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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스페셜 - 대구 국악의 발견 살판, 젊은 소리
등록일 : 2025-08-25 13:38:25.0
조회수 : 31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사실 막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 하잖아요. 대구가 국악의 어떤 불모지다?
-나나나나~ 닐리리아~
-(노래) 여보시오 여러분들 나의 한 말을 들어보소
잘 된다고 의기양양 말고 안 된다고 한탄만 마소
지난날 복 없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웠을 박흥보 씨
오늘날 이렇듯 좋은 날을 맞이하였으니 어찌 아니가 좋을쏜가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야
차고 넘치는구나 복 비워내고 부어내도 그득하구나 복
이렇듯 좋은 것들을 모두 떨어비워 오늘 오시 귀한 벗님들과
한번 나누어 가져볼까 흥부가 좋아라고 흥부가 좋아라고
궤두짝을 떨어 붓고 나면 도로 수북 흥부가 좋아라고 흥부가 좋아라고
궤두짝을 떨어 붓고 나면 도로 수북 톡톡 털고 돌아섰다 돌아보니
도로 하나 가득하고 돌아섰다 돌아보니
돈도 도로 하나 쌀도 도로 하나 가득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돌아섰다 돌아보니 돈도 도로 하나 쌀도 도로 하나 돌아섰다 돌아보니
돈과 쌀이 도로 가득 아이고 좋아 죽것다 1년 365일을 그저 꾸역꾸역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어쩔시구나 저씨구나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야
-다들 직전 공연 어떻게 보셨어요?
-후렴구와 귀에 콕콕 박히고 그리고 역시 첫 공연인데.
-다들 너무 흥겹게 이렇게 호응해 주셔서 저도 덩달아 아주 신나게 불렀던 것 같습니다.
다들 오랜만에 뵙는 분들도 있고 우리가 같은 지역에 있지만
자주 보지 못하는 게 참 아쉬운데 어떻게 지내셨어요?
-저는 진짜 오랜만에 많은 분들을 뵌 것 같은데.
-동우 씨도 또 아주 특별한 근황이 있으셔서 너무 만나고 싶더라고요.
-너무 유명하시잖아요.
-그러니까요. 저는 이렇게 지금 뭐 국악 활동도 많이 하지만 저는 할 수 있는 예술적인 활동은 다 하는 것 같아요.
연기도 하고 지휘도 기회가 되면 하고 그리고 요즘에는 SNS에 좀
빠져서 인플루언서가 꿈인 국악 타악을 전공한 권 박사, 권동우입니다.
-저는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이자 판소리제작소 소리담기 대표를 맡고 있는 김진아입니다.
-저는 대금을 가지고 음악을 하고 있는 김윤우입니다.
-저는 해금 연주자 그리고 작곡, 싱어송라이터로 앨범을 내고 활동하고 있는 리다.
울리다, 그리다, 들리다의 리다입니다.
-국가무형유산 서도 소리 전수자. 그리고 대구에서 유일하게 서도 소리꾼으로 활동 중인 김단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판소리 이수자이고요. 또 국악 밴드 나릿의 대표 김수경입니다.
-저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다가 국악으로 반경을 넓힌 작곡가이자 우리음악집단 소옥 건반 연주자 강한뫼입니다.
반갑습니다.
-기악부터 타악 그리고 소리꾼까지 젊은 국악, 우리 젊은 대구 지역의 국악인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모였는데요.
대구에서 국악을 한다는 것. 제목 따라 살판 뭐 죽을 판?
어떤지 한번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해 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굳이 꼭 대구라기보다 사실 음악 하면서 돈 벌고 밥벌이하기 좀 힘들지 않으신가요? 저만 그런가요?
-팍팍해요.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무래도 그런 소득에 관한 그런 부분은 조금은 내려놓고 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좋아서 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래서 저는 지속 가능한 딴따라를
위해 제가 직접 미디도 하고 곡도 쓰고 앨범도 내고 그리고 해금 연주도
하고 지금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저는 죽을 판입니다.
-이렇게 바로.
-저는 안동이라는 곳에서 경상북도 북부권에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대구 쪽보다는 인프라가 확실히 적어요.
예술가에 대한 지원이라든지 아니면 또 친구들도 많이 없어서 혼자서
음악을 하든지 또는 저는 전공 자체가 장단이라는 걸 전공해서 남이 있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어떻게 보면 그런 전공을 택했는데 그렇다 보니까
저 같은 경우에는 국악인에 한정 두지 않고 예술인이라는 좀 큰 범위에서
음악 활동이랑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릴스도 그것의 연장선인 것 같고 학교에 나가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거기에서 지휘도 하고요.
또 기회가 되면 연기도 하고. 저의 한계를 저는 두지 않거든요.
-동우 씨의 한계를 두지 않게 된 이유는 국악이라는 것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인가요?
-그것도 맞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귀향을, 저는 서울에서 공부했었는데 서울에서 공부하고 귀향했는데 말하자면 판이 없는 거예요.
판이 있어야 저희가 가서 놀든지 살 판이든 죽을 판이 생기는데 저 나름대로 한계를 빨리 느꼈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가 더 할 수 있는 끼를 그냥 방출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도 그냥 예술이라는 범위 안에서는, 범주 안에서 전부 다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결과로써 여기도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아서.
죽을 판이지만 구멍은 있더라. 솟아날 구멍은 있더라, 그렇게 생각하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윤우 씨는 대금 없이 말씀 괜찮으시겠죠?
-네.
-옆에 있어서 기운을 받고 있습니다.
-어때요? 우리 동네에서 음악 하기?
-저는 살판, 죽을 판 중에서는 죽을 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대구라는 판이 조금 전통적인 공연을 많이 요구를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창작 음악에 대한 거는 다른 지역보다 오히려 좀 더 요구를 많이 하는 판인 것 같기는 한데요.
저의 음악적 그런 취향으로는 엄청 다양하게 다 즐기고 싶은데 실제 제가
무대에 서는 공연 판은 너무 창작 음악 판에 치중되어 있으니까 그게 좀
죽을 판이라고 생각을 들게 만드는 것 같아요.
-사실상 이런 얘기들은 대구가 국악의 불모지인가 아닌가 이런 얘기들은 역사적으로 올라가면 또 달라지는 것 같아요.
지금부터 100년 전이죠. 근대 시기에 대구는 전국에서도 문화와 예술과 사회의 중심지였던 곳인데요.
대구 중구는 대구 권번도 있고 대구역이 생기면서 많은 전통 예술가들이 서울로 진출했다는 얘기도 있고요.
경성 방송국에서 최초로 소리를 했다는 사람도 우리 대구 출신이고요.
그리고 대구의 유명한 명창 선생님들도 정말 많이 계시죠.
그래서 대구에서 하는 게 조금 더 저는 자랑스럽고 대구에서 예술을 하는 게 좋지 않나.
살만하다. 재밌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전라도에서 소리를 배워서 경상도에서 벌어 먹고산다는 말들이 있었을 만큼 국악의 소비지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그런 시절도 있었고 일제강점기 때만 하더라도 대구 전통문화
또 국악 관련된 어떤 문화가 굉장히 활발했던 지역이 바로 대구였습니다.
그래서 칠곡에서 태어난 박귀희 선생님이나 구미에서 태어나신 박녹주 선생님.
대구가 지금도 자랑할 만한 그러한 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대구에는 정말 다양한 장르의 또 다양한 시대에 아주 유능하고 특출났던 국악인들이 많으셨는데요.
제가 가장 잘 아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돌아가신 고 이명희 명창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열일곱에 선생님한테 가서 처음 소리를 시작을 해서 그때 들었던 이야기들이 아주 감명적이었어요.
-어떤 이야기를?
-아무래도 판소리 그러면 호남의 지역이 판소리의 강세.
그러니까 조금은 경상도 소리꾼들을 얕보는 그런 분위기도 그 당시에는 아주 팽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성처럼 처음 보는 경상도 여성 소리꾼이 와서 단박에 전주 대사습이라는
명실상부 국악인의 명인, 명창을 배출하는 그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거머쥔 그 사건이.
-판소리 명창 부문 장원상, 이명희!
-뜨거운 박수가 울려 퍼집니다. 축하드립니다.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뭐라고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판소리는 언제부터 공부하셨습니까?
-판소리는 제가 어릴 때 선생님한테 가서 한 2, 3년 배우다가 대구 내려가서 결혼을 했죠.
-선생님은 누구시죠?
-김소희 선생님이십니다.
-김소희 선생님의 제자시군요.
-아주아주 전라도에서 이슈가 되었대요.
그래서 바로 상을 받고 나서 이 고향인 대구로 돌아오지 못하시고 열흘 정도
되는 시간을 전라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하셨대요.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그렇게 다니면서 소리를 하고 돌아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방자 충충 들어서며. 아니오시오, 도련님.
(노래)
아이고 어쩔거나
-얼씨구.
-(노래) 이팔청춘 젊은 년이 서방 이별이 웬일이냐
-엄청났죠.
-(노래)
-그때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좋아졌죠.
-(노래) 배의 밤이 몇 밤이며 물의 날이 몇 날이나 되든고
무정한 사오삭을 물과 같이 흘러가니 금풍삽이 석기하고
옥우곽이 왕쟁영이라 낙하는 여고목제비하고 추수는 공장천일색이라 강 안에 귤농하니
황금이 천편 노화가 풍기하니 백설이 만점이라 한곳 당도하니
이는 곧 인당수라 대천 바다 한가운데 바람 불어 물결 쳐 안개 뒤섞여 젖어진 날
사면이 검어 어둑 정그러져 천지 적막한데 간신이 떠 들어와 뱃전 머리 탕탕 도사공 영좌이하
황황급급하여 고사지제를 차릴 제 섬쌀로 밥 짓고 온소잡고 동우술 오색탕수 삼색실과를
방위차려 갈라 궤고 산돗 잡아 큰 칼 꽂아 기는 듯이 바쳐 놓고 도사공 거동 봐라
의관을 정제하고 북채를 양손에 쥐고 심청이 거동 봐라 샛별 같은 눈을 감고
치마자막 무릎 쓰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뱃전으로 우루루 만경창파
갈매기격으로 떴다 물에가 풍
-진짜 대구의 음악인들이 수준이 제가 생각할 때는 상당히 높은 편.
세련됨과 특출난 실력 위에서 다양한 음악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세요?
-이미 대구에서는 창작 음악, 창작 국악 퓨전이라고 다들 많이 인지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그런 것들이 벌써 꿈틀꿈틀 댄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죠.
정말 잘하는 수준의 경지까지 많이 온 것 같고요.
그리고 각 팀마다 특색 있고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해지는 팀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개인의 실력도 훌륭하고 팀 간의 색깔도 분명하고요.
그리고 거기에 더해져서 대구는 오페라 그리고 음향 기술, 조명 이런 것들, 모든 인프라가 좋은 지역이잖아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합해져서 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어느 지역보다 좋은 도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좀 질문이 생기는 게 새로운 음악을 궁금해했을 때 실제로 볼 수 있는 계기가 생각보다는 없다고 여겨져요.
-사실 서울에서 비교를 하자면 좀 항상 지원 사업이나 이런 것은 완성되고
증명된 공연만을 부르고 그런 연주자를 찾고 이러다 보니까 조금 그런 면에서 부족하지 않나.
-그런데 시행착오도 필요하고 새싹들한테도 푸시가 들어가야 하는데 확실히 그게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좋습니다. 가보자고.
-너무 잘 들었습니다.
-이호 씨. 옆에 가방이 뭐죠?
-제가 들고 다니는 대금 가방입니다. 다들 낚싯대 가방으로 오해를 많이 하시는데.
-색깔이 굉장히 묘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대금을 보여드리려고 오늘 가져와 봤습니다.
-빨간색.
-대금이 대체 몇 개예요?
-명인 아닙니까?
-그래서 원래 전통 대금은 두 가지밖에 없는데요.
정악대금과 산조대금이 있는데 요즘에는 많은 현대 음악과 다른 아티스트와
작업을 하기 위해서 다양한 대금이 많이 존재합니다.
전통의 대금을 먼저 보여드리자면 이렇게 가장 길게 생긴 정악대금입니다.
구조는 대금은 다 똑같습니다. 이렇게 부는 치구와 대금의 가장 매력적인 청공.
그다음에 손가락으로 막는 지공이 있고요. 그다음에 대금의 음정을 조율하는 칠성공.
구조는 다 나머지 대금도 똑같은데. 산조대금이고요.
비교하자면 치구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되는데요.
상당히 짧죠? 관이 짧을수록 더 높은 키의 소리가 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소리 한번 들려봐 주실 수 있으실까요? 거기에 꼭 침을 발라야 하나 봐요?
-청이 습도와 온도에 민감한데요. 그래서 조금 습기를 줘야 조금 청 소리가 잘 나서.
-그러면 그게 떨려서 소리가 나는 거다, 그렇죠?
-되게 얇은 막이 떨리면서 대금의 소리가 납니다.
-얼씨구.
-(함께) 좋다.
-그래서 아까 정악대금과 길이는 비슷하지만 보시면 여기 버튼이 두 개가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플루트에 달려 있는 건데요.
저희 대금의 키를 두 가지를 달아서 지공 6개에서 총 8개의 공음을 가지고
소리를 낼 수 있어서 국악에서 잘 쓰이지 않는 반음 음계를 쓸 수 있어서 서양 음악의
도레미파솔라시도도 대금으로도 가능합니다.
-정확하다.
-그래서 보통 창작 음악을 할 때는 거의 주로 이 대금을 씁니다.
-어떻게 들으셨어요?
-좀 신기했어요.
일반 가요나 이런 드라마 OST 같은 친숙한 곡을 바꿔서 하는 경우는 봤는데
클래식 음악을 바꾼 것은 좀 새로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게 어느 정도는 표현의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김윤호와 강한매의 망각을 감상한 것 같아서 정말 멋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수를.
-하실 말씀 있으신 것 같아요. 입이 지금.
-입이 지금 나오셨어요.
-마중이 나와 버렸네요. 저는 국악을, 국악 타악을 전공해서 제가 장구를 잠깐 가져가도 괜찮을까 이런.
-장구의 신, 권동우.
-저의 인스타그램에 있는 챌린지랑 장구랑 해서 저희가 살판, 젊은 국악이잖아요.
대구 살판 젊은 국악으로 한번 제가 될지 모르지만 한번 해 보겠습니다.
젊은 살판 젊... 다시 하겠습니다.
-잘한다, 얼씨구.
-다시 한번 해 보겠습니다. 어렵네요, 어려워.
-(함께) 대구 살판 젊은 국악. 구 살판 젊은 국악.
살판 젊은 국악. 판 젊은 국악. 젊은 국악. 은 국악. 국악. 악.
-이렇게 제가 했는데 다 도와주니까 성공한 것 같습니다.
저는 입도 뻥끗 안 했는데 챌린지가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요즘 좀 트렌디한 그런 짧은 영상 유행하는 것에 우리 대구
그리고 젊은 국악의 이야기를 실어서 해 보니까 너무 재미있습니다.
동우 씨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재미있게 다 보여주셔서 저는 조금 진한 국악을 조금만 들려드릴까 싶은데요.
춘향가 중에서 갈까부다 들려드리겠습니다.
-얼씨구.
-(노래) 갈까부다 갈까부다 임 따라서 갈까부다
-얼씨구.
-갈까부다, 그냥.
-갈까?
-갈까.
-이게 춘향가 중에서 춘향이가 한양에 간 이몽룡을 그리워하면서 갈까보다 하고 이렇게 소리를 하는 대목이었어요.
-어쩐지 조금 슬프더라고요.
-그렇죠?
-슬픈 게 맞죠?
-그렇죠. 이 곡조 자체도 그렇고 또 남도 소리의 특징이 좀 슬픈 느낌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
-이게 가장 판소리다운 진한 슬픈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대목인 거 같아서 들려드렸습니다.
-아주 성음이 가슴에 확 담깁니다. 잘 들었습니다.
-성음이 뭔가요?
-성음은 소리꾼의 이 목소리를 말하는 거죠.
-독특한 색깔 같은 걸까요?
-소리꾼들이 이루고 싶어 하는 약간 예술적 경지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진아 씨는 성음, 내가 이루고 싶은 경지. 지금 어디까지 오신 거 같으세요?
-거의 지하에서 헤매고 있는 거 같은데요, 지금.
-저희가 듣기에는 안 그런데요. 너무너무 듣기가 좋았고 멋집니다.
-감사합니다.
-호남의 남도 소리, 판소리 들어봤는데 시청자 여러분께서는 서도 소리도 좀 궁금해하실 거 같아요.
-제가 하는 서도소리는 평안도와 황해도. 그러니까 이북 지역의 옛 소리인데요.
민요는 또 우리 옛 삶에서 나온 노래이기도 하고 이 소리꾼이
소리꾼에게만 전승하는 스승님에게만 배울 수 있는 소리가 있어서 서도소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조금 짧게 보여드리자면. 주거니~ 이런 느낌입니다.
-확실히 달라요. 이게 사투리라고 하잖아요.
각 지역마다 사는 사람들이 가진 풍습, 말씨 그리고 그 말씨에서 나온 노래가
다르고 예술도 달라지는데 지역마다 이렇게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네요.
몇 인 몇 역을 무대에서 고수 하나 놔 놓고 그때그때 소리에 맞춰서 내가
역할을 맡아 소리도 내고 아니리도 내고.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은 재미없다고 하는데 막상 와서 실제 와서 보면 재미있어해요, 다.
-개인적으로 질문이 좀 생기는 게 트로트를 들으면 어딘가 국악적인 막
꺾는 소리 이런 것들이 섞여 있는 것 같은데 트로트 한번 해 보시는 게 어떠세요?
이런 질문에 다들 수락을 해 보실 의향들은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민요를 전공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기는 한데 공연의
특성상 요즘에는 어르신들이 많은 장소에 가면 한 곡 정도 해 드리고 있는 편이기도 합니다.
-이건 그냥 갑자기 드는 질문,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 곡 청해봐도 될까요?
-제가 트로트를 오늘을 위해서 한번 준비해 봤습니다.
준비를 좀 했는데요, 연습을 했는데 이미자 님의 동백아가씨라는 국민가요 준비해 봤습니다.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한번 청해 들어보겠습니다.
국악 창법을 조금 덜어내고 원곡 가수의 영향을 받아서 깔끔하게 한번 불러본 것 같기도 합니다.
-계속 계속 이렇게 대중들의 러브콜에 응하다 보면 진짜 우리가 배워왔고 가지고 가야 하는 전통.
이 전통의 순수한 멋과 깊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도 한 번씩은 듭니다.
-트로트를 제가 이렇게 불러 보니까 계속해서 뭔가 부르면 부를수록 우리
전통이 조금 더 깊이와 가치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제 입장에서는
전공자이기 때문에 좀 하는 편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를 때마다 사실 많은 생각이 들기는 해요.
-저는 생각이 조금 그런 게 결국에는 저는 대중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결국에 판소리라고 해도 그 시대 때는 퓨전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대중들한테 사랑받아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가는 거고 우리 또한 지금
이게 나중에 우리의 새로운 역사가 될 거고 퓨전이라고 좀 한계치이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 그리고 사람들한테 사랑받을 수 있는 음악도 같이 이렇게
병행하면 물론 계승도 중요하지만 저는 사랑받으려면 대중적으로도 많이 팔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어떻게 보면 아티스트, 예술인이 우리가 상품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저는 좀 퓨전에 대해서도 대단히 긍정적이고 저는 맨날 수락할 것 같습니다.
-계속 전통과 퓨전 국악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데요.
사실 연주자로서 혼돈이 오는 게 그 범위가 어디까지냐.
사실 전통의 범위가 어디까지냐, 이런 거를 많이 고민하고 있는데 국악 판
안에서 좀 더 새로운 창작을 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연주자라서.
-전통의 연장에서의 창조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죠.
전통음악 판이지만 다른 음악 장르 섞이지 않고 2024년에 살아오고
김윤호가 짜는 가락으로 해서 그 김윤호 가락 대금산조를 만들려고
계속 오늘은 이 가락도 불러봤다가 내일은 또 저 가락도
불러봤다가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아주 현명하게 잘 가고 계신 것 같네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기는 했어요.
그러면 전통은 언제까지 그 모양으로 유지되어야 되냐라는 거죠.
시대가 지나면서 전통이라는 이름의 음악들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전통이라는 그 말 자체에 어쩌면 묶여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기는 해요.
-저는 창작 활동을 열심히 하지만 그 경계가 분명하거니와 이 경계 너머의
전통의 영역도 너무너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거든요.
그래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원형 자체는.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고 새로운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지만 지키는 것만이 정답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는 않죠.
-사물놀이 같은 경우에 김덕수 선생님도 농악을 무대화시킨 퓨전을 하신 거고
지금은 그게 전통이 되어서 저희는 전부 다 어찌 보면 김덕수 부문 때
국악을 확 했던 친구들이지 않나 싶거든요.
전통은 우리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도 스파게티를 만드는데 한국 음식 맛이 나요.
그런 거지 않을까.
-어떻게 그렇게 맛이 나죠.
-그러니까 참 희한합니다, 보니까.
그런 것처럼 우리도 창작은 하지만 결국에는 피 속에 거의 베이식,
기본에는 전부 다 전통이 가지고 있으니까 다양한 재미난 창작을 할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전통은 계속 명맥은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방금 동우 씨가 윤덕수 선생님도 농악에서 어떻게 보면 창조를 해서
사물놀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그게 지금은 전통 음악으로 해서 입시 곡에도
들어가고 시험 곡에도 들어가는데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사실
전통 판에서 창작이 이루어져서 김덕수 사물놀이도 지금의 전통이 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불렀던 피아졸라의 망각 대금이
100년이 지나고 1000년이 지나도 아무리 좋은 곡이라 해도 그 음악은 전통의 장르로 갈 수가 없습니다.
이게 오래되고 안 오래됐다기보다는 전통 판 안에서 창조되고 새롭게
생산되는 음악이 저는 계속 나와야지 국악이 계속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그냥 집중하는 것인 거 같아요.
이 전통을 언제가 됐건 다시 꺼내서 반짝반짝 갈고 닦을 마음은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대구 국악을 살판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그러면 각자가 국악을 계속해서 하고자 하는 이유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어요.
-일단은 좋아서.
전통을 가지고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저는 무엇보다도 무척 보람 있고
희열도 느끼고 행복해서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선택한 길은 아닌 것 같아요. 이렇게 인생에 국악이.
-왔다?
-왔거든요.
-운명처럼?
-운명처럼 왔어요.
이걸 계속해 나가야 할까 이런 고민의 고민의 순간들이 아주 많았지만 그
순간마다 이렇게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하고 무대에 올라섰을 때 드는 생각이 이거 해야 하겠구나, 어쩔 수 없구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저의 운명처럼 그냥 온 길이다.
그래서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되게 멋진 말인 것 같아요.
-운명처럼 온 길.
-저는 판소리라는 것을 하게 됐는데요.
판소리의 역사가 300년, 400년 동안 축적된 시간이 저한테 온 선물인 것 같아요.
이것을 내가 잘 가지고 있다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재미있게 알려주기도 하고 귀하게 알려주기도 하고 또 나를 통해서
판소리 하는 사람들에게 좀 잘 알려줘야겠다 하는 역사적 좌표의 여기에 있는 사람.
-나아가서는 600년, 800년 이후의 명맥을 이어가겠다.
-그러면 너무 좋죠, 판소리가요.
-저는 이제 대금을 안 한 시간보다 대금을 한 시간이 훨씬 많이 넘어서면서 그냥 굳은살처럼 제 인생에 박힌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내 몸에 있는 굳은살인 것처럼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게 이유인 것 같아요.
-다들 진짜 좋아해서 하시잖아요. 그렇죠?
다들 좋아해서 하는 것처럼 저도 좋아해서 하는데 저는 국악이 약간 보물창고 같아요.
반짝반짝거리는 과거의 재미난 것들을 다시 이렇게 닦아서 대중들한테 딱 내놓는 그 즐거운 맛이 있거든요.
국악은 진짜 좀 정말 재미있는 게 많은 보물창고 같아요.
-이야기를 쭉 들어보니까 우리는 모두 아름다워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아름이라는 게 나답다는 건데 결국에는 우리가 창작도 그렇고 나다움을 찾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름다운 음악을 우리가 아름답게 했으면 좋겠지 않나.
그러면 듣는 사람들도 아름다워할 거고 그래서 아름답자.
-아름답자.
-(함께) 아름답자, 아름답자, 아름답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음악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저는 개인적으로는 국악을 함께하고 있는 동시대를 사는 우리가 우리끼리 서로를 알아주는 거.
그것이 조금은 돈독함만이 아니라 그 돈독함이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하니까.
서로를 이렇게 알아가는 시간이 조금 더욱더 살 길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이 자리가 무척 반갑고 좋습니다.
-맞습니다. 오래도록 음악하기 위해서.
-혼자서는 쓸쓸하니까 같이.
-함께해요.
-얼씨구.
-(함께) 좋다! 십 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그러니까 우리. 손잡고 가보자~
-(함께) 다 함께 가보자~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사실 막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 하잖아요. 대구가 국악의 어떤 불모지다?
-나나나나~ 닐리리아~
-(노래) 여보시오 여러분들 나의 한 말을 들어보소
잘 된다고 의기양양 말고 안 된다고 한탄만 마소
지난날 복 없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웠을 박흥보 씨
오늘날 이렇듯 좋은 날을 맞이하였으니 어찌 아니가 좋을쏜가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야
차고 넘치는구나 복 비워내고 부어내도 그득하구나 복
이렇듯 좋은 것들을 모두 떨어비워 오늘 오시 귀한 벗님들과
한번 나누어 가져볼까 흥부가 좋아라고 흥부가 좋아라고
궤두짝을 떨어 붓고 나면 도로 수북 흥부가 좋아라고 흥부가 좋아라고
궤두짝을 떨어 붓고 나면 도로 수북 톡톡 털고 돌아섰다 돌아보니
도로 하나 가득하고 돌아섰다 돌아보니
돈도 도로 하나 쌀도 도로 하나 가득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돌아섰다 돌아보니 돈도 도로 하나 쌀도 도로 하나 돌아섰다 돌아보니
돈과 쌀이 도로 가득 아이고 좋아 죽것다 1년 365일을 그저 꾸역꾸역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어쩔시구나 저씨구나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야
-다들 직전 공연 어떻게 보셨어요?
-후렴구와 귀에 콕콕 박히고 그리고 역시 첫 공연인데.
-다들 너무 흥겹게 이렇게 호응해 주셔서 저도 덩달아 아주 신나게 불렀던 것 같습니다.
다들 오랜만에 뵙는 분들도 있고 우리가 같은 지역에 있지만
자주 보지 못하는 게 참 아쉬운데 어떻게 지내셨어요?
-저는 진짜 오랜만에 많은 분들을 뵌 것 같은데.
-동우 씨도 또 아주 특별한 근황이 있으셔서 너무 만나고 싶더라고요.
-너무 유명하시잖아요.
-그러니까요. 저는 이렇게 지금 뭐 국악 활동도 많이 하지만 저는 할 수 있는 예술적인 활동은 다 하는 것 같아요.
연기도 하고 지휘도 기회가 되면 하고 그리고 요즘에는 SNS에 좀
빠져서 인플루언서가 꿈인 국악 타악을 전공한 권 박사, 권동우입니다.
-저는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이자 판소리제작소 소리담기 대표를 맡고 있는 김진아입니다.
-저는 대금을 가지고 음악을 하고 있는 김윤우입니다.
-저는 해금 연주자 그리고 작곡, 싱어송라이터로 앨범을 내고 활동하고 있는 리다.
울리다, 그리다, 들리다의 리다입니다.
-국가무형유산 서도 소리 전수자. 그리고 대구에서 유일하게 서도 소리꾼으로 활동 중인 김단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판소리 이수자이고요. 또 국악 밴드 나릿의 대표 김수경입니다.
-저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다가 국악으로 반경을 넓힌 작곡가이자 우리음악집단 소옥 건반 연주자 강한뫼입니다.
반갑습니다.
-기악부터 타악 그리고 소리꾼까지 젊은 국악, 우리 젊은 대구 지역의 국악인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모였는데요.
대구에서 국악을 한다는 것. 제목 따라 살판 뭐 죽을 판?
어떤지 한번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해 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굳이 꼭 대구라기보다 사실 음악 하면서 돈 벌고 밥벌이하기 좀 힘들지 않으신가요? 저만 그런가요?
-팍팍해요.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무래도 그런 소득에 관한 그런 부분은 조금은 내려놓고 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좋아서 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래서 저는 지속 가능한 딴따라를
위해 제가 직접 미디도 하고 곡도 쓰고 앨범도 내고 그리고 해금 연주도
하고 지금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저는 죽을 판입니다.
-이렇게 바로.
-저는 안동이라는 곳에서 경상북도 북부권에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대구 쪽보다는 인프라가 확실히 적어요.
예술가에 대한 지원이라든지 아니면 또 친구들도 많이 없어서 혼자서
음악을 하든지 또는 저는 전공 자체가 장단이라는 걸 전공해서 남이 있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어떻게 보면 그런 전공을 택했는데 그렇다 보니까
저 같은 경우에는 국악인에 한정 두지 않고 예술인이라는 좀 큰 범위에서
음악 활동이랑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릴스도 그것의 연장선인 것 같고 학교에 나가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거기에서 지휘도 하고요.
또 기회가 되면 연기도 하고. 저의 한계를 저는 두지 않거든요.
-동우 씨의 한계를 두지 않게 된 이유는 국악이라는 것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인가요?
-그것도 맞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귀향을, 저는 서울에서 공부했었는데 서울에서 공부하고 귀향했는데 말하자면 판이 없는 거예요.
판이 있어야 저희가 가서 놀든지 살 판이든 죽을 판이 생기는데 저 나름대로 한계를 빨리 느꼈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가 더 할 수 있는 끼를 그냥 방출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도 그냥 예술이라는 범위 안에서는, 범주 안에서 전부 다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결과로써 여기도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아서.
죽을 판이지만 구멍은 있더라. 솟아날 구멍은 있더라, 그렇게 생각하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윤우 씨는 대금 없이 말씀 괜찮으시겠죠?
-네.
-옆에 있어서 기운을 받고 있습니다.
-어때요? 우리 동네에서 음악 하기?
-저는 살판, 죽을 판 중에서는 죽을 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대구라는 판이 조금 전통적인 공연을 많이 요구를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창작 음악에 대한 거는 다른 지역보다 오히려 좀 더 요구를 많이 하는 판인 것 같기는 한데요.
저의 음악적 그런 취향으로는 엄청 다양하게 다 즐기고 싶은데 실제 제가
무대에 서는 공연 판은 너무 창작 음악 판에 치중되어 있으니까 그게 좀
죽을 판이라고 생각을 들게 만드는 것 같아요.
-사실상 이런 얘기들은 대구가 국악의 불모지인가 아닌가 이런 얘기들은 역사적으로 올라가면 또 달라지는 것 같아요.
지금부터 100년 전이죠. 근대 시기에 대구는 전국에서도 문화와 예술과 사회의 중심지였던 곳인데요.
대구 중구는 대구 권번도 있고 대구역이 생기면서 많은 전통 예술가들이 서울로 진출했다는 얘기도 있고요.
경성 방송국에서 최초로 소리를 했다는 사람도 우리 대구 출신이고요.
그리고 대구의 유명한 명창 선생님들도 정말 많이 계시죠.
그래서 대구에서 하는 게 조금 더 저는 자랑스럽고 대구에서 예술을 하는 게 좋지 않나.
살만하다. 재밌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전라도에서 소리를 배워서 경상도에서 벌어 먹고산다는 말들이 있었을 만큼 국악의 소비지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그런 시절도 있었고 일제강점기 때만 하더라도 대구 전통문화
또 국악 관련된 어떤 문화가 굉장히 활발했던 지역이 바로 대구였습니다.
그래서 칠곡에서 태어난 박귀희 선생님이나 구미에서 태어나신 박녹주 선생님.
대구가 지금도 자랑할 만한 그러한 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대구에는 정말 다양한 장르의 또 다양한 시대에 아주 유능하고 특출났던 국악인들이 많으셨는데요.
제가 가장 잘 아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돌아가신 고 이명희 명창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열일곱에 선생님한테 가서 처음 소리를 시작을 해서 그때 들었던 이야기들이 아주 감명적이었어요.
-어떤 이야기를?
-아무래도 판소리 그러면 호남의 지역이 판소리의 강세.
그러니까 조금은 경상도 소리꾼들을 얕보는 그런 분위기도 그 당시에는 아주 팽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성처럼 처음 보는 경상도 여성 소리꾼이 와서 단박에 전주 대사습이라는
명실상부 국악인의 명인, 명창을 배출하는 그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거머쥔 그 사건이.
-판소리 명창 부문 장원상, 이명희!
-뜨거운 박수가 울려 퍼집니다. 축하드립니다.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뭐라고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판소리는 언제부터 공부하셨습니까?
-판소리는 제가 어릴 때 선생님한테 가서 한 2, 3년 배우다가 대구 내려가서 결혼을 했죠.
-선생님은 누구시죠?
-김소희 선생님이십니다.
-김소희 선생님의 제자시군요.
-아주아주 전라도에서 이슈가 되었대요.
그래서 바로 상을 받고 나서 이 고향인 대구로 돌아오지 못하시고 열흘 정도
되는 시간을 전라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하셨대요.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그렇게 다니면서 소리를 하고 돌아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방자 충충 들어서며. 아니오시오, 도련님.
(노래)
아이고 어쩔거나
-얼씨구.
-(노래) 이팔청춘 젊은 년이 서방 이별이 웬일이냐
-엄청났죠.
-(노래)
-그때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좋아졌죠.
-(노래) 배의 밤이 몇 밤이며 물의 날이 몇 날이나 되든고
무정한 사오삭을 물과 같이 흘러가니 금풍삽이 석기하고
옥우곽이 왕쟁영이라 낙하는 여고목제비하고 추수는 공장천일색이라 강 안에 귤농하니
황금이 천편 노화가 풍기하니 백설이 만점이라 한곳 당도하니
이는 곧 인당수라 대천 바다 한가운데 바람 불어 물결 쳐 안개 뒤섞여 젖어진 날
사면이 검어 어둑 정그러져 천지 적막한데 간신이 떠 들어와 뱃전 머리 탕탕 도사공 영좌이하
황황급급하여 고사지제를 차릴 제 섬쌀로 밥 짓고 온소잡고 동우술 오색탕수 삼색실과를
방위차려 갈라 궤고 산돗 잡아 큰 칼 꽂아 기는 듯이 바쳐 놓고 도사공 거동 봐라
의관을 정제하고 북채를 양손에 쥐고 심청이 거동 봐라 샛별 같은 눈을 감고
치마자막 무릎 쓰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뱃전으로 우루루 만경창파
갈매기격으로 떴다 물에가 풍
-진짜 대구의 음악인들이 수준이 제가 생각할 때는 상당히 높은 편.
세련됨과 특출난 실력 위에서 다양한 음악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세요?
-이미 대구에서는 창작 음악, 창작 국악 퓨전이라고 다들 많이 인지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그런 것들이 벌써 꿈틀꿈틀 댄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죠.
정말 잘하는 수준의 경지까지 많이 온 것 같고요.
그리고 각 팀마다 특색 있고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해지는 팀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개인의 실력도 훌륭하고 팀 간의 색깔도 분명하고요.
그리고 거기에 더해져서 대구는 오페라 그리고 음향 기술, 조명 이런 것들, 모든 인프라가 좋은 지역이잖아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합해져서 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어느 지역보다 좋은 도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좀 질문이 생기는 게 새로운 음악을 궁금해했을 때 실제로 볼 수 있는 계기가 생각보다는 없다고 여겨져요.
-사실 서울에서 비교를 하자면 좀 항상 지원 사업이나 이런 것은 완성되고
증명된 공연만을 부르고 그런 연주자를 찾고 이러다 보니까 조금 그런 면에서 부족하지 않나.
-그런데 시행착오도 필요하고 새싹들한테도 푸시가 들어가야 하는데 확실히 그게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좋습니다. 가보자고.
-너무 잘 들었습니다.
-이호 씨. 옆에 가방이 뭐죠?
-제가 들고 다니는 대금 가방입니다. 다들 낚싯대 가방으로 오해를 많이 하시는데.
-색깔이 굉장히 묘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대금을 보여드리려고 오늘 가져와 봤습니다.
-빨간색.
-대금이 대체 몇 개예요?
-명인 아닙니까?
-그래서 원래 전통 대금은 두 가지밖에 없는데요.
정악대금과 산조대금이 있는데 요즘에는 많은 현대 음악과 다른 아티스트와
작업을 하기 위해서 다양한 대금이 많이 존재합니다.
전통의 대금을 먼저 보여드리자면 이렇게 가장 길게 생긴 정악대금입니다.
구조는 대금은 다 똑같습니다. 이렇게 부는 치구와 대금의 가장 매력적인 청공.
그다음에 손가락으로 막는 지공이 있고요. 그다음에 대금의 음정을 조율하는 칠성공.
구조는 다 나머지 대금도 똑같은데. 산조대금이고요.
비교하자면 치구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되는데요.
상당히 짧죠? 관이 짧을수록 더 높은 키의 소리가 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소리 한번 들려봐 주실 수 있으실까요? 거기에 꼭 침을 발라야 하나 봐요?
-청이 습도와 온도에 민감한데요. 그래서 조금 습기를 줘야 조금 청 소리가 잘 나서.
-그러면 그게 떨려서 소리가 나는 거다, 그렇죠?
-되게 얇은 막이 떨리면서 대금의 소리가 납니다.
-얼씨구.
-(함께) 좋다.
-그래서 아까 정악대금과 길이는 비슷하지만 보시면 여기 버튼이 두 개가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플루트에 달려 있는 건데요.
저희 대금의 키를 두 가지를 달아서 지공 6개에서 총 8개의 공음을 가지고
소리를 낼 수 있어서 국악에서 잘 쓰이지 않는 반음 음계를 쓸 수 있어서 서양 음악의
도레미파솔라시도도 대금으로도 가능합니다.
-정확하다.
-그래서 보통 창작 음악을 할 때는 거의 주로 이 대금을 씁니다.
-어떻게 들으셨어요?
-좀 신기했어요.
일반 가요나 이런 드라마 OST 같은 친숙한 곡을 바꿔서 하는 경우는 봤는데
클래식 음악을 바꾼 것은 좀 새로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게 어느 정도는 표현의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김윤호와 강한매의 망각을 감상한 것 같아서 정말 멋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수를.
-하실 말씀 있으신 것 같아요. 입이 지금.
-입이 지금 나오셨어요.
-마중이 나와 버렸네요. 저는 국악을, 국악 타악을 전공해서 제가 장구를 잠깐 가져가도 괜찮을까 이런.
-장구의 신, 권동우.
-저의 인스타그램에 있는 챌린지랑 장구랑 해서 저희가 살판, 젊은 국악이잖아요.
대구 살판 젊은 국악으로 한번 제가 될지 모르지만 한번 해 보겠습니다.
젊은 살판 젊... 다시 하겠습니다.
-잘한다, 얼씨구.
-다시 한번 해 보겠습니다. 어렵네요, 어려워.
-(함께) 대구 살판 젊은 국악. 구 살판 젊은 국악.
살판 젊은 국악. 판 젊은 국악. 젊은 국악. 은 국악. 국악. 악.
-이렇게 제가 했는데 다 도와주니까 성공한 것 같습니다.
저는 입도 뻥끗 안 했는데 챌린지가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요즘 좀 트렌디한 그런 짧은 영상 유행하는 것에 우리 대구
그리고 젊은 국악의 이야기를 실어서 해 보니까 너무 재미있습니다.
동우 씨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재미있게 다 보여주셔서 저는 조금 진한 국악을 조금만 들려드릴까 싶은데요.
춘향가 중에서 갈까부다 들려드리겠습니다.
-얼씨구.
-(노래) 갈까부다 갈까부다 임 따라서 갈까부다
-얼씨구.
-갈까부다, 그냥.
-갈까?
-갈까.
-이게 춘향가 중에서 춘향이가 한양에 간 이몽룡을 그리워하면서 갈까보다 하고 이렇게 소리를 하는 대목이었어요.
-어쩐지 조금 슬프더라고요.
-그렇죠?
-슬픈 게 맞죠?
-그렇죠. 이 곡조 자체도 그렇고 또 남도 소리의 특징이 좀 슬픈 느낌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
-이게 가장 판소리다운 진한 슬픈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대목인 거 같아서 들려드렸습니다.
-아주 성음이 가슴에 확 담깁니다. 잘 들었습니다.
-성음이 뭔가요?
-성음은 소리꾼의 이 목소리를 말하는 거죠.
-독특한 색깔 같은 걸까요?
-소리꾼들이 이루고 싶어 하는 약간 예술적 경지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진아 씨는 성음, 내가 이루고 싶은 경지. 지금 어디까지 오신 거 같으세요?
-거의 지하에서 헤매고 있는 거 같은데요, 지금.
-저희가 듣기에는 안 그런데요. 너무너무 듣기가 좋았고 멋집니다.
-감사합니다.
-호남의 남도 소리, 판소리 들어봤는데 시청자 여러분께서는 서도 소리도 좀 궁금해하실 거 같아요.
-제가 하는 서도소리는 평안도와 황해도. 그러니까 이북 지역의 옛 소리인데요.
민요는 또 우리 옛 삶에서 나온 노래이기도 하고 이 소리꾼이
소리꾼에게만 전승하는 스승님에게만 배울 수 있는 소리가 있어서 서도소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조금 짧게 보여드리자면. 주거니~ 이런 느낌입니다.
-확실히 달라요. 이게 사투리라고 하잖아요.
각 지역마다 사는 사람들이 가진 풍습, 말씨 그리고 그 말씨에서 나온 노래가
다르고 예술도 달라지는데 지역마다 이렇게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네요.
몇 인 몇 역을 무대에서 고수 하나 놔 놓고 그때그때 소리에 맞춰서 내가
역할을 맡아 소리도 내고 아니리도 내고.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은 재미없다고 하는데 막상 와서 실제 와서 보면 재미있어해요, 다.
-개인적으로 질문이 좀 생기는 게 트로트를 들으면 어딘가 국악적인 막
꺾는 소리 이런 것들이 섞여 있는 것 같은데 트로트 한번 해 보시는 게 어떠세요?
이런 질문에 다들 수락을 해 보실 의향들은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민요를 전공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기는 한데 공연의
특성상 요즘에는 어르신들이 많은 장소에 가면 한 곡 정도 해 드리고 있는 편이기도 합니다.
-이건 그냥 갑자기 드는 질문,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 곡 청해봐도 될까요?
-제가 트로트를 오늘을 위해서 한번 준비해 봤습니다.
준비를 좀 했는데요, 연습을 했는데 이미자 님의 동백아가씨라는 국민가요 준비해 봤습니다.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한번 청해 들어보겠습니다.
국악 창법을 조금 덜어내고 원곡 가수의 영향을 받아서 깔끔하게 한번 불러본 것 같기도 합니다.
-계속 계속 이렇게 대중들의 러브콜에 응하다 보면 진짜 우리가 배워왔고 가지고 가야 하는 전통.
이 전통의 순수한 멋과 깊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도 한 번씩은 듭니다.
-트로트를 제가 이렇게 불러 보니까 계속해서 뭔가 부르면 부를수록 우리
전통이 조금 더 깊이와 가치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제 입장에서는
전공자이기 때문에 좀 하는 편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를 때마다 사실 많은 생각이 들기는 해요.
-저는 생각이 조금 그런 게 결국에는 저는 대중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결국에 판소리라고 해도 그 시대 때는 퓨전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대중들한테 사랑받아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가는 거고 우리 또한 지금
이게 나중에 우리의 새로운 역사가 될 거고 퓨전이라고 좀 한계치이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 그리고 사람들한테 사랑받을 수 있는 음악도 같이 이렇게
병행하면 물론 계승도 중요하지만 저는 사랑받으려면 대중적으로도 많이 팔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어떻게 보면 아티스트, 예술인이 우리가 상품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저는 좀 퓨전에 대해서도 대단히 긍정적이고 저는 맨날 수락할 것 같습니다.
-계속 전통과 퓨전 국악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데요.
사실 연주자로서 혼돈이 오는 게 그 범위가 어디까지냐.
사실 전통의 범위가 어디까지냐, 이런 거를 많이 고민하고 있는데 국악 판
안에서 좀 더 새로운 창작을 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연주자라서.
-전통의 연장에서의 창조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죠.
전통음악 판이지만 다른 음악 장르 섞이지 않고 2024년에 살아오고
김윤호가 짜는 가락으로 해서 그 김윤호 가락 대금산조를 만들려고
계속 오늘은 이 가락도 불러봤다가 내일은 또 저 가락도
불러봤다가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아주 현명하게 잘 가고 계신 것 같네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기는 했어요.
그러면 전통은 언제까지 그 모양으로 유지되어야 되냐라는 거죠.
시대가 지나면서 전통이라는 이름의 음악들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전통이라는 그 말 자체에 어쩌면 묶여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기는 해요.
-저는 창작 활동을 열심히 하지만 그 경계가 분명하거니와 이 경계 너머의
전통의 영역도 너무너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거든요.
그래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원형 자체는.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고 새로운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지만 지키는 것만이 정답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는 않죠.
-사물놀이 같은 경우에 김덕수 선생님도 농악을 무대화시킨 퓨전을 하신 거고
지금은 그게 전통이 되어서 저희는 전부 다 어찌 보면 김덕수 부문 때
국악을 확 했던 친구들이지 않나 싶거든요.
전통은 우리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도 스파게티를 만드는데 한국 음식 맛이 나요.
그런 거지 않을까.
-어떻게 그렇게 맛이 나죠.
-그러니까 참 희한합니다, 보니까.
그런 것처럼 우리도 창작은 하지만 결국에는 피 속에 거의 베이식,
기본에는 전부 다 전통이 가지고 있으니까 다양한 재미난 창작을 할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전통은 계속 명맥은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방금 동우 씨가 윤덕수 선생님도 농악에서 어떻게 보면 창조를 해서
사물놀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그게 지금은 전통 음악으로 해서 입시 곡에도
들어가고 시험 곡에도 들어가는데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사실
전통 판에서 창작이 이루어져서 김덕수 사물놀이도 지금의 전통이 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불렀던 피아졸라의 망각 대금이
100년이 지나고 1000년이 지나도 아무리 좋은 곡이라 해도 그 음악은 전통의 장르로 갈 수가 없습니다.
이게 오래되고 안 오래됐다기보다는 전통 판 안에서 창조되고 새롭게
생산되는 음악이 저는 계속 나와야지 국악이 계속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그냥 집중하는 것인 거 같아요.
이 전통을 언제가 됐건 다시 꺼내서 반짝반짝 갈고 닦을 마음은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대구 국악을 살판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그러면 각자가 국악을 계속해서 하고자 하는 이유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어요.
-일단은 좋아서.
전통을 가지고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저는 무엇보다도 무척 보람 있고
희열도 느끼고 행복해서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선택한 길은 아닌 것 같아요. 이렇게 인생에 국악이.
-왔다?
-왔거든요.
-운명처럼?
-운명처럼 왔어요.
이걸 계속해 나가야 할까 이런 고민의 고민의 순간들이 아주 많았지만 그
순간마다 이렇게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하고 무대에 올라섰을 때 드는 생각이 이거 해야 하겠구나, 어쩔 수 없구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저의 운명처럼 그냥 온 길이다.
그래서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되게 멋진 말인 것 같아요.
-운명처럼 온 길.
-저는 판소리라는 것을 하게 됐는데요.
판소리의 역사가 300년, 400년 동안 축적된 시간이 저한테 온 선물인 것 같아요.
이것을 내가 잘 가지고 있다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재미있게 알려주기도 하고 귀하게 알려주기도 하고 또 나를 통해서
판소리 하는 사람들에게 좀 잘 알려줘야겠다 하는 역사적 좌표의 여기에 있는 사람.
-나아가서는 600년, 800년 이후의 명맥을 이어가겠다.
-그러면 너무 좋죠, 판소리가요.
-저는 이제 대금을 안 한 시간보다 대금을 한 시간이 훨씬 많이 넘어서면서 그냥 굳은살처럼 제 인생에 박힌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내 몸에 있는 굳은살인 것처럼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게 이유인 것 같아요.
-다들 진짜 좋아해서 하시잖아요. 그렇죠?
다들 좋아해서 하는 것처럼 저도 좋아해서 하는데 저는 국악이 약간 보물창고 같아요.
반짝반짝거리는 과거의 재미난 것들을 다시 이렇게 닦아서 대중들한테 딱 내놓는 그 즐거운 맛이 있거든요.
국악은 진짜 좀 정말 재미있는 게 많은 보물창고 같아요.
-이야기를 쭉 들어보니까 우리는 모두 아름다워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아름이라는 게 나답다는 건데 결국에는 우리가 창작도 그렇고 나다움을 찾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름다운 음악을 우리가 아름답게 했으면 좋겠지 않나.
그러면 듣는 사람들도 아름다워할 거고 그래서 아름답자.
-아름답자.
-(함께) 아름답자, 아름답자, 아름답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음악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저는 개인적으로는 국악을 함께하고 있는 동시대를 사는 우리가 우리끼리 서로를 알아주는 거.
그것이 조금은 돈독함만이 아니라 그 돈독함이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하니까.
서로를 이렇게 알아가는 시간이 조금 더욱더 살 길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이 자리가 무척 반갑고 좋습니다.
-맞습니다. 오래도록 음악하기 위해서.
-혼자서는 쓸쓸하니까 같이.
-함께해요.
-얼씨구.
-(함께) 좋다! 십 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그러니까 우리. 손잡고 가보자~
-(함께) 다 함께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