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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스페셜 - 지도에 없는 이야기, 파로호의 비밀

등록일 : 2025-07-14 11:22:51.0
조회수 : 53
-(해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수많은 이들의 희생.
-(해설) 지금의 나를 키운 건 수많은 이들의 염원.
끈질기게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해설) 수면 아래 가라앉은 그날의 이야기.
지키기 위해 죽어갔고 지키기 위해 살아야 했던 나의 삶, 우리의 역사.
-(해설) 그렇게 살아남았기에 다시 삶은 계속된다.
-(해설) 누군가에게는 외딴섬.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
-(해설) 가만히 귀 기울이면 호수 깊숙이 가라앉은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익숙해졌다고 그 일이 쉬워지는 건 아니다.
84살의 집배원 김상준 씨가 매일 아침 오가는 길.
벌써 20년 넘게 이 길을 오르내리고 있지만 한시도 긴창을 늦츨 수는 없다.
우편을 배달하는 곳은 그만큼 멀고 험하다.
-(해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때론 세차게 내리꽂은 폭우를 뚫고 때로는
아슬아슬한 빙판길을 미끄러지며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으로 향했다.
우체국에서 차로 한 시간. 다시 배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육지 위의 섬.
김상준 씨는 화전민인 아버지를 따라 6살 때 처음 이곳에 왔다.
그동안 강산이 7번 바뀌었지만 마을을 떠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곳이 곧 김상준 씨의 삶이다.
-고생이 많습니다, 형님.
-안녕하세요? 별일 없어요?
-별일 없습니다. 자주 놀러 오시고 그러시지. 바쁘신가 봐요.
-요즘 고추 심느라고.
-고추 심느라고요.
-(해설) 마을 주민 모두가 형, 동생 하는 사이.
-내일 또 뵙시다, 형님.
-내일은 노는 날이고.
-내일은 노는 날이에요? 그럼 화천이나 나가요, 나하고.
-그래.
-소주 한잔하게요.
-(해설) 비수구미 마을에는 김상준 씨를 포함해 40여 가구가 살고 있지만 가까운 이웃이라고 해도 얼굴 보기는 힘들다.
바로 옆집도 배를 타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물설고 낯선 이들은 할 수 없는 일.
-(해설) 20kg짜리 쌀가마의 무게가 버거워도 마음 편히 내려놓을 수는 없다.
20여 년 전 마을 이장을 하면서 처음 집배원 일을 시작했는데 이장을 그만둔
지 한참을 지났건만 선뜻 대신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선량한 마음만으로 짊어지기에는 그 짐이 너무 무겁고 고되다.
-나도 지금 무릎이 슬슬 아프기 시작해, 이쪽 다리가, 안 그랬었는데.
-지금 아끼셔야 돼.
-안 그랬었는데 올해부터 그래, 올해부터.
-오래오래는 하시면 안 돼, 여기가 너무.
-이장님 없으면 아주 큰일 나시겠어요.
-큰일 나요, 그래서 안 돼. 언젠가는 다른 이장이 나가 했다가 그 이장이 또 포기하더라고.
여간해선 못해요, 다 이렇게 올라다니는 길인데.
-여기 사장님이 주셨어.
-왜요?
-여기 오르내리락.
-힘드신다고 안고.
-무거운 거 안고 다니고 그러니까 안타까우셨는지 이걸 주시더라고, 이걸로 지고 다니라고. 아주 세상 좋아.
-(해설) 마을 이름인 비수구미는 신비로운 물이 빚은 아홉 가지 아름다운 경치를 뜻한다.
이방인의 발길이 닿기 힘들어 지금도 오지 중의 오지라 불리는 곳.
김상준 씨가 아니면 뱃길과 산길을 왕복 3시간 넘게 달려야 택배 하나를 받아볼 수 있다.
-이거 하나 찾으려고 나갔다 오려면 기름값만 해도 보통 2만 원.
-그러면 수고비 받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오는 길에 갖다주는 거고.
-(해설) 이번 배달은 집배원 업무가 아닌 개인적인 부탁이다.
-이거 왜 이렇게 포장을 허술하게 했지?
-그러니까, 가서 참외 하나 깎아 먹고 가.
-허술해.
-(해설) 오는 길에 갖다주는 것 치곤 제법 품이 많이 들지만
비수구미에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싫은 내색 한번 한 적이 없다.
-누리끼리 엄청 나.
-(해설) 이젠 번잡한 도시가 오히려 낯설다.
-한 동네 살면서 이렇게 붙어 살면 좋은데.
-가깝게 살면 왔다 갔다 하면 좋은데.
-우리 집사람.
-(해설) 한 동네 살아도 커다란 호수에 가로막혀 왕래가 쉽지 않은 이곳에서
마을 주민과 바깥세상을 이어주는 연골고리.
-(해설) 비수구미 마을이 처음부터 오지는 아니었다.
산속에 바다라 불리는 파로호가 생기고 마을로 가는 길이 물속에 잠기면서
사람들로 북적이던 육지는 순식간에 외딴섬처럼 변해버렸다.
파로호 한가운데는 삼거리가 있다.
-(해설) 이정표 하나 없는 물 위.
-(해설) 지금은 뱃길을 일컫는 삼거리지만 파로호가 생기기 전 이
아래에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진짜 삼거리가 있었다.
화천 최고의 번화가임을 상징하는 면사무소와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학교.
돌담으로 둘러싼 소박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거리는 파로호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해설) 1200가구 1만 5000여 명이 살아가던 터전 위로 물이 차오르면서 생긴 호수가 바로 파로호다.
파로호가 탄생한 건 화천댐이 만들어지면서부터다. 해발 1000m.
험준한 산자락에 화천댐을 건설하고 그 안에 10억 톤의 북한강 물을 가두면서
길이 21km에 달하는 인공 호수 파로호가 탄생했다.
이 거대한 댐은 철골 콘크리트로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댐이다.
화천댐이 첫 삽을 뜬 건 일제강점기인 1939년.
대륙 침략을 꾀하던 일본은 무기를 만드는 군수 공장에 전력을 공급할 목적으로 화천댐을 건설한다.
-(해설) 전국에서 매일 3000여 명이 공사 현장에 투입됐다.
그중에는 강제 징용된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해설) 댐 공사 현장에는 매일같이 시신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넘쳐나는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댐 인근에 화장장을 2개나 가동했을 정도다.
-(해설) 1939년부터 1944년까지 화천댐은 6년의 공사 기간 동안 1000여 명의 사망자를 낸 끝에 비로소 완공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파로호는 화천저수지로 불렸다.
깨트릴 파, 오랑캐 호,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이름이 붙은 건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였다.
-(해설)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중공군의 인해 전술로 열세에 몰려 있던
국군과 UN군이 어렵사리 서울을 재탈환하고 승기를 잡아가던 때였다.
캄캄한 자정 무렵 적의 역습이 시작됐다.
유엔군의 북상을 저지하기 위해 북한과 중공군이 화천댐의 수문을 기습적으로 개방한 것이다.
순식간에 하천의 수위가 2m나 상승했다.
아군의 장비가 물에 떠내려갔고 전력을 보충해 줄 보급선은 차단됐다.
-(해설) 얼마 뒤에는 남진하는 중공군이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댐 수문을 닫아 수위를 낮춰버린다.
화천댐은 반격을 계획하던 유엔군에게 최대 걸림돌이 되었다.
-(해설) 결국 동해상에 정박해 있는 미군 함정에 긴급 명령이 떨어진다.
화천댐이 적의 수중에 있는 한 전쟁에서의 승리를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곧장 미 해군 폭격기가 화천댐을 향해 비행을 시작한다.
이들에게 떨어진 작전 명령.
-(해설) 이번에는 어뢰를 실은 8대의 미군 폭격기가 공격에 나섰다.
화천댐은 남과 북 모두에게 꼭 필요한 전략적 요충지.
적의 손에 빼앗긴 채로 역공을 당하느니 차라리 폭파를 해서라도 적의 수궁을 막는 게 시급했다.
세계 기네스북에도 등재될 정도로 전무후무한 그날의 기록.
험난한 산세를 뚫고 비행을 하던 폭격기는 수면 위로 급강하하면서 총 여덟 발의 어뢰를 투하한다.
그중 여섯 발이 댐에 명중. 두 개의 수문을 폭파하면서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이 난다.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어뢰를 사용한 세계 최초이자 마지막 기록이다.
-이때 미 해군에서 투입한 비행기를 보면 AD 스카이레이더라는 기종이 있는데 이
기종이 폭탄 싣고 공격도 가능하고 또 이게 2차 세계대전 말기에 등장한 거라서
군함을 공격하기 위해서 어뢰를 탑재할 수 있습니다.
어뢰는 배를 공격하는 것이다 보니까 수면 가까이에 떨어져서 수면 가까이에서 나가서 배를 타격하는 거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수문 공격하는 것이랑 좀 비슷하죠.
이게 미국 해군이 공식적으로 어뢰를 사용한 마지막 작전이었습니다.
-(해설) 이때 폭파된 수문 사이로 물줄기가 터지면서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된다.
모든 전선에 걸쳐 아군의 총반격이 시작됐다.
퇴각하는 적을 쫓아 북진하면서 화천댐을 둘러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해설) 수세에 몰린 적은 도망칠 곳도 없었다.
뒤에는 아군이, 앞에는 파로호가 버티고 있었다.
-(해설) 사흘 밤낮으로 벌어진 전투 끝에 중국은 세계사단의 심장부에 일격을 가하며 국군은 대승을 거둔다.
-(해설) 한국 전쟁의 물꼬를 바꾼 전투.
덕분에 화천댐을 적에게 빼앗기지 않고 지켜낼 수 있었다.
지금도 화천댐에는 그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만조 깊은 곳에 길게 뻗은 통로.
감사랑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콘크리트 댐에 부식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물이 새는 틈은 없는지 확인하고 여러 가지 측정 기구를 보관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해설) 밖에서는 목숨을 건 전투가 한창일 때 살기 위해 이곳에 숨어든
중공군은 이미 패배를 직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해설) 현대판 살수대첩으로 불리는 파로호 전투는 푸른 호수를 핏빛으로 물들이면서 막을 내린다.
전진하는 군인들도, 피난을 가는 피난민들도 파로호에서 풍기는 시체 썩는
냄새 때문에 마늘로 코를 막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해설) 뺏고 뺏기기를 반복하면서 한국전쟁 동안 파로호에서는 무려 5번의 격전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아군 5000여 명과 중공군 3만 8000여 명이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천 저수지가 파로호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중공군을 대파한 국군의 노고를 치하하며 직접 하사한 이름.
파로호는 이승만 대통령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해설) 파로호 전투는 한마디로 화천수력발전소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연백평야를 내주더라도 화천수력발전소만큼은 절대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특명까지 내렸다.
-(해설) 화천댐의 낙차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화천수력발전소는 전력난에
시달리던 우리나라 에너지 공급의 핵심 축이었다.
하지만 해방과 함께 남북이 갈리면서 화천발전소는 북한에 속하게 된다.
문제는 북한이 예고도 없이 화천발전소의 전력을 차단하면서 발생했다.
일명 5.14 단전이라 불리는 그날의 사건으로 남한은 심각한 전력난을 겪게 된다.
서울과 수도권까지 전력을 공급하던 화천발전소가 북한 치하에 들어간 건 남한으로서는 치명적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이승만 대통령은 화천발전소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탈환해야만 했다.
-(해설) 한국전쟁에서 화천댐을 차지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날의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 지금도 매년 6월이면 파로호 전투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린다.
한국전쟁의 기세를 바꿔놓을 만큼 큰 승리였지만 아군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파로호에서 전사한 5000명의 군인은 누군가의 아들이자 형제, 아버지였으며 살아남은 이들의 전우였다.
-(해설) 세월이 흐르면서 전쟁을 기억하는 이들은 점점 사라졌지만 파로호는 여전히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과거와 현재.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곳.
숱한 희생을 딛고 피로 지켜낸 파로호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다.
화천댐과 화천수력발전소가 어디 있는지 모르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 남긴
뼈아픈 역사를 몰라도 파로호라는 이름만큼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인공 호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빼어난 자연 풍광.
거대한 자연 앞에서 사람들은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자연은 사람들과 더불어 오늘을 살아간다.
지난 수십 년간 외지인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비밀의 숲길.
수달길이라 이름 붙여진 이곳은 작년 여름에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하늘 높이 치솟은 아름드리 소나무와 계절마다 모습을 바꾸는 활엽수 군락이
원실인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
왕복 10km에 달하는 수달길은 외부에 공개된 지 1년 만에 트레킹 명소로 입소문이 났다.
-(해설) 수달길을 걷다가 운이 좋으면 진짜 야생 수달을 만날 수도 있다.
야생에서 구조된 수달 10여 마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수달길이 시작되는 관문, 한국수달연구센터다.
하천의 먹이사슬 제일 꼭대기에 있는 포식자.
수달은 우리나라 대표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이다.
-(해설) 이곳에서 보호하고 있는 수달은 야생 적응 훈련을 거쳐 자연으로 방사된다.
수달 몸에 부착한 추적기로 꾸준히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수달연구센터의 일이다.
-이건 FM 방식으로 된 발신기에서 나는 소리를 주파수를 추적해서 수달이 있는
곳을 위치를 확인하는 그런 장치입니다.
-(해설) 추적기로 반경 1km 내외에 있는 수달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신호가 갑자기 사라질 때가 있다.
-저희가 방사를 하고 그 위치에 민통선이, DMZ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철책 앞까지 가서 수신을 했었는데 그 수신이 되다가 사라졌거든요.
북한강, 파로호 같은 경우는 금강산댐이랑 연결되지 않습니까?
그 물줄기를 따라서 충분히 북한으로 갈 수 있죠.
-(해설) 38선에 가로막혀 있어 사람은 갈 수 없지만 수달은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길.
-(해설) 남과 북을 오가는 수달이 파로호를 대표하는 명물이 된 건 풍부한 먹이 때문이다.
파로호는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김우곤 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3대째 낚시터를 운영하고 있다.
-저희 할아버지가 젊으셨을 때 낚시를 엄청 좋아하셔서 강원도 전역을 다니면서
낚시를 하셨는데 여기 어구말이라고 하거든요, 월명리에.
여기가 고기가 제일 잘 나와서 이곳에서 낚시를 하시다가 이렇게 터전을 잡게 되셨어요.
-(해설) 1968년부터 지금까지 한자리에서 대물림하며 지켜온 삶의 터전.
-(해설) 낚시꾼들 사이에서 파로호는 대물 천국이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했다.
낚시터마다 문전성시.
대물 잉어와 뱀장어가 자주 잡힌다고 소문이 나면서 서울에서 낚시꾼을 태운
전세버스만 하루에 수십 대씩 오고 갔다.
-(해설) 하지만 파로호 상류에 새로 댐이 만들어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1989년에 완공된 평화의 댐이다.
북한에 있는 금강산댐에서 갑자기 물을 방류할 경우를 대비해 평화의 댐을
지으면서 하류에 있는 파로호의 물을 모두 다 빼버린 것이다.
1944년 화천댐이 완공된 이래 처음으로 바닥을 드러낸 파로호.
-(해설)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던 어부들이 어업을 포기하고 또래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날 때도 김우곤 씨는 이곳에 남았다.
-(해설) 파로호를 지키고 있는 또 한 사람.
여기를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해설) 야생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려워 평생 한 번 보기 힘들다는 꽃.
주머니처럼 생긴 입술 모양의 꽃부리가 요강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은 광릉요강꽃이다.
멸종위기 1급으로 우리나라를 통틀어 겨우 2000개체만 남아 있다는 희귀종인데
그중 절반이 장윤일 씨의 꽃밭에 지천으로 피어 있다.
-(해설) 평화의 댐 공사장에서 우연히 발견해 지극정성으로 키운 게 벌써 40년 가까이 됐다.
이곳에서 난 풀 한 포기도 허투루 보지 않는 마음이 활짝 꽃을 피운 셈이다.
지금의 파로호를 만든 건 이 땅에서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의 역사다.
파로호가 생기면서 수면 아래에 고향을 두고 떠나야 했던 사람들.
서슬퍼런 시기를 눈물로 견디고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목숨을 내던져가며 파로호를 지켰던 이들의 바람.
계절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어도 파로호는 그 푸른 물속에 이들의 이야기를 켜켜이 쌓아두고 있다.
파로호의 시작이자 존재 이유인 화천댐.
물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화천댐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해로 81살을 맞이한 화천댐에는 그사이 5개의 구멍이 더 생겼다.
-북괴의 금강산댐 건설 흉계를 규탄하는 분노의 함성이 전국에 퍼져갑니다.
-(해설) 북한이 금강산댐에서 기습적으로 방류한 물은 평화의 댐을 거쳐 화천댐으로 흘러 들어온다.
갑작스러운 수위 상승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2002년에 만들어진 보조여수로.
-금강산댐으로 알려진 북한 임남댐이 지난 22일 오후 2시쯤 수문을 개방한 것으로 관측됐습니다.
-(해설) 보조여수로가 있는 댐은 우리나라에서 화천댐이 유일하다.
사람으로 치면 인생의 황혼기지만 댐 나이 여든하나는 아직 끄떡없다.
-(해설) 약 78m에 달하는 댐 높이의 낙차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화천수력발전소는 지금도 출력이 10만 8000킬로와트에 달한다.
수력발전으로는 우리나라 최대치다.
1950년대까지는 우리나라 전체 전력의 절반가량을 이곳에서 담당했다.
-(해설) 그동안 수입에만 의존했던 발전소 장비들을 국산화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예나 지금이나 든든한 전력 공급원.
화천수력발전소가 있기에 연간 824억 원의 에너지 수입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물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주무 부처인 환경부는 강원도 화천댐 물을 끌어오겠다는 계획입니다.
-(해설) 화천댐은 지금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용 댐에서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다목적 댐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수도권에 새로 만들어질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에 화천댐이 용수를 공급할 계획이다.
-(해설) 전쟁으로 초토화된 국가를 재건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던
화천댐은 이제 반도체 일류 국가로 재도약하는 발판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과거의 아픈 상흔을 딛고 파로호는 내일을 향해 흐르고 있다.
그 물길을 거스르지 않고 사는 법.
-파로호는 안 변했죠. 자부심이 있죠. 이런 데가 어디 있어요? 이런 데가.
-내가 여기서 가면 어딜 가겠어요, 이제? 나도, 나도 여기서 죽어야지.
-(해설) 버젓이 지도에 표시돼 있지만 지도에는 없는 이야기.
그 이야기는 나와 우리가 살아온 삶이자 대한민국이 걸어온 궤적이기도 하다.
이곳 파로호에는 아직 수면으로 떠오르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가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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