새 100년의 시간을 건너왔습니다.
오늘의 서문시장이 있기까지 세월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어온 건 단연 섬유 관련 품목을 취급하는 1지구 상인들입니다.
이곳에서 대를 이어 이불집을 하고 있는 김상엽 씨 역시 서문시장과 그 세월을 함께해 왔습니다.
-(해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이불의 70%가 이곳 서문시장과 큰장길 침구 거리를 중심으로 유통됐다고 하죠.
혼수 이불에서 맞춤 이불까지 지금도 여전히 그야말로 없는 게 없습니다.
-(해설) 그렇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서문시장으로 출근한 지도 어느새 20여 년.
-(해설) 이제 시대가 변했다지만 아들은 아버지 시절 서문시장의 명성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아마 이보다 더한 변화를 겪으면서도 이 터를 지켜오셨겠죠.
가족이 대대로 이어온 역사이기도 하기에 온라인 판매 같은 새로운 판로를 모색하며 그는 오늘도 이 자리를 지킵니다.
비슷비슷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집집마다 물건도, 물건에 얽힌 사연도 제각각인 서문시장.
역사가 오래된 서문시장 1지구에는 그래서 재미난 이야기도 참 많죠.
특히 서문시장 한복집은 결혼이며 잔치 같은 집안 경사가 있을 때마다 찾던 곳이기에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입니다.
조선 시대부터 유명세를 펼쳤다는 큰장 한복 장인들의 명성이 여전히 화려하게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여성 일색인 주단 골목이다 보니 눈에 띄는 이 남자.
주단 상가의 청일점, 장정욱 씨입니다.
가업을 일으킨 어머니가 반백 년 지켜온 한복 가게에 아들이 둥지를 튼 지도 어느새 10년이 다 됐다죠?
-(해설) 맞춤 한복에서 대여 한복으로 이제는 손님들 풍속도가 사뭇 달라지고 있다지만 요즘도 아침 8시면 출근하는 어머니의 부지런함은 50년째 여전합니다.
-(해설) 세월 따라 많은 것이 변했어도 여전히 변치 않은 고마운 단골 손님입니다.
-잘 먹을게.
-(해설) 손님이 아니라 다정한 친구인 셈이죠.
-(해설) 주문 즉시 총알같이 배달되는 서문시장의 길카페 커피는 단골 손님들을 위한 특별 서비스.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두런두런 정을 나누는 상인과 손님의 티타임.
이런 게 바로 전통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죠.
-(해설) 젊고 곱던 새댁 사장님이 대구 섬유산업의 흥망성쇠를 온몸으로 겪으며 이 자리를 지켜온 지도 어느새 50년.
이곳에 들어서면 정 많던 그 시절, 서문시장의 화려한 전성기를 보는 듯 기억이 다시 화사해집니다.
한국전쟁 이후 서문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한 일등 공신은 바로 이곳 포목과 주단 상인들입니다.
섬유도시 대구의 명성이 이곳에서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죠.
전국 최대 규모의 포목 도소매 시장으로 이름을 떨치며 1980년대까지도 서울 동대문시장 상인들이 물건을 사러 올 만큼 성황을 누렸던 이곳.
애잔한 세월에도 여전히 굳센 꿈들이 숨 쉬고 있습니다.
대구 사람들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서문시장에 영광의 역사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람도 많고 물건도 많다 보니 크고 작은 불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서문시장의 역사는 화마와 맞서 싸운 역사이기도 합니다.
지난 100년의 역사 속에서 상가 전체를 전소시킬 만큼 손에 꼽을 만한 큰불도 여러 번이었죠.
차곡차곡 모아둔 장사 밑천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고, 점포의 흔적마저 찾기 어렵던 아픈 기억.
상인들에게는 아직도 그날이 생생합니다.
-(해설) 서문시장이 현재의 자리로 옮겨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장 북로에 있는 농기구 상에서 불이 났습니다.
불은 달성공원까지 번져 당시 상가 48호가 전소됐고 약 5만 8400원의 피해를 입었죠.
이후 기록된 화재만 무려 17회.
2016년 4지구를 집어삼킨 대화재는 7년이 지난 지금까지 복구 중에 있습니다.
화재의 트라우마를 겪은 이후, 서문시장에는 소방차가 늘 순찰을 돌고 있습니다.
1976년 3지구 전체를 전소시킨 큰불 이후 그 자리에 소방 파출소가 들어선 것이죠.
현재 서문시장에 3지구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애지중지 지켜왔던 가게 자리를 잃고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은 상인들.
처음부터 다시 모든 것을 일으켜야 하는 힘겨운 시간은 역설적이게도 시장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해설) 그렇게 아픔과 시련 속에서 서문시장의 공간들은 끊임없이 재구성돼 왔습니다.
직물과 포목 시장이 밀집한 1지구.
의류, 잡화 가게들이 모여 있는 2지구.
화재 이후 3지구 상인들이 옮겨온 동산상가.
2016년의 화재로 재건 중에 있는 4지구.
단추, 레이스 등 의류 부자재를 파는 아진상가.
한강 이남의 가장 큰 의류 도매시장, 5지구.
말린 해산물과 약초 가게가 밀집한 건해산물 상가.
가장 근래에 개설된 명품 프라자까지.
서문시장은 섬유도시 대구의 역사를 증언하는 곳이자 100년의 역사를 지나오며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무수한 이야기를 간직한 특별한 공간이 됐죠.
대구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반드시 서문시장에 얽힌 추억이 있죠.
-(해설) 시장에 오면 그 시절이 추억이 선명해집니다.
-(해설) 누군가의 어린 시절이 스며 있고 누군가의 꿈이 자라던 곳.
그렇게 많은 이의 삶을 평행선처럼 걸어온 곳.
그래서 서문시장은 대구 사람들에게 그냥 단순한 시장이 아닙니다.
-(해설)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 시간이 이 장터에 남아 있습니다.
서문시장은 수 세기에 걸쳐 대구의 성장을 견인한 경제 공간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전 국토가 초토화됐을 때도 오히려 서문시장은 생필품을 내다 팔러 나온 피난민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죠.
거기다 1960년대까지 제일모직과 같은 대형 섬유 공장이 대구에 건설되면서 서문시장은 대구가 대한민국 섬유 산업의 메카로 성장할 수 있는 든든한 토대가 돼줬습니다.
그 중심에 조선 시대부터 섬유로 유명세를 떨쳤던 서문시장의 상인들이 있었죠.
물건이 집성되는 서문시장 중심으로 많은 공장을 이렇게 세워두었거든요.
-(해설) 보부상 출신으로 거부가 된 서상돈, 대부업과 무역으로 대지주가 된 이동진, 소금 장사로 대구은행을 설립한 정재학, 포목 행상으로 직물계의 대부가 된 김성재까지 당시 서문시장은 맨몸 하나로 뛰어든 이들에게 부의 신화를 이루어줬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충분히 자부심을 갖고 서문시장에 애정을 갖고 봐야 하는 일이 아닌가.
-(해설) 세상 어느 시장이 이렇게 정치의 중심에 놓일 수 있을까요?
대구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자 하는 정치인들은 늘 1순위로 서문시장을 찾아왔습니다.
선거를 앞둔 후보든 정치적 위기에 맞닥뜨린 정치인이든 서문시장은 지역 민심을 확인하는 바로미터로서 세를 결집하고 지지를 확인하던 정치적 상징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함께) 대통령 홍준표.
-감사합니다.
-(해설) 단순히 물건만을 사고파는 시장이 아니라 여러 공간학적 의미를 창출해 온 서문시장은 이제 대한민국 관광의 별이 됐습니다.
대구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여행 필수 코스가 된 거죠.
대구 최대 먹거리 장터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한자리에서 쇼핑은 물론 문화 투어까지 가능한 서문시장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관광명소로 이름을 떨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는 우리나라의 전통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죠.
-(해설) 최근 젊은 세대들에게 서문시장이 인기를 끌게 된 결정적 이유, 바로 서문시장 야시장입니다.
지난 2016년 6월 개장한 서문 야시장은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야시장 가운데서도 단연 국내 최대 규모.
특히 코로나가 잠잠해진 올해는 개장 첫날부터 10만여 명이 몰려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가장 인기를 끄는 건 단연 푸드트럭들.
오대양 육대주의 별별 푸드가 여기 다 모여 있습니다.
청년 상인들에게는 저렴한 자본금으로 손쉽게 장사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이자 자신이 만든 상품들로 소비자의 반응을 확인해 볼 수 있는 테스트 베드인 셈.
저렴한 먹거리가 입맛을 돋우고 돈 주고 봐도 아깝지 않을 무료 공연들이 흥을 돋우니 서문시장에서는 연일 눈이 즐겁고 입이 즐거운 밤의 축제가 펼쳐집니다.
-(해설) 낮보다 화려한 전통시장의 제2막.
청춘과 젊음의 열기로 대구의 밤이 더욱 빛납니다.
간밤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새벽.
야시장이 폐장한 지 4시간도 지나지 않아 야시장이 철수한 도로엔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건어물 도매상 트럭들이 줄을 섭니다.
덕분에 서문시장 길거리 카페 역시 새벽부터 아주 바빠지죠.
새벽을 달려온 전국의 도매상들이 서문시장에 하루를 열어주는 셈입니다.
전통시장 하면 나이 든 상인들의 터전이라고 생각하지만 요즘 전통시장은 다릅니다.
젊은 상인들을 곳곳에서 만나볼 수가 있죠.
새벽 4시만 되면 문을 여는 이 떡집으로 한번 들어가 볼까요?
서울에서 떡 가게 일을 10여 년 정도 하다 아무 연고도 없는 서문시장에 자리를 잡은 지 어느새 4년.
최악의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도 그사이 떡집엔 직원이 3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최상의 쌀과 신선한 재료만을 쓴다는 깐깐한 장사 원칙에 젊은 감성이 더해져 개성 있는 이 집만의 시그니처 상품이 탄생했죠.
-(해설) 최고의 베스트셀러 상품은 이 집만의 구슬 모찌.
-남아 있어?
-(해설) 운이 좋아야 살 수 있는 떡이죠.
-(해설) 끝자리 몇백 원은 에누리.
게다가 손 큰 서비스까지.
젊은 부부가 시장 인심도 제대로입니다.
-(해설) 새벽부터 빻고 찌고 치대고 포장하고 모든 일이 수작업이라 하루가 정신 없이 돌아가지만 부부에게 서문시장은 둘도 없는 기회이자 인생의 든든한 발판입니다.
이 시장의 미래가 부부의 미래와 맞닿아 있기에 젊은 부부에게 서문시장은 그저 단순한 일터가 아닌 셈이죠.
-(해설) 청춘과 전통이 만나 새롭게 만들어 가는 활기찬 시장.
지금 서문시장은 100년의 역사 위에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는 중입니다.
젊음을 담보로 내일의 꿈을 말고 있는 이 집 역시 서문시장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사장님의 가게입니다.
속 꽉 찬 열정으로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집이죠.
식사 시간이면 웨이팅이 필수라는 서문시장의 핫플레이스.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의류 도매 시장으로 소문난 서문시장 5지구에 최근 의류 도매상들만큼이나 맛집 찾는 젊은 미식가들의 발길이 잦아졌다죠?
바로 이 집 얘기라는군요.
음식 맛 좀 안다는 SNS 인플루언서들이 극찬한 김밥집.
개성 강한 깁밥에 갓 버무려 아삭, 싱싱한 김치까지.
독특한 메뉴로 각종 매스컴을 타면서 젊은 사장님은 쉴 틈 없이 바빠졌습니다.
대체 그 비결이 뭘까요?
-(해설) 오픈하자마자 주력했던 SNS 마케팅 전략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개업 4년 만에 차원 다른 김밥집이 탄생했다는 겁니다.
김밥집에서 익힌 노하우와 시장 조사를 바탕으로 두 번째 문을 연 닭강정집도 한창 인기를 끌고 있고요.
1인 가구의 완벽한 한 끼를 위한 도시락집까지.
차츰차츰 업종을 넓혀가면서 하나의 작은 기업을 꿈꾸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거 계열사들이군요?
-(해설) 주먹구구는 없습니다.
치열한 연구와 회의, 젊은 상인들이 들어오니 시장 장사도 이렇게 시스템이 갖춰집니다.
서문시장에 본점을 두고 장차 프랜차이즈까지 꿈꾸는 젊은 상인들은 포장재부터 가격 산정까지.
말 그대로 똑소리가 납니다.
-(해설) 이제 시장에 입성한 지 3, 4년에 불과한 햇병아리 초짜 상인이지만 아이디어와 열정만큼은 수십 년 어르신 상인들께 결코 뒤지지 않죠.
웬만한 신선 식자재는 시장 안에 다 있는 데다가 수십 년 장사 철학을 가진 고수들이 죄다 이웃들입니다.
이만한 창업 학교가 또 어딨을까요?
-(해설) 전통시장의 상인들이 달라지면 소비자도 달라지는 법이죠.
수백 년 쌓아온 서문시장만의 인프라에 청년 상인들의 열정과 활기고 더해져 지금 우리 시장은 나날이 젊어지고 있습니다.
-(해설) 이제 시장은 단순한 소비 공간이 아닙니다.
시장 그 자체가 하나의 관광상품이자 문화 자본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있죠.
-(해설) 지역을 의미하는 로컬과 창작자를 뜻하는 크리에이터를 합친 로컬 크리에이터.
로컬 크리에이터는 말 그대로 지역이 가진 자원에 비즈니스 모델을 접목해 지역 고유의 브랜드를 만들고 지켜나가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요즘 전국의 많은 시장들이 로컬 크리에이터의 역량을 모으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겁니다.
여기 서문시장이라는 경쟁력 있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창의적인 청년들이 이곳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 우리 서문시장은 앞으로의 100년도 거뜬하겠죠.
-(해설) 그러기 위해선 서문시장이 풀어야 할 선결 과제들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질적인 주차난.
하루 평균 방문객 수가 무려 3만여 명이나 되는 서문시장.
그런데도 주차장은 고작 900대밖에 수용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서문시장 일대의 교통난, 짐작이 가시죠?
서문시장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정부와 대구시도 여러 가지 대책을 준비하고 있죠.
대통령에게도 그걸 건의를 했고.
들어준다고 하니까 거짓말 안 하겠죠.
들어 주겠죠.
-(해설) 사실 풀어야 할 숙제가 주차장뿐만은 아닙니다.
대구 시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수백 년의 세월을 이어온 가치가 무색하게 좀 더 깊은 관심과 고민들이 기울여지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100년을 위해서 반드시 들여다봐야 할 대목들이죠.
-(해설) 낡은 시간과 새로운 시간.
장인과 청춘.
노점상과 점포상.
무질서와 질서.
관행과 규칙.
100년의 공존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이루고 다시 또 다른 100년의 미래를 향하고 있는 서문시장.
어떤 위대한 역사도 인간의 삶 속에서 나오지 않은 역사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인생 학교이자 역사 학교.
100년의 공존이 가져다줄 100년의 미래.
이 큰 장에서 우리는 또 다른 대구의 100년 희망을 내다봅니다.
-서문시장은 저한테는 엄마의 기억하고 연결이 돼요.
서문시장, 이러면 저한테는 엄마죠.
-부모님이 저를 키우셨고 또 제가 제 자식을 결혼해서 낳아서 기르게 되는 세대를 이어주는 하나의 매개체인 것 같습니다.
-저한테 서문시장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해준 곳이고요.
또 꿈을 꿀 수 있게 해준 곳이라서 애틋한 부분이 많죠.
서문시장 간판만 봐도 가슴이 아직도 떨리고.
-서문시장이 이렇게 지금 변하고 있구나.
그렇지만 그 변화되는 과정을 같이 기뻐할 수 있는.
더 예뻐졌네, 깨끗해졌네, 이게 너무 기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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