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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스페셜 - 만경강 생태보고, 신천습지
등록일 : 2023-12-18 15:14:21.0
조회수 : 598
-(해설) 만경강 중류.
완주 고산 천교와 하리교 사이의 구간입니다.
여기에는 190여 종의 식물 등과 440여 종의 야생동물이 살고 있습니다.
수많은 동식물이 목격돼 생태의 보고라고도 불리는 곳.
사람들은 이곳을 강 대신 습지라고 부릅니다.
여기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해설) 해가 지기 전인데도 사방이 트인 곳에서 삵이 나타났습니다.
소리와 냄새의 감각으로 안전을 확인한 후 보를 건너갑니다.
밤에는 너구리나 수달 같은 강한 포식자들도 먹이 사냥에 나섭니다.
이곳 신천습지와 그 일대는 그야말로 야생의 현장입니다.
여느 강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풍경입니다.
제작진은 이곳을 왜 생태의 보고 라고하는지 그 이유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습지의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딴판입니다.
전주 도심에서 불과 10분 거리.
완주군의 삼봉 신도시에서는 3분 거리입니다.
인근에서는 철도가 달리고 습지의 상류 쪽에는 새만금 포항 고속도로가 지나갑니다.
강줄기 양옆으로는 차량들이 질주합니다.
자동차 소음이 하루 종일 멈추지 않는 곳이죠.
제방에 서면 습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동물들이 숨을 데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곳이 어떻게 숱한 생명들의 보금자리가 됐을까요?
아니, 그 말이 맞기는 한 걸까요?
백두대간 금남정맥이
내달리는 완주 운장산.
산줄기가 연석산에 이르면 서쪽으로 만경강 물줄기가 흘러갑니다.
이 물줄기는 해발 713m의 원등산 줄기.
밤샘에서 시작합니다.
이 맑은 물이 신천습지로 흘러가는 만경강 200리 길의 첫걸음입니다.
춘 3월 하순, 봄의 신호가 도착했건만 개구리들은 아직 깨어날 생각이 없나 봅니다.
하지만 만경강 66개 모든 지류에서 봄은 어김없이 시작됩니다.
그중에서도 최상류인 경천면 신흥계곡은 자연사 수수께끼로 불리는
이끼 도룡뇽의 몇 안 되는 서식지죠.
촉촉한 바위 위에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된 도룡뇽이 있습니다.
폐가 없어 오직 피부로만 호흡하는 이 녀석은 눈이 튀어나오고 등에 갈색빛이 도는 것이 특징입니다.
미주도룡뇽과 생물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왜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됐는지
그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신흥계곡 물줄기는 고산면 소재지에서 본류와 합류한 뒤 신천 습지를 향해 달려갑니다.
신천습지는 고산천교에서 하리교까지 약 3.2km 구간입니다.
습지 아래는 일자형의 신천보와 기역자형의 벌덕보 두 개의 보가 놓여 있습니다.
소양천이 합류하는 회포대교 부근 강 폭은 최대 700m에 이르죠.
하천 폭이 넓어지면 유속이 느려져 물길 속에 섬 하중도가 다수 생겨나게 됩니다.
수중보와 느려진 유속이 자연스레 습지가 발달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됐습니다.
벚꽃이 만개한 4월, 신천습지의 대기는 아직 쌀쌀합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건 물가 옆 작은 봄꽃들이죠.
겨울 철새들이 떠나간 습지는 게으르거나 텃새가 된 녀석들의 차지가 됐습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새는 습지 안팎을 넘나들며 살아갑니다.
하리교 가로등 꼭대기에서 먹잇감을 찾고 있는 황조롱이도 출퇴근하듯 습지에 출몰합니다.
쥐 사냥에 성공한 녀석이 포획물을 확인하기 위해 하리교 상판 아래로 날아갑니다.
황조롱이는 인간의 건축물에도 둥지를 트는 것으로 유명하죠.
이 녀석도 습지 주변 어느 아파트 베란다로 날아갈지도 모릅니다.
4월 습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새는 백로와 왜가리입니다.
백로와 유사한 황로도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여름 철새지만 일부는 텃새가 됐습니다.
백로는 얕은 물 위를 걸어 다니며 먹이 활동을 합니다.
물고기 움직임에 온 신경을 모으는군요.
백로들이 먹이를 마음껏 탐하는 이유는 4월부터 번식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백로와 왜가리도 하천에서 생활하지만 둥지는 습지 이외의 곳, 주로 산에서 틉니다.
먹이 사냥을 마친 백로와 왜가리들이 어디론가 날아가는군요.
습지에서 5km 거리에 있는 전주 건지산입니다.
백로, 왜가리들의 번식처죠.
신천습지는 만경강 지류나 주변 배후지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습니다.
습지 홀로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풍부한 생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거죠.
백로와 황로들이 둥지를 지을 재료를 모읍니다.
지금은 번식을 위한 중요한 시기입니다.
둥지가 완성되면 저마다 알을 품기 시작하죠.
해오라기도 백로나 왜가리 무리 속에서 산란을 합니다.
상층부는 왜가리들이 차지했군요.
벌써 알을 깨고 나온 왜가리 새끼들입니다.
왜가리는 한 번에 서너 개의 알을 낳죠.
새끼들은 어미 새와 교감하며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초록 빛깔이 겨울의 흔적을 조금씩 지워냅니다.
하지만 4월까지는 진귀한 겨울 철새 들을 볼 수도 있습니다.
저어새가 아직 습지를 떠나지 않았군요.
부근의 하중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입니다.
아늑한 공간에서 원앙 무리가 물놀이를 즐깁니다.
이런 풍경은 제방이나 자전거 도로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트인 공간이지만 사람이 다가올 수 없고 숨을 곳이 많다는 것, 신천습지가 생명의 공간이 된 이유입니다.
강의 한복판에 만들어진 작은 자갈 섬들도 새들만의 공간입니다.
왜가리 곁으로 장다리물떼새 한 쌍이 날아옵니다.
다리가 몸길이만큼이나 되는 진귀한 새죠.
머리 깃이 새카맣고 몸통 색이 진한 새가 수컷입니다.
그에 비해 암컷은 약간 연한 색깔이죠.
이 녀석들은 잠깐 머물다 가는 나그네새인데 일부는 국내에서도 번식을 합니다.
장다리물떼새는 습지에서 배불리 먹은 후 북쪽 지방으로 날아갈 겁니다.
주먹만 한 꼬마물떼새도 보이는군요.
3월쯤 우리나라에 날아와 10월까지 지내는 여름 철새죠.
눈 주위에 노란 테로 흰목물떼새와 구분할 수 있습니다.
습지에는 군데군데 이런 자갈 지형들이 있습니다.
꼬마물떼새가 선호하는 번식 장소죠.
부산 떨던 어미 새가 갑자기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알을 품습니다.
꼬마물떼새는 한 번에 4개 정도 알을 낳고 암수가 번갈아가며 약 25일간 알을 품습니다.
꼬마물떼새는 이곳 자갈섬에서 아기물떼새를 무사히 만날 수 있을까요?
이틀간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습지의 수위는 강우량에 따라 민감하게 영향을 받습니다.
새알들이 있어야 할 자갈섬이 보이지 않는군요.
간밤에 큰비로 자갈섬은 물론 물떼새 둥지까지 강물 속에 잠겨버린 겁니다.
올봄, 종을 이어가려던 꼬마물떼새의 첫 산란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신천습지에는 어떤 물고기들이 살고 있을까요?
보에 설치된 어두를 통해 물살을 거스르는 물고기들이 보입니다.
참갈겨니입니다.
햇볕을 즐기고 있는 이 녀석은 한국의 고유종입니다.
보 근처는 산소가 풍부하고 유량이 넉넉합니다.
뱀처럼 생긴 이 녀석들은 가물치입니다.
공격성이 강한 육식성 어종으로 하천의 최상위 포식자죠.
환경 적응력이 좋은 누치입니다.
큰 덩치 덕에 가물치 앞에서도 여유롭습니다.
동상면 일대를 유유히 흘러온 만경강 강물을 대아댐이 가두었습니다.
농업용수를 저장하고 홍수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죠.
대아댐은 1989년에 건설됐고 물속에는 1922년 일제강점기에 축조된 구 댐이 잠겨 있습니다.
마르지도 넘치지도 않는다.
수리 시설에 이보다 좋은 말은 없겠지만 식민지 시절 우리 쌀을 수탈하기 위한 조선 총독의 휘호입니다.
댐에서 약 9km를 흘러가면 완주군 고산면 어우리.
여기부터는 강물의 일부가 수문을 통해 본류를 벗어나게 됩니다.
대간선수로입니다.
만경강 강물을 호남평야의 중심으로 흐르게 하는 63km의 인공 도수로죠.
지금이야 생명의 젖줄이지만 당시 일제는 본류의 직강화 공사와 함께 이 수로를 미국 수탈의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대간선수로는 수위가 낮을 때 만경강의 물고기를 관찰하기 좋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바위와 자갈 바닥을 유독 좋아하는 물고기들이 있습니다.
모래바람을 일으킨 건 참종개였습니다.
한국의 고유종이죠.
전북대학교 김익수 교수가 세계 최초로 분류해 학술 명을
Iksookimia koreensis라고 명명한 우리나라에만 있는 물고기입니다.
이 녀석도 돌 틈을 좋아합니다.
퉁사리는 금강과 만경강, 영산강 일부에서만 발견됩니다.
메기목 어류 중에서 가장 적은 20개의 염색체를 가진 귀한 물고기입니다.
물길 군데군데 보가 만드는 작은 폭포들이 있습니다.
이런 곳은 그야말로 물고기들의 집합소입니다.
수많은 돌고기 사이로 지느러미 모양이 다른 게 있습니다.
감돌고기입니다.
금강 일부와 만경강 상류에서만 출현하는 보물 같은 존재죠.
5월 말.
제방 넘어 들판은 논농사로 분주합니다.
농수로를 따라 흘러온 만경강 강물이 들판에 아낌없이 공급됩니다.
4월이 벚꽃이라면 5월은 이팝나무꽃입니다.
흰쌀밥 같은 꽃을 이고 습지를 바라보죠. 물가에서는 비슷비슷한 사초류들이 쑥쑥 얼굴을 내밀더니 단숨에 1m를 넘어섭니다.
꽃이 아니라면 구분하기도 어렵죠.
강물 위에서는 어린 연꽃과 같은 수생 식물들이 나타납니다.
신천습지처럼 이렇게 다양한 식생들이 모여 있는 곳은 흔치 않습니다.
5월은 누가 뭐래도 번식의 계절입니다.
습지의 풀숲에서 작은 곤충들이 종족을 이어가기 위해 짝짓기를 하고 있습니다.
일명 뱁새로 불리는 붉은 머리 오목눈이도 지금이 번식기입니다.
습지의 풀숲에서 많이 볼 수 있지만 산란은 제방의 바깥쪽에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방 넘어 눈길이 닿지 않는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어미 새가 없는 틈을 타 들여다보니 이미 산란을 마쳤군요.
다섯 개의 청록색 알이 보입니다.
둥지의 주인이 왔습니다.
뱁새가 지금 품고 있는 이 알은 흥미롭습니다.
뱁새의 알이 청록색인 이유는 흰색 알을 좋아하는 어치의 습격에 대비한 거라는군요.
그렇다면 뱁새의 알은 모두 청록색일까요?
또 다른 뱁새 둥지를 찾아 약 20분을 걸어 상류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뱁새 둥지를 찾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길가 숲에서 뱁새 새끼들의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나뭇가지 속에 매달린 작은 둥지.
그 안에 있는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뱁새알.
흰색이군요.
뱁새의 둥지가 맞는지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둥지 위로는 전깃줄이 지나갑니다.
그 위에 제집 마냥 앉아 있는 녀석들.
찌르레기.
파랑새.
그리고 이 녀석.
뱁새가 두려워하는 뻐꾸기입니다.
뻐꾸기는 뱁새 둥지의 알을 낳는 탁란으로 유명하죠.
흰색 알의 주인이 돌아왔을까요?
뱁새입니다.
이 녀석은 자신의 둥지를 호시탐탐 노리는 뻐꾸기의 탁란을 막기 위해
청록색에서 하얀색으로 알의 색깔을 바꾼 겁니다.
어치와 뻐꾸기의 위협에 맞서 종을 이어가려는 뱁새알의 신비입니다.
봉동읍 앞으로 만경강이 굽이쳐 흐르고 강 주변 산에서는 새들의 육추가 한창입니다.
숲이 우거진 작은 돌산의 정상 부근.
수리부엉이들이 움직입니다.
벼랑 사면에 수리부엉이 둥지가 있기 때문인데요.
어미가 태어난 지 일주일 된 새끼들에게 먹이를 나눠주고 있습니다.
아빠 부엉이는 둥지 밖 나뭇가지에서 경계를 서고 있죠.
새끼들이 둥지를 벗어나는 데는 보통 6주 정도 걸립니다.
자기들끼리 솜털도 골라주고 사이 좋게 지냅니다.
이때쯤이면 엄마 수리부엉이는 더 이상 음식을 발라주지 않습니다.
아빠가 사냥해 온 꿩고기를 먹고 싶으면 따라오라는 듯 날아가 버립니다.
걸음마와 날갯짓을 유도하는 거죠.
엄마의 이런 뜻을 알기나 할까요?
새끼들은 어쩔 수 없이 큰 쥐를 통째로 먹어보기도 합니다.
덕분에 다리에 힘이 생기고 날갯짓도 해봅니다.
드디어 새끼들이 둥지를 벗어났습니다.
몸통을 감쌌던 솜털도 많이 빠졌습니다.
이 시기에는 엄마 수리부엉이가 주변에서 안전을 체크합니다.
언제든 새끼들 곁으로 돌아오죠.
새끼들의 날갯짓 훈련이 위험해 보였나 봅니다.
하지만 새끼의 안전이 확인되면 엄마 수리부엉이는 다시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독립을 준비하라는 뜻이죠.
며칠간 세찬 비가 내렸습니다.
새끼 수리부엉이들이 꼼짝 없이 비를맞습니다.
엄마 부엉이는 여전히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군요.
새끼는 날갯짓으로 물을 털어내 봅니다.
비는 언젠가 그칠 테고 그때까지는 견뎌야 한다는 걸 새끼들이 알기를 바랄 뿐입니다.
종일 비를 맞은 새끼가 힘겹게 엄마 수리부엉이 아래까지 왔습니다.
엄마 부엉이는 알면서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습니다.
냉랭한 분위기를 눈치 챘지만 새끼는 엄마 곁에 다가가 봅니다.
새끼를 내쳐 떨어트리는 엄마의 마음.
혼자 힘으로 사냥하며 맹금류의 위엄을 보여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신천 습지 인근 마을에 밤이 찾아왔습니다.
마을 길을 따라 이어진 수로에서 강물을 퍼 올립니다.
수로는 논과 논 사이를 혈관처럼 흐르며 대지를 적셔줍니다.
이곳 농수로에는 귀한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 흐름이 적은 곳.
금개구리입니다.
등에는 금색이 선명한 두 줄의 융기선이 있습니다.
하지만 위장술이 좋아 개구리밥이 풍부한 곳에서 상체만 드러낸다면 쉽게 찾을 수 없죠.
금개구리는 우리나라 고유종입니다.
이곳을 포함해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서식하고 있죠.
아직까지 전통 농수로가 보존돼 있고 수로 옆, 논두렁 흙에 들어가 쉽게
동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속에는 먹이가 되는 각종 수서 생물들도 풍부합니다.
생명이 숨 쉬는 땅입니다.
새벽 5시가 가까워오자 신천 습지의 하늘이 붉어집니다.
촉촉한 습지의 공기를 6월의 태양이 데우기 시작합니다.
습지의 하루가 이토록 장엄하게 열릴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번식으로 부산했던 5월이 지나니 벌써 여름입니다.
제방 경사면의 식물들은 어느새 바뀌었습니다.
4월에 올라왔던 봄꽃들 위로 여름 식물들이 덮였습니다.
자전거길 주변과 물가에는 기생초, 금계국, 개망초 같은 여름꽃들이 6월을 수놓습니다.
그중 하나 눈길을 끄는 식물이 있습니다.
습지 내 두 곳에서 쥐방울덩굴이 발견되었습니다.
꼬리명주나비 애벌레가 유일하게 먹는 식물이죠.
이 식물이 있다면 꼬리명주나비를 볼 수도 있습니다.
장자보 인근 제방입니다.
흰색 수컷들 사이로 갈색 암컷 한 마리가 날아갑니다.
그 위로 갑자기 나타난 수컷 한 마리.
암수 한 쌍이 나뭇가지에 자리를 잡습니다.
수컷은 아래에서 거꾸로 매달립니다.
암컷은 위에서 몸통의 끝을 수컷에 맞추죠.
짝짓기의 시작입니다.
암수 꼬리명주나비는 짝짓기를 마친 후 며칠 내로 생을 마감하게 되지만 아랑곳없습니다.
종을 이어가려는 속성이죠.
암컷은 짝짓기를 마친 그날부터 산란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쥐방울덩굴 이파리에 매달려 천천히 한 알씩 한 알씩 알을 낳고 있습니다.
오렌지빛 영롱한 알은 조금씩 회백색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암컷이 낳은 알은 100개에서 120개 사이.
모두 쥐방울덩굴 이파리나 줄기에서죠.
열흘 후 알껍데기를 깨고 애벌레가 세상에 나옵니다.
애벌레들은 군집 생활을 하다 몸집이 커지면 단독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2cm 안팎의 꼬리명주나비 애벌레들이 쥐방울덩굴 이파리를 폭풍처럼 갉아먹습니다.
배불리 먹은 애벌레들은 나무줄기에 자리를 잡고 번데기로 변신합니다.
그로부터 약 8일 후.
꼬리명주나비가 태어납니다.
하지만 날개가 마를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매달려 있어야 합니다.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에 생명도 사라집니다.
새로 태어난 나비들은 일주일 정도 생존합니다.
바람을 타는 활강.
이보다 더 우아한, 이보다 더 스위트한비행을 본 적 있으신가요?
여름 신천습지에서는 알에서 나비의 비행까지 기적 같은 생명의 사이클이 세 차례나 반복됩니다.
올여름 유난스러웠던 장맛비에 습지가 통째로 잠겼습니다.
자연의 위력을 예측하고 대비할 수는 있어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습지는 역시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잠기는 날도 마른 날도 있겠죠.
그 과정에서 상처가 생기면 그 또한 스스로 회복할 것입니다.
자연이니까요.
장마가 끝나고 열흘도 지나지 않아 습지는 본래의 모습을 거의 회복했습니다.
폭염이 시작돼, 새들은 눈에 띄게 줄었지만 다른 동식물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자리를 잡아갑니다.
올봄에 태어난 흰뺨검둥오리 새끼들이 엄마 오리와 함께 신천보 오르기를 배웁니다.
1m가 넘는 급경사, 미끄럽고 물살도 거칠죠.
몇 번을 시도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결국 엄마 오리가 시범을 보입니다.
다리 힘과 수십번의 날갯짓이 필요함을 봤겠죠? 아직은 때가 아니군요.
좀 더 먹고 힘이 세져야 가능하리라는 걸 엄마 오리도 알고 있을 겁니다.
아쉽지만 오늘은 발길을 돌립니다.
제방 너머에서 벼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습지의 한복판에서는 연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연꽃이 흐르는 강물에서 피는 건 드문 일이죠.
작은 섬들이 강물의 유속을 떨어트리고 호수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일 겁니다.
장마가 지나가자 이번에는 태풍입니다.
거센 비바람을 맞으며 신천습지는 또 한 번 야생의 모습을 보여주겠죠.
시련이 있기에 회복은 더 극적입니다.
어떤 난관에 부딪혀도 스스로 헤쳐 나가는 400여 종의 야생동물과 190여
종의 습지 식물이 우리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만나고 시련과 희망이 공존하는 여기는 만경강 신천습지입니다.
완주 고산 천교와 하리교 사이의 구간입니다.
여기에는 190여 종의 식물 등과 440여 종의 야생동물이 살고 있습니다.
수많은 동식물이 목격돼 생태의 보고라고도 불리는 곳.
사람들은 이곳을 강 대신 습지라고 부릅니다.
여기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해설) 해가 지기 전인데도 사방이 트인 곳에서 삵이 나타났습니다.
소리와 냄새의 감각으로 안전을 확인한 후 보를 건너갑니다.
밤에는 너구리나 수달 같은 강한 포식자들도 먹이 사냥에 나섭니다.
이곳 신천습지와 그 일대는 그야말로 야생의 현장입니다.
여느 강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풍경입니다.
제작진은 이곳을 왜 생태의 보고 라고하는지 그 이유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습지의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딴판입니다.
전주 도심에서 불과 10분 거리.
완주군의 삼봉 신도시에서는 3분 거리입니다.
인근에서는 철도가 달리고 습지의 상류 쪽에는 새만금 포항 고속도로가 지나갑니다.
강줄기 양옆으로는 차량들이 질주합니다.
자동차 소음이 하루 종일 멈추지 않는 곳이죠.
제방에 서면 습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동물들이 숨을 데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곳이 어떻게 숱한 생명들의 보금자리가 됐을까요?
아니, 그 말이 맞기는 한 걸까요?
백두대간 금남정맥이
내달리는 완주 운장산.
산줄기가 연석산에 이르면 서쪽으로 만경강 물줄기가 흘러갑니다.
이 물줄기는 해발 713m의 원등산 줄기.
밤샘에서 시작합니다.
이 맑은 물이 신천습지로 흘러가는 만경강 200리 길의 첫걸음입니다.
춘 3월 하순, 봄의 신호가 도착했건만 개구리들은 아직 깨어날 생각이 없나 봅니다.
하지만 만경강 66개 모든 지류에서 봄은 어김없이 시작됩니다.
그중에서도 최상류인 경천면 신흥계곡은 자연사 수수께끼로 불리는
이끼 도룡뇽의 몇 안 되는 서식지죠.
촉촉한 바위 위에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된 도룡뇽이 있습니다.
폐가 없어 오직 피부로만 호흡하는 이 녀석은 눈이 튀어나오고 등에 갈색빛이 도는 것이 특징입니다.
미주도룡뇽과 생물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왜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됐는지
그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신흥계곡 물줄기는 고산면 소재지에서 본류와 합류한 뒤 신천 습지를 향해 달려갑니다.
신천습지는 고산천교에서 하리교까지 약 3.2km 구간입니다.
습지 아래는 일자형의 신천보와 기역자형의 벌덕보 두 개의 보가 놓여 있습니다.
소양천이 합류하는 회포대교 부근 강 폭은 최대 700m에 이르죠.
하천 폭이 넓어지면 유속이 느려져 물길 속에 섬 하중도가 다수 생겨나게 됩니다.
수중보와 느려진 유속이 자연스레 습지가 발달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됐습니다.
벚꽃이 만개한 4월, 신천습지의 대기는 아직 쌀쌀합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건 물가 옆 작은 봄꽃들이죠.
겨울 철새들이 떠나간 습지는 게으르거나 텃새가 된 녀석들의 차지가 됐습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새는 습지 안팎을 넘나들며 살아갑니다.
하리교 가로등 꼭대기에서 먹잇감을 찾고 있는 황조롱이도 출퇴근하듯 습지에 출몰합니다.
쥐 사냥에 성공한 녀석이 포획물을 확인하기 위해 하리교 상판 아래로 날아갑니다.
황조롱이는 인간의 건축물에도 둥지를 트는 것으로 유명하죠.
이 녀석도 습지 주변 어느 아파트 베란다로 날아갈지도 모릅니다.
4월 습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새는 백로와 왜가리입니다.
백로와 유사한 황로도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여름 철새지만 일부는 텃새가 됐습니다.
백로는 얕은 물 위를 걸어 다니며 먹이 활동을 합니다.
물고기 움직임에 온 신경을 모으는군요.
백로들이 먹이를 마음껏 탐하는 이유는 4월부터 번식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백로와 왜가리도 하천에서 생활하지만 둥지는 습지 이외의 곳, 주로 산에서 틉니다.
먹이 사냥을 마친 백로와 왜가리들이 어디론가 날아가는군요.
습지에서 5km 거리에 있는 전주 건지산입니다.
백로, 왜가리들의 번식처죠.
신천습지는 만경강 지류나 주변 배후지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습니다.
습지 홀로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풍부한 생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거죠.
백로와 황로들이 둥지를 지을 재료를 모읍니다.
지금은 번식을 위한 중요한 시기입니다.
둥지가 완성되면 저마다 알을 품기 시작하죠.
해오라기도 백로나 왜가리 무리 속에서 산란을 합니다.
상층부는 왜가리들이 차지했군요.
벌써 알을 깨고 나온 왜가리 새끼들입니다.
왜가리는 한 번에 서너 개의 알을 낳죠.
새끼들은 어미 새와 교감하며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초록 빛깔이 겨울의 흔적을 조금씩 지워냅니다.
하지만 4월까지는 진귀한 겨울 철새 들을 볼 수도 있습니다.
저어새가 아직 습지를 떠나지 않았군요.
부근의 하중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입니다.
아늑한 공간에서 원앙 무리가 물놀이를 즐깁니다.
이런 풍경은 제방이나 자전거 도로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트인 공간이지만 사람이 다가올 수 없고 숨을 곳이 많다는 것, 신천습지가 생명의 공간이 된 이유입니다.
강의 한복판에 만들어진 작은 자갈 섬들도 새들만의 공간입니다.
왜가리 곁으로 장다리물떼새 한 쌍이 날아옵니다.
다리가 몸길이만큼이나 되는 진귀한 새죠.
머리 깃이 새카맣고 몸통 색이 진한 새가 수컷입니다.
그에 비해 암컷은 약간 연한 색깔이죠.
이 녀석들은 잠깐 머물다 가는 나그네새인데 일부는 국내에서도 번식을 합니다.
장다리물떼새는 습지에서 배불리 먹은 후 북쪽 지방으로 날아갈 겁니다.
주먹만 한 꼬마물떼새도 보이는군요.
3월쯤 우리나라에 날아와 10월까지 지내는 여름 철새죠.
눈 주위에 노란 테로 흰목물떼새와 구분할 수 있습니다.
습지에는 군데군데 이런 자갈 지형들이 있습니다.
꼬마물떼새가 선호하는 번식 장소죠.
부산 떨던 어미 새가 갑자기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알을 품습니다.
꼬마물떼새는 한 번에 4개 정도 알을 낳고 암수가 번갈아가며 약 25일간 알을 품습니다.
꼬마물떼새는 이곳 자갈섬에서 아기물떼새를 무사히 만날 수 있을까요?
이틀간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습지의 수위는 강우량에 따라 민감하게 영향을 받습니다.
새알들이 있어야 할 자갈섬이 보이지 않는군요.
간밤에 큰비로 자갈섬은 물론 물떼새 둥지까지 강물 속에 잠겨버린 겁니다.
올봄, 종을 이어가려던 꼬마물떼새의 첫 산란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신천습지에는 어떤 물고기들이 살고 있을까요?
보에 설치된 어두를 통해 물살을 거스르는 물고기들이 보입니다.
참갈겨니입니다.
햇볕을 즐기고 있는 이 녀석은 한국의 고유종입니다.
보 근처는 산소가 풍부하고 유량이 넉넉합니다.
뱀처럼 생긴 이 녀석들은 가물치입니다.
공격성이 강한 육식성 어종으로 하천의 최상위 포식자죠.
환경 적응력이 좋은 누치입니다.
큰 덩치 덕에 가물치 앞에서도 여유롭습니다.
동상면 일대를 유유히 흘러온 만경강 강물을 대아댐이 가두었습니다.
농업용수를 저장하고 홍수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죠.
대아댐은 1989년에 건설됐고 물속에는 1922년 일제강점기에 축조된 구 댐이 잠겨 있습니다.
마르지도 넘치지도 않는다.
수리 시설에 이보다 좋은 말은 없겠지만 식민지 시절 우리 쌀을 수탈하기 위한 조선 총독의 휘호입니다.
댐에서 약 9km를 흘러가면 완주군 고산면 어우리.
여기부터는 강물의 일부가 수문을 통해 본류를 벗어나게 됩니다.
대간선수로입니다.
만경강 강물을 호남평야의 중심으로 흐르게 하는 63km의 인공 도수로죠.
지금이야 생명의 젖줄이지만 당시 일제는 본류의 직강화 공사와 함께 이 수로를 미국 수탈의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대간선수로는 수위가 낮을 때 만경강의 물고기를 관찰하기 좋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바위와 자갈 바닥을 유독 좋아하는 물고기들이 있습니다.
모래바람을 일으킨 건 참종개였습니다.
한국의 고유종이죠.
전북대학교 김익수 교수가 세계 최초로 분류해 학술 명을
Iksookimia koreensis라고 명명한 우리나라에만 있는 물고기입니다.
이 녀석도 돌 틈을 좋아합니다.
퉁사리는 금강과 만경강, 영산강 일부에서만 발견됩니다.
메기목 어류 중에서 가장 적은 20개의 염색체를 가진 귀한 물고기입니다.
물길 군데군데 보가 만드는 작은 폭포들이 있습니다.
이런 곳은 그야말로 물고기들의 집합소입니다.
수많은 돌고기 사이로 지느러미 모양이 다른 게 있습니다.
감돌고기입니다.
금강 일부와 만경강 상류에서만 출현하는 보물 같은 존재죠.
5월 말.
제방 넘어 들판은 논농사로 분주합니다.
농수로를 따라 흘러온 만경강 강물이 들판에 아낌없이 공급됩니다.
4월이 벚꽃이라면 5월은 이팝나무꽃입니다.
흰쌀밥 같은 꽃을 이고 습지를 바라보죠. 물가에서는 비슷비슷한 사초류들이 쑥쑥 얼굴을 내밀더니 단숨에 1m를 넘어섭니다.
꽃이 아니라면 구분하기도 어렵죠.
강물 위에서는 어린 연꽃과 같은 수생 식물들이 나타납니다.
신천습지처럼 이렇게 다양한 식생들이 모여 있는 곳은 흔치 않습니다.
5월은 누가 뭐래도 번식의 계절입니다.
습지의 풀숲에서 작은 곤충들이 종족을 이어가기 위해 짝짓기를 하고 있습니다.
일명 뱁새로 불리는 붉은 머리 오목눈이도 지금이 번식기입니다.
습지의 풀숲에서 많이 볼 수 있지만 산란은 제방의 바깥쪽에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방 넘어 눈길이 닿지 않는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어미 새가 없는 틈을 타 들여다보니 이미 산란을 마쳤군요.
다섯 개의 청록색 알이 보입니다.
둥지의 주인이 왔습니다.
뱁새가 지금 품고 있는 이 알은 흥미롭습니다.
뱁새의 알이 청록색인 이유는 흰색 알을 좋아하는 어치의 습격에 대비한 거라는군요.
그렇다면 뱁새의 알은 모두 청록색일까요?
또 다른 뱁새 둥지를 찾아 약 20분을 걸어 상류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뱁새 둥지를 찾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길가 숲에서 뱁새 새끼들의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나뭇가지 속에 매달린 작은 둥지.
그 안에 있는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뱁새알.
흰색이군요.
뱁새의 둥지가 맞는지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둥지 위로는 전깃줄이 지나갑니다.
그 위에 제집 마냥 앉아 있는 녀석들.
찌르레기.
파랑새.
그리고 이 녀석.
뱁새가 두려워하는 뻐꾸기입니다.
뻐꾸기는 뱁새 둥지의 알을 낳는 탁란으로 유명하죠.
흰색 알의 주인이 돌아왔을까요?
뱁새입니다.
이 녀석은 자신의 둥지를 호시탐탐 노리는 뻐꾸기의 탁란을 막기 위해
청록색에서 하얀색으로 알의 색깔을 바꾼 겁니다.
어치와 뻐꾸기의 위협에 맞서 종을 이어가려는 뱁새알의 신비입니다.
봉동읍 앞으로 만경강이 굽이쳐 흐르고 강 주변 산에서는 새들의 육추가 한창입니다.
숲이 우거진 작은 돌산의 정상 부근.
수리부엉이들이 움직입니다.
벼랑 사면에 수리부엉이 둥지가 있기 때문인데요.
어미가 태어난 지 일주일 된 새끼들에게 먹이를 나눠주고 있습니다.
아빠 부엉이는 둥지 밖 나뭇가지에서 경계를 서고 있죠.
새끼들이 둥지를 벗어나는 데는 보통 6주 정도 걸립니다.
자기들끼리 솜털도 골라주고 사이 좋게 지냅니다.
이때쯤이면 엄마 수리부엉이는 더 이상 음식을 발라주지 않습니다.
아빠가 사냥해 온 꿩고기를 먹고 싶으면 따라오라는 듯 날아가 버립니다.
걸음마와 날갯짓을 유도하는 거죠.
엄마의 이런 뜻을 알기나 할까요?
새끼들은 어쩔 수 없이 큰 쥐를 통째로 먹어보기도 합니다.
덕분에 다리에 힘이 생기고 날갯짓도 해봅니다.
드디어 새끼들이 둥지를 벗어났습니다.
몸통을 감쌌던 솜털도 많이 빠졌습니다.
이 시기에는 엄마 수리부엉이가 주변에서 안전을 체크합니다.
언제든 새끼들 곁으로 돌아오죠.
새끼들의 날갯짓 훈련이 위험해 보였나 봅니다.
하지만 새끼의 안전이 확인되면 엄마 수리부엉이는 다시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독립을 준비하라는 뜻이죠.
며칠간 세찬 비가 내렸습니다.
새끼 수리부엉이들이 꼼짝 없이 비를맞습니다.
엄마 부엉이는 여전히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군요.
새끼는 날갯짓으로 물을 털어내 봅니다.
비는 언젠가 그칠 테고 그때까지는 견뎌야 한다는 걸 새끼들이 알기를 바랄 뿐입니다.
종일 비를 맞은 새끼가 힘겹게 엄마 수리부엉이 아래까지 왔습니다.
엄마 부엉이는 알면서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습니다.
냉랭한 분위기를 눈치 챘지만 새끼는 엄마 곁에 다가가 봅니다.
새끼를 내쳐 떨어트리는 엄마의 마음.
혼자 힘으로 사냥하며 맹금류의 위엄을 보여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신천 습지 인근 마을에 밤이 찾아왔습니다.
마을 길을 따라 이어진 수로에서 강물을 퍼 올립니다.
수로는 논과 논 사이를 혈관처럼 흐르며 대지를 적셔줍니다.
이곳 농수로에는 귀한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 흐름이 적은 곳.
금개구리입니다.
등에는 금색이 선명한 두 줄의 융기선이 있습니다.
하지만 위장술이 좋아 개구리밥이 풍부한 곳에서 상체만 드러낸다면 쉽게 찾을 수 없죠.
금개구리는 우리나라 고유종입니다.
이곳을 포함해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서식하고 있죠.
아직까지 전통 농수로가 보존돼 있고 수로 옆, 논두렁 흙에 들어가 쉽게
동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속에는 먹이가 되는 각종 수서 생물들도 풍부합니다.
생명이 숨 쉬는 땅입니다.
새벽 5시가 가까워오자 신천 습지의 하늘이 붉어집니다.
촉촉한 습지의 공기를 6월의 태양이 데우기 시작합니다.
습지의 하루가 이토록 장엄하게 열릴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번식으로 부산했던 5월이 지나니 벌써 여름입니다.
제방 경사면의 식물들은 어느새 바뀌었습니다.
4월에 올라왔던 봄꽃들 위로 여름 식물들이 덮였습니다.
자전거길 주변과 물가에는 기생초, 금계국, 개망초 같은 여름꽃들이 6월을 수놓습니다.
그중 하나 눈길을 끄는 식물이 있습니다.
습지 내 두 곳에서 쥐방울덩굴이 발견되었습니다.
꼬리명주나비 애벌레가 유일하게 먹는 식물이죠.
이 식물이 있다면 꼬리명주나비를 볼 수도 있습니다.
장자보 인근 제방입니다.
흰색 수컷들 사이로 갈색 암컷 한 마리가 날아갑니다.
그 위로 갑자기 나타난 수컷 한 마리.
암수 한 쌍이 나뭇가지에 자리를 잡습니다.
수컷은 아래에서 거꾸로 매달립니다.
암컷은 위에서 몸통의 끝을 수컷에 맞추죠.
짝짓기의 시작입니다.
암수 꼬리명주나비는 짝짓기를 마친 후 며칠 내로 생을 마감하게 되지만 아랑곳없습니다.
종을 이어가려는 속성이죠.
암컷은 짝짓기를 마친 그날부터 산란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쥐방울덩굴 이파리에 매달려 천천히 한 알씩 한 알씩 알을 낳고 있습니다.
오렌지빛 영롱한 알은 조금씩 회백색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암컷이 낳은 알은 100개에서 120개 사이.
모두 쥐방울덩굴 이파리나 줄기에서죠.
열흘 후 알껍데기를 깨고 애벌레가 세상에 나옵니다.
애벌레들은 군집 생활을 하다 몸집이 커지면 단독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2cm 안팎의 꼬리명주나비 애벌레들이 쥐방울덩굴 이파리를 폭풍처럼 갉아먹습니다.
배불리 먹은 애벌레들은 나무줄기에 자리를 잡고 번데기로 변신합니다.
그로부터 약 8일 후.
꼬리명주나비가 태어납니다.
하지만 날개가 마를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매달려 있어야 합니다.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에 생명도 사라집니다.
새로 태어난 나비들은 일주일 정도 생존합니다.
바람을 타는 활강.
이보다 더 우아한, 이보다 더 스위트한비행을 본 적 있으신가요?
여름 신천습지에서는 알에서 나비의 비행까지 기적 같은 생명의 사이클이 세 차례나 반복됩니다.
올여름 유난스러웠던 장맛비에 습지가 통째로 잠겼습니다.
자연의 위력을 예측하고 대비할 수는 있어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습지는 역시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잠기는 날도 마른 날도 있겠죠.
그 과정에서 상처가 생기면 그 또한 스스로 회복할 것입니다.
자연이니까요.
장마가 끝나고 열흘도 지나지 않아 습지는 본래의 모습을 거의 회복했습니다.
폭염이 시작돼, 새들은 눈에 띄게 줄었지만 다른 동식물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자리를 잡아갑니다.
올봄에 태어난 흰뺨검둥오리 새끼들이 엄마 오리와 함께 신천보 오르기를 배웁니다.
1m가 넘는 급경사, 미끄럽고 물살도 거칠죠.
몇 번을 시도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결국 엄마 오리가 시범을 보입니다.
다리 힘과 수십번의 날갯짓이 필요함을 봤겠죠? 아직은 때가 아니군요.
좀 더 먹고 힘이 세져야 가능하리라는 걸 엄마 오리도 알고 있을 겁니다.
아쉽지만 오늘은 발길을 돌립니다.
제방 너머에서 벼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습지의 한복판에서는 연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연꽃이 흐르는 강물에서 피는 건 드문 일이죠.
작은 섬들이 강물의 유속을 떨어트리고 호수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일 겁니다.
장마가 지나가자 이번에는 태풍입니다.
거센 비바람을 맞으며 신천습지는 또 한 번 야생의 모습을 보여주겠죠.
시련이 있기에 회복은 더 극적입니다.
어떤 난관에 부딪혀도 스스로 헤쳐 나가는 400여 종의 야생동물과 190여
종의 습지 식물이 우리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만나고 시련과 희망이 공존하는 여기는 만경강 신천습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