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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스페셜 - 기억을 담다 꿈을 품다, 삼척 이야기

등록일 : 2024-09-20 10:21:26.0
조회수 : 250
-삼척은 지리적으로도 굉장히 넓은 지역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만큼 다양한 볼거리가 있습니다.
자연과 역사, 문화유산을 포함해서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서 한곳에 오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양파 껍질 같은 도시다.
-삼척은 자연 경관이 뛰어나고 사계절 관광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에요.
알려지지 않은 바다도 많거든요.
여러분이 해파랑길도 잘 조성이 되어 있고요.
그리고 자전거길도 잘 조성되어 있어서 도보라든가 아니면 차라든가
이런 관광을 언제든지 즐길 수 있는 곳이 삼척입니다.
-바다와 산 그리고 동굴까지 여러 가지 자연 경관이 있으니까
오셔서 에너지를 좀 받고 가셨으면 좋겠고.
-혼합 도시지 않습니까?
산골 문화도 있고 저희 탄광도...
참 오랜 기간 살아오면서 조화로웠던 것 같아요.
옛날에 그런 부귀영화는 몰라도 탄이랑 광산 지역이란 문이 변화하는
새로운 산업으로 해서 성주시 발전에 무형이든 양질의 어떤 역할을 기여할 시기라고 기대하고 싶습니다.
-또 삼척은 동해안 지역에서 관광객들이 관광할 수 있는 장소가 많아요, 삼척에는.
이끼계곡도 있고 바다도 있고 그렇습니다.
내륙 지역에는 레일 바이크도 탈 수도 있고.
누구나 다 즐길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지역이죠.
-배가 3시에 출항해서 그물 당겨와서 4시나 5시부터 여기 와서 어제 잡은 걸 가지고
경매를 시작하는데 5시 되면 와서 상인들이 시장 상인들이 내려와서 사가지고 갑니다.
-제가 직접 제 눈으로 보고 이왕이면 싸고 품질 좋은 걸로 가지고 와야 하니까
다른 사람한테 안 맡기고 100% 제가 가지고 오는 거예요, 확인하고.
눈으로 확인하고.
-2만...
-참고기도 있고 골뱅이도 있고 문어도 있고 그래요.
-원래 예전에는 잡히지 않았던 참다랑어와 방어도 많이 잡히고요.
한류성 어종인 청어, 대구, 임연수 그리고 열기 등등 많은 어종들이 교차하면서 잡히고 있는 시기라고 합니다.
-시집온 지 한 40년 됐거든요.
계속 신랑이 오기 전에도 했어요, 배를요.
가정 잘되고 고기 수확이 좋고 이러면 그거보다 좋은 게 없죠, 뭐.
가정이 편안하고.
-저는 삼척시 도계의 경동탄광에 다니는 전제훈입니다.
저는 화약류 관리자입니다.
모든 작업이 발파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그런 업무를 맡고 있다고 봐야죠.
학교를 자원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83년도에 졸업을 하고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함태탄광이라는 데를 처음 입사해서
지금까지 거의 한 40년 이상을 탄광에서 근무하면서 사진 작업하고 있습니다.
탄광이 지금 문을 닫으면 없어지겠죠.
저도 평생을 탄광에서 근무했는데 아쉽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합니다.
남은 시간에 기록을 많이 남겨서 후세들이 좀 지나간 역사에 대해서
알았으면 하는 그런 바람으로 많이 찍고 있습니다.
삼척항도 예전보다는, 예전에도 어촌이었잖아요.
일반 고깃배나 아니면 삼척항의 시멘트 쪽인데 지금은 보니까 낚싯배도 있고
관광객들도 주로 항을 많이 이용하는 것 같고.
-삼척항은 조선시대까지는 동해안 해상 방위를 책임지던 그런 수군 기지가 있던 곳인데
일제강점기가 되면 석탄 자원을 수탈해 가는 수탈항으로 변합니다.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봤을 때 삼척항은 거의 어업 전진 기지였죠.
거기에서 정어리 기름을 짜서 비누를 만든다든가 이런 유지 공장도 생기고
일제시대 때 이게 전통 어업과 2차 산업이 같이 결합되는 형태로 변화됩니다.
그러면서 한참 부흥기를 맞을 때는 70년도 오징어, 명태가 잡힐 때가 완전 전성기였습니다.
-1976년에는 개항 당시에는 시멘트 회사 전용항으로 설립됐다고 하는데
그 이후에 1991년 무역항으로 지정되면서 공용화되어 운영되고
또 지금 현재 아시아 최대 규모의 지진해일 안전 타워가 있는 그런 항이 삼척항이라고 들었습니다.
-자연스럽고 좋았죠.
배들이 항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
한 10년 전에는 번창했죠.
고기가 첫째로 많이 나고 그래야 북적거려야 좋죠.
-삼척을 이번에 처음 와 보게 됐는데요.
-제가 여기 삼척 근처에 살아서 자주 오는데 봄, 여름, 가을, 겨울 올 때마다
항상 매력이 달라서 사계절 내내 오고 싶은 그런 곳인 것 같습니다.
-가족이랑 대부분 많이 오는데 그래도 연차마다 한 번씩 오니까
작년이랑 저번에 왔던 거랑 오버랩 되면서 좋은 추억들이 쌓여 가는 것 같아요.
-여기를 올 때마다 행복한 느낌이 날 것 같은 그런 곳이어서 저한테 삼척 바다는 고향 같습니다.
-삼척항을 바라보는 그런 언덕배기 마을에 나릿골이라는 게 형성돼 있어요.
이 나릿골은 원래 항구 뒤에 버려진 언덕배기였어요.
그런데 6.25 전쟁이 터지고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정착할 곳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들이 거기에 정착하면서.
-나릿골 감성마을은.
여기서는 주로 사진 하는 분들이 일출을 여기서 주로 찍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감성마을 골목골목마다 벽화도 있고.
하여튼 아침 제일 먼저 해가 뜨고 여기 오면 경치도 좋고 또 시원하고 그렇습니다.
-예전에 어부들이 많이 살았는데 집을 지을 땅이 없다 보니까
산을 깎아서 그렇게 집을 짓고 살던 그런 마을입니다.
그러다 보니 집마다 마당이 없이 겨우 집만 지니고 이렇게 살고
또 이제 옆 동네를 가거나 친구 집에 갈 때는 마당을 밟고 지나다녔습니다.
그래서 옆집에서 어떻게 숟가락이 몇 개인지 또 무슨 가족관계라든지
이런 것을 훤히 한 가족처럼 다 알 수 있는 그런 아주 정다운 마을입니다.
-삼척항에서 나는 고기를 이제 지고 와서 말려서 건조해서 파는 그런 일을 많이 하게 되죠.
그래서 그 동네는 장화 없이 살 수 없는 곳, 질척거리는 그 생선 내장 때문에 힘들었던 곳,
고성방가도 많이 났던 그런 곳인데 그런데 7, 80년대에 또 오징어,
명태 성수기를 거치면서 90년대는 이제 어업이 또 쇠락하면서 침체기를 맞고.
-그때 고기가 한참 많이 날 때는 집마다 전부 이렇게 고기를 말릴 수 있는
그런 시설을 다 해서 오징어라든가 또 노가리, 명태 같은 것을 말려서
자녀들 학비도 대고 생활에 도움이 많이 됐죠.
아무래도 고기도 많이 나고 이러다 보니까 젊은이들도 많았고 배 타는 사람들도 많았고
한 집에 보통 자녀들이 적어도 여섯, 일곱 명은 다 있던 그런 마을이었는데
세월이 많이 흐르다 보니까 지금 인구도 좀 많이 줄어들었고 그래서 감성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어떻게 하면 이 마을을 다시 좀 이렇게 살기 좋은 마을로, 젊은이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마을로 할 수 있을까.
나릿골 감성마을이 되면서 이제 동네도 많이 정비를 하고 지금은 아름답게 많이 꾸며져서 마을이 많이 변했습니다.
아름답게 변했습니다.
마을을 아름답게 꾸며놓다 보니까 마을 주민들의 자긍심도 대단하고요.
그리고 이제 아무래도 전에는 찾지 않던 관광객들이 외지에서 와서 많이 찾고 계시니까
주민들도 지금은 좋아하시고 마을이 예전에 비해서 많이 활기가 돌고 많이 좋아졌습니다.
-초곡용굴촛대바위길은 강원도의 아름다운 3대 미항 중의 하나인 초곡항에
기암괴석과 함께 바다의 비경을 보고 걷는 660m의 아름다운 바다 둘레길입니다.
-촛대바위도 있고요.
저쪽에 거북이 바위도 있는데요.
그 속에 많은 역사가 숨어있는 것 같아서 더욱더 궁금해지는 것 같아요.
-정말 멋있습니다.
한번, 다시 한번 기회가 되면 가을이라도 다시 한번 와서 관광하고 싶은 그런 곳입니다, 여기가.
-초곡용굴은 해식 동굴이에요.
바다 안, 바다 밑에 용굴이 있고 그다음에 촛대바위와 거북바위와 다이아몬드바위,
사자바위는 파도에 의해서 갈라지거나 부서져서 헝성이 된 건데 그게 시스텍이라고 하거든요.
그런 것도 있지만 바다 둘레길 가까운 데 암석들의 모양이라든가 무늬, 바닷물결무늬라는 게 있어서
그런 것을 잘 관찰하면서 걷는 것도 하나의 여러분이 바다 둘레길을 보는 좋은 팁이 될 것 같습니다.
-바다에 나오면 어떤 마음이 좀 이렇게 넓어질 수도 있고 또 생각도 넓어지잖아요, 바다를 보면.
그래서 사실 바다는 누구나 다 좋아하지만 저도 자주 나옵니다.
여름 바다 하면 동해바다고 동해바다 하면 삼척입니다.
여기는 경동광업소 직원들이 사시는 사택이에요.
통리사택입니다.
제가 여기서 살고 있습니다.
여기 80년대는 꽉 찼었고 그때는 이제 사실 사택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도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우수 근로자나 또 오래된 분들, 우선적으로 사택에 입주하고 그랬었는데 이제 지금은 광원들도 많이 줄었고
또 외지로 많이 나가 살기 때문에 여기 지금은 한 2분의 1 정도밖에 안 살고 있습니다.
삼척, 태백은 우리나라의 무연탄 최대 생산지고 최초의 생산지였고
지금도 마지막 탄광이 지금 가동이 되지만 언젠가는 이게 역사 속으로 사라질 그런 탄광이 아니겠습니까?
탄광이 이제 문 닫으면 없어지겠죠.
저도 평생을 탄광에서 근무했는데 좀 아쉽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남은 시간에 기록을 많이 남겨서 허투루 없어지지 말고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도 그런 흔적이라도 많이 남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시대의 기록 그리고.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더욱더 커지지 않을까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1936년에 탄광 개발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탄광이 개발되기 시작하니까 사람들이 몰려오고 그래서 1960년대가 되면
거의 3, 4만 명이 모일 정도로 많은 인원이 모여드는 탄광 도시로 자리 잡게 되죠.
그렇게 되다가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가 되면서 인구 1만 명으로 줄어드는 그런 폐광 도시로 전락하죠.
이렇게 도계가 시골 산골 마을에서 한참 번창기를 맞는 광산 마을로 됐다가
다시 폐광의 아픔을 겪는 그런 변천을 가지고 있는 곳이 도계다.
-면적적으로 보면 삼척시 한 14% 정도 됩니다.
인구분포도 거의 비슷한 13 점 해서 14% 선이라고 하는 그런 지형이고 저희 삼척시는 특수한 거죠.
바다와 산골 있는데 저희는 산이 있는 아주 특수한 그런 광산 도시라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큰 도계에서, 그러면 광산 문화유산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남은 도계광업소가 1936년에 개발되면서 같이 도계갱, 흥전갱, 신포갱 이렇게 같이 아주 오래된 갱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중앙갱에서 탄이 많이 나왔었고 보통 여기서 생산된 탄을 가공 삭도로 해서
삭도로 도계역까지 운반하는 그런 운반시설이 있었죠.
어쨌든 난 여기서 전부 먹고 살았고 또 가족들, 자녀들 키우고 그렇지 않습니까?
삶의 터전이 없어지는 그런 것 때문에 많이 아쉽고 막막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탄질이 제일 좋았던 곳이 중앙생산부라고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지형적인 부분 그리고 도계광업소가 갖고 있던 시설에 집중도가
아무래도 도계항이나 동덕항에 조금 더 집중되다 보니까 여러 가지 부분이 있어서
중앙에서부터 이제 아마 감산, 석탄 산업이 조금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감산의 칼날을
저희가 피하지 못하고 맞았던 곳이 첫 번째 저희가 칼날을 막은 곳이 중앙생산부라고 알고 있습니다.
-좌측에 보이는 건 저탄장이라고 해서 뭐라고 하면 갱 내에서 생산한 탄을 연탄 공장이나
기타 수요처에 판매 출하하게 되는 임시 보관하는 장소이고 지금 저 위에 타이어하고
천으로 덮여 있는 것은 바람이 분다든지 비가 올 때 탄을 보호하기 위해서 작업해 놓은 겁니다.
그리고 이쪽 뒤에 보이는 중앙생산부 건물은 작업하시는 분들이 갱내 들어가시는 전에
환복을 하고 작업복을 갈아입고 갱내 안전등을 착용하고 갱에 들어가서 작업하시고 나온 다음에
여기서 옷을 갈아입고 목까지 할 수 있는 시설이 다 갖춰져 있는 건물입니다.
하루 24시간 펌프운전공들이 갱내에 들어가서 작업하고 있기 때문에 일부 시설은 지금 가동이 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유망한 좋은 품질의 석탄이 나는 곳인데 이제 세 개 다 문을 닫고 지금 일제시대 때
개발된 탄광 중에서 유일하게 제 흔적을 보이는 곳은 흥전갱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 갱을 우리가 잘 보존해야지 앞으로 일제의 석탄 수탈 정책을 비판할 수 있고
그 근거로 우리가 잘 보존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 석탄 산업 시설을 보호해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죠.
-3, 400명 정도가 여기에서 좋을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폐광 이후로 최저 인원밖에 없습니다.
광부로서 심정이 계속 지연됐으면 좋겠는데 정부 정책에 의해서 폐광되니까 상당히 가슴이 아픕니다.
-옛날 사람이 많았을 때가 좋은 것 같아요.
지금은 혼자 있으니까 많이 쓸쓸해요.
-일단 저희 회사는 내년에 문을 닫지만 이 도계라는 지역 자체가 석탄 산업이 빠지고 나가게 되면
지역 공동화 현상이 생길까 조금 안타깝고 계속 근무했던 사람 입장에서는 상당히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사실 흥전항의 상징이 삭도입니다.
도계뿐만 아니라 태백, 탄전 지역의 특징은 워낙 산촌에 탄광이 자리 잡다 보니까 트럭이라든가 기차 운송이 원활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일제 시대 때 공중으로 석탄 실어 나르는 케이블카, 삭도를 운행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그 삭도를 통해서 흥전항에서 도계역까지 탄을 운반했어요, 날랐거든요.
그런데 그 삭도가 실어 나르던 그 추억의 장면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이 흥전삭도마을이에요.
가면 삭도 모형을 이렇게 전시해 놓고 있어요.
그렇게 해서 삭도 마을이 탄생했고 그 마을이 결국은 밖에 내려오는 열차의 기착지가 되면서
관광객들이 다시 한번 그 맛을 보게 만드는, 그런 장소로 표현했죠.
-70년대만 해도 우리 3000여 명 이상되는 인구가 존재했던 마을입니다.
그래서 1990년대에 석탄 산업 합리화라고 해서 광산이 문을 차츰차츰 닫으면서 이 사양길에 들어가다 보니
이주민들이 하나하나 나가고 사택도 헐리고 그러다 보니까 지금은 한 400여 명밖에 안 남아 있어요.
-그 지역의 공동주택이나 사택이라는 구조를 보면 흥전 지역에 다 모여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뭐 수는 아니지만 빈 사택, 하사택, 상사택, 구동사택이라고 해서 광산에 근무하시는 분들이
집단으로 생활할 수 있는 그 구조를 만들었는데 흥전리에 거의 90% 이상 그리로 몰려 있었죠.
저희 상주인구와 유동 인구가 저희가 한 5만 정도 인구가 살았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 시절에 저희가 봤었을 때 그 인구가 아마 도계의 가장 성황기였지 않았느냐.
-광산이 그때는 조그마한 광산이 많았어요, 도계에.
도계에만 해도 한 70여 개 가까이 될 정도로 광산이 많았는데 다 문을 닫고 나서 지금은 경동광업소하고
지금 석탄, 도계광업소 딱 2개만 남아는 있어요.
다른 지역은 다 문 닫았죠.
남아 있으니까 하나하나 문을 닫으니 사람들이 생활 여건이 안 되니 대체 산업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하나하나 떠나가고 지금 여기 뭐라고 해야 하나, 오고 갈 데 없는 분들이 지금 이렇게 남아 있는 거죠.
그게 1990년대에 삭도가 없어졌어요.
없어지니까 이 동네 볼거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열차 폐선을 이용하는 데가 없어서 지금 여기 보이다시피, 저 삭도마을이라는 조형물을 해놓고
관광지를 조성해서 손님들이 지금 많이 오고 있죠.
-좋은 기억들은 도계가 인구가 많고 도계시가 된다고 이랬어요.
삼척시보다 도계시가 먼저 된다고 그랬어요.
도계시의 인구가 한 5만 거의 가까이 됐어요.
자꾸 광산이 없어지고 그러니까 지금 1만 5000명 정도밖에 안 돼요.
-여기 옆에 아시죠, 탄광?
저쪽에서 탄이 나오면 여기 와서 빻는다고, 선탄을 해.
선탄을 해서 빻아서 차로 나간단 말입니다.
차로 나가고 여기 까막동네라고 불린 이유는 여기 먼지가 많이 나와요.
-여기서 광산에서 나오는 선탄들이 전부 다 그리로 집결되거든요, 그 옆에.
그래서 열차로 싣고 가려고 그쪽에 다 집결되니까 그 옆 동네니까 먼지가 많이 날 수밖에 없죠.
뒤에 가도 천장이고 뭐 지붕에 가도 시커메요.
그래서 그 동네가 까막동네가 된 거야.
크게 행복했던 거는 뭐 별로 생각나는 건 없는데요.
그래도 여기가 지금은 많이 정화돼서 깨끗한 동네가 됐어요.
지금은 다른 데 가서 살라고 해도 못 살겠어요.
여기 와서 딴 데 나갔다가 다시 이리로 들어오게 돼요, 그냥.
그래서 딴 데 나가면 못 살겠어요.
여기가 아주 정이 들었어요.
이제 광산이 문을 닫고 하면 좀 낙후될까 봐 그게 겁이 나서 그렇죠.
뭐 사람 사는 데는 뭐 다 똑같지.
-저희 지역이 광산이, 광산 지역이었지만 참 예쁜 동네거든요.
전 진짜 우리 지역이어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인데.
이 지역이 조금 더 그러니까 대학이나 여러 가지 있다 보니까 참 변형되지만
이젠 조화롭게 가보고자 하는 그런 시발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지금 갖고 있는 뭐 정책적인 것도 있지만 우리 대학교, 대학 도시라든가
이 뭐 중입자 가속기 이런 의료 글리스터 시설이라든가 뭐 저희들 지역
어떤 염원하고 있는 지정면세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희가 떠난 데는 심포리 트레인 역입니다.
지금 이 차가 뒤로 갔다가 본선을 타고 내려가면 심포리역을 거쳐서 흥전역부터 내려갑니다.
흥전역부터는 차가 백으로 가는 겁니다, 나한정역으로.
이 구배가 너무 세기 때문에 차가 곧바로 못 가기 때문에 기울어 가는 겁니다.
기울어 가서 또 나한정 가서 도계 쪽으로 삭도 마을까지 또 직진합니다.
그래서 이건 지그재그로 아니면 왔다 갔다 하는 거죠.
갈 지 자로, 계단식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마지막 종착역이 흥정 삭도 마을입니다.
마을에서 그 동네를 추천해서 우리가 그까지 가는데 그 동네도 아담하게 잘 돼 있습니다.
-길은 뭐 어제처럼 생생히 기억이 나는데요.
한 30년 전에 이렇게 서울 가면서 이렇게 한 번 타봤었거든요.
이렇게 다시 지역 개발을 해서 또 타니까 좀 감회가 새롭습니다.
지금 또 가족들하고 또 오고 이러다 보니까 여행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옛 추억도 생각나고.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습니다.
-너무너무 좋네요.
우리 7살 먹은 손주인데 세상에서 이렇게 좋은 데는 처음 와봤다고 합니다.
레일바이크 타고 여기 다시 또 기차를 타고 이러고 보니까 이때 뭐 외국이나 어디 가서도
여기 이보다 더 좋은 데는 못 봤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할아버지.
-재밌어요.
기차 타는 게 재밌어요.
-속초 중앙시장은 학창 시절에 거기 가서 뭐 회식도 하고 또 초창기에
이제 젊었을 때 술 배울 때 거기 가서 술도 먹고 그랬었습니다.
-삼척 중앙시장은 조선시대 오일장의 전통을 이어받은 곳인데
당초에 그 삼척 오일장터는 죽서루 옆에 있었어요.
그렇게 있다가 1914년도 일본이 이제 삼척항을 개척하면서
그쪽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니까 시장이 그쪽으로 내려가요.
내려갔다가 거기가 이제 유지 공장도 들어서고 시멘트 회사도 막 하고 하니까.
옮겨와 있다가 삼척 시내 넓은 부지가 조성되면서 현재의 장소로 1970년대 이전에 오죠.
그때부터는 상설 시장으로 중앙시장이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하죠.
그게 현재의 중앙시장의 모습이고 역사입니다.
노점이었는데 이 건물이 들어서고.
젊은 새댁들이.
그래서 시장 이모가 제일 장사 잘하고 예뻐요.
가격이 싸요, 싱싱해요 할 때 참 좋죠.
-여기 삼척시장은 늘 와도 너무 좋고 또 우리 나도 김해에서 왔지만
삼척시의 삼척시장이 어떤 우리 가족적인 그런 분위기도 있고 해서 늘 와도 항상 좋아요, 여기가.
-청년몰 일단은 젊은 사람들이 시장에 올 수 있는 발걸음이 되는 거고요.
그리고 먹거리가 일단은 다양하고.
그리고 굉장히 깨끗하고 넓어요.
-청년들이 들어와서, 젊은 사람이 들어와서 많이 바뀌었어요.
손님층도 많이 바뀌고 또 그다음에 재래 시장하면 옛날 할머니들 나이 드신 분들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밑에는 그런 분들이 있지만 위에는 거의 다 청년들이니까 아무래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죠.
고등학교까지 다 마치고 그 이후에 사회로 나갔다 왔는데
최근에 5년 전에 다시 강원도 삼척으로 돌아왔습니다.
많은 관광객이 오심으로써 시장이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저희 청년몰과 이렇게 다 형성이 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원래 타지에 나가 있다가 내려왔는데 어머니 가게 옆에 빈 공간에
청년몰 점포 모집한다고 포스터가 붙어 있더라고요.
그때 포스터를 보고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인가 싶어서 내려왔어요.
사장님 커피 너무 맛있어요 이렇게 하면 그때 제 직업적인 성취감과
그런 보람들이 많이 느껴지더라고요.
물론 손님이 그날 하루 너무 많아서 돈 많이 번 날도 물론 즐겁고 보람찬데
그래도 맛있다고 이렇게 말 한마디 듣는 게 정말 큰 보람이 되더라고요.
힘들거나 후회하지는 않아요.
제가 여기 청년몰에 들어온 거를 정말로 잘했다고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삼척으로 다시 내려온 것도 저한테는 또 다른 새로운 기회가 되었고요.
그런 점에 있어서 내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있고 그런 구체적인 고민들은
그냥 삶으로서 그냥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걱정들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만든 거를 사람들이 예쁘다고 해 주고 사주고
이제 잘 쓰는 모습을 볼 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삼척에서 공방을 운영하면서 이제 다른 상인분들도 만나고 삼척 주민분들도 만나고
그러면서 이제 계속 도자기를 빚을 것 같아요.
깔끔하고 시원해서 이쪽에 쉬시러 오시는 분들도 많으시고
그러면서 저희 공방도 한번 구경도 하시고 하시거든요.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렇게 막 거창하게 목표가 있거나 그렇지는 않았는데 삼척과 비슷한 지역들 있잖아요.
속초나 강릉이나 양양 같은 경우를 보니까 거기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게
소상공인들로 인해서 많이 모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소상공인들이 항상 힘들고 약한 존재라고 생각을 했는데 사실은 알고 보니까
소상공인들은 그 지역의 경제를 바꿀 수 있는 대단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이 들었고요.
-삼척에 오시면 깨끗한 곳도 많고 산도 좋고 물도 좋고 공기도 좋고
그리고 음식도 맛있는 곳이 많기 때문에 또한 청년몰도 괜찮습니다.
청년몰도 아주 좋습니다.
한번 들르셔서 이렇게 삼척 청년들이 이렇게 살고 있구나, 열심히 살고 있구나 한번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어업인들을 극한 직업이라고 많이 소개가 되고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경험을 해보고 겪어본 바로는 되게 희망이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이제는 큰 욕심 안 내고 내가 하는 게 사업이라면 사업인데 열심히 하다가
마무리 잘해서 건강하게 은퇴해서 노후를 보내는 게 제 꿈입니다.
-이 마을이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마을이 되고 또 외지인들이 와서 참
어디서 볼 수 없는 그런 바닷가의 아름다운 마을이 되도록 더 노력해서.
-내년 6월이면 여기 탄광이 끝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끝나는데 도계에 공장이라도 들어오든지 뭐 하나 이렇게 해 줬으면 좋겠어요.
-폐광되는 과정과 폐광 후의 과정 그리고 탄광에 근무했언 광부들의 어떤 그 삶의 어떤 그런 것들을 계속,
그건 제 숙명이고 기록해야 하고 또한 변해가는 지역의 어떤 과정들을 기록을 또 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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