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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스페셜 - 호국의 도시 영천으로 떠나는 역사기행

등록일 : 2024-09-30 15:55:43.0
조회수 : 245
-(해설) 새로운 도시를 탐험한다는 건 언제나 설렙니다.
초록이 짙은 여름.
뜨겁고 푸른 오늘의 풍경처럼 우리는 수많은 시간을 뜨겁게 그리고 푸르게 살아왔습니다.
여기 이 도시처럼 말이죠.
찬란하게 푸르렀던 겹겹의 시간 속으로 떠나볼까 합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가수 선경입니다.
저는 지금 영천 우로지자연생태공원 내에 있는 메타세쿼이아 길에 나와 있습니다.
너무 아름답죠?
영천 하면 여러분 어떤 것들이 떠오르시나요?
보통 사람은 영천 하면 별의 도시다, 이야기하는데 저는 포도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영천을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바로 호국의 도시 영천이라고 하는데요.
오늘 저는 그 호국의 도시 영천에 대해서 한번 여행을 떠나볼까 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 한번 해보려고요.
여러분, 저와 함께 가보시죠.
가자.
-(해설) 소중한 시간이 쌓여 오늘을 이어온 영천.
인구 10만여 명의 작은 도시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천은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소중한 역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호국의 도시 영천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바로 이곳에서 충절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첫 번째 도착한 이곳은 영천의 대표적인 명소인 임고서원에 왔습니다.
임고서원 하면 또 충으로 시작하지 않겠습니까?
충 하면 또 대표적인 단심가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 가실 길이 있으리랴.
저는 아무래도 좀 가볍죠?
그래도 이렇게 포은 선생님의 충을 담은 시, 임고서원에 오면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제가 임고서원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무지한 관계로 정확하게는 모르거든요.
어떤 곳인가요?
-임고서원은 포은 선생님, 고려 말 충신이잖아요.
-그렇죠.
포은, 야은, 목은 뭐 이렇게 충신들의 선생님 많이 계시죠.
-포은 정몽주 선생님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서원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제가 듣기에는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고는 들었어요.
-이 임고서원은 여기 한, 최초에는 여기서 2km 떨어진 부래산이라는 곳에 생겼거든요.
-이곳 말고요?
-부래산에 생겼었는데 임진왜란에 소실되게 됩니다.
소실되게 되니까 1603년에 이 자리에 옮겨 세우게 됩니다.
-그렇군요.
-그러다가 1871년 대원군의 해체령에 의해서 해체되게 됩니다.
-또 다시요?
-네.
1990년도부터 성역화 사업에 의해서 다시 크게 만들게 됐습니다.
-1990년이면 얼마 안 됐네요?
한 해체되고 난 뒤에 한 1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죠.
다시 성역화 사업 끝나기.
-분명 120년 만에 다시 이렇게 복원했던 데는 이유가 있을 거 같아요.
-그거는 여기 포은 선생님 충절을 기리고 여기 영천 사람들이
포은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기 위해서 된 겁니다.
-(해설) 임진왜란과 서원 철폐령 등으로 수난을 겪었던 임고서원.
어려움 속에서도 서원을 지키기 위해 애써 온 후손들의 정성이 존경스럽습니다.
-선생님, 그런데요.
임고서원은 왜 임고서원이에요?
-원래 서원에는 그 지역명을 붙이게 돼 있는데 임고서원은 영천의 옛 지명입니다.
-여기 영천이 아니고 임고였어요, 원래요?
-네.
임고 고을이었으니까요, 옛날에.
-임고서원이 조선의 두 번째 사액서원이라고 들었거든요.
-1553년에 짓기 시작하여 1554년에 우리나라 두 번째로 사액서원을 받게 되거든요.
첫 번째가 잘 아시다시피 소수서원.
두 번째가 임고서원입니다.
-그 사액서원이라는 곳은 왕이 직접 하사를 해준?
-말 그대로 하면 현판을 내려 준다는 것인데요.
현판을 내려주는 말에 토지, 노비, 전적을 내려주죠.
-그래요?
-(해설) 일편단심 흔들림 없이 살았던 포은 선생의 충절과 효행.
높은 경지의 학문까지 그동안에 모르고 지냈던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이렇게 한옥의 고즈넉한 느낌이 참 좋아요.
-여기 앉으시죠.
-여기 좀 앉을까요?
멀리 계시지 말고 이렇게 좀 가까이 오세요.
-댓돌에 올리시면 안 됩니다.
-왜요?
-본래 신발을 올리는 거 아닙니다.
신발을 벗고 딛고 올라가는 거예요.
-여기다 벗어놓고 가는 게 아니고요?
-네.
-이런 예절을 제가 배워야 하는데.
참 그렇습니다.
-(해설) 조선 선비들의 학문적 지주였던 포은 선생의 가르침은 작은 행동 하나까지 서원 곳곳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아마 포은 선생은 지금도 저기 선생이 낚시를 즐기던 조옹대에서 임고서원을 바라보시며
목숨을 바치며 지켜온 이 땅의 후손들에게 오늘도 헛되이 살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겠죠.
-여기는 엄청.
-그렇게 올라가시면 안 되고 발을 모아서 올라가야 합니다.
-발을요?
-이렇게.
왼발 먼저 오른발 모으고 이렇게 올라갑니다.
-왜요?
-이게 예법이거든요.
-예법이요?
이게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서.
-이게 헷갈리네.
이게 약간 군대 제식 잘못하는 기분이에요.
-(해설) 포은 선생을 좀 더 가까이 만나기 위해 가는 길입니다.
서원의 가장 높은 곳.
문충사에 정몽주 선생의 위패가 봉안돼 있거든요.
말로만 듣던 고려의 충신 정몽주 선생을 만나 보니 저절로 숙연해지더라고요.
-그러면 위판이 있는 곳에서는 상시 이렇게 제사도 지내고 이렇게 기리기도 하고 그럴 수 있는 건가요?
-네.
-(해설) 5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임고서원을 지키고 있는 이 은행나무처럼
포은 선생의 충효 사상도 대대손손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호국의 도시 영천으로 떠나는 여행길에 빠질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영천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인기 코스.
화랑설화마을입니다.
-이번에 찾아온 곳은 화랑설화마을인데요.
김유신 장군의 역사 얘기를 쭉 담은 곳이기도 합니다.
1000년의 역사 신라, 삼국통일의 주력이 된 곳을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요.
제가 한번 가서 조목조목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해설) 1000년을 이어온 화랑정신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다니, 화랑설화마을은
누구나 쉽게 1000년의 역사를 만나볼 수 있는 레저 복합형 문화공간입니다.
특히 김유신 장군의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곳은 마을 곳곳에서 김유신 장군의 탄생과
이야기를 그려낸 다양한 조형물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기록들을 보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얘기들이 나오고 또 화랑세기라고 실존됐다고
지금 어느 정도 내용은 밝혀졌는데 거기에 나오는 화랑들 얘기를 중심으로 해서 이렇게 꾸며져...
15세에 화랑이 된 김유신 장군은 17세 때 영천시 청통면 은해사 안에 중악석굴이라는 곳에서
난승대사를 만나서 비법을 전수받게 됩니다.
그 이후에 국선인 풍월도가 되기도 했으며 고구려 첩자를 백석이 김유신을 고구려로 납치하기 위해서
영천의 골화성을 지날 때 호국 삼신이 나타나서 그를 구한 그런 일화도 있습니다.
-(해설) 어릴 적 화랑처럼 활 쏘고 말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요.
특히 어린 세대들에게 영웅의 일대기는 그야말로 흥미롭죠.
화랑을 잘 몰랐던 아이들도 김유신의 일대기를 통해 우애와 학문을 겸비했던 찐 화랑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공부만 잘하는 사람, 무술만 잘하는 사람을, 그런 인재로 만드는 게 아니고
정말 악기도 하나씩 다 다룰 줄 알고 풍류를 즐길 줄 아는 그런 인재를 양성했다는 것에 있어서
신라가 그때 마인드가 굉장히 뛰어났던 것 같아요.
-(해설) 왜 제가 더 신난 것 같죠?
-제가 화랑의 기운을 받아서 앞으로 더 잘될 것 같습니다.
우리 조상님이시잖아요.
-(해설) 정말 신나는 건 따로 있었습니다.
신화랑 우주체험관에서는 화랑의 에피소드를 비롯해 화랑의 활약 등 실감 나는 VR를 체험할 수 있거든요.
말로 표현하기에는 모자람이 있네요.
직접 한번 체험해 보세요.
-이곳이 바로 호국 도시 영천의 시작이네요.
-그렇습니다.
김유신과 화랑정신이 영천 호국 정신의 근본인데 그것이 나중에 고려시대, 조선시대,
그리고 구한말, 근대에 와서 6.25 전쟁까지 나라를 지키는 원동력이 됐었습니다.
-(해설) 호국 도시 영천을 있게 한 김유신 이야기, 좀 더 들어볼까요?
-그런 노래 있잖아요.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말 목 자른 김유신~
-딱 그 장면입니다.
-그 대목 같아요, 지금.
-김유신이 한참 수련을 해야 될 나이에 천관녀라고 어떤 데는 보면 기생이라고 나오기도 하고
요새는 또 제사장, 이런 식으로 해서 해석이 좀 다르기도 한데 엄마가 이제 천관녀를 만나지 말라고 얘기를 했는데
김유신 장군은 이제 조금 이렇게 실연을 당한 그런 마음에 술을 많이 먹었나 봐요.
그런데 하루는 자기는 말을 타고 잠이 들어버렸는데 말이 습관적으로 다시 천관녀한테 온 거예요.
그래서 네가 감히 내 결심을 이렇게 무너뜨리게 하느냐, 그러면서 아예 말 목을 잘랐다는 그런 장면입니다.
-(해설) 마치 엊그제 일어난 역사처럼 생생한 이야기들로 구성된 설화 재현 마을은 이렇게 다섯 가지 가르침으로
이루어진 세속 오계 등 화랑정신을 직접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는 낭비성 전투를 이렇게 재현해 놓은 곳입니다.
-35세요?
-네.
-어떻게 보면 꽤 늦은 나이인데요?
그런데 워낙에 난공불락이라서요.
이 성을 아무리 전투를 해도 뚫지를 못하고 이기지를 못했었는데 그때 김유신 장군이 홀로 말을 타고
성을 뛰어넘어서 고구려 장수의 목을 베어서 갖고 옵니다.
-어떻게 보면 동화 속 이야기 같네요.
성을 뛰어넘어서 목을 베었다.
-이때부터 차츰차츰 관직도 높아지고 명성도 얻으면서 나중에 정말 삼국이 통일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신라에서는 최고 관직까지 역임할 수 있었습니다.
-(해설) 실타래처럼 줄줄줄 흥미로운 김유신 이야기를 더 듣고 싶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왜냐고요?
더 흥미로운 곳이 있거든요.
입구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죠?
각종 무기 장비들이 가득한 이곳은요.
최무선 과학관입니다.
호국 영천을 여행한다면 꼭 들러야 하는 곳이죠.
영천의 호국 인물 중에 빠질 수 없는 분이 계시죠, 바로 최무선.
여러분, 최무선 누구인지 아십니까?
화약을 발명한 장군이시죠.
이곳에서요.
화차, 그리고 신기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저도 너무 궁금한데요.
빨리 만나보시죠.
슝, 팍, 이렇게.
-(해설) 이곳은 고려 말 화약을 발명해 왜구를 물리치는 데 기여한 최무선 장군의 업적을 기리고
또 어린이들의 기초 과학 정신을 높이는 학습의 장입니다.
-이 무기는 최무선 장군 아들 최해산이 만든 신기전 화차라는 무기입니다.
그래서 한꺼번에 여러 발씩 신기전을 발사할 수 있는 다연장 로켓형 무기입니다.
-로켓형.
-그래서 무기인데 15발씩, 25발씩, 여기 구멍이 100개이기 때문에 최대 100발까지 한꺼번에 쏠 수 있는 그런 무기고요.
특히 임진왜란 때에는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 전투에서 이 신기전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지금의 무기로는 기관총 같은 거네요?
-네, 말하자면 다연장 로켓인데 천무에 해당합니다, 오늘날의.
-지금 이게 바로 호국의 무기입니다, 호국의 무기.
대단하지 않습니까?
-권율 장군이 왜구들을 물리친 바로 그 무기입니다.
최무선 장군님이시죠?
-그렇습니다.
-최무선 장군님 하면 화약밖에 저는 모르는데 어떤 분이시죠?
-우리나라 최초로 화약을 개발한 분입니다.
-(해설) 최무선 장군의 화약, 화포를 개발하는 과정을 통해 전통 과학에 대한 역사와
오늘날 우리나라의 화약 발전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진포대첩, 진포대첩 말만 들었지, 도대체 어떤 전쟁이었죠?
-그러면 저희는 육지에서 공격한 건가요, 아니면 같이 해군 공격을 한 건가요?
-(해설) 기왕 온 김에 저도 해상 전투에 참여해 보기로 했습니다.
-동그라미가 나온다고 하는데 손을 높이 들고.
-(해설)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요.
-이렇게 내려쳐요?
이렇게 하니까 진짜 화포를 쏘는 기분이 나네요.
지금 보니까 거북선에서 쐈던 게 이 화포 아닙니까?
-(해설) 하다 보니까 승부욕이 타오르더라고요.
-이게 한 1만 정 가까이 되면 이길 수가 있습니다.
-(해설) 호국 도시로 떠나는 자전거 여행.
-우리나라는 자전거 길이 참 잘 되어 있어.
-(해설) 시원한 바람을 타고 페달을 힘차게 밟아봅니다.
영천에 오면 빠뜨리지 말고 꼭 해야 할 체험이 있다고 할 들렀는데요.
군인들로 따지면 레펠 체험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지금 떨려서 그래요, 떨려서 그래.
이거를.
-팔만 넣어주세요.
-왜 진짜.
-(해설) 저는 이런 거 진짜 싫은데 두려움 없는 용감한 사람이 되려면 호국 도시 영천에서는 꼭 도전을 해야 한다나.
대체 어디까지 올라가는 건지.
-이거 안 될 것 같아.
이건 아니죠.
이게요, 진짜.
감독님, 이건 아니에요.
돌아보세요, 저쪽으로 돌아봐요.
저기 한번 봐봐요.
저기 높이가.
-(해설) 이거는요.
제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라고요.
영천 보현산댐 집와이어.
-아직 출발 안 합니다.
-출발 안 한다면서요.
이게 제일 무섭다니까요.
-(해설) 저 정말 잔뜩 겁먹었습니다.
마음의 준비도 잠시.
높이 345m에서 급하강.
탑승 거리가 무려 1411m.
꽤 길죠?
게다가 최고 시속 100km.
체험할 수 있는데요.
저 진짜 식겁했습니다.
-이제 좀 살만하네.
여기 풍광 보이시죠?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거는 이 정도밖에 없습니다.
이거 뭐.
끝까지 무섭네, 이거.
-(해설) 그래도 남자라면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한 체험이었습니다.
-내일 공연해야 하는데 목이 다 쉬었다, 어떡해!
-(해설) 최근 영천의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보현산댐 출렁다리로 개통되어서 많은 사람이 영천을 찾고 있다고 하네요.
-굉장히 시원하고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죠?
-네.
-저기 앞에 보이는 저 높은 산 정상에서 아까 집와이어 타고 내려오셨잖아.
-맞네, 맞네, 맞네.
이렇게 쭉 가는 거죠?
-네, 이렇게 타고 탁 내려오시면 아주 시원한 강바람을 맞고 달려가는 그런 느낌도 들고요.
이 현수교도 흔들다리인데, 여기 주탑이 2개가 있잖아요.
이 주탑 사이 거리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간격이 멀 거예요.
350m 정도 되거든요?
-꽤 되네요.
호국의 도시라고 해서 전쟁 관련된 거나 이런 문화적인 거, 6.25 이런 이야기들을 약간 무거울 수도 있는 문제들을 다뤘는데.
-그렇죠, 그렇죠.
-여기는 지금 느낌이 완전히 다르게 약간 쉬어가는 느낌이 들어요.
-늘 무거운 이야기만 들으면 힘들잖아, 그렇죠?
-그렇죠.
-그래서 한 번쯤은 이렇게 자연 속에 들어와서 또 탁 트인, 아까 말한 호연지기도
이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거고 또 몸도, 마음도 쉬어갈 수 있는 곳.
-맞아요, 맞습니다.
-그런 장소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어요.
-영천이 꽤 재미있어요.
-그렇죠?
-저는 방송하면서 목이 쉰 게 콘서트를 해도 목이 안 쉬는데 영천 와서 목 다 쉬었어요.
-별로 안 무서운데.
-제가 이걸 아직도 안 풀고 있습니다.
-너무, 아직 안 풀고 계시는구나.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이게.
-(해설) 무서웠지만 호연지기도 기르고 멋진 풍경도 감상하고 그야말로 별의별 매력이 넘치는 영천입니다.
-저기요, 보물이 여기 어디 있다는데, 혹시 아세요?
아세요?
저 먼저 갑니다.
-(해설) 골목이 이쁜 이곳은 상내동인데요.
-조심히 오세요.
-(해설) 이곳 어딘가에 보물이 있다는데.
보물 제521호로 지정된 귀한 문화재가 바로 이 동네에 있습니다.
이름하여 복장군이라는 장군이 살았던 집이라는데, 평소에도 시민들이 자주 찾는 곳이랍니다.
-이 나무는 무슨 나무인데 이렇게 꽃이 예뻐요?
-예쁜 꽃 폈죠?
배롱나무예요.
-배롱나무?
-예쁘죠?
-예쁘다.
-그렇죠.
-그런데 마치 있잖아요, 대저택에 사는 집 앞에 잘 가꿔진 정원을 걷는 기분이에요.
-그렇죠, 너무 예쁘죠?
-(해설) 외관부터 예사롭지 않은 이곳은 숭렬당입니다.
1433년에 건립된 중국풍이 가미된 독특한 건물입니다.
-어때요, 들어와서 보니까 이 건물이 좀 독특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독특함도 있지만 제가 지금까지 잘 못 봤던 그런 한옥 구조인 것 같아요.
-그렇죠.
-뭔가 웅장한데, 화려합니다.
-그렇죠.
여기는 숭렬당이라고 하는데, 위양공 이순몽 장군이 살던 저택이었어요.
그분이 사시던 사랑방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이 건물은 독특하게 조선 후기 양식을 조금 띠고 있으면서 약간 중국풍의 영향을 좀 많이 받은 건물이에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을 보면 앞에는 정면 5칸, 측면 3칸짜리의 기와집인데
처음에 이렇게 팔 자로 되어 있었는데 여기가 연결이 돼 있었죠.
연결이 돼 있어 좀 더 펼쳐 나오면서 건물이 좀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약간 웅장한 느낌까지 주는.
-맞습니다.
-그런 집이 되고, 됐죠.
-그런데 여기 사셨던 장군님은 대체 어떤 분이셨길래 이렇게 웅장한 집에 사셨어요.
-그렇죠.
이순몽 장군이라고 우리가 일명 복장군이라고 부르는데요.
이분이 고려 말에 태어나서 조선 전기 때 무인이었어요.
그래서 세종대왕 때 대마도를 정벌하러 갈 때 같이 출전을 하셨는데 그때 많은 장군이 갔는데 다 패했어요.
패했는데, 이 이순몽 장군은 유일하게 승리를 하고 대마도주를 굴복시켜서 항복문서를 받아오신, 그때부터 뭐랄까요.
영천에서 태어나신 분으로서 나라를 위한 또 큰 힘을 발휘하신 장군이다?
-제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또 여기서 또 장군님의 이런 뭔가의 기운을 제가 느낄 수 있어서.
-그렇죠.
-(해설) 영천 강변을 따라 길게 늘어진 공원을 따라 걷다 보면 아름다운 누각이 하나 있습니다.
조양각인데요.
영천성 수복 전투가 벌어진 전적지였습니다.
서세루라고 해서를 고려 말에 명원으로 창건되어 여러 차례 시대의 변화에도
지금까지 우뚝 서 있는 영천의 상징적 유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순국선열들과 의병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호국의 역사가 깃든 문화 유적입니다.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영남의 3대 누각에 속한다니 영천에는 돌아볼 유적지도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서세루를 뒤로 하고 임진왜란 당시 외적과 싸우다 순국하신 열 분을 모시는 고천서원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이곳은 위패가 이렇게 모셔져 있는 곳이네요?
-네.
-그러면 여기는 어떤 분들이 모셔 계신 거예요?
-우리 임진왜란 때 전국 최초의 성 수복 전투인 영천성 수복 전투에 승리하고,
이어서 벌어진 경주성 수복 전투에 참여하였다가 순절하신 열 분을 모신 거죠.
-그렇군요.
-1705년 숙종 31년에 처음 세워졌고요.
여기 그러고 난 뒤에 지금 현재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분들이 계시지 않으셨다면 영천이 없었을 수도 있겠네요.
-네.
-그렇다면 묵념이라도 하고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죠.
-(해설)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봅니다.
6.25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지녔지만, 전쟁에 낯선 세대들에게 과연 그 역사는 공감이 될까요?
저의 걱정스러운 마음은 이것으로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때마침 어린아이들이 체험을 위해 도착합니다.
아이들은 여기서 어떤 체험을 하게 될까요?
-야, 뭐해?
-내리자.
-내리겠습니다.
-조심히.
-뭐해?
-짠!
깜짝 놀라셨죠?
안녕?
얘 손 어마어마하게 흔드네.
오늘 제가 영천메모리얼파크에 왔는데요.
우리 유치원 아이들과 함께합니다.
이곳에서 체험도 할 수 있고요.
많은 관람도 할 수 있고 그래서 제가 한번 어떤 체험을 할 수 있는지 같이 한번 해보려고요.
아빠의 마음으로.
재밌을 것 같아요?
-네.
-네!
-재밌을 것 같아요?
-네!
-(해설)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는 나라 사랑의 소중함을 알기 위해 건립된 만큼 호국 안보 교육에 최적의 장소입니다.
1층 전시관엔 1950년대 당시 치열했던 영천 전투 속으로 떠나볼 수 있는데요.
6.25전쟁 초기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한 전투가 바로 영천 전투였다는 사실, 아시죠?
바로 그 영천 전투를 영상과 체험으로 접할 수 있습니다.
-악당들이 어디 있어요?
악당들이, 왔다, 왔다, 왔다.
-여기.
-비행기 출동.
-비행기다.
-비행기다.
-좋다.
-(해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체험하며 전쟁의 교훈과 역사를 공감하게 됩니다.
해맑은 아이들에겐 그저 신나는 전투 체험이지만 영천 전투를 배경으로 해서
전 세대가 다양한 콘텐츠로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의 자랑입니다.
-공격, 공격, 공격.
-(해설) 육군 예비역 병장인 저도 오랜만에 아이들 틈에서 즐겼네요.
-탱크?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사방에서 총포 소리가 나고.
-그렇죠.
-어린 학생들도 많이 오나요?
-네, 유치원생들도 오고 초등학생들이 주로 많이 오고요.
-그렇군요.
-여기가 어린 애들이 체험하기 괜찮은 공간이라.
-네, 그렇죠.
전쟁은 그런데 우리가 지금 주변에 전쟁 이야기를 듣긴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체험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애들은 우리나라에 옛날에 이런 전쟁의 역사가 있었다라고 하면 그게 어땠을까 궁금하거나
이럴 때 너무 무겁지 않게 가볍게라도 이런 전쟁이 있었으니 우리는 이런 일이 없어야 되겠다,
이런 정도의 경각심을 줄 수 있는 그런 공간이라고 보시면 돼요.
-결국 어느 시점에 오면 스스로 공부할 때가 또 있거든요.
-그렇죠.
-(해설) 호국 도시 영천에 왔다면 꼭 들러야 할 코스가 있습니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경험하지 못한 세대의 공감의 장소이면서 호국 영령들을 위한 추모의 공간이죠.
-오른쪽, 왼쪽으로 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조금 달라요, 보시면.
-약간 그런 분위기가 있어요.
-그렇죠, 전차의 바퀴 같은 것도 좀 선명하죠.
그래서 우리가 남한이 이겼구나라는 그런 걸 상징으로 표현해 놓은 거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해설) 하나의 도시에서 위기의 순간마다 나라를 지켰던 호국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도 드물죠.
그래서 영천을 호국 도시라고 하나 봅니다.
-(해설) 6.25 한국 전쟁의 반격의 분수령이 된 영천 전투를 재조명하기 위해 건립된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는 개관 이후 지금까지 전국의 13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했다고 합니다.
특히 청년들이 즐기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저도 좋아하는데요.
-팔, 팔을 빼시고요.
쭉.
감사합니다.
-(해설) 눈치채셨나요?
맞습니다, 종합 서바이벌 체험장입니다.
실전은 아니지만 실전처럼 그야말로 적군과 아군을 나눠서 전투 체험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들 같지 않나요?
올림픽 사격 금메달의 빛나는 한국인의 뜨거운 피가 서바이벌장에서도 빛날 것 같습니다.
제가 있었더라면 명사수가 되는 건데.
아무튼 여러분, 파이팅입니다.
-파이팅!
-(해설) 드디어 전투가 시작됐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오직 살아남는 자만이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겠죠.
그런데 다소 무거운 표정들인데, 꽤나 진지합니다.
이곳 서바이벌 체험장은 직장인들과 학생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데요.
그 이유가 단합도 되고 스트레스도 한 방에 날리기 때문이랍니다.
과연, 가상이지만 전투를 체험한 청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얘기가 있죠.
그래서 제가 출출한 김에 지금, 먹고 가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데 오게 되면 맛집은 연세가 조금 지긋하신 분들께 여쭤봐야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딱 물어봐 맛집을 찾겠습니다.
분위기가 벌써 아마 진짜 맛집 분위기는 이런 골목 안에서 이뤄지는 거 아시죠?
저기입니다, 저기요.
-(해설) 이곳이요, 60년 넘게 영천 시민들의 허기진 배를 따뜻하게 채워줬던 노포랍니다.
-푸짐하다.
-괜찮죠?
-네, 제가요.
맛집 찾아온다고 어른들께 조금 여쭤봤더니 여기 오래된 맛집 있다고 해서 찾아왔거든요.
그런데 사실 골목에 있어서 조금 찾기는 어렵긴 했었지만.
-그래도 다 찾아와요.
-그렇죠?
그렇죠.
-그래도 다 찾아와요.
-제가 그래서 한 가지 시킨 것도 아니고 여쭤봐서 두 가지를 욕심꾸러기처럼 시켰습니다.
-그렇구나.
한번 맛보세요.
-그런데 이거 딱 보니까 전통 있는 집 같아요.
-다 그러던데.
어머니하고 식당 하고 살았는데 결혼식을 23살에 했어, 영천에서.
하고 내가 따로.
-지금까지 하신 거예요?
-분리해서 나와서 지금까지 한 거예요.
이것 좀 넣고, 겨자.
-겨자를 좀 넣고.
-이 다대기도 좀 넣고.
-다대기 좀 넣고.
-넣고.
-(해설) 시어머니 때부터 이어왔다는 며느리의 손맛.
벌써 기대가 됩니다.
-한가득 들었네요.
-진짜 우리 냉면 맛있어요.
다 먹고 맛없으면 돈 안 받아.
-진짜로요?
맛있는데 맛없는 척하면 어떻게 해요.
-아니야.
맛없으면 원래 사람들 젓가락 탁 놔.
-탁 놔요?
-맛있어.
-(해설) 일단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과연 맛은 어떨지.
소리만 들어도 맛있지 않나요?
제가 여기저기 다니느라고 피곤했는데 이 피곤도 싹 날려버릴 만큼 시원하고 맛있었습니다.
-속이 다 시원하네.
일단은요.
너무 맛있는데요.
제가 시청자 여러분 궁금하실까 봐 차가운 거.
그리고 차가운 걸 시켰으니 뜨거운 것도 시켰거든요.
-(해설) 가마솥에 푹 고은 설렁탕에 밥 한 그릇을 탁 말면...
든든하다 못해 그냥 꽉꽉 찹니다.
-대사를 꼭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맛없으면 돈 안 받는다고 하셨는데 그냥 오래된 집, 오래된 집을 찾아왔는데 맛집을 잘 찾은 것 같습니다.
열심히 먹고 또 여행해야죠.
-(해설) 여러분, 여행은 이래야 제맛 아닐까요?
-고기가 진짜 맛있네.
-(해설) 든든하게 배도 채웠으니 또 떠나 봐야겠죠.
호국 도시 영천으로의 여행, 막바지를 향해 달려갑니다.
이곳은 영천전투호국기념관인데요.
8.15 광복에서 남북 분단, 인민군의 남침, 국군의 역전 신호탄이 된 영천전투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선생님, 태극기를 중심으로 해서 많은 국가가 이렇게 보이는데.
그런데 말씀 안 해 주셔도 뭔가 뭉클한 게 있는 것 같아요.
-이거는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16개국입니다.
그리고 여기 여섯 개국은 의료지원국.
-6.25 당시에 이 국가들이 저희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엄청 힘들었겠어요.
-대한민국이 없을 수도 있죠.
-그렇군요.
그런데 보니까 지금 대부분 우리나라보다 잘사는 나라도 있지만 못사는 나라들도 있어요, 그렇죠?
-그 당시에는 필리핀 같은 경우 우리보다 더 잘살았었고.
-그래요?
-그리고 특히 아프리카에 있는 에티오피아 같은 나라도 우리를 도와주러 왔었고.
-그랬어요?
사실 오늘 처음 알았어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사회주의 국가로 넘어갔기 때문에 그 참전용사들이 굉장히 탄압을 받았었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요새는 우리나라가 많이 도움을 주죠, 참전 국가에.
-오히려 이제 저희가 도와주는 입장이 됐군요.
-그리고 터키 같은 경우에는 우리를 지금 형제 국가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맞아요.
그러니까 뭔가 가슴 뭉클한,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것들이 있네요.
-(해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의 아픔.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던 전쟁 상황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일촉즉발 위기, 낙동강을 사수하라.
교전 한 달 만에 밀리게 됩니다.
밀리게 되는데 낙동강 전선은 사실은 미군이 방어를 하고 내륙 지방은 국군 다섯 개 부대가 방어를 하게 됩니다.
-저기 지금 다부동, 팔공산...
-다부동, 신녕, 영천, 안강, 포항.
그런데 여기 보시면 영천이 제일 중간이죠.
중간이니까 영천을 빼앗겼을 때는 이 전선이 두 갈래, 양분됩니다.
양분되고 동서를 잇는 유일한 교통로가 이렇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영천이 중요한 겁니다.
-그러면 우리 막 피난 간다, 이런 이야기 했었잖아요.
그러면 이 파란 지점까지 다 사람들이.
-안쪽에 들어온 거죠.
-몰려들어 온 거예요?
이거밖에 안 남은 거예요?
영천전투를 기점으로 해서 압록강까지 쭉 밀고 올라간 거잖아요.
그런데 김일성이 말하기를 영천 전투의 패배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만큼 영천전투가 치열했죠.
9월 2일부터 9월 13일 사이에 영천전투가 벌어졌었는데.
-그런데 이곳에 와서 보니까 탱크도 있고 영천역도 이렇게 있고 정말 실감 나게 잘해놨네요.
-영천전투는 영천을 두 번이나 뺏겼다가 두 번이나 다시 찾는 전투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이 전투에서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으니까 중요한 전투입니다.
그리고 여기 전투 결과 밀리기만 했던 우리 국군이 어느 정도의 전가를 올렸냐 하면 적 사살 3799명.
-3000명, 3700, 거의 4000명 가까이 되네요.
-포로는 209명 그리고 전차 다섯 대, 장갑차 두 대, 각종 화포하고 차량을 빼앗았거든요.
그 반면에 우리 국군은 전사 29명, 부상 148명.
-그것만 해도 거의 뭐...
-실종 48명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거든요.
-그래도 그 정도면 거의 뭐, 압승했다고 보는 거 아닙니까?
-거의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전가죠.
-(해설) 치열했던 영천전투의 성공은 목숨 걸고 낙동강 최후의 전선을 지킨 분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급박한 전투 상황만큼 에피소드도 많았다는데요.
탱크 잡은 신병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전차병이었거든요.
그래서 전차를 보니까 이거 뭐, 일반 사람들은 탱크라고 부르잖아요.
탱크를 보니까 새록새록 하네요.
그런데 영천전투에서 신병이 이 탱크를 잡았다면서요.
-그런 일이 있었죠.
신병은 너무 몰라서 탱크를 잡았고 적군은 너무 잘 알아서 탱크를 뺏기게 되죠.
-그게 무슨 이야기죠?
-전차가 막 지나가는데 세운 거네요.
-우르르 나온 것도 아니고 혼자 나와서 여기 서 막 이러니까 당연히 포위된 줄 알고.
-그 빼앗은 탱크가 이 탱크예요?
-그럴 리가요.
그거는 아니겠죠.
-그거는 아니겠죠.
참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해설) 흥미로운 영천전투 이야기에 잠시 빠져들다 보니 전쟁이란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영천이 무너지면 낙동강 전선이 무너지니까 여기서, 여기서 우리가 뉴코리아플랜
우리 국민 62만 명을 데리고 사모아에 망명정부를 세우려고 했거든요.
-지금 제일 처음에 봤던 파란 지점까지 모여 있던 거기에 있는 남한 사람들을 여기로 옮긴다고요?
-그러니까 그 사람 중에서도 정부 요인, 군인 이런 사람 62만 명만.
-62만 명, 그중에서도?
-골라서 사모아로 가게 됩니다.
-다행히도 안 갔네요.
-다행히 우리가 막아냈죠.
-다행히도 안 갔네요.
-막아냈기 때문에 안 가게 된 겁니다.
-안 그러면 차출된 62만 명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제가 없을 수도 있었겠네요.
-지금 안 그러면 북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거죠.
-그렇겠네요.
-(해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아니, 오늘이 있기까지
영천전투의 승리가 있었기 때문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라지는 것보다 잊혀지는 게 더 두렵다고 하죠.
나라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겼던 호국선열들을 기억하는 건 남아 있는 자들의 몫일 겁니다.
여기 누군가의 아들로 아버지로 혹은 청춘의 이름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쳤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국립영천호국원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 바친 희생과 애국,
애족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1년 세워진 참전용사국립묘지입니다.
-장가를 일찍 갔죠.
-장가가신 그 해에 가셨다고요?
-거기까지 온 거예요, 이제.
어디 뭐 사나, 안 살아요, 못 살아요.
-전쟁이 있으면 안 되죠.
-(해설) 전쟁을 기억하는 사람도 점점 사라져갑니다.
이제는 기억 속에서 아스라이 멀어져간 수많은 참전 전우.
화랑에서부터 6.25 영천전투에 이르기까지 고귀한 역사의 긴 시간 위에 평화로운
오늘이 있게 한 이름 모를 희생자들을 위해 감사한 마음을 담아봅니다.
누군가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지금보다 더 열심히 오늘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는 것.
호국도시 영천으로의 여행을 떠나야 하는 까닭이 아닐까요?
-저 선경이와 함께 떠난 호국의 도시 영천.
여러분, 어떠셨나요?
호국 하면 사전적인 단어로 보면 보호하고 지킨다 뭐 이런 뜻이잖아요.
사실 너무 무겁기도 한데 저는 이 여행이 무겁지만은 않았습니다.
참 즐겁고 재미있고 그리고 또 맛있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역사의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죠.
저도 제 아들이 자라면 이곳에 꼭 한번 데려오고 싶습니다.
참고로 제 아들은 이제 100일 지났거든요.
이만큼 자라려면 한참 있어야 하겠지만 꼭 한번 데리고 와서 저희 역사를 한번 보여주고 싶어요.
역사를 보여주기에 영천만큼 좋은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시원아, 아빠랑 꼭 같이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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