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기
테마스페셜 - 충청의 옛 소리, 중고제
등록일 : 2024-11-04 16:42:32.0
조회수 : 409
-(해설) 초록을 깨우는 바람소리.
소리는 예기치 못한 무언가와 우연한
마주침일까요?
때가 되면 만나게 되는 시절인연일까요.
바람처럼 흔들린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 걸음은 언제나 소리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열다섯에 처음 소리를 만났습니다.
소리와 함께한 지 어느덧 20년이
되었네요.
-(해설) 충청의 얼과 혼이 살아 숨쉬는
진짜 충청의 소리.
중고제를 찾아 떠나봅니다.
천리비단 물길따라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꽃 피웠던 내 고향 충청.
예로부터 충청은 판소리의 효시로
손꼽히는 하한담, 최선달의 소리길을
열어준 곳인데요.
예술의 산실로 거듭난 충청은 내로라
하는 명창들의 화려한 무대였습니다.
충남에서도 홍성은 판소리사에 있어 매우
유의미한 지역입니다.
양반 가문에서 최초의 소리꾼이 태어나고
활동한 곳이기 때문이죠.
-(해설) 최초의 판소리 명창으로 알려진
최선달.
후손들은 그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소리 하나로 선달이라는 칭호를 받은
최예운.
-그렇구나.
-(해설) 명창으로 이름 난 최선달은
가선대부라는 벼슬도 받았습니다.
-(해설) 과거 해안을 끼고 내륙 지방과
소통했던 홍성은 풍요로운 곡창지대로
물산이 넘쳐났는데요.
상업적 거래가 활발하여 예인들이
활동하기 좋은 소리의 고장이었습니다.
-섬이었구나.
-여기요, 여기.
-그럼.
-얼씨구.
-북이라니까.
-둥둥둥~
어이~
-(해설) 최선달 명창이 나고 자란 결성면
성남리에는 최선달에 대한 많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요.
누에를 닮은 누에산은 소리 공부를 하던
곳으로 전해집니다.
과거 바다였던 이곳은 누에산 동쪽과
서쪽에 악기 모양을 닮은 포구가 있어
악기 소리에 싸여 있는 형상이었다고
하네요.
-정말.
-(해설) 판소리 종합 이론서.
조선창극사에 등장하는 최선달 명창.
판소리의 정체성을 확립한 최초의
인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그의 판소리는 결성농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중 만물소리는 그가 불러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선달 명창님의 만물소리 있잖아요.
저 들어보고 싶은데 해주시면 안
될까요?
-한번 들어볼래?
-네.
-그래.
늙어
좋다
-(해설) 천수만의 중심지였던 결성은
농경문화가 발달하면서 다양한 농요가
생겨난 곳인데요.
초록빛 파도가 넘실대는 계절이면
최선달의 소리가 결성농요 가락마다
살아 숨쉬는 듯합니다.
최선달이 소릿길을 열어준 충청에는
서산 지역을 중심으로 한 내포권
중고제와 공주를 중심으로 한 금강권
중고제가 있는데요.
서산은 내포권 중고제의 핵심
지역입니다.
-명실상부한 소리의 고장 서산은
중고제 명창들을 다수 배출한
곳인데요.
전기 8대 명창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고수관 명창의 고향이 있습니다.
-(해설) 연암산 아래 자리한
고북면 초록리를 고수관 명창이 태어난
곳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초록리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어떤
마을일까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해설) 이름마저도 사랑스러운
초록리.
이곳은 18세기부터 그릇 장인들이 모여
살던 마을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흥이 많아 대대로
풍류를 즐겼다고 하는데요.
초록리 풍물패는 이 일대에서도 가장
뛰어났다고 합니다.
고수관이 노래하면 황소도 춤을 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수려한 음색과
탁월한 실력으로 당대 소리판을
풍미했습니다.
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
때문에 딴청일수라는 별명까지
얻었는데요.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는 성음이 극히
미려하여 만만불급처 즉,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경지라고 평했습니다.
고수관 명창이 소리 공부를 하던 곳이
찾아갑니다.
-너무 힘들어요.
-이유가 있어요.
고수관 선생님이 드시던 꽃샘터가 바로
여기 있어요.
-바로 저기가 꽃샘터예요.
저기 물이 나오고 있죠?
-(해설) 지금은 큰 물이져 잔돌이
쌓이고 옛 흔적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러면 회장님은 드셔보셨겠네요?
-먹었지.
저는 78년을 먹었습니다.
-그러면 회장님 득음하셨겠는데요?
-조금.
-한 곡 해보실래요?
-그거는 못 하지.
-(해설) 한때 초록리의 젖줄이었던
꽃샘입니다.
-감사합니다.
저 지금 너무 떨려요.
-물맛이 어때?
-물맛이 달라요.
이게 득음의 맛이구나.
-(해설) 이 꽃샘물을 마시고 목소리가
트였다는 고수관 명창은 조선 제일의
시인 자하 신위와도 만년까지 가깝게
지냈는데요.
신위의 문집 경수당전고에는 고수관을
찬미하는 시도 여럿 남겼습니다.
-절 아랫동네가 방씨 일가들이 살았던
동네인데 옛날에 배가 고프면 아들을
절에 맡기잖아요.
아마도 방만춘 선생님께서도 11살에
올라온 것이 배가 고파서.
-(해설) 일락사 앞으로는 가야산 줄기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울림통 역할을
한다는데요.
소리꾼들에게는 분명 명당이었을 겁니다.
-그러면 방만춘 선생님께서도 이곳에
올라오셔서 소리를 배우신 거예요?
-그렇죠.
11살에서 22살까지.
-10년간 소리를 배우셨어요?
-그렇죠.
-(해설) 소리를 얻는 일이란 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자신과의 혹독한
싸움입니다.
마침내 모든 소리를 자연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는 것.
그것을 득음이라고 하는데요.
뼈를 깎는 노력 끝에 방만춘도 소리를
얻었습니다.
황해도 어느 절에서 소리를 연마한 끝에
그는 아귀상성과 살세성을 득음하였고
심청가와 적벽가를 다듬어 후대에
전했습니다.
-(해설) 선대의 뜻을 이어 가업을
발전시킨 이애리 씨.
그녀는 충청남도 무형유산 승무 보유자로
심씨 가문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해설) 심씨 가문의 200년의 여정은
피리의 거장 심팔록으로부터 판소리의
거장 심정순, 심화영, 이애리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애리 씨는 심정순의 딸 심화영으로부터
가야금 병창과 승무를 전수하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오로지 이게 좋아서 한
거였고 우선 나중에 철이 들어서는
외가의 대를 내가 잇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외할머니도 저를 100% 믿으시진
않으셨어요.
반신반의하고 나이도 어렸으니까
그러다가 제가 열심히 하고 계속
쫓아다니면서 조르고 이러니까 그때부터
얘가 하겠구나 이렇게 생각이 드셔서
저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승무를
처음으로 접하고 가야금 병창을 또
배웠었는데 그걸 하면서는 많이 밤새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 정도로 제가
열심히 안 한다고 그랬더니
꾸지람을 많이 들었어요.
-(해설) 이애리 씨는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외조모 심화영의 승무가 문화제로 지정된
후 제자를 중심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애리 씨의 외조부 심정순은 20세기
전반 중고제 판소리 명창이었는데요.
남도 소리가 나오기 전까지 유성기
음반의 가야금 병창은 모두 심씨
일가에서 녹음했다고 할 정도로 서울
장안사의 간판스타였다고 합니다.
-심화영 선생님한테 이렇게 전수를
받으시면서 심정순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을 것 같아요.
-할머니께서 이야기하시기를 그러니까
이따금 오는 손님 같은 분이셨다.
그러니까 서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셔서 가정에는 그 당시에 소홀하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씩 뵙는 동네 어른 같았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되게 낯설고 좀 그러셨던 것
같아요.
-(해설) 건강을 해친 심정순은 고향으로
돌아와 낙원식당을 운영했습니다.
-그 당시 낙원식당이 유명한 예인들이
드나드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항상 거쳐 가는.
저희 사선에 오시면 낙원식당을 거쳐서
서울로 이동하시고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또 낙원식당을 거쳐서 다른 지역으로
가시고.
예인들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했던
곳이에요.
-(해설) 홍성, 서산이 내포권 중고제의
소리라면 금강권 소리의 발원은
논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금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강가의
햇볕 고을 강경.
-조선 2대 포구, 조선 3대 시장으로 불릴
만큼 번성했던 강경은 포구 주변에
예인들이 많이 거주했다고 하죠?
-(해설) 과거 강경은 포구와 장시로 가장
번성해 다양한 문화가 꼽히는
도시였습니다.
이곳 강경 웅녀봉에서 태어난 김성욱
명창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해설) 산다는 것은 행과 불행이 돌고
도는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묵묵히
견뎌내는 일일까요?
김성옥은 10년간의 혹독한 수련으로 좋은
성음을 얻게 되었지만 예인의 꿈이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해설) 염계달과 함께 중고제의 시조로
손꼽히는 김성옥.
그는 와병 중에서도 끊임없이 소리를
연구하여 마침내 진양조를
만들어냈는데요.
진양조의 발견은 판소리사의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노래)
-(해설) 충청의 소리는 판소리의 효실
최선달로부터 누구도 닿지 못한 경지.
독보적인 소리를 만든 박만춘과 김성옥에
이어 중고제의 명맥을 잇는 심정순까지.
마치 금강의 물결처럼 흘러왔습니다.
-김성옥의 미완의 꿈은 아들 김정근과
손자 김창룡에게로 이어졌습니다.
단단한 뿌리 위에 꽃을 피웠습니다.
바로 문화예술의 고장 서천에서 말이죠.
-(해설) 무숙이타령의 대가로 불리는
김성옥의 아들 김정근은 김창룡을 낳고
훌륭한 소리꾼으로 키웁니다.
김창룡.
그게 바로 근대 5명창 중 한
사람입니다.
-김창룡 명창님 생가터 찾아왔는데
제가 도저히 못 찾겠어서.
-저기에 있습니다.
표지석도 있고.
-알고 계세요?
같이 가 주실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여기 표지석이 서 있는 데가 김창룡 씨
생가터입니다, 이게.
-(해설) 김창룡 명창은 워낙 성대가
좋아 여러 날 소리를 해도 목이 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영민의 벽소시고에는 한 번 소리하매
맑기가 옥퉁소를 부는 듯하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음반 추입을 많이 해 전해지는
소리도 많습니다.
-(해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중고제
마지막 소리꾼 김창룡.
그의 흔적은 오직 비석만이
대신합니다.
-(해설) 시간의 조각 속에 묻혀 있던
이름 하나.
지나가는 바람이 잠든 기억을
깨웁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곳에 와보니까 이동백 선생님의
어린 시절 모습은 어땠을까.
-선생님의 인터뷰를 보면 본인이
어머니와 백부 슬하에서 자랐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아마 백부님 슬하에서 또
어머니 슬하에서 어린 시절 뛰어놀면서
잘 보냈겠죠?
그리고 서당을 보냈는데 6살이나 7살
때 보냈을 때 글공부에 힘을 쓰지
않고 오며 가며 노래만 했대요.
그래서 걱정 많았다고 그럽니다.
-(해설) 부모님의 반대로 소리를
단념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몇 해를 그만두고 방황하다 결국
소리를 택했습니다.
-생가지 여기만 딱 보니까 아쉽죠?
-네.
-저쪽 보세요.
저기 회리산이라고 하는데 회리산
꼭대기쯤에 이동백 선생님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장소가 있습니다.
-그러면 가야죠.
-그럼 갑시다.
-(해설) 진짜 새소리보다 더 새소리
같은 소리를 구사해 이날치 이후
새타령을 가장 잘 부르는 명창으로
손꼽히는 괴물 소리꾼입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한 독보적인 성음의
소유자 이동백.
-그렇구나.
-윤아 씨는 몇 살에 소리 시작했죠?
-저는 좀 느지막히 시작해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했어요.
-그러면 15살.
-열다섯이요.
-늦지 않았는데.
-(해설) 판소리는 본래 자연의 소리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노래가 아닌
소리라고 하죠.
그래서 소리꾼들은 자연의 소리를 능가할
만한 성음을 닦는 일이 일생일대의
목표였는데요.
이동백도 소리를 얻기 위해 이 길을
올랐습니다.
-어떻게 이 길을 오가셨을까?
선생님, 안 힘드세요?
조심히 올라오세요.
-너무 힘들어요.
-저도 이렇게 힘든데 그 옛날에는 더 이
산이 험했을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냥 또 올라간 게 아니라 여기서
공부하기 위해 한 번 들어오면 석 달
정도 묵었다고 그러는데 등 위에다가
보리 서 말을 짊어지고 왔대요.
보리 서 말이면 한 20kg 될 것 같은데.
-대단하신 것 같아요, 이거.
-(해설) 잦은 안개로 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하여 이름 붙여진 희리산.
사계절 푸른 해송림이 반기는
곳입니다.
험한 산길을 30분을 걸어야만
독공터에 닿을 수 있습니다.
-굉장히 설레는 마음으로
또 올라가셨을...
-다 왔습니다.
-다 왔다, 다 왔다.
다 왔다.
-여기가 바로.
-드디어 도착했어요.
-이동백 선생님이 득음을 위해서
공부했던 독공터.
-이렇게.
-(해설) 김창용과 함께 중고제
명창으로 활약했던 이동백.
자신만의 색깔로 중고제를 발전시켜
온 명창인데요.
모두 자가 독공으로 이루어냈습니다.
-대단하죠?
큰 바위 속에 이런 굴이 있었던 거죠.
전국적으로 많은 명창들이 산재해
있었지만 이런 굴의 형태로 득음터가
남아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합니다.
그래서 아주 특별한 거죠.
-더욱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 안에서 이동백 선생님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밖을 향해서 소리를 막 질렀던
거예요.
굴 속에서 소리를 하면 우리가
연습실에서 소리하듯이.
-맞아요.
-자신의 소리를 명확히 들을 수가 있고
또 세밀한 소리까지 만들어 갈 수
있잖아요.
-자연 리버브, 자연 공간감을 느끼시면서
얼마나 수련에 임하셨을지 제가 감히
이렇게 느껴봅니다.
선생님, 오늘 이 득음터까지 왔으니 소리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
이때마참 어느 때 녹음방초 좋은 때~
여러 새들이 날아든다~
각 새 떼새가 들온다~
-어이!
-남품 조차 떨쳐~
구만장천에 대붕이~
문왕이 나겨시사 기산조양에 봉황이~
유보규인에 색기새 소직 전통 앵무새~
생증장안에 수고란 어여울 새 채란새~
금자를 뉘가 전허리 가인생사 기럭이~
-어이!
-(해설) 피나는 노력 끝에 마침내 입신의
경지에 이른 이동백은 경남에서
새타령으로 명성을 떨쳤고 서울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해설) 서울 한가운데.
국립정동극장은 제가 가끔
공연을 하러 가는 곳이기도 한데요.
이곳 야외 마당에는 중고제 최고의
스타였던 이동백 동상이 서 있습니다.
그는 왜 이곳에 서 있는 걸까요?
예인들의 주 활동 무대였던 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 원각사.
이곳에서 판소리를 주로 공연했는데요.
이동백은 원각사의 초대 단장이었습니다.
당시 창극 등을 무대에 올리며 새로운
공연 문화를 선도했던 원각사는 1914년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해설) 거의 한 세기가 흘러갈 무렵.
옛 역사를 회복하기 위해 원각사는
정동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 오직 소리 하나로
희망을 노래했던 이동백 명창.
그가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이유입니다.
공주에 있는 충청감영에서 명창 소리를
못 들으면 한양에 못 올라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리판이 흥성했던 중고제의
발원지.
팔도 예인들이 서로 실력을 겨루며 서울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판소리 문화의 중심지이자 중고제
판소리의 고장 공주.
도시의 흐르는 예술혼은 쉼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충청의 옛 소리, 중고제의 부활을 위해
다시 날갯짓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쉽게 느낄 수 있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심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노래)
우지 마라~
-얼씨구.
-(노래)
-암행어사 출두요!
-(노래) 두세 번 외는 소리
하날이 답싹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는 듯
수백명 구경꾼이 돌담이 무너지듯이
물결같이 흩어지니
-(노래)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로다
(노래)
어머니가 생겼구나
내 사랑이로다
어화둥둥 내 사랑이야
-얼씨구.
-(노래) 여보시오 농부님들
이 내 말을 들어보소
농부들 말 들어요
충청도라 허는디는
얼씨구
신산이 비친 곳이라
저 농부들도 상사소리를 맺이는디
각기 저정거리고 더렁거리세
상사디여
-결국 중고제라는 것도 판소리의 하나일
뿐인데 결국은 충청도에서 판소리 문화가
많아지는 게 좋고.
-저도 충청인으로서 항상 응원하고 저도
이 중고제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해보겠습니다.
-(함께) 감사합니다.
아리랑 아라리요 우리네 소리란다
아리랑 아라리요 충청의 소리란다
충청의 소리란다
소리는 예기치 못한 무언가와 우연한
마주침일까요?
때가 되면 만나게 되는 시절인연일까요.
바람처럼 흔들린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 걸음은 언제나 소리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열다섯에 처음 소리를 만났습니다.
소리와 함께한 지 어느덧 20년이
되었네요.
-(해설) 충청의 얼과 혼이 살아 숨쉬는
진짜 충청의 소리.
중고제를 찾아 떠나봅니다.
천리비단 물길따라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꽃 피웠던 내 고향 충청.
예로부터 충청은 판소리의 효시로
손꼽히는 하한담, 최선달의 소리길을
열어준 곳인데요.
예술의 산실로 거듭난 충청은 내로라
하는 명창들의 화려한 무대였습니다.
충남에서도 홍성은 판소리사에 있어 매우
유의미한 지역입니다.
양반 가문에서 최초의 소리꾼이 태어나고
활동한 곳이기 때문이죠.
-(해설) 최초의 판소리 명창으로 알려진
최선달.
후손들은 그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소리 하나로 선달이라는 칭호를 받은
최예운.
-그렇구나.
-(해설) 명창으로 이름 난 최선달은
가선대부라는 벼슬도 받았습니다.
-(해설) 과거 해안을 끼고 내륙 지방과
소통했던 홍성은 풍요로운 곡창지대로
물산이 넘쳐났는데요.
상업적 거래가 활발하여 예인들이
활동하기 좋은 소리의 고장이었습니다.
-섬이었구나.
-여기요, 여기.
-그럼.
-얼씨구.
-북이라니까.
-둥둥둥~
어이~
-(해설) 최선달 명창이 나고 자란 결성면
성남리에는 최선달에 대한 많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요.
누에를 닮은 누에산은 소리 공부를 하던
곳으로 전해집니다.
과거 바다였던 이곳은 누에산 동쪽과
서쪽에 악기 모양을 닮은 포구가 있어
악기 소리에 싸여 있는 형상이었다고
하네요.
-정말.
-(해설) 판소리 종합 이론서.
조선창극사에 등장하는 최선달 명창.
판소리의 정체성을 확립한 최초의
인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그의 판소리는 결성농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중 만물소리는 그가 불러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선달 명창님의 만물소리 있잖아요.
저 들어보고 싶은데 해주시면 안
될까요?
-한번 들어볼래?
-네.
-그래.
늙어
좋다
-(해설) 천수만의 중심지였던 결성은
농경문화가 발달하면서 다양한 농요가
생겨난 곳인데요.
초록빛 파도가 넘실대는 계절이면
최선달의 소리가 결성농요 가락마다
살아 숨쉬는 듯합니다.
최선달이 소릿길을 열어준 충청에는
서산 지역을 중심으로 한 내포권
중고제와 공주를 중심으로 한 금강권
중고제가 있는데요.
서산은 내포권 중고제의 핵심
지역입니다.
-명실상부한 소리의 고장 서산은
중고제 명창들을 다수 배출한
곳인데요.
전기 8대 명창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고수관 명창의 고향이 있습니다.
-(해설) 연암산 아래 자리한
고북면 초록리를 고수관 명창이 태어난
곳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초록리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어떤
마을일까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해설) 이름마저도 사랑스러운
초록리.
이곳은 18세기부터 그릇 장인들이 모여
살던 마을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흥이 많아 대대로
풍류를 즐겼다고 하는데요.
초록리 풍물패는 이 일대에서도 가장
뛰어났다고 합니다.
고수관이 노래하면 황소도 춤을 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수려한 음색과
탁월한 실력으로 당대 소리판을
풍미했습니다.
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
때문에 딴청일수라는 별명까지
얻었는데요.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는 성음이 극히
미려하여 만만불급처 즉,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경지라고 평했습니다.
고수관 명창이 소리 공부를 하던 곳이
찾아갑니다.
-너무 힘들어요.
-이유가 있어요.
고수관 선생님이 드시던 꽃샘터가 바로
여기 있어요.
-바로 저기가 꽃샘터예요.
저기 물이 나오고 있죠?
-(해설) 지금은 큰 물이져 잔돌이
쌓이고 옛 흔적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러면 회장님은 드셔보셨겠네요?
-먹었지.
저는 78년을 먹었습니다.
-그러면 회장님 득음하셨겠는데요?
-조금.
-한 곡 해보실래요?
-그거는 못 하지.
-(해설) 한때 초록리의 젖줄이었던
꽃샘입니다.
-감사합니다.
저 지금 너무 떨려요.
-물맛이 어때?
-물맛이 달라요.
이게 득음의 맛이구나.
-(해설) 이 꽃샘물을 마시고 목소리가
트였다는 고수관 명창은 조선 제일의
시인 자하 신위와도 만년까지 가깝게
지냈는데요.
신위의 문집 경수당전고에는 고수관을
찬미하는 시도 여럿 남겼습니다.
-절 아랫동네가 방씨 일가들이 살았던
동네인데 옛날에 배가 고프면 아들을
절에 맡기잖아요.
아마도 방만춘 선생님께서도 11살에
올라온 것이 배가 고파서.
-(해설) 일락사 앞으로는 가야산 줄기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울림통 역할을
한다는데요.
소리꾼들에게는 분명 명당이었을 겁니다.
-그러면 방만춘 선생님께서도 이곳에
올라오셔서 소리를 배우신 거예요?
-그렇죠.
11살에서 22살까지.
-10년간 소리를 배우셨어요?
-그렇죠.
-(해설) 소리를 얻는 일이란 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자신과의 혹독한
싸움입니다.
마침내 모든 소리를 자연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는 것.
그것을 득음이라고 하는데요.
뼈를 깎는 노력 끝에 방만춘도 소리를
얻었습니다.
황해도 어느 절에서 소리를 연마한 끝에
그는 아귀상성과 살세성을 득음하였고
심청가와 적벽가를 다듬어 후대에
전했습니다.
-(해설) 선대의 뜻을 이어 가업을
발전시킨 이애리 씨.
그녀는 충청남도 무형유산 승무 보유자로
심씨 가문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해설) 심씨 가문의 200년의 여정은
피리의 거장 심팔록으로부터 판소리의
거장 심정순, 심화영, 이애리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애리 씨는 심정순의 딸 심화영으로부터
가야금 병창과 승무를 전수하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오로지 이게 좋아서 한
거였고 우선 나중에 철이 들어서는
외가의 대를 내가 잇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외할머니도 저를 100% 믿으시진
않으셨어요.
반신반의하고 나이도 어렸으니까
그러다가 제가 열심히 하고 계속
쫓아다니면서 조르고 이러니까 그때부터
얘가 하겠구나 이렇게 생각이 드셔서
저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승무를
처음으로 접하고 가야금 병창을 또
배웠었는데 그걸 하면서는 많이 밤새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 정도로 제가
열심히 안 한다고 그랬더니
꾸지람을 많이 들었어요.
-(해설) 이애리 씨는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외조모 심화영의 승무가 문화제로 지정된
후 제자를 중심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애리 씨의 외조부 심정순은 20세기
전반 중고제 판소리 명창이었는데요.
남도 소리가 나오기 전까지 유성기
음반의 가야금 병창은 모두 심씨
일가에서 녹음했다고 할 정도로 서울
장안사의 간판스타였다고 합니다.
-심화영 선생님한테 이렇게 전수를
받으시면서 심정순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을 것 같아요.
-할머니께서 이야기하시기를 그러니까
이따금 오는 손님 같은 분이셨다.
그러니까 서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셔서 가정에는 그 당시에 소홀하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씩 뵙는 동네 어른 같았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되게 낯설고 좀 그러셨던 것
같아요.
-(해설) 건강을 해친 심정순은 고향으로
돌아와 낙원식당을 운영했습니다.
-그 당시 낙원식당이 유명한 예인들이
드나드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항상 거쳐 가는.
저희 사선에 오시면 낙원식당을 거쳐서
서울로 이동하시고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또 낙원식당을 거쳐서 다른 지역으로
가시고.
예인들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했던
곳이에요.
-(해설) 홍성, 서산이 내포권 중고제의
소리라면 금강권 소리의 발원은
논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금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강가의
햇볕 고을 강경.
-조선 2대 포구, 조선 3대 시장으로 불릴
만큼 번성했던 강경은 포구 주변에
예인들이 많이 거주했다고 하죠?
-(해설) 과거 강경은 포구와 장시로 가장
번성해 다양한 문화가 꼽히는
도시였습니다.
이곳 강경 웅녀봉에서 태어난 김성욱
명창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해설) 산다는 것은 행과 불행이 돌고
도는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묵묵히
견뎌내는 일일까요?
김성옥은 10년간의 혹독한 수련으로 좋은
성음을 얻게 되었지만 예인의 꿈이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해설) 염계달과 함께 중고제의 시조로
손꼽히는 김성옥.
그는 와병 중에서도 끊임없이 소리를
연구하여 마침내 진양조를
만들어냈는데요.
진양조의 발견은 판소리사의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노래)
-(해설) 충청의 소리는 판소리의 효실
최선달로부터 누구도 닿지 못한 경지.
독보적인 소리를 만든 박만춘과 김성옥에
이어 중고제의 명맥을 잇는 심정순까지.
마치 금강의 물결처럼 흘러왔습니다.
-김성옥의 미완의 꿈은 아들 김정근과
손자 김창룡에게로 이어졌습니다.
단단한 뿌리 위에 꽃을 피웠습니다.
바로 문화예술의 고장 서천에서 말이죠.
-(해설) 무숙이타령의 대가로 불리는
김성옥의 아들 김정근은 김창룡을 낳고
훌륭한 소리꾼으로 키웁니다.
김창룡.
그게 바로 근대 5명창 중 한
사람입니다.
-김창룡 명창님 생가터 찾아왔는데
제가 도저히 못 찾겠어서.
-저기에 있습니다.
표지석도 있고.
-알고 계세요?
같이 가 주실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여기 표지석이 서 있는 데가 김창룡 씨
생가터입니다, 이게.
-(해설) 김창룡 명창은 워낙 성대가
좋아 여러 날 소리를 해도 목이 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영민의 벽소시고에는 한 번 소리하매
맑기가 옥퉁소를 부는 듯하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음반 추입을 많이 해 전해지는
소리도 많습니다.
-(해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중고제
마지막 소리꾼 김창룡.
그의 흔적은 오직 비석만이
대신합니다.
-(해설) 시간의 조각 속에 묻혀 있던
이름 하나.
지나가는 바람이 잠든 기억을
깨웁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곳에 와보니까 이동백 선생님의
어린 시절 모습은 어땠을까.
-선생님의 인터뷰를 보면 본인이
어머니와 백부 슬하에서 자랐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아마 백부님 슬하에서 또
어머니 슬하에서 어린 시절 뛰어놀면서
잘 보냈겠죠?
그리고 서당을 보냈는데 6살이나 7살
때 보냈을 때 글공부에 힘을 쓰지
않고 오며 가며 노래만 했대요.
그래서 걱정 많았다고 그럽니다.
-(해설) 부모님의 반대로 소리를
단념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몇 해를 그만두고 방황하다 결국
소리를 택했습니다.
-생가지 여기만 딱 보니까 아쉽죠?
-네.
-저쪽 보세요.
저기 회리산이라고 하는데 회리산
꼭대기쯤에 이동백 선생님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장소가 있습니다.
-그러면 가야죠.
-그럼 갑시다.
-(해설) 진짜 새소리보다 더 새소리
같은 소리를 구사해 이날치 이후
새타령을 가장 잘 부르는 명창으로
손꼽히는 괴물 소리꾼입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한 독보적인 성음의
소유자 이동백.
-그렇구나.
-윤아 씨는 몇 살에 소리 시작했죠?
-저는 좀 느지막히 시작해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했어요.
-그러면 15살.
-열다섯이요.
-늦지 않았는데.
-(해설) 판소리는 본래 자연의 소리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노래가 아닌
소리라고 하죠.
그래서 소리꾼들은 자연의 소리를 능가할
만한 성음을 닦는 일이 일생일대의
목표였는데요.
이동백도 소리를 얻기 위해 이 길을
올랐습니다.
-어떻게 이 길을 오가셨을까?
선생님, 안 힘드세요?
조심히 올라오세요.
-너무 힘들어요.
-저도 이렇게 힘든데 그 옛날에는 더 이
산이 험했을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냥 또 올라간 게 아니라 여기서
공부하기 위해 한 번 들어오면 석 달
정도 묵었다고 그러는데 등 위에다가
보리 서 말을 짊어지고 왔대요.
보리 서 말이면 한 20kg 될 것 같은데.
-대단하신 것 같아요, 이거.
-(해설) 잦은 안개로 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하여 이름 붙여진 희리산.
사계절 푸른 해송림이 반기는
곳입니다.
험한 산길을 30분을 걸어야만
독공터에 닿을 수 있습니다.
-굉장히 설레는 마음으로
또 올라가셨을...
-다 왔습니다.
-다 왔다, 다 왔다.
다 왔다.
-여기가 바로.
-드디어 도착했어요.
-이동백 선생님이 득음을 위해서
공부했던 독공터.
-이렇게.
-(해설) 김창용과 함께 중고제
명창으로 활약했던 이동백.
자신만의 색깔로 중고제를 발전시켜
온 명창인데요.
모두 자가 독공으로 이루어냈습니다.
-대단하죠?
큰 바위 속에 이런 굴이 있었던 거죠.
전국적으로 많은 명창들이 산재해
있었지만 이런 굴의 형태로 득음터가
남아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합니다.
그래서 아주 특별한 거죠.
-더욱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 안에서 이동백 선생님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밖을 향해서 소리를 막 질렀던
거예요.
굴 속에서 소리를 하면 우리가
연습실에서 소리하듯이.
-맞아요.
-자신의 소리를 명확히 들을 수가 있고
또 세밀한 소리까지 만들어 갈 수
있잖아요.
-자연 리버브, 자연 공간감을 느끼시면서
얼마나 수련에 임하셨을지 제가 감히
이렇게 느껴봅니다.
선생님, 오늘 이 득음터까지 왔으니 소리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
이때마참 어느 때 녹음방초 좋은 때~
여러 새들이 날아든다~
각 새 떼새가 들온다~
-어이!
-남품 조차 떨쳐~
구만장천에 대붕이~
문왕이 나겨시사 기산조양에 봉황이~
유보규인에 색기새 소직 전통 앵무새~
생증장안에 수고란 어여울 새 채란새~
금자를 뉘가 전허리 가인생사 기럭이~
-어이!
-(해설) 피나는 노력 끝에 마침내 입신의
경지에 이른 이동백은 경남에서
새타령으로 명성을 떨쳤고 서울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해설) 서울 한가운데.
국립정동극장은 제가 가끔
공연을 하러 가는 곳이기도 한데요.
이곳 야외 마당에는 중고제 최고의
스타였던 이동백 동상이 서 있습니다.
그는 왜 이곳에 서 있는 걸까요?
예인들의 주 활동 무대였던 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 원각사.
이곳에서 판소리를 주로 공연했는데요.
이동백은 원각사의 초대 단장이었습니다.
당시 창극 등을 무대에 올리며 새로운
공연 문화를 선도했던 원각사는 1914년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해설) 거의 한 세기가 흘러갈 무렵.
옛 역사를 회복하기 위해 원각사는
정동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 오직 소리 하나로
희망을 노래했던 이동백 명창.
그가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이유입니다.
공주에 있는 충청감영에서 명창 소리를
못 들으면 한양에 못 올라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리판이 흥성했던 중고제의
발원지.
팔도 예인들이 서로 실력을 겨루며 서울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판소리 문화의 중심지이자 중고제
판소리의 고장 공주.
도시의 흐르는 예술혼은 쉼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충청의 옛 소리, 중고제의 부활을 위해
다시 날갯짓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쉽게 느낄 수 있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심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노래)
우지 마라~
-얼씨구.
-(노래)
-암행어사 출두요!
-(노래) 두세 번 외는 소리
하날이 답싹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는 듯
수백명 구경꾼이 돌담이 무너지듯이
물결같이 흩어지니
-(노래)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로다
(노래)
어머니가 생겼구나
내 사랑이로다
어화둥둥 내 사랑이야
-얼씨구.
-(노래) 여보시오 농부님들
이 내 말을 들어보소
농부들 말 들어요
충청도라 허는디는
얼씨구
신산이 비친 곳이라
저 농부들도 상사소리를 맺이는디
각기 저정거리고 더렁거리세
상사디여
-결국 중고제라는 것도 판소리의 하나일
뿐인데 결국은 충청도에서 판소리 문화가
많아지는 게 좋고.
-저도 충청인으로서 항상 응원하고 저도
이 중고제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해보겠습니다.
-(함께) 감사합니다.
아리랑 아라리요 우리네 소리란다
아리랑 아라리요 충청의 소리란다
충청의 소리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