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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스페셜 - 대덕의 개척자들
등록일 : 2025-04-21 14:58:46.0
조회수 : 46
-3, 2, 엔진 점화.
-(해설) 식민지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 대한민국.
그 땅 위에 과학기술의 씨앗을 뿌리며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 온몸을 바친 개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땀과 노력은 생명을 품은 숲이 됐고 대덕을 대한민국의 과학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사람을 살린 기술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과학기술.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 K-사이언스의 날개가 됐습니다.
-(해설)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 풍경입니다.
-그게 95년 3월 1일이죠. 그게 한 거의 30년 전 아니겠어요?
-(해설) 30년 동안 매일 이 길을 걸어서 출근한 최성봉 박사.
그의 걸음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역사가 쓰였는데요.
초창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모습을 그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해설)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함께한 30년.
정지 궤도 위성의 개척자, 최성봉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해설) 대덕연구단지에 자리를 잡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항공 우주기술
개발로 국가 발전을 기여하는 항공 우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해설) 우주 관련 연구는 당시 우리나라가 도전하기엔 너무 크고 어려운 분야였는데요.
해외 유스 대학에서 관련 기술 연수를 시작하며 한국항공우주연구원도 우주 연구를 시작합니다.
-89년에 우리 최순달 교수님이 이끄셨던 학생들하고.
-(해설) 우리별 1호는 대한민국 최초의 인공위성인데요. 평균 연령 25살.
젊은 과학자들이 발사한 우리별 1호는 우리말 방송과 위성 사진을 보내며 우주
과학에 대한 국가적 관심과 우주 산업 활성화의 신호탄이 됐습니다.
-(해설) 인공위성 제작의 꿈을 안고 항공우주연구원에 들어온 젊은 과학자 최성봉.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는데요.
우리별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지만 우리나라는 독자적인 기술력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30여 년이 흐르며 우주 강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
최성봉 박사를 비롯한 개척자들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해설) 유장수 박사를 필두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도 다목적 실용 인공위성에 도전하는데요.
-(해설) 아리랑 1호는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 실용 인공위성인데요.
정밀 지도 제작과 해양환경 관측 등 효율적인 국토 관리에 필요한 자료들을
수집하다가 2008년 2월 20일 임무를 공식 종료했습니다.
30년 동안 여러 성과를 거두고 이제는 후배 과학자들을 지원하는 최성봉 박사.
유장수 박사에 의해 시작된 우리나라 인공위성의 역사가 후배 과학자들에 의해 계속 발전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해설) 아리랑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하고 새로운 과제를 맡았던 최성봉 박사.
더 발전한 다음 위성을 위한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해설) 최성봉 박사가 도전한 건 바로 정지 궤도 위성인데요.
정지 궤도는 인공위성의 주기가 지구의 자전주기와 같아서 지구에서 봤을 때
항상 정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위성을 말합니다.
특히 한반도와 그 주변을 집중적으로 관측해서 우리나라에 필요한 여러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수집하는데요.
그가 이런 정지 궤도 위성에 도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해설) 국내 최초로 개발한 정지궤도 위성 천리안 1호는 통신, 해양, 기상
등 세 가지 기능을 동시에 탑재해 24시간 내내 한반도 주변의 기상과
해양을 관측하고 위성 통신 시험 서비스를 제공했는데요.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일곱 번째 기상 관측 위성 보유국이 됐습니다.
지상국은 위성과 통신하기 위해 지상에 설치한 무선국입니다.
현재 위성의 운용 현황과 상태를 확인하고 후속 위성에 관한 회의도 최성봉 박사의 업무 중 하나인데요.
우주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수신하기 위해서는 지상국의 모니터링이 중요합니다.
-지금 궤도가 훨씬 높고요.
-여기 보면 중계기가 제일 문제가 되겠는데, 지금은. 중계기 온도 텔레메트리는 어때요?
-정상입니다.
-정상이에요? 지금 보니까 노란 불 뜬 건 없네요, 그렇죠?
-네.
-오케이.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노란색이나 빨간색으로 경고음과 함께 알람이 표시되는데요. 현재는 다 정상 상태입니다.
-우리가 궤도하고 주파수를 소유하게 되면 그 위성이 수명이 다할 때까지는 물론 소유해요.
그리고 위성이 수명이 다 된 다음에 유예기간을 3년을 주거든요.
그 유예기간이 끝난 다음에는 우리 게 아니에요.
다른 나라가 그걸 요청하면 거기에 배정해 줘야 해요.
그러면 뺏기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 후속 위성에 대한 계속도 그걸 감안해서 후속 위성 개발하고 있고 천리안 1호 위성도 바로
그런 의미에서 지금 궤도를 유지하고 있어요.
-(해설) 아직 임무가 남은 천리안 1호처럼 은퇴를 앞둔 최성봉 박사도 마지막까지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우주항공개발연구의 개척자로 살아온 30년.
그 시간이 우주강국 대한민국으로 완성되기를 바라며 연구원 구석구석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이게 싱크로 라이즈가 되어야 하지.
-최 박사님.
-설계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최 박사님.
-이게 누구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반가워요.
-두 분 다 건강해 보이시네.
-오랜만이에요.
-(해설) 함께 일했던 옛 동료를 만났는데요.
세월이 흘렀어도 어제처럼 생생한 추억을 싣고 시간은 과거로 달려갑니다.
-우리가 고난은 있었어요, 그렇죠?
-고난 중에서도 내가 오면서 생각해 보니까 사실 우리가 그때는 정부
예산을 받아서, 어렵게 받아서 예산은 있는데 우리가 기술은 없고 사업은
해야 하고 그래서 해외의 유능한 기업체를 찾아가서 갔잖아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돈은 있고 기술은 그들이 있으니까 만만치 않았다고요.
-사실 계약상의 갑은 우리인데.
-그러니까.
-실제 칼자루는, 기술적인 칼자루는 그 사람들이 잡고 있단 말이죠.
-그래서 그때도 최성봉 박사가 지혜롭게, 아마 속으로는 여러 가지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그랬을 거야.
그래도 지혜롭게 진짜 우리가 잘 넘겼어.
-설계 회의할 때마다 각자 다 열심히 문서 다 검토해서.
-그럼요.
-질문 철저하게 하고 그러면서 기술 다 얻어내고.
-그래, 그래.
-국내 최초의 정지궤도 위성인 통신해양기상위성의 명칭이 천리안으로 확정됐습니다.
-(해설) 천리안 1호는 끊임없는 도전 끝에 성공한 대한민국 우주 연구의 새로운 이정표였습니다.
-2년 동안 저희가 자식을 품은 것처럼 굉장히 애지중지 사랑하고 아꼈던 위성입니다.
-(해설) 그러나 발사에 성공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는데요.
-앞에 위성이 우리 위성하고 똑같은 건데 그게 문제가 많아서 자꾸 발사가 지연됐어요.
그러니까 저는 마음이, 속이 타는 거예요.
그래서 어쨌든 발사할 때 정말 눈물이 나는 거예요.
-발사 7분 전. 자동 시퀀스,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원, 투, 다운.
-거대한 로켓이 불기둥을 쏟아내며 힘차게 우주로 차올랐다.
-(해설) 눈물이 날 만큼 감격적인 발사 순간.
성공을 간절히 바라던 그때가 어제처럼 생생한데.
그 시절 사진을 보며 추억을 나누는 오래된 동료들.
언제 봐도 가슴 벅차고 행복한 순간입니다.
그렇게 함께 울고 웃었던 그들의 삶은 대한민국 항공우주연구에 역사가 됐습니다.
-(해설) 외롭고 고단한 개척자의 삶.
함께 울어 줄 동료가 있어서 그 어려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는데요.
그들이 걸어온 길은 후대 과학자들의 나침반이 되고 애국의 DNA를 다시 이어가는 연결고리가 될 것입니다.
-(해설) 후배 과학자와 얘기를 마치고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가는 최성봉 박사.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아서 미리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요.
30년 세월이 차곡차곡 상자 안에 담기고 있습니다.
그의 시선을 잡는 오래된 사진들.
사진 속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쉽사리 눈길을 거둘 수 없습니다.
눈물 나오려고 해.
-(해설) 항공우주 연구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 최초로 정지 궤도 위성 천리안 1호를 발사한 최성봉 박사.
고비가 있을 때마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며 진정한 과학자로 살았습니다.
그가 쏘아 올린 것은 단순한 위성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존심이었고.
세계를 향해 비상하는 대한민국의 미래였습니다.
30년간 몸담았던 연구실을 떠나지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인공위성과 함께 우주를 날고 있겠죠.
인류의 미래를 열어가는 우주 연구 분야.
개척자들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은 우주 강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정지 궤도 위성의 개척자, 최성봉이 있습니다.
-(해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이동 통신 분야를 개척한 한기철 박사.
그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통신은 국가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개인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분야지만 1970년대 우리나라 통신 사정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하지만 경제 성장과 함께 국민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전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요.
이러한 통신 수요 증가와 산업 발전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다양한 혁신 기술을 개발하며 한국의 통신 역사를 새로 썼는데요.
그 신화의 시작이 바로 TDX였습니다.
-(해설) 교환수가 상대방 번호를 연결해 주어야만 통화가 가능했던 시기.
이런 불편함을 해결해 준 것이 바로 TDX였습니다.
TDX의 개발로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면서 편리하게 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를 열리게 된 거죠.
-(해설) TDX 개발로 인해 전화 보급이 확산되며 가정에서는 1가구 1전화 시대가 가능해졌습니다.
또 시외 전화망과 국제 자동 전화 서비스가 개시되면서 통신 관련 산업도 크게 성장했는데요.
TDX를 개발한 한기철 박사는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다음 단계를 내다보며 새로운 도전을 합니다.
-(해설) 이동 통신 수요가 급증하면서 CDMA는 필수였습니다.
하지만 개발 과정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는데요.
기술의 불확실성에 따른 관계 기관들의 갈등 그리고 로열티 문제까지.
어느 것 하나 수월한 게 없었지만 한기철 박사는 세계 최초로 CDMA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합니다.
-(해설) 통신 장비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우리나라 위상을 바꾼 CDMA.
그 시절 함께 연구했던 동료를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인가요? 마치 미술관에 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마치 설치 미술을 보는 것 같고 이분은 과학자보다는 예술가 같으신데요.
-최 박사님, 여기 계셨구나. 오랜만입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잘 지내시고? 건강하시고?
-네.
-옛날에 우리가 휴대전화 전파 장애 그리고 전파에 대한 위험이 있는지를 연구했던 그 생각이 나서 오늘 이쪽에 한번 찾아왔어요.
-그러셨습니까? 소장님 덕분에 제가 이 일을 시작한 거 아닙니까?
-그렇죠.
-워낙 CDMA 하시면서 순기능도 중요하지만 역기능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죠.
-너 이제부터 역기능 해라.
그때 제가 숨어서 하는 일 별로 하기 싫다 그랬는데 그래도 이게 굉장히
국가적으로 중요하다고 하셔서 이 일을 진행하도록 하셔서 벌써 지금 한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렇죠.
-(해설) 이곳은 무선 전파의 역기능을 연구하는 곳인데요.
통화 품질을 위한 전파 장애와 사용자를 위한 전자파 노출량 등을 테스트하며
이동 통신 전반에 걸친 불안 요소들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신체 부위 중에서도 전자파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부분이 있고 적게 받는 부분도 있어요, 부위별로?
-그렇죠, 그거는 주파수에 따라 달라요.
-(해설) 그나저나 한 박사님 오랜만에 만나서도 연구 얘기만 하시네요.
그런 열정이 우리나라를 통신 강국으로 만든 원동력이겠죠?
-개인적으로 어디서 사석에서 만난 거 말고요.
연구소에서 이렇게 나란히 앉은 거는 10년이 넘은 거 같은데요.
-최 실장님 모시고는 저희 처음인 거예요.
-또 이렇게는 별로 친하지 않아서 오늘 이렇게 같이 대화하면.
-친합니다.
-친하네. 최 씨구나, 같은.
-최형도 박사님. 이우용 박사님 다 친합니다.
-선을 그리시면 안 되는데.
-죄송합니다.
-(해설) 오랜만에 뭉친 CDMA 용사들. 그러면 멋진 무용담도 들을 수 있는 건가요? 기대가 됩니다.
-다 죽어버려.
-결국 삽질로 해결하신 거네요.
-삽질을 했어요, 그때.
-(해설) 결국 삽질. 그렇게 문제 해결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신 박사님들 덕분에 우리 모두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거겠죠?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동고동락했던 대한민국 이동 통신 연구의 개척자들입니다.
-(해설) 항상 남보다 한 걸음 앞서 미래의 통신을 연구하던 한기철 박사.
그가 개발한 CDMA의 이동 전화는 3G와 4G로 이어지며 세계 어디에서도 자신의 휴대전화를 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아주 의미 있는 날입니다.
전기전자공학 전문가들의 국제 조직인 아이 트리플이 마이스톤에 우리나라 CDMA
상용화 기술이 등재된 걸 축하하는 자리인데요.
글로벌 ICT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릴 만큼 권위와 명예가 있는 상입니다.
-이번에는 CDMA 기술 개발에 그동안 참여해주신 분들께 감사패를 드리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해설) 이 상은 사회와 산업 발전에 공헌한 역사적 업적을 인정받는 의미입니다.
-감사패 한기철. 이하 감사 내용은 동일합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해설) 한 박사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우리나라를 이동 통신 강국으로 만든 개척자들.
모두 멋지십니다. 공식 행사가 끝나고 역사관을 둘러보는데요.
올해 4월 문을 연 이곳은 대한민국을 정보 통신 기술 강국으로 이끈 성과물과 연구 역사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한기철 박사 이름도 보이네요.
-여기서 뽑아낸 것이기 때문에.
-김대식 여기 있네요.
-여기가 없잖아.
-여기 있잖아, 여기, 여기.
-이름 찾기 하는 거예요?
-사인이 저거였네.
-조철회 박사 어디 있어요.
-이쪽에 어디에 있을 거예요.
-좀 크게 썼을 거야.
-이거 할 때 이런 거 귀찮게 하나 했는데 진짜 잘해놨어요.
-그렇죠, 이거밖에 안 남잖아요.
-본인들이 사인을 한 것이기 때문에.
-정말 몇 년 만에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됐는데 그렇게 모이다
보니까 반갑고 우리는 서로 간에 많은 도움을 줬던 좋은 관계를 가졌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고요.
-(해설) 오랜만에 연구원 나들이.
이곳저곳 둘러보고 사람들도 많이 만났는데 박사님 오늘 기분은 어떠셨나요?
-다시 여기로 오니까 옛날 생각이 나고요.
새롭다는 생각이, 새로운 생각들이 하나씩 하나씩 나네요.
-(해설) 비록 몸은 떠났지만 추억은 오랫동안 눈에 선하겠죠.
-지금도 기억되는 게 연구소 마지막 퇴직서를 쓰고 사인받는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걸 다 하고 마지막 차를 여기서 끌고 나가면서 이제 나가면
다음부터는 들어올 때 함부로 못 들어오는.
-(해설)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살아온 40년.
그리고 한발 앞서 미래를 준비한 개척자 한기철 박사.
그의 하루하루는 대한민국 이동 통신의 역사가 됐고 새로운 기술을 열어주는 이정표가 됐습니다.
-자신한테 되묻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정말로 과학자로서 정말로 행복하게 했는가.
나는 이것이 좋았고 이런 연구 생활 자체를 내가 즐겼다.
내가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 하면 나는 연구자가 되고 또 평생을 바치는 일을
다시 할 거라는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설) 누구보다 행복했던 디지털 이동 통신의 개척자.
그의 이름은 한기철입니다.
1960년대 국가적으로 과학 연구 투자가 확대되면서 국민 건강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생명 공학 연구도 시작됐습니다.
특히 1985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유전공학센터가 설립되면서 과학자들의 역할이 중요해졌는데요.
1987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유향숙 박사도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해설) 1990년 유전공학연구소가 대덕연구단지에 새롭게 터를 잡으며
본격적인 유전 공학 연구 시대가 열렸는데요.
그때 유향숙 박사도 대덕에 내려와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해설) 유향숙 박사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과학자들의 연구가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초창기 지어진 이 연구동은 수십 년 동안 한국 생명공학 연구원 과학자들의 땀과 노력이 담긴 역사 깊은 곳인데요.
오늘도 과학자들이 생명공학 연구에 여념이 없습니다.
유향숙 박사가 첫 연구를 시작한 곳도 바로 여기인데요.
오랜만이지만 기억은 생생합니다.
-몇 년 만에 오신 거죠.
-오래간만이죠. 그러니까 퇴임한 지 10여 년이 넘었으니까, 10년 됐을까요.
-(해설) 유향숙 박사가 쓰던 연구 장비들이 곳곳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해설) 유향숙 박사가 효모 분열 돌연변이 세포 연구를 통해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 세포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걸 밝혔는데요.
당시 이 연구는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핵심 사업 중 하나였습니다.
-(해설) G7 프로젝트는 1990년대 한국의 과학 기술을 선진 7개국 수준으로 올리고
국가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한 대규모 연구 개발 프로젝트입니다.
생명공학 프로젝트도 그중 하나였는데요.
유향숙 박사의 연구가 좋은 성과를 내면서 한국의 생명공학 분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습니다.
유향숙 박사의 손때가 묻어 있는 실험실.
지금은 한참 어린 후배 과학자들이 자리를 지키며 유향숙 박사의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일을 하시는데.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박사님?
-오늘은 무슨 일하고 계세요?
-오늘은 서브클로닝 하려고 PCR 지금 준비 중에 있었습니다.
-PCR하고. 잘 돼요?
-(해설) 오랜만에 방문한 실험실.
후배들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후배들도 애정 어린 조언을 하는 유향숙 박사의 말을 경청합니다.
-조금 큰 거였는데.
-(해설) 그런데 유 박사님, 연구실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나요?
-(해설) 유향숙 박사가 오래전 연구하던 흔적을 찾아보는 사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연구에 몰입하는 과학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유향숙 박사와 각별한 인연이 있다고 하는데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이에요.
-박사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웬일이세요, 여기는? 그러신 거죠, 뭐.
-벡터. 그때 그렇게 했죠.
-시작했죠. 했죠.
-(해설) 정경숙 박사는 유향숙 박사 지도로 박사 과정을 밟았는데요.
1990년대 사제 지간이자 동료 과학자로 함께 연구했던 두 사람입니다.
-계속 갖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이게...
-박사님, 이거 기억나세요?
-이게 뭐야. 옛날 슬라이드 아니야?
-맞아.
-맞아.
-다 만들어서. 이런 거 보신 적 있어요?
-없죠.
-없어요?
-OHP 본 적은 있는데.
-(해설) 오랜만에 옛이야기를 나누는데요. 유 박사님, 그때는 뭐가 제일 힘드셨나요?
-몇 달 걸리죠.
-그렇지, 아무것도 없었지.
-(해설) 힘든 환경에서도 유향숙 박사는 분열 효모를 통한 돌연변이 세포를 발견하며 국내 과학계에 큰 획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생명공학 연구의 흐름도 놓치지 않고 있었는데요.
-(해설) 인간게놈 프로젝트는 인간 DNA의 염기서열을 밝혀내며 유전병과 암 같은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됐는데요.
특히 유전체 연구의 밑바탕을 마련하며 많은 관심을 모았습니다.
-지금부터 위촉장 수여식을 거행하겠습니다.
-(해설)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정부가 추진했던 21세기 프론티어 연구 개발 사업.
이 프로젝트에 유향숙 박사의 유전체 연구도 선정됐는데요.
하지만 후발 주자로 인간 유전체 연구를 시작한 유향숙 박사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지난 94년부터 시범적으로 실시돼 오던 한국형 게놈 연구가 다음 달 본격 착수됩니다.
-한국형 게놈 연구는 크게 5개 분야로 돼 있지만 한국인에게 가장 많은 위암과
간암의 정복이라는 현실적인 과제로 좁혀집니다.
-3년 내지 5년 정도에는 저희가 이런 우리나라의 많은 질병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해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본관은 유향숙 박사가 한국형 유전체 연구를 하던 곳입니다.
오랜만에 유향숙 박사가 이곳을 방문했는데요.
그가 연구했던 내용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누구를 만나러 왔다는데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새로운 연구원이신 것 같은데.
-안녕하세요? 오신다고 말씀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유원백입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해설) 후배 연구자의 안내를 받으며 옛 추억이 가득한 연구실을 둘러보는데요.
빛은 바랬지만 아주 소중한 자료입니다. 그런데 유 박사님, 여기는 어떤 곳인가요?
-이 방은 우리가 인간 유전체 사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유전자 칩을 만드는 곳이였어요.
-빨간색.
-기능을 못 하는 유전자는 이렇게 파랗게 붙어요.
-파란색.
-그러면 그것을 가지면 예후도 알 수 있고 그다음에 이 사람이 수술 후에
서바이벌, 생존력이 얼마나 되는지 이런 것들도 판단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칩을
저희가 이 사업을 통해서 개발했는데 이 연구실에서 다.
-한국인의 몸에서 분리한 위암 원인균의 유전체 구조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완전히 해독됐습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대장암을 잡아낼 수 있는 기술을 찾아냈습니다.
-(해설) 유향숙 박사 팀은 국내 최초로 한국형 유전자 칩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한국인이 잘 걸리는 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진단 키트를 개발했는데요.
이를 통해 유전적인 질병을 미리 발견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국민 건강에 큰 도움을 줬습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우회 사무실.
여럿이 컴퓨터로 일하고 있는데 모두 연세가 좀 있어 보이는데요.
그중에 유향숙 박사도 보이네요.
-(해설) 연우회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을 은퇴한 과학자들이 모여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함께 봉사도 하고 연구도 하는 모임인데요.
그런데 박사님들, 은퇴한 이후에도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해설) 한국 과학 발전을 위해 아직도 고민하고 연구하는 은퇴 과학자들.
유 박사님은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해설) 가난한 나라에 보탬이 되고자
과학을 공부하고 미국에서의 연구 생활을 접고 귀국한 유향숙 박사.
한국인 유전체 연구의 초석을 다지며 암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저는 호기심을 가지고 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여태까지 살아왔고요.
그 호기심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을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설) 아직도 열정 가득한 한국형 유전체 연구 개척자.
그 이름은 유향숙입니다.
-(해설) 식민지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 대한민국.
그 땅 위에 과학기술의 씨앗을 뿌리며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 온몸을 바친 개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땀과 노력은 생명을 품은 숲이 됐고 대덕을 대한민국의 과학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사람을 살린 기술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과학기술.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 K-사이언스의 날개가 됐습니다.
-(해설)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 풍경입니다.
-그게 95년 3월 1일이죠. 그게 한 거의 30년 전 아니겠어요?
-(해설) 30년 동안 매일 이 길을 걸어서 출근한 최성봉 박사.
그의 걸음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역사가 쓰였는데요.
초창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모습을 그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해설)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함께한 30년.
정지 궤도 위성의 개척자, 최성봉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해설) 대덕연구단지에 자리를 잡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항공 우주기술
개발로 국가 발전을 기여하는 항공 우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해설) 우주 관련 연구는 당시 우리나라가 도전하기엔 너무 크고 어려운 분야였는데요.
해외 유스 대학에서 관련 기술 연수를 시작하며 한국항공우주연구원도 우주 연구를 시작합니다.
-89년에 우리 최순달 교수님이 이끄셨던 학생들하고.
-(해설) 우리별 1호는 대한민국 최초의 인공위성인데요. 평균 연령 25살.
젊은 과학자들이 발사한 우리별 1호는 우리말 방송과 위성 사진을 보내며 우주
과학에 대한 국가적 관심과 우주 산업 활성화의 신호탄이 됐습니다.
-(해설) 인공위성 제작의 꿈을 안고 항공우주연구원에 들어온 젊은 과학자 최성봉.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는데요.
우리별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지만 우리나라는 독자적인 기술력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30여 년이 흐르며 우주 강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
최성봉 박사를 비롯한 개척자들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해설) 유장수 박사를 필두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도 다목적 실용 인공위성에 도전하는데요.
-(해설) 아리랑 1호는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 실용 인공위성인데요.
정밀 지도 제작과 해양환경 관측 등 효율적인 국토 관리에 필요한 자료들을
수집하다가 2008년 2월 20일 임무를 공식 종료했습니다.
30년 동안 여러 성과를 거두고 이제는 후배 과학자들을 지원하는 최성봉 박사.
유장수 박사에 의해 시작된 우리나라 인공위성의 역사가 후배 과학자들에 의해 계속 발전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해설) 아리랑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하고 새로운 과제를 맡았던 최성봉 박사.
더 발전한 다음 위성을 위한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해설) 최성봉 박사가 도전한 건 바로 정지 궤도 위성인데요.
정지 궤도는 인공위성의 주기가 지구의 자전주기와 같아서 지구에서 봤을 때
항상 정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위성을 말합니다.
특히 한반도와 그 주변을 집중적으로 관측해서 우리나라에 필요한 여러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수집하는데요.
그가 이런 정지 궤도 위성에 도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해설) 국내 최초로 개발한 정지궤도 위성 천리안 1호는 통신, 해양, 기상
등 세 가지 기능을 동시에 탑재해 24시간 내내 한반도 주변의 기상과
해양을 관측하고 위성 통신 시험 서비스를 제공했는데요.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일곱 번째 기상 관측 위성 보유국이 됐습니다.
지상국은 위성과 통신하기 위해 지상에 설치한 무선국입니다.
현재 위성의 운용 현황과 상태를 확인하고 후속 위성에 관한 회의도 최성봉 박사의 업무 중 하나인데요.
우주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수신하기 위해서는 지상국의 모니터링이 중요합니다.
-지금 궤도가 훨씬 높고요.
-여기 보면 중계기가 제일 문제가 되겠는데, 지금은. 중계기 온도 텔레메트리는 어때요?
-정상입니다.
-정상이에요? 지금 보니까 노란 불 뜬 건 없네요, 그렇죠?
-네.
-오케이.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노란색이나 빨간색으로 경고음과 함께 알람이 표시되는데요. 현재는 다 정상 상태입니다.
-우리가 궤도하고 주파수를 소유하게 되면 그 위성이 수명이 다할 때까지는 물론 소유해요.
그리고 위성이 수명이 다 된 다음에 유예기간을 3년을 주거든요.
그 유예기간이 끝난 다음에는 우리 게 아니에요.
다른 나라가 그걸 요청하면 거기에 배정해 줘야 해요.
그러면 뺏기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 후속 위성에 대한 계속도 그걸 감안해서 후속 위성 개발하고 있고 천리안 1호 위성도 바로
그런 의미에서 지금 궤도를 유지하고 있어요.
-(해설) 아직 임무가 남은 천리안 1호처럼 은퇴를 앞둔 최성봉 박사도 마지막까지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우주항공개발연구의 개척자로 살아온 30년.
그 시간이 우주강국 대한민국으로 완성되기를 바라며 연구원 구석구석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이게 싱크로 라이즈가 되어야 하지.
-최 박사님.
-설계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최 박사님.
-이게 누구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반가워요.
-두 분 다 건강해 보이시네.
-오랜만이에요.
-(해설) 함께 일했던 옛 동료를 만났는데요.
세월이 흘렀어도 어제처럼 생생한 추억을 싣고 시간은 과거로 달려갑니다.
-우리가 고난은 있었어요, 그렇죠?
-고난 중에서도 내가 오면서 생각해 보니까 사실 우리가 그때는 정부
예산을 받아서, 어렵게 받아서 예산은 있는데 우리가 기술은 없고 사업은
해야 하고 그래서 해외의 유능한 기업체를 찾아가서 갔잖아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돈은 있고 기술은 그들이 있으니까 만만치 않았다고요.
-사실 계약상의 갑은 우리인데.
-그러니까.
-실제 칼자루는, 기술적인 칼자루는 그 사람들이 잡고 있단 말이죠.
-그래서 그때도 최성봉 박사가 지혜롭게, 아마 속으로는 여러 가지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그랬을 거야.
그래도 지혜롭게 진짜 우리가 잘 넘겼어.
-설계 회의할 때마다 각자 다 열심히 문서 다 검토해서.
-그럼요.
-질문 철저하게 하고 그러면서 기술 다 얻어내고.
-그래, 그래.
-국내 최초의 정지궤도 위성인 통신해양기상위성의 명칭이 천리안으로 확정됐습니다.
-(해설) 천리안 1호는 끊임없는 도전 끝에 성공한 대한민국 우주 연구의 새로운 이정표였습니다.
-2년 동안 저희가 자식을 품은 것처럼 굉장히 애지중지 사랑하고 아꼈던 위성입니다.
-(해설) 그러나 발사에 성공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는데요.
-앞에 위성이 우리 위성하고 똑같은 건데 그게 문제가 많아서 자꾸 발사가 지연됐어요.
그러니까 저는 마음이, 속이 타는 거예요.
그래서 어쨌든 발사할 때 정말 눈물이 나는 거예요.
-발사 7분 전. 자동 시퀀스,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원, 투, 다운.
-거대한 로켓이 불기둥을 쏟아내며 힘차게 우주로 차올랐다.
-(해설) 눈물이 날 만큼 감격적인 발사 순간.
성공을 간절히 바라던 그때가 어제처럼 생생한데.
그 시절 사진을 보며 추억을 나누는 오래된 동료들.
언제 봐도 가슴 벅차고 행복한 순간입니다.
그렇게 함께 울고 웃었던 그들의 삶은 대한민국 항공우주연구에 역사가 됐습니다.
-(해설) 외롭고 고단한 개척자의 삶.
함께 울어 줄 동료가 있어서 그 어려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는데요.
그들이 걸어온 길은 후대 과학자들의 나침반이 되고 애국의 DNA를 다시 이어가는 연결고리가 될 것입니다.
-(해설) 후배 과학자와 얘기를 마치고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가는 최성봉 박사.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아서 미리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요.
30년 세월이 차곡차곡 상자 안에 담기고 있습니다.
그의 시선을 잡는 오래된 사진들.
사진 속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쉽사리 눈길을 거둘 수 없습니다.
눈물 나오려고 해.
-(해설) 항공우주 연구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 최초로 정지 궤도 위성 천리안 1호를 발사한 최성봉 박사.
고비가 있을 때마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며 진정한 과학자로 살았습니다.
그가 쏘아 올린 것은 단순한 위성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존심이었고.
세계를 향해 비상하는 대한민국의 미래였습니다.
30년간 몸담았던 연구실을 떠나지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인공위성과 함께 우주를 날고 있겠죠.
인류의 미래를 열어가는 우주 연구 분야.
개척자들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은 우주 강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정지 궤도 위성의 개척자, 최성봉이 있습니다.
-(해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이동 통신 분야를 개척한 한기철 박사.
그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통신은 국가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개인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분야지만 1970년대 우리나라 통신 사정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하지만 경제 성장과 함께 국민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전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요.
이러한 통신 수요 증가와 산업 발전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다양한 혁신 기술을 개발하며 한국의 통신 역사를 새로 썼는데요.
그 신화의 시작이 바로 TDX였습니다.
-(해설) 교환수가 상대방 번호를 연결해 주어야만 통화가 가능했던 시기.
이런 불편함을 해결해 준 것이 바로 TDX였습니다.
TDX의 개발로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면서 편리하게 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를 열리게 된 거죠.
-(해설) TDX 개발로 인해 전화 보급이 확산되며 가정에서는 1가구 1전화 시대가 가능해졌습니다.
또 시외 전화망과 국제 자동 전화 서비스가 개시되면서 통신 관련 산업도 크게 성장했는데요.
TDX를 개발한 한기철 박사는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다음 단계를 내다보며 새로운 도전을 합니다.
-(해설) 이동 통신 수요가 급증하면서 CDMA는 필수였습니다.
하지만 개발 과정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는데요.
기술의 불확실성에 따른 관계 기관들의 갈등 그리고 로열티 문제까지.
어느 것 하나 수월한 게 없었지만 한기철 박사는 세계 최초로 CDMA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합니다.
-(해설) 통신 장비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우리나라 위상을 바꾼 CDMA.
그 시절 함께 연구했던 동료를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인가요? 마치 미술관에 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마치 설치 미술을 보는 것 같고 이분은 과학자보다는 예술가 같으신데요.
-최 박사님, 여기 계셨구나. 오랜만입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잘 지내시고? 건강하시고?
-네.
-옛날에 우리가 휴대전화 전파 장애 그리고 전파에 대한 위험이 있는지를 연구했던 그 생각이 나서 오늘 이쪽에 한번 찾아왔어요.
-그러셨습니까? 소장님 덕분에 제가 이 일을 시작한 거 아닙니까?
-그렇죠.
-워낙 CDMA 하시면서 순기능도 중요하지만 역기능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죠.
-너 이제부터 역기능 해라.
그때 제가 숨어서 하는 일 별로 하기 싫다 그랬는데 그래도 이게 굉장히
국가적으로 중요하다고 하셔서 이 일을 진행하도록 하셔서 벌써 지금 한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렇죠.
-(해설) 이곳은 무선 전파의 역기능을 연구하는 곳인데요.
통화 품질을 위한 전파 장애와 사용자를 위한 전자파 노출량 등을 테스트하며
이동 통신 전반에 걸친 불안 요소들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신체 부위 중에서도 전자파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부분이 있고 적게 받는 부분도 있어요, 부위별로?
-그렇죠, 그거는 주파수에 따라 달라요.
-(해설) 그나저나 한 박사님 오랜만에 만나서도 연구 얘기만 하시네요.
그런 열정이 우리나라를 통신 강국으로 만든 원동력이겠죠?
-개인적으로 어디서 사석에서 만난 거 말고요.
연구소에서 이렇게 나란히 앉은 거는 10년이 넘은 거 같은데요.
-최 실장님 모시고는 저희 처음인 거예요.
-또 이렇게는 별로 친하지 않아서 오늘 이렇게 같이 대화하면.
-친합니다.
-친하네. 최 씨구나, 같은.
-최형도 박사님. 이우용 박사님 다 친합니다.
-선을 그리시면 안 되는데.
-죄송합니다.
-(해설) 오랜만에 뭉친 CDMA 용사들. 그러면 멋진 무용담도 들을 수 있는 건가요? 기대가 됩니다.
-다 죽어버려.
-결국 삽질로 해결하신 거네요.
-삽질을 했어요, 그때.
-(해설) 결국 삽질. 그렇게 문제 해결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신 박사님들 덕분에 우리 모두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거겠죠?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동고동락했던 대한민국 이동 통신 연구의 개척자들입니다.
-(해설) 항상 남보다 한 걸음 앞서 미래의 통신을 연구하던 한기철 박사.
그가 개발한 CDMA의 이동 전화는 3G와 4G로 이어지며 세계 어디에서도 자신의 휴대전화를 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아주 의미 있는 날입니다.
전기전자공학 전문가들의 국제 조직인 아이 트리플이 마이스톤에 우리나라 CDMA
상용화 기술이 등재된 걸 축하하는 자리인데요.
글로벌 ICT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릴 만큼 권위와 명예가 있는 상입니다.
-이번에는 CDMA 기술 개발에 그동안 참여해주신 분들께 감사패를 드리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해설) 이 상은 사회와 산업 발전에 공헌한 역사적 업적을 인정받는 의미입니다.
-감사패 한기철. 이하 감사 내용은 동일합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해설) 한 박사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우리나라를 이동 통신 강국으로 만든 개척자들.
모두 멋지십니다. 공식 행사가 끝나고 역사관을 둘러보는데요.
올해 4월 문을 연 이곳은 대한민국을 정보 통신 기술 강국으로 이끈 성과물과 연구 역사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한기철 박사 이름도 보이네요.
-여기서 뽑아낸 것이기 때문에.
-김대식 여기 있네요.
-여기가 없잖아.
-여기 있잖아, 여기, 여기.
-이름 찾기 하는 거예요?
-사인이 저거였네.
-조철회 박사 어디 있어요.
-이쪽에 어디에 있을 거예요.
-좀 크게 썼을 거야.
-이거 할 때 이런 거 귀찮게 하나 했는데 진짜 잘해놨어요.
-그렇죠, 이거밖에 안 남잖아요.
-본인들이 사인을 한 것이기 때문에.
-정말 몇 년 만에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됐는데 그렇게 모이다
보니까 반갑고 우리는 서로 간에 많은 도움을 줬던 좋은 관계를 가졌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고요.
-(해설) 오랜만에 연구원 나들이.
이곳저곳 둘러보고 사람들도 많이 만났는데 박사님 오늘 기분은 어떠셨나요?
-다시 여기로 오니까 옛날 생각이 나고요.
새롭다는 생각이, 새로운 생각들이 하나씩 하나씩 나네요.
-(해설) 비록 몸은 떠났지만 추억은 오랫동안 눈에 선하겠죠.
-지금도 기억되는 게 연구소 마지막 퇴직서를 쓰고 사인받는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걸 다 하고 마지막 차를 여기서 끌고 나가면서 이제 나가면
다음부터는 들어올 때 함부로 못 들어오는.
-(해설)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살아온 40년.
그리고 한발 앞서 미래를 준비한 개척자 한기철 박사.
그의 하루하루는 대한민국 이동 통신의 역사가 됐고 새로운 기술을 열어주는 이정표가 됐습니다.
-자신한테 되묻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정말로 과학자로서 정말로 행복하게 했는가.
나는 이것이 좋았고 이런 연구 생활 자체를 내가 즐겼다.
내가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 하면 나는 연구자가 되고 또 평생을 바치는 일을
다시 할 거라는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설) 누구보다 행복했던 디지털 이동 통신의 개척자.
그의 이름은 한기철입니다.
1960년대 국가적으로 과학 연구 투자가 확대되면서 국민 건강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생명 공학 연구도 시작됐습니다.
특히 1985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유전공학센터가 설립되면서 과학자들의 역할이 중요해졌는데요.
1987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유향숙 박사도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해설) 1990년 유전공학연구소가 대덕연구단지에 새롭게 터를 잡으며
본격적인 유전 공학 연구 시대가 열렸는데요.
그때 유향숙 박사도 대덕에 내려와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해설) 유향숙 박사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과학자들의 연구가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초창기 지어진 이 연구동은 수십 년 동안 한국 생명공학 연구원 과학자들의 땀과 노력이 담긴 역사 깊은 곳인데요.
오늘도 과학자들이 생명공학 연구에 여념이 없습니다.
유향숙 박사가 첫 연구를 시작한 곳도 바로 여기인데요.
오랜만이지만 기억은 생생합니다.
-몇 년 만에 오신 거죠.
-오래간만이죠. 그러니까 퇴임한 지 10여 년이 넘었으니까, 10년 됐을까요.
-(해설) 유향숙 박사가 쓰던 연구 장비들이 곳곳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해설) 유향숙 박사가 효모 분열 돌연변이 세포 연구를 통해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 세포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걸 밝혔는데요.
당시 이 연구는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핵심 사업 중 하나였습니다.
-(해설) G7 프로젝트는 1990년대 한국의 과학 기술을 선진 7개국 수준으로 올리고
국가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한 대규모 연구 개발 프로젝트입니다.
생명공학 프로젝트도 그중 하나였는데요.
유향숙 박사의 연구가 좋은 성과를 내면서 한국의 생명공학 분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습니다.
유향숙 박사의 손때가 묻어 있는 실험실.
지금은 한참 어린 후배 과학자들이 자리를 지키며 유향숙 박사의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일을 하시는데.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박사님?
-오늘은 무슨 일하고 계세요?
-오늘은 서브클로닝 하려고 PCR 지금 준비 중에 있었습니다.
-PCR하고. 잘 돼요?
-(해설) 오랜만에 방문한 실험실.
후배들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후배들도 애정 어린 조언을 하는 유향숙 박사의 말을 경청합니다.
-조금 큰 거였는데.
-(해설) 그런데 유 박사님, 연구실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나요?
-(해설) 유향숙 박사가 오래전 연구하던 흔적을 찾아보는 사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연구에 몰입하는 과학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유향숙 박사와 각별한 인연이 있다고 하는데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이에요.
-박사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웬일이세요, 여기는? 그러신 거죠, 뭐.
-벡터. 그때 그렇게 했죠.
-시작했죠. 했죠.
-(해설) 정경숙 박사는 유향숙 박사 지도로 박사 과정을 밟았는데요.
1990년대 사제 지간이자 동료 과학자로 함께 연구했던 두 사람입니다.
-계속 갖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이게...
-박사님, 이거 기억나세요?
-이게 뭐야. 옛날 슬라이드 아니야?
-맞아.
-맞아.
-다 만들어서. 이런 거 보신 적 있어요?
-없죠.
-없어요?
-OHP 본 적은 있는데.
-(해설) 오랜만에 옛이야기를 나누는데요. 유 박사님, 그때는 뭐가 제일 힘드셨나요?
-몇 달 걸리죠.
-그렇지, 아무것도 없었지.
-(해설) 힘든 환경에서도 유향숙 박사는 분열 효모를 통한 돌연변이 세포를 발견하며 국내 과학계에 큰 획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생명공학 연구의 흐름도 놓치지 않고 있었는데요.
-(해설) 인간게놈 프로젝트는 인간 DNA의 염기서열을 밝혀내며 유전병과 암 같은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됐는데요.
특히 유전체 연구의 밑바탕을 마련하며 많은 관심을 모았습니다.
-지금부터 위촉장 수여식을 거행하겠습니다.
-(해설)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정부가 추진했던 21세기 프론티어 연구 개발 사업.
이 프로젝트에 유향숙 박사의 유전체 연구도 선정됐는데요.
하지만 후발 주자로 인간 유전체 연구를 시작한 유향숙 박사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지난 94년부터 시범적으로 실시돼 오던 한국형 게놈 연구가 다음 달 본격 착수됩니다.
-한국형 게놈 연구는 크게 5개 분야로 돼 있지만 한국인에게 가장 많은 위암과
간암의 정복이라는 현실적인 과제로 좁혀집니다.
-3년 내지 5년 정도에는 저희가 이런 우리나라의 많은 질병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해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본관은 유향숙 박사가 한국형 유전체 연구를 하던 곳입니다.
오랜만에 유향숙 박사가 이곳을 방문했는데요.
그가 연구했던 내용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누구를 만나러 왔다는데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새로운 연구원이신 것 같은데.
-안녕하세요? 오신다고 말씀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유원백입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해설) 후배 연구자의 안내를 받으며 옛 추억이 가득한 연구실을 둘러보는데요.
빛은 바랬지만 아주 소중한 자료입니다. 그런데 유 박사님, 여기는 어떤 곳인가요?
-이 방은 우리가 인간 유전체 사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유전자 칩을 만드는 곳이였어요.
-빨간색.
-기능을 못 하는 유전자는 이렇게 파랗게 붙어요.
-파란색.
-그러면 그것을 가지면 예후도 알 수 있고 그다음에 이 사람이 수술 후에
서바이벌, 생존력이 얼마나 되는지 이런 것들도 판단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칩을
저희가 이 사업을 통해서 개발했는데 이 연구실에서 다.
-한국인의 몸에서 분리한 위암 원인균의 유전체 구조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완전히 해독됐습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대장암을 잡아낼 수 있는 기술을 찾아냈습니다.
-(해설) 유향숙 박사 팀은 국내 최초로 한국형 유전자 칩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한국인이 잘 걸리는 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진단 키트를 개발했는데요.
이를 통해 유전적인 질병을 미리 발견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국민 건강에 큰 도움을 줬습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우회 사무실.
여럿이 컴퓨터로 일하고 있는데 모두 연세가 좀 있어 보이는데요.
그중에 유향숙 박사도 보이네요.
-(해설) 연우회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을 은퇴한 과학자들이 모여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함께 봉사도 하고 연구도 하는 모임인데요.
그런데 박사님들, 은퇴한 이후에도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해설) 한국 과학 발전을 위해 아직도 고민하고 연구하는 은퇴 과학자들.
유 박사님은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해설) 가난한 나라에 보탬이 되고자
과학을 공부하고 미국에서의 연구 생활을 접고 귀국한 유향숙 박사.
한국인 유전체 연구의 초석을 다지며 암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저는 호기심을 가지고 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여태까지 살아왔고요.
그 호기심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을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설) 아직도 열정 가득한 한국형 유전체 연구 개척자.
그 이름은 유향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