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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스페셜 - 천년 한지의 고향, 전주

등록일 : 2025-09-15 17:07: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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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견오백지천년. 비단은 500년을 가지만 한지는 1000년을 간다.
한지의 우수성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 같은 사실은 1300년이 넘어서도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무구정광대다나리경에서 실제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내구성에 탁월한 표현력은 지금도 많은 문인과 화가, 창작자들이 한지를 찾는 이유입니다.
-(해설) 한지는 고려 시대부터 뛰어난 질감과 특성으로 우리에게 제지법을 전해준 중국을 매혹시켰고.
-(해설) 오늘날에는 유럽에서도 높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해설) 전주는 이런 한지 산업의 본산이었고 지금도 그 중심입니다.
-(해설) 전주한지는 조선 시대 전라도, 나아가 우리 전통문화의 출판 문화를 발전시키고 풍성하게 만든 밑거름이자 주역이었습니다.
중국인들을 홀리고 이제는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한지.
전주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천년한지의 발자취를 살피고 미래를 그려갔습니다.
물살을 가르는 한지발의 움직임이 경쾌합니다.
닥나무 섬유가 담긴 물을 앞에서 떠서 뒤로 흘려보내고 다시 좌우 옆으로 흘려보냅니다.
우물 정 자를 그리며 번갈아 하는 물질에 한지의 골격이 세워지고 단단하게 살이 차오릅니다.
-(해설) 이 같은 동작을 쉽게 하기 위해 외줄에 틀을 걸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는 전통 제조법인 외발뜨기입니다.
턱이 없는 발에 얹혀 물을 흘러내면서 종이를 뜨기 때문에 흘림뜨기라고도 불립니다.
외발뜨기는 물질의 횟수에 따라 한지의 두께가 결정됩니다.
일정한 두께와 무게를 가지기 위해서는 섬세한 힘 조절이 필요합니다.
자칫 한눈이라도 팔면 처음부터 다시 떠야 해 작업에서 집중력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해설) 전주 인근의 한 야산. 닥나무가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닥나무는 한지의 주원료죠. 섬유질이 단단하고 질긴 참닥나무는 품질 좋은 한지의 첫걸음입니다.
닥나무 한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닥나무를 수확해야 합니다.
수확은 첫서리가 내리는 11월부터 시작하는데 섬유질이 부드러운 1년생 닥나무만 골라 사용합니다.
-(해설) 수확한 닥나무는 삶아낸 뒤에 껍질을 벗겨 말립니다.
이를 다시 찬물에 넣어 불려 겉껍질을 벗겨내면 하얀색이 도는 백피가 나옵니다.
한지의 원료가 되는 섬유질이 변색하는 걸 막고 내구성을 떨어뜨리는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선 잿물이 필요합니다.
잿물은 콩대나 메밀대를 태워 만듭니다.
양잿물과 달리 천연 재료로 만든 잿물은 닥나무 섬유도 상하지 않게 합니다.
잿물로 닥나무 백피를 삶으면 한지의 원료가 되는 순수 상태의 원료인 백닥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백닥이 곤죽이 되도록 닥돌 위에 올려놓고 수백 번 방망이질을 합니다.
섬유질이 잘게 풀어지도록 하는 고해 과정입니다.
이렇게 해야 긴 섬유의 훼손을 막을 수 있습니다.
또 종이가 한결 질기고 견고해집니다.
곤죽이 만들어지면 황촉규 뿌리에서 채취해 만든 닥풀을 섞습니다.
황촉규는 무궁화과에 속한 1년생 식물로 뿌리를 짓이겨 얻은 점액질 물은 잿물과 함께 전통 한지 제작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원료입니다.
황촉규 닥풀은 한지 발에서 물이 흐르는 속도를 조절하고 섬유질을 고르게 퍼트려주는 천연 분산재 역할을 합니다.
곤죽이 된 섬유에 닥풀을 섞으면 본격적으로 종이를 뜨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뜬 종이는 실베개를 사이에 두고 차곡차곡 쌓아 올립니다.
실베개는 물길을 머금은 종이를 떼기 쉽게 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옛 장인들의 지혜가 엿보입니다.
굴렁대를 이용해 종이의 물기를 빼내면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로 옮겨 말립니다.
그다음 마무리는 도침입니다.
도침은 디딜방아나 홍두깨로 한지 표면을 두들겨 섬유 사이의 틈을 메워 종이 표면을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이 과정을 거친 한지는 조직이 치밀해지고 잔털이 일지 않아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글씨가 선명하게 살아나고 한지에 윤기가 흐르게 만듭니다.
-(해설) 이처럼 고된 작업을 거쳐 완성된 전통 한지는 일제강점기에 전해진 일본의 쌍발 뜨기로 만든 종이보다 훨씬 질깁니다.
외발 뜨기는 틀이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다 보니 섬유의 조직 방향이 90도로 겹치는 격자
모양으로 형성되지만 쌍발 뜨기는 발에 테두리가 있어 섬유소 섞인 물에 가둬 아래로만 흘려보내 섬유질이 한 방향으로 뭉치기 때문입니다.
접었다 폈다를 반복해 끊어질 때까지 횟수를 측정한 결과 외발 뜨기 한지가 쌍발 뜨기보다 3배가량 질겼습니다.
섬유질이 짧은 펄프에 화공 약품을 첨가해 만든 일반 인쇄용 종이보다는 80배나 높았습니다.
-(해설) 옅으면서도 자연스럽고 생생한 묵 번짐이 세련된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붓의 속도에 따라 먹의 흡수 속도가 달라지다 보니 한 획, 한 획 그을 때마다 짙고 옅은 농도 차이가 다양한 변화를 만듭니다.
도침으로 조직이 치밀해진 한지가 먹물을 천천히 흡수하기 때문입니다.
예민한 흡수성과 섬세하고 부드러움은 순간적인 필적과 묵흔까지도 정직하게 모두 드러냅니다.
한지의 진정한 강점 중 하나는 이렇게 창작의 표현력을 그대로 살려낸다는 점입니다.
글쓰기에 적당했기에 도침을 마친 한지는 과거에 외교 문서나 교지, 과거지 등에 주로 사용됐습니다.
-(해설) 전국의 한지 70%가량이 유통되는 인사동.
이 가운데 90%가량은 수입 한지거나 수입된 닥나무로 만든 한지입니다.
그런데 국산 닥나무로 만든 전통 한지는 한국화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 서양화 등의 예술 창작 소재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수입산 닥나무로 만든 한지보다 많게는 3배가량 비싸지만 국산 닥을 사용한 한지를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태국 닥 표백해서 뜬 종이고 국산 닥은 이게. 이게 국산 닥이에요. 국산 닥은 이래요.
-(해설) 두 장, 세 장을 겹쳐 만든 순수 한지는 두툼하고 견고해 여러 번의 붓질에도 보풀이 일지 않습니다.
또 기다란 섬유질에 따라 퍼지는 독특한 발색에 질감 표현마저 뛰어나다 보니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캔버스 천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해설) 1966년에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신라 경덕왕 10년 751년에 불국사를 중창하면서 석가탑을 세울 때 봉안된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입니다.
한지에 인쇄된 대다라니경은 1300년이 지났는데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00번의 손길을 거쳐 비로소 완성된 한지가 비단보다 500년 더 간다는 의미의 견오백 지천년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통 종이 제조법은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섬유를 잘게 잘라서 만드는 중국의 재직법과 달리 우리 땅에서는 긴 섬유를 두드려 균일하게 만드는 독창적 방법으로 진화했습니다.
우리 전통 한지는 고려시대부터 중국에서 명성이 높았습니다.
중국인들은 제일 좋은 종이를 고려지라 불렀습니다.
송나라 사람 손목은 12세기에 쓴 저서 계림유사에서 고려의 닥종이는 빛에 희고 눈이 나서 사랑스러울 정도라고 극찬했습니다.
고려시대 문인인 이규봉은 동국이상국집에서 고려의 종이는 부채나 학이 나는 듯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중국과의 외교에서 한지는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종이 기술이 시작된 중국보다 한지의 질이 더 뛰어나다 보니 해마다 많은 한지가 조공물로 중국으로 넘어갔습니다.
중국의 많은 문인은 고려에서 건너온 한지에 작품을 남겨 후대에 전하고 있습니다.
-(해설) 이런 고려지의 전통을 계승한 가장 대표적인 곳. 바로 전주입니다.
전주는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전국 한지의 40%를 생산했던 최대 한지 생산지였습니다.
정조 때 편찬된 저조전사실에는 전주에만 당나무 밭이 1035곳에 이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주 주변에 원료가 되는 닥나무가 많이 재배되고 종이뜨기에 좋은 맑은 물이 있어 한지 생산이 일찍이 번성했던 겁니다.
전주 한지의 뛰어난 품질은 여러 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종실록에 전주와 남원에서 만든 종이가 최상품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 성종 때 지리서인 동국여재승람과 여지도서, 대동지지 등에서도 뛰어난 전주 한지 품질이 언급됐습니다.
조선에 창건한 태조가 1391년에 설치한 전라감영.
태조는 전라도와 제주도를 관할하도록 전주부에 전라감영을 설치하면서 아예 조지소를 뒀습니다.
조지소는 한지 장인들이 머물면서 종이를 생산하고 관리하는 곳입니다.
경국대전에 기록한 당시 종이 만드는 지장은 236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습니다.
18세기에 전라감영 영내 기관을 살펴볼 수 있는 완산십곡병풍도.
전국 최대의 종이 생산 지역답게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 왼편에 조지소가 위치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종이 만드는 일이 전라감영과 전라관찰사에 그만큼 중요한 업무였던 걸로 보입니다.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 정치 이념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대대적인 서적 편찬 사업을 펼쳤습니다.
또 문서와 종이, 중국에 보낼 공물, 사대부의 문방 용품 등 한지 수요가 급격히 늘자 닥나무 재배가 많은 전주에 지소를 두고 한지 생산을 장려한 겁니다.
-(해설) 한지는 출판과 서화, 전통공예 등 전주 만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 됐습니다.
-필요한 넓이로 쪼갤 거예요.
-(해설) 굵은 대나무를 돌판 위에 세우고 칼로 일정하게 잘라 부챗살 만드는 작업이 이어집니다.
부챗살에 풀을 바르고 전주 한지를 덧대자 바람을 일으키고 더위를 쫓는 합죽선이 만들어집니다.
한지는 수천 번을 폈다 접었다 해도 찢어지지 않습니다.
부채를 오래 쓰기 위해 한지에 기름을 먹이기도 하고 옻칠도 했습니다.
전주는 한지와 함께 부채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유일하게 전라감영에 선자청이 설치돼 임금님에게 진상할 부채를 만들었습니다.
현재도 전국 제일의 전통 부채 생산 지역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해설) 색으로 수명을 다한 한지는 생활용품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옛 선비들이 공부를 마친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책을 잘라내 끈으로 만들어 필통 같은 문방구류를 만들었던 게 지승공예의 시작입니다.
물에 넣어도 풀어지지 않을 정도로 질기다 보니 신발과 항아리 등 생활용품은 물론 심지어 전장에서 몸을
보호하는 갑옷을 만드는 데도 사용됐습니다.
종이로 만들 수 없는 살림살이가 하나도 없었을 정도입니다.
지승공예는 질긴 한지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설) 가재도구를 아름답게 꾸미는 데에도 요긴하게 사용됐습니다.
빨강과 파랑, 노랑, 검정, 하양 등 오방색으로 염색한 한지를 문갑과 패물함, 서랍장 등 생활용품에 붙여 멋을 내기도 했습니다.
-탁주 같은 것도 넣어 놓고.
-(해설) 전주는 한지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종이를 이용한 다양한 공예가 발달했습니다.
한지가 문장이나 그림을 담는 용도를 넘어 생활 곳곳에서 다양하게 이용되며 우리의 삶과 함께 호흡해 온 동반자인 셈입니다.
-(해설) 한지의 특징은 창호지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창호지는 바람과 빛을 통과시키고 습도를 조절하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습기가 많으면 빨아들여 공기를 건조하게 하고 공기가 건조하면 습기를 내뿜어 알맞은 습기를 유지하게 합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종이라고도 합니다.
또 단열 성능도 뛰어나 창호지 성분을 문에 바르면 집이 따뜻해집니다.
전북대학교 박물관 수장고. 육중한 문을 열자 조선시대에서 책을 찢기 위해 나무로 만든 책판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2005년에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204호로 지정된 완형 책판입니다.
전라감영이 전주에서 생산한 한지를 판각한 목판을 가리키며 출판된 서책을 완형본이라고 합니다.
전북대 박물관에는 동의보감과 주자대전 등 1700년대부터 1800년대 말까지 사용된 11개의 서적 책판 5000여 개가 보관돼 있습니다.
책판은 습도 50%, 온도 20도의 항원, 항습 조건에서 관리하다 보니 지금도 책을 찢을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양호합니다.
책판 가운데 제목이, 양쪽으로 내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책판 하나를 인쇄하면 두 페이지를 찍을 수 있습니다.
25권으로 된 동의보감을 모두 인쇄하기 위해서는 1000장이라는 많은 양의 한지가 필요했습니다.
-(해설) 전라감영에서 종이를 생산하기 때문에 종이 걱정 없이 출판할 수 있었습니다.
임금의 명에 따라 정치와 역사, 의서, 병서 등 주로 사대부들이 필요한 90여 종의 서책을 발간했습니다.
-(해설) 조선 후기 들어 한글 보급으로 서적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자 민간인들도 책 발행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민간인들이 판매 목적으로 가능한 책을 방각본이라고 불렀습니다.
민간의 서적 발간이 늘면서 종이 수요도 덩달아 늘었습니다.
전주 한지 생산 거점 지역이 전라 감영에서 전주천과 인근 풍남동으로 확대됐습니다.
조선 말 당시에 전주천 풍경을 찍은 옛 사진들 속에서 한지 생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진 속 장인들은 커다란 통을 전주천에 놓고 한지를 뜨고 돌 위에 한지를 말리기도 합니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한지를 뜨는 모습에서 고유의 공동체 정서가 느껴집니다.
전주천 오목교에서 완산교 사이에는 민간인이 운영하는 서점이 모여들면서 서포거리가 생겨났습니다.
서포는 현대의 서점과 출판사를 합친 곳으로 책을 만들어 판매하다 보니 한지 공급이 수월한 지역으로 모인 겁니다.
-(해설) 서포에서 출판한 책 가운데 심청전, 춘향전, 구운몽 등 고전 소설이 단연 인기였습니다.
-이 내 말을 들어 보소~
-좋다~
-(해설) 당시 크게 유행한 판소리가 고전 소설에 출간해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판소리를 들은 평민들이 판소리 내용을 소설로 옮긴 출판물을 요구했습니다.
판소리 가운데 전라도의 구성진 방언까지 소설 속에 담아내 읽는 재미를 더했습니다.
-이렇게 출판했어요, 판을 가지고.
-(해설) 높은 인기에 출판된 방각본은 전라감영에서 발행한 완형본 보다 3, 4배 많은 250여 종에 이릅니다.
한자를 모르는 평민들을 위해 읽기 쉬운 한글로 번역한 출판물도 출간됐습니다.
-(해설) 전주에서 간행된 책은 전주에서만 판매된 게 아니었습니다.
서울 등 전국적으로 판매되면서 서울의 경판본과 경기도 안성판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한지가 일부 계층만 즐겼던 문학을 대중적으로 향유하는 기반이 되면서 전주를 문화의 생산지로 성장하게 만든 발판이 된 셈입니다.
-(해설) 한지는 1900년대 들어 서양식 인쇄 기술과 신소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신소설이 새로운 활자 방식으로 서양 종이에 인쇄되면서 우리의 목판 인쇄 문화와 한지는 빠르게 대중들로부터 외면받게 됐습니다.
한지 운명이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된 겁니다.
-(해설)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한지 업계의 상황은 더욱 나빠졌습니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유리창의 보급으로 주거와 생활 양식이 바뀌면서 더 이상 창호지와 한지 장판지가 필요 없게 됐습니다.
중국에서 수입된 값싼 종이는 가뜩이나 어려워진 한지 업계의 설 자리를 더욱 좁게 만들었습니다.
한때 전국적으로 수백여 곳에 이르렀던 한지 업체가 이제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한지산업지원센터에 따르면 전국 한지 업체 수는 1996년 64곳에서 2016년 28곳, 2019년 21곳, 2023년 19곳으로 조사됐습니다.
20여 년 만에 3분의 2가 넘는 한지 업체가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전주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7개 한지 업체가 남아 명맥을 지키고 있습니다.
무형유산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승됩니다.
3대째 전통 방식으로 한지를 생산하는 최성일 씨.
종이를 떼기에 앞서 닥나무 껍질을 직접 살핍니다.
물에 담가놓은 닥나무 백피를 꺼내 한지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는 사소한 흠이라도 일일이 제거합니다.
좋은 재료가 좋은 한지를 만들어낸다는 신념 때문입니다.
이런 노력에 문화재 보수용 한지와 서화지, 사진 인화용 순지 등 그가 만든 제품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지의 종갓집인 전주에서 태어난 이상 100년, 2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품질 좋은 한지를 만드는 게 평생 바람입니다.
-(해설) 58년이 된 이 한지 업체의 경영 철학은 법고창신.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정신으로 한지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한지 수요 감소로 한때 위기도 있었지만 벽지 등 건축 자재와 보건용 한지 등 제품 다변화로 극복하고 있습니다.
그 바탕에는 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 한지의 기술이 깔려 있습니다.
이제는 친환경성을 앞세운 한지 개발로 적극적으로 세계 시장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해설) 지난해 전국 한지 업체가 생산한 한지는 389만 장으로 이 가운데 전주를 포함한 전북 10개 업체가 163만 장을
생산해 42%를 차지하면서 가장 많았습니다.
전북 지역 매출액은 31억 8000만 원으로 69%를 차지했습니다.
업체들도 많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매출 비중이 더욱 큰 건 고품질의 차별화된 한지 생산에 주력한 결과입니다.
-(해설) 다행스러운 건 한지의 사용 범위가 최근 들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2000년에 설립된 익산의 에코융합섬유연구원.
한지로 실과 원단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섬유 업체에 이전하고 있습니다.
한지 원단은 종이로 만든 친환경 소재로 면섬유에 비해 땀 흡수력이 3배에서 5배가량 좋고 항균성이 뛰어난 데다 냄새도 제거해 줍니다.
한지 옷과 양말, 침구류, 모자 등 건강에 이로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 침체된 의류 업계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해설) 한지가 단순히 종이의 개념을 뛰어넘어 훌륭한 예술 작품이나 인테리어 소재, 문화재 복원재로도 세계적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2007년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미국 뉴욕 관저 게스트룸이 전주 한지로 꾸며져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부드럽고 은은한 아름다움을 가진 한지로 커튼부터 스탠드 조명, 벽면을 장식해 한지의 우수성을 선보였습니다.
오래돼 문화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유럽은 10여 년 전부터 한지를 문화재 복원재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로마 교황청의 대형 지구본은 낡고 부스러진 원본 뒷면에 덧대 원형을 잡아주는 데 우리 한지가 쓰였습니다.
대형 지구본은 바티칸 접견실에 두고 외빈을 접견할 때마다 활용하던 교황의 애장품입니다.
바티칸 박물관에서 사료 발견된 19세기 건축 도면 복원 작업에도 한지를 썼습니다.
이탈리아 국립 기록유산 보존복원 중앙연구소는 한지를 이용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문화재 5점을 완벽하게 복원했습니다.
또 프랑스 루브르박물관도 신성 로마제국 시대, 막시밀리안 2세가 쓰던 책상에 부서진 손잡이를 복원해 내는 데 한지를 활용했습니다.
4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는 당나무는 단단하게 자라는 데 비해 중국이나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당나무는 섬유질이 약해 품질이 떨어집니다.
석회질이 많은 환경에서 자라는 일본 당나무는 국산 당나무처럼 섬유질이 질기지도 오래가지도 않습니다.
강한 국내 당나무의 특성이 한지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또 한지는 통풍이 되어 습도를 어느 정도 조절하기 때문에 썩지 않는 장점이 있습니다.
화학첨가물이 없이 자연에서 얻는 친환경 소재로만 만든 중성지다 보니 복원 대상인 문화재를 산화시켜 훼손하지도 않습니다.
일본의 독무대인 유럽의 문화재 복원용 종이 시장에서 이 같은 한지의 가치가 입증된 겁니다.
-(해설) 유럽의 문화재 복원용 종이에 전주 한지도 당당히 포함됐습니다.
이를 위해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전문가들이 여러 차례 전주의 한지 업체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 국립 기록유산 보존 복원 중앙연구소는 세밀한 조사와 성분 분석 등을 통해 2016년 전주에서 생산된
한지를 문화재 복원용으로 사용되는 종이로 정식 인증했습니다.
-(해설) 2017년에는 전주 한지로 복분한 고종황제의 서한이 프란체스코 교황에게 전달되면서 전주 한지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습니다.
서한은 1903년에 즉위한 비호 10세 교황이 고종황제에게 보낸 친선에 대한 답장입니다.
서한은 비호 10세의 즉위를 축하하고 건강하길 바란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한지의 명맥을 잇고 있는 전주는 1008년에 조전왕조실록 복분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국보 제151호로 태조에서 철종까지 470년간의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500년 가까운 단일왕조의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담고 있어 기록문화의 정수로 꼽히고 있습니다.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됐습니다.
복분화 과정의 관건은 원본과 최대한 비슷한 종이를 사용해 세계 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의 위엄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사용된 종이를 분석해 만든 품질 기준이 전국의 한지 업체에 제시됐습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품질 기준을 충족한 한지만 골라 복분 작업에 사용했습니다.
전주의 한지 업체에겐 전통 한지의 품질을 높이는 기회가 됐습니다.
-(해설) 전주 사고본와 태백산 사고본 등 모두 1202개의 책을 복원하는 데 전국 22개 한지 업체가 참여했습니다.
이 가운데 전주 한지가 절반 넘게 사용됐습니다.
-(해설) 1997년부터 2년마다 전주에서 열리는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개최 때마다 20여 개국에서 참여하는 세계적인 서예 전시회입니다.
지난해 열린 14번째 행사에서 한지로 만든 작품을 전시하는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습니다.
닥종이와 섬유질이 짧은 펄프로 혼합해 만든 화선지는 전통 한지보다 매끄러워 글 쓰기가 쉽고 가격이 싸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서예가들이 전통 한지보다 화선지를 선호하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세계서예전북비에날레가 이러한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무수한 전통 한지 지키기에 나섰습니다.
1000명의 작가들이 출품한 국내 작품에 전주 한지를 사용토록 해 한지의 우수성을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 알렸습니다.
-(해설) 전통 한지의 계승과 보존을 위해 시설 투자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2010년에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전통 한지 관련 연구 기관인 한지산업지원센터가 전주에 들어섰습니다.
한지산업지원센터는 200여 종에 이르는 한지 가운데 제작법이 사라진 한지는 옛 문헌에서 제작법을 찾아내 복원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부채에 사용되는 한지를 복원한 데 이어 방바닥에 까는 한지 장판지를 복원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해설) 또 한지 산업화를 위해 의료와 포장, 산업 용지 등 부가가치가 높은 응용 한지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해설) 한때 전주 한지의 생산과 유통의 중심지였던 흑석골.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과 인근 당나무 재배지와 가까운 지리적 특성으로 종이를 생산하기에 적합했습니다.
이 때문에 1950년대부터 한지 장인들이 모였고 수십여 개의 한지 업체가 들어섰습니다.
상인들은 좋은 종이를 만들기 위해 서로 경쟁하면서 오당지와 창호지, 서화지 등 각자만의 특색 있는 다양한 종류의 한지를 만들어냈습니다.
1980년대부터는 일본으로 수출길마저 열리면서 밤낮으로 쉴 틈 없이 공장을 가동해야 했습니다.
-(해설) 하지만 한지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 문제는 부메랑이 돼서 돌아왔습니다.
결국 수십여 업체는 이곳을 떠났고 일부 업체는 팔복동 공단에 마련된 한지협동화단지로 옮겨 갔습니다.
한지 업체들이 흔적 없이 사라진 이곳 흑석골이 30여 년 만에 전통 한지를 계승하고 알리는 성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전통 방식의 한지 제조 기술을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한 시설로 천년한지관이 세워졌습니다.
초지와 도침, 건조 등 전통 한지 제조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습니다.
한지 장인들이 천연 잿물과 황촉규 닥풀을 만들어 전통 제작 기술인 외발뜨기로 한지를 뜨는 과정을 공개해 한지에 대한 친근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또 천년한지관 인근에 K-한지마을 건립이 추진됩니다.
전주시는 당나무 경관림을 조성하고 한지 작가들이 활동하는 공간인 한지문화예술촌과 연수원,
한지역사기록관 등의 시설에 2028년까지 190억 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입니다.
한지마을이 완공되면 천년한지관과 함께 완판본의 고장이오 출판의 도시 한지의 고장이라는 수식어가 왜 붙었는지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또 전주 한지의 세계화를 위한 구심점이 될 전망입니다.
-(해설) 한지 활성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습니다.
현재 전주에서 한지를 만드는 대부분의 한지 장인은 7, 80대로 고령인 상황.
60대면 그나마 젊은 편에 속합니다.
후계자를 육성하지 않으면 전통 한지의 명맥이 끊길 수도 있는 처지입니다.
하지만 한지만으로는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현실에 선뜻 나서는 이수자가 없습니다.
-(해설) 국산 당나무 확보 또한 시급한 숙제입니다.
전주 지역 업체가 필요한 한 해 당나무 껍질은 110톤가량입니다.
이 가운데 지역에서 생산된 닥나무 껍질은 4만 4000제곱미터의 닥나무 재배 단지에서 겨우 2.5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전주시는 2026년까지 닥나무 재배 면적을 14만 제곱미터로 늘린다는 계획입니다.
하지만 한지 업체들은 가격을 더 낮추고 안정적인 닥나무 껍질 공급을 위해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재배 단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또 조선시대와 같은 우량 종이를 생산할 수 있도록 닥나무에 대한 품종 개량 사업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해설) 한지 품질 표시 제도의 정비도 필요합니다.
한지 품질 표시 제도는 한지의 인지도와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생산자와 제조 방식, 재료 원산지 등 품질을 좌우하는 사항을 표기했습니다.
하지만 한지 품질 표시제 등록 업체 수가 2017년과 2018년에는 각 41개였지만 2019년에는 12개, 2020년과 2021년에는 등록 정보 자체가 없습니다.
정부도 한지 업체도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한지 경쟁력 확보를 위해 도입한 품질 표시제가 유명무실해졌습니다.
품질 표시제를 정착시켜 소비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일본 화지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해설) 조선시대 200종에 이르는 전통 한지 가운데 자취를 감춘 제작법 복원도 시급한 과제로 남았습니다.
옛 제작법을 기억하는 장인들이 사라지기 전에 전수를 받고 문서화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지난 3월 유네스코 본부에 한지 제작 관련 전통 지식과 기술을 인류 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인류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 동아시아에서는 2009년이 등재된 중국의 전통 종이인 선지와 2014년에 등재된 일본의 화지에 이어 세 번째입니다.
등재 여부는 2026년 12월 열리는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결정됩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국내 세계기록유산은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요절, 승전원일기 등 18건에 이릅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중국, 일본보다 많습니다.
기록 유산 대부분은 한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주는 우리의 전통 문화를 든든하게 뒷받침해 온 천년 한지의 고향입니다.
우리 한지가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 전주 한지가 그 중심에서 어제와 오늘처럼 내일도 환하게 빛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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